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경에는 맥주 이야기가 없을까 ?

잡상 2019.06.10 06:30 Posted by nasica


구약성서 중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 모세가 유대민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는, 즉 출애급하는 장면입니다.  몇가지 신기하게 생각했던 점이 있었는데, 가장 의아했던 부분은 왜 저렇게 유대인들이 자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배신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현대인들처럼 하나님의 기적을 직접 목격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신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그런 기적들을 여러번 집단으로 목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온갖 기적을 베풀면서 유대민족을 탈출 시켜주었고, 또 사막에서 물이 없어 목이 마르자 샘물을 터뜨려 주셨으며, 먹을 것이 없자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주셨고, 만나만 먹으니 질린다 고기를 먹게 해달라 라며 아우성을 치자 메추리들을 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모세가 잠깐 자리를 비우자마자 하나님을 잊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으니, 유대민족이 단체로 메멘토에 걸린 것도 아닐텐데 왜 저러나 싶었습니다. 

그런 심각한 와중에도 제 관심은 음식 종류에 대해 집중되었습니다.  보니까 이스라엘인들이 마늘과 파를 식생활에 도입한 것이 이집트에서라더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그것도 공짜로 먹었다고 하니,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건설하던 노동자들이 학대받는 노예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상당한 복지 혜택을 받으며 일하던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진짜였나보다 싶었습니다.

(민 11: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민 11: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민 11: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실제로 이집트 기록에도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에게 마늘을 지급했다는 기록이 있고, 또 투탄카멘 파라오의 피라미드 안에서 마늘이 발견되기도 했다지요.  흔히 성경을 역사책으로 보면 안 된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성경도 100% 모두는 아니라도, 꽤 중요한 역사적 사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 노동자들에게 급료로 빵과 맥주를 지급할 정도로 고대 이집트는 맥주를 많이 마시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집트에서 300년 가량 머물렀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늘과 파 먹는 법은 배웠으면서 맥주 만들어 마시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면 매우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포도주 이야기는 자주 나오지만 맥주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가령 예수님께서도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지 맥주로 바꾸지는 않으셨지요.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

 

 



저는 처음에 이 의문이 들었을 때, 혹시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혹자는 215년 간, 혹자는 430년 간) 살았다는 이야기 자체가 허구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집트의 모든 문서나 비석, 벽화 등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규모 거주와 탈출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것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뭐 기나긴 이집트 역사를 생각해보면 별 영향력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300년 살다가 나간 것이 기록할 만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집트에서 300년 살다 온 민족이 맥주를 모른다는 것은, 마치 미국에서 평생을 보낸 재미교포라는 사람이 햄버거를 모른다는 소리와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개 포도주와 함께 등장하는 술이 있습니다.  바로 '독주'라고 표현되는 술이 바로 그것입니다.  가령 사무엘상 1장 도입부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나중에 사무엘을 낳게 되는 늙은 한나가 신전에 가서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느라 한참을 입술로 중얼중얼거리니 제사장인 엘리가 보고 이렇게 타이릅니다.  "할마씨요, 와 그렇게 살아요 ?  고마 술 끊고 집에 가이소."  그러자 한나가 날카롭게 대꾸합니다.  "아니거든요 ?  저 와인도 양주도 안 마셨거든요 ?"

 



물론 이건 제가 이해한 장면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 성서에 나오는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삼상 1: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삼상 1: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삼상 1: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저 '포도주나 독주'라고 표현한 것이 영문판에는 뭐라고 되어 있나 찾아보면 보통 'wine or strong drink'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말로는 strong drink가 독한 술이라는 뜻의 '독주'라고 번역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보통 우리 말로 독주라고 할 때는 막걸리나 정종, 백세주 같은 것을 독주라고 부르지는 않고 소주나 빼갈, 위스키나 보드카, 브랜디나 진 같은 것을 독주라고 합니다.  즉, 단순 발효주가 아니라 발효주를 증류해서 알코올 함량을 잔뜩 높인 술을 독주라고 부르지요.  하지만 알코올 증류 기술은 일반적으로는 기원후 8세기 아랍 쪽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지요.  최후의 사사로 일컬어지는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아직 철기 문명조차도 가지고 있지 못한 시기였습니다.  가령 사울이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된 이후 블레셋과 전투를 앞두고 있었을 때, 그의 군대 중에 제대로 된 칼이나 창을 든 자는 사울과 그의 아들 뿐이었습니다.

(삼상 13:19)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삼상 13:20)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
(삼상 13:21)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삼상 13: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이렇게 기술 문명이 뒤떨어진 시대의 이스라엘에서 증류주를 만들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한나는 '포도주나 독주'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

이건 영어 표현에서 일반적으로 strong drink라고 하는 것은 그냥 알코올성 음료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코올이 없는 음료를 soft drink라고 부르는 것과 대조적으로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알코올이 들어간 것을 hard drink라고 하지요.  반대로 알코올이 없거나 있어도 매우 약한 것은 thin drink라고도 합니다.  사자왕 리처드가 등장하는 영국 역사 소설 아이반호(Ivanhoe)의 한 장면에도 그런 부분이 나옵니다.  사자왕 리처드가 신분을 감추고 그저 '흑기사'라는 신분으로 영국에 잠입했을 때, 숲 속에서 터크 신부를 만나 그 신부의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로빈훗에 나오는 뚱뚱하고 힘센 터크 신부는 여기서 리처드에게 말린 완두콩과 맹물을 저녁으로 같이 먹자고 내주는데, 리처드는 이런 음식과 마실 것을 먹고는 터크 신부가 저런 얼굴을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한마디 합니다.

“It seems to me, reverend father,” said the knight, “that the small morsels which you eat, together with this 

holy, but somewhat thin beverage, have thriven with you marvellously."


기사는 말했다.  "내가 보기엔 말이오, 경외하는 신부님께서 드시는 이 보잘 것 없는 음식과 이 신성하지만 어째 좀 밍밍한 음료(thin beverage)에 비해 신부님의 풍채가 너무 좋으신 것 같습니다."

원래 구약 성서 곳곳에 나오는 포도주와 독주라는 표현에서, 독주라는 단어의 히브리 원어는 shekhar입니다.  이는 포도주와 같은 과일 발효주와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곡물 발효주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곡물로 만든 술을 뜻하는 것입니다.  원래 이집트 뿐만 아니라 바빌로니아 등 고대 중근동 지방에서는 맥주를 많이 마셨습니다.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도 맥주에 대한 언급이 있을 정도였지요.  그러니까 이집트에서 300년, 바빌로니아에서 70년을 보내야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맥주를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또 고대 중근동에서는 맥주가 일상적 음료일 뿐만 아니라 약으로도 처방되었는데, 바로 그런 부분이 성서 잠언에도 나옵니다.  

(잠 31:6)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잠 31:7) 그는 마시고 자기의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설마 성서에서 알코올 도수 40도의 독한 술을 곧 죽을 정도로 허약한 사람에게 주라고 하겠습니까 ?  저기서 말하는 독주란 맥주를 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실제로 영어 성서 영문판 중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에서는 저 shekhar라는 단어를 strong drink라고 번역하지 않고 그냥 beer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Proverbs 31:6  Let beer be for those who are perishing, wine for those who are in anguish!
Proverbs 31:7  Let them drink and forget their poverty and remember their misery no more.

이렇게 구약 시대에는 맥주를 많이 빚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왜 신약 시대에는 맥주를 마시지 않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딱히 설명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호프도 없고 냉장고도 없던 시절의 맥주는 사실 맛이 별로 없었을텐데, 그런 점 때문에 포도주와의 오랜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또 전통적으로 곡물이 부족하여 맥주는 마시지 않고 포도주만 마셨던 그리스 세력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을 통해 페르시아를 격파하고 중근동 지방까지 뻗치면서 더욱 포도주의 득세가 퍼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약간 이야기가 옆으로 샙니다만, 제가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전도서 11장 1~2절입니다.  

(전 11: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 11: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 구절은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살라는 취지의 이야기로 저는 인식했습니다.  그런데 저 1절 부분의 '떡을 물 위에 던지라'는 부분은 정말 이해가 안 갔습니다.  며칠 뒤에 도로 찾을 거라면 그냥 애초에 던지지를 말 것이지 왜 떡을 물 위에 던지라는 것일까요 ?  저게 당시 흔하게 사용되던 히브리어의 무슨 관용구 같은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저는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으면 그건 번역의 문제라고 보고 - 저는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못하니까 - 영문판을 찾아보곤 합니다.  그런데 거기도 똑같이 번역되어 있더라고요.

Ecclesiastes 11 King James Version (KJV)
Cast thy bread upon the waters: for thou shalt find it after many days.
2 Give a portion to seven, and also to eight; for thou knowest not what evil shall be upon the earth.

그런데 shekhar를 beer라고 과감히 번역하는 New International Version 버전에서도, 이 구절의 번역을 두고 엄청나게 고민을 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Ecclesiastes 11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Ship your grain across the sea; after many days you may receive a return.
2 Invest in seven ventures, yes, in eight; you do not know what disaster may come upon the land.
바다 건너 곡물 무역을 해라.  시간이 지나면 수익을 얻을 것이니라.
7~8개의 사업을 벌여라.  어떤 재앙이 올지 모르는 일이니라.

결국 원래의 '주변에 베풀고 살라'는 취지에서 약간 벗어나서 '하나님을 믿고 투자는 과감하게 하라'는 식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이 버전이 오히려 좀 이상한 번역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서 고고학회(Biblical Archaeology Society)의 Michael M. Homan이라는 분은 '떡을 물에 던지라'는 표현을 맥주를 빚으라는 것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원래 고대 이집트의 맥주는 먼저 빵을 만든 뒤 그 빵을 잘게 부수어 물에 풀어넣어서 만들었다고 하지요.  그렇게 보면 정말 딱 맞아 떨어지긴 합니다.  맥주를 빚어서 혼자 마시지 말고 주변 사람 7~8명에게 베풀라는 이야기지요.  

원래 이렇게 성서 해석을 교회나 무슨 위원회 같은 것에 따르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기 시작하면 그게 이단의 시작이라고 하지요.  그러니 제가 감히 '저 부분은 기존 성경의 해석이 틀렸고 저건 맥주 빚는 이야기가 맞다'라고 주장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메시지 성경'이라는 좀 특이한 버전의 성경이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이라는 목사님이 쓰신 이 성경은 이해하기 어려운 성서를 굉장히 파격적으로 쉽게 풀이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에게 쉽게 이해를 시키려다보니 '커피'라든가 '베스트 드레서' 등등의 파격적인 단어가 막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교단에서는 이 성서를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기도 하고 유진 피터슨 목사를 이단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제가 다니는 장로교 통합파 교회에서는 참고용으로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메시지 성경의 일부입니다.  뭐 취지는 이해가 가는데, 예수님이 커피 운운하시는 것으로 번역하니까 좀 이질감이 들긴 하더군요.)



이 메시지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과연 저를 실망시키지 않고 정말 파격적이더군요.  떡이니 물이니 하는 지엽적이고 해석 곤란한 것들은 다 없애버리고 그냥 '너그럽게 베풀거라, 자선 활동에 투자하여라' 라고 번역을 해놓았습니다.  저는 성경을 글귀 하나하나에 집착해서는 안되고 전체적인 말씀 이해에 집중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저 메시지 성경의 전도서 11장 1절 해석이 굉장히 뛰어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Source : https://preachersinstitute.com/2012/12/26/did-ancient-israelites-drink-beer/
https://academic.oup.com/jn/article/131/3/951S/4687053

 

Historical Perspective on the Use of Garlic

Abstract. The objective of this review is to examine briefly the medical uses of garlic throughout the ages and the role that it was considered to play in prev

academic.oup.com

 

제 블로그를 오래 출입하신 분들께서는 눈치를 채신 분들이 꽤 있겠습니다만, 저는 원래 역덕이나 밀덕이라기 보다는 돈덕 먹덕에 가깝습니다.  즉, 역사 속의 돈 이야기와 먹을 것 이야기에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최근 군인 연금 편이나 사탕무 설탕 제조법의 선구자 아카르트 편에서도 탈러(thaler)니 펜스(pence)니 하는 먼나라 옛나라의 돈 단위를 적었지요.  저는 그런 옛 화폐 단위를 적을 때 당시 화폐 속의 금이나 은의 함량을 기준으로 저 나름대로 환산을 합니다.   물론 현대의 금값이나 은값도 환율과 국제 투기 세력의 움직임에 따라 하도 변화무쌍하여 정확한 환산은 의미가 없고, 대충 1만원인지 10만원인지 구분하는 수준에서 만족하는 편이지요.


이렇게 제가 기준을 정한 것은 당시 화폐는 그 금화은화 속에 든 귀금속의 가치와 대략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꼭 그랬던 것은 아니고 시대와 국가에 따라 다 약간씩 다릅니다만, 이는 영국 파운드화 표시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영국 파운드화의 표시는 £ (L)입니다.  왜 파운드의 P가 아니라 L일까요 ?  이는 원래 영국과 프랑스의 관계가 얼마나 깊은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예인데, L은 바로 프랑스어의 livre를 뜻합니다.  Livre라는 말은 프랑스어로 책을 뜻하기도 하지만, 역시 무게의 단위로 영국 파운드와 같은 뜻을 가집니다.  또한, 프랑스의 화폐 단위이기도 했는데, 어원적으로 은 1파운드 무게의 가치를 가집니다.  물론 이건 어원일 뿐, 인플레에 혁명 등이 겹치며, 그 가치는 시대에 따라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가령 1795년 프랑스 혁명 정부가 프랑(franc)화를 제정할 때, 1프랑의 가치는 4.5g의 은으로 정했습니다.  당시 1리브르는 4.505g의 은이었고요.  또 1816년 가치로 따져보면, 영국돈 1파운드는 은 137.27g에 해당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주화 속 귀금속의 가치만으로 당시 1파운드의 가치가 현재 1만6천원이라고 단언하는 것은 분명히 무리수가 다분한 일입니다.  농업 및 공업 생산성이 현대와는 워낙 차이가 크니까요.  가령 면으로 된 남성용 바지 한 벌의 당시 가격과 현재 가격이 귀금속 기준으로 볼 때 같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는 밀가루나 빵, 고기, 맥주와 같은 식료품 가격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현대의 생산성이 훨씬 좋으니 가격도 훨씬 낮겠지요.  특히 나폴레옹 시대 당시 가정 경제에서는 식비 비중, 소위 엥겔 지수가 훨씬 높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감안해서 볼 만한 자료가 없을까요 ?




(예수님께서 '케사르의 것은 케사르에게'라고 말씀하신 돈이 바로 데나리우스입니다.  불행히도 여기에는 케사르나 아우구스투스의 얼굴이 나온 데나리우스 은화는 없네요.)




일단 성경이 있습니다.  성경에도 돈과 먹을 것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가령 마태복음 20장 2절을 보면 당시 농장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 데나리온(Denarius)이라고 나옵니다.  어떤 분들은 성경은 은유일 뿐 장사꾼들 장부책이 아니라고 하실지 모릅니다만, 다른 역사 자료에도 당시의 비숙련 노동자의 일당이 1 데나리온이라고 나오니 믿으셔도 될 듯 합니다.


(마 20: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마 20:2) 그가 하루 한 1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로마 데나리온 은화의 은 함량이 시대가 흐름에 따라 계속 하락하는 그래프입니다.) 




로마 시대의 은화인 데나리온은 시대에 따라 은 함량이 크게 줄어들어 기원후 3세기에 이르면 30%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예수님 시대에는 98% 정도의 함량을 유지했고, 1 데나리온의 무게는 3.9g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즘 은 1g의 가치는 749원이니 이걸 이용해서 계산하면 1 데나리온의 가치는 3.9g * 0.98 * 749원 = 약 2863원입니다.  세상에 !  요즘 최저임금으로 따져도 20분 일하면 받을 수 있는 금액인데 당시에는 하루 종일 일해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


요즘 파리바게뜨의 440g짜리 프레쉬식빵 1개가 2300원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노동자들은 하루에 식빵 1개와 거기에 곁들여 먹을 양파를 좀 사면 끝나는 것이었을까요 ?  그래가지고 어떻게 가족을 먹여살리고 옷도 지어입고 집세도 냈을까요 ?  여기에 대해서도 성경이 답을 줍니다.


(요 6:7)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예수님이 드시던 빵은 납작한 난이나 토르띠야 같은 빵이라고 하지요.  올리브유나 물에 찍어 적셔 먹었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누가 예수님을 배신하겠나이까 라고 물으니 예수님이 '내 뒤에 빵을 찍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성서에서는 마태복음 26장 23절에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라고 나옵니다. )




이건 예수님이 유명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기 직전의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모여 있는 군중 오천명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려 하시자 제자인 빌립이 '배식량을 줄여서 제공하더라도 오천명 분의 빵값에 200 데나리온 이상이 필요합니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당시 로마 군단병에게 주어지는 배식량은 돼지고기나 치즈, 신 포도주(posca) 외에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밀가루 약 900g이었습니다.  밀가루 900g으로 빵을 만들면 아마 1100g 정도의 빵이 나왔을 것입니다.   아침은 좀 적게 200g만 먹는다고 치면 점심과 저녁 한끼에 약 450g, 그러니까 대략 1파운드(453g)의 빵을 먹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활동량이 무척 많은 로마 군단병들 이야기이고, 예수님의 설교 장소에 모인 유대 민간인들은 그것보다는 더 적게 먹었을 것입니다.  지금도 미군에서는 병사 한명이 하루 3250 kcal를 섭취하는 것이 표준인 것에 비해, 일반 민간인 기준으로는 성인 남성이 하루 2500 kcal면 충분한 것으로 되어 있지요.  당시 예수님 설교를 들으러 왔던 민간인들에게 450g의 빵이면 한끼로는 약간 많은 양이었을 것이고, 미군과 현대 민간인 비율을 그대로 적용하면 350g 정도의 빵이 적정량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이 200 데나리온 어치의 빵이라면 배식량을 줄여서 제공해도 부족하다고 했으니, 아마 300g의 빵 5000개에 200 데나리온이 들었다는 이야기지요.  


즉, 당시 비숙련 노동자 하루 일당 1 데나리온으로는 25개 x 300g 짜리 빵, 즉 7.5kg의 빵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까 파리바게뜨 440g짜리 프레쉬식빵이 개당 2300원이라고 했지요 ?  그렇게 계산하면 파바 식빵 7.5kg을 사려면 대략 39,200원 정도가 듭니다.  물론 아마 파바 식빵은 달걀과 우유, 설탕 등이 들어간 것이라 예수님 시대의 빵보다 더 비싼 것이겠지만 그런 점은 무시하시지요.  즉, 당시 1 데나리온은 현재 가치로 대략 39,200원의 가치를 갖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제대로 된 1인분의 빵을 그냥 1파운드 즉 453g이라고 보면, 당시 하루 일당으로 16.5인분의 빵을 살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왕인 조지 3세의 얼굴이 들어간 1실링짜리 은화입니다.  당시 영국군 병사들이 하루 뺑이치고 나면 이 은화 1닢을 받았습니다...만 그나마 온전히 받지도 못했습니다.  식비 등의 각종 공제가 무려 60%에 달했거든요.)




예수님 시대는 그렇다치고, 제 블로그의 주요 주제인 나폴레옹 시대는 과연 어땠을까요 ?  당시 영국군 병사들의 하루 일당이 1 실링(shilling) = 12 펜스(pence, 단수형 penny)였습니다.  금 0.31g에 해당하는 가치였지요.  금 1g의 가치로 환산하면 당시 영국 병사의 일당은 현재 가치로 대략 15,536원 정도입니다.  당시 1 실링으로는 빵을 몇 g 정도 살 수 있었을까요 ?   여기에 대해서는 자료를 찾기가 어려웠는데, 최근에 (나폴레옹 시대보다 약간 앞선 시대이긴 하지만) 괜찮은 웹 사이트 자료를 찾았습니다.  ( http://www.johnhearfield.com/History/Breadt.htm )




(4 파운드 짜리 빵 한덩어리의 가격입니다.  d는 penny를 뜻하는데, 12 pence = 1 shilling입니다.)




이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표에 따르면, 나폴레옹 전쟁 발발 직전까지 4 파운드 짜리 빵 한덩어리(a quartern loaf)의 가격은 대략 6펜스(즉 6/12 실링)였습니다.  계산하면 병사의 하루 1실링의 일당으로 한끼분인 1 파운드(453g) 짜리 빵 8인분어치를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병사들의 일당이 비숙련 노동자의 일당과 비슷했을까요 ?  글쎄요.  같은 사이트의 자료를 보면 당시 숙련공의 일주일치 급여가 대략 28실링이었으니, 일당은 (일요일은 계산하지 않는다고 치고) 4실링입니다.  비숙련 노동자의 일당은 아마 2실링 정도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당시 sergeant (한국군 계급으로는 병장, 실제로는 가장 낮은 부사관급) 계급의 일당이 1.5실링인 것을 생각하면, 정말 그럴 것 같고요.   그렇게 비숙련 노동자의 일당이 2실링이라고 계산하면 빵 16인분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아까 계산했던, 예수님 시대의 하루 일당으로 살 수 있었던 빵 16.5인분과 거의 동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라색은 숙련공의 일당에서 2파운드 빵 1덩어리 가격이 차지하는 %로 표시된 비중입니다.  파란색은 숙련공의 1주일치 급여를 실링 단위로 표시한 것이고요.  그러니까 17세기 초반에는 하루종일 일해서 빵 5인분어치 사면 끝인 셈입니다. )




실제로 당시 영국군의 일일 배식량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빵 또는 밀가루      1.5 파운드

쇠고기                    1 파운드

완두콩                 0.25 파인트

버터 또는 치즈         1 온스

쌀                          1 온스

럼주                     0.3 파인트  (또는 포도주 1 파인트)



그러나 이건 공짜가 아니었습니다.  모병제 군대라서 이것도 다 돈 내고 먹어야 했으며, 이런 식비 뿐만 아니라 세탁비니 의료비니 하는 비용으로 영국군 병사는 하루 일당 중 60%를 공제당했습니다.  그야말로 벼룩의 간을 빼먹는 셈이었지요.   빵 1.5 파운드라면 0.16 실링 정도의 비용이었을텐데, 쇠고기와 럼주 등을 다 합해서 0.6 실링을 내야 했던 것을 보면 군대라고 특별히 더 싼 가격으로 병사들에게 제공했던 것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래도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했던 영국군 병사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18세기 말에는 소빙기라고 할만큼 저온이 계속 되어 흉년이 자주 있었던데다 나폴레옹 전쟁이 시작되면서 프랑스나 러시아로부터의 곡물 수입이 끊겼고, 그에 따라 밀을 포함한 곡물 가격이 2배 이상 껑충 뛰었던 것입니다.  프랑스 대혁명도 이런 기후 변화와 그에 따른 흉년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을 정도입니다.  당연히 그에 따라 육류 및 기타 식품 가격도 뛰었지요.   그 어려운 시절 먹을 것 걱정을 안 하게 된 것만 해도 다행인데 술까지 준다고 하니 좋았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대포알에 두동강이 날 걱정은 그리 달갑지 않았을 것입니다.  




(16세기부터 19세기 초반까지의 곡물 가격의 변화입니다.)



Source : MONEY 화폐의 역사 : 캐서린 이글턴, 조너선 윌리엄스 (말글빛냄사)

https://en.wikipedia.org/wiki/Denarius

http://www.johnhearfield.com/History/Breadt.htm

https://www.livestrong.com/article/319101-roman-soldier-diet/

http://www.comitatus.net/research_files/rations.pdf

http://www.napoleonguide.com/ukwages.htm

https://www.army.mil/article/94874/army_studying_special_operators_nutritional_needs

기독교는 명실상부 현재 전세계 1위 종교로서, 전체 인구의 31%가 믿는 종교입니다.  2위인 이슬람 22%를 훨씬 뛰어넘는 숫자이고, 인구수로 밀어붙이는 힌두교 14%도 가뿐히 제압하는 숫자입니다. 


저도 (열심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매주 교회에 나가고 성경도 가끔 읽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부터 기독교, 그 중에서도 개신교는 별의별 희한한 목사님과 신도들 덕분에 세간에 화제도 많이 뿌리고 비웃음도 많이 사는 종교입니다.  특히 최근에는 창조과학이니 요가를 금지해야 하느니 하는 사람들 덕분에 더욱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별 큰 영향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의외로 이슬람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우며 이슬람이 국내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자는 선동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물의는 바로 동성애에 대한 공개적인 적대감을 노출하며 '차별 금지법'을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저를 비롯한 많은 상식적인 사람들을 실망시킨 부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느 한가한 사람들이 세어보니, 하나님이 직접 죽이신 사람들의 수를 세어보면 성경에 명시적으로 나온 숫자만 세어도 2,821,364 명이고, 대략 추정치를 적용해보면 노아의 홍수 같은 재앙을 통해 대략 2천5백만명을 살해하셨다고 합니다.


또 하나님은 명시적으로 이스라엘인이 아닌 이민족에 대해 명시적으로 남녀노소 심지어 가축까지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릴 만큼 무시무시한 분이시기도 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절~3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



이런 무시무시한 신을 섬기는 종교가 어떻게 세계 제1의 종교가 되었을까요 ?  


아시다시피 기독교는 유대교와는 많이 다릅니다.  흔히 유대교와 기독교의 차이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게 맞을 겁니다.  저는 예전에 디씨인사이드 초장기 때부터 디씨 유저를 해왔고, 요즘은 잘 안 갑니다만 그래도 그 유쾌한 천박함과 얇팍함을 아직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 정신을 살려 유대교와 기독교의 정수를 1줄로 요약해보겠습니다.


유대교 : 여호와만이 유일신이시며, 유대민족만이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민족이다.

기독교 : 닥치고 이웃사랑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2장 31절에서 이웃 사랑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명시적으로도 말씀하셨습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피의 제물을 갈구하는 고대 유목민의 신(곡식을 바친 카인은 외면받고, 가축을 바친 아벨은 이쁨을 받았지요)을 섬기던 종교는 더 강대한 힘을 가진 주변 제국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유대인을 멸망의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근본을 거기에 두었으나, 선민의식과 증오를 버리고 사랑을 외치신 예수님의 종교는 전세계에 널리 퍼졌지요.


저는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사랑을 가르치는 성서에서 제가 가장 두려워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아래 부분입니다.


마태복음 25장 41~45절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저는 이 윗 부분이 예수님 말씀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웃에 대한 사랑이지요.


그러나 '일부' 목사님들과 신자들은 동성애자들을 핍박하고 차별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을 세상에 펼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예수님께서는 동성애자들에 대해 뭐라 하신 적이 없습니다.  다만, 피에 굶주린 유목민의 신은 동성애자, 정확하게는 게이들을 증오하셨습니다.  반면에 레즈비언에 대해서는 아무 말씀 없으셨고, 또 동성애자 못지 않게 돼지고기와 장어, 홍합과 전복을 먹는 사람들을 증오하셨습니다.  또한 이 유목민들의 신은 남의 아내와 성적인 관계를 가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셨습니다.   아래 구절을 보시지요.


레위기 11장 3절 ~ 10절 

모든 짐승 중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낙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사반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러한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너희가 먹을 만한 것은 이것이니 강과 바다와 다른 물에 있는 모든 것 중에서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되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물에서 사는 모든 것 곧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레위기 18장 20절 

너는 네 이웃의 아내와 동침하여 설정하므로 그 여자와 함께 자기를 더럽히지 말지니라

 

레위기 18장 22절 

너는 여자와 동침함 같이 남자와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



이렇게 고대 유목민의 신께서 돼지고기 및 장어 먹는 사람과 게이들을 똑같이 미워하셨는데 왜 예수님을 따르는 현대의 목사님과 신자들은 굳이 꼭 게이들을 미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상식적으로 동성애자보다는 현대 도덕관념에도 매우 어긋나는 불륜남녀들이 훨씬 더 많쟎아요 ?  교회에서 차라리 기혼자들은 불륜하시면 안 됩니다 라는 캠페인이나 열심히 하는 것이 맞습니다.  거기에 레즈비언도 끼워넣어서 미워하는 이유도 잘 모르겠고요.  알고 보면 게이들만 미워하신 것이 아니라 레즈비언도 똑같이 미워하셨다면서 아래 구절을 찾아내 들이대는 분도 계십니다.


로마서 1장 26절~27절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그러나 이는 바울의 말일 뿐, 예수님의 말씀은 아닙니다.  저는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상대로 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에 충실하느라 자신을 돕지 않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너의 이웃이 아니라, 비록 이단이더라도 착한 사마리아인이 너의 이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대 유목민의 신, 즉 야훼의 가르침 중에도 좋은 것이 많습니다.  동성애자와 돼지고기 먹는 자들을 미워하는 부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처럼 자유주의 경제학을 신봉한다는 현대의 수구꼴통들이 보면 '이거 완전히 종북 빨갱이네'라고 분노할 내용들도 많습니다.   즉, 지나친 효율성을 추구하여 가난한 자들의 소득을 깎아먹지 말라고 하셨고, 심지어 일용직 노동자의 임금 체불을 하지 말라는 구체적인 명령까지 내리셨습니다.


레위기 19장 9절

너희가 너희의 땅에서 곡식을 거둘 때에 너는 밭 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네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네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거류민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장 13절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마돈나(정확하게는 원곡자인 돈 맥클린)가 'Miss American Pie'라는 명곡에서 'Book of Live'라고 불렀을 만큼, 성서에는 사랑이 넘칩니다.  그런데 현대의 일부 목사님들과 신자들은 왜 굳이 그런 책 속에서 증오 부분을 찾아내 강요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지구 나이가 6천년이라고 주장하고, 동성애자들은 차별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해서는 다음 만화나 두어편 소개드립니다.






예수님 : 천국에 온 것을 환영하네 ! 여기서 자넨 내 옆 자리에서 축복이 가득한 만족감 속에서 영원을 보내게 될걸세.

신자 : 정말 신나요 !  저는 매우 기독교적인 삶을 살았거든요.


예수님 : 몇가지 자격 심사 질문이 있을건데, 그 뒤에 자넬 체크인 시켜줌세...  먼저, 자넨 다음 학문 분야에 있어서 성경 내용에 반하는 모든 증거를 거부했는가 ?


예수님 : 그러니까 인류학, 고고학, 천문한, 천체물리학, 생물학, 식물학, 화학, 우주학, 생리학, 발생학, 곤충학, 진화학, 유전학, 지질학, 파충류학, 수학, 고생물학, 판구조론,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동물학 말일세.

신자 : 그럼요 !


예수님 : 좋아 !  2번 질문으로 넘어가네...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자넨 다음 내용들을 사실로 받아들였는가 ?  말하는 뱀 ?

신자 : 예, 창세기 3장 1절이요.

예수님 : 말하는 당나귀 ?

신자 : 민수기 22장 28절 !


예수님 : 인간을 임신시키는 신들 ?

신자 : 물론이지요 !

예수님 : 유니콘 ?

신자 : 민수기 23장 22절

예수님 : 용 ?

신자 : 물론이지요 !  신명기, 욥기, 시편, 이사야, 예레미야와 말라기 모두 용 이야기를 하는걸요 !


예수님 : 귀신이 들려 절벽에서 뛰어내리면서 자살하는 돼지는 ?

신자 : 마가복음 5장 13절에 씌여 있으니 믿지요.


예수님 : 마지막으로 내가 명한 대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었는가 ?

신자 : 어... 잠깐만요, 뭘 하라고요 ?


예수님 : 어, 맞아.  누가복음 14장 26절에서 33절, 그리고 누가복음 18장 18절에서 22질에 써놓았는 걸 !  네가 가진 것을 모두 팔아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말이야.


신자 : 정말인데요, 전 그게 다 은유적 말씀이라고 생각했지 말입니다. 




예수님 : 오케이.  내가 하나 알려줄게.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처럼, 너희도 그들을 사랑해라.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라고.  그러면 그들을 심판하는 건 그냥 내가 알아서 할게.

신자 : 하지만 그들이 게이거나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이면 어떻게 하나요 ?

예수님 : 내가 말 더듬었니 ?  (= 아놔, 말 진짜 못 알아듣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