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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issa5

지도와 공약(空約) - 프로이센 장교들의 이탈 안실리온(Friedrich Ancillon)의 조언은 꽤 정곡을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국적에 상관없이 귀족이나 신사라면 모두가 프랑스어를 쓰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당대의 지식인답게, 야만스러운 러시아보다는 문명국인 프랑스 친화적인 노선을 취하기를 권고하며 러시아 장군들의 무능력 등을 비난하기도 하고, 스페인 민중과는 달리 프로이센 국민들에게는 종교적인 광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스페인식 민중 투쟁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등의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도 했습니다. 그러나, 누가 봐도 그럴싸한 이유도 내놓았습니다. 바로 러시아와 프랑스의 지리적 위치였습니다. 기동력이 좋은 군대를 가진 프랑스는 바로 지척에 있는데 러시아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었지요. 또한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는 전투에서 승리해도 유럽 .. 2022. 3. 28.
드리사에서 비텝스크로 - 러시아의 구원은 짜르에게서 온다 여태까지 보셨다시피, 당시 러시아군에는 비정상적으로 많은 수의 외국인들, 특히 주로 독일인들이 많이 종군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외국인들이 러시아군에서 일을 하자면 당장 언어 문제가 큰 장벽이 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군 내부의 표준어는 프랑스어였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독일인 장교들도 프랑스어에 대부분 익숙했거든요.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때 즈음의 일입니디만, 니에쉬비에즈(Nieshviezh) 인근에서 벌어진 프랑스와 러시아 양측 기병대끼리의 소규모 충돌이 벌어졌습니다. 전투의 혼전 중에 러시아군의 무카노프(Mukhanov) 대령이라는 사람이 부하 장교에게 큰 소리로 명령을 외쳤는데, 그 다음 순간 옆에서 달려든 휘하 카자흐 기병의 칼을 맞고 죽었습니.. 2020. 1. 6.
드리사(Drissa)로 가는 길 - 후퇴하는 러시아군의 사정 일반적으로 후퇴하는 군대는 비록 작전상 후퇴라고 할지라도 사기가 매우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자국 내에서 영토를 내주며 후퇴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1808년 말 자국 영토도 아닌 스페인에서 영국으로 탈출하기 위해 코루냐 항구로 후퇴하던 존 무어 경(Sir John Moore)의 영국군이 추위와 와인 속에서 그야말로 녹아내리던 것을 상기해보면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또 후퇴할 때는 사기 뿐만 아니라 부상자와 환자, 쌓아놓았던 각종 보급품의 처분 등 온갖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당장 후방 걱정은 하지 않고 날랜 부대들로 쫓아가기만 하면 되는 추격군의 입장과, 부상병과 보급품을 수습해서 움직여야 하는 후퇴군의 입장은 다를 수 밖에 없고, 보통 그런 문제들 때문에 결국은 후퇴하는 군대는 추격하는.. 2019. 12. 30.
1812년, 드리사(Drissa)에서의 러시아군 : '전쟁과 평화' 중에서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는 누구나 인정하는 명작 고전입니다. 여기에는 역사상 실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며, 많은 역사서에서 잘 다루지 않는 퓰과 그가 기안했던 드리사 방어 진지에 대해서도 꽤 자세히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빌나에서 후퇴한 이후 원래 계획대로 드리사 방어 기지로 후퇴한 러시아군의 내부 상황에 대해서 무척 생생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제가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 다운받은 영문판 전쟁과 평화를 제 나름대로 번역했습니다. ------------------------------------ 제9권 1812년 제9장 안드레이 대공이 러시아군 총사령부에 도착한 것은 6월 말이었다. 짜르가 함께 하고 있던 제1군은 드리사(Drissa)의 요새화된 병영에 주둔하고 있었다. 제2군은 프랑스의 대군에 .. 2019. 12. 23.
1812년 나폴레옹을 기다리는 러시아군의 내부사정 (마지막편) 그런데 놀랍게도 러시아군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네만 강을 따라 늘어선 여러 마을에 분산되어 숙영 중이었는데, 주로 사열과 분열 같은 제식 훈련만 죽어라고 했습니다. 장교들은 자기들끼리 무도회와 파티를 벌이며 시골 아가씨들과의 연애 모험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짜르 알렉산드르를 따라 빌나에 와있던 국무부 장관 쉬시코프(Aleksandr Semyonovich Shishkov)는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마치 적군이 수천 km 먼 곳에 떨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도 근심걱정이 없는 듯 했다. 심지어 적군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들어오지 않았다." 적군에 대한 소식은 커녕 아군인 러시아군으로부터도 아무 뉴스가 없었습니다. 러시아군이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었기 때.. 2019. 1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