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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4

1812년 - 누구 편에 붙어야 하나 (하) 어떻게 보면 온 유럽이 휩쓸리게 되는 1812년 러시아 침공이라는 난리통의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오스트리아가 프랑스와 러시아 사이를 이간질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전쟁이 벌어지게 되자 오스트리아는 한발짝 물러나는 얌체같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당연했는데, 오스트리아는 프랑스가 러시아를 두들겨 패는 동안 떨어지는 콩고물, 즉 발칸 반도 분할에서 좀더 많은 땅을 땅을 주워먹으려 했을 뿐 뭔가 숭고하고 원대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전쟁이라는 것은 많은 변수가 작용하는 주사위 놀음이라서, 제아무리 나폴레옹이라고 해도 프랑스가 반드시 승리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 전체는 애초에 오스트리아가 프랑스 측에 가담하는 것은 시간 문.. 2019. 7. 22.
가짜 뉴스, 전쟁을 일으키다 - 1810년 12월 31일 짜르의 칙령 1810년은 나폴레옹에게 있어 드물게 조용한 한 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지에서는 계속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이어지기는 했습니다만, 1809년 바그람 전투 이후 나폴레옹 본인이 직접 뛰어들 만큼 큰 전쟁은 없었지요. 그리고 1810년은 그의 제국이 최대 규모로 팽창했던 시기였습니다. 네덜란드와 북부 독일 공국들을 병합하여 프랑스의 영토가 사상 최대의 크기로 늘어난 것이지요. 게다가 유서깊은 합스부르크 왕가와 혼인을 맺고 정권의 영속성을 위한 아들까지 얻었으니, 정말 1810년은 나폴레옹에게 절정기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그의 숙적 영국과의 전쟁도 매우 잘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웰링턴을 스페인에서 몰아낸 것에 이어 마세나가 영국의 발판인 포르투갈까지 침공해들어갔고 (물론 이는 .. 2019. 1. 28.
전쟁 비용 조달 - 영국과 프랑스의 차이 모든 전쟁에는 돈이 아주 많이 들어갑니다. 흔히 미국이 30년대의 대공황에서 빠져나온 것이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 때문이라기 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 덕분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왜 불황이 생길 때마다 네바다 사막이든 태평양 한가운데든 가상 표적을 세우고 거기에 병력과 함대를 동원해서 맹폭격을 가하지 않겠습니까 ? 결국 그렇게 전쟁하느라 쓴 돈은 누군가 갚아야 하는 법이고, 미국도 전후 20년 정도 최고 세율 90% 정도의 엄청난 소득세를 부과하여 그 비용을 충당해야 했습니다. (1913-2008 기간 중 미국 소득세 최고 세율의 역사입니다.) 나폴레옹 전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국이든 프랑스든 모두 누군가는, 정확하게는 결국 국민 전체가 전쟁 비용을 .. 2019. 1. 14.
마늘을 사랑한 영국인 리처드 샤프 오래 전에 차두리 선수가 아직 현역일 때 프랑크푸르트에서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이 신문에 났었습니다. 그때 아주 인상적인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말씀하시길 여기서 적응하려면 독일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다. 한국 음식은 잘 먹지 않는다. 마늘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다음날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뭐가 미안하지요 ? 마늘 냄새가 나는 것이 미안한거지요. 제가 다른 곳에서 듣기로도, 유학생이 주말에 한국 음식 해먹고 가면 서양애들은 귀신처럼 냄새로 알아차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양애들은 대개 마늘 냄새를 무척이나 싫어하지요. (이것이 바로 드래곤 브레스보다 더 무섭다는 갈릭 브레스) 이렇게 마늘 냄새가 그 다음날까지 나는 것은 이유가 있답니다. Allyl methyl sulfide(AMS.. 2018.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