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3월 15일,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Vilnius) 교외의 공사 현장에서 많은 수의 사람 뼈가 발견되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소련 시절 KGB가 암장을 한 정치범들의 시신이거나 혹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학살한 포로 또는 유태인들의 시신이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발굴을 더 진행해본 결과 나폴레옹 시대의 군복과 머스켓 소총 등이 나오면서 이 3천여 구가 넘는 해골들이 1812년에 죽은 나폴레옹의 병사들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20여 명을 제외하고는 이 해골의 주인은 모두 남성이었고, 대부분은 죽을 때 20대의 나이였습니다.


이 해골들을 연구한 결과, 이 해골들 중 상당수에서 질소 동위원소의 양이 매우 높게 나왔습니다.  질소 동위원소는 단백질과 상관이 많은데, (저는 잘 이해를 못합니다만) 해산물을 많이 먹는 경우에도 늘어나지만 반대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경우에도 늘어난다고 합니다.  아마도 그 해골의 주인공들은 해산물 때문이 아니라 굶주려서 질소 동위원소 수치가 높게 나왔던 것 같습니다.  연구진이 해골에서 밝혀낸 것은 그 뿐만 아니었습니다.  시신들 중 1/4 정도는 티푸스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것이 이 병사들에게 티푸스를 옮겼을까요 ?

 

(2002년 리투아니아 빌니우스에서 발견된 프랑스 그랑다르메 병사들의 해골입니다.  이들이 고향을 떠날 때, 100년도 훨씬 뒤에 이런 몰골로 사람들에게 발견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

 



네만 강을 건너기 훨씬 전부터도 프랑스군 뿐만 아니라 독일군이나 이탈리아군은 모두 자신들이 집결한 동부 폴란드와 동프로이센 지역의 색다른 환경에 상당히 놀라고 있었습니다.  다부(Davout)의 제1 군단 산하 제33 경보병 연대 소속의 앙리 에베르(Henri Pierre Everts) 소령은 네덜란드의 로테르담(Rotterdam) 출신이었습니다.  이 양반은 1807년 아일라우 전투나 프리들란트 전투에는 참전한 바가 없어서, 오데르(Oder) 강 동쪽으로는 1812년에야 처음으로 넘어가 보았습니다.  이 양반은 오데르 강 동쪽 폴란드 시골 마을을 처음 보고 너무나 강렬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난 놀라서 멈춰섰고, 한참 동안을 말 안장 위에 앉은 채로 이 마을을 살펴보았다.  처음 보는 형태의 비참한 나무 오두막들, 역시 목판으로 만든 작고 낮은 교회, 그런 것들 못지 않게 너저분한 모습인 주민들의 불결한 수염과 머리털... 그 중에서도 유태인들은 유별나게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

원래 폴란드와 동프로이센은 서부 유럽처럼 넉넉한 동네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서부 유럽인들도 현대인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그다지 깨끗한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만, 그런 서부 유럽인들이 보았을 때 오데르 강 동쪽 폴란드와 동프로이센 사람들은 너무나 지저분했습니다.   이렇게 지저분하면 반드시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벼룩과 이 같은 해충입니다.  DDT가 없던 시절 그런 해충들을 박멸한 뾰족한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몸과 옷을 자주 씻고 세탁하는 것이 꽤 도움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런 해충들은 옷 솔기 속에 숨어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뜨거운 다리미로 자주 다림질을 해주는 것이 꽤 도움이 되었습니다.

 

 

(BBC에서 TV 미니시리즈로 만든 숀 빈 주연의 Sharpe 시리즈입니다.  제 눈에는 아무리 봐도 저건 녹색이 아니라 감색인데, 왜 자꾸 소설 속에서는 green jacket이라고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Sharpe's Rifles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09년 1월 스페인 북부 갈리시아 지방) -------------

자원병들의 부인들이 갈색 셔츠들을 자르고 꿰매는 사이, 요새에 있던 루이자 파커는 영국군 라이플병들이 자신들의 녹색 자켓을 수선하는 것을 돕고 있었다.  군복은 너덜너덜해지고 찢어지고 헤어져 너덜너덜해진데다 불에 그슬리기도 했지만 이 젊은 아가씨는 바느질 솜씨가 아주 비상했다.  그녀는 샤프의 녹색 자켓을 가져간지 하루 만에 거의 새것처럼 만들어왔다.  "다림질로 벌레까지 다 잡았다고요."  그녀는 신이 나서 말하며 칼라 부분의 솔기를 접어 보이며 정말로 이가 박멸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부러진 군도 조각을 다리미로 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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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도 종류가 많은데 몸니는 옷 솔기에 숨어서 거기에 알을 낳고 번식한다고 합니다.  머릿니는 사람 머리털에 알을 낳지요.)

 



하지만 보통 빈곤과 불결함은 항상 같이 다니는 법이라서 가난한 동네에 특히 벼룩과 이가 많았습니다.  이건 네만 강을 넘어서면서 더 심해졌습니다.  간간이 마주친 러시아 농민들과 그 오두막도 이 투성이었던 것입니다.  네만 강을 넘자 곧 이가 온 군대에 득실거리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보급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보급이 충분했다면 굳이 지저분한 러시아 농민들과 접촉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정이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러시아 농민들을 붙잡고 먹을 것을 뒤져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러시아 이들은 프랑스인의 피와 독일인의 피를 맛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슈투트가르트(Stuttgart) 출신의 야콥 발터(Jakb Walter) 일병의 수기에 따르면 병사들이나 장교들이나 몸에 이를 수천 마리씩 달고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는 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직접 옮지도 않았습니다.  병사들이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바닥에 까는 짚단 등을 통해서도 옮았습니다.  러시아 농민들도 그런 짚단을 깔고 잤을테니까요.  역시 러시아 원정군에 포함되어 있던 근위대 부사관 부르고뉴(Adrien Jean Baptiste François Bourgogne)의 회고록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중대원 중 하나가 잠자리를 만들라며 내게 짚단을 좀 가져다 주었다.  난 배낭을 베게 삼고 발을 모닥불 쪽으로 한 채 잠들었다.  한 시간 가량 잤을까 ?  난 온몸에 참을 수 없는 가려움을 느끼고는 일어났다.  놀랍게도 내 몸 전체에 이가 득실거리고 있었다 !  난 벌떡 일어나 2분 안에 실오라기 하나 남기지 않고 옷을 벗어버린 뒤 내 셔츠와 바지를 모닥불 속에 던져 넣었다.  벌레들은 불 속에서 마치 연속 사격과 같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터졌다."

이가 해로운 것은 단지 가려움을 일으키거나 피를 빨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는 티푸스(typhus)를 일으킵니다.  티푸스는 고열과 붉은 발진을 일으키는 열병으로서, 음식이나 물을 통해 전염되는 장티푸스(typhoid fever)와는 다른 병입니다만, 까딱 잘못하면 죽는 병이라는 점은 동일합니다.  장티푸스의 치사율은 10~20%인데 비해 티푸스는 10~40%이니 티푸스가 더 위험한 병이지요.  티푸스는 지금도 백신이나 치료제가 없는 무서운 병입니다.  티푸스가 이에 의해 전염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이가 사람의 피를 빨 때 옮는 것은 아닙니다.  엉뚱하게도 티푸스를 일으키는 미생물은 이의 입이 아니라 이의 배설물에 존재합니다.  이가 기생하는 사람의 옷과 피부에는 이의 배설물이 묻는 경우가 많을텐데, 가려움 때문에 사람이 피부를 긁을 때 이의 배설물이 피부에 파고들면서 티푸스가 옮는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나 벼룩 등이 질병을 퍼뜨린다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병사들은 러시아의 이 때문에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사태의 심각함을 잘 몰랐으나, 프랑스군의 군의관들은 점점 늘어나는 열병 환자의 수에 기겁을 했습니다.

 

(티푸스는 고열을 일으켜 사람을 혼수상태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 가장 큰 피해인데, 고열과 함께 이런 붉은 발진을 일으키는 것도 주요 증상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는 러시아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에 널리 퍼져있던 기생충이었습니다.  프랑스나 독일에는 이가 비교적 적은 편인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흔히 볼 수 있는 벌레였고, 척탄병 쿠아녜의 수기에도 적혀 있기를 스페인만 하더라도 이가 득실거리는 곳이었습니다.  

"우리의 지정 휴식 장소에 도착한 뒤, 우리 부대 몇몇 병사들은 한 병에 3수(sous - 요즘 가치로는 3수면 대략 1800원) 하는 말라가(Malaga) 와인을 찾아냈다.  그들은 그걸 마치 우유라도 되는 것처럼 마셔댔고, 결국 인사불성이 되어 쓰러졌다.  우리는 그들을 마치 송아지처럼 마차에 싣고 다녀야 했다.  1주일이 다 된 다음에도 그들에게 음식을 떠먹여줘야 했는데, 그들은 스푼으로 수프를 제대로 뜨지도 못했다.  와인이 어찌나 독했는지 그들 중 누구도 배식 군량을 먹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마을인 비토리아(Vittoria)에 도착했고, 거기서 다시 부르고스(Burgos)에 간 뒤에, 또 거기서 다시 크고 멋진 도시인 바야돌리드(Valladolid)로 갔다.  우린 바야돌리드에서 해충에 둘러쌓인 채 꽤 오래 있었다.  병사들은 사실상 이 위에서 잔 것이나 다름없었는데, 짚단 속에 이가 득실거렸기 때문이었다.  이를 보면 손가락으로 잡아서 땅에 던지며 '널 만든 사람에게 가서 그 사람 피를 빨아라' 라고 말하는 것이 스페인 사람들의 풍습이었다.  정말 더러운 족속이다."

 

(영국 내전 당시 스코틀랜드 던바(Dunbar)에서의 호국경 크롬웰(Cromwell)의 모습입니다.  어떤 전쟁이든 총보다는 질병에 의한 희생자가 항상 더 많습니다.) 

 



왜 그런데 오직 1812년 러시아에서만 티푸스가 맹위를 떨쳤을까요 ?  실은 티푸스가 러시아에서만 날 뛴 것은 아니었고, 티푸스와 전쟁은 일반적으로 함께 다녔습니다.  17세기 초반 영국 의회와 왕당파 간의 내전 때도, 또 독일 30년 전쟁 때도 티푸스는 어김없이 발발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이는 세 가지 때문이었습니다.  먼저 전시에는 병사들이건 일반 농민들이건 평상시보다 목욕과 세탁을 더 못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이는 왕성하게 번식합니다.  두번째, 평상시에는 농민들이든 도시 거주민들이든 한 방에서 수십 명이 같은 짚더미 위에서 자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군대, 특히 야전 작전 중인 군대에서는 매일매일 그렇게 잡니다.  그렇게 밀집된 집단 생활에서는 이가 새로운 숙주를 찾는 것이 매우 쉬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에 물린다고 누구나 다 티푸스에 걸리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은 마릿수의 이를 몸에 달고 다녀도 어떤 사람은 티푸스에 걸리고 어떤 사람은 멀쩡합니다.  개인차가 있겠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잘 먹고 잘 쉬어서 건강한 사람은 면역력도 좋아서 병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잘 먹지도 잘 쉬지도 못하는 사람은 티푸스 뿐만 아니라 온갖 병에 쉽게 걸립니다.  특히, 잘 먹지도 못하는데다 오염된 물을 마시고 이질설사에 시달리는 병사라면 아주 쉽게 티푸스에 걸립니다.  당시 나폴레옹의 병사들의 처지가 딱 그랬습니다.  왜 러시아군에서는 티푸스가 발생하지 않았을까요 ?  발생했습니다.  러시아군에서도 수만 명의 환자가 발생했고 그만큼 많이 죽었습니다.  프랑스군보다 사정이 좀 나았을 뿐이었지요.

 

(미니아르 도표의 원본 사본입니다.  컴퓨터도 없던 시절 저걸 다 손으로 그렸다는 것이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

 

 


전에 소개해드린 미니아르의 도표를 보면 나폴레옹의 그랑다르메는 추위는 커녕 여름부터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계기 없이도, 네만 강을 건넌 순간부터 꾸준히 줄어들었습니다.  굶주림과 티푸스, 탈영 등으로 인해 그랑다르메는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 러시아 땅에서 녹아내리고 있었습니다.  이걸 막기 위해서 나폴레옹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했었을까요 ?  글쎄요, 수송용 헬리콥터로 PET병에 든 생수를 일선 전투 부대에게도 일인당 하루 4리터씩 공급해주는 현대의 미군이라면 가능할까, 당시의 기술로는 사실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러시아 원정은 그냥 시작을 안하는 것이 정답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1812년 봄, 나폴레옹은 물론 독일이나 이탈리아에서 끌려온 일반 졸병들도 자신들의 앞길에 어떤 난관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부름을 받고 네만 강 서쪽에 속속 모여들던 그랑다르메의 장교들과 병사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  다음 편에서는 몇몇 사례를 통해 그 속사정을 살펴보시겠습니다.




Source : 
http://www.montana.edu/historybug/napoleon/typhus-russia.html
https://en.wikipedia.org/wiki/Typhus
https://www.warhistoryonline.com/napoleon/real-reason-napoleons-invasion-russia-failed-mm.html
http://www.indiana.edu/~psource/PDF/Archive%20Articles/Spring2011/LynchBennettArticle.pdf
https://www.smh.com.au/world/study-shows-napoleons-army-was-ravaged-by-lice-20060104-gdmq6c.html
https://www.spiegel.de/international/zeitgeist/crawling-death-how-lice-thwarted-napoleon-s-invasion-of-russia-a-638751.html
https://www.forbes.com/sites/kristinakillgrove/2015/07/25/skeletons-of-napoleons-soldiers-in-mass-grave-show-signs-of-starvation/#105e5b143743

https://www.healthlinkbc.ca/health-topics/tp12788

1812 Napoleon's Fatal March on Moscow by Adam Zamoyski  
Memoirs of Sergeant Bourgogne, 1812-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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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내마음속댕댕이 2019.09.09 0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린 시절 본 위인전에선 나폴레옹이 실패한 이유는 병사들의 군복 주석단추가 겨울철에 얼어붙고 깨져 코트를 여미지 못해 얼어죽어서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현실은 그런 코믹한(?) 헤프닝과는 많이 떨어져있었나봅니다. 저런 끔찍한 환경으로 수십만을 밀어넣은 나폴레옹은 대단한 능력자인건지 터무늬없는 도박꾼인건지...

  3. 유애경 2019.09.09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병사들이나 장교들이나 이를 수천마리씩...
    그냥 과장된 표현을 한건지 아님 실제로 그랬다는건지, 어찌됐든 끔찍하네요!
    읽으면서 몸이 근질근질 해졌습니다.
    이런저런 악재속에서 참 고생했을 병사들이 가엾게 느껴집니다.

  4. 돌격대장 2019.09.09 0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폴레옹이 러시아에서 패퇴했을때 대치한
    러시아 프랑스 양군의 숫자가 얼추 둘다 4만정도
    됬다는 글을봤었는데,이글이 진짜면
    러시아군은 무었때문에 그리 녹은걸까요

  5. 까까님 2019.09.09 0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염병이야 전쟁터가 아니어도 유럽 도시에서는 일상 다반사였다고 알고있습니다만 특히 러시아전역에서 물 문제가 직간접적으로 매우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얘기였습니다
    전염병 문제의 이면에도 물 부족 사태가 깔려있었던 것이로군요
    혜안이 담긴 글에 다시 감사드립니다

  6. 웃자웃어 2019.09.09 1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폴레옹은 유럽에서 좋은소리 듣기 힘든 사람이라고 봅니다. 수많은 사람들을 러시아로 끌고가 개죽음으로 몰아 넣었으니.

  7. 수비니우스 2019.09.09 12: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어렸을때 세계사 보면 러시아원정 패배는 추위때문! 이랬는데 이런 복잡한 이면이 있는것 보면 역사에도 정론은 없는것 같습니다.

  8. 강가딘 2019.09.09 15: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마시지도 못하는데 전염병에 시달리기까지 했군요.

  9. 오렌지훈 2019.09.09 19: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폴레옹의 이면이군요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한주 보내세요~

  10. 카를대공 2019.09.09 2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고고학적 조사를 보면 궁금한게,사람 뼈가 저렇게 오래 보존되는 특별한 조건이 있나요?

    나폴레옹 전쟁은 200년 전,중국에선 장평대전 유적(?)을 발굴한다는데 거긴 무려 기원전 발생한 사건입니다.

    공룡뼈를 보면 사람뼈도 비슷하게 가능하겠구나 싶긴한데 어떤 조건이 있어야 기원전 뼈가 보존이 되는건지......

    • reinhardt100 2019.09.10 1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토양 때문입니다.

      토양에 따라 공기 및 미생물, 수분 등이 침투할 수 있는 공간 정도가 차이 납니다. 조건이 잘 맞아 완전 밀봉 수준으로 유지되면 원형에 가깝게 보전되기도 합니다.

  11. 2/28일 입대 2019.09.09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우 간지럽고 찝찝해~~가 오늘의 감상입니다ㅎㅎ저 외에 풍토병도 있었을 것만 같은데 정말 highway to hell이네요

  12. Franken 2019.09.10 0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 조금 살아보니 운칠기삼이란 말이 왜 생겼는지 이해되네요. 아무리 머릴 굴려도 인간두뇌의 한계상 파악 못하는 것들이 수두룩한데 그렇다 해서 일안할 수도 없고 하니 이런 건 운에 맡기고 추진해야 하니 말입니다.

  13. reinhardt100 2019.09.10 10: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외출장 갔다와서 처음 보네요.

    러시아 원정 당시 티푸스 종류가 하필이면 전염력 및 치사율이 가장 큰 발진티푸스였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했죠. 네만 강 도하 시점부터 단 3주만에 13만 비전투손실이 발생했는데 가장 큰 원인이 바로 티푸스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러시아의 환경은 독소전쟁 당시 독일군이 녹색사막이라고 부를 정도로 척박했죠. 물도 엉망이고 남아있는건 그저 넓은 지평선뿐이었으니까요. 거기에 45만 병력을 밀어넣어봤자 양동이에 물 한컵 붓는 수준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네만강에서 출발할수록 땅의 넓이는 커지기만 하면서 병력 밀집도는 얇아지고 보급은 급박해지기만 하는 말 그대로 최악의 전장 중 하나이니까요

  14. 루나미아 2019.09.10 19: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아...위생과 질병!
    진짜 고난이네요ㅠ

  15. starlight 2019.09.11 0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참혹해서 말을 잃게 됩니다.빌뉴스에서 발견된 나폴레옹 병사들의 주검은 다큐로도 제작되어 있죠. 이들은 철수하다 굶주림과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죽은걸로 아는데요. 보르디노 전투와 모스크바 점령. 아비규환이었던 베레지나 도하까지 겪어낸 병사들이었지만, 끝내 집으로 귀환하지 못하고 비참히 숨을 거둬 안타깝습니다.

  16. 키케로 2019.09.11 10: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데르강 동쪽이 왜 이렇게 가난한 걸까요? 서유럽 보다 억압적인 농노와 사회구조 때문에 그럴까요? 나시카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nasica 2019.09.11 23: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견이랄 것은 없고, 일단 잘 모르겠습니다. 제 얕은 지식으로는, 아무래도 유럽 문명의 발상지이자 이후 르네상스가 일어난 로마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또 괜찮은 항구가 없어서 서부 유럽과의 교류가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농업만 해도 기술 발전이 있어야 번영할 수 있습니다. 가령 17세기부터 영국은 농업 혁명을 거쳤는데, 여기에는 윤작이나 신형 쟁기 같은 기술적 발전도 큰 역할을 했고 자유 시장이나 엔클로저 활동 같은 사회제도의 변화도 큰 몫을 했습니다.

      제가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으나, 폴란드나 루마니아 등지의 동부 유럽에서는 서유럽과의 교류 부족으로 그런 발전이 전파되지 못한 것이 점차 경제적으로 뒤지기 시작한 원인이 아닐까 합니다.

  17. Eugen 2019.09.11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이전 글에 그만 싸우겠다고 한 이후로 댓글을 단 적이 없는데 누가 제 닉네임으로 위장해서 댓글을 달았습니다. 댓글조작만큼 제가 싫어한 게 없는데 화나내요. 회원제 사이트가 아니라서 그런 듯해요.

    • Eugen 2019.09.11 1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알타리무 이 사람이 제 닉네임을 위조해서 댓글조작을 하는 것같네요.

    • Eugen 2019.09.11 13: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분명히 저는 정치병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앞서 썻다시피 세상을 보수진보가 아니라 기득권과 도전자로 보라했었죠. 그래서 이유없이 한 쪽으로 몰아가는 댓글은 댓글조작입니다.

    • Eugen 2019.09.11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까지 폰을 이용해서 댓글을 달았기 때문에 문단나누기가 잘 되있는 댓글은 조작된 겁니다.

    • Eugen 2019.09.11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Nasica님 블로그에 E****라는 닉네임으로 댓글을 달았는데 그만 싸우자고 쓰고 말 싸움을 끝냈습니다.

      그런데 알***로 추정되는 제 닉네임을 사칭한 ♪♫♩♫가 갑자기 전두환을 꺼내면서 댓글조작을 하더니

      제 논리와는 아주 상반된 논리로 댓글을 이어가면서 논쟁이 엉망이 되었습니다. 제가 생활이 있는 사람이라 그만 한다면 진짜 그만하는 건데 진짜 화납니다. 그게 댓글조작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냐면 그 때 저는 폰으로 댓글을 달아서 문단나누기가 잘 안되있는데 댓글조작된 건 데스크톱에서 써서 그런지 잘 나뉘어져 있고 무엇보다 전 정치병자라 아니라서(세상을 보수 진보가 아니라 기득권과 도전자로 보라고 댓글을 썻 듯이)정치를 간접적으로 언급했는데(논쟁의 주제가 아니도록 씀) 갑자기 전두환 이야기가 나오면서 상대방을 아무 이유없이 몰아가는 댓글은 100% 댓글조작된 겁니다.

      지금은 대학도서관 데스크톱으로 썻는데 보다시피 데스크톱으로 쓰면 폰으로 쓰는 것보다 문단나누기가 쉬워서 티가 납니다. 이 블로그에서 보수 정치병자면 알타리무밖에 없는데 화나내요. 드루킹같은 짓거릴하면 좋나요?

  18. Eugen 2019.09.11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누군진 모르겠지만 댓글조작하는 놈년 천벌 받아야 됩니다.

  19. 이타카 2019.09.13 0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 대단한 나폴레옹 마저도 예측을 못한건가요..ㅜㅜ 하긴 사실 이만한 규모를 이끌고 러시아로 들어간 선례가 없어서 하다하다 이정도까지일꺼라고는 생각을 못했나봅니다ㅜㅜ
    근데 우크라이나쪽이 유명한 곡창 지대라고 알고있었는데 의외로 부유하다던가 인구밀도가 높지는 않았나보네요? 우크라이나 쪽에 들어가서 배후지로 삼고 모스크바를 도모할수는 없었던 걸까요?
    물론 속전속결의 나폴레옹 스타일과는 안맞겠습니다만..

  20. ㅇㅇ 2019.09.18 2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어... 이런상태로 모스크바 딴게 신기하네요

  21. ㄷㄷㄷ 2019.10.01 10: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끔 예전에 프랑스인의 키가 유럽기준 작은 이유로 여기서 나왔던 말이 생각나더군요. 중근세때만해도 삼총사 등장인물들 마냥 다른 유럽인 기준으로 충분히 거칠고 호전적이고 전사적인 프랑스인이 달달한 와인이나 빵이나 먹는 사람처럼 이미지가 바뀐것도. 하도 전쟁에 나갈만한 사람이 죄다 전쟁 끌려나가서 이른나이에 병마에 시달리다 죽거나 전사해버리니 유전자 풀에 변형이 왔다고.(물론 웃자고 하는 소리였겠지만 ㅋㅋ;)

한국인들과 처음 식사하는 서양인들은 흠칫 놀라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우리로서는 기분 나쁜 이야기지만, 일단 후루룩 쩝쩝 소리를 내면서 먹는 것에 대해 굉장히 놀라고, 또 일부 음식은 한 그릇에 든 국물이나 반찬을 여러 사람이 침이 묻은 숫가락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같이 먹는 것에 난감해 합니다.  기본적으로 한국 사람들의 식사 예절은 구역질난다 라고 말하는 서양인들도 있고, 왜 남의 문화에 대해 함부로 평가하느냐 라며 변호해주는 서양인들도 있습니다.


서양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에 비해 특히 음식 먹을 때 소리를 내지 않고 먹는 것에 대해 굉장히 예민합니다.  전에 국내 기업체의 상무님, 그리고 외국 기업체의 외국인 이사님과 함께 뜨거운 녹차를 마실 일이 있었는데, 한국인 상무님은 후루룩 소리를 내는 것에 비해, 정말 그 외국인 이사님은 소리를 안 내시더라고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서도 스트레인지와 에인션트 원이 처음 만나 차를 마시는 장면에서, 에인션트 원이 차를 마실 때 아주 살짝 후루릅 소리가 나긴 하더군요.  그럼 그렇지 어떻게 사람이 뜨거운 차를 마시면서 소리가 전혀 안 날 수가...)



또 한번은 여러명의 다국적 외국인 엔지니어들과 돈까스집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때 독일인 하나와 캐나다인 하나가 각각 돌냄비 우동을 시켰는데, 저도 같은 것을 시켜 놓고 "뜨거운 우동을 먹을 때는 지들도 별 수 없겠지" 라고 속으로 쟤들이 우동 가락을 흡입할 때 소리를 내나 안 내나 유심히 관찰했지요.  놀랍게도, 정말 그 둘 모두 소리를 안 내고 먹더라구요.  감탄했었어요.  저는 어땠냐고요 ?  저는 그런 재주가 없는지라, 국수를 먹을 때는 slurping sound를 내도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는 동양식 예절에 대해 일장 연설을 늘어놓고 그냥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먹었지요.





(그 독일 사람과 캐나다 사람은 이렇게 펄펄 끓는 우동을 정말 후루룩 소리 안 내고 먹더라고요 글쎄)




원래 우리나라 식사 예절에서도 쩝쩝거리며 음식을 먹는 것은 굉장히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입니다.  우리나라는 양반 계급이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다 망했기 때문에 (사실 망해도 싸긴 합니다) 그런 좋은 예절이 전해지지 못한 것이지요.  그러나 최근에서야 안 내용인데, 여럿이서 한 그릇에 든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도 과거 양반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하네요.  양반가에서는 한그릇은 고사하고, 한상에서 여럿이 먹는 일도 없었다고 합니다.  모든 개인이 각자 작은 개다리소반을 하나씩 차지하고 각자 반찬그릇도 다 따로 받아서 먹었답니다.  이 역시,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없어진 풍습이 된 모양입니다.






(이 사진은 주로 "조선인은 대식가였다" 라는 주제로 많이 보여지는 사진입니다만, 사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저 1인상 체제...)



먼 조선시대에야 어쨌건, 최근까지만 해도 특히 집에서는 찌개 같은 것은 한그릇에 담긴 것을 여러 명의 입에 들어갔던 숟가락들이 들락거리며 퍼먹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작은 한식집에 가면 그런 경우가 또 많았지요.  요즘은 그런 식당들이 많이 없어진 것 같습니다.  일반 가정에서도 이제는 각자 작은 그릇에 국자로 덜어 먹는 경우가 많지요.  사실 한 그릇에 여러 명의 숟가락이 들어가는 것은 정말 비위생적인데다가, 뭔가 불쾌한 일이쟎아요. 


그런데, 서양인들은 원래부터 그렇게 깨끗하게 살았을까요 ?   그게 그렇지가 않았던 모양입니다.


다음에 인용한 회고록을 쓴 쿠아녜(Coignet)라는 사람은 파란만장한 경력의 소유자로, 나중에 나폴레옹의 근위대에 들어가서 그야말로 산전수전을 다 겪고 틸지트 조약에서 나폴레옹과 러시아 짜르의 회담을 직접 지켜보기도 합니다.  1812년 러시아 원정 때도 당연히 함께 했고, 이 원정 끝무렵 대위로 승진했지요.  나중에 고향인 옥세르(Auxerre)에서 담배 가게를 하던 이 양반은 무려 1865년, 즉 89세까지 살았는데 1853년에야 최초로 이 회고록을 썼다고 합니다.  다만 이 양반은 아주 늦은 나이에야 글을 배운 덕에, 회고록 문체가 아주 엉망이어서, 딱 500부만 인쇄하여 자기 담배가게 손님들에게만 팔았던 이 책은 그다지 잘 팔린 편은 아니었답니다.





----------- 척탄병 쿠아녜의 회고록 ------------


(마렝고 전투에서 적의 대포를 혼자서 탈취하는 공을 세운 바 있는 병사 쿠아녜는, 그런 연줄을 이용하여 결국 나폴레옹의 근위대에 뽑히게 됩니다.  그는 일반 전열병 연대에서는 키가 큰 축에 속하여 척탄병으로 복무했으나, 근위대에 들어오니 사정이 매우 달랐습니다.)


특무상사는 내가 새로 배치된 내무반 방으로 날 데려가 새로운 동료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 척탄병들 중 하나는 키가 6피트 4인치 (영국식으로 1인치=2.54cm라면 약 192cm이고, 프랑스식으로 1인치=2.71cm라면 거의 2m4cm)나 되는 쾌활한 친구였는데, 내가 키가 얼마나 작은지 보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특무상사는 그에게 말했다.  "자, 여기 있는 친구가 자네의 잠자리 친구라네."

"이런 꼬마 친구라면 내 코트 밑에 숨겨가지고 다닐 수도 있겠는데요?"   난 이 농담에 웃었다.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는데, 여기서는 다른 부대처럼 한 접시에서 나눠 먹는 것이 아니라, 각 병사들이 개인 전용의 수프 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난 상병에게 10프랑 (약 10만원)을 주었고, 다들 이에 만족해 하는 것 같았다.  상병은 이렇게 말했다.  "내일 동료와 함께 너도 수프 그릇을 사러 외출하도록 해."


그 말대로 우리는 내 수프 그릇을 사러 나갔고, 같이 나온 동료에게 난 맥주 2병을 쏘았다.  병영으로 돌아와서는 정오의 점호 때까지 외출할 수 있는 허가를 요청했는데, 상병은 "얼른 갔다와" 라며 허락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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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보면 당시 프랑스 군대의 병영 문화를 약간 엿볼 수 있습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대목들도 많습니다.  가령 왜 내무반장격인 상병에게 돈을 상납해야 했으며, 또 다른 동료 병사들은 왜 그런 것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좀 이상하지요.   여기서 인상적인 부분은 개인용 수프 그릇 이야기입니다.  즉, 당시 일반 부대 병사들은 그냥 커다란 그릇 하나에 수프를 담아 놓고 여럿이서 숟가락으로 퍼먹었다는 이야기거든요.


서양 사람들도 예전에는 여럿이서 같은 그릇에 든 음식을 먹었다는 사례는 또 있습니다.


제가 어릴 때 TV에서 본 월트 디즈니 영화 중에 그런 장면이 있었어요.  배경이 18세기 스코틀랜드였는데, 삼촌네 집에 어떤 젊은이가 먼 곳에서 저녁 늦게 방문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젊은이가 저녁을 안 먹었다고 하자, 마침 귀리죽 같은 것을 먹고 있던 음험한 구두쇠 삼촌은 그냥 자기가 먹던 죽 그릇과 스푼을 그대로 젊은이에게 내주며 먹으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이 젊은이가 별로 먹지를 않자, 이 삼촌은 '다 먹었으면 내가 마저 먹겠다, 비켜라' 라며 젊은이를 밀쳐내는 장면이었지요.  그때 어린 저도 '어, 서양인들도 저렇게 먹던 죽그릇과 스푼 그대로 다른 사람이 먹나 ?' 라며 의아하게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본 TV 영화도 이것이 맞습니다.  저 주인공 얼굴이 기억나네요.)



Kidnapped by Robert Louis Stevenson (배경 : 18세기 중반 스코틀랜드) -----------


"배 고프냐 ?"  그는 내 무릎 정도를 쳐다보며 물었다.  "너 이 죽 먹을래 ?"


난 그게 삼촌이 드실 저녁 아니냐고 물었다.


"아" 그는 말했다.  "난 그거 안 먹어도 돼.  난 에일 맥주를 마시지 뭐.  그게 내 기침을 좀 다독여주거든." 


그는 여전히 한눈은 내게 고정시킨 채 컵에 든 맥주를 반쯤 마시더니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


"그 편지 좀 보자꾸나."


(...중략...)


"쯧쯧 !" 에브니저 삼촌이 말했다.  "놀랄 일이구먼.  그건 확실하네.  그리고 데이비, 얘야,  너 그 죽 다 먹은 거면 내가 마저 먹으마, 자."

에브니저 삼촌은 나를 의자와 스푼에서 밀어내자마자 죽을 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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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보시다시피, 최근에 우연히 알았는데 그 영화는 '보물섬'의 작가인 로버트 스티븐슨 (Robert Louis Stevenson)의 소설 '납치' (Kidnapped)를 영화화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영화를 본 다른 서양인들도 동일하게 그 장면이 역겹다고 생각한 모양이에요.  "Health Biographies of Alexander Leeper, Robert Louis Stevenson & Fanny Stevenson" 라는 책에도 그 장면이 언급되더군요.  당시 스코틀랜드에서는 그렇게 남이 먹던 죽을 먹는 것이 과히 이상한 행동이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저도 몇번 소개드린 바 있습니다만, 만쭈리님이 연재하시다 지금은 중단하신 굉장히 재미있는 블로그 (http://blog.naver.com/alsn76) 가 있습니다.  (내용에 대해서는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 비하한다고 해서 비난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만...)  몇 년 전부터 연재가 중단되어 아쉽습니다만, 여기서도 보면 대략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19세기말 한국을 찾은 서양인들은 하나 같이 조선은 온통 똥천지이고 불결하기 짝이 없다 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신기한 것은 18세기에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들, 가령 하멜 같은 사람들에게서는 조선이 더럽고 불결하다고 묘사한 경우가 없다.  조선 사람들의 위생관념이 100년 동안 크게 후퇴한 것일까 ?  아니다.  18세기에는 유럽도 조선과 마찬가지로 온 동네가 똥천지였던 것이다.  불과 100년 사이에 유럽이 깨끗해진 것이고, 사람의 기억과 습관은 100년 사이에 크게 변하는 것이다."






제가 어릴 때는 여럿이서 한 그릇에 든 찌개를 각자의 침이 묻은 숟가락으로 떠먹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저도 직장 동료들과 한 그릇에서 찌개를 먹는 것이 상당히 꺼림직합니다.  심지어 집에서도 찌개 등을 각자의 작은 그릇에 국자로 덜어먹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100년은 커녕 10년 사이에도 습관과 풍습은 많이 변하는 모양입니다.


지금도 한 가족이나 연인끼리는 그렇게 같은 그릇에 여럿이 숟가락을 들이밀기도 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팥빙수지요.  다만 같은 직장 동료끼리는 차마... 그러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렇다면 서양인들은 어떨까요 ?  가령 한 가족끼리는 다른 식구가 먹던 아이스크림을 다른 사람이 먹기도 할까요 ?  먹는 모양입니다.





제가 애청하던 미드인 '닥터 하우스'에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동유럽계 여자인 도미니카라는 미녀가 시민권을 따기 위해 하우스와 위장 결혼 생활을 하는데, 그만 그 위장 사실이 이민국 관리에게 발각되어 하우스는 처벌을, 도미니카는 추방을 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도미니카가 하우스를 정말로 사랑하는 척 기발한 눈물 연기를 보여주며 이민국 관리를 감동시키자, 이 관리는 일단 추방 결정을 유보하며 '다음번에 너희들 가정을 다시 불시 방문하겠다, 그때는 너희들이 스푼 1개로 아이스크림을 나눠먹고 있어야 할 거다' 라고 말하더군요.  하긴, 키스도 하는 사이에 스푼을 나눠쓰지 못할 이유는 없겠지요. 




(미드 '하우스'에서의 해당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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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응기잇 2018.05.25 0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은 망해도 싼 나라였지만 식사예절 만큼은 일본보다 나았다고 생각 합니다. 일본인들이 라멘 먹을때 후루룩 소리내어 먹는걸 보면 정말 미개해 보이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국인의 情이라고 생각하는 찌개공유와 큰 상 하나에서 같이먹는 식사법도 일제가 심어놓은 잘못된 문화라고 미디어나 정부에서도 널리 홍보해서 하루속히 없애갔으면 좋겠네요

    • 0_- 2018.05.25 10:40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에서 면을 입에 넣을 때 소리내는 것은 우동이 들어온 시대부터 나름 유구한 전통(?)이니까요.
      거기에 더해 쩝쩝만 안 하면 되지요 (그런데 일본사람들도 내는 사람은 냅디다. 아예 용어도 있지요. 쿠챠라-クチャラー라고)

      그나저나 라멘 같은 대중음식에 미개고 뭐고 따지시는지요...

  2. reinhardt100 2018.05.25 09: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담이지만 '뜨거운 것을 불어서 먹는다'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합니다. KAL858기 폭파사건의 범인인 김현희씨 정체가 수사 중 드러난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매우 뜨거운 커피를 그대로 후후 불어서 먹는 것'을 당시 수사관들이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김현희씨 자서전에 그대로 나온 내용이죠.
    정수일교수님. 일명 무하마드 깐수 사건 때도 이 심문에 그대로 걸려들었고 결국 자백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각자가 상을 차려먹는 것은 맞지만 일제시대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부페식 스타일의 원조가 러시아인데 아관파천등을 거치면서 궁중에서부터 허례허식타파등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한상에 모아 먹다보니 현재와 같이 된 측면도 있습니다.

  3. 0_- 2018.05.25 1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 사람 안에서도 다양한 항목에 대해 다양한 태도를 갖고 있을 것 같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 후루룩 - 허용: 나는 소리 안내고 먹을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불편함을 느낌. 남들도 소리내는 장소면 나도 자연스럽게 소리내고 (라멘집 등), 그런 장소가 아니라면 최대한 조용히 노력.
    - 젓가락질 이상한 상대 - 허용: 성인이 제대로 못 쓰는 경우 참 없어 보인다 속으로 생각은 하지만, 그냥 이런사람이구나 하며 넘어감 (지적않음). 향후 밥상 같이하는 것을 기피할 정도 항목도 아님.
    - 쩝쩝 & 찝찝 - 혐오: 가끔씩 나는건 그럴 수 있다 여기지만 입을 벌리고 씹는 다던지 해서 항상 소리내는 사람은 다음부터는 밥상을 하지않음.
    - 씹는 와중에도 숟가락 들고 대기타기 - 극혐: 어쩌면 소리보다도 기피대상. 음식을 '먹는' 거라기 보다는 '퍼넣는' 거로 인식됨. 혐오는 하지만 시야에만 안들어오면 괜찮으므로 향후 정면에만 앉지 않도록 함.
    - 국/찌개/반찬공유 - 약혐: 어지간히 친분이 있지 않은 상대인 이상 하고싶지 않음. 기본적으로 별도로 나왔으면 함.
    - 공유음식 휘적 - 극혐: 아무리 친분이 있더라도 이건 못 참음. 그럴거면 그것 용도로 따로 식기를 쓰고 덜던가 :(
    - 식후 이쑤시개질 찝찝 -약혐: 내 스스로는 이쑤시개질 자체를 하지 않기에 남들에게는 문제되지 않을 것임 (정 힘들면 안보이는 데서 후딱 처리). 상대방 중에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처리할때 까지는 소리 안 들릴 정도로 떨어져 줌 (상대 배려보다는 내 청각을 보호).

    그리고, 자식입장에서 해서 될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저희 아버지께선 상당히 식사예절이 안좋으십니다.
    "쩝쩝&찝찝 + 반찬휘적 + 숟가락 들고 입앞에 대기"라는 제 개인적으로는 거의 worst 만 모아놓은 케이스이지요.
    솔직히 내 부모지만 역겨워서 가능한 한 밥상에 앉지 않고 이리저리 핑계를 대곤 하지요.

    아직 어렸을 때에도 그게 보기가 어지간히 좋지 않아 한말씀 드렸더니
    "네가 어지간히도 배가 부르니 그따위 소리가 나온다."
    뭐 이런투로 말씀하셨던 것만 기억에 남는데요. 딱 그 말이 떠오릅니다.

    생활에서 하루먹고 하루살기 각박한 사람들은 그런 위생 생각할 여유가 없는거지요. 당장 한숟갈 퍼넣기가 더 중요하니까요.
    그러던 것이 이제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이러니 위생을 생각할 여유도 생기는거고, 그냥 넘어갈 만한 것들이 하나하나 더러워 보이는 거죠.
    서구화 같은 같잖은 이유가 아니라요...

  4. 유애경 2018.05.26 0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같은 경우에도 일본 오기 전까진 식구들끼리 국이나 찌개를 공유하는 식문화가 당연했었는데 일본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니 지금은 한국 들렀을때 식구라도 뭔가 거부감을 느끼게 되더라구요.
    면종류는 원래 소리를 내면서 먹어도 되는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일본분들이 많은데 그중엔 조용히 드시는 분들도 있고(사람 나름 같습니다).
    식사할때 쩝쩝 소리는 나라나 인종 관계없이 비매너 같아요.

  5. TheK의 추천영화 2018.05.28 07:3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 남에게 폐 안 끼치는 선에서
    자기 편한대로 먹는 것이 맞는데.
    이 역시도 쉬운 일은 아니니. 음.

  6. ㅅㄴ 2018.05.29 0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큰어머니가 일본에서 오래 계셨던 분이라 첨에 시집오시고 따로 국그릇 안놓는거 보고 놀라시던게 기억나네요

  7. gg 2018.05.29 11: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ㅎ
    어디의 카스를 타고 들어와서 글을 읽다가 여기까지 도달했는데 재미나게 읽고 갑니다..^^ ㅎㅎ
    근데 댓글들이 죄다.. 깔끔하신 분들이 유달리 많으시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맛있게 먹다보면 쩝쩝소리도 날수 있고 후르륵 소리도 날수 있고 시골태생인 저로서는 어머님들이 반찬가지런히 해두려고 뒤적이는 것도 괜찮던데.. 그게 피를 나눈 가족 아닌가요?? 제 생각에는 식사도중에 발생하는 불쾌함들은 단지 그 사람에 대한 인식이 상큼하지 않아서이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튼 잘 읽고 갑니다. 어려운 글들이 많아서 다는 못 읽겠지만 짬나면 들려서 또 읽을 거리 찾아볼게요 ㅎㅎ 그리고 당시 유럽인들이 우리나라보고 미개하다라는건 어쩔수 없는거 같아요. 문화가 발달하면 글쓰신 분 말씀처럼.. 그 시대에 맞게 변하는 것이니까요.

    • 유애경 2018.05.31 0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 단 분들이 깔끔 떤다고 그러는건 아니구요! 식사중에 쩝쩝 짭짭 소리 내는것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불쾌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게 사실입니다.
      제 주변에도 그런분이 있어서 넌지시 고쳐주시면 안될까 하고 얘기를 드린적이 있는데,맛있게 먹는 것처럼 보일텐데 그게 뭐가 이상하냐고 하시더군요.

      들은 얘긴데 타이완 여성이었나 ...한국으로 시집와서 시댁식구들과 밥을 먹는데 찌게냄비를 공유하는 식문화에 엄청 거부감을 느꼈고 식사를 제대로 못했답니다. 그런데 시댁 식구들한테 한가족인데 뭐가 어떻냐며 면박을 받았다네요. 피를 나눈 가족이라 해도 그나라의 문화에 따라 느낌의 차이는 있는거니까 서로를 존중 해주는게 좋을것 같아요.

    • 0_- 2018.05.31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쩝쩝에 대해. '맛있게 먹다보면' 소리가 나는게 아니고 '입을 벌리고 음식을 씹으면' 소리가 나는 겁니다. 입술만 다물어도 소리는 최소화 됩니다.
      덧붙여, 그런식으로 소리나도록 씹고 있으면 모르긴 몰라도 정면에 있는 사람 입장에선 님이 씹고있는 음식이 그대로 보이는 상황일건데, 그 상황에서는 인사치레로나 맛있게 먹느니 소리 하지 실제로는 밥맛이 떨어질겁니다.
      그리고, 반찬 가지런히 해 두려고 뒤적이는 건 쓰지않은 젓가락으로 하는 것을 이야기 하는 거겠지요? 효소 들어간 침 묻은 젓가락으로 그런다고요? 반찬 다 쉬는데?

      아무리 인식이 상큼하고 말고 간에, 아닌건 아닌겁니다. "쩝쩝충 만화" 검색해 보시면 어떤 만화가 보일건데, 거기 달린 다양한 반응들을 보시지요... 얼마나 소리내며 먹는것에 호의적인가.

  8. durandal 2018.05.30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 조상들이 겸상을 얼마나 혐오했는지 조선왕조실록에 이런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부자가 겸상하다 아버지 잔소리에 질린 아들이 그만 아버지를 죽인 사건이 왕에게 보고됐는데 (조선시대 존속상해는 무조건 사형에 그 고을 등급을 낮추는 역모 버금가는 죄였습니다.) 그런 몰염치한 짓을 했으니 고을 등급 낮추늗건 면했다 하더군요.
    독상 문화가 사라진건 일본 강점기 보다 6.25 와 경제개발계획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지방 양반 사회와 공동체가 사라지면서 새로운 문화와 가치관이 정립되기 전에 빨리빨리와 검약, 효율 등을 강조되면서요(예를 들어 밥과 국 반찬 3개 4명 상 독상으로 준비하는 것과 밥 4그릇 찌개 한 냄비 반찬 3접시 준비하는 것 생각하면)
    일부 지역 양반 문화가 남아 있는 곳은 독상 문화가 꽤 오래 남아있었답니다. 예전 제가 근무하던 회사 부장님이 66학번 이셨는데 서울로 대학교 진학하기 전에는 남자들은 다 독상이었다고 대학 와서 냄비 하나 놓고 밥 먹는거 보고 놀랐다고 말씀하셨던게 기억에 남았었죠.

  9. 서울은드러웠소 2019.07.03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멜은 지방에 잡혀있어서 인구밀도가 적은 지역이였고 다른 외국인들은 똥천지 서울에 놀러왔기 때문에 그런것임

2012년, 휴 잭맨 주연의 레미제라블 영화 중에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를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입니다.  은접시에 퍼주는 음식을 굶주린 장발장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대체 저 음식이 무엇인지가 궁금했습니다.  화면을 보면 뭔가 고기도 좀 들어있는데 말입니다. 





그 음식이 당연히 원작 소설에 나오는 내용 그대로는 아닙니다만, 어떤 음식이 나왔는지는 원작 소설에 묘사가 되긴합니다.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할 때 가정부 할머니인 마글루아 부인이 내놓는 미리엘 주교의 평범한 저녁 식사 메뉴가 나열됩니다.


Cependant madame Magloire avait servi le souper. Une soupe faite avec de l'eau, de l'huile, du pain et du sel, un peu de lard, un morceau de viande de mouton, des figues, un fromage frais, et un gros pain de seigle. Elle avait d'elle-même ajouté à l'ordinaire de M. l'évêque une bouteille de vieux vin de Mauves.


그러는 동안 마글루아 부인은 저녁을 차렸다.  물에 기름, 빵과 소금을 넣고 만든 수프, 돼지비계 조금, 양고기 한조각, 무화과, 생치즈, 그리고 큰 호밀 빵 한 덩어리였다.  마글루아 부인은 주교의 그런 평상시 식사에 모브 와인 한병을 보탰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프랑스에서 주교는 매우 높은 직책이고, 또 상당히 고액 연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미리엘 주교는 거의 대부분의 급료를 빈민구제에 써버리고, 정작 본인은 무척 소박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기 때문에 저런 음식을 먹었던 것이지요.  저 소박한 음식 중에 특히 저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저 수프였습니다.  빵과 기름과 소금과 물만으로 만든 수프라니 ?  그게 무슨 괴이한 음식이란 말입니까 ?


그런데 그 빵 수프를 연상시키는 이야기가 레미제라블 속 장면보다 약 10년 전인 1809년, 나폴레옹 관련 기록에도 나옵니다.  1809년 나폴레옹이 비엔나를 점령한 뒤 그는 휘하 병사들 중 상당수를 비엔나 시내에 주둔시킵니다.  통상 이런 경우 병사들은 민간인들의 가정 주택에서 먹고 잤습니다.  그렇다고 병사들이 산적처럼 마음대로 아무 집에나 쳐들어간 것은 아니고, 병참 장교가 미리 조사한 결과에 따라 주택의 크기와 가정 형편, 그리고 그 집 가장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 어떤 집은 3~4명, 어떤 집은 10여명 씩 배정되었습니다.  이 점령군 병사들이 점잖은 비엔나 중산층 시민의 가정에서 깽판을 쳤을까요 ?  그런 일이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럴 일은 없었습니다.  귀족이나 부유한 중산층 시민의 저택은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고 또 그런 집에는 장교들이 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비엔나 시민들도 대부분은 서민이었고, 그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사회적 계급 출신인 프랑스 병사들을 먹이고 재웠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런 병사들과 피점령 시민들의 관계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비엔나식 돈가쓰인 슈니첼입니다.  드셔본 분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냥 우리나라 돈까스가 더 맛있다고...)



문제는 비엔나 시민들이 병사들에게 뭘 먹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부잣집에 할당된 병사들은 유명한 비엔나식 돈까스(Wiener Schnitzel)와 맥주를 대접받고 가난한 집에 할당된 병사들은 말라비틀어진 빵과 물을 먹어야 했을까요 ?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현지 조달의 달인이라고 불리는데는 다 이유가 있고, 달인은 일을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병참부는 배고픈 병사들을 떠맡은 비엔나 시민들에게 '적어도 1인당 이 정도씩을 먹여야 한다'라고 의무 배식량을 정해서 통보했습니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빵 1.33 파운드 그리고 추가로 수프에 넣을 빵 0.33 파운드

고기 1 파운드

쌀 0.125 파운드 (2 온스)

말린 채소 0.25 파운드 (4 온스)



여기서 눈에 확 띄는 부분이 바로 저 매일 먹을 빵 1.33 파운드 이외에 추가로 수프에 넣을 빵 0.33 파운드라는 부분입니다.  그냥 먹는 빵과 수프에 넣을 빵이 따로 있었을까요 ?  그리고 저 말린 채소라는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요 ?  게다가 비엔나에서 쌀을 요구했다고요 ?  그것도 고작 2온스, 즉 56그램 정도의 쌀로 뭘 해먹었을까요 ?  요즘 한국인들이 먹는 쌀밥 1공기를 짓기 위해 들어가는 쌀이 약 90그램인데, 한공기도 안되는 쌀인데 말입니다.  


저기서 말린 채소라는 것이 사실은 말린 콩을 뜻한다는 것을 아시면 대략 견적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냥 먹는 빵을 제외한 저 모든 재료는 결국 끓는 물 속에 들어가 뭔가 걸죽한 스튜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전에 올렸던 포스팅에서, 쿠아녜(Coignet)의 회고록 중 일부를 다시 보시면 좀더 분명해질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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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에서 일하던 소년인 쿠아녜는 징집 명령을 받고 입대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나는 작은 꾸러미를 겨드랑이 밑에 끼고 출발하여, 첫번째 군사 주둔지인 로조이(Rozoy)에 도착하여 밤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숙사 할당 명령서(ordre de cantonnement)를 받아다 집 주인에게 제시했는데, 집 주인은 날 본 척 만 척 하며 홀대했다.  그러고 난 뒤 난 뭔가 스튜를 만들 재료를 사러 밖에 나갔고, 푸주간에서 고기를 받았다.  내 손바닥 위에 올려진 고기 조각을 보니 몹시 처량했다.  그것을 들고와서 내 숙사로 정해진 집의 안주인에게 주며 스튜를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한 뒤, 스튜에 넣을 채소거리를 구하러 다시 밖으로 나왔다.  마침내 약간의 스튜가 만들어졌고, 그때 즈음에는 그 집 주인 식구들도 나를 어느 정도 좋게 봐주어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붙여보려고 했다.  하지만 난 그들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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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에서 보면, 고기는 분명히 돈을 내고 사왔는데, 양배추나 당근 등 채소류는 돈을 내고 사왔다는 것인지 밭에서 그냥 뽑아왔다는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로마 시대부터, 병사들에게 주어지는 배급 식량 목록에는 빵과 밀가루, 와인과 식초는 기록되어도 배추나 양파 등 진짜 채소는 전혀 기록이 없습니다.  이유는 그런 부식거리는 그냥 '구하는' 것이지 주요 보급품 목록에 넣을 정도로 중요 물품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있으면 넣고 없으면 말고 식이었지요.  또 당시 사람들은 채소를 그다지 많이 먹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전에 회사 교육 문제로 유쾌한 멕시코 친구 2명을 만나서 며칠간 잡담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 이야기가 멕시코는 원래부터 가난한 나라여서, 어디서 친구가 방문하러 오겠다는 전화가 오면 저녁을 만들던 와이프에게 이렇게 말을 하곤 했다고 반농담반진담으로 이야기를 하더군요.  


"여보, 콩 수프에 물을 더 부어야겠는걸 ?"


이렇게, 원래 수프라는 것은 적은 재료로 여럿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요리입니다.  게다가 솥 하나만 있으면 여럿을 위한 요리도 적은 연료로 쉽고 빨리 할 수 있었으므로 그야말로 군대를 위한 요리였지요.  그렇게 배고픈 사람들을 위한 요리가 콩소메(consommé)처럼 멀건 국물이라면 무척 실망스러웠겠지요.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나 병사들은 국물을 뻑뻑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부재료를 넣었습니다.  있기만 하다면 하얀 밀가루가 제일 좋았겠지만 밀가루는 빵을 만들기에도 부족한 것이었고, 쌀이 가장 좋은 재료였습니다.   




(콩소메입니다.  요즘 고급 식당의 요리사들은 저런 콩소메의 국물을 맑게 하려고 계란 흰자를 쓰는 등 갖은 노력을 한다고 합니다.  정작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질색을 했겠지요.)



쌀은 국물을 잘 흡수하여 그 자체로도 맛이 풍부한 건데기가 될 뿐만 아니라, 전분을 국물에 풀어내어 국물을 진하게 만들어줬거든요.  지금도 치킨 수프 등에는 짧은 국수를 넣기도 하지만 쌀을 넣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삼계탕이 해외에 소개될 때는 스튜가 아니라 chicken soup으로 소개되는데, 닭과 쌀이 든 국물 요리이다보니 서양의 치킨 수프와 동일시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기들식의 간단한 chicken soup인줄 알고 삼계탕을 시켰다가 닭 한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요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는 외국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Chicken soup with rice는 이런 거...)




원래 유럽에서 쌀을 가장 많이 먹는 지역이 스페인과 함께 북부 이탈리아 지역이지요.  덕분에 남부 프랑스에서도 쌀 요리를 꽤 먹었다는데, 아마 비엔나도 북부 이탈리아에서 멀지 않았으므로 쌀을 쉽게 구할 수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의 굶주린 병사들을 맞이한 비엔나 시민들에게 '쌀을 내놓으라'는 명령이 떨어졌겠지요.  


하지만 쌀은 유럽 전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곡물은 아니었습니다.  쌀이 없을 때 대용으로 사용되던 것이 바로 오래되어 딱딱해진 빵이었습니다.  당시 빵은 버터나 쇼트닝이 들어가지 않은, 갓 구운 상태에서도 꽤 딱딱한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구운지 2~3주가 지나거나 잘라 먹다 껍질부분이 남은 빵조각 남은 것들은 정말 딱딱했을 겁니다.  레미제라블 후반부에, 마리우스의 하숙방에서 노닥거리던 에포닌이 방을 나가면서 마리우스의 찬장에 놓여있던 마른 빵조각을 허락도 받지 않고 냉큼 입에 넣고 씹다가 너무 딱딱해서 이빨이 부러졌다고 투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꼭 과장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2012년 영화 속에 나온 에포닌은 아주 건강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레미제라블 원작 소설 속의 에포닌은 어린 나이에 이빨도 한두 개 빠진, 정말 헐벗고 병약한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게 훨씬 더 현실적인 이야기지요.)




그렇게 마르고 굳은 오래된 빵을 그나마 잘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수프에 넣어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빵 수프 요리는 주로 이탈리아에서 발달했습니다. 리볼리타(Ribollita)라든가 아콰코타(Acquacotta) 등이 모두 빵을 넣고 끓인 수프 요리이며, 하나같이 가난한 농부들이 먹던 음식이었습니다.  





(아콰코타입니다.  이탈리아식 빵 수프입니다.)



마른 빵보다 더 나쁜 것이 원양 항해나 군대에서 많이 먹던 비스킷, 즉 건빵이었습니다.  비스킷을 부수기 위해 돌로 내리치면 가끔씩 비스킷 대신 돌이 부서졌다는 그 공포의 비스킷으로도 수프를 만들어 먹었을까요 ?  예, 그렇게 많이 먹었습니다.  버구(burgoo)라는 것은 염장쇠고기와 잘게 부순 비스킷으로 만든 대표적인 영국 해군 요리(?)입니다.  그나마 부유한 함장인 잭 오브리(Jack Aubrey)를 주인공으로 한 Aubrey & Maturin 시리즈에서는 이 버구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만, 가난뱅이 함장이 주인공인 Hornblower 시리즈에서는 수병들 뿐만 아니라 함장실에서 혼블로워가 혼자 앉아 버구를 먹고 있는 장면이 종종 나옵니다. 


결국 미리엘 주교가 먹던 저 빵 수프라는 것은 결코 주교님이 드실 만한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소설 원작에서도 장발장이 '동네 짐마차꾼들이 이거보다는 더 잘 먹는다'라고 말할 정도지요.  미리엘 주교는 '그 사람들 일이 더 힘드니까요'라고 웃으며 말하는데, 장발장은 눈치도 없이 '그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돈이 더 많은 것 같은데요' 라고 팩트 폭력을 행사하지요.


이 빵 수프 이야기는 나폴레옹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1809년 7월 7일 밤, 바그람 전투를 승리로 마무리하고 지친 나폴레옹은 사령부로 마련한 농가 앞 짚단 위에 앉아 졸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장면은 당대 어느 유럽 군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만, 당시 프랑스 군대에서는 종종 벌어지던 일이고, 그것이 바로 나폴레옹의 군대를 강군으로 만들었던 문화이기도 했습니다.  그 앞을 지나가던 어느 유격병(voltigeur) 상병 하나가 황제가 그렇게 지쳐 떨어진 것을 보고는 아무의 제재도 받지 않고 감히 말을 걸었습니다.  


"폐하, 우리가 끓인 수프라도 좀 드시겠습니까 ?"


그러자 잠에서 깬 나폴레옹도 짜증내지도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물었지요.  "잘 익었나 ?"


이 상병은 나폴레옹을 자기와 그 동료들이 끓여놓은 수프 남비 앞으로 데려갔습니다.  거기에는 잘게 부순 마른 빵조각(crouton)까지 넣어 아주 걸죽한 수프가 은으로 된 작은 단지에서 끓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걸 보고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대체 어디서 흰빵과 은단지를 구했나 ?  훔쳤나 ?"


그때 나폴레옹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서 까딱 잘못하면 그 상병은 약탈죄로 즉결처분에 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상병은 아주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빵은 의무 마차에서 샀고, 은단지는 어느 죽은 장교의 몸에서 찾은 겁니다."


나폴레옹은 그 죽은 장교가 프랑스군이었는지 오스트리아군이었는지 묻지 않았고, 그렇게 나폴레옹과 상병 및 그 동료들은 고된 하루 끝에 든든한 저녁을 함께 즐겼다고 합니다.  





(보통 시저스 샐러드에 딸려 나오는 사각형 튀긴 빵조각을 크루통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원래 croûton이라는 단어의 뜻은 긴 빵의 껍질이 많은 양쪽 끝부분 또는 굳은 빵조각을 뜻하는 것입니다.) 




Source : Napoleon Conquers Austria: The 1809 Campaign for Vienna By James R. Arnold

Les cahiers du capitaine Coignet by Jean-Roch Coignet

Les Miserables by Victor Hugo

https://en.wikipedia.org/wiki/Acquacotta

https://en.wikipedia.org/wiki/Ribolli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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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암 2017.10.29 1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 님의 글을 처음 접한 계기가 장발장이 감옥에 갈만 했네란 글 때문이었죠^^
    군사와 음식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글에 감탄하며 하트 날립니다~

  2. 뱀장수 2017.10.29 23: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좋은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역시 주말엔 음식얘기가 머릿속에 잘 들어오네요^^

  3. Seek 2017.10.30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들게 일하는 이유중에 하나가 일용할 양식을 위한것이라고 생각하면 이런음식 이야기가 가볍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4. 유애경 2017.10.30 14: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뜬금없는 얘기지만,보기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데 돈까스나 빵스프나 뭔가 비쥬얼이 별로네요(죄송&웃음)!

  5. 까까님 2017.10.31 07: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로 치면 밥짓고 나오는 누룽지를 끓여먹는 정도에 해당되겠군요
    근데 주교님 상차림이. . . 저건 요리가 아니라 그냥 모아 담은 거 아닌가요?
    '무화과랑 치즈로 어떻게 양념해서 만든 양고기 요리' 가 아니라 그냥 각각을 늘어놓은 건데
    비교하자면 불고기를 해먹는 게 아니라 그냥 간장 발라 구운 고기 옆에 양파 당근 등등 채소를 늘어놓고 다진 마늘 같은 거 발라서 먹는 식이잖습니까
    같은 재료로 왜 저렇게 먹는지 궁금하더라구요
    고급진 분들은 또 달랐겠지만 양념이란 개념이 희박한 이유가 가끔 궁금하더라구요
    나시카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여쭙고싶습니다

    • nasica 2017.10.31 19: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서양식 요리의 특성이 원래 재료의 맛을 살리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긴 합니다만, 그에 대해서는 나중에 관련 포스팅을 올려보겠습니다.

  6. 수비니우스 2017.10.31 10: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의 나폴레옹 이야기는 진짜 쇼킹하네요. 우리나라는 해방과 함께 민주주의가 도입되고 70년이 지나서야 21세기에 힘든 시간 끝에 조금씩 정착되고 있는 문화가 19세기 초반 프랑스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니...

  7. ㅂㄷㄱ 2017.10.31 18: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본적으로 그런 병사들과 피점령 시민들의 관계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병사들 손에 총이 들려 있는데 나쁘게 대할 리 없겠죠.

  8. 별의 여행 2017.11.17 1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루똥은 워낙에 오래된 빵을 썰어 말린 것 때에 따라서는 그걸 튀겨 낸 것이지요. 오래된 빵을 잘 활용하는 것 뿐 아니라 실제로도 쫄깃하거나 아삭하니 씹을 거리를 제공해 줘서 좋더라고요. 그리고 비너슈니첼은 실제로 한국돈가스보다 맛있습니다.
    튀김옷 반죽이 다르고요. 여기에 베리류잼을 살짝 묻혀 먹으면 아주 좋아요.



최근 영국이 노후된 뱅가드급 핵잠수함을 대체할 드레드노트급 핵잠수함의 건조를 발표했습니다.  그 사양을 보다보니, 눈에 들어오는 것 중 하나가 130명의 승조원에 1명의 의사와 3명의 요리사(chef)가 포함되어 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쉐프를 3명이나 태우다니 잠수함 승조원들을 정말 잘 먹이려나 보다 싶지만, 그래봐야 영국인 조리병를 태울테니 드레드노트 승조원들은 암울한 식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나폴레옹 시대 때도 영국 요리는 유명했을까요 ?  예, 유명했습니다.  몇가지 관련 부분을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군 장교의 모험담을 그린 서양 무협지 Sharpe 시리즈에서 발췌해 보았습니다.






  

-- Sharpe's Enemy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2년, 포르투갈)  -----------------

 

프랑스군 듀브레통 대령 :

"먼저 토끼의 살을 뼈에서 발라내서 올리브유와 식초, 와인에 하루종일 재워놔야 해. 거기에다 마늘, 소금, 후추, 그리고 혹시 구할 수 있다면 노간주 열매를 한줌 집어넣으면 좋지. 피하고 간은 따로 보관했다가, 갈아서 죽처럼 만들어야 한다네." 

듀브레통 대령의 목소리에는 열정이 묻어났다.  

"하루 지난 뒤에, 발라놓은 고기를 버터와 베이컨 기름에 약하게 익혀서 갈색을 만들어놓지. 팬에다가 밀가루를 조금 넣고, 모든 것을 소스에 집어 넣는거야. 거기에 와인을 좀더 붓고, 거기에 따로 갈아두었던 피와 간을 집어넣어.  그리고나서 끓이는거야. 접시에 내놓기 직전에 올리브유를 한스푼 집어넣으면 더 맛이 좋지."

 

영국군 샤프 소령 :

"우리는 그냥 토끼를 잘라서 물에 끓이고 소금 쳐서 먹는데요."


(이 구절이 나무위키인가에 올라온 것을 봤는데, 물론 원작은 콘월 옹이지만 이렇게 짧게 축약해서 요약 번역한 건 저였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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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셀프 디스와 함께 세계적인 비웃음거리가 되는 영국 요리이지만, 최소한 영국군은 육군이든 해군이든 프랑스군보다는 더 잘 먹었습니다.   


다음은 영국 해군의 규정상 식단입니다.  


일 : 비스킷 1 파운드, 돼지고기 1 파운드, 완두콩 0.5 파인트, 맥주 8 파인트

월 : 비스킷 1 파운드, 오트밀 0.5 파인트, 설탕 2 온스, 버터 2 온스, 치즈 4 온스, 맥주 8 파인트

화 : 비스킷 1 파운드, 쇠고기 2 파운드, 맥주 8파인트 (또는 럼 0.5 파인트)

수 : 비스킷 1 파운드, 온두콩 0.5 파인트, 오트밀 0.5 파인트, 설탕 2 온스, 버터 2 온스, 치즈 4 온스, 맥주 8 파인트

목 : 비스킷 1 파운드, 돼지고기 1 파운드, 완두콩 0.5 파인트, 맥주 8 파인트 (또는 럼 0.5 파인트)

금 : 비스킷 1 파운드, 온두콩 0.5 파인트, 오트밀 0.5 파인트, 설탕 2 온스, 버터 2 온스, 치즈 4 온스, 맥주 8 파인트

토 : 비스킷 1 파운드, 쇠고기 2 파운드, 맥주 8 파인트







(Stephen Biesty의 "Cross-sections : Man-of-War" 라는 책에서 나온 그림입니다.  설탕과 버터는 오트밀에 넣어 먹었고, 치즈는 그냥 고기 대신 베어 먹었나 봅니다.)







(치즈는 어디에 어떻게 보관하냐고요 ?  같은 책에 나오는 저 그림 속에서, 마치 책장처럼 생긴 틀이 치즈 보관틀입니다.  아무리 치즈가 보존 식품이라고 해도, 몇개월 지나면 곰팡이 나고 상해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굳이 영국 해군 뿐 아니라, 프랑스 육군 기록에도 '끔찍한 치즈를 배급받고 아연실색했다' 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물론 여기서 배급되는 비스킷은 설탕도 버터도 넣지 않은, 뻑뻑하기 이를 데 없고 이가 부러질 정도로 단단한 물건이었습니다.  고기도 소금을 듬뿍 써서 절여 놓은, 질기고 누린 내 나는 것이었고요.  비스킷이나 고기나, 만든지 최소 3개월, 보통 반 년에서 1년 정도 된 것들이었습니다.  비스킷에는 바구미와 그 애벌레가 득실거렸고, 고기는 너무 짰기 때문에 가뜩이나 부족한 민물 통에 반나절 이상 담가 놓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지독하게 짰습니다. 


맥주도 술 치고는 알코올 도수가 약한 편이라서 쉽게 상했습니다.  따라서 대양에 나가면 곧 맥주는 떨어졌고, 그 후에는 맥주 대신 럼주 0.5 파인트가 배급되었습니다.  이 럼주에는 물을 타서 희석해서 주었는데, 그런 규정을 만든 제독의 이름을 따서 그런 희석 럼주를 그록(grog)이라고 불렀습니다.






(수병들이 진한 럼을 그대로 마시고 취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럼에 물을 규정대로 타는 것이 중요했고, 따라서 그록을 배합하고 분배하는 것은 장교의 감독하에 엄격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이런 그록 배식은 영국 해군에서 계속 전통으로 이어지다가 1970년에야 폐지되었습니다.  영국 Royal Navy의 Darkest day로 기록된다고 합니다.)

  



이런 식단에 대해 현대인들은 불평할지 몰라도, 당시 해군을 구성했던 서민층들에게는 꽤나 호사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매일 빵조차 제대로 먹을 수 없었던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거의 매일 고기 1 파운드와 빵 1 파운드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이건 대부분의 현대 한국인들에게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술이라니 !  매일 공짜 술을 저렇게 많이 마실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해군의 이 배급량은 영국 육군의 경우보다 다소 열악한 편이었습니다.  규정에 따르면 영국 육군은 요일에 따른 변화 없이 그냥 매일 같은 식재료를 배급했습니다.


빵 또는 밀가루 1.5 파운드 또는 비스킷 1 파운드

쇠고기 1 파운드 또는 돼지고기 0.5 파운드

완두콩 0.25 파인트

버터 또는 치즈 1 온스

쌀 1 온스

약한 맥주 (small beer) 5 파인트 또는 와인 1 파인트 또는 럼 0.5 파인트


육군이나 해군이나, 이런 식단 규정을 보시면 채소에 대한 규정이 전혀 없다는 것을 쉽게 눈치채실 것입니다.  이는 사실 로마 군단 시절부터 내려온 전통으로서, 당시에는 채소를 먹어야 건강하다는 개념 자체가 별로 없었습니다.  그래서 채소는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이나 주로 먹었고, 중산층 이상되는 사람들은 주로 지방과 단백질,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했습니다.  그래도 육군에서는 양념이나 부재료로 이런저런 채소를 얼마든지 구할 방법이 많았으므로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망망대해에 고립된 해군이었지요.  해군에서는 당연히 비타민 부족으로 인한 괴혈병이 창궐했습니다.  괴혈병의 증상은 전신의 무력감, 잇몸이 퉁퉁붓고 이빨이 빠지는 현상, 고약한 입냄새, 그리고 몇년 전에 완치된 상처가 새롭게 덧나는 현상 등이 있는데, 결국은 다 죽었습니다.  이 치료법은 매우 간단하면서도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신선한 채소를 먹으면 금방 나았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비타민 C의 존재를 몰랐고, 또 신선한 채소의 보존 방법을 몰랐으므로 장기간 대양을 항해하는 수병들의 건강은 크게 좋지 않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긴 대양 항해의 경험상, 영국 선장이나 군의관들은 레몬, 라임이나 오렌지 주스를 매일 선원들에게 공급하면 괴혈병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이 요법은 나폴레옹 전쟁 후기에 들어서야 해군 전체에 시행되었습니다.  그렇게 영국 해군 수병들이 괴혈병으로 픽픽 쓰러지는 사이 독일 선박에서는 독일식 김치인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를 배식하면 괴혈병이 예방된다는 것을 알고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독일 소세지와 독일 김치 사우어크라우트입니다.  사우어크라우트가 제 입맛에는 꽤 잘 맞던데요.  맛있어요.)




이런 식단 규정에서 또 이상하게 보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현대적인 군대나 학교 식단이라면 미트로프나 비프스튜 등의 음식 이름이 나와야 하는데, 당시 식단에는 식자재 이름만 나와 있고 그런 재료로 어떤 음식을 만들어 배식했는지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지요.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군대에는 취사병이라는 것이 따로 없었습니다.  군대에서의 모든 식사는 그냥 중대 단위로 알아서들 해먹는 것이 상식이었고, 군 지휘부에서는 오직 식재료와 취사도구의 배급만 책임졌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독립 전쟁 때나 나폴레옹 전쟁 때나, 심지어 제1차 세계대전 때까지도 군 병력에 대한 식량 보급은 항상 다음과 같이 쇠고기 몇 파운드, 밀가루 몇 파운드 등 재료에 대해서만 기록될 뿐, 점심은 빵과 로스트 비프, 저녁은 파스타와 치킨 등 요리 이름은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당번제 식사 준비에 있어서도 영국군은 그 명성이 높았나 봅니다.  맛은 어차피 군대밥이니 그렇다고 쳐도, 조리하는 과정의 효율성은 영국 원정군 총사령관 웰링턴 공작도 언급할 정도였습니다.  웰링턴 공작은 1812년 11월 28일 내린 명령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원정에서 프랑스군과 비교할 때, 우리 군의 조리 방식은 시설면에서나 신속성에 있어서나 개탄스럽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원인은 다른 점들과 동일하다.  군의 질서, 병사들의 행동에 대해 장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 결과 병사들에 대해 권위가 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

향후 각 중대의 일부 병사들은 땔나무를 준비하고, 일부는 물을 긷고, 일부는 고기, 비스킷 등을 받아와 조리를 하도록 할당될 것이다.  이런 조치가 매일 제대로 준수되면 전처럼 식사 준비에 많은 시간을 써야 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작전의 필요성 때문에 식사할 기회를 빼앗기는 일도 없을 것이다." 





(행군할 시간도 부족한데 병사들이 빠져가지고 저런 목가적인 분위기에서 딩가딩가 밥을 지어 먹다니.... 이것들이 캠핑을 왔나 작전을 왔나 !!  라는 것이 웰링턴 공작의 불만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중대별로 식사 준비를 할 때는 장작을 마련해오는 병사, 불피우는 병사, 물 길어오는 병사, 고기를 받아오는 병사, 빵을 받아오는 병사, 그리고 무기와 배낭을 정리하는 병사 등으로 나뉘어 활동을 했습니다.  이는 프랑스군을 따라 한 것이니, 프랑스군도 이와 비슷하게 움직였나 봅니다. 


육군이 이렇게 식사 준비를 한 것과 마찬가지로, 해군도 mess라고 불리는 식사조를 짜서 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보통 8명이 한조를 이루었는데, 이들은 고달프고 위험한 바다 생활에서 가족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도둑질이나 거짓말 등의 죄목으로 식사조에서 쫓겨나는 일도 있었는데, 이는 일요일 함장님에게 판결을 받고 보조 포술장에게 채찍질을 당하는 것보다 대단한 불명예와 왕따를 뜻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어떤 곳에서든 소속감을 느낄 무엇인가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잠깐, 해군에는 분명히 cook, 즉 주방장이 있었는데 이는 어찌된 일일까요 ?  당시 군함에서, cook이라는 직위는 요리를 하는 역할이 아니라, 군함 주방(galley)에서 화재를 내지 않고 제대로 요리를 하는지 관리 감독하고, 또 공용으로 쓰는 솥단지 같은 주방용품을 관리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나무로 된 군함이었으므로, 불 관리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상위 장교 식당, 즉 wardroom을 위해서는 장교들이 돈을 모아 고용한 진짜 민간인 요리사가 있었고, 또 대부분의 함장은 개인 전용의 민간인 요리사를 따로 대동했습니다.   주방장의 직위는 warrant officer, 즉 준위였습니다.   통장이(cooper), 범포장(sailmaker), 목공장(carpenter)와 같은 하급 기술 준위(junior petty officer) 신분이었는데, 다른 기술 준위와는 달리 별로 기술이라고 할 만한 것은 필요없는 직책이었지요.  대개 cook의 직위는, 실제 요리 솜씨와는 전혀 관계가 없이, 오래 복무한 나이 많은 모범 수병, 특히 팔다리를 전투 중에 잃은 수병에게 일종의 보상으로 주어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해적 영화를 보면 요리사는 보통 의족을 한 중년 아저씨쟎습니까 ?  다 그런 이유가 있더라구요.  게다가, cook은 꽤 짭짤한 자리였다고 합니다.  수병들이 염장 고기를 삶을 때 물 위에는 당연히 기름이 뜨쟎습니까 ?  그건 관례상 다 cook의 몫으로 돌아갔다고 하네요.  일부 밧줄과 삭구에 바를 것만 빼고요.  수병들은 딱딱하고 맛없는 건빵을 이런 기름에 튀겨 먹기 위해 이런 기름도 슬쩍슬쩍 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런 동물성 유지는 긴 항해를 하다보면 몇통씩 생겼는데, 어떤 항구에서건 이런 동물성 유지 한통에 약 2.5파운드 정도를 주고 샀다고 하니까, 큰 돈은 아니어도 꽤 짭짤했겠지요.  (당시 소위 연봉이 약 90파운드였습니다.)  다만 출신이나 하던 일이 그렇다 보니, 주방장은 진짜 장교들이 식사를 하는 상위 장교 식당(wardroom)이나 사관후보생(midshipman)들과 보조 항법사(master's mate), 보조 군의관(surgeon's mate) 등이 식사를 하는 하급 장교 식당(cockpit 또는 gunroom)에는 끼지 못하고, 그냥 일반 수병들과 함께 식사를 해야 했습니다.  신사 계급의 나으리들과 겸상을 할 처지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역시 Stephen Biesty의 "Cross-sections : Man-of-War" 라는 책에서 나온 그림입니다.  아마존에서 중고책으로 파는 것을 샀는데, 저도 잘 몰랐던 부분, 가령 저렇게 배식받은 쇠고기는 식사조 mess별로 금속제 꼬리표를 붙여 삶았다는 것도 상세하게 소개되더군요.  저 해군용 비스킷에 득실거리는 구더기 구경하세요.)




이렇게 배급된 날재료로 병사들은 어떤 음식을 만들어 먹었을까요 ?  그야 말로 제각각이었습니다.  병사들에게 좋은 오븐이나 화력 좋은 가스 레인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이들은 주로 남비에 끓여 먹는 요리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븐 없이 빵을 구워 먹을 수는 없었으므로, 대대에서 일괄적으로 구워서 배급되는 빵이 없다면 이들은 배급된 밀가루를 이용해 밀가루 죽을 쑤어 먹거나 요령껏 마련한 돌판이나 철판에서 얇은 전병을 구워 먹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족적이지만 아마추어적인 배식 제도는 로마 군단 시절부터 무려 제1차 세계대전 초기까지 아무 문제 없이 잘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근대적인 취사병 제도가 생긴 것은, 엄청난 장거리 곡사포들의 포탄이 끊이지 않고 떨어지던 제1차 세계대전의 참호전 이후의 일이었습니다.


영국군이 맛없는 영국 요리를 먹는다고 해서 프랑스군이 화려한 프랑스 요리를 먹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사실은 프랑스군의 식사는 더욱 형편 없었습니다.  흔히 나폴레옹이 '군대는 배 힘으로 행군한다' (An army marches on its stomach)라는 말을 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로 그가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나폴레옹의 기본 병참 전략은 현지 조달이었으니, 병사들은 대부분의 경우 배가 고플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규정상으로도 병사들에게 배급되는 하루 식량의 품목과 양은 부대가 어느 지역에 배치되느냐에 따라 꽤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하루에 다음과 같은 하루 배급을 받도록 되어 있었고,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영국군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빵 1.5 파운드

고기 1.1 파운드

말린 채소 0.25 파운드

브랜디 0.0625 파인트

와인 0.25 파인트

식초 0.05 파인트


건조 채소가 나온다고 해서 '역시 프랑스는 영국과는 달리 영양의 균형을 생각하는 미식가의 나라'라고 생각해서는 곤란합니다.  여기서 건조 채소라는 것은 영국군도 자주 배식하던 말린 콩을 뜻하는 것이 대부분이었거든요.  1800년의 제2차 이탈리아 침공 때부터 나폴레옹 밑에서 사병으로 복무했던 쿠아녜(Coignet)의 회고록에도 '아마 천지창조 때 함께 창조된 것처럼 오래된 말린 콩'이 배급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와인과는 별도로 나오는 브랜디 0.0625 (1/16) 파인트에 대해서도 감탄할 수도 있습니다.  실은 저것도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다소 덜 로맨틱한 이유에서 배급되었던 것입니다.  전장에서 마시는 물은 그다지 깨끗하지 않은, 냄새도 나고 탁한 것일 때가 많았으므로, 그런 물을 좀더 정화하기 위해 브랜디 또는 식초를 넣어서 마시라고 준 것이었습니다.  짐작하시겠지만 브랜디의 경우는 대부분 병사들이 그냥 마셔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식초는 그렇게 물에 타서 마셨고, 아예 각 중대별 짐수레에는 그런 용도를 위한 큰 식초통이 실려 있었습니다.  


때와 장소에 따라 병사 1인당 배급량에는 변화가 컸습니다.  가령 1809년 나폴레옹이 비엔나를 점령한 뒤에 비엔나 시민들에게 부과한 프랑스군 1인당 배급량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빵 1.33 파운드 그리고 추가로 수프에 넣을 빵 0.33 파운드

고기 1 파운드

쌀 0.125 파운드 (2 온스)

말린 채소 0.25 파운드 (4 온스)


그러나 이는 이제 비엔나 시민들의 비용으로 병사들을 먹이게 되었으므로 여태까지 먹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요구한 것이었고, 이 때를 제외하면 실제로는 대부분의 경우 훨씬 더 적은 양의 식량만 배급되었습니다.  1811년 6월, 다른 부대들보다 훨씬 배급 사정이 좋았던 근위대의 실제 하루 배급량은 정말 참혹한 수준이었습니다.  


빵 0.8 파운드 그리고 추가로 밀가루 0.25 파운드

고기 0.6 파운드

쌀 0.0625 파운드 (1 온스)


밀가루가 배급되었던 이유는 빵을 구울 형편이 안 되었기 때문이고, 그나마 스페인처럼 정말 상황이 안 좋았던 곳에서는 아예 가루를 내지도 못하고 그냥 생밀 낟알이 배급되기도 했습니다.  병사들은 이런 낟알을 수프에 넣어 주린 배를 채워야 했습니다.  뻔뻔스러운 나폴레옹은 아예 한술 더 떴습니다.  그는 고대 로마 군단병들처럼 병사들은 현지에서 직접 밀 낟알을 배급받고, 그것을 작은 휴대용 맷돌로 갈아 자신이 먹을 빵을 직접 구워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까지 했지요.  


물론 영국군도 규정된 배식량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영국군 사병의 급료는 기본 하루 1실링 즉 12펜스였는데, 저런 배식에 대해 무려 그 절반인 6펜스를 공제했습니다.  대개의 경우, 보급 상황이 좋지 않아 규정된 배식을 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급여에서 배식 공제는 꼬박꼬박 이루어졌습니다.  또 원래 살코기로 공급되어야 하는 염장 고기가 비계나 연골, 힘줄 등 먹기 싫은 부위로 잔뜩 채워져 공급되는 일도 많았고요.  물론 그 와중에 뇌물이 오가고 누군가는 돈을 벌었겠지요.  


그런 부당함은 프랑스군에도 매우 많았습니다.  나폴레옹의 통치도 결국은 독재 권력인지라 그의 묵인 하에 많은 부정이 동반되었고, 그의 군납업자들은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폴레옹의 군대에 보급되는 빵과 비스킷은 병사용 등급으로 구워져 보급되는 것이 많았습니다.  질이 나쁜 귀리 가루를 잔뜩 섞고, 대충 구워 대충 공급을 하다 보니, 맛이 나쁜 것은 둘째 치고 냄새가 나고 곰팡이가 핀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배급되는 빵이 전체적으로 파란 색을 띠기도 했다지요.   위에서 언급한 쿠아녜의 회고록에도 하루 종일 굶은 뒤 겨우 받은 배급 빵이 곰팡이 투성이여서 무척 실망했다는 이갸기가 나옵니다만, 그나마 며칠 뒤에는 아예 빵 배급이 끊겨 버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JE SUIS NÉ À DRUYES LES BELLES FONTAINES EN 1776, LE 16 AOÛT... 

CAPITAINE JEAN-ROCH COIGNET  

나는 1776년 8월 16일 드뤼에-레-벨-퐁텐느에서 태어났다...   대위 장-로끄 쿠아녜

쿠아녜의 회고록이 저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전쟁이 일어나면 병사들이 고생과 부상, 죽음이라는 희생을 치르는 동안 그를 통해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보는 자들이 항상 있습니다.  그런 자들일 수록 자신이나 자신의 아들들은 병역 의무에서 이런저런 수를 써서 빠지거나 아주 편하고 안전한 보직에서 특혜를 보고, 또 그럴 수록 전쟁불사를 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입보수나 방산 비리가 빨리 없어졌으면 합니다.   




출처 : Cross-sections : Man-of-War, Stephen Biesty

http://www.95th-rifles.co.uk/research/rations/

https://collections.nlm.nih.gov/ext/dw/101567907/PDF/101567907.pdf

http://regimentalrogue.tripod.com/blog/index.blog?topic_id=1129008

https://www.scribd.com/document/158382516/Historical-Review-of-the-Load-of-the-Foot-soldier

https://en.wikipedia.org/wiki/Royal_Navy_ranks,_rates,_and_uniforms_of_the_18th_and_19th_centuries

http://navymuseum.co.nz/history-of-the-warrant-officer-r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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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게일 2016.10.23 19: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고갑니다!

  2. 장웅진 2016.10.23 1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괴벨스도 만나고 싶어했던 유대인"(다행히 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미국으로 도주 성공)이라는 하인리히 야콥 교수의 [빵의 역사]에서는 나폴레옹이 병사들의 빵 배급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참... 문득 1996년인가 1997년인가, 정보과 고참에게서 들은 말이 생각나네요. "서류상으로만 보면 북한 애들이 우리보다 더 잘먹는다"... 헌데 그 당시에 저희 부대 같은 경우 맛이 없어서 그렇지 고기와 생선은 매일 나왔으니 말이지요(당시 할머니께 불고기가 장조림 맛이 난다고 말씀드렸더니 "솥에 넣고 휘젓지를 않고 냅두다시피 했으니 그렇게 되지!"라고 혀를 차시던...). 헌데 북한에서는 "아아 불고기, 장군님의 사랑!" 어쩌고 하는 그림까지 만들어 바친 부대원들이 있다고 하는 판인지라...

  3. 2016.10.23 1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4. Mavs 2016.10.23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은숙 교수님의 '강대국의 비밀'이라는 책을 보면 로마 병사들이 식사 준비 하는 장면이 상세히 묘사됩니다. 맷돌로 밀을 직접 간 것은 맞지만 빵을 구운 게 아니라 수프를 끓이더군요. 화덕이 있어야 빵을 굽든말든....

  5. 석공 2016.10.23 22: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

  6. 프로이센군 2016.10.23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크으.. 정말 저때 비스킷과 염장고기는 입맛이 뚝 떨어지게 하네요..

  7. 유애경 2016.10.24 02: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구더기비스킷,그림으로만 봐도 우웩...이네요!실제로 배급받은 병사들은 심정이 어땠을까 싶네요...

    국민들에게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라 하면서 안에서 병역비리 저지르는 권력자분들
    생각만해도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8. 백구한접시 2016.10.24 1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티스토리는 추천기능이 없나요?

  9. boribob 2016.10.24 1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추천 기능 없는게 정말 안타깝네요 항상 잘보고 갑니다.

  10. 태풍 2016.10.24 1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Cross-sections : Man-of-War"은 국내에도 번역본이 나왔지요.
    "한눈에 펼쳐보는 전함 크로스 섹션 " 이란 이름이었는데 아이에게 사주고
    그림과 내용이 너무도 사실적이어서 놀라고 그림이 좀 잔인해서 아이에게 보여줘도 되나 했습니다.

  11. 연습장 2016.10.24 2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림속의 cook도 다리 하나가 의족이군요

  12. 피를로 2016.10.25 0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요즘 포스팅 업데이트가 많고 빠르시네요 넘나 좋은것!!!

    • nasica 2016.10.25 07: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실은 그게... 다음블로그에서 이사하면서 전에 썼던 것 중 좀 상태가 나은 것을 편집해서 조금씩 옮기는 중입니다. 빨리 1809년 비엔나로 로 돌아가겠습니다.

  13. 고양이참치 2016.10.25 20: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끔찍하네요. 곰팡이 핀 빵에 벌레가 득실득시한 비스킷이라니.. 전쟁을 치루는 병사에게 제대로 된 음식도 공급해주지 않다니 :(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나폴레옹때 통조림을 발명했다고 알고 있는데, 이를 이용한 보급을 실제로는 매우 적거나 일부 부대만 시행한건가요? 통조림을 이용했다면 어느 나라 부대보다도 밥을 잘 먹었을텐데요.

    • 최홍락 2016.10.26 2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1810년 피터 듀란트가 주석 도금의 얇은 철판으로 만든 깡통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특허를 받고 듀런드로부터 특허권을 산 브라이언 도어킨과 존 홀이 1813년 통조림 공장을 열었는데 1815년 워털루 전투에서, 영불 양국군 병사들은 모두 병조림/통조림을 먹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만 납중독의 문제로 인해 이 통조림이 널리 퍼진 것은 좀더 시간이 걸려야 했다고 합니다. 깡통 따개는 남북전쟁이 되서야 발명이 되었다고 하네요.
      사람들의 통조림에 대한 인식도 통조림의 전파를 방해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임팔 작전 당시 굶주림에 시달리던 일본군이 통조림을 기피하여 정작 일선 장병들에게 보급되어야 할 통조림이 후방 장교들의 술안주용으로 쓰였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습니다. 이 사레가 비단 일본군의 이야기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14. 최홍락 2016.10.26 2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미 한참전에 올린글에 대해 선동이네 날조네 민중은 우매하네 하는 꼴을 보니 그냥 한꺼번에 왕창 옮기는게 나을것 같습니다. 귀국하고 오랜만에 들어옵니다.

  15. IserveGodofJew 2017.09.17 0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복 문제에 대해서 다뤄주실 계획 있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