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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quemont2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3) - 바르텐부르크 전투 (하) 카알 대공은 이 상태에서 개활지로 나가 란담(Landdamm) 제방을 향해 돌격하는 것은 그냥 자살 행위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부하들을 자살로 이끌 생각은 없었기에, 과감히 좌측, 그러니까 남쪽으로 우회하여 측면을 공격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휘하의 총 4개 대대 중 2개 대대를 현장에 남겨 거기서 바르텐부르크 내의 적군의 이목을 끌도록 하고는 자신은 나머지 2개 대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향했습니다.  다행히 가는 길에 우호적인 현지 주민들을 만나 그들의 길안내에 따라 개활지로 나설 수 있었는데, 그 개활지는 바르텐부르크와 그 남쪽에 위치한 블레딘(Bleddin) 마을 딱 중간 위치였습니다.  거기서 보니 블레딘 마을에도 대포까지 거느린 그랑다르메 소속 뷔르템베르크군 몇 개 대대가 주둔한 것이 보였습니.. 2025. 1. 20.
바우첸 전투 (6) - 삼면초가 술트와 마르몽, 네의 3면 공격은 당연히 모조리 크렉비츠 언덕에 한꺼번에 집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블뤼허의 프로이센군 전선은 크렉비츠(Kreckwitz)에서 도버쉬츠(Doberschütz)를 거쳐 플리스코비츠(Pließkowitz)까지 길게 펼쳐져 있었는데, 크렉비츠 언덕 쪽에 가장 가까왔던 것은 술트의 제4 군단이었고, 그 중에서도 프란커몬트 (Frederic von Franquemont) 장군의 뷔르템베르크 사단이 그 선봉에 나섰습니다. 결과적으로 독일인들끼리 맞붙은 전투였으니 동족 상잔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남부 독일이자 카톨릭 배경인 뷔르템베르크와 북부 독일의 개신교 배경인 프로이센은 30년 전쟁 동안 온갖 적대감을 불태웠던 사이였으므로 정말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뷔르템베르크는 지.. 2023.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