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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utzen15

바우첸을 향하여 (12) - 큰 일은 작은 실수에서 현대화된 전쟁일 수록 기술의 차이가 승패를 결정짓는다고 하지만 전쟁이란 많은 수가 적은 수를 이기는 게임이고, 바로 그 점 때문에 고대 그리스에서나 현대전에 있어서나 병법의 기초는 적은 분산시키고 아군은 집결시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유럽 전장을 휩쓴 이유도 바로 그것을 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1813년 5월, 바우첸 전투를 앞둔 나폴레옹은 전체 병력의 1/3 정도를 뚝 떼어 네에게 베를린 방향으로 끌고 가도록 하여 스스로를 분산시켰습니다. 그에 비해 연합군은 바우첸에 집결했습니다. 대체 나폴레옹은 왜 이런 악수를 둔 것일까요? 나폴레옹이 네의 군단들을 베를린 쪽으로 향하게 한 것은 연합군의 1/3 정도를 차지하는 프로이센군의 이탈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로이센은 나폴레옹의 덫.. 2023. 2. 27.
바우첸을 향하여 (8) - 등 떠밀려 결정된 싸움터 엘베 강변에서 연합군이 후퇴한 경위를 대충 들어보면 결국 비트겐슈타인이 지나치게 소극적이어서 후퇴했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은 다소 달랐습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프랑스군이 엘베 강을 비텐베르크와 벨게른 등 훨씬 남쪽에서 분산 도강할 것이니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프로이센군과 러시아군을 다시 합세시켜, 나폴레옹에게 일격을 먹이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즉 아군은 집결되고 적군은 분산된 상태로 싸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그러는 것이 좋을까요? 연합군의 후퇴 동선을 보면 프로이센군의 경로는 약간 남동쪽으로, 러시아군의 경로는 약간 북동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이들이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다보면 결국 이들은 만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대충 그 위치는 바우첸(Bautzen)이었습니.. 2023. 1. 30.
바우첸을 향하여 (7) - 비트겐슈타인의 결정 밀로라도비치가 프랑스군의 기습 도하 작전을 막지 못하고 쩔쩔 매던 5월 9일, 프로이센군의 총사령관은 블뤼허가 아니었습니다. 원래 부상을 입고 있었던 블뤼허는 이 날 특히 상태가 좋지 않아 병석에 드러누웠고, 지휘권을 다른 사람에게 이양해야 했습니다. 상식적인 관례에 따른다면 프로이센 야전군 내의 서열 2위인 요크 대공이 임시 사령관이 되어야 했는데, 뜻밖에도 일개 참모에 불과한 그나이제나우가 지휘권을 이양받았습니다. 이는 프로이센군 위아래 모두가 블뤼허의 모든 작전은 어차피 그나이제나우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전통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고 요크 대공 본인도 새파랗게 아랫것인 그나이제나우로부터 명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에 무척이나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2023. 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