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17 06:30




Bernard Cornwell이 지은 Sharpe 시리즈는 1799년 영국군이 인도 중부 마이소르(Mysor) 지방을 침공하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그로부터 3년 정도의 안정기를 지나, 마이소르 지방의 수도인 셰링가파탐이 영국군의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인도 군주 하에서 안정화되자, 영국은 다시 더 북부의 마라타 연합이 지배하는 지역을 노립니다.  이런 식으로 영국이 인도 전체를 식민지화하는데는 무려 1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로버트 클라이브가 7년 전쟁 도중 플라시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무찌르고 인도에서 영국의 주도권을 확보한 것이 1757년이었으니까, 정말 오랜 세월에 걸쳐 야금야금 먹어들간 셈이지요.  인도 대륙이 정말 크긴 큰가 봅니다.  그래서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인 무렵, 영국은 아직도 인도 대륙 일부만을 장악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영국이 이렇게 인도라는 블루 오션을 아무 경쟁없이 야금야금 파먹어가는 동안, 나폴레옹은 해군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인도가 영국에게 있어 거저먹기인 블루 오션이었을까요 ?  그렇게 표현한다면 인도 사나이들을 너무 모욕하는 셈이지요.  당시 인도는 정말 수많은 소국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각 왕국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문물, 특히 군사 기술을 많이 받아들여 유럽식 무장을 상당히 갖춘 편이었습니다.  


영국은 이렇게 잘 무장된 왕국들을 때로는 무력으로, 때로는 이간질로 차례차례 각개격파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어쨌든 압도적인 숫자의 인도군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무기가 비슷하더라도, 영국군의 훈련 및 전술 전략이 우월했기 때문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훗날 웰링턴 공작이 되는 아더 웰슬리도 군 생활 초기는 인도에서 시작합니다.  아래 묘사되는 전투는 훗날 웰링턴 공작에게 누군가 '공작께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전투는 어느 전투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웰링턴이 망설이지 않고 뽑은 아사예 전투입니다.  여기서 웰슬리가 이끄는 영국 정규군 스코틀랜드 연대와 동인도 회사 소속의 세포이 연대들은 인도 중북부의 마라타(Maratha) 연합군과 혈전을 벌입니다.  이 전투의 묘사를 보면, 당시 보병과 포병이 어떤 식으로 전투를 벌였는지 실감나게 느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Sharpe's Triumph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03년 인도) -------------------------------------


스코틀랜드 연대는 이제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관목 그루터기를 짓밟으며 나아갔고, 이제 곧 언덕 능선을 넘어서면 또 다시 인도군 포병대에 노출되면서 대포 사격을 받게 될 것이었다. 인도 포병대에게 처음으로 관측되는 것은 두 개의 연대 깃발일테고, 다음으로는 말을 탄 장교들, 그리고는 붉은색, 흰색, 검은색으로 치장된 전체 연대들이 머스켓 소총에 장착된 총검을 햇빛에 번쩍이며 인도군의 시야에 들어갈 것이었다.


'그리고는 신의 도움이 필요할테지'라고 샤프는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앞쪽에 있는 망할 놈의 대포들은 그 사이에 모두 재장전을 마쳤을 것이고, 이제 표적물이 다시 시야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갑자기 첫번째 대포알이 바로 몇 발자욱 앞에 쾅하고 떨어졌다가 튕겨올라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고 머리 위로 넘어갔다.


"저 자식은 너무 일찍 쐈군." 바클리가 한마디 했다.


"이름을 적어 두지 그러나. (전투 중 잘못을 저지른 병사의 이름을 적어두었다가 체벌하는 관습에 대한 농담임 : 역주)"


샤프는 오른쪽을 보았다. 모두 세포이 용병으로 구성된 그 쪽 4개 연대는 아직 언덕 능선에 가려져서 대포의 포격으로부터는 안전한 사각지대에 있었고, 오록 대령의 초계병력과 제74 연대는 계곡 북쪽의 숲 속으로 들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하니스 대령의 스코틀랜드 연대가 가장 먼저 언덕 능선을 넘을 것이고, 적어도 한순간은 전체 적 포병대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될 것이었다. 몇몇 하이랜더(스코틀랜드인의 별칭 : 역주)는 마치 이왕 맞을 매를 빨리 맞겠다는 듯이 서두르고 있었다.


"천천히 !" 하니스 대령이 고함을 질렀다.


"이게 뭐 술집을 향한 달음박질인 줄 알아 ?  이 빌어먹을 놈들아 !"


엘시.  갑자기 샤프의 머리 속에 자기가 양조장 골목에서 도망친 이후 숨어들었던 웨더비 근처의 술집에서 일하던 여자의 이름이 떠올랐다.  왜 그 여자 이름이 기억나지 ? 그리고는 그 술집 내부의 광경이 떠올랐다.


'겨울비에 젖은 남자들의 코트에서 김이 올라오고, 엘시를 비롯한 여급들이 쟁반 위에 에일을 나르는 동안, 벽난로에서는 불이 타닥 소리를 내고 있겠지. 눈이 먼 목동은 술에 취했고, 개들이 식탁 밑에서 자고 있는 그 때, 내가 장교의 장식띠를 매고 칼을 찬 모습으로 그 검댕투성이 술집으로 걸어들어가는거야'


이런 상상을 하는 동안 샤프는 요크셔에 대한 것은 모두 잊어버렸고, 그 사이에 제778 연대는 웰슬리 장군의 참모진을 오른쪽에 끼고, 적 포병대의 코 앞의 평지로 올라섰다.


샤프가 우선 놀란 점은 적 포병대가 생각보다 굉장히 가까웠다는 것이었다.  저지대를 통과하는 동안, 제778 연대는 적 포병대로부터 150보 전방까지 접근해 있었다. 샤프가 두번째로 놀란 것은, 인도군이 정말 멋지게 정비가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적 포병대는 마치 검열을 받듯이 정열해 있었고, 그 뒤로는 인도 마라타 연합군의 연대들이 4줄의 밀집 대형으로 깃발 아래 정렬해 있었다.  샤프가 '아마도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생긴 모양이다'라고 생각할 때, 그 멋진 적군의 대형이 한꺼번에 모두 포연 속에 사라져 버렸다. 그 포연은 물결치듯이 밀려나왔는데, 그 속에서 불과 몇 야드 간격으로 포화의 번쩍임이 보였다. 쏟아져 나오는 포연 바로 앞의 곡식들이 포화의 바람에 휩쓸려 넘어지는 동안, 무거운 대포알들이 하이랜더들의 대오를 찢어놓으며 날아왔다.


사방에서 피가 튀었고, 박살이 난 병사들이 대살육 속에서 쓰러지거나 뒤로 휩쓸려 날아갔다. 어디선가 병사 하나가 가쁜 숨을 내쉬었지만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백파이프 연주병 하나가 다리가 날아간 채 쓰러진 병사에게 악기를 내던지고 달려갔다. 몇 야드 간격마다 죽거나 죽어가는 병사들이 뒤엉켜 쓰러져서, 전체 대열 중 어디를 대포알이 휩쓸고 지나갔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 젊은 장교가 놀라서 눈을 뒤집고 머리를 흔드는 자기의 말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니스 대령은 자기 앞에 창자가 터져나온 채 쓰러져 있는 병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자기 말을 그 옆으로 돌아가게 했다.  하사관들은 대열에 빈틈이 생긴 것이 마치 하이랜더들의 잘못이라는 듯이 화를 내며 곳곳에 생겨난 간격을 메꾸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갑자기 어색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웰슬리 장군은 옆을 보며 바클리에게 뭐라고 말을 했지만 샤프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는데, 그제서야 샤프는 적의 포격으로 자기의 귀가 멍멍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웰슬리의 예비마인 디오메드가 샤프의 손아귀로부터 고삐를 당기며 옆으로 가려고 했기 때문에, 샤프는 그 회색말을 다시 자기 쪽으로 당겨야 했다.  피 위로는 온통 파리떼가 들끓었다. 한 하이랜더가 자기를 놔두고 행진해 나가는 동료들을 보며 엄청난 욕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그 병사는 무릎과 팔꿈치를 땅에 댄 채 엎드려 있었는데, 겉보기에는 상처는 전혀 없어 보였지만, 샤프를 한번 쳐다보면서 마지막으로 욕 한마디를 지껄이고는 푹 쓰러져 버렸다.


병사들의 배에서 터져 흘러나온 퍼런 창자 위로 더 많은 파리떼가 모여들었다. 다른 병사 하나는 머스킷 소총을 멜빵으로 질질 끌면서 관목 그루터기 사이를 기어갔다.


"이제 침착하게 !" 하니스 대령이 외쳤다.


"서두르지마 이 자식들아 !  지금 달리기 경주하는 줄 알아 ?  니들 에미를 생각해 !"


"에미 ?"  블래키스턴 소령이 물었다.


"간격을 메워라 !" 하사관 하나가 외쳤다.  "간격을 메워 !"


마라타 포병대는 미친 듯이 재장전을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보통의 쇠로 된 포탄이 아니고 속에 소총탄이 가득 든 깡통으로 된 산탄을 준비하고 있었다.  포연이 산들바람에 걷히고 있었고, 샤프의 눈에 포구를 쑤시며 화약을 운반하는 적병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다른 적병들은 아까의 포격으로 뒤로 밀려갔던 포신들을 지렛대로 다시 스코틀랜드 연대에게 조준하고 있었다.


웰슬리는 그의 숫말이 하이랜더들의 대열 앞에서 너무 멀리 나아가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세포이 용병들은 아직 언덕 능선 밑의 사각지대에 있었고, 우익은 북쪽의 숲과 구릉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순간에는 하니스 대령의 하이랜더들 600명이 10만 명의 인도 마라타 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인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부상자와 전사자를 뒤에 내버려두고 자기들의 죽음을 장전한 채로 기다리는 적의 대포를 향해 탁 트인 벌판을 걸어갔다.  백파이프 연주병이 다시 연주를 시작했고, 그 사나운 음악이 하이랜더들의 발걸음에 새로운 힘을 주는 듯 했다. 그들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지만 완벽한 대오를 이루고 있었고 아주 평온해 보였다. '사람들이 스코틀랜드인들에 대해 노래를 만든게 거저 만든게 아니군' 하고 샤프는 생각했다.  그때 말발굽 소리가 뒤에서 들려 돌아보니 캠벨 대위가 아까의 전령 임무로부터 돌아오고 있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캠벨 대위는 아메드누거 성벽 위에 맨 처음 기어오른 공으로 1계급 특진하며 웰슬리에게 발탁된 바로 그 실존 인물 캠벨 대위입니다.  : 역주)


대위는 샤프를 보고 씩 웃었다.


"난 내가 너무 늦었나 싶었지."


"시간에 딱 맞게 오셨습니다, 대위님. 정말 딱이요." 샤프는 말했다. 그리고는 황당해했다. '죽을 시간에 딱 ?'


캠벨은 웰슬리 장군에게 다가가서 보고를 했다.  장군은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다시 앞쪽의 대포들이 불을 뿜었는데, 이번에는 아까처럼 일제히 쏘지 않고 재장전을 마친 순서대로 개별적으로 발사했다.


각각의 포성은 끔찍하게 커서 귀를 멍멍하게 울렸고, 산탄은 스코틀랜드군의 바로 앞에서 수많은 먼지 연기와 함께 튀어올라 병사들을 뒤로 낚아채듯 휩쓸어버렸다.


각각의 포탄은 속에 둥근 머스킷 소총탄이나 쇳조각, 돌조각이 가득 든 금속 깡통이었고, 포구를 떠나자마자 깡통이 찢어지며 그 내용물을 마치 거대한 산탄총처럼 쏟아붓는 것이었다.


차례차례 또 다른 대포가 불을 뿜었고, 각각의 포격이 대지를 강타하며 각각에게 할당된 스코틀랜드인을 저승으로 보내거나 혹은 고향 교구에게 부담이 될 불구자로 만들거나, 나중에 군의관의 무자비한 손에 고통을 당하도록 만들었다.  북치는 소년들은, 비록 하나는 다리를 절고 있었고 또 하나는 자기 북에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지만 아직 연주를 계속하고 있었다.  백파이프 연주병들은 적의 대군 속으로의 행진이 마치 뭔가 축하할 일인 것처럼 좀더 쾌활한 음악을 연주했고, 몇몇 하이랜더들은 발걸음을 빨리 했다.


"그렇게 서두르지 마라 !" 하니스 대령이 외쳤다.


"그렇게 서두르지 마 !" 그는 큼직한 칼자루가 달린 클레이모어(스코틀랜드 식 대형 검)를 손에 들고 자기 병사들의 바로 뒤에 바짝 붙어서 가고 있었는데, 마치 병사들을 헤치고 말을 달려서 자기 연대를 박살내고 있는 적의 포병들에게 그 거대한 칼날을 들이대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산탄에 곰가죽 모자가 날아갔는데, 그걸 쓰고 있던 병사는 멀쩡했다.


"이제 침착해라 !" 소령 하나가 외쳤다.


"간격을 메워라 !  간격을 메워 !"  하사관들이 외쳤다.


"대오의 간격을 메워라 !"


대오의 간격을 메우는 임무를 띤 상병들이 대열 뒤에서 바삐 움직이며 병사들을 좌우로 끌어다가 포탄이 휩쓸어간 자리를 메웠다. 이제 그 빈 자리를 더 넓어졌는데, 그 이유는 이전의 보통 대포알은 한번에 한개 열의 병사를 날려버렸지만, 지금의 산탄은 네다섯 열의 병사를 한꺼번에 낚아챘기 때문이었다.


네 문의 대포가 불을 뿜더니 이어서 다섯 번째, 그리고는 나머지 전체 대포들이 연달아 한꺼번에 불을 뿜었다.  샤프 주변의 공기는 거센 포탄이 일으키는 바람으로 갈기갈기 찢어졌고, 하이랜더들의 대열은 그 폭풍 속에서 뒤틀리는 듯 했다.  그 뒤에 피를 흘리고, 토하고, 울부짖고, 동료 혹은 어머니를 부르는 병사들을 남겨두긴 했지만, 그래도 남은 자들은 대오의 간격을 좁히며 굳건하게 계속 전진했다.  더 많은 대포들이 불을 뿜으며 적진을 포연으로 감쌌다.  샤프는 산탄이 연대의 병사들에게 날아와 꽂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병사들이 그렇게 하듯, 하이랜더 병사들은 개머리판이 사타구니를 가리도록 소총을 들고 있었는데, 한방 한방의 포화로부터 수많은 머스킷 총탄이 쏟아져나와 병사들의 소총을 따닥 때리는 소리를 냈다.  이제 병사들의 대오는 처음보다 많이 짧아져 있었지만, 이제 적 대포가 뿜어낸 자욱한 포연의 가장자리까지 거의 도달했다.


"778 연대 !" 하니스 대령이 우렁찬 소리로 외쳤다. "정지 !"


웰슬리 장군은 말의 고삐를 당겼다.  샤프가 오른쪽을 보니, 계곡으로부터 세포이 용병들이 한줄의 긴 붉은 선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는데, 그 선은 세포이들이 관목으로 가득찬 계곡을 통과하면서 조각조각 끊어져 있었다. 연이어 마라타 연합군의 북쪽 대오에서도 포격을 시작했고 세포이들의 대오는 더욱 더 조각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 좌측의 스코틀랜드인들처럼, 세포이들도 포화를 무릅쓰고 전진했다.





(당시 영국군 정규병보다 세포이가 좋았던 점은 2가지 -  채찍질 체벌이 없었다는 것과 반바지)




"조준 !" 하니스의 구령 속에는 약간의 흥분감이 섞여있었다.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머스킷 소총을 들어올려 조준했다. 이제 그들은 적 포병들로부터 겨우 60야드(54m) 떨어진 상태였고 활강총신을 가진 머스킷 소총도 그 정도의 거리에서는 상당히 정확했다.


"높게 쏘지 마라, 이 개새끼들아 !" 하니스가 경고했다.


"높게 쏘는 놈들은 한놈 한놈 채찍질을 할거다.  발사 !"


소총의 일제사격 소리는 거대한 대포 소리에 비하면 빈약하게 들렸지만 그 소리가 주는 안도감은 대단했고, 하이랜더들의 일제사격이 그루터기 너머를 휩쓰는 것을 보며 샤프는 하마트면 환호성을 올릴 뻔 했다.  적 포병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몇몇은 죽었을테지만, 나머지는 그저 큰 포가 뒤에 숨어있었다.


"재장전 !" 하니스가 소리쳤다.


"우물쭈물하지마라 !  재장전 !"


여기서 그동안 하이랜더들이 받았던 훈련이 그 성과를 발휘했다.  머스킷 소총은 재장전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운 물건이었고, 특히나 17인치(43cm)짜리 총검이 착검된 경우는 더욱 그랬다. 그 삼각형 칼날은 총구에 탄약을 밀대로 밀어넣는 것을 까다롭게 했기 때문에, 몇몇 병사들은 총검을 떼내어 재장전을 쉽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병사들은 고향에서 몇주간 힘들게 훈련받은 그대로, 신속하게 재장전했다.  탄약을 넣고, 밀대로 밀어넣고, 뇌관 화약을 집어넣고, 다시 밀대를 총신 홈에 집어넣었다. 총검을 떼어냈던 병사들은 서둘러 다시 착검했고, 다시 세워총 자세로 돌아갔다.


"지금 장전한 총알은 적 보병을 위해 남겨둔다 !" 하니스 대령이 외쳤다.


"이제 전진이다 ! 저 이교도 개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안식일 학살이 뭔지 보여줘라 !"


이건 복수였다.  이건 그 동안의 분노의 고삐를 풀어준 것이었다.  적 대포는 아직 재장전되지 않은 상태였고, 적 포병대는 일제 사격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포는 스코틀랜드 병사들이 백병전 거리에 들어올때까지 재장전할 시간이 없을 것이었다.  몇몇 적 포병은 도주했다.  샤프의 눈에 말을 탄 마라타 장교 하나가 도주하는 포병들을 잡아들여 칼등으로 다시 원위치로 몰고 가는 것이 보였다.  또한, 자기 바로 앞에 있는 색칠이 된 거대한 대포를 두 명의 적 포병이 장전을 끝내고 옆으로 돌아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우리가 받게 될 것에 대해서도... (뒤에는 '주님께 감사할 수 있도록 하소서 - 당시 일제 사격을 받기 전 병사들이 외우는 일종의 기도 : 역주)" 블래키스턴 소령이 중얼거렸다.  이 공병 장교도 적 포병이 재장전하는 것을 본 것이다.


그 대포가 불을 뿜었다.  그 포구로부터 몰아쳐닥친 포연이 장군 일행을 삼켜버렸다. 한순간 샤프는 희미한 연기 속에서 웰슬리 장군의 키 큰 윤곽을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순간 보이는 것은 피바다 속에 쓰러지는 장군의 모습이었다.  산탄 조각들이 샤프 주변을 휩쓸고 나서 한 박자 뒤에 그 포격의 열기와 폭풍이 그의 몸을 휘감고 지나갔지만, 그는 웰슬리 장군의 바로 뒤에 있었으므로 포격을 정통으로 맞은 것은 바로 웰슬리였다.


실은 장군이 아니고 그의 말이었다.  그 종마는 십여발의 산탄을 맞았지만 웰슬리는 기적적으로 상처 하나 없었다.  그 큰 말은 땅에 쓰러지기도 전에 이미 숨이 끊어졌다.  말이 쓰러지기 전에 웰슬리가 발을 등자에서 빼면서 안장에 손을 대고 몸을 빼내는 것이 샤프의 눈에 들어왔다.  웰슬리는 오른발이 먼저 땅에 닿자, 종마의 몸무게가 그의 다리 위를 덮치기 전에 비틀거리며 펄쩍 뛰어 몸을 피했다.  캠벨 대위가 장군 쪽을 돌아다 보았지만, 장군은 그에게 그대로 전진하라고 손짓을 했다.  샤프는 타고있는 암말에 박차를 가하며 벨트에서 디오메드의 고삐를 풀어내었다.  먼저 죽은 말에게서 안장을 벗겨야 하나 ?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한 샤프는 먼저 말에서 내렸다.  하지만 죽은 종마에게서 안장을 벗겨내는 동안 암말과 디오메드는 어떻게 하지 ?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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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9.01.17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전도 원전이지만, 역시 나시카님이 번역하실때의 그 필력 또한 대단하십니다. 정말 숨도 안 쉬고 읽었습니다 ㅎㅎ

  2. 셰링가파탐 2019.01.17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셰링가파탐의 마이소르 현지식 이름이 스리랑가파트남이고 셰링가파탐은 영국인들 이 발음을 제멋대로 한 느낌이더군요. 가서 신기했습니다. 왕궁 몇 개만 남아있지만 책에서만 읽은 그곳이 눈앞에...

  3. reinhardt100 2019.01.17 2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황당한 내용이긴 한데 저 시절 기준에서는 체벌을 하지 않는다는 건 교화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웃기는 소리가 되기도 합니다.

    19세기 초반 영국의 교육관 및 인간관에서 체벌은 진짜 '사랑의 매'로써 '무지몽매한 하층민들을 교화하는 수단'으로써 받아들여졌죠. 이건 때리지 않으면 인간 대접해줄 필요가 없다는 소리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헛소리가 맞지만 저 당시에는 그게 기본이었습니다. 세포이들이 빠따(?)를 안 맞는다는거? 영국 동인도회사군이나 정규군 입장에서 좋은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써먹고 버리는 소모품이라는 소리입니다.

    참고로 영국이 인도를 정복할 때 의외로 정규군이 많이 투입된 편입니다. 동인도회사가 파산하면서 정부로부터 빌린 구제금융의 대가로 제정된 노스법, 인도통치에 관한 법률 등 같은 각종 압력 때문에 전쟁이 없던 시절에 나름 남아나던 예비역(?)을 인도 정복전에 꽤나 투입시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민간사회도 안정시키면서 예비역들 줄 돈 들어가는 걸 회사에 떠넘기는 셈이었고 회사 입장에서도 세포이같은 못 믿을 용병 대신 본국 정규군을 동원해서 싸우는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다보니 꽤나 빈번했습니다. 문제는 이 정규군 출신들이 본국이 아니다보니 군기가 개판이 되는 경향이 있었고 사고도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4. ㅇㅋㅂㄹ 2019.01.18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미가 애미 말하는건가요?

  5. TheK2017 2019.01.18 1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보다가 만 이 느낌은. ??
    아쉽네요. ^ㅇ^*

  6. ㄷㄷ 2019.01.26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생각하면 좀 이해가 안가는게, 왜 웰링턴이 적 포병에 대해 대포병 사격, 경보병으로 저격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맞으면서 갔는지 의아하네요. 아니면 차라리 적 포병 포탄이 떨어질 때까지 엎드려있는 것도 인명피해를 줄이는 방법일텐데 말이죠.

    • 빵뚜아 2019.02.06 0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시 전술을 현대전 기준으로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어려우실꺼에요. 애초에 포격을 정면으로 받으며 밀집대형으로(간격이 벌어지면 메워가면서) 접근하는것 자체가 현대전 기준으로는 넌센스입니다.

  7. 철인18호 2019.04.25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샤프 시리즈 드라마인가 영화인가는 유치해서 못보겟더군요. 걸핏하면 투항병으로 변신해서 적진에 침투하고...

2018.05.17 06:30

최근에 어느 독자분께서 '나폴레옹 당시 부상당해 불구가 된 병사들에 대한 처우는 어떠했는가'라는 질문을 올리셨습니다.  그에 대해 짧게 댓글은 달았습니다만, 생각난 김에 전에 다음블로그에 썼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전에 장군님 출신의 개인택시기사분을 만난 썰을 푼 적이 있습니다만, 그 전직 장군님은 결코 먹고 살 길이 없어서 택시 운전을 하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분도 하신 말씀이 "군인 좋은 거 하나도 없어요, 딱 하나, 연금이 빵빵하게 나온다는 것 빼고 말이에요" 라고 하시더군요.  그만큼 미국 못지 않게, 우리나라도 군인 연금 자체는 꽤 잘 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 시대의 시민 병사들은 상비군이 아니었고, 직업 군인이라고 할 만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그냥 외국인 용병 정도였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노후 대책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고, 애초에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점은 로마 시대 초기에도 마찬가지였다가, 제정 로마 시대 즈음해서 제대 병사들을 위한 복지 혜택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제대하는 로마 군단병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로마 장군 마리우스(Marius)가 최초로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즉, 마리우스는 병사들이 제대할 때, 정착할 수 있는 농토를 약속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생겨난 부작용이, 바로 로마군의 정치적 변질이었습니다.  즉, 병사들이, 국가보다는 그 약속을 이루어줄 장군 개인에게 충성을 하게 되면서, 건전했던 로마 시민군은 직업 군인화 되면서 장군 개인의 사병(私兵)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지요.  아니나 다를까, 이 마리우스는 훗날 술라(Sulla)와 함께 로마의 권력을 두고 쿠데타와 역쿠데타 등을 일으키며 정치 군인으로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갔습니다.  





(킴브리족과 튜톤족의 침입으로부터 로마를 구한 마리우스의 개선식)




아무튼 제정 로마 시대의 로마 군단병은 거의 최초의 정규 직업 군인이라고 할 수 있었는데, 이들은 25년간 복무하고 나면 명예 제대(missio honesta)를 할 수 있었고, 보통은 이와 함께 (로마 시민이 아니었던 경우에는) 로마 시민권 및 연금 또는 토지를 함께 받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제대 군인의 이력 및 권리를 언제라도 제시할 수 있도록 아예 청동판에 기록하여 제대하는 병사에게 주었는데, 이의 이름이 바로 diploma였습니다.  요즘 말로는 졸업장이라고 번역되지요.





(로마 군단병들의 diploma.  아마 이걸 받았을 때의 기쁨은, 요즘 대학 졸업장 받았을 때보다 100만배는 더 기뻤을 것 같습니다.)




나폴레옹 시대에는 어땠을까요 ?  연금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장기 복무한 직업 군인에게 주어지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군은 징집제에 의해 이루어진 군대로서, 대부분의 병사들은 직업 군인이 아니라 몇년간의 복무 후에 (대개는 나폴레옹 전쟁 내내 군에 붙들려 있었지만) 제대하여 원래의 농촌이나 공장 등으로 되돌아갈 사람이었기 때문에 연금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거나 특히 공을 세운 뒤 전사한 사람에게는 종종 레종 도뇌르(Legion d'Honneur) 훈장과 함께 본인 또는 그 유족에게 연금이 주어지곤 했습니다.  가령 1815년 워털루 전투 직전 샤를루아(Charleroi) 북쪽에서 프러시아 군과 교전 중에 전사한 르토르(Louis-Michel Letort) 장군에게는 나폴레옹이 그 부인에게 연금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나폴레옹이 사망할 때는 그 유언 중에 르토르의 자녀들에게 10만 프랑(약 10억원)의 유산이 전해지도록 포함시켰다고 합니다.





(1804년 7월 15일, 앵발리드에서 최초의 레종도뇌르 훈장을 수여하는 나폴레옹입니다.  드브레(Jean-Baptiste Debret)의 작품입니다.)




나폴레옹이 창시한 레종 도뇌르 훈장 자체가 사실은 연금과도 상관이 있었습니다.  레종 도뇌르(Legion d'Honneur)는 원래 이름 그대로, 명예 군단(legion)을 뜻하는 것인데, 그 훈장을 받은 사람은 가상의 군단에 속하여 그 안에서의 가상의 계급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계급에 따라 연금을 받게 되어 있었지요.  이렇게 이 레종 도뇌르 훈장은 금전적인 혜택이 함께 하여 일종의 귀족 신분을 새롭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으므로, 애초에는 의원들의 강력한 저항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 연금의 액수는 어느 정도였을까요 ?  최고 계급인 경우  연간 5천 프랑, 지휘관급인 경우 2천, 일반 장교인 경우 1천, 일반 병사인 경우는 250 프랑 정도였습니다.  요즘 금 1g을 대략 4만원이라고 계산하면, 1 프랑은 대략 1만원 정도니까, 일반 병사가 레종 도뇌르를 받는다면, 일년에 250만원 정도의 연금을 받는 셈입니다.  뭐 그다지 많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프랑스군이야 징집제니까 그렇다치고, 영국군은 어땠을까요 ?  영국군은 나폴레옹 전쟁 이전이나 이후나, 모병제에 의한 직업 군인 제도를 유지했고, 특히 모병에 응할 때는 대개 '평생 복무'에 서명을 했기 때문에, 병사들의 노후 대책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했습니다.  병사들이 다 늙어서 이제 도저히 군 복무를 할 수 없을 지경이 되면 제대를 시켜야 할텐데, 평생을 군에서 사람 죽이는 기술만 배운 늙은 병사를 아무 대책 없이 사회로 내보낼 수는 없었을테니까요.  


그런데 실제로는 거의 그렇게 했습니다.  일단, 영국군 병사가 정말 50세 60세가 되도록 평생 복무를 했느냐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요즘처럼 고용 불안이 심각한 시대에, 평생 복무의 조건이 붙어 있다고 하면 사실 고용 보장이 확실한 것이니까 아주 좋은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보시기에 50대 병사가 무거운 군장을 매고 하루에 20 km를 행군한 뒤 차가운 땅바닥에서 노숙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  전혀 아니지요.  당시 장교들 생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대략 15년 복무를 하고 나면, 대개의 병사들은 제대가 허락되었는데, 만약 제대 안 하겠다고 버티면 강제로 제대를 시켜버렸습니다.  즉, 평생 복무라는 것은, 군대가 원할 경우 평생토록 군에 말뚝을 박아야 한다는 뜻이지, 병사가 원할 경우 평생토록 군대가 먹여살려주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제대할 때는 아무런 연금 혜택이 없었습니다.  


연금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25년 (아마도 로마군의 전통에서 비롯된 복무 연한인 듯...)을 채워야 했는데, 이렇게 25년간 복무를 하고 나서 받는 연금은 고작 하루 6펜스였습니다 !  현재 가치로 따지면, 약 6천2백원 정도입니다.  맥도널드에서만 밥을 먹는다고 해도, 하루에 두끼 사먹기도 어려운 금액이네요.  옷값이나 주거비는 빼고도 말입니다.  만약 군에서 부상을 당하거나 하여 제대해야만 하는 경우, 25년 복무 기한을 채우지 않고서도 일당 6펜스의 연금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그 경우에는 그나마 평생이 아니고 1달에서 최대 5년까지만 연금을 주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어떻게 되냐고요 ?  그에 대한 답변은 God knows 라고 쓰고 '알게 뭡니까' 라고 읽습니다.  그야말로 높으신 장군님들이나 공직자 나으리들 알 바 아니었던 것입니다.  대개는 무슨무슨 전투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다 불구가 되었다는 팻말을 든 거지가 되거나, 운이 좋은 경우는 고향 마을에서 가족과 해당 교구의 부담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조국을 위해 몸바쳐 싸운 결과가 하루 6천원 ???  그것도 최대 5년간만 ???)




보통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에 멋모르고, 혹은 모병관의 감언이설에 속아서 군에 입대한 청년이, 40대 중반의 나이에 군에서 제대하여 다시 직장을 구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자랑스러운 대영제국의 레드코트들은 결국 길거리 노숙자로서 일생을 마치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는 단지 제대 병사 개인의 불행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1917년 프랑스군의 대부분이 공격 명령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는 공개적인 반란도 아니었고, 탈영도 아니었습니다만, 독일군의 철조망과 기관총을 향해 돌격하라는 명령을 확실하게 거부한 것으로서, 당연히 총살감의 사건이었습니다.  사실 이런 공격 명령 거부는, 1918년 독일군에서도 일어납니다.  루덴도르프가 주도한 1918년 독일군의 대반격은 이런 메시지로 사실상 마감됩니다.  "...부대들은 이제 명령을 받아도 공격하려 하지 않는다.  공격은 끝났다."





(그 명령 거부자들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  뭘 바라십니까 ?  군대는 군대인데, 뭐 좋은 꼴을 봤겠어요 ?  제1차 세계대전 중 공격을 거부했다가 총살당한 프랑스 병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영광의 길'이라는 1953년 영화가 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 커크 더글러스 주연입니다.)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을까요 ?  병사들은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공격에 나섰다가 죽을 확률이 10% 정도라면 병사들은 용감히 전투에 뛰어듭니다.  30% 정도라면 망설이겠지요.  그러나 결국 죽을 것이 확실한 지경에 이르면, 병사들은 공격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군에서 성실히 복무하여 25년간 평생을 국가에 바친다고 하더라도, 결국 거지가 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하면, 군 전체의 사기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  그래서인지, 영국 육군은 나폴레옹 전쟁 전후를 막론하고 음주 문제가 심각했고 각종 범죄도 아주 많았으며, 이렇게 말썽이 많은 병사들을 다루기 위해 처절한 체벌이 자주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내일도 없고, 잃을 것도 없는 사람들은 좋은 말로 다룰 수가 없는 법이거든요.





(이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럼과 채찍 두가지가 필요합니다.  이들에겐 내일의 희망이 없어요...)




그나마 영국 해군의 경우는 육군보다는 사정이 더 나아서, 21년간 복무하고 나면 하루 1실링 또는 1실링 2펜스의 연금과 함께 명예 제대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 1만2천원에서 1만 4천원 정도의 돈인데, 이 정도면 그래도 굶어죽지는 않을 정도였겠고, 또 수병의 경우는 제대 후에도 상선이나 어선 등에서 일자를 구할 수도 있었으므로 확실히 더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나서도 한참 뒤인 1840년대 정도가 되어서야, 육군에서도 의무 복무 기한을 10년 정도로 줄이고, 25년 복무 이후 연금액도 해군 수준인 하루 1실링 (1만2천원) 정도로 높이자는 제안이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폴레옹 자신도 연금을 받았습니다.  1814년 4월 나폴레옹의 1차 퇴위 조건을 정한 퐁텐블로(Fontainebleau) 협정 때, 나폴레옹은 엘바(Elba) 섬의 통치권 뿐만 아니라 2백만 프랑(약 200억원)의 연금도 함께 받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연금은 연합군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었고, 복귀한 부르봉 왕가의 금고에서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었지요.  





(퐁텐블로에서 부하 원수들에게 퇴위를 종용받는 나폴레옹입니다.  저기서 나폴레옹 목에 방울을 다는 역할은 역시 용감한 네(Ney)가 맡았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에게 너무 후한 것이 아니냐고요 ?  1년에 200억원이라면 저같은 사람에게는 자식하고 마누라를 팔아넘기는 것 빼고는 뭐라도 할 만한 금액입니다만, 나폴레옹과 같은 인물에게는 사실 별로 큰 액수는 아니었습니다.  가령 1812년 나폴레옹으로부터 이혼을 당한 조세핀의 경우, 이혼의 댓가로 말메종(Malmaison)의 대저택과 함께, 연간 3백만 (어떤 자료에는 5백만) 프랑의 연금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에게 고작 2백만 ?  글쎄요, 그래도 그 정도면 충분한 금액이 아니었을까요 ?





(나폴레옹이 제1통령 시절 구입하여 '평생 가장 행복했던 삶을 보냈던 곳'이라고 추억했던 말메종 저택)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엘바 섬에서는 얼마가 들었는지에 대한 통계치를 구하지 못했습니다만,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나폴레옹을 가둬두는데 소요되었던 비용에 대해서는 자료가 남아 있습니다.  사실 엘바 섬에서는 나폴레옹은 그 섬의 군주로서, 나름대로 호화롭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만,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는 꾀죄죄한 집에 꾀죄죄한 옷차림으로 정말 포로처럼 지냈거든요.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포도주조차 제대로 대접하지 못할 정도로 곤궁한 삶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돈이 기가 막히게 많이 들어갔습니다.


나폴레옹 자신은 세인트 헬레나에 자신을 가둬두는데 영국 정부가 지출하고 있는 비용이 대략 연간 1천만 프랑(41만6천 파운드) 정도 될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적은 9만2천 파운드(약 2백2십만 프랑) 정도가 들었습니다.  다시 금 1g에 4만원 기준으로 계산하면, 대략 2백2십억원 수준입니다.  물론 이 비용 중 대부분은 나폴레옹을 감시하고 혹시나 있을 수 있는 나폴레옹 구출 계획으로부터 세인트 헬레나 섬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비 및 그 관련 군인들의 봉급이었습니다.  





(불만 많은 모험가였던 전직 영국 해군 장교 코크레인이 나폴레옹을 구출하려던 계획은 실제로 있었고, 그 스토리는 Bernard Cornwell의 Sharpe's Devil 편에서 자세히 묘사됩니다.)




정작 나폴레옹 및 그 식솔들에게 주어진 생활비는 그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가령 영국 정부가 나폴레옹에게 지급한 생활비는 겨우 1년에 8천 파운드(19만2천 프랑)이었다가 나중에야 너무 적다고 인정하고 1만 파운드(24만 프랑)으로 늘려줄 정도였습니다.   이 금액가 얼마나 짠돌이 액수였는지는 세인트 헬레나 섬의 영국 총독이었던 로우(Lowe)의 연봉이 약 1만2천 파운드였다는 것을 보면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나폴레옹을 미워하고 실제로 대놓고 마구 구박했던, 아주 나쁜 간수였던 이 로우 총독 본인이 계산한 바로는, 나폴레옹이 자신의 식솔들을 유지하는데 세인트 헬레나에서 실제로 썼던 돈은 연간 약 2만 파운드 정도였다고 합니다.  약 50억원 정도되는 돈이지요.  부족했던 연간 1만 파운드는 어떻게 했냐고요 ?  글쎄요, 누가 돈을 보내왔다는 기록은 보지 못했습니다만, 사실 돈이 세인트 헬레나 섬 현장에서 꼭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 필요 금액 중 상당액은 아마 식솔들의 급료였을 것이므로, 프랑스 본국의 나폴레옹의 재산으로부터 본국에 남아있을 식솔들의 가족 또는 그 은행 계좌로 지급되고 있었겠지요.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의 나폴레옹의 초라한 모습...)




이렇게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곤궁하게 살면서 수하에 수십명의 식솔들을 거느리는 것에만도 이렇게 많은 돈이 들었으니, 엘바 섬의 군주로서, 그것도 수백명의 고참 근위대(Old Guards)를 거느리고 살려면 엘바 섬에서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겠습니까 ?


하지만 정작 나폴레옹은 부르봉 왕가로부터 단 한 푼의 연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야말로 공수표였던 것이지요.  연금으로 줄 금화 상자가 도착했다는 소식 대신 나폴레옹은 부르봉 왕가 및 코르시카 섬의 정적들이 자신을 암살하기 위해 자객들을 보낼 계획이라는 소식만을 들었습니다.  결국 1815년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하여 백일천하의 난동을 일으켰던 것에는, 나폴레옹 본인의 억누를 수 없는 야망 외에도, 당장의 궁핍과 목숨에의 위협도 있었던 것이지요.  





(뭐시라 ?  우리가 이렇게 죽어라고 싸우게 된 원인이 부르봉 놈들이 연금 지급을 안했기 때문이라고 ?)




혹시 부르봉 왕가가 연간 2백만 프랑의 연금을 아까와 하지 않고 순순히 나폴레옹에게 지급했더라면, 워털루에서 전사한 수만명의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병사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까요 ?  글쎄요... 그 대답은 나폴레옹 본인조차도 모를 것 같군요.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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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첫댓 2018.05.17 15: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었습니다. 그런데 부르봉왕가의 복고이후에도 나폴레옹전쟁때의 퇴역병들에게 연금을 주었는지가 궁금하네요. 루이18세나 샤를10세 입장에선 역적이자 찬탈자 나폴레옹을 위해서 복무한 부역자일건데 말이죠....

    • nasica 2018.05.18 08: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와 관련된 기록은 못 봤는데, 그래도 줘야 했을 겁니다. 일단 나폴레옹 밑에서 복무하던 상당수 장교들이 그대로 군에 남아 있기는 했으니까요. 그래도 그들을 푸대접한 것은 맞습니다. 그런 나폴레옹 시절 장교들과 부사관들 중 상당수가 보직을 잃고 제대해야 했고 그 빈자리를 망명길에서 돌아온 귀족들(emigres)이 차지했는데, 그에 대한 불만 때문에 나폴레옹이 돌아오자 군이 대대적으로 나폴레옹 편에 붙은 것입니다.

    • reinhardt100 2018.05.25 0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병들과 부사관들에 대해서는 루이 18세가 정확히 주려고 노력 했습니다. 애초에 루이 18세가 세계최초의 국가 재정에 대한 근대 회계감사제도를 정비한 이유 중 하나가 퇴역장병들에 대한 연금 지급을 감독하기 위한 측면도 있습니다. 문제는 당시 새로 임명된 구 귀족 출신 혹은 전향한 제국시절의 관료층들이 부패하면서 꽤나 많이 빼먹어서 민심이 꽤나 안 좋았죠.

      장교들, 특히 영관급 이상의 경우는 심각했는데 이들 중 혁명과 상관이 없는 경우에는 그나마 연금이 불충분하나마 주어지긴 했지만 구 귀족출신이거나 구 귀족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인정되면 얄짤없었죠. 대표적인 예가 그루시와 다부, 오주로 같은 원수들과 그랑 다르메 차세대 주자중 최선두였던 라마르크, 대장급 인물 중 최고참급이던 낭수티 등이였습니다. 실제로 1830년 7월 혁명이 성공한 이유 중 하나가 마르몽이 지휘한 진압군 병럭이 1만이 채 안 되었던 것도 있지만 '실전 경험이 풍부하고 반부르봉적 성격이 강한' 이들 장교단 출신 소시민들이 대거 혁명군에 가담 시가전을 이끌다보니 처음부터 진압 자체가 불가능해진 측면도 있습니다.

  2. 둘댓 2018.05.17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소중한 글이군요.
    확실히 왕정은 군인들을 소중히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3. 웃자웃어 2018.05.18 0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마군의 사병화는 아우구스투스때에 들어서서야 어느정도 해결되지만 그 이후에는 근위대가 문제였죠. 로마에는 근위대를 견제할 병력이 없어서 근위대가 황제를 죽이고 갈아치우는 만행이 많았고, 결국 근위대가 나중에 해산당하죠.

  4. 유애경 2018.05.18 0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연금이 순순히 지급되었어도 나폴레옹은 엘바를 탈출했을것 같은 느낌이...

  5. TheK2017 2018.05.18 23: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정말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6. reinhardt100 2018.05.25 0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왕 말이 나온 김에 1차 세계대전 프랑스군의 '엘랑 비탈'정신론 이거 아주 심각했습니다.

    엘랑 비탈. 이 말 자체는 철학자 베르그송이 처음 쓴 용어인데 '삶에 대한 무한한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문제는 프랑스군이 이미 17세기 후반부터 백병전 중시 성향이 강했는데 혁명전쟁, 나폴레옹전쟁과 크림전쟁, 보불전쟁등의 전훈 분석을 하다보니 '프랑스군이 승리한 전투에서 예외가 없다시피할 정도로 총검돌격에 의한 적 전열 붕괴가 주 요인이었다'라고 분석해버린 겁니다. 이 때문에 '기동성 있는 다수의 속사야포를 사용, 전장에 직접 투사하는 화력이 적보다 우위에 있도록 하여 (사정거리 최대 4-6km) 적 전열에 돌파구를 만든 후, 백병전에 강한 프랑스보병들이 단숨에 적을 뭉개버린다'는 식의 전술안이 나왔고, 적의 화력에 맞서 아군의 전의를 고취하기 위한 방안으로 엘랑 비탈이 도입된 겁니다. 또한 가상적국인 독일이나 이탈리아, 영국보다 병력 운용에 여유가 없다보니 상대적으로 작전기간이 길어진데 따른 장병들의 전투피로 및 사기저하를 막기위한 방법론적 측면

    흔히 무한한 돌격정신이라고 착각하는데 절대 아닙니다. 프랑스군의 전투의지를 강하게 하고 전선 유지를 끝까지 하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례이지 결코 계속 돌격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미친 소리는 아닌거죠. 실제로 엘랑 비탈 사상 덕분에 프랑스군은 마른 전투와 베르됭에서 사단 병력 40%이상의 전멸 상태인데도 각 사단장과 휘하장병들이 끝까지 작전제대교대명령조차 거부하고 잔류, 단 하나 남아있던 두오몽 요새를 사수하는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왜 이게 문제가 되냐면 니벨 공세 때문입니다 니벨이 흔히 말하는 무능력자는 절대 아닙니다. 브루실로프가 보여준 이동탄막사격을 참고, 프랑스군이 베르됭등에서 보여준 프랑스식 이동탄막사격을 창안한 사람인데 문제는 니벨 공세 자체가 정치적 압력에 시달려서 엉망인 작전안 그대로 나왔고 시기로도 안 맞는데 멋대로 속행되었다는 겁니다. 이 판국에 엘랑 비탈로 전의를 고취시다고 하니 장병들이 돌아버린 겁니다.

2017.06.01 22:35

Sharpe 시리즈 중, Sharpe's Honour 중 제 1장입니다.  맛보기로 한 장만 번역했어요.  참 재미있는 소설인데... 요즘 도서 시장이 너무 쪼그라들어서 뭐라 할 말이 없네요.  국내 출판이 정식으로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차가운 바람이 바위투성이 골짜기를 휩쓸던 습기찬 어느 봄날, 샤프 소령은 오래된 돌 다리 위에 서서 남쪽의 바위투성이 능선 낮은 쪽으로 향하는 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인해 언덕들은 어두워보였다.

 

그의 뒤쪽으로는, 머스켓 소총의 발화장치를 헝겊으로 가리고, 총구에는 빗물이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코크마개를 막아둔 채로, 5개 중대의 보병들이 늘어서 있었다.

샤프가 알기로는, 능선까지의 거리는 500야드였다.  (머스켓 소총의 유효사정거리는 약 60야드입니다.:역주)  곧 그 능선 위로 적군이 나타날 예정이었고, 그들이 다리를 건너는 것을 막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아주 간단한, 군인의 일거리였다.  이 1813년의 봄은 늦게 찾아왔고, 이 국경의 구릉지대에는 비만 줄곧 내렸으므로, 다리 아래의 강물은 깊고 빨라서, 걸어서 건널 수 없는 상태였으므로, 그 임무는 훨씬 더 쉬워진 상태였다.  적군은 샤프가 기다리고 있는 다리를 통과하던가, 아니면 강물을 아예 건널 수 없었다.

 

"소령님 ?" 경보병 중대의 지휘관인 달렘보드 대위는 샤프 소령의 우중충한 기분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무슨 일인가, 대위 ?"

"참모 장교가 오고 있습니다."

 

샤프는 나직히 궁시렁거렸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등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다가와 속도를 줄이는 것을 들었다. 다음 순간 말이 그의 앞에 나타나 섰고, 흥분한 기병 중위 하나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샤프 소령님 ?"

단호하고 화가 난 듯한 검은 눈동자가 중위의 금도금이 된 박차와 장화를 거쳐, 진흙이 군데군데 묻었지만 비싸보이는 파란색 울 망토를 지나, 흥분한 참모 장교의 눈과 마주쳤다.  "자네가 내 시야를 가리고 있는데, 중위." 

"죄송합니다, 소령님."

 

중위는 서둘러 말을 한쪽으로 움직였다. 그는 험난한 산길을 돌아, 아주 열심히 말을 달려왔고, 그의 승마 솜씨에 스스로 우쭐해있었다. 그의 암말은 안절부절 못하고 움직이면서, 그 중위의 흥분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프레스톤 장군께서 보내신 전갈입니다, 소령님. 적군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나도 능선에 초병을 세워놓았었네." 샤프는 무례한 말투로 말했다. "적병을 30분 전부터 보고 있었어."

"예, 소령님."

 

샤프는 능선을 쳐다보았다. 중위는 자기가 그저 조용히 사라져야 하는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라이플맨(샤프)이 중위를 다시 쳐다보았다. "자네 프랑스말 할 줄 아나 ?"

리처드 샤프 소령을 처음 만난다는 사실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중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령님."

"얼마나 잘하지 ?"

기병 중위는 미소를 지었다. "Tres bien, Monsieur, Je parle..  (Very well, Mister, I speak...:역주) "

"내가 언제 빌어먹을 시범을 들려달라고 했나 ? 질문에 대답이나 하게 !"

중위는 이 무자비한 힐책에 겁이 났다. "아주 잘 합니다, 소령님."

 

샤프는 그를 쳐다보았다. 중위는 그 눈길이 마치 포동포동 살이 찌고 한때 잘나갔던 사형수를 대하는 집행인의 눈길 같다고 생각했다. "이름이 뭔가, 중위 ?"

"트럼퍼-존스입니다, 소령님."

"흰 손수건 있나 ?"

이 대화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군 하고 중위는 생각했다. "예, 소령님."

"좋아." 샤프는 다시 다리 쪽과, 능선을 넘어 길이 뻗어오는 움푹한 안장모양의 고개길 쪽을 쳐다보았다.

 

일이 아주 꼬일대로 꼬여 버리고 말았어 라고 샤프는 생각하고 있었다. 영국군은 포르투갈 국경의 동쪽으로부터 진격로를 확보해나가고 있었다. 프랑스군의 거점을 몰아내고 프랑스 수비군을 쫓아내면서 다가오는 여름의 작전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치적치적 비가 내리면서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에, 5개대대의 영국군이 토르메스 강가의 프랑스 수비대를 공격했다. 프랑스군 후방 5마일 떨어진 곳에, 프랑스군이 퇴각해올 이 길 도중에, 이 다리가 있었다.  샤프는 대대의 절반 정도되는 병력(5개 중대)과 라이플 중대 하나를 거느리고, 그 퇴각을 막기 위해, 밤을 새워 길을 빙 돌아 행군하여 여기에 오게 된 것이었다.  그의 임무는 간단했다. 추격해온 다른 대대가 퇴각하는 프랑스군을 따라잡아 끝장을 볼 수 있도록, 프랑스군의 퇴각을 막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날 오후가 되면서, 샤프의 기분은 매우 저기압이었다.

 

"소령님 ?" 샤프는 위를 쳐다보았다. 중위는 접은 린넨 손수건을 내밀고 있었다. 트럼퍼-존스는 불안한 듯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손수건이 필요하시다고요, 소령님 ?"

"내가 코를 풀자는 건 줄 아나, 이 바보야 !  항복을 위한 거야 !" 샤프는 으르렁거리고는 두 발자국을 옮겨갔다.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비록 1500명의 프랑스군이 겨우 400명도 안되는 이 작은 부대 쪽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트럼퍼-존스가 리처드 샤프라는 남자에 대해 들은 바로는, 샤프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항복을 하겠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샤프의 명성은 잉글랜드에까지 퍼져 있었고, 극히 최근에야 영국에서 떠나온 트럼퍼-존스가 최전선으로 다가올 수록 그는 그 이름을 점점 더 많이 듣게 되었다. 샤프는 군인 중의 군인으로서, 그의 칭찬을 듣는 것은 진정한 명예로 간주되었고, 그의 이름은 프로페셔널로서의 뛰어남에 대한 표석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지금 싸우지도 않고 항복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이클 트럼퍼-존스 중위는 그 생각에 어이가 없어, 햇빛과 바람에 검게 그을린 샤프의 얼굴을 몰래 쳐다보았다. 잘 생긴 얼굴이었으나, 샤프의 왼쪽 눈 아래의 긴 흉터(1803년, 인도에서 도드 대령의 칼에 입은 상처입니다.:역주)로 인해, 마치 사람을 비웃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트럼퍼-존스는 모르고 있었지만, 샤프가 웃을 때면 그 흉터로 인한 비웃는 듯한 표정은 사라지곤 했다.  트럼퍼-존스가 가장 놀란 부분은, 샤프는 계급장을 전혀 달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장교의 허리띠나 견장도 없어서, 그가 장교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옆에 차고 있는 낡아빠진 기병용 군도 뿐이었다.  트럼퍼-존스 생각에, 그는 정말 영국군이 빼앗은 첫번째 프랑스의 독수리 군기를 탈취한, 그리고 바다호스 요새의 무너진 틈새로 처음 돌격해 들어간, 그리고 가르시아 에르난데스에서 독일 병사들과 함께 그 유명한 기병 돌격을 감행했던, 바로 그 군인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자신만만함은, 그가 군 생활을 졸병 계급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총 한방 쏴보기도 전에 숫적으로 불리하다고 항복하려 한다는 것은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지금 뭘 보는 거야, 중위 ?"

"아무것도 아닙니다, 소령님." 트럼퍼-존스는 샤프가 남쪽 구릉지대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샤프는 그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중위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는 그것이 싫었다. 그는 주목을 받는 것이 싫었고,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싫었다. 요즘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만 편안함을 느꼈다. 그는 이 젊은 기병 중위에게 필요 이상으로 심하게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중위를 올려다 보았다. "적에게 3문의 대포가 있는 것 같던데, 맞나 ?"

"예, 소령님."

"4파운드 포였지 ?"

"그런 것 같습니다, 소령님."

 

샤프는 툴툴거렸다. 그는 능선을 지켜보았다. 그는 그 두마디 질문이 중위에게 좀 친근한 느낌을 주기를 바랬지만, 사실 그는 요즘 낯선 사람들에게서는 친근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부터 우울해 있었다. (Sharpe's Enemy 편에서 샤프는 크리스마스날 스페인인 아내인 테레사를 잃습니다. : 역주) 그는 격렬한 죄책감과 무자비한 절망감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아내가 '신의 대문'이라 불리는 산길의 눈속에서 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목에서 흘러내리던 피의 이미지가 그의 마음 속에 떠올랐다. 그는 그 장면을 몰아내기라도 하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그녀가 죽었기 때문에, 그녀 몰래 바람을 피웠었고, 그녀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 그런 종말을 맞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어린 딸이 이제 엄마없는 아이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그의 죄책감 때문에 무일푼 상태였다. 아직 두살이 채 안된 그의 딸은 그녀의 스페인 삼촌과 숙모 밑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그가 스페인 정부로부터 훔쳤던 (Sharpe's Gold 편에서 그는 스페인 금화를 빼앗아 오는 임무를 맡았는데, 당연히 그중 일부를 슬쩍합니다.:역주) 그의 저축금 전체를 그의 딸 안토니아에게 보냈었다.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그의 군도와 라이플 소총, 그의 망원경, 그리고 몸에 걸친 낡은 군복 한벌이 전부였다.  그는 값비싼 말을 탄, 금도금이 된 장식 칼집을 차고 새 가죽장화를 신은 이 젊은 중위를 속으로 저주하고 있었다.

 

그의 등 뒤의 대오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병사들이 남쪽 능선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샤프는 뒤돌아섰다.

"대대~!" 곧 침묵이 뒤따랐다. "대대~! 차렷 !  (Talion ! 'Shun !)"  (Battalion, Attention ! 을 이렇게 발음하는군요.: 역주)

 

병사들의 장화가 비에 젖은 바위 위에 철썩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그들은 프랑스군의 퇴각로가 될 북쪽길이 놓인 작은 계곡의 입구를 가로막은 채 2줄로 늘어서 있었다.

샤프는 그들의 불안함을 이해했다. 그들은 샤프의 대대에 속한 샤프의 병사들이었다.  또한 그는 이 병사들을 신뢰하고 있었다. 비록 적군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태라고 해도, 그 신뢰에는 변함이 없었다. "헉필드 중사 !"

"소령님 !"

"군기를 올려라 !"

 

마이클 트럼퍼-존스가 보니, 이런 엄숙한 순간에 어울리지 않게도 병사들은 씨익 웃고 있었는데, 다음 순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군기라는 것은 대대의 정상적인 깃발이 아니라, 껍질을 벗긴 자작나무 줄기에 헝겊조각을 매달아 놓은 것에 불과했다. 깃발은 비에 젖어 축축하게 늘어져 있었으므로, 먼거리에서는 그것이 병사들 자켓에서 뜯어낸 노란색 헝겊으로 장식한 망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볼 수 없었다. 막대기의 끝에는 노란 헝겊을 묶어놓아, 멀리서 보았을 때는 잉글랜드의 왕관처럼 보이게 꾸며 놓았다.

 

샤프는 이 참모장교가 놀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반편(half) 대대는 군기를 소지할 수 없다네, 미스터 트럼퍼-존스."

"예, 그렇지요, 소령님."

"그리고 프랑스군도 그걸 알지."

"그렇습니다, 소령님."

"그러니 그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

"여기에 정규 1개 대대가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

"그렇지."  샤프가 다시 남쪽을 쳐다보는 동안, 트럼퍼-존스는 왜 항복에 앞서 이런 속임수가 필요한지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트럼퍼-존스는 샤프에게 묻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샤프 소령의 얼굴을 보면 쓸데없는 질문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바로 그때, 리처드 샤프 소령은 남쪽 능선을 쳐다보면서, 여기는 정말 죽을 장소치고는 비참하고, 어울리지도 않고, 또 바보같은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그는 죽고 나면 다시 테레사를 만나서, 항상 그를 반겨주던 그녀의 갸름하고 해맑은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그녀의 얼굴의 자세한 모습은 그의 기억에서 점점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초상화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스페인 친척의 집안에서 자라고 있는 그의 딸은 엄마의 초상화도, 아빠의 초상화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영국군은 언젠가는 스페인 땅을 벗어나 진격해나갈 것이고, 그는 군대와 함께 움직여야 했다. 그러면 그의 딸은 샤프가 어릴 때 고아로 남겨졌듯이, 부모없이 살아가도록 남겨질 것이었다.  불행이 불행을 낳는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안토니아의 삼촌과 숙모는, 샤프 자신보다는 훨씬 좋은 부모가 되어줄 것이라는 위안감을 느꼈다.

 

계곡 위로 거센 바람이 비를 몰고와서, 시야를 흐리게 하면서 다리의 돌에 부딪히 휘잉 소리를 냈다. 샤프는 말을 탄 참모 장교를 올려다 보았다. "뭐가 보이나, 중위 ?"

"말탄 사람 6명입니다, 소령님."

"적군에게 기병대는 없지 ?"

"우리가 본 바로는 없었습니다, 소령님."

"그럼 저건 적군의 보병 장교들이겠군. 저자식들은 지금 우리를 어떻게 요리할까 작전을 짜고 있을거야."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날씨가 개여서, 햇빛이 따뜻하게 비추어 지난 겨울의 아픈 기억들을 날려버릴 수 있기를 바랬다.

 

그때 길이 걸쳐있는 능선 위가, 갑자기 프랑스군의 파란색 군복으로 가득 메워졌다. 샤프는 적군이 그를 향해 다가오는 동안, 몇개 중대나 되는지 세어보았다. 6개 중대였다. 그들은 전위대였고, 다리를 향해 돌격하여 점령하되, 대포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기다리라고 명령을 받았을 것이었다.

 

그날 아침, 샤프는 피터 달렘보드 대위의 말을 빌려서 프랑스군의 퇴각로를 10번도 넘게 돌아보았었다. 그는 프랑스군 지휘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고 적군이 어떻게 나올지 확신이 들때까지 혼자서 자기 자신과 토론을 해보았었다. 이제 적군은 그대로 행동하고 있었고, 그는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영국군 대부대가 뒤를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감히 길에서 벗어나 구릉지대로 피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면 대포를 버리고 가야했고, 그럴 경우 스페인 빨치산의 밥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훼방꾼들을 재빨리 날려버리려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한 도구는 그들의 대포일 것이었다.

능선 아래 150야드 지점에, 길이 계곡 바닥으로 내려오면서 마지막으로 굽이치는 지점에, 대포가 자리잡기에 딱 좋은 바위로 된 넓은 평지가 있었다. 거기서부터 프랑스군 포병은 샤프가 거느린 2열 횡대의 보병들에게 캐니스터(커다란 산탄총같은 포탄의 일종: 역주)를 퍼부어 피떡을 만들어버릴 수 있었다.  영국군 대오가 산산조각이 나면, 프랑스 보병들이 총검을 들고 다리를 향해 돌격을 해올 것이었다. 그 바위 평지에서라면 프랑스 포병은 자신들의 보병 머리 너머로 대포를 쏘아댈 수 있었다. 사실 그 바위 평지는 바로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샤프는 그날 아침 작업조를 보내 바위 바닥에서 포병들에게 걸리적거릴 만한 것들을 다 치워놓았었다.

그는 프랑스 포병이 바로 그 위치에 있기를 바랬다. 그는 프랑스군이 대포를 거기에 갖다놓으라고 초대장을 보낸 셈이었다.

그는 3대의 대포가 언덕길을 조심스레 내려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보병들이 달라붙어 바퀴에 브레이크를 걸어주고 있었다. 그들은 점점 더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포병들이 다리 건너의 평지까지 내려와 자리를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사우스 에섹스 대대의 몇안되는 라이플 사수들을 강둑에 배치시켜 놓았었다. 프랑스군은, 녹색 자켓을 입은 그 라이플 사수들을 보았을 것이고, 라이플 강선에 의해 회전하는 탄환의 정확성을 두려워할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군이 라이플 소총의 사정거리 밖에 대포를 위치시키기를 바랬다.

프랑스군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프랑스군 포병이 그 바위 평지로 와서 대포를 말에서 떼어내고, 탄약을 가져오는 것을 보면서 샤프는 속으로 안심했다.

 

샤프는 뒤돌아섰다. "총구 마개를 뽑아 !" 두줄로 늘어선 붉은자켓의 병사들이 머스켓 소총 총구에서 코르크 마개를 뽀아내고 격발장치를 감쌌던 헝겊을 풀어냈다. "거총 !"

머스켓 소총이 병사들의 어깨로 올라왔다. 프랑스군도 그 움직임을 볼 것이엇다. 프랑스군은 영국군 머스켓 사격의 속도를 두려워했다. 영국군의 잘 훈련된 머스켓 사격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스페인 전장에서 그 위력을 여러번 입증했었다.

샤프는 다시 병사들에게 등을 돌렸다.  "중위 ?"

"소령님 ?"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흠칫 놀라,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좀더 깊은 목소리로 다시 대답했다. "소령님 ?"

"그 손수건을 자네 군도에 묶어라."

"하지만 소령님...."

"명령에 복종하게, 중위." 이 말은 나직이 말해졌으므로 트럼퍼-존스를 제외한 다른 병사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은 무자비하게 오싹한 느낌을 주었다.

"예, 소령님."

 

프랑스군의 6개 공격중대는 250야드 거리에 있었다. 그들은 총검을 착검한 채, 종대로 이루어 있었고, 포병대가 일을 마치고 나면 진격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샤프는 식량주머니(haversack : haver는 네덜란드어로 귀리라는 뜻입니다. 역주)에서 망원경을 꺼내어 망원경 튜브를 잡아늘이고 대포를 관찰했다. 거대한 산탄총처럼, 깡통 속에 든 자잘한 소총탄을 죽음의 부채살 모양으로 쏘아대도록 만들어진 캐니스터 포탄이 세문의 대포 포구로 운반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때가 그가 소령으로 진급한 것이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소령으로서, 그는 지휘권을 이양하고, 다른 사람들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프랑스 포병들이 대포의 마지막 조준을 마치고 있는 이 순간, 그는 그 날의 진짜 일을 수행하도록 임무를 받은 라이플 중대와 자기가 함께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첫번째 캐니스터 포탄이 포구에 밀어넣어지고 있었다.

"지금이야, 빌 !" 샤프는 큰 소리로 말했다.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자기가 대답을 해야하는 건가 하고 어리둥절해하다가 그냥 잠자코 있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했다.

길의 왼쪽에, 길을 내려다보는 높은 바위 위에서, 하얀 화약연기들이 픽픽 나타났다. 1~2초 뒤에 라이플 소총 특유의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다. 이미 3명의 포병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것은 간단한 매복이었다. 1개 중대의 라이플 소총병들이 대포가 자리를 잡을 지점 근처에 매복하고 있었다. 그 수법은 샤프가 전에 사용했던 것이었고, 또 같은 방법을 썼는데, 언제나 통하는 방법 같았다.

 

프랑스군은 라이플 소총부대에 도통 익숙해지질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사격의 속도를 더 중요시하여 활강총신을 가진 머스켓 소총만을 사용했고, 장전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라이플 소총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녹색 자켓을 입고, 은폐물을 아주 잘 활용하고, 3백~4백보 거리의 유효사거리를 가진 라이플 소총병에 대해서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전체 포병대의 절반 정도가 쓰러졌고, 바위는 라이플 소총의 화약연기로 자욱해졌다. 하지만 총성은 계속되었고 총알은 이제 대포를 끄는 말들에게 퍼부어지고 있었다. 라이플 소총병들은 자신들의 화약연기에서 벗어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자꾸 위치를 바꿔가면서 말들을 조준하여 쏘았다.  이는 대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포병들을 쓰러뜨려 대포를 발사하지 못하게 막았다.

 

대포 뒤의 길 위에 있던 적군의 후위부대가 구보로 달려왔다. 그들은 바위 밑에서 진열을 짜고 바위 위로 올라가려 햇지만, 경사는 급했고, 라이플 소총병들은 중무장한 프랑스 보병들보다 훨씬 잽쌌다. 하지만 프랑스 보병들의 공격으로 인해, 최소한 라이플 소총병들이 포병들에 대한 사격을 중단하게 되었고, 이제 살아남은 포병들이 포가 밑에서 다시 포탄 장전을 마무리하기 위해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샤프는 씨익 웃었다.

저 구릉 지대 속 어딘가에 반은 독일인이고 반은 영국인인 윌리엄 프레데릭슨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샤프가 아는 그 어떤 병사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의 부하들이 붙여준 그의 별명은 '달콤한 윌리엄'이었는데, 아마 그건 그의 애꾸눈 안대와 심한 흉터가 진 얼굴이 너무나 무시무시해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달콤한 윌리엄은 살아남은 포병들이 엄폐물로부터 완전히 기어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길의 오른쪽에 숨어있던 라이플 소총병들에게 사격을 개시하도록 했다.

마지막 포병들까지 쓰러졌다. 프레데릭슨의 명령에 따라, 라이플 소총병들은 말을 탄 적의 보병 장교들로 표적을 바꾸었다. 적군은 몇발 되지도 않는, 그러나 정확히 조준된 라이플 총탄에 의해 포병대 전체를 잃고 갑자기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제 샤프가 그의 다른 무기를 뽑아들 차례였다.

 

"중위 ?"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그의 군도 끝에 묶어놓은 축축한 흰 손수건을 숨기려고 하다가 샤프를 쳐다보았다. "소령님 ?"

"적군에게 가서 내 인사를 전하고, 무기를 내려놓도록 제안해보게."

트럼퍼-존스는 이 키가 크고 검은 얼굴을 한 라이플맨을 쳐다보았다. "저들보고 항복하라고요,  소령님 ?"

샤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우리가 항복하자고 제안을 하는건가 ?  응 ?"

"아닙니다, 소령님." 트럼퍼-존스는 조금 지나치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1500 명의 프랑스군이 불과 400 명의 비에 젖고 고립된 영국군에게 항복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지 황당해했다. "물론 아닙니다, 소령님."

"저들에게 우리가 1개 대대를 예비병력으로 가지고 있다고 해. 그리고 그 뒤에는 6개 대대가 있다고 하고. 또 구릉지대에는 기병대가 있고, 곧 대포가 도착한다고 하게. 아무거나 거짓말을 지어내라고 ! 하지만 반드시 내 인사를 먼저 전하고, 이미 쓸데없이 많은 병사들이 죽지 않았냐고 말하도록 하게. 그리고 그들의 군기를 폐기할 시간을 주겠다고 말하게."  그는 다리 건너를 쳐다보았다. 프랑스군이 바위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지만, 아직도 충분한 숫자의 라이플 총성이 울리고 있었고, 그 뜻은 아직도 이날 오후에 쓸데없이 인명이 살상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어서 가게, 중위 ! 15분 줄 것이고 그때까지 항복하지 않으면 내가 공격하겠다고 하게.  나팔수 ?"

"소령님 ?"

"기상 나팔을 불어라. 중위가 적군에게 도달할 때까지 계속 불어."

"예, 소령님."

 

나팔 소리로 경고를 받은 프랑스군은 한명의 기병이 그들을 항해 손수건을 묶은 칼을 높이 들고 달려내려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예의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군은 바위 사이를 잽싸게 뛰어다니는 라이플 소총병들에게 사격을 하던 것을 중단했다.

전투의 화약 연기는 바람에 흩날리는 비 속에서 흩어져갔다. 트럼퍼-존스는 프랑스 장교들의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샤프는 뒤로 돌아섰다. "편히 쉬어 !"

 

5개 중대는 긴장을 풀었다. 샤프는 강둑을 쳐다보았다. "하퍼 상사 !"

"소령님 !"  6피트의 키를 가진 샤프보다도 4인치는 더 큰 커다란 사나이가 강둑에서 올라왔다. 그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샤프와 함께 이 붉은 코트 연대로 흘러들어오게된, 몇안되는 라이플맨 중의 하나였다. 사우스 에섹스 대대는 붉은 코트를 입고 유효사거리가 짧은 머스켓 소총을 사용했지만, 샤프의 예전 중대의 다른 라이플맨들처럼 그도 아직 녹색 자켓을 입고 라이플 소총을 들고 다녔다. 하퍼는 샤프 옆에 섰다. "저 자식들이 굴복할까요 ?"

"저들에겐 다른 도리가 없어. 자기들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거야. 저들이 1시간 안에 우리를 제거하지 못하면, 저들은 끝장이야."

하퍼는 웃었다. 샤프에게 친구가 있다면 바로 이 상사가 그 친구였다. 그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모든 전투를 함께 했었다. 하퍼가 샤프와 나눌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샤프의 죄책감 뿐이었다.

샤프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추위에 손을 비볐다. "차가 마시고 싶군, 패트릭. 차를 끓여도 좋다는 허가를 내리겠네."

하퍼는 미소를 지었다. "예, 소령님." 그는 얼스터(아일랜드의 지방명:역주)의 거센 억양으로 말했다.

 

샤프가 손으로 감싸고 있던 차가 식기도 전에, 마이클 트럼퍼-존스 중위가 프랑스군 대령과 함께 돌아왔다. 샤프는 이미 엉터리로 만든 가짜 군기를 치우도록 명령해 놓았었다. 그는 절망적인 적군을 만나기 위해 앞으로 나갔다. 그는 대령이 항복의 표시로 내미는 군도를 받아들이기를 사양했다. (이는 상대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을 뜻하는 당시의 예절입니다: 역주) 대포 없이는 다리를 점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프랑스군 대령은 샤프가 내놓은 항복 조건에 동의했다. 대령은, 샤프 소령같은 명성높은 군인에게 항복한다는 것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샤프 소령은 감사를 표시하고, 차를 권했다.

 

두 시간 후, 프레스턴 장군이 그의 5개 대대와 함께 도착했다. 그는 그의 앞에 머스켓 총성이 들리지 않는 것에 당황해하고 있었는데, 도착해보니 1500 명의 프랑스군이 포로가 되었고, 3문의 대포와 함께 마차 4대 분량의 보급품이 노획되어 있었다. 프랑스군의 머스켓 소총은 길가에 쌓여있었다. 그들이 수비하던 마을에서 약탈했던 약탈품들은 이미 샤프의 부하 병사들의 배낭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사우스 에섹스 대대의 병사 전체는 물론, 프레데릭슨 대위의 라이플맨들 모두가 부상조차 당하지 않았다. 프랑스군은 7명이 전사하고 21명이 부상을 입었다.

 

"축하하네, 샤프 !"

"고맙습니다, 장군님."

장교들이 끊이지 않고 다가와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는 그들을 떨쳐냈다. 그는 대포가 없이는 샤프의 부대를 깨뜨릴 수 없었으므로 프랑스군은 사실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축하가 끊이지 않았고, 마침내 이런 칭찬이 쑥스러워 샤프는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거센 강물을 건너, 사우스 에섹스의 보급관인, 통통하게 살이 찐 콜립이라는 이름의 장교를 찾았다. 그 보급관은 지난 밤에 샤프의 절반의 대대와 함께 야간 행군을 했었다.

샤프는 바위가 갈라진 틈 사이로 콜립을 몰아 붙였다. 샤프의 얼굴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넨 정말 운이 좋아, 미스터 콜립."

"예, 소령님." 콜립은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그는 불과 2달 전에 사우스 에섹스에 합류했었다.

"왜 자네가 운이 좋은지 말해보게, 미스터 콜립 ?"

콜립은 불안한 듯 침을 삼켰다. "아마 처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소령님 ?"

"처벌은 절대 없을걸세, 미스터 콜립."

"없다고요, 소령님 ?"

"왜냐하면 그건 내 잘못이었으니까. 자네가 짐을 다 도맡겠다고 했을 때 난 자네를 믿었네.  내가 틀렸지. 자넨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

"정말 죄송합니다, 소령님."

 

지난 밤에, 샤프와 그의 대위들은 프레데릭슨 대위의 라이플맨들과 함께 먼저 길을 떠났었다. 그는 길을 안내하기 위해 먼저 떠났었고, 중위들과 함께 콜립이 나머지 병사들을 이끌고 오도록 했었다. 그가 되돌아 왔을 때, 콜립은 그가 힘들게 건넜던 깊은 계곡 입구에서 있었다. 샤프는 라이플맨들을 이끌고 계곡을 건너, 가파른 강둑을 내려가 허리까지 차오르는 얼음처럼 차가운 강물을 건너, 얼음이 얼 것같은 옷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건너편 강둑을 기어올랐었다.

그가 5개 중대를 데리러 되돌아왔을때, 엄청난 재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급관인 콜립은, 붉은코트의 병사들이 좀더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묘안을 짜냈었다. 머스켓 소총의 어깨끈을 모아 묶어서 밧줄을 만들어, 매우 긴 고리를 만들었다. 이것을 강둑 사이에 걸쳐놓고 거기에 모든 병사들의 무기와 배낭과 수통과 식량주머니를 차례로 매달아서 순환식으로 잡아당겼던 것이다. 마지막 짐을 그런 식으로 건네고 있을 때, 어깨끈의 매듭이 풀리면서 짐이 물 속에 빠졌는데, 그 짐은 사우스 에섹스 대대의 탄약 전체였던 것이었다.

프랑스 군이 샤프가 지키는 다리에 도달했을 때, 탄약이 있었던 것은 샤프의 라이플 중대 뿐이었다. 샤프는 사실상 무기가 없었으므로 프랑스군은 그저 한번의 일제 사격으로 다리를 점령할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절대, 미스터 콜립, 절대 병사에게서 무기와 탄약을 떼어놓지말게. 약속할 수 있나 ?"

콜립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령님."

"자네가 내게 뭔가 한병 사야 한다고 생각하네, 미스터 콜립."

"예, 소령님, 물론입니다, 소령님."

"그럼 이만, 미스터 콜립."

 

샤프는 걸어나왔다. 그는 갑자기 웃었는데, 그건 아마 서쪽 하늘의 구름이 갈라지면서 붉은 석양 빛이 그의 승리의 장면을 비추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패트릭 하퍼를 찾아나서, 그의 옛 라이플맨 부하들과 서서 차를 함께 마셨다. "오늘 아주 수고 많았어들."

하퍼는 웃었다. "그 자식들에게 우리에게 탄약이 없었다는 거 말했어요 ?"

"항상 상대방에게 자존심만큼은 남겨둬야지, 패트릭." 샤프는 웃었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 이후로 거의 웃는 일이 없었다.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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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razom 2017.06.05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가막히게 재밌네요!!
    번역 감사합니다 현장감있어요^^

  2. ㅇㅇ 2017.06.06 10: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간에 머스킷 소총의 유효사거리가 60야드라는 주석을 보고 잠시 당황했네요;; 소총이라 붙으면 강선이 파인 머스킷만을 뜻하는 줄 알았거든요ㄷㄷ 일반적으로 보병이 들고다니는 머스킷은 '머스킷 소총'으로 번역하고, 강선이 파인 것은 '라이플 소총'이라 번역하는 건가요? 보통 어떻게 번역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 nasica 2017.06.06 13: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총이라는 단어에 정확히 상응하는 영어 단어는 사실 따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Firearm이나 gun 등도 우리가 부르는 '장총' '소총'과 정확하게 맷칭되지는 않지요. 당시 보병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던 활강총신 소총을 musket이라고 하고, 총신 안에 강선이 새겨진 소총을 rifle이라고 합니다.

  3. [][] R.F.[][] 2019.04.24 1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Haversack'의 어원을 여기서 처음으로 알게되었네요. 그런데 샤프가 망원경을 꺼내던 하버색은 '식량 주머니'라는 직역 보다는 '잡낭'이라는 번역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군장에서 등에 메는 배낭 외에 옆구리에 매던 작은 보조 가방을 위에서 언급된 하버색 혹은 빵주머니(Bread bag)라고 부르는데 하버색의 어원과 다른 이름 처럼 분명 식량을 담아다니던 가방이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자질구레한 개인용품을 보관하는 용도 등 다양하게 활용됐기에 '잡낭(雜囊)'이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전형적인 개인 물품인 망원경이 나온 것이지요(물론 그 안에 약간의 비스킷이나 빵조각도 함께 있었겠지만 말이죠 ^^).
    사실 쓰고 보니 어원 그대로의 식량 주머니라는 번역이 전혀 지적받을 만한 사항은 아닌지라 죄송합니다만, 그냥 생각나서 적어보았습니다.
    나시카님의 모든 글들은 항상 유익하게 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