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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헨베르크5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6) - 트라헨베르크 의정서의 결함 나폴레옹이 이렇게 어울리지 않는 우유부단함에 빠져 시간을 낭비하는 동안, 블뤼허는 트라헨베르크 의정서에 알고 보니 큰 결함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 취지에 따르면 연합군의 3개 방면군은 곰을 둘러싼 3마리의 사냥개처럼 어느 하나가 곰의 정면을 상대하는 동안 나머지 두 마리가 곰의 뒷다리를 물어 뜯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곰이 공격 방향을 휙 바꿔 뒷다리를 무는 사냥개를 공격하면, 그 사냥개는 재빨리 후퇴해야 했고요.   그런데, 지형지물로 인해 재빨리 후퇴를 못한다면 그 사냥개의 운명은 끝장나는 것이었습니다.  블뤼허는 자신의 슐레지엔 방면군의 신세가 바로 그 끝장난 운명의 사냥개와 같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바로 엘베강 때문이었습니다.  엘베강을 도강하여 이제 등 뒤에 강을 끼게 되면, .. 2024. 12. 2.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5) - 우유부단 블뤼허가 이렇게 그로스엔하인의 뮈라를 기습하기 위해 공을 들였으나, 9월 21일 날아온 그로스엔하인에 대한 정찰 보고서는 블뤼허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뮈라가 그로스엔하인을 버리고 남서쪽으로 물러났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 다음날, 여태까지 후퇴만 거듭하던 막도날로부터 전에 없이 강력한 총공세가 시작되어 블뤼허를 더욱 황당하게 만들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일까요? 블뤼허가 이렇게 뮈라를 들이칠 계획을 짜고 있는 동안, 나폴레옹이라고 그냥 앉아서 멍하니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역으로 그로스엔하임의 뮈라를 쾨니히스브뤽으로 진격시킬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에 대응하느라 블뤼허의 전선이 어지러울 때 막도날이 다시 바우첸을 탈환하도록 하는 것이 나폴레옹의 기본 계획이었.. 2024. 11. 25.
쿨름 전투 에필로그 - 다시 트라헨베르크 흔히 쿨름 전투에 대해, 방담이 무분별하게 연합군의 퇴각을 추격하다 벌어진 패배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대해 당시 드레스덴에 있었던 근위포병대의 노엘(Jean-Nicolas-Auguste Noël) 대령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우리 군에 지대한 영향을 준 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방담 장군에게만 물어야 할까?  사람들은 원래 그가 산 속에 남아 프로이센군의 후퇴를 저지해야 했는데, 워낙 성격이 과감했던 방담이 러시아군을 추격하여 산 밑까지 내려갔기 때문에 이런 패전을 겪었다고들 했다.  또는 그게 아니라, 방담이 토플리츠(Toplitz)까지 추격전을 벌였던 것은 황제 폐하의 명령에 부합하는 것이었을까?  또 다른 사람들은 이 모든 사태에 대한 비난을 건성으로 추격에 나섰던 구비옹 생시르(.. 2024. 6. 24.
휴전 (15) - 두 개의 작전안 베르나도트가 연합군의 제장들을 모아놓고 밝힌 기본 작전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연합군은 보헤미아군, 슐레지엔군, 북방군의 3개군으로 구성하며, 이들은 나폴레옹이 전군을 이끌고 어느 한 방면군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협동작전을 펼친다. 2) 이를 위해 3개군은 서로를 지원할 수 있는 거리 내에서 작전을 펼치도록 근접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3) 만약 나폴레옹이 어느 한 방면군을 공격한다면, 그 목표가 된 방면군은 반드시 후퇴하고 다른 두 방면군은 나폴레옹의 후방과 측면을 공격한다. 4) 3개군은 모두 결전을 피하고 적 부대의 소모를 노린다. 단, 만약 적이 분산되어 있을 경우 과감하게 공격해야 한다. 아마 나폴레옹이 이 작전안을 보았다면 식은 땀을 흘렸을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결전을 추구.. 2023. 10. 9.
휴전 (14) - 베르나도트의 운수 좋은 날 원래 러시아와 프로이센은 나폴레옹과의 싸움에 있어서 스웨덴의 도움이 절실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스웨덴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전장에서 승리는 결국 누가 더 많은 총검과 대포를 동원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는데, 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구가 많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구가 각각 3천만에 육박했던 프랑스와 러시아에 비하면 인구가 240만 정도에 불과했던 스웨덴은 초라한 수준의 병력만을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 이후 영토를 절반 이상 빼앗긴 프로이센은 인구가 975만에서 450만으로 줄어드는 봉변을 당했지만, 그래도 스웨덴의 2배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장 자신의 영토와 바로 인접한 작센에서 전투가 벌어지다 보니 일종의 .. 2023. 10.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