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5.07 09:16

1810년 이제 합스부르크 가문의 사위가 된 나폴레옹의 권력은 무소불위에 가까운 절정에 달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를 그 자리에 올려놓기 위해 도나우 강변에서 피를 쏟으며 싸운 병사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프랑스로 돌아오지 못하고 엘베(Elbe) 강과 베저(Weser) 강 하구 북유럽 해안에 분산 배치되어야 했습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영국과의 무역 전쟁인 대륙봉쇄령의 엄격한 집행을 위해 북부 독일의 항구 도시들을 감시하에 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북부 독일 해안에 이런 감시를 집중했을까요 ?


이는 북부 유럽과 남부 유럽의 문화적 차이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농업에 의존해야 하는 동물이기 때문에 그 삶과 문화는 농작물에 의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북부 프랑스 사람들의 생활 문화는 지중해 연안 남부 프랑스 사람들의 것보다는 독일 사람들의 것과 더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름입니다.  남부 프랑스가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그리스처럼 올리브유를 많이 쓰는 것에 비해 북부 프랑스는 독일이나 영국처럼 버터를 많이 쓰지요.  



(최근 boredpanda.com이라는 사이트에서 게재했던 유럽의 분류 지도입니다.  이런 분류의 가장 큰 영향은 위도의 높낮이와 그에 따른 일조량의 차이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국민성이니 민족의 우수함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미미한 인간들의 개소리일 뿐이고, 우리 모두 거대한 우주 속에서 그저 바람 따라 흩날릴 뿐인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럽 남부는 불만투성이 속에서도 그런대로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가령 미국에서 수입하던 목화솜은 아마(flax)와 나폴리산 목화솜으로 대체가 가능했습니다.  인도에서 들여오던 고급진 파란색 인디고(indigo) 염료는 좀 촌스럽지만 유럽 자생의 대청(woad)으로도 흉내를 낼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커피도 볶아서 가루를 낸 치커리(chicory) 뿌리로 최소한 맛과 향을 어느 정도 비슷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설탕은 좀 문제였습니다.  햇빛이 잘 내리쬐는 남부 유럽에서는 포도즙을 졸여 만든 시럽으로 설탕을 대체했습니다.  실제로 설탕을 넣지 않은 과일잼으로 인기가 있는 생달푸르(St Dalfour) 잼만 해도, 설탕 대신 포도즙과 대추야자즙을 사용한다고 하지요.  그러나 달다고 해서 다 설탕의 대체재가 될 수 없었습니다.  설탕의 그 아무 향 없는 순수한 단맛은 특히 커피와 홍차, 코코아 등 마실 것에 있어 대체 불가였습니다.  



(대청이라고 불리는 woad 잎입니다.  이걸 가공하면 푸른색의 염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인디고의 그 눈부신 새파란 색깔과는 비교가 어려웠다고 합니다.)



(인도 원산지의 콩과 식물의 잎을 원료로 하여 만드는 가공된 인디고 염료 덩어리입니다.  당시 영국의 인도 무역선들 즉 indiaman들이 실어오는 주요 귀중품 중 하나가 바로 이 인디고였습니다.)



(코스트코에서 싸게 살 수 있는 생-달푸르 잼입니다.  '설탕이 들지 않은 좋은 잼'이라는 것이 특장점 중의 하나인데, 솔직히 맛은 뭐 그저 그렇습니다.  또 설탕 대신 포도 시럽을 쓴다고 건강에 더 좋은 것인지도 그닥...)




그나마 남부 유럽에서는 어렵게나마 이런 식으로 대체재를 구할 수 있었으나, 북부 유럽에서는 그마저도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불만족스러운 대체재의 가격마저 비쌌던 발트해 연안의 북유럽 지역에서는 영국과의 밀무역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친인척인 네덜란드 왕 루이나 베스트팔렌 왕 제롬은 형 나폴레옹으로부터 밀무역 단속을 전쟁처럼 삼엄하게 할 것을 요구받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나라에서 그 나라 사람인 부하들과 자주 접촉하여 그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던 동생들은 형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밀무역을 은연 중에 눈감아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영국에 대한 나폴레옹의 무역 전쟁은 조금씩 패배로 뒷걸음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설탕은 무역 액수에 있어서나 상징적인 면에 있어서나 매우 중요했습니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동물에 불과하므로 아무리 돈이 많아도 또 아무리 학식이 많아도 결국 맛있는 것을 먹고자 하는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그런데 18세기 말 19세기 초반의 유럽은 이미 설탕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지경이었습니다.  이건 특히 영국에서 심했습니다.  영국은 홍차 문화가 발달한 나라였거든요.  


17세기 중반에 중국에서 녹차 형태로 맨 처음 차가 들어왔을 때는 차에 설탕을 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과 수십년이 흐르는 사이 어느덧 홍차에는 설탕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누가 어떤 사건을 통해 홍차에 설탕을 넣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주도적인 설이 없습니다.  일부 설에 따르면 그건 영국 선원들 영향이라고 합니다.  즉, 인도에서는 설탕 종주국답게 홍차에 설탕을 넣어서 마셨는데, 영국 선원들이 그런 습관을 배워서 영국으로 가져왔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영국 선원들이 럼주나 진, 맥주 등을 두고 과연 홍차 같은 것을 마셨을지에 대해서는 많은 의심이 남습니다.  확실한 것은 17세기 말엽에는 이미 유럽 대부분에서는 홍차에 설탕을 넣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홍차 뿐만 아니었습니다.  17세기부터 중산층 이상의 영국인들의 식생활에서 설탕은 뺄 수 없는 요소가 되어 있었습니다.  가령 1603년 영국을 방문한 스페인 파견단 일행이 영국인들이 후식 뿐만 아니라 메인 코스의 고기 요리에도, 심지어 와인에도 설탕을 듬뿍 쓰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워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기록은 다른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스페인이나 프랑스 등 유럽 대륙에서는 설탕을 그렇게까지 많이 소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지요.  




(점박이개 즉 spotted dog 또는 spotted dick이라고 불린 푸딩입니다.  삶아서 만드는 푸딩이라 오븐을 쓰기 어려운 군함에서 특히 즐겨 만들어 먹던 영국 해군의 디저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설탕을 잘 먹지 않던 스페인인들이나 프랑스인들도 설탕을 대량으로 써야만 했습니다.  바로 후식과 커피 때문이었습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설탕 값은 1파운드에 약 6펜스 정도로 싸졌습니다.  이는 현재가치로 약 6000원 정도로서, 당시 우표값 수준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의 파운드당 약 1200원 정도에 비해서는 크게 비싼 것이지만 중세 시대에 비해서는 엄청나게 싸진 것이었습니다.  중세 시절에는 파이 껍질에 덜덜 떨면서 아껴가며 뿌리던 것을 이젠 아예 파이 껍질을 반죽할 때 듬뿍 넣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17세기 들어서면 빈곤층이 아닌 이상 하루 식사 중 최소한 한번은 푸딩이든 파이든 타르트든 이름이 무엇이건 간에 후식이 식탁에 올라와야 했습니다.  달콤한 후식이 없는 식사는 당연히 실망스러운 것이었지만, 다른 오락거리가 별로 없어 손님을 초대한 식사를 자주 즐기던 중산층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체면이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바흐의 커피 칸타타가 초연된 짐머만 커피하우스입니다.  라이프치히에 있었는데, 1943년 연합군의 대공습 때 파괴되었습니다.)




게다가 커피가 있었습니다.  1735년 짐머만 커피하우스(Zimmermannsches Kaffeehaus)에서 초연된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커피 칸타타(독일어 원제는 Schweigt stille, plaudert nicht 조용, 떠들지 마셈 이라고 합니다)에서도 아버지 쉴렌드리언(Schlendrian)이 딸 리쉔(Lieschen)의 커피 중독을 한탄했듯이, 이미 유럽은 커피 없이는 살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소비되던 커피는 설탕과 마찬가지로 주로 카리브해에서 노예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 주요 유통 경로가 영국 해군에 의해 끊긴 뒤에도, 처음 유럽에 소개될 때처럼 이집트와 오스만 투르크를 통해 들어오던 북아프리카산 커피가 여전히 유통되었습니다.  그런 진짜 커피를 마실 형편이 안 되는 서민층에서는 치커리 뿌리라도 볶아 우려냈고, 그마저도 구할 형편이 안되는 집에서는 빵가루를 시커멓게 태운 뒤 가루를 내어 우려낸 것을 커피 대신 마셨습니다.  그런 어이없는 대용 커피라도 꼭 마시고 싶었을까라고 생각하시겠지만, 그렇게 태운 곡식을 물에 우려내어 마시는 습관은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숭늉이나 보리차가 다 그런 것이지요.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대용 커피에도 설탕은 넣었다는 것입니다.  



(치커리 식물의 모양새입니다.)



(치커리 뿌리로 만든 대용 커피입니다.  이때 뿐만 아니라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나 제1, 2차 세계대전 등 전쟁 때마다 치커리 뿌리로 만든 대용 커피는 군인들과 민간인들 모두로부터 사랑(?)받았습니다. )




당시 커피와 설탕은 비싼 수입품으로서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만 먹을 수 있는 것이었을텐데, 과연 서민층까지 그렇게 커피와 설탕에 중독된 상태였을까요 ?  예, 그랬습니다.  1663년 독일 여행가 소머펠트(Gustav Sommerfeldt)가 남긴 기록을 보면 '오스트리아를 침공했다가 포로로 잡혀 남게 된 투르크인들이 커피와 설탕으로 음료를 만들어 팔아 돈을 벌고 있더라'는 소식을 신기하다는 듯이 남겼는데, 그로부터 불과 130년 정도 지난 사이에 유럽은 이미 커피와 설탕에 중독된 상태였습니다.  


1798년 나폴레옹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한 뒤 나일강을 따라 카이로를 향해 행군할 때, 프랑스 병사들이 배를 곪지는 않았습니다.  풍요로운 곡창지대인 나일강변 곳곳에는 밀과 콩, 양파가 잔뜩 쌓여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대군에게 빵을 먹이기에는 밀가루를 낼 맷돌이 부족했던 상황이라, 병사들은 빵을 먹지 못하고 삶은 콩만 질리도록 먹어야 했습니다.  병사들의 불만이 쌓여가자, 나폴레옹은 '카이로에만 가면 너희들이 꿈꾸던 모든 빵을 다 얻을 수 있다' 라고 연설을 했습니다.  그러나 '고작 빵을 찾아온 거라면 뭐하러 프랑스에서 이집트까지 온 거냐'라고 병사들이 비아냥거리자, 다음번 연설에서는 '카이로에만 가면 고기와 와인, 설탕과 커피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라고 메뉴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당시 이집트는 홍해 쪽에서 수입된 모카 커피를 지중해 쪽으로 유통하는 주요 경로로서, 이집트의 수입원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그 관세였거든요.  저 나폴레옹의 연설이 뜻하는 바는 최소한 일반 사병들조차 커피를 알고 있었고, 또 커피에는 설탕을 넣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는 점입니다.


나폴레옹의 병사들이 설탕을 꽤 자주 먹었다는 기록은 다른 곳에서도 나옵니다.  1806년 프로이센과 예나(Jena) 전투를 벌이기 직전, 프랑스군은 인근 창고에서 구한 많은 양의 설탕과 와인으로 10월 중순의 쌀쌀한 밤에 달콤한 뱅쇼(vin chaud)를 끓여 마셨습니다.  또 몇 년전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 근처에서 1812년 러시아 원정 당시 희생된 프랑스 병사들의 집단 매장지가 발굴되었습니다. 치과 의사들이 거기서 발굴된에서 유골의 치아를 검사해보니, 일부 병사들의 치아는 당시 평균 이상으로 충치가 많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고달픈 야전 생활 중에도 생각보다는 자주 설탕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만드는 사실이지요.  



(와인에 오렌지 등의 과일 조각과 설탕, 향료 등을 넣고 가볍게 덥힌 뱅쇼 vin chaud 입니다.  글자 그대로 따뜻한 와인이지요.  물론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저렇게 계피 스틱까지 꽂은 예쁜 잔으로 뱅쇼를 마시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결국 유럽인들은 설탕 없이는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시장의 수요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공급이 있기 마련이었고, 그 대금은 나폴레옹에겐 피와 같았던 금화와 은화의 형태로 고스란히 가증스러운 영국으로 흘러들어갔습니다.  이건 요즘 현대 미국이 그 막강한 군사력과 경찰력을 가지고도 중남미산 마약과의 싸움에서 조금씩 계속 패배하는 것과 유사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설탕에 대해서, 나폴레옹은 뭔가를 해야 했습니다.  이대로 놔두면 영국과의 전쟁은 필패가 뻔했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은 총검이나 대포로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카리브해의 사탕수수를 어떻게든 유럽 내에서 길러내지 못하는 한 나폴레옹에게는 승산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나폴레옹이 불굴의 의지를 가진 천재라고 해도 프랑스에서 사탕수수를 키워낼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인간은 뭔가 방법을 찾아냅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To be continued




Source : Sugar: A Bittersweet History By Elizabeth Abbott

The Life of Napoleon Bonaparte By William Milligan Sloane

https://fr.wikipedia.org/wiki/Caf%C3%A9#/media/File:Cafeine_consommation.png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coffee

https://fr.wikipedia.org/wiki/Caf%C3%A9

https://en.wikipedia.org/wiki/Jerzy_Franciszek_Kulczycki

https://en.wikipedia.org/wiki/Liebig%27s_Extract_of_Meat_Company

https://en.wikipedia.org/wiki/Franz_Karl_Achard

https://www.boredpanda.com/maps-atlas-of-prejudice-yanko-tsvetkov/

https://yumuniverse.com/meet-roasted-chicory-root-a-health-boosting-caffeine-free-coffee-alternative/

https://en.wikipedia.org/wiki/Chicory

https://en.wikipedia.org/wiki/Isatis_tinctoria

https://www.stdalfour.com.au/products/fruit-spreads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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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탕사랑 2018.05.07 1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등 개이득

  2. 보이져 2018.05.07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쉽게 2둥입니다
    몇 년 전부터 이 연재를 너무나 즐겁게 보고있습니다 나시카님^^

  3. 박종필 2018.05.07 14: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탕무가 등장할 시간?

  4. 수비니우스 2018.05.07 14: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청... 90년대 후반에 나온 전략시뮬레이션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2에서 켈트족 특수보병으로 대청특공대를 생산할 수 있었는데, '대청에서 뽑아낸 파란 색을 몸에 칠해서, 보는 적이 심리적으로 압도되는, 기괴한 모습을 한 전사들'이라는 설명이 기억나네요. 인디고 같은 색깔은 안난다고 하신거보면 생각보다 파랗진 않은가봅니다.

    • 유애경 2018.05.07 1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본문 하고는 관계없는 이야긴데,멜 깁슨이 감독한 영화 아포칼립스에서 인신공양에 쓰일 제물로 포획된(?) 포로들이 온몸에 파란 물감,염료?를 발리우고 나오는데 색감이 주는 강렬함이 뭔가 섬뜩했던 기억이...
      (제물로서의 용도를 확실히 하기위해서 였을거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만.)

  5. 투팍아마르 2018.05.07 17: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투씬보다는 이런 종류의 글들이 더 재밌고 배울게 많은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박종필님한테 한발 늦었습니다...ㅎㅎ

  6. 설탕사랑 2018.05.07 23: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청특공대 하니까 생각나는 건데
    에이지오브엠파이어2에서 크게 참고했을 영화 브레이브하트의 대청을 바른 스코틀랜드 전사들은 사실 고증에 맞지 않는다는 얘길 본 것 같네요
    그건 고대시절이고 윌리엄 월레스 당시엔 여느 중세 전사들 복장이었다고..ㅈ

  7. 0_- 2018.05.08 17: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포스팅 하실 때 나폴레옹 시대 전투관련 역사쪽이 사료 교차검증 등등 해서 고생은 더 하실 것 같은데, 역시 재미나 배울 점은 이런 내용이 더 많은 듯 합니다 ^^;;; 전쟁사는 초반에는 그나마 잘 봤던 것 같은데, 이제 나폴레옹의 내리막이랄까,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것 보다도 슬슬 망해가는게 아무래도 눈에 띄여서 그런걸까요.

    그나저나 설탕, 커피와 염료라, 생각지도 못했는데 재미있네요. 염료는 포스팅에 첨부된 사진만으로는 실제 염료색이 상상이 안 되어서 색깔이 얼마나 다르겠거니 하며 "indigo vs. woad" 로 검색해 봤는데, 생각보다 많이 차이가 나네요. 대청은 말이 파란색이지 청록색이라고 부르는게 맞을 정도군요! 다만 이쪽은 말씀하신 대로 그냥 촌스럽더라도 색상 안 쓰고 견딜수도 있을 것 같은데, 설탕과 커피는... 매일 작업하다가 한모금씩 홀짝거리는 낙을 빼앗긴다면 정말 생활이 상상도 안됩니다 ㄷㄷㄷ

  8. 최홍락 2018.05.09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베네치아인들이 대항해 시대 이전까지 베네치아 영토였던 크레타섬과 키프로스에서 사탕수수 농장을 성공적으로 경영했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지중해 섬에서 사탕수수 재배를 시도해볼 수도 있었을텐데ᆢ

    • reinhardt100 2018.05.10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설탕이 중세 베네치아인들에 의해 키프로스등에서 제배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선, 노예노동력 수급에 유리했다는 점입니다. 흑해 시장이 4차 십자군에 의해 이탈리아 해상도시국가들에게 열리면서 중앙아시아나 러시아, 우크라이나에서도 노예를 대량으로 수입 (?)해서 쓸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설탕산업. 이거 말 그대로 사람을 갈아대는 노동집약적 산업입니다.

      중세 말, 마데이라 군도가 설탕산지로 각광받으면서 키프로스 등지의 베네치아 설탕 산업은 가격 경쟁력에서 떨어지게 되는데 무엇보다도 서아프리카산 노예를 맘껏 쓸 수 있는 마데이라보다 3배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는 바람에 쇠퇴하게 됩니다.

      19세기 초반에는 지중해 지역 전체적으로 지력문제도 심각했습니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지중해지역, 특히 레반트나 남이탈리아. 북아프리카 연안 지역은 장기간의 삼림파괴와 2포제 농업의 악영향, 심경의 상대적 미비로 인해 지력이 중세시절보다 많이 쇠퇴한 상태였습니다. 설탕 한 번 제배하면 인삼이나 옥수수 저리가라 급으로 지력 완전히 박살납니다. 한 10년 정도는 그 땅 방치한채로 지력회복작물 심거나 화전으로 억지로 지력 회복시켜야 작물 제배가 가능하니까요.

  9. mip 2018.05.10 0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밌게 잘 읽었습니당

2017.05.06 17:58

제가 직접 만들어본 최초의 원두커피는 회사 들어와서 본 종이필터로 거르게 되어 있는(drip brewing) 커피메이커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원두커피가 인스턴트 커피보다 훨씬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미국인들이 마시는 커피는 마치 숭늉처럼 묽구나' 하는 정도였지요.  제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아메리카노를 마셔본 것이 언제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그건 확실히 여태까지 마시던 커피와는 달랐습니다.  이걸 마셔보니 전에 마시던 드립 원두 커피의 맛이 형편없게 느껴졌습니다.  전에 존 그리셤의 법정 쓰릴러를 읽다가 변호사가 증인을 만나러 들린 싸구려 식당에서 'bad coffee'를 마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맛이 어떤 맛인지 마치 알 것 같은 느낌이었지요.  그 이후로는 (아마 제가 배때지에 기름기가 껴서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인스턴트 커피나 드립 원두 커피는 거의 마실 일이 없었습니다.  최근에 마셔본 덧치 커피는 또 다른 맛이더군요.





(바로 이런 커피메이커...  이런 전기 드립 커피메이커가 시판되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라고 합니다.  2000년대까지도 미국이나 한국이나 많은 회사 사무실에서는 이런 것으로 커피를 만들어 마셨습니다.)


생각해보면 차에 비해 커피는 볶고 빻고 가는 것도 성가신 일이지만 그 이후에 어떻게 내리느냐 하는 방법도 매우 다양하고 또 힘든 과정입니다.  제가 즐겨 읽는 나폴레옹 시대 영국 해군의 모험담인 Aubrey - Maturin 시리즈의 주인공 잭 오브리와 스티븐 머투어린은 커피를 매우 즐기는 캐릭터입니다.  이들이 커피를 볶거나 갈거나 마시는 장면은 제법 자주 나오는데 비해, 커피를 내리는(brew) 장면은 딱 한군데에 나옵니다.  볶은 커피 콩을 갈아서 고운 천 위에 놓고, 뜨거운 물을 부어 내리는 방식으로 나오더군요.  그러니 드립 원두 커피였던 셈입니다.


그러나 커피 만드는 방법은 나라와 시대별로 매우 달라서, 당시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식으로 커피를 만들어 마시지는 않았습니다.  가령 1930년대까지만 해도 커피 콩 갈은 것을 직접 물에 넣고 끓이는 것이 미국에서는 일반적인 방법이었다고 합니다.  헤밍웨이의 단편 소설인 '두 개의 심장을 가진 강'(BIG TWO-HEARTED RIVER) 중에, 1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주인공 닉이 캠핑에서 커피를 끓이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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닉은 큰 못을 하나 더 나무에 박고 물이 가득찬 양동이를 거기에 걸었다.  그는 커피 포트를 거기에 담가 절반 정도 물을 채우고 나무조각을 불판 아래의 불에 좀더 집어 넣은 뒤, 그 위에 커피 포트를 올려 놓았다.  그는 어떤 방식으로 커피를 만들었는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는 홉킨스와 커피 만드는 방법에 대해 논쟁을 벌였던 것은 기억이 났지만, 결국 어느 쪽 방법을 택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는 그냥 커피가 끓어 오르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그러자 비로소 그게 홉킨스의 방식이었다는 것이 기억났다.  그는 한때 모든 면에 있어서 홉킨스와 논쟁을 벌이곤 했다.


(중략)


그가 지켜보는 가운데 커피가 끓어올랐다.  뚜껑이 들리더니 커피와 커피찌끼가 포트 옆으로 흘러내렸다.  닉은 커피 포트를 불판에서 꺼내 들었다.  그건 홉킨스를 위한 승리였다.  그는 통조림 살구를 덜어먹던 컵에 설탕을 넣고는 커피를 좀 따른 뒤 식기를 기다렸다.  커피를 따르기엔 너무 뜨거워서 그는 커피 포트 손잡이를 쥐기 위해 모자를 써야 했다.  그는 커피가 포트 안에서 우려지기를 기다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  적어도 첫 잔은 아니었다.  그건 제대로 된 홉킨스 방식이어야 했고, 홉킨스는 그럴 자격이 있었다.  그는 매우 진지하게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었다.  그는 닉이 아는 사람 중 가장 진지한 사람이었다.  


(중략)


닉은 커피를 마셨다.  홉킨스 방식에 따른 커피였다.  맛을 보니 썼다.  닉은 웃었다.  그건 이 이야기에 어울리는 훌륭한 결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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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묘사된 것처럼 간 커피 콩을 직접 물에 넣고 끓이는 방식을 카우보이 커피라고 하는데, 이는 주로 미국이나 중동에서 유행하던 방식입니다.  그러나 이 헤밍웨이 소설 속에서 결말이 나와 있듯이, 커피 콩을 물에 넣고 끓이는 것은 맛이 쓸 수 밖에 없습니다.  원래 커피 특유의 향을 담은 기름 성분은 섭씨 96도에서 커피 콩으로부터 추출되는데, 이건 물의 끓는 점에서 아슬아슬하게 낮은 온도입니다.  문제는 물이 끓는 점 100도에 이르게 되면 커피 콩에서는 그 향유 뿐만이 아니라 쓴 맛을 내는 산 성분까지 추출이 된다는 점이지요.  




(퍼콜레이터입니다.  저도 90년대 후반 회사 사무실에서 저런 거 썼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잭 오브리처럼 뜨거운 물을 간 커피 콩 위에 뿌리는 식의 커피를 즐겨 마셨나 봅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일손이 너무 많이 갔으므로, 퍼콜레이터(percolator, 여과식 커피 포트)라는 독특한 형태의 커피 포트가 만들어졌는데, 최초의 퍼콜레이터는 영국 군인이자 군인인 럼포드 백작(Count Rumford, Sir Benjamin Thompson)이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던 1810년~1814년 사이에 만들었다고 합니다.  현대적인 방식, 즉 커피 포트 가운데에 끓는 물을 뿜어 올리는 금속 관이 내장된 형태의 퍼콜레이터는 1819년 로랑(Laurens)이라는 파리 사람이 만들었고, 이 발명품은 여러 단계를 거쳐 1889년 미국에서 굿리치(Hanson Goodrich)라는 이름의 농부가 특허를 받았습니다.  이 퍼콜레이터는 나중에 전기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대용량화되었고, 1970년대까지 미국의 대형 식당 등에서는 그런 전기 퍼콜레이터를 이용해서 드립 커피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1970년대 이후 간편한 종이 필터를 이용하는 가정용 전기 드립 커피 메이커가 도입되면서 퍼콜레이터의 인기가 급격히 내려갔다고 합니다.




(이 화면은 1970년에 General Foods에서 내놓은 Max-Pax 커피 카트리지의 TV 광고입니다.  Max-Pax는 도넛 모양의 필터 속에 그라운드 커피를 일정량 포장한 것으로서, 이걸 퍼콜레이터 안에 넣으면 커피가 만들어지는 형태의 제품입니다.  그라운드 커피 찌꺼기를 긁어낼 필요가 없으니 매우 편리했지요.  그러나 불과 6년 후인 1976년에 전기 드립 커피 메이커에 밀려 생산이 중단되었습니다.  전체 광고 영상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uE7m8JJ_7jw  )





(저희 집에서 소비하는 일리 캡슐 커피입니다.  플라스틱 캡슐이 지구를 더럽히는 것은 물론이고, 특히 저 아름다운 알루미늄 깡통을 버릴 때마다 정말 아깝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일리(Illy) 커피 캡슐 머신으로 커피를 만들어 마십니다.  편리하고 빠르고 게다가 맛도 아주 훌륭한데, 단지 제가 커피를 마실 때마다 낭비되는 이 플라스틱 캡슐 포장들을 보면 지구에게 미안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최근에 TV에서 방영되는 알 파치노 - 로버트 드 니로 주연의 갱 영화 'Heat'를 보다보니, 평범한 형사 반장인 알 파치노의 작은 집 주방에도 캡슐 커피 머신이 놓여 있는 것이 보이더군요.  이 영화는 1995년 작인데, 이미 당시 미국에서는 캡슐 커피가 일반적이었나 봅니다.  최초의 캡슐 커피는 스위스 회사인 네슬레(Nestlé)에서 근무하던 스위스 엔지니어 에릭 파브르(Eric Favre)가 1976년에 최초로 발명하고 특허도 냈습니다.  그러나 흥행에는 완전히 실패했다가  약 10년 뒤에야 인기를 얻기 시작했지요.  





(남자의 영화, Heat)


캡슐 커피에서 만드는 커피는 한마디로 에스프레소(Espresso)입니다.  에스프레소는 끓는 물과 고압을 이용해 커피를 추출하기 때문에 고형분까지 콜로이드(colloid, 현탁액)의 형태로 일부 뽑아져 나옵니다.  그래서 에스프레소 잔의 바닥에는 일부 찌꺼기가 남고 또 그 콜로이드가 크레마(crema)로 잔 위에 뜨게 되는 것이지요.  이 크레마는 오직 에스프레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인데, 그래서인지 크레마가 없는 커피는 왠지 맛없게 느껴지기조차 합니다.  하지만 이 크레마는 지방 성분 위주이다보니, 콜레스테롤 함유량이 높아 건강에는 좋지 않다고 합니다.





(저 크레마는 에스프레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에스프레소는 커피를 뽑아내는데 필요한 고압을 만들기 위해 특별한 기구가 필요하므로, 그 역사가 비교적 짧은 편입니다.  1884년에 모리온도(Angelo Moriondo)라는 이탈리아인이 최초의 에스프레소 머신에 대한 특허를 냈는데, 그 이후 20세기 전반에 이탈리아에서 서서히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에서는 1950년대에야 에스프레소의 인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고 하고, 미국에 본격적으로 에스프레소가 활성화된 것은 스타벅스 제2의 창업자인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가 1980년대 밀라노 출장 중에 에스프레소 바를 보고 미국 스타벅스 매장에 도입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미국인들 입맛은 에스프레소를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에 물이나 우유를 탄 아메리카노나 라떼 같은 것이 많이 팔렸지요.


지금 세계는 이 캡슐 커피 또는 별다방 콩다방 등에서 파는 에스프레소 기반의 커피가 대세인 듯 합니다.  그러나 정작 전세계 통계치를 보면 세계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커피의 형태는 바로... 인스턴트 커피입니다.  그것도 고급 커피에 계속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라운드 커피나 원두 형태로 판매되는 커피보다 훨씬 더 빨리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마 그런 말을 들으시면 '인도나 중국 등 아시아 신흥국의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커피를 안 마시던 그쪽 나라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그렇게 되나 보다'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것도 사실이긴 한데, 우아한 유럽인들도 인스턴트 커피를 의외로 많이 마십니다.  특이한 것은 호주인데, 호주는 아시아보다 오히려 더 인스턴트 커피 비율이 더 큽니다.  유럽 내에서도 특이한 것은 또 영국입니다.  영국은 아시아 국가들처럼 인스턴트 커피를 절대적으로 더 많이 마십니다.  영국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즐겨 마시는 것에 대해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오랫동안 미군이 주둔했던 관계로, 그때 미군들이 마시던 인스턴트 커피에 익숙해졌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 못지 않게 미군이 오래 주둔한 독일이나 프랑스에서는 인스턴트 커피가 그렇게까지 유행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런 설명에 쉽게 납득이 가진 않습니다.




(무섭게 성장하는 인스턴트 커피 시장입니다.  중국 및 인도의 성장과 거의 일치하는 것은 맞네요.)


정작 인스턴트 커피를 발명한 것은 프랑스인이었습니다.  흔히 일본계 미국인인 사토리 가토가 1901년 전미 박람회에서 발표한 것이 최초라고 하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1881년 알레(Alphonse Allais)라는 프랑스인이 이미 프랑스에서 특허를 낸 바 있습니다.  그리고 상업적으로 성공적으로 팔리기 시작한 인스턴트 커피도 유럽인 스위스에서 네스카페(Nescafé) 브랜드로 1938년에 시작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미국의 인스턴트 커피 대명사인 맥스웰 하우스 인스턴트 커피(Maxwell House Instant Coffee)는 1945년에야 나왔는데, 이는 그 모기업인 제네럴 푸드(General Foods Corporation)가 1942년부터 미군에 납품하기 위한 인스턴트 커피를 만들기 시작한 것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맥스웰 하우스 인스턴트 커피의 TV 광고입니다.  바쁜 아침,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줄 커피가 마침 딱 떨어져 당황하는 주부의 모습이 핵심 포인트입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토요일인가 일요일에, 월트 디즈니 만화 또는 영화가 했었습니다.  그날 나온 단막 TV용 영화는, 시골 깡촌에서 할아버지와 단둘이서 사는 어떤 꼬마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가난한 가족이었지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연세가 많으셔서, 결국 몸져 누우시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꼬마가, 나름대로 다 컸다고 침대에 누운 할아버지에게 아침 식사를 차려 가져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토스트를 먹으려고 보니, 새카맣게 탄 거에요.  꼬마가 미안하다는 듯 조금 태웠다고 말합니다.  할아버지는 입맛을 다시더니 지금은 생각이 없다면서 그 토스트를 내려놓고, 커피만 마시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꼬마가 또 미안하다는 듯이, '진짜 커피를 끓일 줄 몰라서 인스턴트 커피를 끓였다' 고 합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그 커피를 조금 마셔 보고는 다시 내려놓으면서, 나중에 마시겠다고 하는 겁니다 !!!  그때 그 어린 나이에 제가 받은 충격은, 나름대로 컸습니다.  당시 제가 보던 모든 커피는 다 인스턴트 커피였거든요.  그런데 미국에서는 그 시골의 가난한 할아버지조차도 '인스턴트 커피는 차라리 안마시고 만다'라고 하다니 !!! 




(세계 각 지역별 소비되는 커피 형태입니다.  진한 녹색이 인스턴트 커피입니다.)




(국가별로 신선원두를 더 소비하느냐 인스턴트 커피를 더 소비하느냐를 보여주는 지도입니다.  언듯 보면 잘 사는 나라는 신선원두를, 못 사는 나라는 인스턴트 커피를 주로 소비하는 것 같지만, 영국과 호주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차를 많이 마시는 일본과 인도가 신선원두를 더 많이 선호하는 것으로 분류되는 것을 보면, 이 나라들은 차를 하도 많이 마셔서 인스턴트 커피를 아예 마실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 합니다.)


결국 원래 커피를 마시던 나라들은 신선 원두를 선호하는데 비해, 영국이나 호주, 그리고 나머지 아시아 국가들처럼 차를 더 선호하던 나라들은 인스턴트 커피도 '뭐 나쁘지 않네'하며 잘 마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더 특이한 것은 바로 미국입니다.  보스턴 차 사건을 겪은 미국은 원래부터 커피를 더 선호하는 나라이긴 합니다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모든 먹을 것을 빨리빨리 대충 간편하게 때우려는 미국인들이 정작 커피에 있어서만큼은 그 편하고 빠른 인스턴트 커피를 극혐한다는 것은 매우 신기한 현상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이 없는데, 누군가 따로 연구 좀 해줬으면 합니다.




(미국내 커피 브랜드 별 판매량입니다.  Keurig 커리그 라는 브랜드는 제게는 듣보잡인데 미국내 독보적인 1위네요.  어느 기계에서나 호환되는 K-cup이라는 캡슐 커피 시스템이 그 비결의 하나라고 합니다.  조지 클루니를 곁들인 네스프레소를 거느린 네스카페는 생각보다 너무 하위네요.)




원본 : 

https://en.wikipedia.org/wiki/Coffee_preparation

https://en.wikipedia.org/wiki/Instant_coffee

https://www.washingtonpost.com/news/wonk/wp/2014/07/14/almost-half-of-the-world-actually-prefers-instant-coffee/?utm_term=.11a5b8733d4f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403544&cid=58364&categoryId=58364

https://en.wikipedia.org/wiki/Maxwell_House

https://en.wikipedia.org/wiki/Nespresso

https://en.wikipedia.org/wiki/Coffeemaker

https://en.wikipedia.org/wiki/Espresso

https://en.wikipedia.org/wiki/Espresso_machine

https://en.wikipedia.org/wiki/Starbucks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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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occhi 2017.05.06 1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루에 아메리카노 커피만 여러 잔 마시는 매냐로서 오늘 글 정말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괜찮다면 퍼가도 될까요??

  2. Seb7 2017.05.06 2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부터인가 믹스커피가 빠르게 아메리카노로 대체되고 있어서 신기했습니다. 입맛이라게 웃긴게 해외출장가서도 사무실 믹스커피 보다 인근 스벅매장에 가게 되더군요. 글로벌 커피사의 입맛에 길들여긴 된장이 되버린게 아닌가 합니다.

  3. 카를대공 2017.05.08 0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믹스 커피는 다 좋은데 설탕이 너무 많아요ㅡㅡ;;

    설탕 반에 나머지 성분 반이니 가끔 설탕차를 마시는건지 커피를 마시는건지 모를 지경입니다.

  4. 미켈럽 2017.05.08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스턴트 커피가 우리나라에서는 믹스형태가 위주인데 유럽국가들의 전투식량을 보니 커피, 설탕, 크리머를 모두 따로 포장해서 악세서리팩 속에 포함시켜 놨더군요. 개인주의적인 취향을 강조하는 문화적인 차이라서 그런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암튼 좀 번거로워 보였습니다. 유튜브에 전투식량을 시식하는 동영상을 올려놓은 사람들이 좀 있는데 올린 사람들도 세가지 다 넣고 타서 마시던데 그럼 우리식으로 믹스하는게 더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 nasica 2017.05.09 00: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같은 경우는 기껏 뜯은 MRE 속의 커피에 프림과 설탕까지 다 섞여 있으면 화날 것 같아요. 커피는 웬만하면 블랙이 더 좋거든요.

  5. ian 2017.05.08 14: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Folgers 카투사때 마시던 추억의 커피네요 ㅎㅎ
    그때 입맛이 굳어 저는 아직까지도 드립커피를 매우 좋아합니다.

  6. 연습장 2017.05.08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이먹은 아재들 중엔 같은 가격이어도 아메리카노보단 다방커피나 믹스커피를 더 선호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술자리에서 그 이야길 하다보니 딱히 저만 그런게 아니더군요

  7. 양치기 2017.05.08 2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투식량의 커피,설탕,크리머를 따로 포장하는것은 각개인의 기호에 따라 먹으라고 하는걸로 알고 있어요 저같은 헤비 인스탄트 커피매니아가 보기엔 이해할수 없지만 설탕을 안먹거나 조금 넣고 먹고 크리머는 않넣는 사람도 많더라구요 전 예전엔 프림을 꼭 넣어 먹었지만 몇년전부터 그냥 우유 넣어서 먹어요 물론 맛은 다른사람들이 먹으면 시고 이상하다고 하지만 프림이 정말 건강에 나쁘더라구요 다이어트 도중인데도 살이 쪄서 왜그런가 했더니 커피에 프림을 넣어서 그렇더라구요 의사들이 말하길 커피도 설탕도 괜찮습니다 프림은 먹지 마세요라고 하더라구요 미국포함 유럽의 전투식량에 포함된 크리머엔 '논디어리' 즉 '이건 유제품이 아닙니다' 라고 되어 있어요 말그대로 우리가 먹는 프리마,커피메이트처럼 '팜유'로 만든거죠 버터는 우유로 만들지만 마가린은 기름으로 만든것처럼 진짜 크림은 우유로 만들지만 '논디어리' 크리머,프림은 팜유즉 기름으로 만든거죠

  8. 양치기 2017.05.08 2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 검색해보니 그럼 팜유를 써서 프림을 만드느니 분유 즉 전지분유(반대로 탈지분유는 우유를 건조시키면서 지방을 뺀거죠)를 넣으면 되지 않느냐 라고 생각하실수도 있는데 타먹어본 사람들 얘기로는 전지분유던 탈지분유던 커피가 시커매지고 맛이 없어서 버렸다네요 역시 팜유로 크리머를 만드는 이유가 있었네요

  9. 최홍락 2017.05.09 0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럽이나 미국인들을 포함한 외국인들과 같이 일해본 경험에 비추었을때 믹스커피 싫어하는 사람은 잘 못봤던 것 같습니다. 매일 자기네 사무실 믹스 커피 떨어졌다고 저희 사무실로 직원들 보내서 몇개씩 가져갔거든요. 사무실 건물 밖에서 항상 믹스커피와 담배를 문 외국인 관리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요.

    인스턴트 커피가 종이컵에 물을 부어 만들면 맛있는데 이걸 아메리키노마냥 물을 한가득 부어서 만들면 맛이 없어서 모르는 사람들의 경우 이걸 좋아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https://youtu.be/aCJEmMh7ias

    이걸 보시면 호의적이지 않은 평가를 한 사람들의 경우 유리잔 한잔에 꽉 찰 정도로 물이 굉장히 많이 들어간 반면 호평을 가한 사람들을 보면 일반적으로 컵이 작거나 물을 적게 넣었지요. 양을 늘리려면 믹스를 2, 3개 정도 더 타야하는데 말이죠.

    사실 윗분들이 믹스커피 까다롭게 드시는 분들이 많아서 늘 커피 만들때마다 신경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직원들이야 매일 만드니까 정확히 만들겠지만 어쩌다 한번 만드는 입장에서 정확히 물을 넣는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파견나온지 6개월이 훨씬 지나서야 이제 물의 양을 맞출 정도라고 하셨으니...커피 좋아하시는 분들 입장에서도 물의 양 잘못 맞추면 맛없어진다고 하시는데 처음 먹어보거나 어쩌다 먹는 사람들이 물의 양을 제대로 맞출 리는 없고, 그래서 믹스커피를 선호하지 않게되는 것은 아닌지...

  10. 찰리 2017.07.13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스턴트 커피가 맛이 있다는데 백퍼 동의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커피 본연의 맛을 알게된 후부터는 드립이나 에스프레소만 마시게 되더군요. 다양한 원산자의 커피콩들을 어떻게 볶는지, 어떻게 갈아내는지, 또 어떻게 추출하는지에 따라 엄청난 조합의 맛들이 나오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얼마 전에는 회사의 터키출신분이 터키식 커피를 회사에서 만들어 맛을 좀 봤는데 이건 또 다른 세계더군요 ㅎ
    물론 번거로움이 수반되는 점을 부인할 수 없으니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두를 갈아 마실것이냐, 아니면 편하고 쉽게 마실것이냐의 문제로 볼 수도 있겠네요.

    커피맛도 모르는 미국애들이 인스턴트를 멀리하는건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죠. 한번에 1,2kg씩 갈린 커피를 사서 집에 오래두고 드립머신으로 만드는 커피를 즐기는(?) 분들인지라 맛은 이유가 아닌듯 하네요. 뭐든 집에서 직접 만드는걸 좋아하고 우대하는 문화 + 과거 미국 잘나가던 때 중산층들이 과시용으로 온갖 전자제품으로 집을 도배하던 시절부터 드립머신을 사용한게 전통내지는 습관화된게 아닐까 개인적으로 추측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