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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ttbus2

1813년, 작센을 둘러싼 갈등 3월 24일, 블뤼허가 드디어 작센 영토인, 아니 이제 프로이센 영토라고 선언된 코트부스로 들어갈 때 블뤼허의 조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칼리쉬의 쿠투조프는 기분이 팍 상해버렸습니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프로이센군이 러시아군을 젖히고 코트부스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며 당장 보급물자를 챙겼다는 것이었지만, 총사령관이자 연합군 사령관으로 쿠투조프는 그런 소소한 문제를 지적할 수는 없었습니다. 쿠투조프가 문제를 삼은 부분은 블뤼허의 포고문에 '동맹국'이라는 애매모호한 이야기만 씌여있을 뿐, 러시아라는 단어가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게다가 블뤼허의 조치에 대해 화가 난 작센 관리들이 러시아 사령부에까지 '코트부스가 프로이센 영토가 되는 것이 정말 짜르의 뜻 맞느냐'라며 항의를 해오자, 그에 대.. 2022. 6. 13.
진격의 러시아, 뒤쳐진 프로이센 - 갈등의 작은 시작 당시 연합군의 최고 권력자는 당연히 짜르 알렉산드르였습니다. 그리고 프로이센군과 러시아군을 다 통틀어서 최고의 브레인은 바로 샤른호스트였습니다. 적어도 알렉산드르가 볼 때는 그랬습니다. 누가 봐도 멍게, 즉 멍청하고 게으른 성향의 지휘관인 쿠투조프에게 질렸던 알렉산드르는 샤른호스트와 만나서 이야기해본 뒤 그의 성실과 명석, 치밀한 논리에 홀딱 넘어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그에 대한 칭송을 늘어 놓았습니다. 평민 출신의 직업 군인 주제에, 군무에 필요하다 싶으면 가끔씩 국왕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까지 서슴치 않는 샤른호스트에 대해 내심 벼르고 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감히 샤른호스트를 어쩌지 못한 것은 사실 알렉산드르의 그런 호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는 나.. 2022.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