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제라블의 주인공 마리우스는 가난한 청년이지만, 그의 외할아버지는 부자로 나옵니다.  그러나 사실 외할아버지도 대단한 부자는 아닙니다.  영화 속에서, "Look down - Paris" 부분에서 마리우스와 앙졸라가 노동자들을 선동하고 있을 때 외할아버지가 그 광경을 마차 안에서 지켜보면서 통탄하고 있는 모습이 잠깐 나오지요 ?  하지만 소설 속에서 이 외할아버지는 마차를 소유하고 있지 않습니다.  당시 2인승 작은 마차라도 소유하려면 1달 유지비만도 500프랑 정도로서 엄청나게 비쌌거든요.  이 외할아버지가 마차를 탔다면 현재의 택시 같은 삯마차를 탄 것입니다.  과연 이 외할아버지 질노르망(Gillenormand) 씨는 어느 정도의 재산을 가진 사람이었을까요 ? 




(이 분이 마리우스의 외할아버지 질노르망 씨입니다.  그는 결코 귀족이 아니라, 그냥 Grand Bourgeois, 즉 앙시앵 레짐 (구 체제)를 지지하는 부유한 시민입니다.  현대어로 하면 보수우익 노친네정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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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내, 두 번째 아내는 그의 재산을 하도 잘 관리해서, 어느 날 그가 홀아비가 되었을 때, 질노르망 씨에게는 꼭 먹고살 만한 재산이 남아 있었는데, 즉 거의 전부를 종신 연금으로 예금함으로써 연수입이 1만 5천 프랑쯤 되었는데, 그 중 3/4은 그의 죽음과 함께 소멸되게 되어 있었다.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유산을 남기려는 배려는 별로 염두에 없었으니까.  더구나 그는 상속 재산에는 뜻 밖의 일이 일어나는 것을, 예컨대 그것이 '국가 재산'이 되는 것을 보았고, 제3 정리 공채의 변화를 목격했으며, 원장은 별로 믿지 않았다.  "캥캉푸아 거리의 은행 밖에 없지 않은가 !" 라고 그는 말했다.  피유 뒤 칼베르 거리의 집은 앞서 말했 듯이 그의 소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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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또 민음사 번역의 문제가 나옵니다.  아마 저 번역은 구글이 나오기 전인 수십년 전에 해놓은 번역 같아요.  저 제3 정리 공채 (tiers consolidé) 라는 것은 불어를 직역하면 그런 번역이 나오는데, 다른 영문판을 보면 이를 'consolidated three per cents'로 번역했더군요.  즉 원금 상환없이 영구적으로 3%의 이자를 주는 3% 통합 영구 채권를 말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통합 영구채인 'Consol'에 해당하는 채권인데, 아마도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었나 보지요 ?  또 원장(grand-livre)이라는 것은 Great Book of the Public Debt 로서, 국채 원장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캥캉푸아 거리 (Rue Quincampois)라는 것은 은행이 아니라, 나폴레옹 이전 시대에 파리 증권 거래소(Bourse)가 있던 거리 이름입니다.  즉, 국채 원장이라고 해봐야 증권 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유가 증권에 불과하다, 즉 못 믿을 물건이다 라고 비꼬는 것입니다.




(현대의 캥캉푸와 거리입니다.  현대의 파리 증권 거래소는 이곳이 아니라  Palais Brongniart에 있는데, 이는 나폴레옹이 지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질노르망 씨가 작은 2인승 마차라도 소유했다면, 1년에 6천 프랑을 그 유지비로 써야 했는데 (세금, 말 사료 값, 마차 수리비, 마부 임금 등등) 그건 자신의 1년 연금의 1/3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으니까, 당연히 질노르망 씨는 마차를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대체 500프랑이면 어느 정도의 액수이고, 1만 5천 프랑이면 또 어느 정도의 금액이었을까요 ?  현재 우리나라 원화 가치로 따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저는 확실히 속물이겠지요 ?


일단 당시 프랑 화의 가치에 대해서 어렴풋이나마 짐작하게 해주는 구절을 레미제라블 속에서 모아보았습니다.  가령 가정에 숙식하는 요리사의 월급은 50 프랑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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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지기 족속 같은 키다리로 거만한 요리사 하나가, 요리의 명수가 나타났다.  "월급은 얼마를 받고 싶은고 ?" 하고 질노르망 씨는 물었다.  "30프랑입니다."  "이름은 무엇인고 ?"  "올랭피라고 합니다."  "50프랑 주겠다.  그리고 이름은 니콜레트라고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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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우스가 외할아버지 몰래 자기 아버지 퐁메르시 중령의 무덤에 가서 슬퍼하는 장면의 삽화입니다.  마리우스는 결국 생전의 아버지는 한번도 보지 못했는데, 죽은 아버지를 도서관에 가서 신문 및 정부 보고서를 통해 찾아보고, 결국 보나파르트주의자가 되어 버리지요.  할아버지는 왕당파, 손자는 보나파르트주의자 내지는 공화주의자라... 요즘 한국 사회와 많이 비슷합니다.)




아버지 퐁메르시 중령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급작스럽게 보나르파트주의자가 된 마리우스는, 보나파르트나 혁명이라면 질색을 하던 보호자이자 외할아버지인 질노르망 씨와 양립할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버립니다.  마리우스의 변화에 분노한 외할아버지는 마리우스를 집에서 내쫓는데, 그러면서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던 외손자에 대한 정이 남아 있어서, 마리우스의 이모이자 자신의 딸인 질노르망 양에게 6개월에 60 피스톨을 보내주라고 하지요.  1 피스톨(pistole)은 10 프랑에 해당하는 옛 스페인 금화입니다.  그러니까 한달에 100 프랑, 1년에 1200 프랑을 보내주는 셈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한 생활비일까요 ?




(앙졸라도 알고 보면 부르조아 계급 출신입니다.)




마리우스가 집을 나와서 사귀게 되는 ABC의 벗들은 경제적으로 어떤지 살펴보면 그 답을 아실 수 있습니다.  일단 앙졸라(Enjolras)는 그냥 부자집 외아들이라는 것 말고는 자세한 신상에 대해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대충 먹고 살만 한 중산층 집안의 자제인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먹고 사는 문제로 궁핍한 흔적이 보이지 않거든요.  그 중 바오렐(Bahorel)의 부모는 농부인데, 그래도 꽤 규모가 있는 자작농인 모양입니다.  그 부모는 '법률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바오렐에게 1년에 3천 프랑의 생활비를 보내주었는데, 작가인 빅토르 위고는 이에 대해 '꽤 넉넉한 액수'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마리우스와 앙졸라, 그리고 앙졸라와 마주 보고 있는 그랑테르를 빼면 누가 푀이고 누가 쿠르페이락인지 전혀 못 알아보겠어요.)




다만 ABC의 벗들 중 유일한 노동자 계층인 푀이(Feuilly)가 1프랑의 가치를 말해줍니다.  그는 부채를 만드는 노동자인데, 원래 고아 출신으로서 일을 하면서도 독학을 해서 읽고 쓰는 것 뿐만 아니라 역사를 공부한 지식인입니다.  그는 하루에 간신히 3프랑을 벌었습니다.  노동자라고 해도 일요일은 놀았을테니, 기껏해야 한달에 75프랑을 벌었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1년이면 900프랑입니다.  놀고 먹는 바오렐의 3000프랑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액수이지요.


더 자세히 보시지요.  마리우스가 출판사 일을 하면서 가난하게 살 때, 그의 가계부를 작성해보았습니다.




(마리우스는 결국 집을 나가서 변호사가 되는데, 정작 변호사로서의 수입은 없고 출판사에 글을 써주면서 돈을 법니다.   애초에 친구인 쿠르페이락이 이 출판사 일을 소개해줄 때 '영어하고 독일어를 알아야 할 수 있는 일인데' 라고 하자, 마리우스는 겁도 없이 '배워서 하지 뭐' 하면서 도전해서, 결국 그 일을 따냅니다.)




대충 이러면 푀이의 생활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혼자서는 그럭저럭 먹고 살아도,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이지요.  참고로 마리우스가 저녁 식사를 루이 식당이라는 곳에 가서 매일 외식을 했다고 해서 그가 아직도 부자 시절을 못 잊고 된장남 생활을 하고 있다고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그의 집은 수도는 커녕 (당시 파리에 그런 거 없었습니다) 난로조차 없는 곳이라서 취사가 아예 불가능했거든요.  마리우스가 그 식당에서 어느 정도의 절약을 했는가 하면 '수프는 먹지 않고, 포도주 대신 항상 물을 마셨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마리우스가 원작에서도 미남으로 나오냐고요 ?  예, 앙졸라 만큼은 아니지만 지나가는 여자들이 힐끔힐끔 쳐다볼 정도의 아름다운 흑발 청년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그는 여자들이 자기를 쳐다보는 이유가 자신의 구멍난 셔츠와 팔꿈치가 헤어진 자켓 때문인줄 알고 부끄러워하지요.)




자, 저런 액수가 과연 현재 가치로 어느 정도에 해당할까요 ?  당시 1프랑의 현재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고려해야 할 요소가 금리며 인플레며 구매력 산업 생산성 등등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하지만 그냥 금의 가치는 영원하다고 가정하고 계산해보면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옵니다.  당시 루이 금화 (Louis d'Or)는 20프랑 짜리였는데, 당시 원칙은 그 금화를 녹였을 때 나오는 금의 양이 실제 그 금화 액면가와 동일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는 국가에서 주조한 금화는 그 신뢰성 때문에 더 높은 가치를 인정해주었습니다만, 여기서는 계산상의 편의를 위해 그냥 생략하겠습니다.)




(이것이 20프랑짜리 나폴레옹 금화입니다.)




당시 프랑스 화폐 단위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일단 프랑스 혁명 이전의 프랑스 화폐 단위는 크게 리브르 (livre = 20 sous), 수 (sou = 12 derniers), 데르니에 (dernier)로 나뉘었습니다.   프랑스어로 livre라고 하면 책이라는 뜻도 있지만 원래 영어의 pound에 해당하는 무게 단위입니다.  즉 1파운드 무게의 은에 해당하는 가치를 1 리브르로 정했던 것이지요.  이는 영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영국 파운드화의 기호가 P가 아니라 L 모양인 것입니다.) 




(설마 이 표시가 영국 파운드 스털링 화의 심볼이라는 거 모르시는 분은 없으시겠지요.)




그러다가 혁명 정부 들어서서 과거의 도량형을 바꾸면서 공식 화폐도 1795년에 프랑(franc = 100 centimes)과 상팀(centime)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회라는 것이 정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닌지라, 여전히 리브르나 수 라는 단위도 여전히 혼용되어 쓰였는데, 특히 리브르는 원래 프랑보다는 약간 더 큰 단위였습니다만, 그에 상관없이 1리브르 = 1프랑이라는 약간 부정확한 개념이 그대로 통용되었던 모양입니다.  원본에서는 어떤 경우에는 리브르, 어떤 경우에는 프랑이라는 단위를 썼는데, 제가 산 민음사 레미제라블에서는 그런 구분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원본에서는 리브르라고 쓴 경우에도 그냥 무조건 프랑으로 번역을 해버리는 바람에, 1프랑=20수의 개념이 계속 나옵니다.  실제로도 리브르나 프랑이나 큰 차이가 나는 것은 아니니까, 여기서도 그냥 그렇게 1리브르=1프랑이라고 가정하겠습니다.


흔히 나폴레옹을 군사적 천재로만 받아들입니다만, 사실 나폴레옹은 오늘날 프랑스, 더 나아가 유럽 전체의 기틀을 닦은 사람으로서, 오늘날 위인전에 올라가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진짜 위인입니다.  아우스터를리츠나 예나, 마렝고 등의 승전보다도 오히려 더 프랑스를 빛낸 나폴레옹의 업적은 바로 나폴레옹 법전의 편찬, 고등학교인 리세(lycee) 제도의 확립, 그리고 프랑스 중앙은행의 설립입니다.  그 중 프랑스 중앙은행은 영국의 영란은행을 본 뜬 것이라서 비록 창의성 면에서는 떨어지므로, 나폴레옹의 2대 업적에서는 빠집니다만 나폴레옹이 몰락하고 부르봉 왕가가 복위한 이후에도 나폴레옹이 이룩한 이 제도들은 그대로 이어졌던 것을 보더라도, 그의 위대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덕분에 총재 정부 시절 아시냐 지폐의 실패로 인해 하이퍼 인플레를 겪던 프랑스의 재정난은 안정을 되찾았고, 프랑스의 인플레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도 매우 안정적이었습니다.  즉, 1810년 경인 나폴레옹 당시의 물가나 1832년 경인 레미제라블 시대의 물가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이야기지요.




(위 표가 연도별 금 1 온스의 가격입니다.  금 가격이 이렇게 상상을 초월하게 뛰게 된 것은 1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대공황 때부터 좀 이상하더니 1970년 경에 미국이 금태환 제도를 포기하면서부터였습니다.  그때 이후 금값은 그야말로 폭등을 거듭했는데, 사실 금값이 올랐다가 보다는 화폐가치가 떨어진 것이지요.)




덕분에 당시 나폴레옹 금화로부터 쉽게 당시 1프랑의 가치를 현재 대한민국 원화로 환산이 가능합니다.  40프랑짜리 나폴레옹 금화 1개 속에 들어있는 금의 양은 11.614g, 20프랑짜리 나폴레옹 금화 1개 속에 들어있는 금의 양은 5.801g 이었습니다.  현재 금 1g의 가치를 원화로 대략 56,000원이라고 보면, 레미제라블 시대의 1프랑은 현재 우리 원화로 약 16,000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ABC의 벗들 중 푀이의 한달 월급은 약 120만원이고, 바오렐이 넉넉하게 써대던 1년 생활비는 약 4,800만원이었던 것이지요.  더불어, 질노르망 씨가 외손자 마리우스에게 '최저 생계비'로 주려고 했던 돈은 대략 연간 1,920만원 정도였습니다.  아울러, 졸지에 이름이 니콜레트로 바뀌어야 했던 질노르망 씨 요리사의 월급은 80만원인 것이었지요.  (하긴 니콜레트는 그 외에 숙식 제공이 되었으니까...)  그리고 마리우스가 가난하게 살 시절 매일 저녁 루이 식당에서 먹었던 조촐하지만 푸짐했던 저녁 식사의 가격은 1만2천8백원 정도였습니다.  조촐했던 빵과 날계란 점심값은 3200원 꼴이었고요.  그러니까 1년에 식비로 584만원을 쓴 것이고, 그에 비해 1년 피복비는 겉옷 속옷 다 합해서 240만원 정도 되는 셈입니다.  현재 여러분의 사정과 비교했을 때 대략 어떤가요 ? 




(이 사진은 본문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앙졸라가 부르는 Red - Black의 가사 중에서 사랑에 빠진 마리우스에게 이런 말을 하는 부분이 있지요.  - Who cares about your lonely soul ? )




자, 그럼 여기서 좀더 속물스러운 분들께서 솔깃해하실 이야기를 해보지요.  질노르망 씨는 살고 있는 집을 제외한 남은 재산 전부를 종신 연금으로, 그것도 본인 사망시 3/4이 소멸되는 '일부 상속형' 연금 상품으로 다 가입해 놓았고, 그래서 연간 15,000 프랑의 수입이 있다고 했습니다.  원화로 따지면 연간 2억 4천만원입니다 !  충분히 부자집인 거지요.  그런데 이렇게 풍족한 연금이 나오려면 대체 원금은 얼마였을까요 ?


그에 대한 설명이, 놀랍게도 레미제라블 본문에서 어느 정도 나옵니다 !  바리케이드 사건이 끝나고, 모두가 화해를 한 뒤에, 질노르망 씨에게 코제트가 장발장과 함께 와서 인사를 하지요.  질노르망 씨는 코제트의 아름다움과 천진함에 반해서 참으로 예쁜 아이라고 칭찬을 하다가, 문득 그녀의 손을 잡고 우울해 합니다. 


"참으로 유감이구나 !  내가 그것을 생각하니 !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반 이상은 종신연금이니, 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그래도 아직 괜찮겠지만, 내가 죽은 뒤에는, 지금부터 이십 년쯤 후에는, 아 ! 내 가엾은 아이들아, 너희들은 무일푼이 될 것이다 !  당신의 아름다운 흰 손도, 남작 부인, 생활이 궁하여 일을 해야 할 거요."



이때 장발장이 마들렌 시장으로 일하면서 모아두었던 돈 58만4천 프랑을 코제트의 지참금으로 내놓습니다.  현재 가치로 93억4천만원 정도입니다 !!! 




(자기야, 이제 우린 폈어 !  우리 아버지가 나 몰래 감춰두신 재산이 90억이 넘는대 !)




아마도 마리우스는 이 돈으로 자기 외할아버지처럼 종신연금을 넣은 모양이에요.  나중에 장발장이 자신이 사실은 전과자이며, 그래서 떠나겠다고 하자, 마리우스는 못 이기는 척 허락하면서도, 장발장이 준 그 지참금에 대해서도 꺼림직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면서 마리우스와 코제트와 한 대화가 코제트의 입을 통해서 나옵니다.  


"코제트, 우리는 3만 리브르의 연금을 가지고 있어.  2만7천은 네가 갖고 있는 것이고, 3천은 할아버지가 주시는 거야.  너는 그 중 3천 리브르만으로 살아갈 용기가 있겠니 ?"


(민음사 레미제라블 제5편 424페이지에는 '너는 이 3만 프랑으로 살아갈 용기가...' 라고 되어 있는데, 이거 오타입니다.  원본을 확인했는데, 3천이 맞습니다.  단위도 리브르이고요.)




(마리우스가 코제트에게 '그 중 3천 리브르만으로 살아갈 용기가 있겠니 ?' 라고 물었을 때 코제트의 대답은 무엇이었을까요 ?  "물론.  난 너만 있으면 돼.")




즉 마리우스는 장발장이 준 지참금은 범죄에 연관된 돈이라고 의심하여, 가급적 그 돈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이지요.  아무튼 여기서 실마리가 나옵니다.  즉, 58만4천 프랑으로 연 2만7천 프랑의 연금이 나오는 것이지요.  원금이 워낙 컸으므로, 아마도 원금은 그대로 보존하는 상품에 가입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연 수익률이 4.62%에 해당하는 연금 상품에 가입한 것입니다.  실제로 1830년대의 프랑스 금리는 대략 4% 정도였으니까, 연금 상품에 가입했다면 저 정도의 금액이 나오는 것이 맞습니다.   


저처럼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40대 가장의 입장에서는 3만 프랑은 고사하고 1년에 3천 프랑, 그러니까 연간 4800만원의 연금만 있다고 해도 목구멍에서 수건 짜는 소리가 들릴 만큼 부러운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저도 항상 어떻게 돈을 모으고 어떻게 돈을 굴려야 제 가족이 생활비 걱정 안하고 살 수 있을까 하고 궁리하고 고민합니다.  물론 그런 고민도 돈이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크게 나누면 수익형 부동산에 투자하느냐 연금을 택하느냐 펀드 같은 것에 투자하느냐 그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질노르망 씨나 마리우스 부부는 종신 연금을 택한 것 같아요. 



 

(근데 자기야... 이거 연 4.6%가 과연 최선일까 ?  인플레 헷지는 어떻게 하려고 ?)




그런데 종신 연금이 답일까요 ?  글쎄요,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질노르망 씨가 살던 시대에는 금본위제도 덕분에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인플레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매우 안정적이었습니다.  즉, 금리보다 물가인상률이 훨씬 낮았던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10년 20년 후에도 동일한 금액의 연금이 나온다고 해도, 걱정할 것이 없지요.  그러나, 지금 받는 100만원의 돈 가치가, 10년 20년 후에는 지금 가치의 절반으로 떨어진다고 하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지금 우리나라 금리가 매우 낮은데, 물가는 원유나 곡물 등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인해서 계속 오르고 있지요.  실질적인 마이너스 금리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에는 연금은 아무래도 답이 아닌 것 같아요.  연금이 물가 인상율과 맞물려 계속 증액되는 구조라면 모를까...  그런데 그런 상품은 아직 못 본 것 같습니다.  이래저래 욕을 먹는 국민연금 빼고는요.




(물론 단기적인 인플레야 꽤 있었습니다만, 레미제라블 시대인 저 1800 ~ 1840 사이에 실제 인플레는 매우 낮았습니다.  그에 비해 금리는 4~5% 수준이었지요.  저 시대에는 정말 종신 연금이라는 것이 안전한 투자 수단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다시 마들렌 시장, 그러니까 장발장에게로 관심을 되돌려보시지요.  장발장은 코제트와 함께 파리에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적선을 하며 '착한 삶'을 산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수양 딸인 코제트에게 무려 60만 프랑에 가까운, 즉 90억원이 넘는 거액을 증여해주었네요 !!  이건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살라는 레미제라블 정신에 좀 어긋나는 것 아닌가요 ?  생각해보면 팡틴느의 비참한 최후도 장발장의 탓이 될 수 있습니다.  애초에 팡틴느에게 충분한 급여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팡틴느는 직장을 잃으면서 곧장 나락으로 추락한 것이니까요.  결국 장발장은 우익 보수층이 더 좋아해야 할 인물 아닐까요 ?




(실제로도 팡틴느는 처음에 장발장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 때 그 얼굴에 침을 뱉습니다.  자기가 이 모양이 된 것이 장발장이 자기를 내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하지만 장발장이 그녀를 불미스러운 사생활을 이유로 내보내면서 규정에도 없는 퇴직금 조로 50프랑을 준 것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글쎄요.  우익이건 좌익이건 다 집어치우고, 이런 점을 생각해보시지요.  장발장은 그 유리 공장을 운영하면서, 라피트 은행에 자기 명의로 무려 63만 프랑의 금액을 예금했습니다.  이 돈이 결국 나중에 코제트에게 돌아가게 되지요.  하지만 장발장은 63만 프랑을 예금하면서 동시에, 지역 사회인 몽트뢰유 시의 빈민들을 위해 무려 100만 프랑 이상을 썼습니다.  일단 빈민을 위한 병원을 세우고, 빈민가 소년 소녀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당시 프랑스에는 아예 그 개념 자체가 희미했던 탁아소를 세우고, 무료 약국을 세웠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가난했던 그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이 가장 큰 선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바로 잡는 일 중에는 저렇게 정치 운동을 벌이고 바리케이드를 쌓는 것도 있겠지만, 공장을 세우고 사람을 고용하여 사람들이 누군가의 자선에 의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힘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만드는 것'도 있습니다.)




특히 그런 일자리가 새로운 기술 혁신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그건 정말 인류 전체에 대한 공헌이라고 할 수 있지요.  영화에도 잠깐 나옵니다만, 장발장이 죽기 전에 코제트에게 읽어보라고 주는 편지가 나오지요.  영화 속에서는 그 편지가 '증오심으로 살다가 너를 맡게 되면서부터 사랑으로 살게 된 사람의 이야기'라고 나오지요.  뮤지컬의 대사는 '코제트 너를 항상 사랑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실제 원작에서는, 그 편지는 코제트에게 주어진 지참금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해명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장발장이 어떤 기술 혁신을 이룩했고, 그로 인한 수익금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그러니까 그 돈은 정직한 것이니 부디 마리우스와 코제트가 그 돈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내용이 들어있었지요.  알고보면 장발장은 스티브 잡스였던 셈이지요.  이 정도 되는 인물이 자기 수양 딸에게 60만 프랑을 물려준다고 해서 누가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  어떻게 보면 정말 장발장이야 말로 진정한 보수 진영의 영웅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부자들에게 세금을 깎아줘야 서민들의 삶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가짜 보수들 말고) 이런 진짜 보수 인사들로 가득 차있다면 정말 우리나라는 행복한 나라가 되겠지요.




(장발장은 므슈 포슐르방으로서 코제트에게 베푼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마들렌 시장으로서 몽트뢰유 시의 빈민들을 위해 베풀었습니다.)




팡틴느의 몰락은 장발장이 박봉을 주었기 때문 아니냐고요 ?  애초에 팡틴느가 몰락했던 것은 사실 팡틴느가 고향 마을에 되돌아 왔을때, 시작부터 가구 등을 들이느라 빚을 지고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마들렌 시장, 그러니까 장발장의 공장에 취직했을 때 생각보다 급료가 괜찮았으므로, 팡틴느도 '이젠 살아갈 수 있겠다' 라고 판단하여 마음을 놓고 과감히 빚을 졌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덜컥 뜻하지 않게 직장을 잃게 되었는데, 빚이 있다보니 그 도시를 떠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 손바닥만한 도시에서 탕녀로 소문이 났으니 다른 일거리를 구하지도 못했지요. 




(사실 팡틴느가 몰락한 것은 같이 일하던 동료 여자들의 시기심과 천박한 호기심이 가장 큰 원인이었지요.)




그러니까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웬만하면 직접 들어가서 살 주택을 구입할 자금 외에는 빚은 지지 마세요.  빚은 부모님이 자유인으로 낳아주신 여러분 스스로를 노예로 만드는 못된 것입니다.   특히 갚을 수 없는 빚은 정말 그렇습니다.  요즘 자동차 살 때 할부로 사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요 ?  글쎄요... 예전 노예제 시절 사회에서나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나 중 진정한 자유인이 몇이나 되겠어요 ?  할부금 남은 자동차를 모는 청년은 노예이고, 그냥 버스를 타고 다니는 청년은 자유인인가요 ?  판단은 여러분 각자가 내리셔야지요.

전에 인터넷 게시판에 유머 글이 하나 올라온 걸 봤습니다.  '장발장이 훔친 빵' 또는 '장발장이 잘못했네' 라는 것이었지요.





(저도 이 게시물 보고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웃기쟎아요.)



(하지만 레미제라블에 원래 실렸던 삽화에 실린 그림은 위와 같습니다.  원작 소설에도 쇠창살이 쳐진 빵집 진열장의 유리를 깨고 빵을 훔쳤다고 되어 있으니 빵이 저 인터넷 그림처럼 클 리가 없지요.)




사실 장발장이 어떤 빵을 훔쳤는지는 레미제라블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혹시나 싶어 원문을 찾아봐도, 그냥 pain(빵)을 훔쳤다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저 영화 속 한장면의 사진 속에 나와 있는 빵은 설명 그대로, 깡파뉴 빵, 즉 pain de campagne가 맞아 보입니다.  불어로 pain이 빵이고 campagne는 country니까, 영어로 하면 그냥 country bread, 즉 시골 빵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 빵의 특징은 크다는 것입니다.  대략 무게가 작은 것은 4 파운드 (1.8kg), 큰 것은 12 파운드 (5.4kg)까지 나가니까 엄청나게 큰 빵입니다.  보통 식빵 1봉지가 500g 정도되니까, 왠만한 가족 하나가 며칠을 먹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로만 밀 브레드....  설명을 읽어보니 '고대 로마군 병사들이 하루에 1파운드의 밀빵을 먹고 건강을 유지했다'는 이야기에 따라, 통밀과 잡곡을 섞어 만든 1파운드짜리 빵이라고 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맛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집 식구들은 저 빼고는 그냥 흰 식빵을 더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당시 사람들은 왜 이렇게 큰 빵을 구웠을까요 ?  바로 오븐 때문이었습니다.




전에 연재하던 야매요리라는 네이버 만화 저도 즐겨보던 편인데, 거기 주인공인 야매토끼는 집에 오븐이 없어서 항상 '야매'로 전기밥솥이나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을 이용하지요.  제대로 된 가스 오븐은 부자집에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저 빵이 커진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 유럽 사람들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븐이라는 물건은 만드는데도 돈이 많이 들었고, 또 뭔가 구울라치면 연료가 우라지게 많이 들어가는 물건이었거든요.  옛날에는 휘발유나 가스, 전기를 쓴 것이 아니라 숲에서 나는 나무를 장작으로 썼으니까 공짜 아니냐고요 ?  유럽은 중세부터, 숲을 엄격하게 관리했습니다.  그래서, 영주의 허락없이 숲에서 잔나무가지라도 하나 꺾었다가 숲지기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아주 엄벌에 처해졌습니다.  그건 사실 이해가 가는 일인 것이, 그러지 않았다가는 순식간에 숲이 벌거숭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중세 영주들이 숲에서 허락없이 장작을 해가는 백성들을 처형하고 고문했던 것은, 숲보다는 그 숲에 사는 사냥감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주들은 숲에서 사냥을 하는 것이 낙이었는데, 숲이 망가지면 짐승들도 사라지거든요.   아무튼 그러다보니 연료를 아껴써야 하는 것은 당시가 요즘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습니다.




(중세가 아닌 1868년의 어느 영국 숲 입구에 걸린 검비 공작님의 경고문입니다.  밀렵꾼은 즉결 처분으로 총살에 처한답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집에서 빵을 구울 수 있는 집은 상당한 부자집이었습니다.  대개의 가정에서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발효까지 시킨 뒤, 그걸 마을에 있는 빵집에 가서 구워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중세 시대에 마을에 있는 빵집(bakery)은 빵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빵을 구울 오븐만 제공하는 마을 공동 오븐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다가 점차 도시가 형성되면서, 아예 빵집에서 완제품 빵을 팔기 시작하면서 빵집이 진짜 빵가게가 된 것입니다. 




(이런 마을에 빵집은 몇군데 ?)




근대 유럽 시대까지도, 도시가 아닌 다음에야 마을에 빵집은 1개 혹은 2개 정도 있는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과거 중세 시대부터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것인가 봅니다.  경쟁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폭리를 취하는 것도 아니었던 좋은 시절이었나 봐요.  그러다보니, 만약 동네 빵집에 뭔가 문제라도 생기면 마을 전체에 난리가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쌩떽쥐베리가 2차 세계대전 초반에 정찰기 조종사를 할 때 경험을 바탕으로 쓴 수필 '전시 조종사' (Flight to Arras, Pilote de guerre)에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나옵니다.  독일군이 침공해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순박한 시골 마을 사람들이 피난을 가야 할지 마을에 남아야 할지 의논을 하는데, 의외로 쉽게 결판이 나게 됩니다.  어떤 농부 아저씨가 토론장에 들어서면서 이렇게 외친 것이지요.


  "다들 피난을 가는 수 밖에 없게 되었어 !  빵집 주인이 피난을 가버렸거든 !"




(이 정찰기가 생떽쥐베리가 프랑스의 항복 전까지 몰았던 정찰기 Bloch 174 입니다.)




아무튼, 오븐을 빌려서 빵을 굽던 시절, 비싼 연료비 때문에 빵은 매일 구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또, 보통 한번 구울 때 여러집의 빵을 한꺼번에 구워야 했기 때문에, 작은 빵을 여러개 굽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같은 오븐에 집어넣은 다른 집들의 빵과 뒤섞이기 쉽쟎아요.   그러다보니, 되도록이면 크고 알흠다운 빵을 한번에 구워 며칠씩 두고 먹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 빵 3개는 순이네 꺼고, 저 빵 2개는 철수네 꺼고... 아니 저 빵이 철수네 꺼고 이 빵이 호섭이네 꺼든가 ?)




이렇게 구운 커다란 깡파뉴 빵, 즉 시골 빵은 대개 단단하고 수분도 적은 편이었습니다.  특히 며칠씩 두고 먹다보니 빵이 말라서 더욱 딱딱해졌지요.  가끔 옛날 영화보면 오븐에서 '갓 구운 빵'을 오븐에서 꺼내면 식구들이 좋아라하는 모습이 나오지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런 시골 빵에는 버터나 쇼트닝 같은 것을 안 썼고, 또 비닐 봉지도 없고 냉장고도 없었기 때문에, 하루만 지나도 빵이 마르고 딱딱해지기 쉽상이었기 때문에, 부드러운 빵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오븐에서 막 꺼냈을 때 뿐이었습니다.




(맛있어 보이나요 ?  강남 김영모 빵집의 비싼 빵과는 좀 맛이 다를 것 같습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저렇게 빵을 무식하게 크게 구울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빵집에서 제일 큰 빵이라고 해봐야 바게뜨 정도인데, 사실 바게뜨도 저런 시골 빵에 비하면 엄청나게 작은 것입니다.  실은, 바게뜨 빵이 나온 이유에 대해서 재미있는 전설(?)도 있습니다. 



(중국집 솜씨를 보려면 짜장면을, 빵집 솜씨를 보려면 바게뜨를 먹어보면 됩니다.)




전설치고는 너무 최근의 일인데, 1920년 전후로 프랑스의 노동법이 바뀌어 밤 10시부터 새벽 4시 사이에는 제빵사가 일을 해서는 안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저 깡파뉴 빵처럼 크고 둥근 빵을 새벽 4시부터 굽기 시작해서는 도저히 도시인들의 아침 식사 시간 때까지 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길쭉하지만 굵기는 얇은 바게뜨라는 것입니다.  저런 법이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바게뜨처럼 길쭉한 빵은 19세기 후반에 이미 널리 먹고 있었다고 하니까 이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에 불과합니다.  그나저나 프랑스의 저 노동법이 아직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같은 임금 노동자 입장에서는 정말 부러운 법이네요.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  





** 목요일엔 예전 다음 블로그에 썼던 글을 티스토리로 옮기고 있습니다.  이건 2013년에 썼던 글인데, 맨 마지막의 국내 도급이 시급하다는 말이 당시엔 절실했는데, 어느덧 주 52시간 근무제가 현실화되었네요.  세상은 발전합니다.  

미국이 잦은 총기 난사 사건을 겪으면서도 총기 규제를 하지 않는 표면적인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헌법 수정 제2조(The Second Amendment)입니다.  대개 이 조항이 미국 시민이 총기를 소유할 수 있는 불가침적인 권리에 대한 이론적 기반을 준다고 하지요.  그런데 최근 그런 해석은 틀린 것이며, 헌법 수정 제2조는 시민들에게 총기 소유 권리를 주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 실린 기사를 읽었습니다.


https://www.marketwatch.com/story/what-americas-gun-fanatics-wont-tell-you-2016-06-14


원래 수정 제2조는 아래와 같습니다.  


"A well regulated Militia, being necessary to the security of a free State, the right of the people to keep and bear Arms, shall not be infringed."

(잘 정비된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 정부의 안보에 필수적이므로, 인민이 무기를 소지하고 휴대할 권리는 침해될 수 없다.)



위 기사의 주장에 따르면, 헌법 수정 제2조에서 보장하는 것은 주 정부의 안보일 뿐 개인의 총기 소지가 아니며, 그 핵심은 연방 내에서의 각 주 정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well regulated Militia'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해당하는 현대적 조직인 National Guard가 이미 주 정부마다 유지되고 있으므로 개인의 총기 소지는 규제할 수 있다는 것이고요.   여기서 말하는 National Guard는 보통 주방위군이라고 번역되는데, 이는 예비군과는 또 다른 개념으로서 우리나라에는 없는 개념입니다.  미국의 National Guard는 대부분 따로 생업이 있으나 파트타임으로 급여를 받고 주방위군에서 복무하는, 일종의 민병대 병사들이니까요.  미국 주방위군의 경우 대부분은 민간 생업에 종사하지만 5년 복무 기간 중 1년은 현장에 배치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하더군요.


National Guard라고 불리는 이런 희한한 조직의 시초는 프랑스 대혁명 때 만들어진 'Garde Bourgeoise'(시민방위군)입니다.  이는 원래  국민을 탄압하는 국왕의 군대에 대항하여 시민들이 만든 무장 경비대로 탄생한 것이었는데, 곧 혁명과는 무관하게 다른 유럽 국가로도 전파됩니다.  국민 개병제에 의해 전례없이 대규모의 병력이 동원되던 나폴레옹 전쟁 동안 프랑스의 압도적인 병력에 고전하던 오스트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들이 그 제도를 본떠 Landwehr 등의 이름으로 유사 조직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유럽에서의 National Guard는 국민방위군이라고 보통 번역하는데, 레미제라블 소설에도 나옵니다.  




2012년 영화 레미제라블에서는 일부 생략된 부분입니다만, 흔히 'ABC Cafe'라고 불리는 노래에서 앙졸라가 친구들과 무장봉기를 모의하며 부르는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The time is near

So near it's stirring the blood in their veins!


때가 가까왔다

혈관 속에 피가 들끓을 정도야


And yet beware

Don't let the wine go to your brains!


하지만 신중해야해

아직 승리에 도취할 때는 아니지


For the army we fight is a dangerous foe

With the men and the arms that we never can match


우리가 싸울 군대는 위험한 적수야

그들의 병력과 무기는 우리가 상대할 수조차 없어


It is easy to sit here and swat 'em like flies

But the national guard will be harder to catch.


여기 앉아서 말로만 그들을 파리처럼 때려잡는 건 쉽지

하지만 '국민방위군'은 파리보다는 잡기 어려워


We need a sign

To rally the people

To call them to arms

To bring them in line!


우리에겐 필요해

민중들을 모을,

그들이 무기를 들고 일어설,

그들을 규합할 신호가 !




(Red & Black 바로 전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이 노래 가사를 들어보면, 앙졸라와 그의 친구들이 무력으로 맞싸울 상대는 경찰도 프랑스 육군도 아닌 '국민방위군'라는 존재입니다.  대체 국민방위군이라는 것은 어떤 군대였을까요 ?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면 장발장이 마리우스와 앙졸라가 있는 바리케이드로 찾아갈 때, 길바닥에 쓰러진 정부군 병사의 옷을 벗겨 그 옷을 입고 정부군의 포위망을 뚫고 가는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약간 다르게 나옵니다.  즉, 원래 장발장이 '국민방위군' (la Garde Nationale, National Guard) 소속인 관계로, 집에 있던 자기 군복을 입고 자기 소총을 들고 바리케이드로 찾아가는 것으로 나오지요.  또 당시 나이가 60대였고 도망자 신분이라서 주민등록번호도 없었을 장발장이 국민방위군 소속이라는 것이 가능했을까요 ?  이건 빅토르 위고가 설정상의 실수를 한 것 아닐까요 ?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예, 아니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한 이후, 외국과의 전쟁을 위해 1798년 징집제를 실시한 것이 근대 유럽 사회에서 최초의 징집제였습니다.  물론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군 입대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앞니를 뽑는 등 온갖 방법을 다써서 군대를 빠지려고 했지요.  당시 머스켓 소총을 장전할 때는 종이 탄약포를 앞니로 물어 뜯어야 했으므로 앞니가 없으면 병사 노릇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징집제가 바탕이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부르봉 왕가가 복위한 이후 전쟁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징집제는 철폐되었고, 다시 혁명전처럼 모병제에 의한 지원병들 그리고 스위스 및 독일 용병들로 군대를 채웠습니다.  그래서 마리우스나 앙졸라 등 당시 프랑스 젊은이들은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당시 그런 정규군 사단은 시내, 특히 파리 시내에 주둔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어차피 군대라는 것은 외국군에 맞서기 위한 것이니까 국경 부근에 주둔하는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파리 시내에는 주로 외국 용병들로 이루어진 왕실 근위대 정도만 있었지요.  하지만 파리 등 주요 도시에서도 경찰력만으로는 감당이 안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폭동과 혁명이었지요.  그런 사태를 대비하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국민방위군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국민방위군이란 일종의 예비군 같은 것으로서, 평소에는 민간인 생활을 하다가 폭동이나 내란 같은 비상 사태에 소집되어 질서를 유지시키고 지역을 방위하는 군대였습니다.  원래는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 때의 무질서를 제어하기 위해, 주로 중산층 시민들이 자원병으로 나서서 결성된 조직이었습니다.  민병대와는 달리 제대로 된 군복도 갖추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이 겉으로 봐서는 정규군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 군대였지요.  이런 국민방위군에도 장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국왕이나 시장에 의해 임관되는 것이 아니라 동료 방위대원에 의해 선출되었습니다.  이런 국민방위군은 평상시 해당 지역의 방위에만 활용되었고 또 평상시 집에서 먹고 자고 생업에 종사했습니다.  주로 하는 일은 순번을 정하여 시청 등 공공 건물에서 경비를 서는 일이었습니다.  왜 중산층들만 이 조직에 끼워주었냐고요 ?  원래 하층민들은 사실 지킬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입니다.  중산층 이상되는 양반들만 사실 지켜야 할 재산이 있으므로 스스로 총을 들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또 중산층 이상만 끼워줄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총과 군복도 자비로 마련했기 때문에, 애초에 재산이 어느 정도 있지 않으면 참가 자체가 불가능했습니다.  또 그렇게 자비로 마련한 소총이다보니, 평소 그 보관도 무기고가 아니라 각자 자기 집에 보관했습니다.  이 점이 나중에 격동기 프랑스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위는 레미제라블 당시 인물인 르느와르 (Philippe Lenoir, 1785-1867, 그 유명한 르느와르 아님)라는 화가의 국민방위군복을 입은 모습입니다.  아래는 1870년 당시의 국민방위군의 모습입니다.)




이미 노년이었던 장발장이 국민방위군에 들어가게 된 사연도 레미제라블 원작 소설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1831년 파리에서 인구 조사를 실시했는데, 플뤼메(Plumet) 거리에 살고 있던 장발장도 거기에는 응해야 했던 것입니다.  장발장은 이때 이미 60세가 넘었으므로 법적으로 면제될 수 있었으나, 장발장은 나이를 50대로 속이고 국민방위군의 소집에 일부러 자원합니다.  국민방위군 소속이라는 것은 건실한 중산층 시민이라는 반증이 되는 것이었거든요.  그 댓가로는 1년에 3~4번 소집되어 시청에서 보초를 서는 것이었으니 도망자 신분으로서 최대한 자신을 일반인으로 꾸며야 했던 장발장으로서는 남는 장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앙졸라가 무장 봉기를 일으켰을 때, 장발장은 국민방위군 소집령에 응하여 그를 진압하러 가야 했습니다.  물론 이때는 테나르디에의 습격을 경찰로 오인한 장발장이 이미 플뤼메 거리의 집을 버리고 도망친 상태였기 때문에 그에게는 소집 영장이 닿지 않았겠지요. 




(이보게 친구들, 진정하게. 영화와는 달리 사실 이거 내 군복에 내 총이라네.  훔친 것이 아니라네.)



프랑스 정규군의 주력 부대는 대부분 지방에 주둔했기 때문에, 루이 필립 시대에 잦았던 폭동과 무장 봉기를 진압하는 것은 주로 이 국민방위군의 몫이었습니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그 구성원들의 출신 때문에라도, 국민방위군은 서민들의 편이라기보다는 주로 중산층 시민 계급(부르조아)의 편이었습니다.  가령 1793년, 총재 정부가 선거법을 교묘히 조작하여 자신들의 권력을 굳히려 하자, 1795년 10월 5일, 약 3만명에 달하는 파리 시내의 국민방위군은 이에 반발하여 입헌군주제를 지지하는 왕당파 편으로 돌아섭니다.  이때 파리 시내에서 총재 정부를 지지하는 정규군 병력은 고작 5천에 불과했습니다.  이 6대1의 불리함을 간단히 극복하고 국민방위군을 포병대로 산산조각낸 불세출의 영웅이 바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였지요.  




(미친개에게는 몽둥이를 !  반란군들에게는 대포알을 !   보나파르트 장군에게 자비란 없습니다.)




나폴레옹과 국민방위군의 관계는 이렇게 시작부터 좋지가 않았습니다.  당연히 나폴레옹은 국민방위군을 믿지 않았지요.  나중에 1809년과 1814년에 잠깐 소집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부르봉 왕가가 복위하면서 징집제를 폐지한 뒤에는 부족한 병력을 보완하기 위해 이 국민방위군 제도가 재활성화되었습니다.  하지만 부르봉 왕가의 정치가 점점 '절대 왕정'으로 퇴보하는 방향으로 향하자, 부르조아 시민층의 왕정에 대한 감정이 악화되었고, 이런 움직임은 샤를 10세로 하여금 국민방위군이 유사시 왕정에 대한 강력한 위협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  그래서 1827년, 샤를 10세는 국민방위군을 해체시켜 버립니다.  하지만 이때 샤를 10세는 실수를 하나 저지릅니다.  국민방위군 조직만 해체했을 뿐 국민방위군이 가지고 있던 무기류는 압수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실은 압수할 근거가 없었던 것이, 그 소총과 탄약 등은 국가에서 지급한 정부 자산이 아니라 중산층 출신인 국민방위군 병사 개인이 사비로 구입한 사유물이었던 것이지요.  결국 불과 3년 뒤 터져나온 1830년 7월 혁명에서, 거리로 뛰어나온 수많은 부르조아 시민들의 손에는 국민방위군 시절 사용하던 머스켓 소총이 들려 있었던 것입니다.




(1830년 7월 혁명 당시 전투 모습입니다.  "여기가 미국도 아닌데 민간인들에게 왜 이렇게 총이 많은거냐 ?")



1830년 7월 혁명 이후 세워진 오를레앙 가문의 루이 필립 1세는 그러니까 사실 온건한 입헌 군주제를 원했던 부르조아 시민들이 세운 왕이었습니다.  따라서 앙졸라가 이끄는 'ABC의 벗들', 즉 과격 공화파가 일으킨 1832년 6월 봉기는 부르조아 시민들이 그다지 원하지 않는 사건이었고, 따라서 국민방위군은 이 봉기를 적극적으로 진압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루이 필립의 정치가 점점 도시 부르조아 시민들의 이익에서 멀어지게 되자, 결국 터져나온 1848년 2월 혁명 때는 국민방위군은 혁명을 지지했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19세기 초반 혁명의 시대에는 국민방위군의 민심이 프랑스의 왕권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렇게 병사들이 진압은 안하고 'Do you hear people sing' 노래를 부르면서 시위대와 함께 행진하면 독재자에게는 큰일 나는 거에요.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셰스쿠도 그렇게 죽었지요.)




제 지난 글을 읽어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저는 항상 모병제보다는 징집제를 지지하는 편입니다.  (다만 현재의 노예같은 군대 생활은 결사 반대입니다.  징집된 군인들의 생활 환경과 급료는 미군 수준까지는 아닐지라도, 지금보다는 대폭 향상되어야 합니다.)  그 주된 이유는 제가 진보 좌익인 척 하는 보수 우익이기 때문입니다.  군대는 반드시 국민 대다수와 이해 관계가 같아야 합니다.  스파르타나 로마가 강했던 것은 소규모 자작농이 곧 정규군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파르타의 사회주의적 경제체계가 무너지고 그에 따라 스파르타 시민들이 부자와 빈민으로 나뉘게 되면서, 또 로마 공화정의 군대가 마리우스나 술라, 케사르나 폼페이우스 개인을 따르는 직업 군대로 변모하면서부터 그 몰락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로마의 군단병들은 원래 자작농들로 구성된 시민병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직업 군인화되면서 특정 장군을 따르는 사병화되는데, 그런 변질의 시초는 일반적으로 킴브리족을 격파한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군사 개혁이었습니다.)




당장은 더 훈련이 잘되어 있고 더 전문적인 전투원으로 구성된 모병제가 더 효율적이고 더 강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병제는 필연적으로 그 사회 중산층과 군대의 사이를 벌어지게 합니다.  중산층 출신 자제 중에서 군대로 가는 비율은 매우, 매우 적은 것이 정상이니까요.  그리고 그런 점은 그 사회의 정치 안정성을 크게 떨어지게 합니다.  지켜야 할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로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게 하는 것이 그다지 현명한 일 같지는 않거든요.  미국이나 유럽처럼 민주주의 제도가 확고히 자리잡은 나라에서는 어떨런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박통에 의한 쿠데타나 전땅크에 의한 쿠데타가 그리 오랜 옛날 이야기가 아닌 사회, 그리고 광주사태가 아직도 북괴의 공작에 의한 무장 반란 사건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떠벌여질 정도로 성숙하지 않은 사회에서는 모병제는 아직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대한민국처럼 사회 지도자 계층에서 군대 제대로 마치고 온 아들 찾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은  정말 우려스럽습니다.  그런 거 보면 진짜 우리나라에는 보수는 거의 없어요.  그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욕심꾸러기들을 사회 지도층으로 모시고 사는 것 같습니다.




(길거리에 젊은이들이 뛰쳐나오는 것이 문제라고요 ?  아닙니다.  그들이 뛰쳐나오도록 만든 사회 지도층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처럼 노인분들이 이스라엘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것을 보니 측은하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네요.)


2012년, 휴 잭맨 주연의 레미제라블 영화 중에 장발장이 미리엘 주교를 처음 만났을 때의 장면입니다.  은접시에 퍼주는 음식을 굶주린 장발장이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대체 저 음식이 무엇인지가 궁금했습니다.  화면을 보면 뭔가 고기도 좀 들어있는데 말입니다. 





그 음식이 당연히 원작 소설에 나오는 내용 그대로는 아닙니다만, 어떤 음식이 나왔는지는 원작 소설에 묘사가 되긴합니다.  장발장은 미리엘 주교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할 때 가정부 할머니인 마글루아 부인이 내놓는 미리엘 주교의 평범한 저녁 식사 메뉴가 나열됩니다.


Cependant madame Magloire avait servi le souper. Une soupe faite avec de l'eau, de l'huile, du pain et du sel, un peu de lard, un morceau de viande de mouton, des figues, un fromage frais, et un gros pain de seigle. Elle avait d'elle-même ajouté à l'ordinaire de M. l'évêque une bouteille de vieux vin de Mauves.


그러는 동안 마글루아 부인은 저녁을 차렸다.  물에 기름, 빵과 소금을 넣고 만든 수프, 돼지비계 조금, 양고기 한조각, 무화과, 생치즈, 그리고 큰 호밀 빵 한 덩어리였다.  마글루아 부인은 주교의 그런 평상시 식사에 모브 와인 한병을 보탰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프랑스에서 주교는 매우 높은 직책이고, 또 상당히 고액 연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미리엘 주교는 거의 대부분의 급료를 빈민구제에 써버리고, 정작 본인은 무척 소박한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기 때문에 저런 음식을 먹었던 것이지요.  저 소박한 음식 중에 특히 저의 흥미를 끌었던 것은 저 수프였습니다.  빵과 기름과 소금과 물만으로 만든 수프라니 ?  그게 무슨 괴이한 음식이란 말입니까 ?


그런데 그 빵 수프를 연상시키는 이야기가 레미제라블 속 장면보다 약 10년 전인 1809년, 나폴레옹 관련 기록에도 나옵니다.  1809년 나폴레옹이 비엔나를 점령한 뒤 그는 휘하 병사들 중 상당수를 비엔나 시내에 주둔시킵니다.  통상 이런 경우 병사들은 민간인들의 가정 주택에서 먹고 잤습니다.  그렇다고 병사들이 산적처럼 마음대로 아무 집에나 쳐들어간 것은 아니고, 병참 장교가 미리 조사한 결과에 따라 주택의 크기와 가정 형편, 그리고 그 집 가장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 어떤 집은 3~4명, 어떤 집은 10여명 씩 배정되었습니다.  이 점령군 병사들이 점잖은 비엔나 중산층 시민의 가정에서 깽판을 쳤을까요 ?  그런 일이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기본적으로 그럴 일은 없었습니다.  귀족이나 부유한 중산층 시민의 저택은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았고 또 그런 집에는 장교들이 배정되었기 때문입니다.  비엔나 시민들도 대부분은 서민이었고, 그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사회적 계급 출신인 프랑스 병사들을 먹이고 재웠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런 병사들과 피점령 시민들의 관계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비엔나식 돈가쓰인 슈니첼입니다.  드셔본 분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냥 우리나라 돈까스가 더 맛있다고...)



문제는 비엔나 시민들이 병사들에게 뭘 먹이느냐 하는 것입니다.  부잣집에 할당된 병사들은 유명한 비엔나식 돈까스(Wiener Schnitzel)와 맥주를 대접받고 가난한 집에 할당된 병사들은 말라비틀어진 빵과 물을 먹어야 했을까요 ?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현지 조달의 달인이라고 불리는데는 다 이유가 있고, 달인은 일을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병참부는 배고픈 병사들을 떠맡은 비엔나 시민들에게 '적어도 1인당 이 정도씩을 먹여야 한다'라고 의무 배식량을 정해서 통보했습니다.  그 목록은 다음과 같습니다.   



빵 1.33 파운드 그리고 추가로 수프에 넣을 빵 0.33 파운드

고기 1 파운드

쌀 0.125 파운드 (2 온스)

말린 채소 0.25 파운드 (4 온스)



여기서 눈에 확 띄는 부분이 바로 저 매일 먹을 빵 1.33 파운드 이외에 추가로 수프에 넣을 빵 0.33 파운드라는 부분입니다.  그냥 먹는 빵과 수프에 넣을 빵이 따로 있었을까요 ?  그리고 저 말린 채소라는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요 ?  게다가 비엔나에서 쌀을 요구했다고요 ?  그것도 고작 2온스, 즉 56그램 정도의 쌀로 뭘 해먹었을까요 ?  요즘 한국인들이 먹는 쌀밥 1공기를 짓기 위해 들어가는 쌀이 약 90그램인데, 한공기도 안되는 쌀인데 말입니다.  


저기서 말린 채소라는 것이 사실은 말린 콩을 뜻한다는 것을 아시면 대략 견적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냥 먹는 빵을 제외한 저 모든 재료는 결국 끓는 물 속에 들어가 뭔가 걸죽한 스튜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전에 올렸던 포스팅에서, 쿠아녜(Coignet)의 회고록 중 일부를 다시 보시면 좀더 분명해질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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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장에서 일하던 소년인 쿠아녜는 징집 명령을 받고 입대하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나는 작은 꾸러미를 겨드랑이 밑에 끼고 출발하여, 첫번째 군사 주둔지인 로조이(Rozoy)에 도착하여 밤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숙사 할당 명령서(ordre de cantonnement)를 받아다 집 주인에게 제시했는데, 집 주인은 날 본 척 만 척 하며 홀대했다.  그러고 난 뒤 난 뭔가 스튜를 만들 재료를 사러 밖에 나갔고, 푸주간에서 고기를 받았다.  내 손바닥 위에 올려진 고기 조각을 보니 몹시 처량했다.  그것을 들고와서 내 숙사로 정해진 집의 안주인에게 주며 스튜를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한 뒤, 스튜에 넣을 채소거리를 구하러 다시 밖으로 나왔다.  마침내 약간의 스튜가 만들어졌고, 그때 즈음에는 그 집 주인 식구들도 나를 어느 정도 좋게 봐주어 나에게 이런저런 말을 붙여보려고 했다.  하지만 난 그들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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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 글에서 보면, 고기는 분명히 돈을 내고 사왔는데, 양배추나 당근 등 채소류는 돈을 내고 사왔다는 것인지 밭에서 그냥 뽑아왔다는 것인지 불분명합니다.  로마 시대부터, 병사들에게 주어지는 배급 식량 목록에는 빵과 밀가루, 와인과 식초는 기록되어도 배추나 양파 등 진짜 채소는 전혀 기록이 없습니다.  이유는 그런 부식거리는 그냥 '구하는' 것이지 주요 보급품 목록에 넣을 정도로 중요 물품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있으면 넣고 없으면 말고 식이었지요.  또 당시 사람들은 채소를 그다지 많이 먹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전에 회사 교육 문제로 유쾌한 멕시코 친구 2명을 만나서 며칠간 잡담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 이야기가 멕시코는 원래부터 가난한 나라여서, 어디서 친구가 방문하러 오겠다는 전화가 오면 저녁을 만들던 와이프에게 이렇게 말을 하곤 했다고 반농담반진담으로 이야기를 하더군요.  


"여보, 콩 수프에 물을 더 부어야겠는걸 ?"


이렇게, 원래 수프라는 것은 적은 재료로 여럿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요리입니다.  게다가 솥 하나만 있으면 여럿을 위한 요리도 적은 연료로 쉽고 빨리 할 수 있었으므로 그야말로 군대를 위한 요리였지요.  그렇게 배고픈 사람들을 위한 요리가 콩소메(consommé)처럼 멀건 국물이라면 무척 실망스러웠겠지요.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이나 병사들은 국물을 뻑뻑하게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부재료를 넣었습니다.  있기만 하다면 하얀 밀가루가 제일 좋았겠지만 밀가루는 빵을 만들기에도 부족한 것이었고, 쌀이 가장 좋은 재료였습니다.   




(콩소메입니다.  요즘 고급 식당의 요리사들은 저런 콩소메의 국물을 맑게 하려고 계란 흰자를 쓰는 등 갖은 노력을 한다고 합니다.  정작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질색을 했겠지요.)



쌀은 국물을 잘 흡수하여 그 자체로도 맛이 풍부한 건데기가 될 뿐만 아니라, 전분을 국물에 풀어내어 국물을 진하게 만들어줬거든요.  지금도 치킨 수프 등에는 짧은 국수를 넣기도 하지만 쌀을 넣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삼계탕이 해외에 소개될 때는 스튜가 아니라 chicken soup으로 소개되는데, 닭과 쌀이 든 국물 요리이다보니 서양의 치킨 수프와 동일시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기들식의 간단한 chicken soup인줄 알고 삼계탕을 시켰다가 닭 한마리가 통째로 들어간 요리가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는 외국인들도 있다고 합니다.  





(Chicken soup with rice는 이런 거...)




원래 유럽에서 쌀을 가장 많이 먹는 지역이 스페인과 함께 북부 이탈리아 지역이지요.  덕분에 남부 프랑스에서도 쌀 요리를 꽤 먹었다는데, 아마 비엔나도 북부 이탈리아에서 멀지 않았으므로 쌀을 쉽게 구할 수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의 굶주린 병사들을 맞이한 비엔나 시민들에게 '쌀을 내놓으라'는 명령이 떨어졌겠지요.  


하지만 쌀은 유럽 전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곡물은 아니었습니다.  쌀이 없을 때 대용으로 사용되던 것이 바로 오래되어 딱딱해진 빵이었습니다.  당시 빵은 버터나 쇼트닝이 들어가지 않은, 갓 구운 상태에서도 꽤 딱딱한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구운지 2~3주가 지나거나 잘라 먹다 껍질부분이 남은 빵조각 남은 것들은 정말 딱딱했을 겁니다.  레미제라블 후반부에, 마리우스의 하숙방에서 노닥거리던 에포닌이 방을 나가면서 마리우스의 찬장에 놓여있던 마른 빵조각을 허락도 받지 않고 냉큼 입에 넣고 씹다가 너무 딱딱해서 이빨이 부러졌다고 투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꼭 과장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2012년 영화 속에 나온 에포닌은 아주 건강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레미제라블 원작 소설 속의 에포닌은 어린 나이에 이빨도 한두 개 빠진, 정말 헐벗고 병약한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게 훨씬 더 현실적인 이야기지요.)




그렇게 마르고 굳은 오래된 빵을 그나마 잘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수프에 넣어먹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빵 수프 요리는 주로 이탈리아에서 발달했습니다. 리볼리타(Ribollita)라든가 아콰코타(Acquacotta) 등이 모두 빵을 넣고 끓인 수프 요리이며, 하나같이 가난한 농부들이 먹던 음식이었습니다.  





(아콰코타입니다.  이탈리아식 빵 수프입니다.)



마른 빵보다 더 나쁜 것이 원양 항해나 군대에서 많이 먹던 비스킷, 즉 건빵이었습니다.  비스킷을 부수기 위해 돌로 내리치면 가끔씩 비스킷 대신 돌이 부서졌다는 그 공포의 비스킷으로도 수프를 만들어 먹었을까요 ?  예, 그렇게 많이 먹었습니다.  버구(burgoo)라는 것은 염장쇠고기와 잘게 부순 비스킷으로 만든 대표적인 영국 해군 요리(?)입니다.  그나마 부유한 함장인 잭 오브리(Jack Aubrey)를 주인공으로 한 Aubrey & Maturin 시리즈에서는 이 버구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만, 가난뱅이 함장이 주인공인 Hornblower 시리즈에서는 수병들 뿐만 아니라 함장실에서 혼블로워가 혼자 앉아 버구를 먹고 있는 장면이 종종 나옵니다. 


결국 미리엘 주교가 먹던 저 빵 수프라는 것은 결코 주교님이 드실 만한 음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소설 원작에서도 장발장이 '동네 짐마차꾼들이 이거보다는 더 잘 먹는다'라고 말할 정도지요.  미리엘 주교는 '그 사람들 일이 더 힘드니까요'라고 웃으며 말하는데, 장발장은 눈치도 없이 '그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돈이 더 많은 것 같은데요' 라고 팩트 폭력을 행사하지요.


이 빵 수프 이야기는 나폴레옹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1809년 7월 7일 밤, 바그람 전투를 승리로 마무리하고 지친 나폴레옹은 사령부로 마련한 농가 앞 짚단 위에 앉아 졸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장면은 당대 어느 유럽 군대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만, 당시 프랑스 군대에서는 종종 벌어지던 일이고, 그것이 바로 나폴레옹의 군대를 강군으로 만들었던 문화이기도 했습니다.  그 앞을 지나가던 어느 유격병(voltigeur) 상병 하나가 황제가 그렇게 지쳐 떨어진 것을 보고는 아무의 제재도 받지 않고 감히 말을 걸었습니다.  


"폐하, 우리가 끓인 수프라도 좀 드시겠습니까 ?"


그러자 잠에서 깬 나폴레옹도 짜증내지도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물었지요.  "잘 익었나 ?"


이 상병은 나폴레옹을 자기와 그 동료들이 끓여놓은 수프 남비 앞으로 데려갔습니다.  거기에는 잘게 부순 마른 빵조각(crouton)까지 넣어 아주 걸죽한 수프가 은으로 된 작은 단지에서 끓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걸 보고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대체 어디서 흰빵과 은단지를 구했나 ?  훔쳤나 ?"


그때 나폴레옹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서 까딱 잘못하면 그 상병은 약탈죄로 즉결처분에 처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상병은 아주 천연덕스럽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빵은 의무 마차에서 샀고, 은단지는 어느 죽은 장교의 몸에서 찾은 겁니다."


나폴레옹은 그 죽은 장교가 프랑스군이었는지 오스트리아군이었는지 묻지 않았고, 그렇게 나폴레옹과 상병 및 그 동료들은 고된 하루 끝에 든든한 저녁을 함께 즐겼다고 합니다.  





(보통 시저스 샐러드에 딸려 나오는 사각형 튀긴 빵조각을 크루통이라고 하지요.  그러나 원래 croûton이라는 단어의 뜻은 긴 빵의 껍질이 많은 양쪽 끝부분 또는 굳은 빵조각을 뜻하는 것입니다.) 




Source : Napoleon Conquers Austria: The 1809 Campaign for Vienna By James R. Arnold

Les cahiers du capitaine Coignet by Jean-Roch Coignet

Les Miserables by Victor Hugo

https://en.wikipedia.org/wiki/Acquacotta

https://en.wikipedia.org/wiki/Ribolli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