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2.25 06:30

이제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 서전이 시작되어야 하는데, 제가 요즘 다사다난하여 책을 못 읽고 있습니다.  최소 몇 주 간은 C. S. Forester의 Lieutenant Hornblower 중에서 제가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을 발췌 번역해서 올리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혼블로워 시리즈 중에서 최고 역작이라고 생각하는 이 책은 국내 연경사에서 '혼블로워. 2: 스페인요새를 함락하라'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습니다.  제 발췌 번역본은 여러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준에서 중단될텐데, 재미있다고 생각되시면 영문판이든 한글판이든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mallGb=KOR&ejkGb=KOR&linkClass=010310&barcode=9788989369097





Lieutenant Hornblower by C.S. Forester (배경 : 1801년 카리브 해 HMS Renown 선상) --------------


(부시와 혼블로워가 각각 제3, 제5 부관으로 탑승한 영국 해군의 74문짜리 전함 리나운 호(HMS Renown)는 산토 도밍고 섬의 스페인 해군 요새를 파괴하고 그 곳의 스페인 선박들을 나포하거나 격침시키라는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카리브해에 도착합니다.  항해 도중에 함장이 미쳐버리는 사고가 발생하여 함장은 함장실에 연금되고 제1 부관인 버클랜드가 임시 함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다지 뛰어난 지휘관이 아닌 버클랜드는 별다른 계획없이 그냥 스페인 요새의 항구로 밀고 들어가 일제 포격을 하려 합니다.)


저녁 당직(dogwatches : 원래 4시간 단위의 교대근무 시간을 4pm~8pm 사이에는 2시간짜리 2개로 쪼개는데 이걸 dogwatch라고 불렀습니다 : 역주) 시간 동안 혼블로워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듯이 머리를 숙인 채 혼자서 갑판을 왔다갔다 걸었다.  등 뒤로 맞잡은 혼블로워의 두 손이 초조하게 꿈틀거리고 배배 꼬이는 것이 부시의 눈에 들어왔다.  부시는 잠깐 의심이 들었다.  이 열정적인 젊은 장교에게 혹시 신체적 용기가 없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  그 표현은 부시의 창작품은 아니었다.  그는 그 표현이 몇 년 전 어디서인가 악담으로 사용되는 것을 들었었다.  혼블로워가 겁장이일 수도 있다고 대놓고 스스로 짐작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표현을 지금 쓰는 것이 더 나았다.  부시는 그다지 관대한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겁장이라면 그는 그 인간과는 뭐든 더 같이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절반 정도 흘렀을 때 갑판을 따라 호각들이 길게 울렸다.  해병들의 북이 두두두 소리를 냈다.


"전투 준비를 위해 갑판을 치운다 !  각자 위치로 !  전투 준비 !"  ("Clear the decks for action! Hands to quarters! Clear for action!"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갑판 아래의 선실을 이루는 격벽이나 식탁 등의 가구, 짐짝 등을 모두 치워 선창에 보관합니다.  그래서 전투 준비에 clear라는 말을 쓰는 것입니다. : 역주)


부시는 전투시 자신의 위치인 하(下) 포갑판(lower gundeck)으로 내려갔다.  하 포갑판 전체와 우현의 24파운드 포 17문이 그의 지휘 책임 하에 있었고, 좌현의 포들은 그의 밑에 있는 혼블로워가 맡게 되어 있었다.  수병들은 이미 칸막이를 해체하고 방해물들을 치우고 있었다.  갑판을 따라 군의관 조수들 한 무리가 내려왔는데, 그들은 구속복(straight jacket)을 입인 채 널빤지에 묶어놓은 사람 하나를 떠매고 왔다.  구속복과 결박 끈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힘없이 꿈틀거리며 처량하게 울고 있었다.  전투 준비 때문에 함장실을 치우면서 함장을 닻줄 선창(cable tier, 닻줄을 말아두는 맨 바닥 갑판, 대포알이 흘수선 아래를 뚫는 경우는 거의 없었으므로 선창은 상대적으로 매우 안전한 곳이었습니다 : 역주)으로 내려보내는 것이었다.  그런 북적거림 속에서도 한두 명의 수병들은 그런 함장의 몰골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는데, 부시는 재빨리 그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는 하 포갑판이 전투 준비 완료가 되었다는 보고를 칭찬받을 만한 시간 안에 올리고 싶었다.  혼블로워도 나타나서 부시에게 경례를 하고는 그의 함포들을 감독하며 서있었다.  이 하갑판의 대부분 구역은 석양 무렵의 어둠에 덮혀 있었다.  상갑판으로 통하는 햇치 통로들(hatchways)로 들어오는 굵은 햇빛 줄기들은 진한 빨간색 페인트로 칠해진 갑판의 저 구석까지는 거의 밝혀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군함의 보이들 6명이 모래를 담은 버켓을 들고 와서 갑판 여기저기에 한주먹씩 뿌렸다.  (매끄러운 갑판 위에서 피와 물기로 인해 미끄러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 역주)  부시는 그들의 작업을 날카로운 눈으로 감독했다.  포수들이 미끄러지지 않으려면 그 모래가 꼭 잘 뿌려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각 함포 옆마다 물을 가득 채운 버켓을 놓아두었는데, 이건 포구를 청소하는 장전봉의 헝겊뭉치를 적시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혹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즉각 진화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주돛대의 주변에는 여분의 소화용 물통이 둥글게 놓여 있었다.  군함의 양현에 있는 통에는 화승(slow match)이 천천히 타들어가고 있어서, 만에 하나 어느 함포의 화승간(火繩桿, linstock, 끝에 화승이 달린 막대기 : 역주)의 불이 꺼질 경우 그 함포 조장이 여기서 다시 불을 붙일 수 있었다.  불과 물이 준비된 셈이었다.  낮은 천정 들보에 닿을 듯 높은 군모(shako)를 쓰고 선홍색 자켓과 하얀 십자밴드를 맨 해병들이 보초 임무를 위해 갑판 위를 쿵쿵거리며 뛰어왔다.  그린우드 상병은 각 햇치 통로에 장전하고 착검까지 한 보초를 한 명씩 세웠다.  그들의 임무는 겁을 먹고 안전한 흘수선 아래 구역으로 도망치려는 사람이 없도록 인가되지 않은 어떤 사람도 햇치 통로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임시 포술장인 미스터 홉스는 조수들과 함께 잠깐 나타났다가 곧 저 아래의 화약고(magazine)로 사라졌다.  그들은 모두 가장자리 천으로 만든 슬리퍼(list slippers)를 신고 있었는데, 이는 전투가 한창일 때 어쩔 수 없이 바닥에 흩뿌려질 약간의 화약가루가 폭발할 위험을 없애기 위한 것이었다.  




(Linstock의 모습입니다.  그냥 화승막대기입니다.  이걸 대포의 점화구 즉 touchhole에 대면 대포가 발사되는 것이지요.)




* PS1 : Dogwatch라는 독특한 2시간 짜리 교대 순번을 만든 이유는 2가지입니다.  하나는 2교대로 돌아가는 군함의 교대 근무에서, 이렇게 2시간 짜리 순번이 없을 경우 어느 한쪽 교대조가 계속 특정 시간대(가령 0시~4시)에 근무를 서야 하는 불공평함을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하나는 그 4시간 중에 모든 수병들이 저녁 식사를 하고 쉴 시간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 PS2 : 저 list slipper라는 단어는 19세기 문학 작품 여기저기에 나오는, 영어권 사람들로서도 약간 신기한 단어인 모양이더라구요.  List라는 것은 천의 가장자리를 뜻하는 것인데, 천의 가장자리는 실이 풀리는 것을 막기 위해 조금 견고하게 처리가 되어 있지요.  그런 두꺼운 천으로 만든 슬리퍼를 list slipper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딱딱한 밑창을 가진 구두를 신었다가 구두 바닥과 갑판 사이에 낀 화약가루가 마찰열로 폭발할 것을 염려하는 것 같습니다.  List slipper라는 단어에 대한 토론은 아래 link를 참조하세요.


http://www.worldwidewords.org/qa/qa-lis1.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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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멍쿠기자 2019.02.25 10: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군배는 장전하고 줄을 당겨서 쏘는건줄 알았는데 불을 붙이는거였군요;;;

    • ㅋㅋ 2019.02.25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 당시 영국 해군만 플린트락 방아줄 격발식을 썼다고 합니다. 영국 해군이랄지라도 화승식 대포를 쓰는 함선도 많겠죠

  2. 카를대공 2019.02.25 14: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이 경제적 여유가 생기셔서 책 읽고 나폴레옹(및 여러분야) 글만 쓰셨으면ㅋㅋ

    • reinhardt100 2019.02.26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담이지만 조지 소로소가 원래 50만 파운드를 장만한 후, 평생 철학연구하면서 살려고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는데 그게 갑자기 생각나네요. ㅎ

      저도 구독자로서 기대하고 있습니다.ㅎ

    • 극우세력 2019.02.27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다른 헷지펀드 수괴들 대비 소로스 영감님은 하시는 행동도 차이가 남다르시지요, 흑막정치가나 국제사상가가 그 인간의 본질이지 투기세력이 과연 본업이신지

  3. 2/28일 입대 2019.02.25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러시아 침공은 OO위키에서만 읽어도 너무 처절하고 처참하던데 나시카님이 어떻게 풀어주실지 기대가 커요!

    • reinhardt100 2019.02.26 0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러시아 침공보다 사실 진짜 개판이었던 건 이베리아 전쟁이었죠. 오히려 러시아 원정은 천운으로 날씨가 좋아서 그나마 그 정도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입니다. 베레지나강에서 철수할 때 영하 20도까지는 안 갔으니 망정이지 만일 독소전쟁기 모스크바 공방전 수준 날씨 같았으면 그랑 드 아르메 및 동맹군은 싸그리 러시아 벌판의 인간비료지층이 되었을지도 모를 정도로 심각했습니다.

    • 웃자웃어 2019.02.27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나폴레옹식 핑계를 직장에서 대면 바로 해고당하죠.

  4. dd 2019.03.20 07: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절판된 책을 어떻게 봅니까 ㅠㅠ

2018.04.28 11:22



어제 김정은의 방명록에서 숫자 7을 쓴 방식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주로 영국과 미국에서는 7을 쓸 때 가로 획을 긋지 않지만 유럽 대륙에서는 대부분 긋는다고 합니다.  이는 1이라는 숫자 윗머리에 serif를 넣느냐 안 넣느냐의 차이 때문에 1과 헷갈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또 같은 영미권이라도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긋는 쪽이 더 많다고 합니다.  세계화 시대인 요즘은 어느 나라냐의 구분없이 섞어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페친께서는 미해군에서도 7에 가로획을 긋도록 교육받는다고 말씀하시네요.  그래도 우리나라나 일본에서는 저렇게 쓰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지요.  아무튼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더니 저런 글씨체를 배워온 모양입니다.  부디 저것 말고도 전쟁보다는 평화가, 핵폭탄보다는 철도가 더 좋은 것이라는 것을 배워왔기를 빕니다.  




저는 김정은 글씨를 보자마자 전에 읽었던 아래 소설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바로 저 7자를 쓰는 방식 때문에 영국 항구에 침투한 프랑스 해군의 존재를 간파하는 부분입니다.  주인공인 혼블로워 함장은 거의 셜록 홈즈 수준의 관찰력과 추리력을 보여줍니다.  이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은 스스로 '7이라는 숫자에 그어진 가로획 하나 때문에 이 난리를 피우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고 스스로 망설이긴 합니다.  그 부분만 짧게 보시지요.  



Hornblower and the Atropos by C.S. Forester  (배경 : 1806년 영국 다운즈(Downs) 군항 내 영국 소형 슬룹함 아트로포스(HMS Atropos) 함상)


혼블로워는 존스 부관이 함내 재정비를 할 시간을 주기 위해 돌아 섰다.  그는 추위로 굳어버린 몸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갑판을 좀 걷기 시작했다.  그의 회중시계가 아직 손에 쥐여 있는 것은 그걸 주머니에 집어넣는 것을 그저 깜빡 잊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슬룹(sloop) 함의 옆을 걷다가 멈추고 검은 바다 위를 쳐다 보았다.  배 옆으로 떠내려가는 뭔가가 있었다.  뭔가 길고 검은 물체였다.  혼블로워가 그것을 처음 보았을 때 그 물체는 배의 주돛대 고정판(main chains) 밑 부분에 한쪽 끝을 퉁하고 부딪혔고, 그가 보는 동안 조수의 흐름에 따라 엄숙하게 빙그르 돌아 그가 서있는 곳으로 떠내려 왔다.  그건 노였다.  궁금증이 그를 사로잡았다.  이렇게 선박들로 가득찬 기항지에 노 하나가 떠다니는 것은 별로 놀랄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


"이봐, 조타수 !" 혼블로워가 외쳤다.  "밧줄을 들고 뒷돛대 고정판(mizen chains)으로 내려가서 저 노를 건져와 !"  (역주 : quartermaster는 조타수로서 원래 키를 맡습니다만, 기항지에서는 현문(gangway, 앞갑판과 뒷갑판 사이의 연결통로)을 책임지는 임무를 맡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해양 분야에 대한 C.S. Forester의 웅대한 지식에 의문을 갖지 마셔야 합니다.)





(Main chains에 수심 측정원이 올라탄 모습입니다.  Main chains는 쇠사슬뭉치가 아니라 shroud, 즉 주돛대(main mast)를 뱃전에 묶는 밧줄들인 지삭(支索)을 고정시키는 판을 말합니다.  뒷돛대가 mizen mast니까 뒷돛대를 묶는 지삭을 위한 고정판은 mizen chains입니다.)




그건 그냥 노였다.  조타수가 들고 있는 노를 그는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노 허리의 가죽 멈치(leather button)은 꽤 닳은 상태였다.  절대 새 노는 아니었다.  하지만 가죽이 완전히 물에 푹 젖은 상태가 아닌 것으로 보아, 바닷물 속에 며칠 동안 있었다기 보다는 분명히 그냥 몇 분 정도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노 자루(loom)에는 27이라는 번호가 달군 쇠로 낙인 찍혀 있었는데, 그 부분이 혼블로워로 하여금 더 자세히 검사해보도록 만든 주범이었다.  7이라는 숫자에 가로획이 그어져 있었던 것이다.  영국인들은 7자를 쓸 때 가로획을 긋지 않았다.  유럽 대륙 사람들은 모두들 그었다.  바다에는 덴마크인, 스웨덴인, 노르웨이인, 러시아인, 프로이센인 등이 있었고, 영국의 동맹국이거나 중립국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인이나 네덜란드인들은 영국의 적국이었고 7을 그런 식으로 썼다.





(앵글로색슨은 기본적으로 해양전투민족이라 어휘에도 해양 관련 단어가 복잡하게 많습니다.  가령 button이나 loom에 대해 한영 사전에는 정확히 대응되는 단어가 없는 모양입니다.  이 그림에서는 button 대신 collar라는 단어를 썼는데, button이나 collar는 노 중간에 두툼하게 묶어놓는 것으로서, 노가 뱃전의 노걸이를 넘어 빠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멈치라는 단어를 그냥 제 맘대로 만들어 썼습니다.)




게다가 뭔가 총소리 같은 것이 분명히 들린 것 같았다.  떠다니는 노 한 자루와 머스켓 총성 한 방은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조합을 만들어냈다.  이들이 만약 뭔가 인과관계로 맺어져 있다면 !  혼블로워는 아직도 회중시계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총성은 - 만약 그게 정말 총성이었다면 - 그가 '쉬어' 명령을 내리기 직전, 그러니까 7~8분 전에 들렸다.  조수는 약 2노트 (1노트는 1.85 km/h)의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만약 그 총성으로 인해 노가 바다에 떨어진 것이라면 그 총격은 조수 흐름 상류 쪽 1/4 마일 (1마일은 1.6km) 거리에서 일어난 것이었고, 그건 배에서 쓰는 단위로 두 케이블 길이에 불과했다.  아직도 노를 들고 있던 조타수는 뭐 때문에 저러시나 하는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 보았고, 연습 중이던 수병들을 대기 상태로 둔 채 존스 부관이 옆에서 다음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혼블로워는 이 사소한 해프닝에 대해 더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국왕의 장교였고, 바다에서 설명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조사를 하는 것이 그의 의무였다.  그는 자기 자신과 내적 토론을 하며 주저했다.  안개가 끔찍하게 짙었다.  조사를 위해 보트를 보낸다면 아마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혼블로워 자신은 안개가 가득한 항구에서 보트로 길을 찾아가는 경험이 많았다.  그러니 자신이 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는 안개 속에서 길을 찾다 실수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부하들 앞에서 망신을 당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꾸물거리며 돌아오지 않는 보트를 함상에서 기다리며 안절부절하는 것보다는 그게 차라리 더 나을 것 같았다.


"미스터 존스," 그는 말했다. "내 긱(gig) 보트를 내리게."  (역주 : 군함에 실린 작은 보트를 gig이라고 부릅니다.)


"예, 함장님."  존스의 대답 속에는 깜짝 놀랐다는 것이 거의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혼블로워는 나침반대(binnacle)로 걸어가 선수 방향을 주의깊게 읽었다.  그렇게 최대한 조심스럽게 방향을 읽은 것은 그의 안전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의 권위가 길을 제대로 찾는 것에 달려 있기 떄문이었다.  북동동 방향이었다.  배는 조수 방향으로 함수를 향한 채 닻을 내리고 있었으므로 그는 노가 그 쪽 방향에서 떠내려 왔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긱 보트에 좋은 나침반을 실어주게, 미스터 존스."

"예, 함장님."


혼블로워는 마지막 명령을 내리기 전에 잠시 망설였다.  명령을 내린다는 것은 안개 속 어딘가에 뭔가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고 자신이 생각한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알리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면 그건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모양새였다.  (역주 : strain at a gnat and swallow a camel, 마태복음 23장 24절)  만약 그가 들은 것이 정말 머스켓 총성이었다면 적대 행위가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고, 최소한 병력 파견이 필요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긱 보트 승조원에게 권총과 검(cutlass)을 지급하게, 미스터 존스."

"예, 함장님." 존스는 이제 뭐가 더 놀랍겠냐는 듯 대답했다.


혼블로워는 보트로 내려가기 위해 돌아섰다.


"이제부터 시간을 잴 걸세, 미스터 존스.  저 탑세일(역주 : tops'l. 돛대 맨 꼭대기에 펼쳐지는 돛) 가로대를 지금부터 30분 안에 걷어들이도록 하게.  그 전에 돌아올테니까 말일세."

"예, 함장님."



(수병용 군도인 cutlass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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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슬링 2018.04.28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차이가 있었군요...

  2. eithel 2018.04.28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번역본에는 아에 저 숫자 7 얘기가 없었던 것 같은데.. 원서로 다시 봐야하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3. reinhardt100 2018.04.28 15: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최근에 미국은 모르지만 영국만 하더라도 브렉시트 이전까지는 유럽경제공동체-유럽공동체-유럽연합에 계속 소속되어 있다보니 공문서에 7을 더 이상 안 긋고 쓰기에 애매하게 되었습니다. 유럽연합의 공문서나 각종 서류들은 모두 프랑스 기준을 따라야 하니까요. 브렉시트와 상관없이 이거는 이제 쓰는 방향으로 갈 겁니다.

  4. Spitfire 2018.04.29 0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브라질 출장 갔을 때 영어가 안통해서 사설통역을 구했는데, 영수증의 7을 저렇게 적어줘서 회계팀에서 여비처리 안해줄 뻔한 기억이 나네요..
    한편 서양인들에게는 한국인들이 쓴 7이 신기한가 봅니다. ㄷ을 90도로 꺾어 세워놓은 모습으로 보인다네요~

  5. 카를대공 2018.04.29 16: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남북 정상회담을 KBS 방송을 통해 보고 있었는데 패널분이 저 얘기를 직접 언급하시더군요.

    그러고서 뒤에는 짤막하게 본인도 유럽 유학을 해서 안다는 멘트를 붙이면서요.

    누구나 명예욕은 있나 봅니다 ㅎㅎ

  6. 베타니 2018.04.30 17: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나저나 혼블로워 이야기가 저기서 딱 끝나버리다니! 뒷 이야기가 너무 궁금하네요.. 드라마 끊는 것보다 더 궁금하게 끊으셨습니다 nasica님

  7. 빈배 2018.04.30 17: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미국에 있을 때 안 그었더니 1로 보더군요. 그담부턴 그냥 맘 편히 긋는 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