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신문에서 읽었는데, 중국의 CCTV에는 중국 각지의 소수 민족을 찾아다니며 각 민족 고유의 풍습과 생활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프로그램에서 꼭 나오는 장면이, 그 소수 민족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취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장면이 꼭 나온다고 하네요.  그 글을 쓴 필자는, 그것이 소수 민족이 흥겹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족들에게, '소수 민족들은 대개 음주가무에 빠져 지내는 열등 민족'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 같다고 씁쓸해했습니다.

중국인들이 술에 취하는 것을 좋아하느냐 안하느냐는 일단 생각하지 말고,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정말 음주가무를 즐기는 민족도 드뭅니다.  사실 제가 볼 때는 조금 상황이 심각할 정도로 많이 즐깁니다.  우리 스스로가 못느낄 뿐이지, 우리나라는 음주 문제가 사실 심각한 나라입니다.  제가 카투사 시절에 (당연히 미군들하고 사이가 안좋았지요 !)  미군애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들었는데, 우리나라의 1인당 소주 소비량이 1주일에 1병이던가 2병이던가라면서, 한국인들은 모두 알콜중독자라고 씨부렁거리던 것이 기억납니다.  사실 갓난아기까지 포함한 평균 수치가 정말 그렇다면 큰일이다 싶었는데, 찾아보니까 정말 한 1.8병 정도였습니다.  그것에 추가로 맥주도 한 2.3병 정도 소비하더군요.  대체 이 술을 다 누가 마시는 겁니까 ?   

 

(우리나라는 오른쪽 하단 부분에 있습니다.  순수 알콜의 섭취량인데, 우리나라는 딱 아일랜드와 동일하군요.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단연 탑입니다.)

 



세계적으로는 어떤가 하고 찾아보니까, 우리나라의 1인당 술 소비량은 아시아권에서는 단연 탑이고 세계적으로도 많은 편에 속합니다만, 의외로 그렇게까지 높지는 않고 그냥 유럽 중간 정도 갑니다.  다만 유럽인들보다 우리가 체구가 좀 작은 편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꽤 취하도록 마시는 편이라는 점은 이해가 갑니다.  특히 유럽인들은 식사 때마다 맥주나 와인 1~2잔을 항상 곁들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알콜 섭취량이 많은 것이지 취할 때까지 마시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음주 문화가 다소 폭음 쪽으로 잘못 형성되었다는 생각은 듭니다.  따지고 보면, 낮에는 멀쩡하게 직장에서 일 잘하고 집에서는 평범한 가장인 사람이, 밤에 만취해서 길바닥에 쓰러져 자는 것이 별로 크게 이상하지 않게 여겨지는 나라가... 적어도 OECD 국가 중에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폭력 행위를 저질렀을 때 경찰이 오기 전에 소주를 벌컥벌컥 마셔두는 것이 변호사를 부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법적 대응이라는 소리를 어디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세상에 음주에 대해 이렇게 관대한 나라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법 만드는 국회의원들과 사법부 검찰 등에 계신 분들이 술을 좋아하셔서 그런 것일까요 ?  저로서는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흔히들 말하기를, 서양인들은 술의 맛과 향을 즐기려고 마시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취하기 위해서 마신다고 하지요.  제 생각에는, 경제 수준과도 상관있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 사회에 대한 책에서 읽었는데, 우리나라 유치원에서는 전통적으로 노래 연습을 많이 시키는 것에 비해, 프랑스에서는 미술 교육을 많이 시킨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분석해놓은 것이 약간 뜨아하면서도 그럴싸 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만, 노래 교육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것에 비해, 미술은 소모성 재료가 많이 들어가므로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국민 소득이 낮은 국가일 수록 미술 교육보다는 노래 연습을 많이 시킨다고 하네요.  동의하십니까 ?  아무튼, 비슷한 이유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척박한 사회 환경에서 가장 저비용의 쾌락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술, 그것도 소주이기 때문에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신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뭐 스포츠를 하려고 해도 돈이 많이 들고, 미국 애들처럼 집에서 뭔가 뚝딱뚝딱 만들어보려고 해도 차고와 각종 연장, 넓은 공간이 필요하쟎아요.  그러다보니 할 게 술마시는 것 외에는 별로 없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사정은, 지금은 그렇게까지 마셔대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18~19세기 영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온 나라가  술에 쩔어 살았습니다.  물론 사회 최고위층 인사들이야 주정뱅이가 아니었겠지요.  그러나 소위 상류계층인 군 장교들만 하더라도, 주정뱅이가 많았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군 사병은 하루에 1파인트 (0.56리터)의 포도주나 1/3 파인트의 럼주를 배급받게 되어있다고 했었습니다.  우습게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단순히 '매일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군에 입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페인 비토리아(Vittoria)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웰링턴 공작은 부하 병사들의 약탈 행위에 화가 났을 때, 공개적으로 자기 병사들을 '술이나 퍼마시러 입대한 땅거지 색히들'이라고 욕을 해댔다고 하지요.  


 

(1813년의 비토리아 전투입니다.  이 전투로 스페인에서 프랑스군은 완전히 철수하게 됩니다.  스페인에서 약탈한 온갖 귀중품을 바리바리 싸들고 철수하던 프랑스군을 영국군이 따라잡아 공격한 이 전투는 특히 나폴레옹 전쟁 중의 전투 중에서 가장 많은 액수의 노획물이 발생한 것으로 유명한데, 웰링턴이 화가 났던 이유는 그런 값진 노획물 중 상당수가 병사들의 배낭 속으로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당시 영국 해군 이야기를 그린 Hornblower 시리즈에서도, "Flying Colors" 편을 보면, Hornblower 함장은 긴 항해 끝에 식수가 다 떨어져 가지만, 혼블로워 함장은 물보다도 럼주가 다 떨어져 가는 것을 더 걱정합니다.  수병들은 럼주만 계속 배급이 되면, 식수가 다 떨어져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단, 맥주는 술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챨스 디킨즈의 "Great Expectations"라는 작품을 보더라도, 12살 정도의 어린 주인공에게 식사꺼리가 제공되는데, 물 대신 독한 ale이 주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워낙 식수 사정이 안좋아서, 영국인들은 대개 물은 잘 마시지 않았습니다. 당시 런던의 주 식수원은 템즈 강이었는데, 여기서 물을 길어오면, 인간의 분뇨는 약과이고, 온갖 독성 물질과 가축의 분뇨 등이 다 나왔다고 합니다. 중산층은 샘에서 길어온 물을 사 마셨지만, 대부분의 서민들은 이 강물을 식수로 썼습니다. 서머셋 모옴의 "인간의 굴레"를 보더라도, 템즈강에 투신 자살을 시도한 남자가, 빠져죽지는 않았지만 그때 마시게 된 템즈강 물로인해 장티푸스에 걸려 죽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때는 이미 1900년이었는데요 !   그래서 대신 맥주를 마셨고, 차가 널리 보급된 이후로는, 차를 마셨습니다.  영국인과 아일랜드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단어가 "영국인이 차와 흰빵을 먹는 동안, 아일랜드인은 물과 감자를 먹었다" 라는 것으로 표현이 됩니다.

이야기가 겉돌았는데, 본론으로 돌아와서, 영국군에게 주어지는 술은 거의 100% 럼주였습니다.  당시 영국은 (지금도 그렇지만) 포도주로 유명한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날씨가... OTL) 그러므로 제일 값싼 술은 gin 이었습니다.  그러나, 호밀로 만드는 증류주인 진 이라는 술은, 그야말로 최하층 빈민들이 마시는 술이라는 인상이 워낙 강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챨스 디킨즈도 "진을 마시는 것은 영국의 큰 해악이다."라고 썼겠습니까 ?  1730~1740년대에 발전한 진 문화는, 거의 현대 미국 도시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는 마약 문제와도 맞먹었을 정도였습다.  진이 하류층에서 크게 유행하고, 또 사회악으로 번진 이유는, 너무 가격이 쌌기 때문이었습니다.  "1페니면 취할 수 있고, 2페니면 죽을 정도"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통계치가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만, 1740년대에 런던 인구가 마시는 진의 평균치가 1주일에 2파인트(1.12 리터)였습니다. 남자, 여자, 갓난아기 다 합해서요. 이 정도면 요즘 우리나라의 소주 소비량은 저리 가라지요 ?   당시 런던 시내 8가구마다 1곳씩 진을 파는 술집이 있었고, 시내 곳곳마다 진에 취해 쓰러진 사람들이 즐비했답니다.  정부에서도 사태가 너무 심각하다고 생각하여 진 금지법을 1743년에 제정하려고 했는데, 폭동이 일어나서 결국 실패했다고 합니다.  극작가인 헨리 필딩은 진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진이야말로, 대도시 인구 수십만명을 해치는 해악이다. 이 독한 술에 접한 사람들은, 지독한 주정뱅이가 되어, 이 술을 다시 사기 위한 돈조차 제대로 벌 수 없게 된다. 게다가 모든 수치심과 공포심도 없애버려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죄와 뻔뻔스러움을 낳게 한다."

 

 

(윌리엄 호가쓰(William Horgath)의 유명한 1751년 그림입니다.  'Beer Street & Gin Lane'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음주에 찌든 영국 하층민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제적으로는 군대에도 진을 공급하는 것이 적당했겠지만, 정부는 이 지긋지긋한 술을 도저히 군대에 공급할 수가 없었나 봅니다.  다행히, 당시 영국은 카리브해에서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활발하게 경영하고 있었으므로, 사탕수수 찌꺼기로 만드는 증류주인 럼주의 생산과 유통이 활발했습니다.  그래서, 육군이나 해군이나, 대부분 럼주를 공식 주류로 공급했습니다. 

 



럼주는 도수가 최고 75도까지 갑니다. (저는 한때 이게 알코올 농도를 말하는 것인줄 알았습니다만 그런 건 아니더군요.)  엄청난 독주지요.  당시 공급되었던 럼주가 이렇게까지 정제된 것은 아니었겠습니다만, 아뭏든 너무 독주였으므로, 당시 해군 제독이던 에드워드 버논(Edward Vernon, 별명 Old Grog)은 수병들에게 배급하는 럼주에 물을 절반 섞어서 주도록 했습니다.  이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그록(grog)입니다.  권투에서 말하는 그로기(groggy) 상태라는 단어도, 바로 이 그록을 잔뜩 마신 상태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는 영국 해군 내에서 럼주와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영국 해군에도, 육군과 마찬가지로 채찍질 체벌이 있었습니다만, 이와 비슷한 레벨의 체벌은 바로 'grog 배급 중단'이었습니다.  육군은 육군이라는 특성상, 어떻게든 술을 손에 넣을 방법이 꽤 많았습니다만, 해군에서는 배라는 특성상, 배급되는 것 외에는 술을 구할 방법이 진짜 없었거든요.

 

(그록의 창시자이신 Edward Vernon 제독이십니다.  그는 평상시 그로그램(grogram)이라는 천으로 만들어진 코트를 자주 입어 '늙은 그록(Old Grog)'이라는 별명으로 수병들 사이에서 불렸는데, 그로 인해 럼반-물반의 희석 럼주 이름도 그록으로 굳어버렸습니다.) 



럼주는 Hornblower의 입을 빌리면, 그야말로 영국 육해군의 "Life Blood"였습니다. 어떤 인도 세포이 병사의 회고에 따르면, 영국군은 틀림없이 럼주 속에 뭔가 마법약을 집어넣는 것이 틀림없다고 했습니다.  럼주만 마시면 영국군은 매우 사나와져서 두려움을 모르고 싸웠고, 또 심한 부상을 입고 다 죽어가는 병사도 럼주를 조금 마시면 금방 되살아난다고 했습니다.  다만, 그 '마법약'을 너무 많이 집어넣으면 병사들이 너무 흥분해서 제풀에 죽어버린다고도 '아주 잘' 관찰했더군요.

1780년에 런던에서, 로마 교황에 반대하는 군중이 가톨릭 수도원을 습격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고든 폭동이라는 이 사건의 하일라이트는 바로 가톨릭 수도원 부속 진 증류장 습격이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군중들은 수도원보다는 이 진 증류장을 노리고 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폭도들은 재빨리 이 증류장의 문을 부수고, 그 중에서 더욱 생각없는 일부 인간이 불을 질렀는데, 이 불길 속을 목숨을 무릅쓰고 뛰어들어갔다고 합니다.  손에는 양동이와 주전자, 심지어 말구유를 들고서요. 곧 뜨거워진 증류기가 터지면서, 진 원액이 길바닥에 쏟아져 나와 하수 도랑으로 흘러들었는데, 군중들은 술에 만취하여 쓰러질 때까지, 이를 땅에 엎드려서 입을 대고 마셨습니다. 나중에 민병대가 출동해서 상황을 정리했는데, 이때 만취해서 쓰러진 사람들 중 4명의 여자를 포함해서 총 20명의 사람들이 과음으로 즉사했다고 하네요.  이 정도면 막장 인정입니까 ?

 

 

(제 글에서 인용된 영국의 당시 음주 행태 사례는 Mark Adkin이라는 현역 영국군 소령이 지은 'Sharpe Companion'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Sharpe 시리즈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 해설서입니다.)

 

# 목요일에 올리는 과거 재탕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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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손님 2019.08.29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1등이라니ㅠ 영광입니다~^^

  2. 수비니우스 2019.08.29 1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하면 정조대왕입죠. 정조대왕께서 정약용에게 보드카를 맥주잔에 부어주고 원샷하라고 시켜서 정약용이 속으로 으악 난 죽었다 했는데 마시고 살아서 다행이었다고 자식들에게 편지로 쓴바 있습니다. 물론 보드카와 맥주잔은 비유로 붓담는 커다란 필통에 40~50도 하는 삼중소주를 부어줬다고 하네요. 이렇게 술을 좋아하던 뎡됴대왕은 담배 또한 온몸의 기운을 뚫어준다고 예찬하실 정도였으니 50이 못되어 죽은게 절대 이상한게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쌀통에 담아서 보내버렸으니 술담배에 쩔어살수밖에 없긴 했지만요...

  3. ㅇㅇ 2019.08.29 12: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에 20명이나 과음으로 즉사했다니 정말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 할 일이네요 ㄷㄷ

  4. 2/28일 입대 2019.08.29 13: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하니까 저희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들이 생각나네요. 마리화나인가 위드인가가 합법인 나라여서 그런 얘기를 자주 했지요. 스위스, 미국, 프랑스 다 국적이 다른데 입을모아 말하더군요.
    한국에서 금지하는 약들은 문제를 안 일으키는데(그들 주장으로는 저걸 피면 그냥 주저앉아서 공상에 빠진답디다.담배보다 건강하다고ㅎㅎ), 그렇게 문제가 많은 술은 왜 무제한 허용이냐구요. (9시 지나면 아예 술을 못 산다던데요).
    음주감경 판결을 얘기할때마다 아주 부끄러워서 고개를 못 들겠더군요.

    • nasica 2019.08.29 19: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어 ? 그 외국학생들 말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네요 ?

    • reinhardt100 2019.08.30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의외로 조선총독부 시절부터 아편문제에 워낙 민감하다보니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일본제국이 전쟁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군수품 중 하나가 아편이었는데 일단 화북 등 중국에서 쓰는건 좋은데 이게 내지로 들어오면 골 때리는 겁니다. 아편중독이 일어나면 안 되니까요. 이걸 막으려면 조선반도, 관동주부터 철저히 단속한다는 것은 상식이었죠. 이 때문에 총독부는 아편 등 마약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하게 나가게 되었고 이게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 카를대공 2019.08.31 2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실제로 저 말이 마리화나 합법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담배보다 중독성이 약하고 술보다 사회적 해악이 덜한데 왜 막냐는거죠.

  5. ㄹㄹ 2019.08.29 16: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주의 진짜 문제는 18세기 영국해군이 마시던 럼보다 더 저질 알콜로 만든 쓰레기 술이라는데 있습니다. 100퍼센트 주정에 물타서 만든거고 이 더러운 맛을 숨기려고 아스파탐이라는 감미료를 섞었는데 이게 해독을 방해하는 효과가 있죠. 위정자들은 값싼 소주로 인한 사회적 해악을 알면서도 못본체 하는데에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는거 보면 이 나라는 막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 카를대공 2019.08.31 2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소주 맛있게 드시는 분들한테는 죄송하지만 근본이 질 나쁜 술인거 부정할 수는 없죠.
      똑똑한 엘리트 계층들이 이걸 모를리가 없는데 사실상 장기간 방치중인 대한민국의 병폐입니다.

  6. 수비니우스 2019.08.29 17: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술을 잘 못하고 기껏해야 가끔 혼자 1리터 한병에 2280원하는 값싼 벨기에 밀맥주를 마시는 정도인데, "술은 취하려고 마시는거다"라며 소주 아니면 안된다는 사람들 보면 정말 보기 안좋더군요.

  7. reinhardt100 2019.08.30 0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밀로 된 진이 미친듯이 공급된 이유가 몇 가지 있지만 대표적으로 동유럽, 특히 폴란드-리투이나아연방의 재판농노제 강화 및 경제와도 연결됩니다.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연방은 네덜란드, 잉글랜드, 베네치아 등을 대상으로 하는 잉여곡물 수출로 어느 정도 경제가 돌아갔지만 17세기 중반 대홍수 때문에 국가 경제가 제대로 박살나버립니다. 가뜩이나 재판농노제가 판치던 농촌에 불을 질러버린 겁니다. 마그나트건 슐라흐타건 간에 영지가 있던 7천명의 귀족들이 300만 농노를 효율적으로 쥐어짜야 하는데 기존의 곡물 수출로는 한계가 보이다보니 호밀 등을 원료로 하는 진을 대규모로 주조하여 수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만이면 다행인데 이 인간들이 더 벌자고 각 영지별로 1년에 1인당 몇십리터씩 강제구매 후 작업용 반주로 사용하게 하는 방법까지 동원하다보니 개판이 벌어집니다. 농노들이 술 먹고 일하니 당연히 효율이 떨어지는 겁니다.

    주류문제, 이 문제는 국가재정과도 직결 되어 있죠. 역사도 꽤 오래됩니다. 조선총독부 시절부터 주요 수입 중 하나가 조선반도 철도운영수입과 주류세였던 건데 지나사변 이후 군사비 증액을 감당하려고 대규모 전시국공채 발행 및 주세율 증강을 감행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내지와 동시에 양조장 면허제까지 도입시켜버린건데 이 때문에 급한 불은 끌 수 있었죠. 그나마 일본은 나았습니다. 적어도 강제주류소비제만큼은 도입하진 않았거든요. 프랑스는 베트남에서 이 짓까지 해서 욕을 바가지로 들어먹었죠. 한 때 인도지나 연방 연간 세수의 1/4을 주세가 차지할 정도로 개판이 났었습니다.

    해방이후 정부가 가장 확실하게 뽑을 수 있는 세원이 바로 토지세와 주세다 보니 주류에 대해서는 정말 관대해질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쓰게 만들어야 정부수입이 늘어나니까요. 게다가 윗분들이 쓰신대로 물자 아끼려다보니 소주가 장려되는 것까지 겹치면서 말 그대로 술독에 전국민이 빠져사는 사태가 지금까지 이어진 겁니다.

  8. 샤르빌 2019.08.31 01:4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도 이젠 맥주 정도는 약간 술 취급 안하는 분위기가 된 것 같아요.. 소주는 품질도 너무 저질인데 그걸 죽을때까지 마시니 사람들 위장이고 간이고 남아날리가..

  9. 카를대공 2019.08.31 2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거 혹시 예전 블로그에 쓰셨던 글 아닌가요?
    중간에 프랑스 얘기를 보니 기억나네요.

    당시에 쓰셨던 기준으론 확실히 맞는 말씀이지만 최근 3년?정도 기준으로 하면 한국도 1인당 소득이 많이 올라서 꼭 옳은 얘기는 아닌거 같습니다.
    특히 대한민국 수도권 정도면 세계적으로도 즐길거리 놀거리가 무척 많은 문화권이라서요.

  10. 카를대공 2019.08.31 2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민국의 폭음,만취 문화는 근본적인 면에서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는 문제임은 분명한거 같습니다.
    저도 술 남들 정도는 마시고 술자리도 좋아하지만 술의 폐해는 부정할 수가 없네요.

    담배의 폐해는 끊임없이 강조되는데 술은 상대적으로 훨씬 덜하죠.

    제가 볼 때 담배보다 개개인 삶을 좀먹고 국가 전체적으로 사회를 악화시키는게 술입니다.

  11. 바다에산다 2019.09.07 17: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난 글 항상 잘 보고 갑니다.
    음주가 주는 즐거움도 있지만, 해군에게는 멀미 치료약으로써도 기능했으리라 봅니다.
    해군 시절 원/상사 침실에 숨겨져 있던 커다란 소주 페트병들이 생각이 납니다.
    담배와 술이 전통적인 멀미 특효약이라고 하네요

  12. 라흐마니노프 2019.09.09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럼의 최대 도수가 75라고 하셨고, 이게 알코올 농도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무섭게도 절반은 원래 알고계시던게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뭔가 와전된건지 그렇게 하기로 정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도수가 농도 백분위인거 처럼 쓰이고 있지만요, 영미권에서 사용하는 도수(proof)는 대략 1도=0.5%입니다. 표기도 그 각도 단위에 쓰는 작은 동그라미(모바일이라 직접 적기 어렵네요)죠. 지금 유통되는 럼 중에 제일 독한게 바카디 151도(75.5%)인걸로 알고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식으로 75도가 대충 맞습니다. 당연히 그냥 마시라고 만든게 아니라 칵테일이나 불쇼, 객기부리기용으로 의도적으로 독하게 만든 종류구요, 전통적인 럼은 진이나 위스키 같은 다른 증류주처럼 40%내외에 많이 높으면 50%조금 넘는 정도에요. 제가 알기론 그로그 비율이 절반(대충 우리 희석식 소주 수준)까지는 아니고 물4 럼1 정도(와인 맥주 막걸리 수준)라는데 뭐가 맞는지 모르겠네요. 배마다 달랐으려나...

  13. 무명씨13 2019.09.10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가볍게 맥주 1~2 잔 마시는 것으로 끝내는 문화가 더 확산되었으면 합니다

  14. 영국나치처칠 2019.10.24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명의 물인 아쿠아비트는 감자로 만든 술이고
    수술한 환자들이 상처를 아물기 위해 먹는 음식은 감자의 형제?인 토란이라네요

  15. Corsair F4U 2019.12.01 12:3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 글에서는 진에 물을 탄 것을 그록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번 글에는 럼에 물을 탄 것이 그록이라고 되어있네요 제 기억이 잘못 된건가요? 아니면 내용이 바뀐 건가요?^^

    검색해보니 럼에서 나온 것이 그록이 맞긴한데..... 기억의 조작이 있었던걸까요 ㅋㅋ



이번 포스팅은 J. Kincaid 라는 이름의 스코틀랜드 출신의 젊은 장교가 쓴 "Adventures in the Rifle Brigade, in the Peninsula, France, and the Netherlands from 1809 to 1815" 라는 책의 일부 중 인상 깊은 장면 몇가지를 발췌해서 적은 것입니다.   5년 전에 적었던 포스팅인데, 목요일이라 재탕으로 올립니다.  이제 다음주에 마무리할 '나폴레옹 시대의 병참부'와도 연계되는 내용입니다.



(참고로, 이 킨케이드 대위가 복무한 부대인 제95 라이플 연대는 Bernard Cornwell의 소설 속에서 리처드 샤프가 소위로 부임한 그 라이플 연대가 맞습니다.)



Episode 1.   영국 장교들의 야전 살림살이


이런 경우 우리 수송대는 언제나 아직 후방에 있었으므로, 각 중대의 장교들은 포르투갈 사내아이 하나를 고용하여 당나귀 한마리를 끌고 약간의 거리를 두고 중대를 따라오도록 했다.   이 당나귀에는 장교들의 야전 생활에 필요한 보잘 것 없는 사치품들이 실려 있었다.  그 짐꾸러미에는 큰 보트용 망토와 담요, 돼지가죽으로 만든 작은 포도주 부대 하나, 럼이나 브랜디 같은 증류주를 담은 수통 하나, 찻잎과 설탕 조금이 실려 있었고, 거기에 당나귀에 묶여 있는 염소 한마리가 있었다.  (염소는 아마 젖을 짜기 위함인듯 ?)  그리고 포르투갈 사내아이의 주머니에는 2~3 달러가 들어있었는데, 이는 그 날 행군을 하다가 운이 좋으면 생기는 기회에 따라 빵이나 버터 같은 사치품을 사라고 넣어준 것이었다.  우리는 그 아이가 구해오는 그런 보급품의 출처를 캐묻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깐깐하게 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아이는 빈손으로 나타나지만 않으면 우리들의 역정에 시달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아이들은 무척이나 신의가 있고 똑똑하여, 무척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매일 저녁 어떻게든 우리 중대의 위치를 찾아 오곤 했다.  딱 한번, 마세나(Massena) 원수가 후퇴할 때 우리 중대의 아이가 우리를 찾아오지 못한 밤이 딱 한번 있었다.  이 아이는 그날 밤 내내 영국군의 넓은 야영 캠프 내에 복잡하게 산재된 모닥불들의 미로 속을 헤매고 다니다 결국 포기하고 용기병 부대 옆에서 당나귀와 함께 잠을 잤는데, 일어나보니 우리 중대는 그 용기병 부대에서 20야드 (약 18m) 떨어진 곳에 있었다고 한다.




Episode 2.   빵이 없어서 고기를 먹다 


5월 20일, 빵 또는 그 비슷한 아무 것도 없이 지낸지 3일 째다.  빵 없이 고기만 며칠 먹다보면 고기가 정말 구역질 날 정도가 된다.  


오늘 새벽에는 평소처럼 매우 이른 새벽에 행군을 시작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난 해가 뜨기 전에 시에라 데스트렐라(Sierra D'Estrella) 앞에 있는 약 2마일 (약 3.2km) 떨어진 한 마을로 출발했다.  그 마을은 프랑스군의 동선 바깥 쪽에 있었으므로, 뭔가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도착해보니, 인근 수녀원에서 도망쳐 나온 수녀들이 마을 공동 화덕 건물 바깥 쪽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옥수수 가루(Indian cornmeal)로 만든 빵 반죽을 들고 와 여기서 굽고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그 빵을 좀 달라고 간절히 부탁하자, 그들 중 두명이 친절하게도 자신들의 몫을 내게 내주었다.  


난 그녀들에게 키스와 함께 1달러(dollar는 당시 스페인 화폐 단위입니다 미국 달러도 원래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를 보답으로 주었다.  그녀들은 나의 키스를 '무척 특별한 호의'로 받아들였고, 내가 내민 1달러 은화에 대해서는, 그것을 물끄러미 보더니, 이런 말을 하면서 받아 들었다.


"우리 의지가 아니라, 우리의 가난이 거절하기 어렵게 만드네요."


난 이 설구워진 빵덩어리를 들고 이제 막 무장을 하고 있던 동료 장교들에게 달려갔다.




Episode 3.   묘한 분위기의 비공식 휴전선


(포르투갈에서 후퇴하는 프랑스군을 추격하던 영국군은 협곡을 사이에 두고 프랑스군과 대치하다가, 겨울이 되자 비공식적이고 자연발생적인 묘한 휴전에 들어갑니다.)


협곡에 걸린 다리에서, 우리 부대의 보초 자리는 겨울 동안 매우 다양한 사람들에게 정식 응접실 역할을 했다.  


나는 우리 영국 해군 장교들이 마치 6파운드 포처럼 커다란 망원경을 안장 뒤에 매단 노새를 타고 리스본에서 가끔씩 오는 것을 무척 즐겁게 보곤 했다.  이들은 매번 올 때마다 어김없이 처음으로 묻는 것이 바로 코 앞에 있는 프랑스군 보초병을 가리키며 "저기 있는 저 친구는 누구요?" 하고 묻고는, 우리가 프랑스군이라고 대답하면 항상 화들짝 놀라서 "그럼 대체 왜 저 친구를 안 쏩니까 ?"라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이 비공식적인 적대 행위 중단 기간 동안 프랑스군과 우리 사이에는 예의와 호의가 넘치는 행동들이 여러번 반복되었다.  한번은 우리측 어느 장교의 그레이하운드 사냥개들이 토끼를 쫓다가 프랑스군 진영으로 넘어갔는데, 프랑스군은 깍듯한 예의를 갖추어 그들을 돌려 보내기도 했다.


어느날 밤, 다리 끝에 있는 보초 초소 현장에 내가 있을 때였는데, 프랑스군 보초 쪽에서 머스켓 총탄 하나가 날아와 우리 보초들과 내가 둘러싸고 앉아있던 모닥불의 불붙은 장작에 박히는 사건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프랑스군에서는 백기를 든 사절을 보내어 간밤의 사고에 대해 '멍청이 같은 보초가 영국군이 자기 쪽으로 몰려 오고 있다고 착각하고는 총질을 했다' 라며 사과를 해왔다.  우리는 그 총격이 멍청함보다는 악의 때문에 저질러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그 사과를 받아들였다.


한번은 쥐노(Junot, 폭풍우라고 불렸던 아브란테스 공작 본인 맞습니다) 장군이 정찰을 하다 우리 보초가 쏜 총에 심한 부상을 입었다.  그때 프랑스군이 보급 물자 측면에서 무척 곤궁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웰링턴 경은 쥐노 장군에게 사절을 보내 '혹시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리스본에서라도 구해드리겠다'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쥐노 장군은 너무 정치적인 인물이라, '사실 보급품이 부족한 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 사양했다.




(역주 : 실제로 쥐노 장군은 1811년 1월 코에 총탄을 맞고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어지간한 역사 자료에는 어떤 전투에서 그렇게 최고 사령관이 총을 맞을 정도로 악전고투를 벌였는지 나와 있지 않아서 의아해했는데, 그 사정이 이런 것이었군요 !)




Episode  4.  피폐한 포르투갈 상황


이 인근은 하도 오랜 기간 전쟁에 시달렸고, 또 영국군과 프랑스군 양쪽에게 번갈아가며 강제로 보급품을 공급해야 했기 때문에, 주민들은 자신들이 굶어죽게 될까 염려하여 결국 남아 있는 식량을 모두 감추어 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영국군이 프랑스군과 싸워주는 것에 대해서 입으로는 칭송과 감사를 늘어놓았지만, 식량은 빵 한덩어리도 내놓지를 않았다.  


결국 우리는 인근 수 마일에 걸쳐, 대로변은 물론 골목길이며 숲길이며 요소요소마다 정찰병들을 매복시켰다가 이웃 마을로 가는 농민들을 잡아세워 놓고 검문검색을 해야 했다.  이렇게 찾은 식량은 병참부 명령서 한장을 주고는 빼앗았는데, 우리는 당시 할머니가 들고 가는 바구니에 든 감자 몇 알조차 빼앗을 정도로 궁한 상황이었다. 




Episode  5.  민간인에 대한 잔악 행위


우리는 피르네스(Pyrnes) 인근에서 그날 밤을 보냈다.  이 작은 마을과, 프랑스 장군들의 믿지 못할 약속에 속아 피난을 떠나지 않았던 그 몇 안되는 주민들의 비참함은 이 야만적이고 자비심 없는 적군이 최근에 다녀간 흔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젊은 여자들은 집 안에서 잔혹하게 성폭행을 당한 채 누워 있었고, 거리에는 부서진 가구들 사이사이에는 살해된 농민들과 노새, 나귀들의 썩어가는 시체가, 역겨운 악취를 풍기는 온갖 종류의 오물과 함께 거리에 널려 있었다.  살아남은 몇 안되는 남자 주민들은 그들의 친지 및 재산의 잔해 속을 멍하니 돌아다녔는데, 마치 복수를 하기 위해 무덤 밖으로 걸어나온 시체들처럼 보였다.  간혹 낙오된 불행한, 혹은 부주의한 프랑스군의 시신도 발견되었는데, 그들의 시신은 하나같이 잔혹하게 난자되어 있어, 그 복수가 얼마나 정성껏 실행되었는지를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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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웃자웃어 2019.02.14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폴레옹이 매우 유능한 인물이지만 프랑스군에게 물자를 약탈및 가혹하게 징발당하고, 전쟁에 말려든 사람들에게는 악마이군요. 특히 이베리아 반도와 러시아 사람들 말이죠. 아 물론 아이티 사람들 입장에선 히틀러의 대선배나 다름없는 사람이고.




Bernard Cornwell이 지은 Sharpe 시리즈는 1799년 영국군이 인도 중부 마이소르(Mysor) 지방을 침공하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그로부터 3년 정도의 안정기를 지나, 마이소르 지방의 수도인 셰링가파탐이 영국군의 허수아비 노릇을 하는 인도 군주 하에서 안정화되자, 영국은 다시 더 북부의 마라타 연합이 지배하는 지역을 노립니다.  이런 식으로 영국이 인도 전체를 식민지화하는데는 무려 1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로버트 클라이브가 7년 전쟁 도중 플라시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무찌르고 인도에서 영국의 주도권을 확보한 것이 1757년이었으니까, 정말 오랜 세월에 걸쳐 야금야금 먹어들간 셈이지요.  인도 대륙이 정말 크긴 큰가 봅니다.  그래서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인 무렵, 영국은 아직도 인도 대륙 일부만을 장악하고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영국이 이렇게 인도라는 블루 오션을 아무 경쟁없이 야금야금 파먹어가는 동안, 나폴레옹은 해군이 없어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인도가 영국에게 있어 거저먹기인 블루 오션이었을까요 ?  그렇게 표현한다면 인도 사나이들을 너무 모욕하는 셈이지요.  당시 인도는 정말 수많은 소국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각 왕국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영국이나 프랑스 등 유럽 각국의 문물, 특히 군사 기술을 많이 받아들여 유럽식 무장을 상당히 갖춘 편이었습니다.  


영국은 이렇게 잘 무장된 왕국들을 때로는 무력으로, 때로는 이간질로 차례차례 각개격파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어쨌든 압도적인 숫자의 인도군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무기가 비슷하더라도, 영국군의 훈련 및 전술 전략이 우월했기 때문이라고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훗날 웰링턴 공작이 되는 아더 웰슬리도 군 생활 초기는 인도에서 시작합니다.  아래 묘사되는 전투는 훗날 웰링턴 공작에게 누군가 '공작께서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전투는 어느 전투입니까'라고 질문하자, 웰링턴이 망설이지 않고 뽑은 아사예 전투입니다.  여기서 웰슬리가 이끄는 영국 정규군 스코틀랜드 연대와 동인도 회사 소속의 세포이 연대들은 인도 중북부의 마라타(Maratha) 연합군과 혈전을 벌입니다.  이 전투의 묘사를 보면, 당시 보병과 포병이 어떤 식으로 전투를 벌였는지 실감나게 느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Sharpe's Triumph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03년 인도) -------------------------------------


스코틀랜드 연대는 이제 언덕을 올라가고 있었다. 그들은 관목 그루터기를 짓밟으며 나아갔고, 이제 곧 언덕 능선을 넘어서면 또 다시 인도군 포병대에 노출되면서 대포 사격을 받게 될 것이었다. 인도 포병대에게 처음으로 관측되는 것은 두 개의 연대 깃발일테고, 다음으로는 말을 탄 장교들, 그리고는 붉은색, 흰색, 검은색으로 치장된 전체 연대들이 머스켓 소총에 장착된 총검을 햇빛에 번쩍이며 인도군의 시야에 들어갈 것이었다.


'그리고는 신의 도움이 필요할테지'라고 샤프는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앞쪽에 있는 망할 놈의 대포들은 그 사이에 모두 재장전을 마쳤을 것이고, 이제 표적물이 다시 시야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갑자기 첫번째 대포알이 바로 몇 발자욱 앞에 쾅하고 떨어졌다가 튕겨올라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고 머리 위로 넘어갔다.


"저 자식은 너무 일찍 쐈군." 바클리가 한마디 했다.


"이름을 적어 두지 그러나. (전투 중 잘못을 저지른 병사의 이름을 적어두었다가 체벌하는 관습에 대한 농담임 : 역주)"


샤프는 오른쪽을 보았다. 모두 세포이 용병으로 구성된 그 쪽 4개 연대는 아직 언덕 능선에 가려져서 대포의 포격으로부터는 안전한 사각지대에 있었고, 오록 대령의 초계병력과 제74 연대는 계곡 북쪽의 숲 속으로 들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하니스 대령의 스코틀랜드 연대가 가장 먼저 언덕 능선을 넘을 것이고, 적어도 한순간은 전체 적 포병대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될 것이었다. 몇몇 하이랜더(스코틀랜드인의 별칭 : 역주)는 마치 이왕 맞을 매를 빨리 맞겠다는 듯이 서두르고 있었다.


"천천히 !" 하니스 대령이 고함을 질렀다.


"이게 뭐 술집을 향한 달음박질인 줄 알아 ?  이 빌어먹을 놈들아 !"


엘시.  갑자기 샤프의 머리 속에 자기가 양조장 골목에서 도망친 이후 숨어들었던 웨더비 근처의 술집에서 일하던 여자의 이름이 떠올랐다.  왜 그 여자 이름이 기억나지 ? 그리고는 그 술집 내부의 광경이 떠올랐다.


'겨울비에 젖은 남자들의 코트에서 김이 올라오고, 엘시를 비롯한 여급들이 쟁반 위에 에일을 나르는 동안, 벽난로에서는 불이 타닥 소리를 내고 있겠지. 눈이 먼 목동은 술에 취했고, 개들이 식탁 밑에서 자고 있는 그 때, 내가 장교의 장식띠를 매고 칼을 찬 모습으로 그 검댕투성이 술집으로 걸어들어가는거야'


이런 상상을 하는 동안 샤프는 요크셔에 대한 것은 모두 잊어버렸고, 그 사이에 제778 연대는 웰슬리 장군의 참모진을 오른쪽에 끼고, 적 포병대의 코 앞의 평지로 올라섰다.


샤프가 우선 놀란 점은 적 포병대가 생각보다 굉장히 가까웠다는 것이었다.  저지대를 통과하는 동안, 제778 연대는 적 포병대로부터 150보 전방까지 접근해 있었다. 샤프가 두번째로 놀란 것은, 인도군이 정말 멋지게 정비가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적 포병대는 마치 검열을 받듯이 정열해 있었고, 그 뒤로는 인도 마라타 연합군의 연대들이 4줄의 밀집 대형으로 깃발 아래 정렬해 있었다.  샤프가 '아마도 죽음이라는 것이 이렇게 생긴 모양이다'라고 생각할 때, 그 멋진 적군의 대형이 한꺼번에 모두 포연 속에 사라져 버렸다. 그 포연은 물결치듯이 밀려나왔는데, 그 속에서 불과 몇 야드 간격으로 포화의 번쩍임이 보였다. 쏟아져 나오는 포연 바로 앞의 곡식들이 포화의 바람에 휩쓸려 넘어지는 동안, 무거운 대포알들이 하이랜더들의 대오를 찢어놓으며 날아왔다.


사방에서 피가 튀었고, 박살이 난 병사들이 대살육 속에서 쓰러지거나 뒤로 휩쓸려 날아갔다. 어디선가 병사 하나가 가쁜 숨을 내쉬었지만 아무도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백파이프 연주병 하나가 다리가 날아간 채 쓰러진 병사에게 악기를 내던지고 달려갔다. 몇 야드 간격마다 죽거나 죽어가는 병사들이 뒤엉켜 쓰러져서, 전체 대열 중 어디를 대포알이 휩쓸고 지나갔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 젊은 장교가 놀라서 눈을 뒤집고 머리를 흔드는 자기의 말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니스 대령은 자기 앞에 창자가 터져나온 채 쓰러져 있는 병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자기 말을 그 옆으로 돌아가게 했다.  하사관들은 대열에 빈틈이 생긴 것이 마치 하이랜더들의 잘못이라는 듯이 화를 내며 곳곳에 생겨난 간격을 메꾸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는 갑자기 어색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웰슬리 장군은 옆을 보며 바클리에게 뭐라고 말을 했지만 샤프에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는데, 그제서야 샤프는 적의 포격으로 자기의 귀가 멍멍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웰슬리의 예비마인 디오메드가 샤프의 손아귀로부터 고삐를 당기며 옆으로 가려고 했기 때문에, 샤프는 그 회색말을 다시 자기 쪽으로 당겨야 했다.  피 위로는 온통 파리떼가 들끓었다. 한 하이랜더가 자기를 놔두고 행진해 나가는 동료들을 보며 엄청난 욕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그 병사는 무릎과 팔꿈치를 땅에 댄 채 엎드려 있었는데, 겉보기에는 상처는 전혀 없어 보였지만, 샤프를 한번 쳐다보면서 마지막으로 욕 한마디를 지껄이고는 푹 쓰러져 버렸다.


병사들의 배에서 터져 흘러나온 퍼런 창자 위로 더 많은 파리떼가 모여들었다. 다른 병사 하나는 머스킷 소총을 멜빵으로 질질 끌면서 관목 그루터기 사이를 기어갔다.


"이제 침착하게 !" 하니스 대령이 외쳤다.


"서두르지마 이 자식들아 !  지금 달리기 경주하는 줄 알아 ?  니들 에미를 생각해 !"


"에미 ?"  블래키스턴 소령이 물었다.


"간격을 메워라 !" 하사관 하나가 외쳤다.  "간격을 메워 !"


마라타 포병대는 미친 듯이 재장전을 하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보통의 쇠로 된 포탄이 아니고 속에 소총탄이 가득 든 깡통으로 된 산탄을 준비하고 있었다.  포연이 산들바람에 걷히고 있었고, 샤프의 눈에 포구를 쑤시며 화약을 운반하는 적병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다른 적병들은 아까의 포격으로 뒤로 밀려갔던 포신들을 지렛대로 다시 스코틀랜드 연대에게 조준하고 있었다.


웰슬리는 그의 숫말이 하이랜더들의 대열 앞에서 너무 멀리 나아가지 못하도록 억누르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세포이 용병들은 아직 언덕 능선 밑의 사각지대에 있었고, 우익은 북쪽의 숲과 구릉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순간에는 하니스 대령의 하이랜더들 600명이 10만 명의 인도 마라타 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인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그들은 부상자와 전사자를 뒤에 내버려두고 자기들의 죽음을 장전한 채로 기다리는 적의 대포를 향해 탁 트인 벌판을 걸어갔다.  백파이프 연주병이 다시 연주를 시작했고, 그 사나운 음악이 하이랜더들의 발걸음에 새로운 힘을 주는 듯 했다. 그들은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지만 완벽한 대오를 이루고 있었고 아주 평온해 보였다. '사람들이 스코틀랜드인들에 대해 노래를 만든게 거저 만든게 아니군' 하고 샤프는 생각했다.  그때 말발굽 소리가 뒤에서 들려 돌아보니 캠벨 대위가 아까의 전령 임무로부터 돌아오고 있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캠벨 대위는 아메드누거 성벽 위에 맨 처음 기어오른 공으로 1계급 특진하며 웰슬리에게 발탁된 바로 그 실존 인물 캠벨 대위입니다.  : 역주)


대위는 샤프를 보고 씩 웃었다.


"난 내가 너무 늦었나 싶었지."


"시간에 딱 맞게 오셨습니다, 대위님. 정말 딱이요." 샤프는 말했다. 그리고는 황당해했다. '죽을 시간에 딱 ?'


캠벨은 웰슬리 장군에게 다가가서 보고를 했다.  장군은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다시 앞쪽의 대포들이 불을 뿜었는데, 이번에는 아까처럼 일제히 쏘지 않고 재장전을 마친 순서대로 개별적으로 발사했다.


각각의 포성은 끔찍하게 커서 귀를 멍멍하게 울렸고, 산탄은 스코틀랜드군의 바로 앞에서 수많은 먼지 연기와 함께 튀어올라 병사들을 뒤로 낚아채듯 휩쓸어버렸다.


각각의 포탄은 속에 둥근 머스킷 소총탄이나 쇳조각, 돌조각이 가득 든 금속 깡통이었고, 포구를 떠나자마자 깡통이 찢어지며 그 내용물을 마치 거대한 산탄총처럼 쏟아붓는 것이었다.


차례차례 또 다른 대포가 불을 뿜었고, 각각의 포격이 대지를 강타하며 각각에게 할당된 스코틀랜드인을 저승으로 보내거나 혹은 고향 교구에게 부담이 될 불구자로 만들거나, 나중에 군의관의 무자비한 손에 고통을 당하도록 만들었다.  북치는 소년들은, 비록 하나는 다리를 절고 있었고 또 하나는 자기 북에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지만 아직 연주를 계속하고 있었다.  백파이프 연주병들은 적의 대군 속으로의 행진이 마치 뭔가 축하할 일인 것처럼 좀더 쾌활한 음악을 연주했고, 몇몇 하이랜더들은 발걸음을 빨리 했다.


"그렇게 서두르지 마라 !" 하니스 대령이 외쳤다.


"그렇게 서두르지 마 !" 그는 큼직한 칼자루가 달린 클레이모어(스코틀랜드 식 대형 검)를 손에 들고 자기 병사들의 바로 뒤에 바짝 붙어서 가고 있었는데, 마치 병사들을 헤치고 말을 달려서 자기 연대를 박살내고 있는 적의 포병들에게 그 거대한 칼날을 들이대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산탄에 곰가죽 모자가 날아갔는데, 그걸 쓰고 있던 병사는 멀쩡했다.


"이제 침착해라 !" 소령 하나가 외쳤다.


"간격을 메워라 !  간격을 메워 !"  하사관들이 외쳤다.


"대오의 간격을 메워라 !"


대오의 간격을 메우는 임무를 띤 상병들이 대열 뒤에서 바삐 움직이며 병사들을 좌우로 끌어다가 포탄이 휩쓸어간 자리를 메웠다. 이제 그 빈 자리를 더 넓어졌는데, 그 이유는 이전의 보통 대포알은 한번에 한개 열의 병사를 날려버렸지만, 지금의 산탄은 네다섯 열의 병사를 한꺼번에 낚아챘기 때문이었다.


네 문의 대포가 불을 뿜더니 이어서 다섯 번째, 그리고는 나머지 전체 대포들이 연달아 한꺼번에 불을 뿜었다.  샤프 주변의 공기는 거센 포탄이 일으키는 바람으로 갈기갈기 찢어졌고, 하이랜더들의 대열은 그 폭풍 속에서 뒤틀리는 듯 했다.  그 뒤에 피를 흘리고, 토하고, 울부짖고, 동료 혹은 어머니를 부르는 병사들을 남겨두긴 했지만, 그래도 남은 자들은 대오의 간격을 좁히며 굳건하게 계속 전진했다.  더 많은 대포들이 불을 뿜으며 적진을 포연으로 감쌌다.  샤프는 산탄이 연대의 병사들에게 날아와 꽂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세상의 모든 병사들이 그렇게 하듯, 하이랜더 병사들은 개머리판이 사타구니를 가리도록 소총을 들고 있었는데, 한방 한방의 포화로부터 수많은 머스킷 총탄이 쏟아져나와 병사들의 소총을 따닥 때리는 소리를 냈다.  이제 병사들의 대오는 처음보다 많이 짧아져 있었지만, 이제 적 대포가 뿜어낸 자욱한 포연의 가장자리까지 거의 도달했다.


"778 연대 !" 하니스 대령이 우렁찬 소리로 외쳤다. "정지 !"


웰슬리 장군은 말의 고삐를 당겼다.  샤프가 오른쪽을 보니, 계곡으로부터 세포이 용병들이 한줄의 긴 붉은 선으로 나오는 것이 보였는데, 그 선은 세포이들이 관목으로 가득찬 계곡을 통과하면서 조각조각 끊어져 있었다. 연이어 마라타 연합군의 북쪽 대오에서도 포격을 시작했고 세포이들의 대오는 더욱 더 조각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 좌측의 스코틀랜드인들처럼, 세포이들도 포화를 무릅쓰고 전진했다.





(당시 영국군 정규병보다 세포이가 좋았던 점은 2가지 -  채찍질 체벌이 없었다는 것과 반바지)




"조준 !" 하니스의 구령 속에는 약간의 흥분감이 섞여있었다.


스코틀랜드 병사들은 머스킷 소총을 들어올려 조준했다. 이제 그들은 적 포병들로부터 겨우 60야드(54m) 떨어진 상태였고 활강총신을 가진 머스킷 소총도 그 정도의 거리에서는 상당히 정확했다.


"높게 쏘지 마라, 이 개새끼들아 !" 하니스가 경고했다.


"높게 쏘는 놈들은 한놈 한놈 채찍질을 할거다.  발사 !"


소총의 일제사격 소리는 거대한 대포 소리에 비하면 빈약하게 들렸지만 그 소리가 주는 안도감은 대단했고, 하이랜더들의 일제사격이 그루터기 너머를 휩쓰는 것을 보며 샤프는 하마트면 환호성을 올릴 뻔 했다.  적 포병들은 사라지고 없었다.  몇몇은 죽었을테지만, 나머지는 그저 큰 포가 뒤에 숨어있었다.


"재장전 !" 하니스가 소리쳤다.


"우물쭈물하지마라 !  재장전 !"


여기서 그동안 하이랜더들이 받았던 훈련이 그 성과를 발휘했다.  머스킷 소총은 재장전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운 물건이었고, 특히나 17인치(43cm)짜리 총검이 착검된 경우는 더욱 그랬다. 그 삼각형 칼날은 총구에 탄약을 밀대로 밀어넣는 것을 까다롭게 했기 때문에, 몇몇 병사들은 총검을 떼내어 재장전을 쉽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병사들은 고향에서 몇주간 힘들게 훈련받은 그대로, 신속하게 재장전했다.  탄약을 넣고, 밀대로 밀어넣고, 뇌관 화약을 집어넣고, 다시 밀대를 총신 홈에 집어넣었다. 총검을 떼어냈던 병사들은 서둘러 다시 착검했고, 다시 세워총 자세로 돌아갔다.


"지금 장전한 총알은 적 보병을 위해 남겨둔다 !" 하니스 대령이 외쳤다.


"이제 전진이다 ! 저 이교도 개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안식일 학살이 뭔지 보여줘라 !"


이건 복수였다.  이건 그 동안의 분노의 고삐를 풀어준 것이었다.  적 대포는 아직 재장전되지 않은 상태였고, 적 포병대는 일제 사격의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포는 스코틀랜드 병사들이 백병전 거리에 들어올때까지 재장전할 시간이 없을 것이었다.  몇몇 적 포병은 도주했다.  샤프의 눈에 말을 탄 마라타 장교 하나가 도주하는 포병들을 잡아들여 칼등으로 다시 원위치로 몰고 가는 것이 보였다.  또한, 자기 바로 앞에 있는 색칠이 된 거대한 대포를 두 명의 적 포병이 장전을 끝내고 옆으로 돌아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 우리가 받게 될 것에 대해서도... (뒤에는 '주님께 감사할 수 있도록 하소서 - 당시 일제 사격을 받기 전 병사들이 외우는 일종의 기도 : 역주)" 블래키스턴 소령이 중얼거렸다.  이 공병 장교도 적 포병이 재장전하는 것을 본 것이다.


그 대포가 불을 뿜었다.  그 포구로부터 몰아쳐닥친 포연이 장군 일행을 삼켜버렸다. 한순간 샤프는 희미한 연기 속에서 웰슬리 장군의 키 큰 윤곽을 보았다고 생각했지만, 다음 순간 보이는 것은 피바다 속에 쓰러지는 장군의 모습이었다.  산탄 조각들이 샤프 주변을 휩쓸고 나서 한 박자 뒤에 그 포격의 열기와 폭풍이 그의 몸을 휘감고 지나갔지만, 그는 웰슬리 장군의 바로 뒤에 있었으므로 포격을 정통으로 맞은 것은 바로 웰슬리였다.


실은 장군이 아니고 그의 말이었다.  그 종마는 십여발의 산탄을 맞았지만 웰슬리는 기적적으로 상처 하나 없었다.  그 큰 말은 땅에 쓰러지기도 전에 이미 숨이 끊어졌다.  말이 쓰러지기 전에 웰슬리가 발을 등자에서 빼면서 안장에 손을 대고 몸을 빼내는 것이 샤프의 눈에 들어왔다.  웰슬리는 오른발이 먼저 땅에 닿자, 종마의 몸무게가 그의 다리 위를 덮치기 전에 비틀거리며 펄쩍 뛰어 몸을 피했다.  캠벨 대위가 장군 쪽을 돌아다 보았지만, 장군은 그에게 그대로 전진하라고 손짓을 했다.  샤프는 타고있는 암말에 박차를 가하며 벨트에서 디오메드의 고삐를 풀어내었다.  먼저 죽은 말에게서 안장을 벗겨야 하나 ?  그럴 것 같다고 생각한 샤프는 먼저 말에서 내렸다.  하지만 죽은 종마에게서 안장을 벗겨내는 동안 암말과 디오메드는 어떻게 하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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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9.01.17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전도 원전이지만, 역시 나시카님이 번역하실때의 그 필력 또한 대단하십니다. 정말 숨도 안 쉬고 읽었습니다 ㅎㅎ

  2. 셰링가파탐 2019.01.17 16: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셰링가파탐의 마이소르 현지식 이름이 스리랑가파트남이고 셰링가파탐은 영국인들 이 발음을 제멋대로 한 느낌이더군요. 가서 신기했습니다. 왕궁 몇 개만 남아있지만 책에서만 읽은 그곳이 눈앞에...

  3. reinhardt100 2019.01.17 23: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좀 황당한 내용이긴 한데 저 시절 기준에서는 체벌을 하지 않는다는 건 교화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웃기는 소리가 되기도 합니다.

    19세기 초반 영국의 교육관 및 인간관에서 체벌은 진짜 '사랑의 매'로써 '무지몽매한 하층민들을 교화하는 수단'으로써 받아들여졌죠. 이건 때리지 않으면 인간 대접해줄 필요가 없다는 소리가 되기도 합니다. 물론 현대인의 입장에서는 헛소리가 맞지만 저 당시에는 그게 기본이었습니다. 세포이들이 빠따(?)를 안 맞는다는거? 영국 동인도회사군이나 정규군 입장에서 좋은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냥 써먹고 버리는 소모품이라는 소리입니다.

    참고로 영국이 인도를 정복할 때 의외로 정규군이 많이 투입된 편입니다. 동인도회사가 파산하면서 정부로부터 빌린 구제금융의 대가로 제정된 노스법, 인도통치에 관한 법률 등 같은 각종 압력 때문에 전쟁이 없던 시절에 나름 남아나던 예비역(?)을 인도 정복전에 꽤나 투입시킵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민간사회도 안정시키면서 예비역들 줄 돈 들어가는 걸 회사에 떠넘기는 셈이었고 회사 입장에서도 세포이같은 못 믿을 용병 대신 본국 정규군을 동원해서 싸우는게 훨씬 낫다고 생각하다보니 꽤나 빈번했습니다. 문제는 이 정규군 출신들이 본국이 아니다보니 군기가 개판이 되는 경향이 있었고 사고도 자주 일어났다고 합니다.

  4. ㅇㅋㅂㄹ 2019.01.18 14: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에미가 애미 말하는건가요?

  5. TheK의 추천영화 2019.01.18 19:1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보다가 만 이 느낌은. ??
    아쉽네요. ^ㅇ^*

  6. ㄷㄷ 2019.01.26 20: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금 생각하면 좀 이해가 안가는게, 왜 웰링턴이 적 포병에 대해 대포병 사격, 경보병으로 저격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맞으면서 갔는지 의아하네요. 아니면 차라리 적 포병 포탄이 떨어질 때까지 엎드려있는 것도 인명피해를 줄이는 방법일텐데 말이죠.

    • 빵뚜아 2019.02.06 0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시 전술을 현대전 기준으로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어려우실꺼에요. 애초에 포격을 정면으로 받으며 밀집대형으로(간격이 벌어지면 메워가면서) 접근하는것 자체가 현대전 기준으로는 넌센스입니다.

    • 찰리 2019.06.28 0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시는 총의 사거리와 정확도가 매우 떨어졌기 때문에 저격은 엄두도 낼 수 없었죠. 포라는 것도 지금처럼 곡사로 떨어져 폭발하며 파편을 마구 쏟아내는게 아니라 직사로 날아가는 쇠덩이였기 때문에 떼로 엎드려있다가는 땅을 통통 튀어오는 포탄에 피죽이 되기 십상이었구요. 게다가 엎드려있으면 총을 장전할 수가 없어 접근한 적 보병의 먹잇감이 될 수 밖에요 ㅎ

  7. 철인18호 2019.04.25 15: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샤프 시리즈 드라마인가 영화인가는 유치해서 못보겟더군요. 걸핏하면 투항병으로 변신해서 적진에 침투하고...

Bertrand Cornwell의 Sharpe 시리즈 중, Sharpe's Honour 중 제 1장입니다.  맛보기로 한장만 번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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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바람이 바위투성이 골짜기를 휩쓸던 습기찬 어느 봄날, 샤프 소령은 오래된 돌 다리 위에 서서 남쪽의 바위투성이 능선 낮은 쪽으로 향하는 길을 지켜보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로 인해 언덕들은 어두워보였다.


그의 뒤쪽으로는, 머스켓 소총의 발화장치를 헝겊으로 가리고, 총구에는 빗물이 흘러들어가지 않도록 코크마개를 막아둔 채로, 5개 중대의 보병들이 늘어서 있었다.


샤프가 알기로는, 능선까지의 거리는 500야드였다.  (머스켓 소총의 사정거리는 약 60야드입니다.:역주)  곧 그 능선 위로 적군이 나타날 예정이었고, 그들이 다리를 건너는 것을 막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아주 간단한, 군인의 일거리였다.  이 1813년의 봄은 늦게 찾아왔고, 이 국경의 구릉지대에는 비만 줄곧 내렸으므로, 다리 아래의 강물은 깊고 빨라서, 걸어서 건널 수 없는 상태였으므로, 그 임무는 훨씬 더 쉬워진 상태였다.  적군은 샤프가 기다리고 있는 다리를 통과하던가, 아니면 강물을 아예 건널 수 없었다.


"소령님 ?" 경보병 중대의 지휘관인 달렘보드 대위는 샤프 소령의 우중충한 기분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를 냈다.


"무슨 일인가, 대위 ?"


"참모 장교가 오고 있습니다."


샤프는 나직히 궁시렁거렸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등 뒤에서 말발굽 소리가 다가와 속도를 줄이는 것을 들었다. 다음 순간 말이 그의 앞에 나타나 섰고, 흥분한 기병 중위 하나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샤프 소령님 ?"


단호하고 화가 난 듯한 검은 눈동자가 중위의 금도금이 된 박차와 장화를 거쳐, 진흙이 군데군데 묻었지만 비싸보이는 파란색 울 망토를 지나, 흥분한 참모 장교의 눈과 마주쳤다.  "자네가 내 시야를 가리고 있는데, 중위." 


"죄송합니다, 소령님."


중위는 서둘러 말을 한쪽으로 움직였다. 그는 험난한 산길을 돌아, 아주 열심히 말을 달려왔고, 그의 승마 솜씨에 스스로 우쭐해있었다. 그의 암말은 안절부절 못하고 움직이면서, 그 중위의 흥분감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었다.  "프레스톤 장군께서 보내신 전갈입니다, 소령님. 적군이 이쪽으로 오고 있습니다."


"나도 능선에 초병을 세워놓았었네." 샤프는 무례한 말투로 말했다. "적병을 30분 전부터 보고 있었어."


"예, 소령님."


샤프는 능선을 쳐다보았다. 중위는 자기가 그저 조용히 사라져야 하는지 망설이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라이플맨(샤프)이 중위를 다시 쳐다보았다. "자네 프랑스말 할 줄 아나 ?"


리처드 샤프 소령을 처음 만난다는 사실에 신경이 곤두서 있던 중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령님."


"얼마나 잘하지 ?"


기병 중위는 미소를 지었다. "Tres bien, Monsieur, Je parle..  (Very well, Mister, I speak...:역주) "


"내가 언제 빌어먹을 시범을 들려달라고 했나 ? 질문에 대답이나 하게 !"


중위는 이 무자비한 힐책에 겁이 났다. "아주 잘 합니다, 소령님."


샤프는 그를 쳐다보았다. 중위는 그 눈길이 마치 포동포동 살이 찌고 한때 잘나갔던 사형수를 대하는 집행인의 눈길 같다고 생각했다. "이름이 뭔가, 중위 ?"


"트럼퍼-존스입니다, 소령님."

"흰 손수건 있나 ?"


이 대화는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군 하고 중위는 생각했다. "예, 소령님."


"좋아." 샤프는 다시 다리 쪽과, 능선을 넘어 길이 뻗어오는 움푹한 안장모양의 고개길 쪽을 쳐다보았다.


일이 아주 꼬일대로 꼬여 버리고 말았어 라고 샤프는 생각하고 있었다. 영국군은 포르투갈 국경의 동쪽으로부터 진격로를 확보해나가고 있었다. 프랑스군의 거점을 몰아내고 프랑스 수비군을 쫓아내면서 다가오는 여름의 작전 준비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치적치적 비가 내리면서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에, 5개대대의 영국군이 토르메스 강가의 프랑스 수비대를 공격했다. 프랑스군 후방 5마일 떨어진 곳에, 프랑스군이 퇴각해올 이 길 도중에, 이 다리가 있었다.  샤프는 대대의 절반 정도되는 병력(5개 중대)과 라이플 중대 하나를 거느리고, 그 퇴각을 막기 위해, 밤을 새워 길을 빙 돌아 행군하여 여기에 오게 된 것이었다.  그의 임무는 간단했다. 추격해온 다른 대대가 퇴각하는 프랑스군을 따라잡아 끝장을 볼 수 있도록, 프랑스군의 퇴각을 막고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날 오후가 되면서, 샤프의 기분은 매우 저기압이었다.


"소령님 ?" 샤프는 위를 쳐다보았다. 중위는 접은 린넨 손수건을 내밀고 있었다. 트럼퍼-존스는 불안한 듯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손수건이 필요하시다고요, 소령님 ?"


"내가 코를 풀자는 건 줄 아나, 이 바보야 !  항복을 위한 거야 !" 샤프는 으르렁거리고는 두 발자국을 옮겨갔다.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그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비록 1500명의 프랑스군이 겨우 400명도 안되는 이 작은 부대 쪽으로 몰려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트럼퍼-존스가 리처드 샤프라는 남자에 대해 들은 바로는, 샤프가 이렇게 급작스럽게 항복을 하겠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것이었다.  실제로, 샤프의 명성은 잉글랜드에까지 퍼져 있었고, 극히 최근에야 영국에서 떠나온 트럼퍼-존스가 최전선으로 다가올 수록 그는 그 이름을 점점 더 많이 듣게 되었다. 샤프는 군인 중의 군인으로서, 그의 칭찬을 듣는 것은 진정한 명예로 간주되었고, 그의 이름은 프로페셔널로서의 뛰어남에 대한 표석으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지금 싸우지도 않고 항복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이클 트럼퍼-존스 중위는 그 생각에 어이가 없어, 햇빛과 바람에 검게 그을린 샤프의 얼굴을 몰래 쳐다보았다. 잘 생긴 얼굴이었으나, 샤프의 왼쪽 눈 아래의 긴 흉터(1803년, 인도에서 도드 대령의 칼에 입은 상처입니다.:역주)로 인해, 마치 사람을 비웃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트럼퍼-존스는 모르고 있었지만, 샤프가 웃을 때면 그 흉터로 인한 비웃는 듯한 표정은 사라지곤 했다.  트럼퍼-존스가 가장 놀란 부분은, 샤프는 계급장을 전혀 달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장교의 허리띠나 견장도 없어서, 그가 장교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은 옆에 차고 있는 낡아빠진 기병용 군도 뿐이었다.  트럼퍼-존스 생각에, 그는 정말 영국군이 빼앗은 첫번째 프랑스의 독수리 군기를 탈취한, 그리고 바다호스 요새의 무너진 틈새로 처음 돌격해 들어간, 그리고 가르시아 에르난데스에서 독일 병사들과 함께 그 유명한 기병 돌격을 감행했던, 바로 그 군인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자신만만함은, 그가 군 생활을 졸병 계급부터 시작했다는 것을 믿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총 한방 쏴보기도 전에 숫적으로 불리하다고 항복하려 한다는 것은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지금 뭘 보는 거야, 중위 ?"


"아무것도 아닙니다, 소령님." 트럼퍼-존스는 샤프가 남쪽 구릉지대를 쳐다보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샤프는 그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중위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그는 그것이 싫었다. 그는 주목을 받는 것이 싫었고,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싫었다. 요즘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만 편안함을 느꼈다. 그는 이 젊은 기병 중위에게 필요 이상으로 심하게 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중위를 올려다 보았다. "적에게 3문의 대포가 있는 것 같던데, 맞나 ?"


"예, 소령님."


"4파운드 포였지 ?"


"그런 것 같습니다, 소령님."


샤프는 툴툴거렸다. 그는 능선을 지켜보았다. 그는 그 두마디 질문이 중위에게 좀 친근한 느낌을 주기를 바랬지만, 사실 그는 요즘 낯선 사람들에게서는 친근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부터 우울해 있었다. (Sharpe's Enemy 편에서 샤프는 크리스마스날 스페인인 아내인 테레사를 잃습니다. : 역주) 그는 격렬한 죄책감과 무자비한 절망감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의 아내가 '신의 대문'이라 불리는 산길의 눈속에서 살해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목에서 흘러내리던 피의 이미지가 그의 마음 속에 떠올랐다. 그는 그 장면을 몰아내기라도 하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그녀가 죽었기 때문에, 그녀 몰래 바람을 피웠었고, 그녀의 사랑에 대한 보답이 그런 종말을 맞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어린 딸이 이제 엄마없는 아이가 되었다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그의 죄책감 때문에 무일푼 상태였다. 아직 두살이 채 안된 그의 딸은 그녀의 스페인 삼촌과 숙모 밑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그가 스페인 정부로부터 훔쳤던 (Sharpe's Gold 편에서 그는 스페인 금화를 빼앗아 오는 임무를 맡았는데, 당연히 그중 일부를 슬쩍합니다.:역주) 그의 저축금 전체를 그의 딸 안토니아에게 보냈었다.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그의 군도와 라이플 소총, 그의 망원경, 그리고 몸에 걸친 낡은 군복 한벌이 전부였다.  그는 값비싼 말을 탄, 금도금이 된 장식 칼집을 차고 새 가죽장화를 신은 이 젊은 중위를 속으로 저주하고 있었다.


그의 등 뒤의 대오에서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병사들이 남쪽 능선에 갑자기 나타난 사람의 모습을 본 것이었다. 샤프는 뒤돌아섰다.


"대대~!" 곧 침묵이 뒤따랐다. "대대~! 차렷 !  (Talion ! 'Shun !)"  (Battalion, Attention ! 을 이렇게 발음하는군요.: 역주)


병사들의 장화가 비에 젖은 바위 위에 철썩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그들은 프랑스군의 퇴각로가 될 북쪽길이 놓인 작은 계곡의 입구를 가로막은 채 2줄로 늘어서 있었다.


샤프는 그들의 불안함을 이해했다. 그들은 샤프의 대대에 속한 샤프의 병사들이었다.  또한 그는 이 병사들을 신뢰하고 있었다. 비록 적군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상태라고 해도, 그 신뢰에는 변함이 없었다. "헉필드 중사 !"


"소령님 !"


"군기를 올려라 !"


마이클 트럼퍼-존스가 보니, 이런 엄숙한 순간에 어울리지 않게도 병사들은 씨익 웃고 있었는데, 다음 순간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 군기라는 것은 대대의 정상적인 깃발이 아니라, 껍질을 벗긴 자작나무 줄기에 헝겊조각을 매달아 놓은 것에 불과했다. 깃발은 비에 젖어 축축하게 늘어져 있었으므로, 먼거리에서는 그것이 병사들 자켓에서 뜯어낸 노란색 헝겊으로 장식한 망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볼 수 없었다. 막대기의 끝에는 노란 헝겊을 묶어놓아, 멀리서 보았을 때는 잉글랜드의 왕관처럼 보이게 꾸며 놓았다.


샤프는 이 참모장교가 놀라고 있는 것을 보았다. "반편(half) 대대는 군기를 소지할 수 없다네, 미스터 트럼퍼-존스."


"예, 그렇지요, 소령님."


"그리고 프랑스군도 그걸 알지."


"그렇습니다, 소령님."


"그러니 그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


"여기에 정규 1개 대대가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


"그렇지."  샤프가 다시 남쪽을 쳐다보는 동안, 트럼퍼-존스는 왜 항복에 앞서 이런 속임수가 필요한지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트럼퍼-존스는 샤프에게 묻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샤프 소령의 얼굴을 보면 쓸데없는 질문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바로 그때, 리처드 샤프 소령은 남쪽 능선을 쳐다보면서, 여기는 정말 죽을 장소치고는 비참하고, 어울리지도 않고, 또 바보같은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끔씩 그는 죽고 나면 다시 테레사를 만나서, 항상 그를 반겨주던 그녀의 갸름하고 해맑은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지 궁금해했다. 그녀의 얼굴의 자세한 모습은 그의 기억에서 점점 흐릿해져 가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초상화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스페인 친척의 집안에서 자라고 있는 그의 딸은 엄마의 초상화도, 아빠의 초상화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영국군은 언젠가는 스페인 땅을 벗어나 진격해나갈 것이고, 그는 군대와 함께 움직여야 했다. 그러면 그의 딸은 샤프가 어릴 때 고아로 남겨졌듯이, 부모없이 살아가도록 남겨질 것이었다.  불행이 불행을 낳는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안토니아의 삼촌과 숙모는, 샤프 자신보다는 훨씬 좋은 부모가 되어줄 것이라는 위안감을 느꼈다.


계곡 위로 거센 바람이 비를 몰고와서, 시야를 흐리게 하면서 다리의 돌에 부딪히 휘잉 소리를 냈다. 샤프는 말을 탄 참모 장교를 올려다 보았다. "뭐가 보이나, 중위 ?"


"말탄 사람 6명입니다, 소령님."


"적군에게 기병대는 없지 ?"


"우리가 본 바로는 없었습니다, 소령님."


"그럼 저건 적군의 보병 장교들이겠군. 저자식들은 지금 우리를 어떻게 요리할까 작전을 짜고 있을거야."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날씨가 개여서, 햇빛이 따뜻하게 비추어 지난 겨울의 아픈 기억들을 날려버릴 수 있기를 바랬다.


그때 길이 걸쳐있는 능선 위가, 갑자기 프랑스군의 파란색 군복으로 가득 메워졌다. 샤프는 적군이 그를 향해 다가오는 동안, 몇개 중대나 되는지 세어보았다. 6개 중대였다. 그들은 전위대였고, 다리를 향해 돌격하여 점령하되, 대포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기다리라고 명령을 받았을 것이었다.


그날 아침, 샤프는 피터 달렘보드 대위의 말을 빌려서 프랑스군의 퇴각로를 10번도 넘게 돌아보았었다. 그는 프랑스군 지휘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았고 적군이 어떻게 나올지 확신이 들때까지 혼자서 자기 자신과 토론을 해보았었다. 이제 적군은 그대로 행동하고 있었고, 그는 그걸 지켜보고 있었다.


프랑스군은 영국군 대부대가 뒤를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감히 길에서 벗어나 구릉지대로 피할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면 대포를 버리고 가야했고, 그럴 경우 스페인 빨치산의 밥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틀림없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 훼방꾼들을 재빨리 날려버리려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한 도구는 그들의 대포일 것이었다.


능선 아래 150야드 지점에, 길이 계곡 바닥으로 내려오면서 마지막으로 굽이치는 지점에, 대포가 자리잡기에 딱 좋은 바위로 된 넓은 평지가 있었다. 거기서부터 프랑스군 포병은 샤프가 거느린 2열 횡대의 보병들에게 캐니스터(커다란 산탄총같은 포탄의 일종: 역주)를 퍼부어 피떡을 만들어버릴 수 있었다.  영국군 대오가 산산조각이 나면, 프랑스 보병들이 총검을 들고 다리를 향해 돌격을 해올 것이었다. 그 바위 평지에서라면 프랑스 포병은 자신들의 보병 머리 너머로 대포를 쏘아댈 수 있었다. 사실 그 바위 평지는 바로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샤프는 그날 아침 작업조를 보내 바위 바닥에서 포병들에게 걸리적거릴 만한 것들을 다 치워놓았었다.


그는 프랑스 포병이 바로 그 위치에 있기를 바랬다. 그는 프랑스군이 대포를 거기에 갖다놓으라고 초대장을 보낸 셈이었다.


그는 3대의 대포가 언덕길을 조심스레 내려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보병들이 달라붙어 바퀴에 브레이크를 걸어주고 있었다. 그들은 점점 더 아래로 내려왔다. 그는 포병들이 다리 건너의 평지까지 내려와 자리를 잡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사우스 에섹스 대대의 몇안되는 라이플 사수들을 강둑에 배치시켜 놓았었다. 프랑스군은, 녹색 자켓을 입은 그 라이플 사수들을 보았을 것이고, 라이플 강선에 의해 회전하는 탄환의 정확성을 두려워할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프랑스군이 라이플 소총의 사정거리 밖에 대포를 위치시키기를 바랬다.


프랑스군은 실제로 그렇게 했다. 프랑스군 포병이 그 바위 평지로 와서 대포를 말에서 떼어내고, 탄약을 가져오는 것을 보면서 샤프는 속으로 안심했다.


샤프는 뒤돌아섰다. "총구 마개를 뽑아 !" 두줄로 늘어선 붉은자켓의 병사들이 머스켓 소총 총구에서 코르크 마개를 뽀아내고 격발장치를 감쌌던 헝겊을 풀어냈다. "거총 !"


머스켓 소총이 병사들의 어깨로 올라왔다. 프랑스군도 그 움직임을 볼 것이엇다. 프랑스군은 영국군 머스켓 사격의 속도를 두려워했다. 영국군의 잘 훈련된 머스켓 사격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고, 스페인 전장에서 그 위력을 여러번 입증했었다.


샤프는 다시 병사들에게 등을 돌렸다.  "중위 ?"


"소령님 ?"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흠칫 놀라,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좀더 깊은 목소리로 다시 대답했다. "소령님 ?"


"그 손수건을 자네 군도에 묶어라."


"하지만 소령님...."


"명령에 복종하게, 중위." 이 말은 나직이 말해졌으므로 트럼퍼-존스를 제외한 다른 병사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말은 무자비하게 오싹한 느낌을 주었다.


"예, 소령님."


프랑스군의 6개 공격중대는 250야드 거리에 있었다. 그들은 총검을 착검한 채, 종대로 이루어 있었고, 포병대가 일을 마치고 나면 진격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샤프는 식량주머니(haversack : haver는 네덜란드어로 귀리라는 뜻입니다. 역주)에서 망원경을 꺼내어 망원경 튜브를 잡아늘이고 대포를 관찰했다. 거대한 산탄총처럼, 깡통 속에 든 자잘한 소총탄을 죽음의 부채살 모양으로 쏘아대도록 만들어진 캐니스터 포탄이 세문의 대포 포구로 운반되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그때가 그가 소령으로 진급한 것이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소령으로서, 그는 지휘권을 이양하고, 다른 사람들이 위험하고 어려운 일을 하도록 내버려두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하지만, 프랑스 포병들이 대포의 마지막 조준을 마치고 있는 이 순간, 그는 그 날의 진짜 일을 수행하도록 임무를 받은 라이플 중대와 자기가 함께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랬다.


첫번째 캐니스터 포탄이 포구에 밀어넣어지고 있었다.


"지금이야, 빌 !" 샤프는 큰 소리로 말했다.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자기가 대답을 해야하는 건가 하고 어리둥절해하다가 그냥 잠자코 있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했다.


길의 왼쪽에, 길을 내려다보는 높은 바위 위에서, 하얀 화약연기들이 픽픽 나타났다. 1~2초 뒤에 라이플 소총 특유의 날카로운 총성이 울렸다. 이미 3명의 포병들이 쓰러져 있었다.


그것은 간단한 매복이었다. 1개 중대의 라이플 소총병들이 대포가 자리를 잡을 지점 근처에 매복하고 있었다. 그 수법은 샤프가 전에 사용했던 것이었고, 또 같은 방법을 썼는데, 언제나 통하는 방법 같았다.


프랑스군은 라이플 소총부대에 도통 익숙해지질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사격의 속도를 더 중요시하여 활강총신을 가진 머스켓 소총만을 사용했고, 장전에 시간이 더 많이 걸리는 라이플 소총은 사용하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녹색 자켓을 입고, 은폐물을 아주 잘 활용하고, 3백~4백보 거리의 유효사거리를 가진 라이플 소총병에 대해서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다. 이제 전체 포병대의 절반 정도가 쓰러졌고, 바위는 라이플 소총의 화약연기로 자욱해졌다. 하지만 총성은 계속되었고 총알은 이제 대포를 끄는 말들에게 퍼부어지고 있었다. 라이플 소총병들은 자신들의 화약연기에서 벗어나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자꾸 위치를 바꿔가면서 말들을 조준하여 쏘았다.  이는 대포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포병들을 쓰러뜨려 대포를 발사하지 못하게 막았다.


대포 뒤의 길 위에 있던 적군의 후위부대가 구보로 달려왔다. 그들은 바위 밑에서 진열을 짜고 바위 위로 올라가려 햇지만, 경사는 급했고, 라이플 소총병들은 중무장한 프랑스 보병들보다 훨씬 잽쌌다. 하지만 프랑스 보병들의 공격으로 인해, 최소한 라이플 소총병들이 포병들에 대한 사격을 중단하게 되었고, 이제 살아남은 포병들이 포가 밑에서 다시 포탄 장전을 마무리하기 위해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샤프는 씨익 웃었다.


저 구릉 지대 속 어딘가에 반은 독일인이고 반은 영국인인 윌리엄 프레데릭슨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샤프가 아는 그 어떤 병사보다도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의 부하들이 붙여준 그의 별명은 '달콤한 윌리엄'이었는데, 아마 그건 그의 애꾸눈 안대와 심한 흉터가 진 얼굴이 너무나 무시무시해보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달콤한 윌리엄은 살아남은 포병들이 엄폐물로부터 완전히 기어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길의 오른쪽에 숨어있던 라이플 소총병들에게 사격을 개시하도록 했다.


마지막 포병들까지 쓰러졌다. 프레데릭슨의 명령에 따라, 라이플 소총병들은 말을 탄 적의 보병 장교들로 표적을 바꾸었다. 적군은 몇발 되지도 않는, 그러나 정확히 조준된 라이플 총탄에 의해 포병대 전체를 잃고 갑자기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제 샤프가 그의 다른 무기를 뽑아들 차례였다.


"중위 ?"


마이클 트럼퍼-존스는 그의 군도 끝에 묶어놓은 축축한 흰 손수건을 숨기려고 하다가 샤프를 쳐다보았다. "소령님 ?"


"적군에게 가서 내 인사를 전하고, 무기를 내려놓도록 제안해보게."


트럼퍼-존스는 이 키가 크고 검은 얼굴을 한 라이플맨을 쳐다보았다. "저들보고 항복하라고요,  소령님 ?"


샤프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우리가 항복하자고 제안을 하는건가 ?  응 ?"


"아닙니다, 소령님." 트럼퍼-존스는 조금 지나치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는 어떻게 하면 1500 명의 프랑스군이 불과 400 명의 비에 젖고 고립된 영국군에게 항복하도록 설득할 수 있을지 황당해했다. "물론 아닙니다, 소령님."


"저들에게 우리가 1개 대대를 예비병력으로 가지고 있다고 해. 그리고 그 뒤에는 6개 대대가 있다고 하고. 또 구릉지대에는 기병대가 있고, 곧 대포가 도착한다고 하게. 아무거나 거짓말을 지어내라고 ! 하지만 반드시 내 인사를 먼저 전하고, 이미 쓸데없이 많은 병사들이 죽지 않았냐고 말하도록 하게. 그리고 그들의 군기를 폐기할 시간을 주겠다고 말하게."  그는 다리 건너를 쳐다보았다. 프랑스군이 바위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지만, 아직도 충분한 숫자의 라이플 총성이 울리고 있었고, 그 뜻은 아직도 이날 오후에 쓸데없이 인명이 살상되고 있다는 것을 뜻했다. 


"어서 가게, 중위 ! 15분 줄 것이고 그때까지 항복하지 않으면 내가 공격하겠다고 하게.  나팔수 ?"


"소령님 ?"


"기상 나팔을 불어라. 중위가 적군에게 도달할 때까지 계속 불어."


"예, 소령님."


나팔 소리로 경고를 받은 프랑스군은 한명의 기병이 그들을 항해 손수건을 묶은 칼을 높이 들고 달려내려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예의를 지키기 위해, 프랑스군은 바위 사이를 잽싸게 뛰어다니는 라이플 소총병들에게 사격을 하던 것을 중단했다.


전투의 화약 연기는 바람에 흩날리는 비 속에서 흩어져갔다. 트럼퍼-존스는 프랑스 장교들의 무리 속으로 사라졌다.  샤프는 뒤로 돌아섰다. "편히 쉬어 !"


5개 중대는 긴장을 풀었다. 샤프는 강둑을 쳐다보았다. "하퍼 상사 !"


"소령님 !"  6피트의 키를 가진 샤프보다도 4인치는 더 큰 커다란 사나이가 강둑에서 올라왔다. 그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샤프와 함께 이 붉은 코트 연대로 흘러들어오게된, 몇안되는 라이플맨 중의 하나였다. 사우스 에섹스 대대는 붉은 코트를 입고 유효사거리가 짧은 머스켓 소총을 사용했지만, 샤프의 예전 중대의 다른 라이플맨들처럼 그도 아직 녹색 자켓을 입고 라이플 소총을 들고 다녔다. 하퍼는 샤프 옆에 섰다. "저 자식들이 굴복할까요 ?"


"저들에겐 다른 도리가 없어. 자기들이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알거야. 저들이 1시간 안에 우리를 제거하지 못하면, 저들은 끝장이야."


하퍼는 웃었다. 샤프에게 친구가 있다면 바로 이 상사가 그 친구였다. 그들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모든 전투를 함께 했었다. 하퍼가 샤프와 나눌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샤프의 죄책감 뿐이었다.


샤프는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추위에 손을 비볐다. "차가 마시고 싶군, 패트릭. 차를 끓여도 좋다는 허가를 내리겠네."


하퍼는 미소를 지었다. "예, 소령님." 그는 얼스터(아일랜드의 지방명:역주)의 거센 억양으로 말했다.


샤프가 손으로 감싸고 있던 차가 식기도 전에, 마이클 트럼퍼-존스 중위가 프랑스군 대령과 함께 돌아왔다. 샤프는 이미 엉터리로 만든 가짜 군기를 치우도록 명령해 놓았었다. 그는 절망적인 적군을 만나기 위해 앞으로 나갔다. 그는 대령이 항복의 표시로 내미는 군도를 받아들이기를 사양했다. (이는 상대의 약속을 믿는다는 것을 뜻하는 당시의 예절입니다: 역주) 대포 없이는 다리를 점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던 프랑스군 대령은 샤프가 내놓은 항복 조건에 동의했다. 대령은, 샤프 소령같은 명성높은 군인에게 항복한다는 것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말했다.


샤프 소령은 감사를 표시하고, 차를 권했다.


 


두시간 후, 프레스턴 장군이 그의 5개 대대와 함께 도착했다. 그는 그의 앞에 머스켓 총성이 들리지 않는 것에 당황해하고 있었는데, 도착해보니 1500 명의 프랑스군이 포로가 되었고, 3문의 대포와 함께 마차 4대 분량의 보급품이 노획되어 있었다. 프랑스군의 머스켓 소총은 길가에 쌓여있었다. 그들이 수비하던 마을에서 약탈했던 약탈품들은 이미 샤프의 부하 병사들의 배낭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사우스 에섹스 대대의 병사 전체는 물론, 프레데릭슨 대위의 라이플맨들 모두가 부상조차 당하지 않았다. 프랑스군은 7명이 전사하고 21명이 부상을 입었다.


"축하하네, 샤프 !"


"고맙습니다, 장군님."


장교들이 끊이지 않고 다가와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는 그들을 떨쳐냈다. 그는 대포가 없이는 샤프의 부대를 깨뜨릴 수 없었으므로 프랑스군은 사실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축하가 끊이지 않았고, 마침내 이런 칭찬이 쑥스러워 샤프는 다리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거센 강물을 건너, 사우스 에섹스의 보급관인, 통통하게 살이 찐 콜립이라는 이름의 장교를 찾았다. 그 보급관은 지난 밤에 샤프의 절반의 대대와 함께 야간 행군을 했었다.


샤프는 바위가 갈라진 틈 사이로 콜립을 몰아 붙였다. 샤프의 얼굴은 무시무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넨 정말 운이 좋아, 미스터 콜립."


"예, 소령님." 콜립은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그는 불과 2달 전에 사우스 에섹스에 합류했었다.


"왜 자네가 운이 좋은지 말해보게, 미스터 콜립 ?"


콜립은 불안한 듯 침을 삼켰다. "아마 처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소령님 ?"


"처벌은 절대 없을걸세, 미스터 콜립."


"없다고요, 소령님 ?"


"왜냐하면 그건 내 잘못이었으니까. 자네가 짐을 다 도맡겠다고 했을 때 난 자네를 믿었네.  내가 틀렸지. 자넨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


"정말 죄송합니다, 소령님."


지난 밤에, 샤프와 그의 대위들은 프레데릭슨 대위의 라이플맨들과 함께 먼저 길을 떠났었다. 그는 길을 안내하기 위해 먼저 떠났었고, 중위들과 함께 콜립이 나머지 병사들을 이끌고 오도록 했었다. 그가 되돌아 왔을 때, 콜립은 그가 힘들게 건넜던 깊은 계곡 입구에서 있었다. 샤프는 라이플맨들을 이끌고 계곡을 건너, 가파른 강둑을 내려가 허리까지 차오르는 얼음처럼 차가운 강물을 건너, 얼음이 얼 것같은 옷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건너편 강둑을 기어올랐었다.


그가 5개 중대를 데리러 되돌아왔을때, 엄청난 재난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급관인 콜립은, 붉은코트의 병사들이 좀더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묘안을 짜냈었다. 머스켓 소총의 어깨끈을 모아 묶어서 밧줄을 만들어, 매우 긴 고리를 만들었다. 이것을 강둑 사이에 걸쳐놓고 거기에 모든 병사들의 무기와 배낭과 수통과 식량주머니를 차례로 매달아서 순환식으로 잡아당겼던 것이다. 마지막 짐을 그런 식으로 건네고 있을 때, 어깨끈의 매듭이 풀리면서 짐이 물 속에 빠졌는데, 그 짐은 사우스 에섹스 대대의 탄약 전체였던 것이었다.


프랑스 군이 샤프가 지키는 다리에 도달했을 때, 탄약이 있었던 것은 샤프의 라이플 중대 뿐이었다. 샤프는 사실상 무기가 없었으므로 프랑스군은 그저 한번의 일제 사격으로 다리를 점령할 수도 있었던 것이었다.


"절대, 미스터 콜립, 절대 병사에게서 무기와 탄약을 떼어놓지말게. 약속할 수 있나 ?"


콜립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령님."


"자네가 내게 뭔가 한병 사야 한다고 생각하네, 미스터 콜립."


"예, 소령님, 물론입니다, 소령님."


"그럼 이만, 미스터 콜립."


샤프는 걸어나왔다. 그는 갑자기 웃었는데, 그건 아마 서쪽 하늘의 구름이 갈라지면서 붉은 석양 빛이 그의 승리의 장면을 비추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패트릭 하퍼를 찾아나서, 그의 옛 라이플맨 부하들과 서서 차를 함께 마셨다. "오늘 아주 수고 많았어들."


하퍼는 웃었다. "그 자식들에게 우리에게 탄약이 없었다는 거 말했어요 ?"


"항상 상대방에게 자존심만큼은 남겨둬야지, 패트릭." 샤프는 웃었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 이후로 거의 웃는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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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28일 입대 2019.01.10 1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시 봐도 너무 재미있는 글이에요! 드라마에서 샤프의 그 냉소적인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도 하네요.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2. 파파펭귄 2019.01.10 12: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 읽으면서 상황이 이미지로 그려지네요. 심장이 두근두근거렸어요.

  3. ㅇㅇ 2019.01.10 13: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국인들의 가장 훌륭한점이라 할 수 있는 침착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네요

  4. 루나 2019.01.11 16: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세네요 ㅋㅋ

  5. MADRUSH 2019.01.13 10: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쓰신 글 늘 재미나게 읽고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샤프 시리즈를 구글 북스에서라도 사볼까 하는데 혹시 샤프 시리즈의 시간 순서를 한번 이야기 해주실 수는 없을까요?
    영어이고 군용어도 많아서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워낙 재미있는 글을 읽다보니 시도해보고 싶어서 그럽니다.
    늘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6. 박씨 2019.01.13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이번에 바꾸신 스킨이 깔끔하고 가독성도 좋아서 글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

  7. 501st CSG 2019.01.17 1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글입니다
    다시 읽어도 좋네요

제가 좋아하는 3대 나폴레옹 전쟁 소설 시리즈인 혼블로워, 샤프, 잭 오브리 시리즈들 중에서 아침식사 장면만 몇몇 번역을 해보았습니다.  그냥 심심풀이로 읽어보세요.  다만, 출출한 야밤에 읽으시면 좀 곤란하겠네요.  





Mr. Midshipman Hornblower by C.S.Forester (배경 : 1795년 프랑스) ---------------------

(프랑스 망명귀족들이 영국 해군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 퀴베롱 지역에 상륙합니다.  사관후보생 혼블로워는 통역으로 이들과 동행합니다.)

그들은 번쩍이는 구리 냄비가 벽에 걸린 커다란 주방으로 들어갔고, 말이 없는 여자가 커피와 빵을 내왔다.  그녀는 애국자로서 열정적인 반혁명주의자일 수도 있었겠지만, 최소한 그런 내색을 하지는 않았다.  물론, 그녀의 감정은 이 귀족 패거리들이 자신의 집을 멋대로 점거하고는 자신의 음식을 돈도 내지 않고 마음대로 먹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쉽게 영향을 받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망명 귀족들의 군대가 징발한 마차나 말들 중에는 그녀 소유의 것이 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어제밤에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주민들 중 몇몇이 그녀의 친구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커피를 내왔고, 참모진들은 박차를 단 장화를 신은 채 커다란 주방 여기저기에 서서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혼블로워는 그의 컵과 빵 한조각을 손에 들었다.  이 순간 이전에는 4달 동안이나 건빵 외에는 빵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맛이 좋은지 나쁜지 뭐라고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는 전에 커피를 겨우 3~4번 정도 밖에 마셔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컵을 두번째 들어올렸을 때, 그는 마시지 않았다.  마시기 직전에 저 멀리 어디선가 대포 소리가 울렸기 때문에, 그는 컵을 내려 놓고 얼어붙은 듯 굳어 버렸던 것이었다.  대포 소리는 두번, 세번 반복되었고, 그에 이어 더 가까이서 더 날카로운 포성이 울렸다.  둑방길에 설치되었던 사관후보생 브레이스거들의 6파운드 포의 포성이었다.

주방에서는 즉각 난리법석이 일어났다.  누군가가 컵을 엎질러 검은 액체의 시냇물이 테이블을 가로질러 흘렀다.  다른 누군가는 서둘러 나가다 박차가 서로 엉켜 다른 사람의 품 안에 쓰러졌다.  모든 사람이 일시에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혼블로워도 다른 사람들처럼 몹시 흥분되었다.  그도 당장 뛰어나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아보려 했지만, 그 순간 자신이 소속된 HMS 인디퍼티거블 호가 전투 직전에 보여주었던 군기잡힌 차분함을 생각해냈다.  그는 이런 부류의 프랑스 사람이 아니었고, 그걸 증명하기 위해 컵을 들어올려 차분히 마셨다.  이미 대부분의 참모진들은 말을 대령하라고 외치면서 밖으로 뛰어나간 상태였다.  안장을 채우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그는 주방을 서성이는 푸조쥬와 눈길이 마주쳤는데도, 차분히 커피를 주욱 다 마셨다.  비록 좀 뜨겁긴 했지만 뭔가 폼나는 행동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빵도 있었기 때문에, 식욕이 전혀 없었지만 억지로 씹어삼켰다.  이제 야전에 하루 종일 있을 거라면, 다음번 식사가 언제일지 전혀 알 길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먹다남은 반덩어리의 빵은 주머니에 쑤셔 박았다.






Master and Commander by Patrick O'Brian (배경: 1800년, 스페인 부근 마요르카 섬)------------------

사실 목공장의 때이른 열성은 바로 이 때문이었고, 또 장교 식당의 급사가 전임 함장인 앨런 함장의 변함없는 아침식사 메뉴였던 스몰 비어(옥수수 죽(hominy grits), 그리고 차가운 쇠고기를 들고 서성거렸던 이유이기도 했다. 





Lieutenant Hornblower by C.S.Forester (배경 : 1801년 대서양 HMS Renown 선상) ---------------------

장교실에 아침식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평상시보다는 더 조용하고 활기가 없는 아침식사였다.  항법장, 사무장, 해병 대위가 평소와 같은 '굿 모닝' 인사를 하고는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앉아 먹기 시작했다.  그들도 전함의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함장의 의식이 깨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배 현창으로 두 줄기의 긴 햇살이 들어와 그 비좁고 사람이 빽빽히 앉은 선실을 비추면서, 배의 부드러운 움직임에 따라 장교실 바닥을 앞뒤로 흔들거렸다.  북동쪽에서 불어오는 무역풍의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가 열린 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커피는 뜨거웠고, 배에 실린지 3주 밖에 안된 건빵은 바구미가 전혀 없는 것이, 배에 실리기 전에도 창고에 보관된 것이 겨우 1~2달 밖에 안되었던 모양이었다.  장교실 요리사는 눈치좋게 좋은 날씨의 기분을 내려고 지난 밤의 염장 돼지고기와 배에서 점점 줄어가는 저장 양파를 볶아 내놓았다.  채를 썰어 양파와 함께 볶은 염장 돼지고기에, 뜨거운 커피와 오래 되지 않은 건빵에, 신선한 공기와 햇살에 좋은 날씨라면, 장교실은 아주 활기찬 장소여야 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근심과 걱정,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Lieutenant Hornblower by C.S.Forester (배경 : 1802년 런던 혼블로워의 하숙집) ---------------------

(방세를 못내 구박받던 혼블로워가 지난 밤 도박장에서 큰 돈을 따서 밀린 방세를 내고 그 동안 당했던 설움에 방을 옮기겠다고 하자, 하숙집 주인인 메이슨 부인이 서둘러 근사한 아침식사를 올려보내줍니다.)

어린 수지가 케이블이 올려질 때 절단기를 들고 뛰어다니는 소년들처럼 두 테이블 사이를 왔다갔다 하며 식탁을 차렸다.  커피 포트와 토스트, 버터와 잼, 설탕과 밀크, 양념병과 뜨거운 접시, 그리고 넓은 접시가 혼블로워 앞에 놓여졌다.  그녀가 뚜껑을 들어올리자 접시에 놓인 멋진 챱스 요리에서 맛있는 냄새가 피어올라 방안을 채웠다.

"아!" 혼블로워가 스푼과 포크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너 아침은 먹었니, 수지 ?"
"저요, 중위님?  아니오, 아직이요."
혼블로워는 손에 스푼과 포크를 든 채 멈춰 챱스와 수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스푼을 내려놓고는 오른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이런 챱스 요리를 니가 먹을 방법이 전혀 없겠지 ?"  그가 말했다.
"저요, 중위님 ?  물론 안되요."
"이제 여기 반 크라운(half-crown. 2.5 실링짜리 은화. 현재 가치로 약 3만2천원 : 역주)이 있단다."
"반 크라운이라고요 !"
그건 노동자 하루 일당의 절반이 넘는 금액이었다.
"너에게서 약속을 받아야겠다, 수지."
"중위님 - 중위님 - !"
수지의 손은 등 뒤로 사라졌다.
"이걸 받고, 시간이 나는 대로, 메이슨 부인이 너를 나가도 좋다고 하자마자, 당장 나가서 뭔가 먹을 걸 사거라.  너의 그 불쌍하고 조그마한 배를 채우라고.  패것(faggot.  잘게 썬 고기를 빵과 섞어 구운 것: 역주)이나 완두 푸딩, 돼지 족발 (pig's trotters), 니가 먹고 싶은 건 모조리.  약속해."
"하지만 중위님 -"
반 크라운, 거의 무제한의 음식, 이런 것은 사실이기엔 너무나 환상적인 것들이었다.
"아, 받으라고." 혼블로워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예, 중위님."
수지는 그녀의 바짝 마른 손에 은화를 꽉 움켜쥐었다.
"약속했다는 거 잊지 말라고."
"예, 중위님, 정말, 고맙습니다, 중위님."






Sharpe's Fortress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03년 인도) -----------------------------

(샤프는 영국군 기병대의 아는 친구를 찾아 갑니다.)

록하트 중사는 연기 자욱한 아침부터 찾아온 불청객 이야기에 궁시렁거렸으나, 그 방문자가 샤프인 것을 알아보고는 씨익 웃었다.
"아마 싸움거리가 생긴 모양이다, 얘들아."  그는 소리쳤다. "망할 보병이 왔네 그려.  좋은 아침입니다, 소위님.  저희 도움이 또 필요하신가요 ?"
"아침 좀 먹었으면 하는데."  샤프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홍차부터 시작하시지요.  스미더스 ! 포크 챱스를 가져와 !  데이비스 ! 니가 나 몰래 숨겨 놓은 빵 좀 가져와 !  당장 움직여 !"  록하트는 다시 샤프를 돌아보았다.
"포크 챱스가 어디서 생긴 건지는 묻지 마세요.  물으시면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그는 양철 머그잔에 침을 뱉고는 담요 끝으로 그 내부를 닦아내고, 거기에 차를 따랐다.
(...중략...)
포크 챱스와 빵을 먹고나자, 중사는 샤프를 인도인 기병대 진지를 가로질러 제7 인도 기병대의 지휘관의 텐트로 데려갔다.  그 지휘관이 전체 원정군의 기병대를 책임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분 이름은 허들스톤이고요,"  록하트가 말했다. "그리고 괜찮은 양반이에요.  아마 우리에게 두번째 아침식사를 권할 겁니다."
허들스톤 대령은 정말 록하트와 샤프에게 쌀과 달걀로 된 아침식사를 권했다.






Sharpe's Trafalgar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05년 인도양 무역선 상) -----------------------------

아침식사는 매일 오전 8시였다.  3등실의 승객들은 종종 그룹으로 나뉘어, 각 그룹 내에서 당번을 정해 앞갑판(forecastle) 쪽에 있는 주방으로부터 버구(burgoo) 한단지를 가져왔다.  버구라는 것은 오트밀 죽에 밤새 주방 난로에서 고기를 삶을 때 나온 쇠고기 기름 조각을 섞은 것이었다.  점심은 정오에 있었는데, 이 때의 메뉴도 역시 버구였다.  다만 점심 때의 버구에는 좀더 큰 고기 조각 또는 질긴 말린 생선 조각이 좀 탄데다 덩어리진 오트밀에 섞여 나왔다.  일요일에는 소금에 절인 생선과 돌처럼 딱딱한 건빵이 나왔는데, 건빵은 바구미 투성이어서 탁탁 두들겨 벌레를 빼내야 했다. 
비스킷은 끊임없이 씹어야 했는데, 마치 벽돌을 으깨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건빵을 두들길 때 빠져나오지 못한 벌레가 이따금씩 씹혀서 색다른 맛을 내기도 했다.  차는 오후 4시에 제공되었으나, 이는 배 고물 쪽의 1등실 승객들에게만 제공되었고, 3등실 승객들은 저녁 때가 되기를 기다려야 했는데, 그 메뉴도 그저 말린 생선에 비스킷, 그리고 벌레 구멍이 숭숭 뚫린 딱딱한 치즈였다.

(...중략...)

1등실의 승객들에게는 아침식사로 3등실에는 절대 나오지 않는 사치품인 달걀과 커피가 제공되었는데, 샤프는 이 VIP 승객들과의 아침식사에는 초대받지 못했다.

(...중략...  샤프는 무역선에서 영국 군함 HMS Pucelle로 옮겨 탑니다.)

체이스 함장은 샤프를 반겼다.  체이스의 함장모는 그의 턱에서 매듭을 진 캔버스 천으로 묶여 있었다.  "아침은 들었나 ?"

"예, 함장님."  푸셀 호에는 보급품이 떨어져가고 있었으므로 아침식사는 변변치 못한 편이었다.  장교들도 수병들처럼 부실한 배급량의 쇠고기와 건빵, 그리고 스캇치 (Scotch) 커피로 때우고 있었는데, 스캇치 커피란 태운 빵부스러기를 뜨거운 물에 풀고 설탕으로 단 맛을 낸 꺼림직한 액체였다.





Sharpe's Prey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07년 덴마크) -----------------------------

(덴마크군의) 장군은 차가운 청어, 치즈와 빵으로 된 아침식사를 새벽이 되기 훨씬 전에 이미 먹었다.  이제 부대원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행군 준비를 시작했다.  민병대 대령 한명이 목사의 집에 와서 자기 부대원들이 맞지 않는 구경의 탄약을 공급받았다는 우울한 보고를 했다.  "구경은 맞을 겁니다." 대령은 보고했다.  "하지만 총강 내에서 총알이 튀어다닙니다.  이런 걸 두고 유극(windage, 총강과 탄환 사이의 간격: 역주)이 너무 크다고 하더군요."  민병대 대령은 보르딩보르그 출신의 치즈 제조업자였는데, 사실 목제 나막신을 신은 그의 병사들을 영국군 정규병들 앞에 내모는 것이 영 탐탁치 않았다.







Sharpe's Havoc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09년 포르투갈) -----------------------------

새벽녁에 그들은 나무가 우거진 언덕에 다다랐다.  그들은 시냇물가에 멈춰서 오래된 빵과 너무 딱딱해서 구두 밑창으로 써야겠다고 농담들을 해댄 훈제 고기로 아침을 먹었다.  병사들은 샤프가 불을 피워 홍차를 끓이는 것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궁시렁거렸다.

(...중략...)

궁전 복도의 시계가 11시를 알릴 때, 술트 원수가 중앙의 대형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바지와 셔츠 위에 비단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아침식사는 준비되었나 ?"  그가 물었다.
"청색 리셉션 룸에 준비되었습니다, 장군님."  부관이 대답했다.  "손님들께서도 오셨고요."
"좋아, 좋아 !"  그는 시종들이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렸다 방으로 들어가며 방문자들을 활짝 웃으며 반겼다.  "앉으시지요, 앉으세요. 아, 우리가 공식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군요."  이 마지막 말은 아침 식사가 긴 옆 테이블에 풍로가 달린 은제 식탁 냄비(chafing dishes 역주: 부페에 가면 볼 수 있는 그릇)에 차려져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술트 원수는 그 뚜껑을 열어보며 긴 식탁을 따라 걸었다.  "햄 ! 멋지군. 삶은 콩팥, 굉장해 !  쇠고기 ! 혀 요리, 좋군, 좋아, 그리고 간 요리.  아주 맛있어 보이는군.  좋은 아침이요, 대령 !"  이 인사는 크리스토퍼에게 한 것이었는데, 이에 대해 크리스토퍼는 고개를 숙임으로써 답했다.






Sharpe's Rifles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09년 스페인) -----------------------------

새로 부임한 중위는 지금 시간이 정오 2시간 전 쯤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 전투 후퇴는 오후 일찍 끝날 것이고, 그러고나면 그는 서둘러 하들이 밤을 보낼 만한 외양간이나 교회 같은 곳을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는 병참 장교가 밀가루 한포대를 들고 나타나기를 고대했다.  그걸 물로 반죽해서 쇠똥으로 피운 불 위에 구우면 저녁거리와 그 다음날 아침거리로는 충분했다.  재수가 좋으면 죽은 말에서 고기를 좀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Sharpe's Sword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12년 스페인) -----------------------------

"아, 좋아 !  공작님께 알려드려야지.  자네 아침 먹었나 ?"
"예, 소령님."
"그럼 한번 더 들게 !  내가 하인을 시켜서 자네 말을 마굿간에 넣도록 하지."  그는 가다 멈춰서 샤프를 돌아다 보았다.  "힘들었나 ?"
"예."
호간 소령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유감이군.  하지만 자네 일이 제대로 되었다면 말일세, 리처드..."
"압니다."
그의 일이 제대로 되었다면 전투가 있을 것이었다.  마을 남쪽 언덕 둘레의 드넓고 건조한 평원은, 벼락이 치던 날 밤의 배신과 사랑에서 싹이 튼 살륙의 현장이 될 것이었다.  샤프는 두번째 아침 식사를 하러 갔다.




Sharpe's Enemy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2년, 포르투갈)----------------------------------------

웰링턴이 외지로 떠나고 난 뒤라서, 장교들은 아침시간을 침대에서 보내든가, 아니면 바로 옆 여관에 딸린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있었다.  이 포르투갈 여관 주인은 제대로 된 아침 식사를 만드는 법을 배운 모양이었다. 포크 찹스, 계란 프라이, 튀긴 콩팥, 베이컨, 토스트, 클라레 포도주, 더 많은 토스트, 버터, 그리고 화약찌꺼기가 늘러붙은 곡사포의 포구를 씻어내릴 정도로 강하게 끓인 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Clarissa Oakes by Patrick O'Brian (배경: 1813년, 남태평양 영국 군함 선상)------------------

"그럼 가서 첫번째 아침식사를 나와 함께 들겠는지 머투어린 박사께 여쭙게."
잭 오브리는 우람한 체구를 유지하기 위해, 아침을 두번 먹었다.  아침 해가 뜰 무렵 토스트 약간과 커피를 들었고, 8번 타종 (역주: 오전 8시) 직후에 훨씬 더 든든한 식사, 즉 어쩌다 잡힌 신선한 생선, 달걀, 베이컨, 가끔씩은 양고기 챱스(chops)를 아침에 당직을 섰던 장교 및 사관후보생(midshipman)과 종종 함께 들곤 했다.





Sharpe's Honour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13년 스페인 내 프랑스 요새) -----------------------------

(샤프는 프랑스군에게 포로로 잡혀 매우 괜찮은 대우를 받으며 지내고 있습니다.)

문이 열렸고, 그가 그냥 누워있는 동안 프랑스 당번병이 베리뉴이 장군이 보내준 아침식사를 테이블에 차려졌다.  메뉴가 무엇인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뜨거운 코코아, 빵, 버터, 치즈였다.  "메르시(고맙네)."  최소한 프랑스어를 좀 배우고는 있구만 하고 그는 생각했다.





Sharpe's Revenge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14년 프랑스 내 영국군 점령지) -----------------------------

(샤프는 이른 아침에 들판에서 결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프레데릭슨은 다시 회중 시계를 꺼내 들었다.  "6시 반."
"춥구만."  샤프는 처음으로 온도를 느끼는 것 같았다.
프레데릭슨이 말했다.  "한 시간 후면 우리는 포크 챱스와 완두콩 푸딩으로 아침을 먹고 있을 거에요."
"자네는 그렇겠지."
"우리 둘다 그럴 겁니다."  프레데릭슨은 참을성있게 주장했다.

(...중략...)

그 후에, 기름걸레로 검을 닦아 칼집에 넣은 뒤, 그는 네언 장군의 텐트로 갔다. 그 텐트 밖에서 그 스코틀랜드 출신의 노인(네언 장군)이 빵과 차가운 염장 쇠고기, 그리고 강하게 끓인 홍차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중략...)  샤프는 웃었다.  그는 네언 맞은 편에 앉았고, 두번 구운 빵을 한조각 집으려 손을 뻗으면서 자신의 손이 떨리고 있는지 스스로 궁금했다.  버터는 약간 상한 맛이 났지만 염장 쇠고기의 짠 맛이 그 신 맛을 없애 주었다.





Sharpe's Revenge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14년 프랑스) ---------------------------------------

네언 장군은 토스트용 포크를 샤프에게 건네주고, 검게 그을린 빵에 버터를 듬뿍 바르기 시작했다. "차 들겠나 ?"
"죄송합니다, 장군님." 샤프가 미리 차를 따라놓아야 했었다. 그는 네언이 토스트에 겨자를 듬뿍 바른 엄청난 크기의 햄을 얹는 동안 차 두잔을 따랐다. 네언 장군은 차를 한모금 마시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챗츠워드는 천국에서나 맛볼만한 차를 끓일 줄 안단말이야. 결혼하면 여자를 아주 훌륭한 아내로 만들거야." 그는 샤프가 빵조각을 토스트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거보다 더 검게 태우는게 낫지 않나 ?"
"아닙니다, 장군님." 샤프는 약하게 익힌 토스트를 더 좋아했다. 그는 빵을 뒤집었다.






Hornblower and the Hotspur by C.S.Forester (배경 : 1802년 런던 혼블로워의 하숙집) ---------------------

(혼블로워는 촌스럽지만 착한 하숙집 딸 마리아와 결혼합니다.  이제 결혼 후 첫 출항을 앞둔 아침입니다.)

주방으로 통하는 문을 열자 요리 냄새가 흘러들어왔고, 뭔가 팬에서 지글지글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마리아와 나이든 아주머니와의 대화가 터져나오더니, 마리아가 들어왔다.  그녀의 걸음걸이가 몹시 빠른 것으로 보아, 손에 든 접시가 꽤 뜨거운 모양이었다.  그녀는 접시를 혼블로워 앞에 내려 놓았는데, 그 위에는 아직도 지글거리는 거대한 스테이크 덩어리가 놓여있었다.

"여기 있어요, 여보." 그녀는 말하면서 식사의 나머지 부분들을 그의 손이 닿는 곳에 차려 놓았다.  그 동안 혼블로워는 낙담하여 스테이크를 내려다 보았다. 
"제가 어제 특별히 당신을 위해 고른 거에요." 그녀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당신이 배에 가 있는 동안 푸줏간에 걸어갔었어요."
혼블로워는 해군 장교의 부인이 '배에 가 있는' 것에 관해 말하는 것에 대해 움찔거리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았다.  또 그는 스테이크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침식사에 스테이크를 먹게 된 상황에 대해서도 불평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았다.  사실 그는 오늘처럼 흥분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먹고 싶지가 않았다.  그리고 희미하게, 그는 미래를 엿볼 수가 있었다.  그가 만약 무사히 이번 임무에서 돌아온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가정 생활에 정착한다면, 무슨 특별한 순간마다 스테이크가 식탁에 올라올 것 같았다.  그 생각에 그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한입도 먹지 못할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마리아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도 없었다.

"당신 것은 어디있지 ?" 그는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오, 저는 스테이크를 먹으면 안돼요." 마리아가 대답했다.  그 목소리는 어떻게 아내가 감히 남편과 똑같이 잘 먹을 수가 있겠느냐는 투였다.  혼블로워는 고개를 돌리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이, 거기 !" 그는 소리쳤다.  "거기 주방 ! 접시 하나 더 가져 오시오.  뜨거운 걸로."
"오, 안돼요, 여보."  마리아가 부산 떨며 말했지만, 혼블로워는 아예 의자에서 일어나 그녀를 그녀 자리에 앉혔다.
"자, 거기 앉아."  혼블로워가 말했다. "말은 더 필요없어. 우리 가족 내에 반란자는 있을 수 없으니까.  아 !"
접시가 하나 더 왔다. 혼블로워는 스테이크를 반으로 잘라 더 큰 덩어리를 마리아의 접시에 담아주었다.
"하지만 여보-"
"내가 우리 팀에 반란자는 필요없다고 했지." 그는 자신이 군함에서 으르렁거리던 것을 스스로 흉내냈다.
"오, 호리 (혼블로워의 이름이 호레이쇼입니다. :역주), 여보, 당신은 정말 제게 잘 해주시네요, 너무 잘 해주세요." 순간적으로 마리아는 손과 손수건으로 얼굴을 감쌌다.  혼블로워는 이 여자가 우는 거 아닌가 하고 두려웠지만 다행히 손을 무릎에 내려놓고 등을 곧게 편 다음, 정말 영웅적으로 감정을 추스렸다.  혼블로워는 그러는 그녀에게 호감이 갔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가 내미는 손을 꽉 쥐었다.

"이제 든든한 아침을 먹는 걸 보여줘."  그가 말했다.  그는 아직도 수병들을 다루는 투로 이야기했지만, 그가 느꼈던 부드러움은 아직도 분명했다.  마리아는 나이프와 포크를 잡았고 그도 그렇게 했다.  그는 몇 입 먹고는, 나머지 스테이크에 난도질을 가해 너무 많이 남기지는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해놓았다.  그는 그의 맥주잔을 들이켰다.  아침에 맥주를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특히 이렇게 도수가 낮은 스몰 비어(small beer, 알코올이 거의 들어 있지 않은 저렴한 보리차 수준의 맥주)조차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니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일어나 있는 저 나이든 하숙집 하녀는 홍차 상자를 넣어둔 찬장의 열쇠가 없을 거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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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항상웃자구 2018.12.27 0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아... 새글이 있어서 급하게 클릭했는데...
    갑자기 더 배고프네요... 크흑

  2. ㅁㅁ 2018.12.27 22: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음식 사진 한번 기가 막히게 찾아서 올리시네요 ㄷㄷ

  3. 2/28일 입대 2018.12.27 22: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혼블로워는 참 뭐랄까 사장님으로써는 괜찮은데, 상대적으로 가까이서 봐야하는 부장님이면 엄청 불편한 사람인것 같아요ㅎㅎ 올바른 친구지만 썩 친절하지는 않고 신경질적인데다가 짜증도 많고ㅎㅎㅎ

  4. keiway 2018.12.28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혼블로워는 잔정도 많고 (애들과 가족에 마음을 많이 쓰죠. 바람은 핍니다만 ㅡㅡ;)
    부하들도 엄청 챙기는 데다가 (승진 시켜주려고 애쓰죠)
    과한 체벌도 하지 않고 (그당시 기준으로는)
    무엇보다 능력이 있으니 (상사와 같이 쭉쭉 커나가는 아름다운 직장 생활!)
    가까운 상사로 같이 일하면 굉장히 행운이겠네요 (작중 부시 처럼)

  5. 밥동뎅 2018.12.30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에서 예전 본건데도 볼때마다 재밌네요.
    역시 나시카님.

  6. 까까님 2019.01.02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게 부인과의 마지막 식사였던가요?
    전 직장 상사 이전에 참 나쁜 가장이라고 생각되네요 ^^

마늘을 사랑한 영국인 리처드 샤프

잡상 2018. 9. 13. 06:30 Posted by nasica

오래 전에 차두리 선수가 아직 현역일 때 프랑크푸르트에서 현지 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이 신문에 났었습니다.  그때 아주 인상적인 한마디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말씀하시길 여기서 적응하려면 독일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다.  한국 음식은 잘 먹지 않는다.  마늘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다음날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뭐가 미안하지요 ?  마늘 냄새가 나는 것이 미안한거지요.  제가 다른 곳에서 듣기로도, 유학생이 주말에 한국 음식 해먹고 가면 서양애들은 귀신처럼 냄새로 알아차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서양애들은 대개 마늘 냄새를 무척이나 싫어하지요.





(이것이 바로 드래곤 브레스보다 더 무섭다는 갈릭 브레스)




이렇게 마늘 냄새가 그 다음날까지 나는 것은 이유가 있답니다.  Allyl methyl sulfide(AMS, 황화 알릴 메틸)이라는 물질이 마늘 냄새의 주성분인데, 이 성분은 사람 몸에서 분해가 되지 않고 그대로 혈액까지 흡수가 된답니다.  그 혈액이 돌고 돌아 폐를 통해 숨결로 나오고, 또 땀에도 섞여 나오기 때문에, 마늘 냄새에 예민한 서양것들은 우리가 마늘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1~2일 뒤까지도 우리 몸에서 마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합니다.


실은 이런 '카더라' 통신도 들은 바 있어요.  즉, 잘게 다진 마늘즙을 갓난아이의 발바닥에 발라놓고 몇시간 지난 뒤에 아이의 숨결을 맡아보면, 희미하게 마늘냄새가 난다는 거지요.  얇은 아이의 피부를 AMS가 뚫고 들어가 혈액에 섞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총각 때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신기하게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나중에 나도 아이를 낳으면 한번 테스트해봐야겠다 라고 생각했는데, 차마 우리 아이에게는 그딴 짓 못하겠더라고요.  (그럼 남의 아이에게는...??)


그런데 마늘 냄새가 촌스러운가요 ?  솔직히 약간 촌스럽긴 합니다.  기분 좋은 향수는 아니쟎아요.  하지만 음식에 들어가면 정말 좋은 맛을 내주는 것도 맞지요.  저도 마늘 좋아합니다.  모든 찌개, 볶음, 나물 등에는 마늘을 꼭 넣고, 특히 스파게티를 만들 때는 듬뿍듬뿍 집어 넣습니다.  심지어 크림소스 스파게티를 만들 때도요.  


하지만 서양인들은 정말 마늘 냄새를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동양을 싸잡아 멸시할 때 마늘 냄새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가령 어떤 인터넷 사이트를 보니 (http://www.bible-history.com/isbe/G/GARLIC ), '마늘은 동양(Orient) 전지역에서 많이 재배한다... 그 불쾌하고 (disagreeable) 구석까지 스며드는 (penetrating) 악취는 동양인들의 집이나 그 입냄새에서 뚜렷하게 느껴진다' 라고 표현을 해놓았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동양에 대한 혐오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그 사이트가 성경 공부하는 사이트인데도 그런 멸시적 표현을 쓴다는 것은 좀 씁쓸한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예수님도 마늘을 많이 드셨던 모양입니다.  예수님이 마늘을 드셨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직접 나오지는 않습니다만, 다음과 같이 민수기 11장 5절에 이집트에서 먹던 마늘을 그리워 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 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그 다음 구절은 불경스럽게도 하나님이 직접 주신 음식인 '만나' 밖에 없다고 투덜거리는 내용입니다.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즉,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주신 음식인 만나보다는 이집트에서 먹던 마늘 들어간 음식들이 더 맛있었나 봅니다.




(하나님이 만나를 내려주시는 동안, 유대인들은 'ㅆㅂ 마늘은'이라며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간 중 하나님은 유대인들이 하도 말을 안들어서 속을 많이 썩히셨다고...)




이 뿐만 아니라, 예수님 시절에 로마인들이 유대인들을 가리켜 '마늘 냄새 나는 유대인들' 이라며 멸시했다고 합니다.  즉 당시의 유대인이었던 예수님도 마늘을 즐겨 드셔서 입냄새에서 마늘 냄새가 나셨을 것이라는 거지요.


진짜 우스운 것은 그렇게 유대인들에게서 마늘 냄새가 난다고 경멸하던 로마인들의 후손인 이탈리아인들이 지금은 유럽에서 가장 마늘을 많이 먹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은 유럽에서는 스페인이 제일 많이 마늘을 소비한다고 하더군요.)  


마늘의 위대함은 마늘의 세계 정복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마늘은 원래 중서부 아시아 쪽이 원산지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집트에서 피라미드를 쌓는 인부들에게 주어지는 식단에 마늘이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이미 중동 지방에 퍼져 있었고, 곧 로마제국에 상륙, 지중해 지역을 완전 장악합니다.  이어서 유럽인들의 대항해 시대에 (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주도했지요) 아프리카와 중남미 아메리카로 퍼져 나가, 그 지역에서도 매우 인기있는 양념이 되었습니다.  동아시아에는 BC 130~120 경에, 장건이 서역 탐험의 결과로 중국에 도입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마늘은 상륙하는 즉시 현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지요.


잠깐, 그런데 우리나라는 반만년 전의 건국 설화에서조차 등장할 정도로 마늘의 본고장 아니었던가요 ?  그런데 중국에 마늘이 도입된 것이 고작 기원전 2세기라면... 우리나라에는 언제 마늘이 도입되었을까요 ?  그리고 단군신화에 나온 마늘은 뭘까요 ?  





(이거 그럼 중국산 마늘이야 ?)




사실 단군 신화에 나온 것은 (어차피 삼국유사는 한문으로 씌여져 있으니까) 마늘이 아니라 달래라고 합니다.  즉 산이라는 한자는 원래 달래를 가리키는 글자였는데, 나중에 마늘이 도입된 이후로는 마늘을 대산, 달래를 소산으로 구분해서 불렀다고 하는군요.  그러나 우리는 그를 여전히 쑥과 마늘이라고 알고 있지요.  이는 마늘이 우리나라를 그만큼 철저히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외국 Q&A site를 보다보니, 어느 나라가 마늘을 제일 많이 먹느냐는 질문에, 답변이 '한국과 스페인'이라고 달린 것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답변자가 토를 달기를, 아마도 스페인은 유럽 지역만 봤을 때 그렇다는 것 같고, 세계 최고는 단연 한국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그런데 마늘이 유일하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북유럽 쪽이지요.  여기서 북유럽이라 함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뿐만 아니라, 덴마크, 영국, 독일 등 게르만 족속들이 사는 곳을 뜻합니다.  영국과 독일의 후예들이 주류를 이루는 미국도 어느 정도 그렇습니다.  얘들은 후각이 무척이나 예민한 것 같아요.  그래서 마늘 냄새를 견디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이 영화는 작가인 마이클 크라이튼도 만족한다고 했습니다만... 망했습니다.  제작비도 못건졌다고 합니다..)




예전에 읽은 소설 중에, '시체를 먹는 자들'이라는, 일종의 역사(...라기보다는 판타지) 소설이 있습니다.  작가는 무려 쥐라기 공원을 썼던 마이클 크라이튼이고, 90년대 후반에 안토니오 반데라스 주연의 '13번째 전사'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도 되었습니다.  소설 원제는 'Eaters of the Dead: The Manuscript of Ibn Fadlan Relating His Experiences with the Northmen in A.D. 922'으로서, 부제를 번역하면 '서기 922년 이븐 파들란이 노르만인들과 경험했던 사건의 기록' 정도가 되겠습니다.  소설 줄거리는 아랍인 학자가 어찌어찌하여 러시아 쪽에서 바이킹들과 합류하게 되어 지내다가, 당시 바이킹 마을을 주기적으로 습격하던 네안데르탈인들과 혈투를 벌이는 내용입니다.  



(영화는 그저 그랬으나, 소설은 상당히 재미있었습니다.  주석이 하도 사실처럼 달려 있어서 처음에는 진짜 역사책인줄 알고 읽었는데, 알고보니 주석조차도 소설의 일부더군요.)




여기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진짜 바이킹 풍속 중에 그런 것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바이킹 전사가 전투 중에 배에 상처를 입을 때의 처리 방식입니다.  그렇게 다친 전사에게는 먼저 양파 수프를 먹인다는 거에요.  그렇게 양파 수프를 먹인 뒤, 상처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아 보아서, 양파 냄새가 나면 그 전사는 가망이 없는 것으로 포기하고, 냄새가 안나면 살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내장 기관이 상했는지 여부를 보는 것이지요.  제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어차피 양파를 끓여서 국을 만들면 양파 냄새가 거의 사라질텐데, 그것도 피비린내나는 좁은 상처 틈 사이로 과연 양파 냄새가 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북유럽인들은 그 냄새를 맡을 수 있나 보지요 ?  사실이라고 하면 정말 개코가 따로 없네요.


아무튼 북유럽인들은 마늘 넣은 음식을 정말 싫어들 합니다.  아예 안먹는 것은 아니고요, 갈릭 브레드나 치킨 키에프 (마늘 버터를 넣은 닭요리) 정도를 먹는다고 하네요.




(갈릭 버터를 주 양념으로 쓰는 닭요리, 치킨 키에프)





Sharpe’s Honour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2년 포르투갈) -------------------


(신임으로 포르투갈 전선에 파견된 영국군 매튜즈 소위가 술에 취해 반쯤 맛이 간 프라이스 중위를 만납니다.)


그 중위는 어정쩡하게 미소를 짓더니 돌아서서는 토하기 시작했다.  


'오, 젠장 !'  그 중위는 숨쉬는 것이 힘들어 보였으나 다시 힘들여 똑바로 서서, 소위를 향해 돌아섰다.  


'친구, 정말 미안하네.  이 빌어먹을 포르투갈 사람들은 모든 것에 마늘을 넣는구만.  난 해롤드 프라이스라네.'


프라이스 중위는 군모를 벗고는 머리를 문질렀다.  '미안하네만 자네 이름을 내가 놓친 것 같은데...?'


'매튜즈입니다.'


'매튜즈라, 매튜즈.'  프라이스는 마치 그 이름이 뭔가 중요한 걸 뜻하는 것처럼 되뇌이더니, 다시 위장이 들먹이는지 숨을 참았다가, 경련이 멎은 뒤에 숨을 천천히 내쉬었다.


'용서하게, 매튜즈.  아마 오늘 아침에는 내 위장이 좀 민감한가봐.  어, 내 짐작에, 혹시 내게 5파운드를 꿔주면 자네에게 폐가 될까 ? 그냥 하루 이틀이면 돼.  기니 금화로 주면 더 좋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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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래서 북유럽 쪽이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남유럽 쪽 사람들을 얕잡아 마늘 냄새나는 것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특히 영국인들은 원래 프랑스와 사이가 좋지 않아, 프랑스인들을 이런저런 경멸적 표현으로 많이 부르는데, 대표적인 것이 frogs (프랑스라는 단어와 발음이 어울리기도 하고, 또 프랑스인들이 개구리도 먹는다고 이렇게 부르나 봅니다), snail-eaters (달팽이도 먹는다고 이렇게 부르지요) 정도입니다.  그런데 마늘 냄새나는 것들 (garlic-reekers)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솔직히 저도 저건 못 먹을 것 같습니다... 저도 보기보단 비위가 약해요.)




Sharpe's Revenge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4년 프랑스 남부) -------------------


네언 장군의 유일하게 원통해하는 것은, 그가 여단 지휘를 맡은 이후 아직 그럴싸한 전투가 벌어지지 않아, 그에게 더 일찍 여단을 주었더라면 좋았을 뻔 했군 하고 멍청한 웰링턴 공작이 후회하게 만들어 줄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었다. 


"젠장, 리처드, 이젠 남은 전쟁이 별로 없지 않나. 난 저 마늘 냄새 나는 것들에게 한방 먹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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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자랑하는 요리 중 하나가 에스카르고(Escargot), 즉 달팽이인데, 깔끔한 척하는 영국인들이 질겁을 하는 요리지요.  특히 이 요리는 마늘 버터(garlic butter)로 간을 맞추게 되어 있습니다.  달팽이에 마늘이라... 달팽이의 비린내를 없애는 데는 효과가 좋을 것 같은데, 영국인들은 더욱 질겁하겠군요.


일본인들도 한국인들을 경멸할 때, 마늘 냄새가 난다고 욕합니다.  실은 일본도 마늘을 많이 먹는 편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더 많이 먹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만 일본인들은 양념보다는 음식의 원재료 맛을 그대로 음미하는 것을 더 즐기기 때문에, 마늘이 요리에 많이 쓰이는 편이 아니지요.  대표적인 예가 생선회인데, 그건 정말 날재료를 거의 그대로 먹는 것이다보니, 이건 요리라고 하기도 좀 애매하지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생선회조자도 된장과 함께 마늘을 넣고 쌈을 싸서 먹으니, 정말 우리나라의 마늘 사랑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이든 스칸디나비아 쪽이든, 마늘을 쓰지 않는 나라의 요리는 정말 개판으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반면에, 이탈리아나 프랑스처럼 요리로 소문난 국가는 다들 마늘을 많이 소비하지요.  아무리 봐도 일식보다는 한식이 더 맛있는 것도 마늘 덕분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영국인들로부터 마늘 냄새 난다고 비웃음을 산다는 프랑스 사람들조차도 이탈리아나 스페인 사람들에게 '마늘 냄새 난다'라고 욕을 하는 것 같습니다.  정말 재미있게 본 인도 영화 '굿모닝 맨하탄' (원제는 English Vinglish)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잠깐 뉴욕을 방문한 인도 중산층 주부인 여주인공이 현지에서 만난 프랑스인 요리사와 이야기를 하며 난 이탈리아 음식과 프랑스 음식을 구별 못하겠다고 하니까, 프랑스인 요리사가 '프랑스 요리에서는 이탈리아 요리처럼 마늘을 많이 쓰지 않는다'라고 비웃듯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었거든요.




(이 영화 정말 재미있습니다.  이 영화의 여주인공인 저 인도 여배우 최근에 사망했다는 뉴스가 나와 저를 슬프게 했습니다.  Rest in peace...)




Sharpe’s Honour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3년 스페인) -------------------


(프랑스군의 포로가 된 영국군 샤프 소령을 프랑스군 장교들이 접대하고 있습니다.)


샤프는 몽브렁 소령이 이번 봄엔 비가 많이 왔었고, 스페인치고는 이번 여름엔 비가 잦은 편이라고 말하는 것에 맞장구를 쳐주었다.  또 이 가스파초(gazpacho, 스페인의 토마토 수프)가 맛있다고 해주었다.  몽브렁은 샤프의 입맛에 맞기에는 마늘이 너무 많이 들어가지 않았나 염려된다고 했으나, 샤프는 자신의 입맛에 마늘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고, 몽브렁은 그런 미각이 정말 현명한 것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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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식 차가운 토마토 수프인 가스파초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 샤프 소령은, 그냥 공치사로 마늘을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마늘을 좋아합니다.  샤프 소령은 나폴레옹 전쟁 내내 죽은 프랑스 병사들의 시체에서 프랑스산 마늘 소시지를 노략질해 먹다가, 마늘에 맛을 들인 것으로 나오지요.  비록 영국인이라는 태생적 한계가 있지만, 그를 극복하고 마늘을 사랑하게된 리처드 샤프 소령에게 따뜻한 환영의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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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까까님 2018.09.13 07: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싸 1등
    몇년 만에 처음이네요
    선감상 후리플인데 죄송합니다

  2. ㅈㅅ 2018.09.13 07: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경 공부 사이트니까 그런 멸시적 표현이 쓰인 거겠죠
    그리고 이탈리아인들이랑 로마인들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르겠네요

  3. 아서 2018.09.13 0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팽이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맛있더군요.초록색 소스에 찍어먹으면 더 맛있습니다.헤이 츄라이 츄라이!

  4. 뱀장수 2018.09.13 0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페인사람과 결혼하고 식문화를 대충 보니까 사람들이 마늘을 많이 먹기는 한데 이 동네도 마늘냄새 자체는 썩 좋아하지 않는것 같아요. 소파 데 아호나 감바스 알 아히요 같은 것들도 막 그렇게 마늘향이 진동하지는 않고요. 보통은 고기구울때 마늘편 몇조각 집어넣는 정도? 그러고 보니 스페인에선 레스토랑 개업할때 환기시설에 굉장히 공들인다는 소릴 들은 적이 있습니다.

  5. 2018.09.13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소화낭자 2018.09.13 15: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몇년간 구독중인 데요 재탕아닌 새글안지 알았습니다 죄송합니다.

  7. 석공 2018.09.13 2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

  8. 유애경 2018.09.14 07: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단군신화의 마늘이 사실은 달래 였었군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9. 갸아아앍 2018.09.16 1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늘 냄새가 뭐 그닥 좋진 않긴 하죠 그렇다고 음식에 없으면 허전하고요

  10. ㅁㄴㅇㄹ 2018.09.17 21: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북유럽쪽은 취향도 취향이지만 기후대가 맞지 않아 마늘이 익숙하지 않게되어 그런 걸로 알고 있어요

  11. 뱀장수 2018.09.18 0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 새글 삭제하셨네요
    아침에 재밌게 읽었는뎅

  12. 까까님 2018.09.18 0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옥향천국맛 두리안을 가지고 과일의 왕이니 하면서 양념의 제왕 마늘을 까다니 ㅎㅎ
    그냥 지역감정 같은 것이 인종차별로 발전한 것 같습니다
    유럽도 마늘 안먹는 북쪽으로 갈수록 키나 덩치가 커지다 보니 남북간에 서로 까대기 할 소재로 활용된 거 아닌가 싶어요
    펄 벅의 대지를 보면 비슷한 대목이 나오죠
    가뭄이 들어 사람을 잡아먹을 지경에 이르자 왕룽 일가는 강남으로 피난을 가서 거렁뱅이 생활을 합니다
    그때 키빼기는 쥐뿔만한 인종들이 맛나고 향기로운 음식을 먹으며 마늘냄새 난다고 화북 피난민들을 멸시하는 강남 사람들을 보고 왕룽이 '난 돌아갈 땅이 있다' 하며 이를 가는 장면도 있구요
    나중에 첩으로 들인 렌화가 마늘냄새 난다고 잠자리를 거부하자 일부러 마늘냄새 풍기면서 덥치는 장면도 있구요
    작가가 서양사람이지만 현지화 100점이었다고 하니...
    유럽하고는 경제사정이나 남북이 역전되있긴 합니다만 동서를 막론하고 차별의 소재로 많이 활용되온 것 같네요

  13. 찰싹이 2019.02.24 08: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국에서는 정말 마늘요리를 거의 먹지 않는 편이긴 합니다. 슈퍼에서도 마늘을 팔지않는 경우가 많고 이탈리안 요리를 위해 퓨레 형태로 된 마늘을 큰 슈퍼에서 팔긴 하나 이마저도 냄새를 맡아보면 마늘향이 거의 나지 않지요. 저는 초중고 시절을 사립학교 기숙사에서 보냈는데 10여년의 기간동안 학교식사에서 마늘이 들어간 요리를 먹어본 기억이 없네요.
    그 냄새 또한 심하긴 한것이 마늘에 거부감이 없는 아랍계 학생들이 케밥에 갈릭소스를 뿌려서 시켜먹고 난 다음에는 그 아이들 근처만 가도 불쾌한 마늘 냄새가 2,3일동안 나더군요. 이는 모든 음식에 마늘이 들어가는 한국사람들은 이해 못하지만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그 냄새가 상당히 좋지 않습니다.
    저도 영국에 있다가 1년만에 한국에 가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 특유의 마늘을 먹은 이들에게서 나는 꼬릿꼬릿한
    체취가 진동하는걸 느끼곤 했습니다. 입국심사관에게도, 편의점 직원에게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온통 그 냄새가 진동하고 가족을 만나도 부모님에게서 그 꼬릿한 마늘냄새가 났지요. 그게 상당히 힘들었는데 그걸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저도 마늘을 먹는 것이더군요. 한국에 와서 마늘을 먹기 시작하면 2,3일내로 더 이상 다른 사람들에게서 꼬릿꼬릿한 마늘냄새를 맡지 못하게 됩니다. 물론 이는 저한테도 그런 마늘냄새가 나기 시작했다는 의미였겠지요.

저는 여러번 밝혔다시피 비만인 편입니다.  젊었을 때는 괜찮다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늘어나는 체중으로 좌절과 굴욕을 맛본 사람이 저 하나 뿐만은 아닐 겁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나폴레옹도 그 중 한명이었습니다.





(포병 소위 시절의 나폴레옹... 누군지 알아보시겠습니까 ?)




그의 많은 초상화에서 보듯이, 젊은 시절 나폴레옹은 상당히 마른 편이었습니다.  그를 당시 직접 본 많은 사람들이 남긴 기록에도 '야위었다, 마치 아픈 사람같은 안색이었다'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그는 제1통령 시절, 튈르리 궁에서 지낼 때부터 겨울철에는 벽난로의 불을 크게 피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마른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도 추위에 무척 약했기 때문입니다.





(제1통령 시절 날씬했던 나폴레옹의 모습)




나폴레옹은 젊은 시절, 자신이 나중에 살찐 반대머리 중년남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나 봅니다.  그는 제1통령 시절 그의 소년 사관 학교 시절 친구이자, 비서였던 부리엔에게 자신의 비쩍 마른 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난 40대가 돼도 뚱보 먹보가 될 것 같지는 않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 원정 때의 나폴레옹은 무척 가냘픈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이 그림처럼 멋있지는 않았겠지요.)




나폴레옹이 살이 찌기 시작한 것은 1806년 경부터라고 합니다.  이때라면 나폴레옹이 예나-아우어슈타트 전투에서 프러시아를 무찌르고 폴란드 바르샤바에 입성할 때였지요.  나폴레옹이 살이 찌기 시작한 것과의 관계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이때 즈음 나폴레옹은 일평생 가장 사랑했다고 할만 한 여인, 즉 폴란드의 마리 발레프스카 백작 부인을 만나게 되지요.  나폴레옹은 그 이전부터 방탕한 여자 관계로 유명했으니, 꼭 이 새로운 여자로 인해 생활이 달라졌다고 볼 수는 없겠습니다만, 사랑이라는 그 심리 상태가 나폴레옹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나폴레옹이 엘바 섬에 유배되었을 때, 유일하게 찾아온 여자들은 그의 어머니와 발레프스카 뿐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식생활이 그를 살찌게 했을까요 ?  나폴레옹과 저는 생활 습관에도 공통점이 2가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빨리 먹는다'는 점입니다.  그는 프랑스인답지 않게, 식사를 무척 빨리 하는 편이었습니다.  당시 중산층의 식사는 와인과 함께 식사를 즐기며 주변 사람들과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는 것이 보통이었으므로, 보통 1시간 가까이 걸리기 마련이었으나, 나폴레옹은 '밥먹으면서 떠들면 안된다'는 한국식 가정 교육을 받았는지, 대개 15분 정도면 한 대접 뚝딱 해치우고 식탁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포로로서 유형지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끌려가는 영국 군함 노섬버랜드(HMS Northumberland)호에서도 이 습관을 그대로 고집했습니다.  상대가 프랑스의 황제이니만큼, 당연히 그 영국 군함 함장은 그를 식탁에 초대했고, 영국 해군의 전통에 따르면 그 자리에서는 함장이 식사를 마치기 전에는 그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으나, 나폴레옹은 아무 말 없이 후다닥 음식을 집어먹고는 '이만 실례'하면서 벌떡 일어나 나가는 바람에, 동석했던 영국 해군 장교들이 모두 아연실색했다고 합니다.





 (벨레로폰 선상에서의 나폴레옹.  원래 나폴레옹은 HMS Bellerophon에게 항복했으나, 나폴레옹이 낡은 벨레로폰 호의 상태에 심각한 불만을 표시했기 때문에 희대의 거물을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모실 영광을 노섬버랜드 호에게 양보해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당시 노섬버랜드 호의 함장이었던 로스(Ross)가 남긴 기록에는, 나폴레옹의 외양에 대해 매우 안 좋게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그는 뚱뚱한 편으로서, 보통 우리가 배불뚝이(pot-bellied)라고 부르는 몸매였다.  다리의 모양새는 좋았으나 걸음걸이는 왠지 서툴렀고, 뒤뚱거리는 것과 일부러 뽐내며 걷는 것 중간 정도로, 뭔가 이상해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가 파도에 출렁이는 배의 움직임에 익숙해지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빨리 먹는다는 점을 빼고는, 살이 찔만한 식생활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위가 그리 좋지 않아서 과식을 좋아하지 않아서, 음식을 많이 차리지 말라고 요리사에게 주문하기도 했고, 1813년 제국의 붕괴를 막기 위해 독일 원정을 떠날 때는 '아무리 황제라도 전쟁터에까지 요리사가 너무 많이 따라다닌다'며 요리사의 수를 대폭 줄이라고 명령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마치 나폴레옹은 그 이전까지는 전쟁터에도 수많은 요리사를 데리고 다니며 산해진미를 즐긴 것 처럼 보입니다.  가령 치킨 마렝고(Chicken Marengo)라는, 나폴레옹과 관련된 전설과도 같은 요리가 있습니다.  1800년, 나폴레옹은 북부 이탈리아의 <마렝고>에서 오스트리아의 대군과 맞붙어 처음에는 거의 패전하는 듯하다가, 지원군의 도움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둡니다. 짜릿한 승리를 거둔 뒤 나폴레옹은 몹시 허기가 져서 개인 요리사인 뒤낭(Dunand)에게 식사 준비를 시킵니다.  





(구글을 뒤져보면 이것이 치킨 마렝고라고 주장하는 사진들이 잔뜩 있는데, 그래도 이 사진이 원래의 치킨 마렝고를 묘사하는 가장 적절한 사진 같습니다.  저도 뭐 먹어봤어야 어느 것이 진짜인지 구분할텐데...  아무튼 건빵 대신 바게트 빵을, 그리고 가재와 달걀이 있긴 하네요.  가재의 존재 여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나폴레옹의 보급마차는 제 시간에 전장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뒤낭은 아무 준비도 없이 근처에서 허겁지겁 긁어모은 재료, 즉 닭과 토마토, 계란, 가재, 올리브 기름, 그리고 병사들의 건빵 만으로 요리를 만들어야 했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치킨 마렝고>라는 것입니다.  





(일본 만화책 '대사 각하의 요리사'입니다.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나저나, 닭고기와 토마토, 마늘, 오일, 달걀, 꼬냑 정도면 굉장히 호사스러운 재료 아닌가요 ?  최소한 우리집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이야기의 허구성에 대해 지적합니다. 뒤낭은 마렝고 전투가 벌어진지 5년 뒤인 1805년에야 나폴레옹의 요리사가 되었다는 것부터, 프랑스에 치킨 마렝고라는 요리가 정말 등장한 것은 1820년대부터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또 이탈리아 북부의 전쟁터에서는 6월 중순에 토마토를 구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치킨 마렝고의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에 불과했던 모양입니다.


사실 나폴레옹 전술의 기본은 '미칠 듯한 기동력'이었기 때문에, 황제 자신조차도 따로 식량을 챙겨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폴레옹의 저녁 식사가 그의 마멜룩 시종인 루스탐이 병사들에게 얻어온 고기 한조각에 감자 몇 개인 경우가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식사에서, 유일하게 사치품인데다 그다지 건강에 이롭지 못한 것은 딱 하나, 포도주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원래 먹는 걸 그다지 즐기는 편이 아니었습니다만, 좋은 포도주만은 상당히 즐기는 편이었습니다.  특히 샹베르탱 포도주를 즐겨했으므로, 1812년 러시아 침공시에도 상당량을 가져갔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레드 와인이 꼭 살이 찌는 음료라고 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나폴레옹이 취할 정도로 많이 마시는 편도 아니었고, 적당량의 와인은 오히려 건강에 좋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





(나폴레옹이 가장 좋아하던 포도주라는 광고는 없네요...  출처는 http://darkone.egloos.com/820578 )




그렇다면 대체 왜 나폴레옹은 살이 찐 것일까요 ?  그에 대해서는 나폴레옹 자신이 원인 분석을 한 것이 있습니다.  즉, 나폴레옹은 뭔가 안좋은 일로 외국 대사와 만나 그를 질책하면서, '나는 최근 몇 년 간을 전장을 누비느라 쉬지 못해 살이 쪘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쉬질 못해서 살이 쪘다 ?'  무척 기묘한 논리이긴 합니다만, 전혀 말이 안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건 나폴레옹의 운동 습관과 상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은 운동을 그렇게 많이 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워낙 당대의 인물인지라, 그의 생전에, 그리고 그의 사후에, 나폴레옹에 대한 수많은 회고록과 비망목이 쏟아져 나왔습니다만, 그가 펜싱을 즐겨했다던가, 매일 구보나 윗몸 일으키기, 팔굽혀펴기를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딱 하나, 나폴레옹이 즐겼던 운동은 승마와 사냥이었습니다.  말을 타고 달리는 것이 얼마나 (말에게 말고 사람에게) 운동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처럼 운동을 전혀 안하는 것보다야 확실히 몸에 좋았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런데, 정작 전쟁터에서는 자유로운 승마를 즐길 기회가 별로 없고, 나폴레옹은 전쟁터로 이동할 때 말보다는 마차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정상적인 운동을 못했기 때문에 살이 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전쟁터를 너무 쏘다니느라고 살이 쪘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전쟁터를 누비느라 살이 쪘다면, 더 젊었던 시절부터 그랬어야지요.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고, 낙타를 타고 이집트 사막을 누빌 때는 날씬했쟎습니까 ?  





(유명한 다비드의 그림과는 달리, 나폴레옹은 실제로는 안정적인 발걸음의 노새를 타고 알프스를 넘었습니다.) 



최근에 http://www.foodtimeline.org/foodcolonial.html 라는 웹사이트를 읽었는데, 이 웹사이트에서 인용한 크리스티앙 기(Christian Guy)라는 분의 'An Illustrated History of French Cuisine From Charlemagne to Charles de Gaulle'라는 책의 인용문을 보니 여기에 나폴레옹이 왜 살이 쪘는가에 대한 실마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전형적인 고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했습니다 !  그는 감자, 콩, 렌틸콩 등 든든한 곡물류를 좋아했는데, 특히 이탈리아식 파스타를 매우 좋아해서 하루에 최소 한 번씩은 한 접시씩을 싹 비웠다고 합니다.  그의 집사였던 콩스탕(Constant)에 따르면 그가 좋아하는 고기 요리는 부댕 알라 리셜리외(Boudin a la Richelieu, 리셜리외 식 소시지, 돼지피와 지방으로 만든 소시지에 계피를 넣은 구운 사과를 곁들인 요리), 크넬(quenelle, 크림을 넣은 미트볼 요리) 등이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시종의 기록에도, 나폴레옹은 삶은 쇠고기나 양고기를 한 조각 먹는 정도로서, 결코 고기를 많이 먹는 편은 아니었답니다.  요즘 전형적인 한국식 식단인 고탄수화물 저지방 식단(이하 고탄저지)이 비만과 성인병을 일으킨다는 주장이 페이스북을 뒤덮던데, 나폴레옹도 정말 그런 고탄저지 식단의 희생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폴레옹은 특히 전쟁터를 많이 돌아다녔고, 그럴 때마다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하고 병사들이 마른 빵을 넣고 끓인 수프나 모닥불로 구운 감자 같은 것을 얻어 먹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모두 전형적인 고탄저지 식단입니다.  





(나폴레옹이 좋아했다는 quenelle이라는 것은 다진 생선이나 고기를 계란 같은 모양의 덩어리로 뭉치고 크림을 넣어 요리한 일종의 미트볼 요리입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위에서 나폴레옹과 저의 공통적인 식습관이 빨리 먹는다는 점 외에 한 가지 더 있다고 했는데, 탄수화물을 좋아한다는 점이 바로 두번째 공통점이거든요.  저도 빵이나 국수 등 특히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매우, 매~우 좋아합니다.  저도 정말 고탄저지 식단의 희생양인 모양입니다.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에 유배된 이래로 더욱 살이 쪘습니다.  영국은 나폴레옹에 대해 무척 안좋은 대접을 했기 때문에, 그의 삶은 무더위와 지루함에 빈곤까지 겹쳐 '비참'을 간신히 면한 정도였습니다.  좋아하던 승마도 당연히 못했으니, 더욱 살이 쪘겠지요.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의 나폴레옹... 이렇게 초라한 뚱보 아저씨가 된 나폴레옹을 보고 영국인들은 속으로 무척이나 웃었겠지요.)




나폴레옹은 위암으로 인해 사망했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의 아버지와 두 여동생이 모두 위암으로 죽었고, 또 그의 사후 부검을 했던 영국인 의사들이 모두 위암이 사망 원인이라고 증언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독살설이 끈질기게 나돌았습니다.  이렇게 나폴레옹 독살설이 나돌게 된 원인 중의 하나가 바로 그의 비만입니다.  위암이라면 제대로 먹지를 못해 살이 빠지기 마련입니다만, 나폴레옹은 죽을 때까지도 계속 뚱뚱했기 때문에, 위암일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나폴레옹은 사망 몇 주 전부터 급격히 체중이 줄었다고 합니다.  결국 위암이 그의 사망 원인이라는 것은 여전히 정설로 남아 있습니다.





(이건 사진이 아닌 관계로, 얼마나 사실적일지는 의문입니다만, 확실히 얼굴은 좀 말라 보이는군요.) 




나폴레옹의 시대에 비만은 요즘처럼 죄악시되는 꼴불견이었을까요 ?  요즘처럼까지야 아니었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부와 권력의 상징까지는 아니었습니다.  여자들의 미의 기준으로 요즘처럼 비쩍 마른 스타일이 '먹혔지'는 않았지만, 남자의 경우는, 고대 그리스때부터 줄곧, 근육질의 건강한 몸매가 당연히 인기가 좋았지요.  당시 경기병들의 복장이, 몸에 쫙 달라붙는 야시시한 쫄바지였다는 것만 봐도 그렇쟎습니까 ?  스판덱스 소재의 신축성있는 바지가 없던 시절에, 기병 장교들은 정말 꽉 끼는 바지를 입기 위해 다리에 그리스를 바르기도 할 정도로, 근육질의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기에 애를 썼습니다.  또 나폴레옹도 자신의 몸이, 의지와는 달리 볼품없이 살이 찌는 것에 대해 꽤 당혹해했다고 합니다.  





 (간지 폭풍 경기병들에게 돼지 따위는 필요없다 !!  그림 속의 기병이 칼 대신 담배 파이프를 들고 돌격하는 것을 보니 저건 광기병 라살(Lasalle 장군입니다.)




아래는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들에서, 비만에 관련된 부분들을 발췌 번역한 것입니다.  재미로 읽어보세요.






Sharpe's Devil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20년 세인트 헬레나 섬) --------


하퍼는 그의 넓은 모자챙으로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망할 놈의 노새를 좀 데려와주면 좋겠네요. 이 빌어먹을 더위 때문에 죽겠어요. 정말이요. 저 고지 위에 올라가면 좀 시원하겠지요."


"자네가 그렇게 뚱뚱하지만 않았다면 그냥 걸어가면 되었을 거야." 샤프는 부드럽게 말했다.


"뚱뚱하다고요 !  난 그냥 몸이 좋은 거에요 !"  이 즉각적이고도 분노에 가득찬 반응은 아주 오래전부터 해오던 것이라서, 제3자가 듣고 있었다면 아마 이것이 이 두 사람 사이에 오랫동안 되풀이되온 실랑이라는 것을 즉시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었다.  


"몸이 좋은 거가 뭐 잘못된 거 아니쟎아요 ?"  하퍼는 말을 계속했다.  "이런 빌어먹을(Mother of Christ), 누가 아주 잘먹고 잘산다고 해서 그 사람이 건강하다는 증표에 대해 뭐라고 궁시렁거릴 필요는 없쟎아요 !  중령님 자신을 보라구요 ! 아마 성령께서도 중령님보다는 뼈에 붙은 살이 좀더 많을 걸요.  내가 중령님을 삶으면 라드(제과용 동물성 지방)를 1파운드도 못 건질 것 같네요.  중령님도 저처럼 먹어야 한다구요 !"  패트릭 하퍼는 자랑스럽게 자기 가슴을 쿵 내리쳤는데, 이로 인해 그의 배까지 마치 지진같은 울렁임이 물결쳤다.


"먹는 것 문제가 아니야."  샤프가 말했다.  "맥주라구."


"스타우트(독한 흑맥주:역주)는 살 안쪄요 !"  패트릭 하퍼는 정말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그는 나폴레옹 전쟁 내내 샤프의 휘하의 하사관이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샤프는 자기 옆에서 싸워줄 전우로 그 이외에 다른 누구도 두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 몇년 동안, 이 아일랜드 출신의 하사관은 더블린에서 양조장을 운영했다. 


"게다가 맥주집 주인은 자기집 맥주를 마시는 걸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거든요."  하퍼는 변명하듯이 말했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 주인이 파는 물건 품질을 신뢰한다고요.  정말이에요.  게다가, 이사벨라(하퍼의 스페인 출신 와이프:역주)는 내가 살이 좀 붙는 걸 좋아해요.  내가 건강하다는 증거라나요."


"그렇다면 자네는 더블린에서 가장 건강한 놈팽이일거야." 샤프는 악의없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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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ster & Commander by Patrick O'Brian (배경 1803년, 영국 군함 HMS Sophie) ------


(함장 잭이 장교들을 불러모아 놓고 기습 상륙 작전의 계획을 의논합니다.)


"만(灣)에서 탑까지 달려가는데 10분 정도 걸린다고 치고, 그리고..."


"20분 정도로 계획하지요." 스티븐이 끼어들었다.  "여러분처럼 혈색좋은 뚱뚱한(portly) 사람들은 더운 날씨에 무리하게 달리면 일사병이나 울혈로 급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제발, 제발 부탁인데 의사 선생, 그런 말씀은 안하셨으면 좋겠소이다." 잭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장교들은 모두 꾸짖는 듯한 눈빛으로 스티븐을 쏘아 보았다.  잭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난 결코 뚱뚱하지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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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자신이 뚱뚱하다는 사실을 전면 부정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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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inhardt100 2018.08.30 1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인적으로 '고기는 약'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또한 거칠고 소박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야말로 실질강건의 상징이라 생각하다보니 치즈나 유제품, 낫또 같은 것들을 곁들인 잡곡류를 매일 입에 달고 살다시피 합니다. 밥이나 빵도 될 수 있으면 제분을 안 한거만 골라먹고 특히 설탕이라면 질색이라 단것도 안 먹는 편입니다.

    일단 나폴레옹의 식습관이 상당히 영양학적으로는 불균형했다고 봐야 하는데 이거야 당시 전장 환경이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해야겠네요. 다만, 확실히 야채 및 채소 섭취에 무관심했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육상에서도 괴혈병이 꽤 발병했다고 하는데 그게 전혀 웃을 일이 아닌 거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나폴레옹의 식습관에서 야채를 지속적으로 섭취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게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입니다.

  2. SooPA 2018.08.30 2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이곳저곳 돌아보다 재밌는 역사와 관련된 포스트를 보게되어 발길을 멈추게 되었네요 ㅎㅎ 아직 글빨도 안되고 경험도 부족하여 많이 모자라지만 정성어린 포스팅이 많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글에 감사하고 한번 들러주세요!!

  3. 카를대공 2018.08.31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부끄럽지만 젊은 나이임에도 거의 탄수화물 중독 증상에까지 이르러 봤는데요,
    확실히 고탄수화물 식단이 살도 잘 찌거니와 몸에 무진장 안 좋습니다.
    (제 인생 최대 몸무게를 고탄수 식단 때 찍었습니다)

    흰쌀밥,빵,면류 등을 섭취하게 되면 당이 급격히 올라가는데 이렇게 되면 살도 찌기 쉽고 당뇨병에 아주 직빵입니다.

    나폴레옹이 말년에(워털루 즈음부터)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판단력이 이상해진걸 내분비계 질환 때문이라고 의심 받기도 하는데 식습관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다들 설탕 들어간 음식이나 군것질류,빵이라도 확 줄이시길 권합니다.

    참,커피믹스는 그야말로 이쪽류 끝판왕이니 꼭 끊으세요.

  4. 마근엄 2018.09.02 0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 설명을 붙이자면, 사진의 와인은 즈브레 샹베르탕(Gevrey Chambertin)이고, 나폴레옹이 즐겨마신 술은 샹베르탕(Chambertin)입니다. 전자는 '마을' 후자는 '밭'의 이름입니다. 샹베르탕 밭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마을에 아예 그 밭의 이름이 들어가게 된 거죠. 전자쪽이 더 범위가 넓고, 생산량이 많고 (덜 희소하고), 맛도 떨어집니다. (꼭 좋은 구획만 포함하는 것이 아니므로)

    프랑스에서 와인의 등급체계가 법적으로 정리되는 것은 1930년대 이후의 이야기지만 나폴레옹 이전부터 소위 유명 생산지, 유명한 밭은 존재했고 샹베르탕이 그런 밭 중의 하나입니다.

  5. 소화낭자 2018.09.12 21: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폴렝과 저의 유일한 공통점은 살이 쪘따는 것이군요.ㅎㅎㅎㅎ

  6. ㅇㅇ 2018.09.14 10: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맥주 와인 좋아하는데 나이들어 배불뚝 될까 두렵군요ㅜㅜ

  7. 결혼도 2018.10.22 1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체중 증가에 한 몫하지 않나 싶습니다. 단순히 대사가 떨어질 쯤의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서 그런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총각시절에는 지지리도 안찌던 살이 결혼하자마자 폭풍같이 붙더군요. 10킬로가 도무지 사라지질 않습니다.

  8. ㅇㅇ 2019.07.10 00: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달동안 하루 죽 한그릇으로 살면 살은 무조건 빠집니다.

  9. 무명씨13 2019.08.21 1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8년 밀라노에 출장이 있어서 갔을때 영접나온 이탈리아 거래처 사장이 여는 만찬에 초대되어 이야기 중 이 마랭고 요리가 담화 주제가 되었는데 그때 이탈리아 사장 말이 더러운?(통역을 그렇게 하시던데 외국 손님 불러 놓고 타국 욕은 왜하는지 10년이 흘러도 이해 불가!) 프랑스 인들이 요리를 팔기 위해 지어낸 말이며 사실 프랑스 요리는 전부 이탈리아 것 ...
    어쩌구 한 것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적어도 마렝고 요리는 정설이 가설? 이고 가설이 정설 같습니다.

저로 하여금 이 블로그를 연재하게 만든 것은 세 권(..은 아니고 세 세트)의 소설입니다.  모두 영국 소설이고, 제 블로그에 자주 출입하시는 분들은 이미 다들 아시는, Sharpe, Hornblower, 그리고 Aubrey-Maturin 시리즈입니다.  이 세 종류의 소설은 모두 영국인이 쓴 나폴레옹 시대의 역사 소설이라는 점 외에도 공통점이 있지요.  일종의 성장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주인공들은 모두 20대 정도의 하급 장교(Sharpe의 경우는 일병 계급부터 시작합니다)에서 시작하여, 노년에 제독(역시 출신 성분이 미천한 Sharpe의 경우는 신분의 벽을 뚫지 못하고 중령에서 스톱)까지 이르게 되지요.  이 장편 시리즈물의 주인공들이 도중에 포로가 되기도 하고, 함정에 빠져 계급을 박탈당하기도 하는 등 갖은 난관을 겪다가, 결국 이겨내고 승진을 거듭하여 젊은 시절 꿈꾸던 높은 지위에 오르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은 또다른 즐거움입니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계급만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 천박한 앵글로색슨들은 '돈과 명예'를 다 가지려는 경향이 있지요.  아무리 주인공이 높은 직위에 오르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게 된다고 해도, 가난하다고 하면 독자들에게 진정한 기쁨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주인공들은 결국 경제적으로도 다들 어느 정도 한몫을 잡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분명히 고상한 배달민족의 후예인데도, 그런 속물주의에 묘하게 끌립니다.  독자로서의 '저' 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의 저도 명예나 지위, 성취감 같은 것들보다 '돈'이 제일 소중한 것도 사실이고요.  


오늘은 언제나 저를 설레게하는 두가지, 즉 먹을 것과 돈 중 후자에 대한 것입니다.  저 3 종류 소설 주인공들의 재테크 관련 장면 몇가지를 모아보았습니다.


먼저, Sharpe입니다. 런던 고아원 출신의 비천한 신분인 리처드 샤프는 사병으로서 인도에서 복무하다가, 영국의 마이소르 왕국 침공 때 티푸 술탄을 살해하고 그의 몸에서 각종 보석류를 훔쳐서 떼부자가 됩니다.  그러나 귀족 유부녀와의 비극적인 동거 생활 끝에 전재산을 다 날리고, 빈털터리 장교로 복무하지요.  그러다 스페인에서 철수하는 프랑스군 짐마차를 비토리아 전투에서 약탈하면서 다시 엄청난 부자가 되는데, 역시 비극적인 결혼 생활이 파탄나면서 땡전 한푼 건지지 못하고 다시 빈털터리가 됩니다.  다행히 전쟁이 끝나고 나서, 프랑스에서 아름답고 착한 과부를 만나, 그녀의 수익도 안 나는 농장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지요.  그러다가 나폴레옹의 100일 천하가 시작되고, 이 덕분에 우리는 샤프가 평소에 얼마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지 엿볼 수 있게 됩니다.





Sharpe's Waterloo by Bernard Conrwell (배경 : 1815년 벨기에) -----------------------------------


(샤프는 네덜란드 왕자의 사령부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며 네덜란드 왕자의 정부(情婦)인 폴레뜨와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샤프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루실에게 무척 힘든 상황이야.  내가 자기 동포들인 프랑스군과 싸워야 한다는 걸 무척 싫어하거든."


"그럼 왜 싸우나요 ?"  폴레뜨는 화난 목소리로 물었다.


"또 내 무보직 보수(half-pay) 때문이지.  내가 군에 합류하는 걸 거부했다면, 군은 내 연금을 끊어버렸을텐데, 현재로서는 그게 우리 부부의 유일한 수입원이거든.  그래서 왕자가 날 소환했을 때, 난 그에 응해야 했지."


"하지만 오기 싫었단 말인가요 ?"  폴레뜨는 약삭빠르게 물었다.


"꼭 오고 싶은 건 아니었어." 그건 사실이었다.  비록 그날 아침에, 그는 프랑스군을 정찰하면서 자기가 이런 일을 얼마나 잘 해내는지에 대해 거부할 수 없는 기쁨을 느끼긴 했지만 말이다.  그는 며칠 동안은 루실의 불행에 대해서는 잠시 잊고 다시 병정 노릇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중령님은 그저 돈을 위해 싸우시는군요."  폴레뜨는 마치 그게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는 듯, 지겹다는 투로 말했다.  "왕자님은 댁이 중령 노릇하는 것에 대해 얼마나 주시나요 ?"


"일당이 1파운드 하고도 3실링 10펜스지."  그것이 샤프가 기병 연대의 명예 중령 계급에 대한 보수였는데, 이 금액은 샤프가 일생 동안 번 것 중 최고의 일당이었다.  이 금액 중 절반은 장교 식당의 식대와 사령부의 하인들 급료로 공제되버렸지만, 그래도 샤프는 아주 부자처럼 느꼈다.  어쨌든 그가 무보직 중위로서 받던 2실링 9펜스의 일당보다는 훨씬 괜찮은 보수였다.  원래 그가 군을 떠날 때의 계급은 소령이었지만, 기마 근위대(Horse Guards)의 서기들은 그의 소령 계급은 그저 명예 계급일 뿐 연대 계급이 아니므로, 그는 중위의 연금을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던 것이다.  이 전쟁은 샤프에게 있어서 뜻밖의 횡재였고, 사실 그건 영불 양군의 수많은 무보직 장교들에게 다 해당하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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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e가 평상시 중위의 무보직 보수로 받던 2실링 9펜스를 요즘 금액으로 환산하면 대략 3만5천원 정도됩니다.  그야말로 근근히 먹고 사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순으로 가장 마지막 편이라고 할 수 있는 Sharpe's Ransom 편을 읽어보면, 프랑스에서 농부로 정착한 샤프는 아주 행복하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농장에서 수익이 나건 말건 그래도 밥은 굶지 않을 정도의 연금(half-pay)이 계속 나온다는 것이 든든하지 않습니까 ?  


그에 비해서, 좀더 고전적인 작품인 Hornblower 시리즈의 혼블로워는, 비록 가난한 30대를 보냈지만 중년에 이르러 금전운이 트이기 시작합니다.  적의 집중 공격에 배와 선원들을 잃고 항복하여 적의 포로가 되었다가, 교묘하게 탈출한 것이 뜻밖에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되어 인기가 급등한 것이 계기가 되지요.





(Hornblower 시리즈 중 'Happy Return' 편은 1951년 그레고리 펙 주연의 Captain Horatio Hornblower 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습니다.)




Flying Colours by C. S. Forester (배경 : 1811년 영국) -------------------


(혼블로워가 탈출 후 섭정공에게서 직접 Bath 기사 작위를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혼블로워가 말했다.  그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들 때, 목에 걸었던 커다란 별 장식이 그의 가슴에 쿵하고 와 닿았다.


"축하하네, 대령." 섭정공이 말했다.  (혼블로워는 해군이고, 해군에는 대령(Colonel)이라는 계급이 없습니다: 역주)


혼블로워는 그 말에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보고, 혼블로워는 섭정공이 그의 계급에 대해 단순히 말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전하 ?" 그는 주변의 기대에 맞추어, 마치 뭘 묻듯이 말했다.


공작이 설명해주었다. "전하께서는 자네를 해병 대령(Colonel of Marines)으로 임명하시게 된 것을 무척 기뻐하신다네."


해병 대령은 매년 연봉으로 1200 파운드를 받게 되는데, 그에 따른 의무는 아무 것도 없었다.  즉, 그 계급은 뭔가 공을 세운 함장들에게 상으로서 주어지는 신분으로서, 그 효력은 그가 제독으로 승진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미 그에게는 나포 포상금으로 6천 파운드가 있었다.  이제 보직을 못 받는 상황이 되더라도, 최소한 함장의 무보직 급여(half-pay)에 덧붙여 1년에 1200 파운드의 수입이 있게된 것이었다.  그는 이제 인생 최초로, 금전적인 안정을 얻게 된 셈이었다.  이제 그는 리본과 별 장식으로 된 작위도 받았다.  그는 사실 그가 꿈꿔왔던 모든 것을 이룬 것이었다.


"이 불쌍한 친구는 정신이 아찔한가 보구만."  섭정공은 기뻐하며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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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에서 샤프가 받는 중위의 무보직 보수를 1년 내내 받는다고 해도 불과 50파운드 정도인데, 혼블로워는 매년 1200 파운드(현재 원화로 약 3억원)를 받게 되네요.  저 정도면 정말 직장 생활 할만 하겠네요.


하지만 혼블로워의 경우는 정말 드문 경우니까, 모두가 이런 것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에 비해 Aubrey-Maturin 시리즈의 주인공 잭 오브리는 30대의 젊은 시절부터 해군의 특성을 살려 나포 포상금을 통해 상당한 재산을 모읍니다.  살제로 한 개인이 이렇게 많은 나포 포상금을 얻을 기회는 그리 많지 않다고 봐야지요.  그런데 잭 오브리는 이렇게 모은 재산을 어떻게 굴렸을까요 ?  은행 ?  채권 ?  주식 투자 ?  부동산 ?  한마디로 말하면 시작은 부동산, 즉 살 집과 주변 텃밭 같은 것을 사들였고, 이어서 말들을 사들이기 시작합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차고에 포르쉐와 아우디를 들여놓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이 시절에는 은행이나 주식 시장이 없었을까요 ?  있었습니다.   유명한 영란은행, 즉 Bank of England는 1694년에 영국 해군의 확장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이미 설립된 바 있었고, 그 외에도 여러가지 잡다한 은행들도 영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주식시장도 성행했습니다.  18세기의 유명한 '남해 거품 사건'이 이미 18세기에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잭 오브리는 그런 금융 재테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잭 오브리는 생애 최악의 항해를 하게 되지요.)




Desolation Island  by Patrick O'Brian (배경: 1811년 영국) ------------------------------------


한 반 마일 쯤 걷고 난 뒤, 잭이 말했다.  "난 그에 대해서는 그 사람을 믿을 수가 없어.  무엇보다도 그는 씨티(The City, 런던 내 당시 유명한 금융사들이 몰려 있던 구역을 일컫는 이름)에서 아주 유명한 사람이라네.  그는 펀드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고 있고, 또 한번은 내게 은행주에 좀 투자를 하면 그 달이 지나기 전에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기도 했지.  그리고 정말로, 미스터 퍼시벌이 성명을 발표했고, 덕택에 몇몇 사람들은 수천 파운드의 순이익을 올렸어.  하지만 난 그처럼 단순한 사람은 아니라네, 스티븐.   주식이나 유가증권은 도박이야.  그리고 난 내가 잘 이해하는 것들에만 집중한다네.  배나 말 같은 것들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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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금융 재테크에 관심이 별로 없다면, 돈을 적극적으로 불리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돈을 날릴 걱정은 없지요.  원래 돈이 많을 수록 돈을 불리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지키는 것에 관심이 더 많아지지 않습니까 ?  하지만 불행하게도 잭 오브리는 그런 초심을 지키지 못하고, 나중에 일종의 사기꾼 벤처 사업가에게 거액을 투자하여 그야말로 모조리 말아먹습니다.  당시에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바다에서 보내느라 육지 사정에 어두운 뱃사람들, 특히 나포 포상금으로 부자가 된 함장들에게 사기를 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고 하고, 그런 사람들을 육지 상어(land shark)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잭 오브리도 그 희생양이 된 것이지요.  그러다가 손실을 만회하려는 초조감에, 더 큰 불행을 겪게 됩니다.  잭 오브리의 실존 모델인 코크레인 경이 겪은 실제 사건인 1814년 런던 주식시장 조작 사건에 휘말려, 잭 오브리는 모든 것을 잃습니다.  그러다 결국 다시 바다에서 한몫을 잡아 재기하지요. 


하지만 이제 비싼 수업료를 내고 투자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배운 잭 오브리는 무척 조심스러운 투자자가 됩니다.  주식 같은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오로지 안전자산인 국공채 정도만 손을 대지요.





The Thirteen Gun Salute by Patrick O'Brian (배경: 1813년 태평양 HMS Dianne 함상) ------------


하지만 선원들 중 대부분은, 특히 2배 및 2.5배 배당을 받는 선원들은 오브리 함장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오브리 함장은 금전적인 문제에 대해서 매우 훌륭한 조언을 주는 편이었다.  그가 주창하는 것은 근검절약과 조심스러운 투자 그리고 기대 수익률을 작게 가져가는 것이었고, 5% 해군 채권이 그가 괜찮다고 인정하는 최대 한도였다. 


뱃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오브리 함장이 비록 '행운의 잭 오브리'의 별명을 얻을 정도로 나포 실적이 좋아서, 가장 최근의 깜짝 놀랄 정도의 나포물 전에도, 최소한 3번 정도 큰 돈을 벌었지만, 일단 뭍에 오르면 운이 영 좋지 않았다는 것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한때 그는 경주마들을 마굿간에 채워두고 브룩스(Brook's) 클럽에서 눈에 띄는 생활을 하는 등 호사를 누렸었다.  또 한때는 남의 말에 잘 넘어가는 팔랑귀여서, 뭔가 대단해 보이는 벤처 사업에 투자를 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는 그의 투자는 재앙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었다.  따라서 객관적인 눈으로 볼 때, 금전적 조언을 주는데 있어 그보다 더 적임자는 찾기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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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 위에서 말한 5% 해군 채권 (Navy five per cent)라는 것은 대체 어떤 물건이었을까요 ?  Consol이라고 불렸던 정부 통합 국채(Consolidated Annuities)에 대해서는 나폴레옹 시대의 토지와 유가증권 편에서 소개드린 바 있었습니다.  이건 당시 다양한 금리로 나오던 정부의 채권을 대략 3% 정도의 이율로 통합하여 발행하던 것이지요.  이는 상당히 오랜 기간, 즉 1751년부터 1920년대까지 존재하던 채권이라서, 혼블로워를 비롯한 이런저런 문학 작품에서도 다루어지던 물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5% 해군 채권이라는 것은 상당히 단기간, 즉 1810년부터 1821년 사이에만 발행되었던 것입니다.  





(그 유명한 Navy Five per cent 채권입니다.  1천 파운드에 대한 이자로 5실링을 헤스터 부인에게 지불한다는 증서인데, 왜 5% 이자에 고작 5실링만 주는지는 이해가 안되는데요 ??  매주 지급되는 이자라고 해도 1파운드 정도씩은 이자로 줘야 할 것 같은데 말이지요 ?  아시는 분은 댓글 좀 굽신굽신)




당시 나폴레옹 전쟁으로 인한 전비 마련 때문에, 영국은 엄청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금본위제의 기본 규칙, 즉 영란은행에서 발행된 지폐를 영란은행에 가져가면 그 액면가만큼의 금으로 태환해준다는 것도 일시적으로 중지시킬 정도였습니다.  이 불태환 조치는 1797년부터 1821년까지 시행되었습니다.  (유럽의 진짜 금본위제는 이 이후라고들 하지요.)  이 일시적인 비상 조치가 끝난 시기와, 5% 해군 채권 발행이 종료된 시기가 일치하는 것을 보면, 1815년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고도 경제가 제 궤도에 오르는데는 약 6년 정도가 걸렸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영국은 역사적으로 꾸준히 빚을 잘 갚았기 떄문에 전쟁 중에도 세금을 과도하게 올리지 않고도 전쟁에 돈을 댈 수가 있었습니다.  반면에 프랑스는 루이 14세 때부터도 채권으로 문제를 많이 일으켰고 특히 혁명 때는 아시냐(Assignat) 지폐로 파멸적인 사고를 친 바 있었으므로 국민들이 국채 따위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나폴레옹은 오로지 세금과 전쟁 배상금만으로 전시 금융을 처리해야 했습니다.   나중에 그 이야기도 따로 다룰 기회가 있으면 합니다.





(당시 영국 수상인 윌리엄 피트가 금태환 중지를 선언한 것에 대해 당시 나왔던 풍자 만화입니다.  이 만화에서 처음으로 나온 "Old Lady of Threadneedle Street"라는 영란은행에 대한 별명은 지금까지도 통용된다고 합니다.)




아무튼 영국 정부의 이런 재정난의 주범은 바로 영국의 로열 네이비, 해군이었습니다.  육군도 돈을 많이 먹는 괴물이지만, 해군에 비하면 양반이지요.  그러므로 전쟁 수행 능력이 바로 해군에 집중되어 있던 영국은 정말 많은 돈이 필요했습니다.  이미 금으로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게 된 영국 정부는, 그렇다고 무턱대고 지폐를 찍어댈 수도 없었으므로, 궁여치책으로 해군 장교 및 공무원, 해군에 물건을 납품하는 상인들에게 지폐 대신 연 금리 5% 짜리 채권으로 급료와 물품 대금을 지급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받는 사람들로서도 그렇게까지 나쁜 일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대표적 안전 투자처였던 Consol의 금리가 (이 역시 나폴레옹 전쟁 기간 중 일시적으로 4~5%로 뛴 경우가 간혹 있었습니다만) 3%대였던 것을 생각하면, 영국 정부나 다름없는 영국 해군에서 발행한 5% 채권이라면 아주 짭짤한 이윤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해군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던 일반인들도 이 채권을 사기 시작했고, 이것이 당시에 아주 인기있는 재태크 수단이 되었습니다.   가령 세계일주로 유명한 영국 쿡 선장의 부하였던 윌리엄 베일리(William Bayly)라는 사람도 유서에서 자기 유산의 일부를 5% 해군 채권(Navy five per cent)으로 남긴다고 적어놓았습니다.



그런데 , 일년에 어느 정도 수입이 있으면 대략 중산층의 삶을 살 수 있을까요 ?   또, 당시 중산층이라고 하면 생업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는 계급을 뜻했는데, 이런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대략 어느 정도의 목돈이 있어야 했을까요 ?





(저 책 표지의 광고 카피가 명작이군요.  '이 책을 아직 안 읽은 분들이 정말 부럽소.  굉장한 재미가 그대들을 기다리고 있다오 !')




The Ionian Mission by Patrick O'Brian (배경: 1813년 지중해 HMS Surprise 함상) ------------


(선상에서 장교들 간에 시 낭송 경쟁이 벌어집니다.  드라이버 중위가 여자의 지참금에 대해 연연하지 말라는 내용의 시를 낭송합니다.)


"...

과도한 부를 갈망하지 말라

우리의 삶을 즐겁게 해주는 것으로 증명된 것은

품위있는 충족함과 사랑이니까"


"정말 훌륭하군 !" 사무장이 그의 투표 용지를 적으며 외쳤다.  "하지만 중위님이 인식하는 품위있는 충족함이란 대략 얼마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  그러니까, 그저 월급 뿐인 사람에게 말입니다 ?"


드라이버 중위는 웃고 숨을 고르더니 마침내 말을 꺼냈다.  "그 여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돈이 1년 이자 수익이 200 파운드 정도 나올 정도의 금액 정도면 족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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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는 위와 같이, 약 200파운드, 현재 가치로 약 5천만원이면 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실제로 당시 영국 시골의 대표적인 신사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 국교회 신부의 연 수입이 저 정도였다고 합니다.  현대의 우리나라에서도 그 정도라면 중산층으로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것 같군요.  5% 해군 채권은 드물게 괜찮은 투자처였으니 예외로 치고, 당시의 대표적인 안전 투자처인 Consol의 금리가 3%였으니까, 연 200 파운드가 나오려면 대략 6700 파운드의 원금이 있어야 했습니다.  현재 원화로는 대략 16억원 정도네요.  글쎄요, 요즘 우리나라 10년물 국채 금리는 당시 영국 국채 금리보다 더 낮은 2.4% 정도입니다만, 당시 영국은 물가가 상당히 안정되어 있던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인플레, 특히 부동산 인플레가 만만치 않아 국채 금리로만 먹고 산다면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10년 국채 금리 수익률 추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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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8.08.23 0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등! 오늘도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ㅎㅎ 다음블로그에서 정주행을 한번 더 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하나씩 리뉴얼되어 올라오는 글 읽는것도 재밌네요.

  2. 뱀장수 2018.08.23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제나 재미있는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부디 이 글에는 이상한 댓글들이 안달렸으면 좋겠네요

  3. reinhardt100 2018.08.25 0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부통합국채'와 '5% 해군 채권'의 성격은 꽤 다릅니다. 전자는 일종의 현대의 'mortgage'개념의 시초지만 후자는 '군용수표, 일종의 군표' 개념이었으니까요.

    유독 당시 영국에서 '부동산저당증권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 아닌 mortgage개념'이 발달한 이유가 영국의 화폐발권체계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는 일정량의 지급준비용 정금만 있으면 아무 민간은행이라도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지급준비용 정금과 연계하여 지폐를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당장은 이렇게 해서 통화수요를 충족할 수 있었지만 태환이 어려울 수 있다는 거였죠. 이 때문에 영국정부는 각 민간은행과 정부 혹은 공공기관이 발행한 지폐(이 당시만 하더라도 일종의 법정화폐로써보다는 태환권리를 표창한 유가증권의 일종), 채권, 담보물권증서, 수표, 외국채등에서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떨어지는 것들을 매입 혹은 저당권을 설정한 후,'정부보증을 통해 금융시장에 미치는 악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정부통합국채로써 대금을 지급해줍니다. 이를 수령한 거래 객체들은 런던의 시티 같은데서 이를 거래하였고, 이 덕분에 금융시장의 안정 유지에도 한 몫 했습니다. 흔히, 순수자본주의 시절에는 국가가 자유방임적 자세를 취했다고는 하지만 의외로 금융분야에서는 이런 개입주의적 자세를 자주 취했습니다. 결코 약육강식 적자생존식의 막장은 아니었죠. 복지체계가 미흡해서 크게 문제가 된 겁니다.

    '5% 해군 채권'의 경우, 일종의 군용수표적 성격이 강했고, 사실상 이는 수표 개념이 발달하지 않았던 당시에 '채권'의 형식을 빌어서 발행한 '실질적인 유가증권의 일종으로써의 수표'라고 봐야 합니다. 이게 왜 수표냐면 당시에도 채권발행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준거법률에 의해서 발행해야 하는데 정부통합국채와 이 5% 해군 채권은 준거법률이 전혀 달랐습니다. 후자는 해군관계법령에 의해 발행했으니까요. 즉, 물자구매 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일종의 가상계좌를 만들어 놓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유가증권을 발행, 거래 객체에게 유포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 유가증권을 모집하여 영란은행이나 다른 민간금융기관에서 대금을 상환받을 수 있게 하고 유가증권자체는 소각처리했습니다. 채권은 원금상환을 하지 않아도 이자지급을 하면 계속 거래 가능했지만, 이 5% 해군 채권이란 물건은 일정 거래기간 내에 반드시 유가증권을 모집하는 해군측에 제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표로써의 성격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군표가 가장 많이 활용된 전쟁이 2차 세계대전인데 이 중에서도 특히 일본이 가장 많이 활용했습니다. 전시재정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지급준비용 정금이 필요했지만 이를 보유하지 못했던 일본은 각 점령지별로 초기에는 조선은행권, 만주국은행권, 대만은행권, 남양청의 남양개발금고권 등의 식민지 은행권을 살포했지만 도저히 답이 안 나오자 현지화폐단위에 근거한 군표를 살포해서 점령지 현지에서의 물자 조달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중국에서는 답이 안 나와서 아예 화북교통은행권, 중앙연합준비은행권, 몽강은행권등 중앙은행을 발족시켜서 현지 화폐를 직접 발권 및 유포시켜서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걸 본 서구 연합국과 중화민국이 빡이 칠 대로 쳐서 전후 처리에서 가장 중시한 것 중 하나가 '안정적인 국제금융 및 결제 시스템의 확립'이었고 이 때문에 IMF가 발족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전비를 군표로 지불하는 것을 꽤나 엄격히 제한시켰고 이 때문에 베트남전쟁 시기부터는 막 개념이 도입된 신용카드에 의해 지불하도록 권장했습니다. VISA카드가 사실상 세계 공통이 된 게 이 시기 미군의 전비조달을 위해 채택되었기 때문입니다.

  4. eithel 2018.08.27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삼 궁금해져서 찾아봤는데 저 5 schillings는 이자로 5실링을 지급한다는게 아니라 5실링 주화로 1천파운드를 납입했다는 의미같네요. 다른 네이비 파이브 퍼 센트들을 보니 금이나 주화로 납부한걸 기입해뒀더라구요.

  5. ㅁㄴㅇㄹ 2018.08.31 07: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걸 보니 당시 청나라 공행 총수?가 영국을 믿고 계속 영국 채권에 투자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6. 청명 2019.05.01 17: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0여 년 전부뎌 가끔 봤는데 ᆢ여름에 프랑스
    여행가느라 처음부터 훑어 보는 중입니댜 좋은 글 감사합니다



Sharpe's Eagle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09년 7월 27일 스페인 탈라베라) ----------


(웰슬리 휘하 영국군이 좌익, 쿠에스타 휘하 스페인군이 우익을 맡아 프랑스군과 탈라베라에서 대치합니다.  영국군 샤프 대위 일행이 언덕 위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 봅니다.)


"저게 뭐야 ?"


3/4 마일 전방에서 프랑스군 용기병들이 기병총을 쏘아 대고 있었다. 샤프에게는 그들이 무엇에다 대고 쏘는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총에서 나오는 연기와 희미한 총성을 지켜보고 있었다.


"용기병이요."


"나도 그건 알아." 호건 소령이 말했다. "뭐에다 대고 쏘냐는 거지 ?"


"글쎄, 뱀일까요 ?"  포르티나 강을 따라 걸어올라오면서, 샤프는 작고 검은 뱀들이 강 옆 짙은 수풀 속에서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뱀을 그냥 피해 걸었지만, 저 평원에도 뱀이 있을 수도 있고, 용기병들은 그냥 연습삼아 뱀을 표적으로 사격을 즐기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때는 저녁이었고 기병총에서 나오는 섬광은 땅거미 속에서 밝게 반짝였다.  샤프 대위는 전쟁도 종종 예쁘게 보인다는 사실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어이," 하퍼 중사는 아래 쪽을 가리켰다. "쟤들이 우리의 용감한 연합군을 깨웠는데요.  꼭 개미집을 건드린 것 같아요."


방벽 아래에서, 스페인군 보병들이 흥분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모닥불 주변에서 일어나 호간 소령이 구축한 통나무로 된 방호벽에 머스켓 소총을 올려놓으며 줄지어 섰다. 장교들은 방호벽 위에 올라서서 칼을 뽑아들고 저 멀리 있는 용기병들을 가리켰다.


호간 소령은 웃었다. "연합군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야."


프랑스군 용기병들은,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 나름대로의 과녁에 계속 총질을 해대고 있었다. 샤프는 그것이 그저 장난질을 해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군은 자신들이 스페인군에 난리법석을 일으켰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스페인군 보병들은 한명도 남김없이 모두 방호벽 뒤에 모여 모닥불을 뒤로 한채 총구를 텅빈 벌판으로 향했다.  장교들은 뭔가 명령을 소리쳤고, 수백정의 소총이 장전되기 시작했다.  샤프는 깜짝 놀랐다.


"저것들이 대체 뭐하자는 거야 ?"  수많은 장전봉이 수많은 총구 속으로 총알을 밀어넣으며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교들이 칼을 높이 들어올리는 것도 보였다. "보라고," 호간이 중얼거렸다. "한두가지 배울 점이 있을지도 모르쟎아 ?"


아무 명령도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총성이 한방 울리면서, 총알 하나가 아무것도 없는 허허들판으로 날았다. 그러더니 샤프 대위가 여태까지 본 것 중 최대의 일제 사격이 뒤따랐다. 수천정의 머스켓 소총이 불꽃과 연기를 뿜으면서, 총성과 스페인군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화염과 납총알이 텅빈 들판을 휩쓸었다.  프랑스 용기병들은 흠칫 놀라서 시선을 이쪽으로 돌렸지만, 발사된 총알들은 용기병들이 있는 곳까지의 거리를 1/3도 날지 못하고 떨어졌다. 용기병들은 그냥 말 위에 앉아 머스켓 소총의 화약연기가 바람에 날려 흩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샤프는 한순간 스페인군이 무고한 들판을 상대로 거둔 자신들의 승리에 환호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함성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공포의 비명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놀랍게도 스페인군은 자기 자신들의 1만 정이 일으킨 일제 사격 소리에 겁을 집어먹은 것이었다.  스페인군은 존재하지 않는 위협을 피해 거미새끼처럼 흩어졌다. 수천 명이 올리브 나무 사이로 쏟아져 나와 머스켓 소총을 내팽개치고 모닥불을 짓밟으며 요란법석과 함께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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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지지 않는 일이긴 합니다만, 이거 실제로 있었던 실화 거의 그대로입니다.


# 이거 실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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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ㅊ쵸 2018.03.07 22: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허

  2. 카를대공 2018.03.08 05: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래서 기초 군사훈련이 중요한가 봅니다.

    사실 저도 훈련소에서 실탄 사격 때 처음 소총 사격 소리 듣고 충격 받았죠.
    생각보다 너무 시끄러워요.

    • 이산이아닌가벼 2018.03.08 14:35  댓글주소  수정/삭제

      피시방에서 열심히 총질할 때의 소리와 너무 달랐죠?ㅎㅎ

  3. 유애경 2018.03.08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총 1만정의 일제사격 소리면 고막이 찢겨질 정도의 굉음 일려나요?

  4. 베타니 2018.03.08 13: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실화입니까!??

  5. 규국 2018.03.08 18: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도 쌍령전투 경험이 있죠

  6. 벤츠아방가르드 2018.03.08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에 길이 남을 병크라면 임진왜란 당시 용인전투가 있지요. 와키자카 야스하루 1600한테 수만 단위 조선군이 박살났지요.

  7. 수비니우스 2018.03.08 2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임란의 용인전투와 호란의 쌍령전투... 경기도 광주와 용인에서 유소년 시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그냥 장소가 여기일 뿐인건데도 그저 민망민망 ㅎㅎㅎ
    화약무기로 여진족 상대할때 굉음을 통한 공포효과를 기대하는 것도 상당히 컸다는게 생각나네요. 그때 세종문종시기 조선군은 꽤 건실한 군대였는데... 뭐 전쟁이 비일상이 되면 전장에서 추태를 부린건 우리만 그런게 아니라 19세기 사무라이와 팔기군도 똑같았으니 자괴감 가질 필요는 없을것 같아요.

  8. BACCANO 2018.03.08 23: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카레맛똥이냐 똥맛카레냐 ㅋㅋㅋㅋㅋ

  9. 샤르빌 2018.03.09 16: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총 소리도 탕! 이 아니라 당..
    당나라 군대..

  10. 줄리안 2018.06.01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샤프가 영국 병사들에게 사격 훈련을 가르치는 장면에서도 나오는 모습...
    이 탈라베라 전투에서 샤프가 프랑스군의 이글을 탈취해서 소령이 되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ㅎㅎ

1809년 5월 12일 포르투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군이 뒤를 바싹 뒤쫓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군은 허겁지겁 산길로 후퇴해야 했고, 따라서 모든 짐은 물론 대포까지 다 버리고 가야 했습니다.  분노한 포르투갈 민간인들에게 학살당할 것이 뻔한데도 부상병들을 버리고 감은 물론, 군자금까지 병사들에게 마구 나누어줄 상황이었습니다.  때는 이른 5월이라 차가운 비까지 계속 내려 후퇴하는 프랑스 병사들의 사기까지 축 적셔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갈 길 바쁜 프랑스군의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나타났습니다.  폰트 노바(Ponte Nova, 새 다리, 스페인어로는 Puento Nuevo)라는 이름의 다리에 도착했을 때, 술트 원수의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두개의 긴 대들보만 남기고 그 위를 가로지른 널판지는 다 해체된 상태의 다리였습니다.  이 다리는 프랑스군이 스페인으로 퇴각하기 위해 꼭 필요한 다리였습니다.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백여명의 포르투갈 민병대(ordenanza)가 기세를 올리며 프랑스군에게 야유를 보내고 있었지요.  원래 영국군은 포르투갈 민병대에게 연락하여, 이 폰트 노바 다리를 완전히 끊어 버릴 것을 요청했지만, 중세 시대 때 지어진 이 유서깊은 다리가 완전 파괴되면 당장 그 일대의 포르투갈 민간인들이 생활이 당장 크게 곤란해졌으므로, 민병대는 영국군의 요청보다는 자신들의 생활을 위해 이 다리의 상면과 난간만을 뜯어낸 것이었습니다.  다리를 완전 파괴하여, 그 덕택에 영국군이 프랑스군을 전멸시키거나 항복을 받아내더라도, 영국군이 이 다리를 재건해줄 것 같지는 않았거든요.  어쨌거나, 이 폭 90cm 정도의 좁은 대들보 2개만 나란히 놓인 이 다리는, 포르투갈 민병대 백여명이면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장애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계속 비가 내려 대들보는 무척 미끄러운 상태였습니다.  포르투갈 민병대는 이 정도면 다리를 충분히 지킬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었습니다.  프랑스군이 폰트 노바 앞에 도착한 것이 5월 15일 낮이었는데, 이미 영국군의 척후 기병대가 프랑스군 후미에 나타나는 상황이었으므로, 이틀도 아니고 하루만 더 여기에 발이 묶이면 프랑스군은 항복하거나 옥쇄하거나, 둘 중 하나를 택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의 폰트 노바입니다.  지금은 살라몬데 Salamonde 댐 건설로 수몰되어, 저 수면 30m 아래에 위치해 있답니다.)




이 절대절명의 순간에, 술트 원수는 제2 군단 전체에서 가장 용감하다고 소문난 사나이를 소환했습니다.  바로 루이-에티엔 뒬롱 (Louis-Etienne Dulong) 소령이었습니다.  뒬롱 소령은 영국 작가 버나드 콘월의 나폴레옹 시대 전쟁 소설인 샤프 시리즈 중 Sharpe's Havoc 편에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Sharpe’s Havoc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09년 포르투갈) -------------------


(샤프 중위의 영국군 라이플병들이 점거하고 있는 고지 위의 감시탑을 뒬롱 소령이 이끄는 프랑스군이 야밤에 급습합니다.  샤프 중위의 지휘 하에 영국군이 반격에 나섭니다.)


프랑스군은 폐허가 된 감시탑 앞의 석조 테라스 쪽으로 퇴각하고 있었다.  한 장교가 그들에게 화가 난 듯 고함을 지르더니, 그 장교가 검을 뽑아들고 앞으로 나왔다.  영국군 측에서는 샤프가 앞으로 나서며 그와 검을 맞부딪히며 힘을 겨루었는데, 그는 이번에도 박치기로 상대를 공격했다.  번개불 속에 드러난 상대 장교의 얼굴을 보니 박치기 공격에 깜짝 놀라는 표정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 장교도 샤프와 같은 부류 출신임이 분명해 보였다. (샤프는 런던 극빈층 고아원 출신입니다 : 역주)  그 장교도 두 손가락으로 샤프의 눈을 찌르며 샤프의 사타구니를 향해 발길질을 날렸던 것이다.  샤프는 옆으로 몸을 빙그르르 돌리며 손에 쥔 검의 손잡이 부분으로 상대방의 턱을 강타했다.  프랑스 병사 2명이 쓰러진 장교를 질질 끌고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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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소설 속에서 샤프와 개싸움을 벌이다 얻어 터지는 장교가 뒬롱(Dulong) 소령입니다.  소설 속에서는 앙리 뒬롱(Henri Dulong) 소령으로 나오고, 제31 경보병 연대 소속으로 나오지만, 실제 이름은 루이-에티엔 뒬롱 (Louis-Etienne Dulong)이었고 이때 당시는 제32 경보병 연대 소속이었습니다.   또, 위 소설 속에서는 뒬롱 소령이 마치 주인공 샤프처럼 깡패 출신이었다가 입신양명하여 군 장교직에 오른 것과 비슷한 경력을 지닌 것처럼 묘사되어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외과의사의 아들로서, 나름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뒬롱 소령은 저렇게 영국군 중위에게 얻어터지고 질질 끌려나간 적은 없습니다.  작가인 버나드 콘웰도, 뒬롱 소령과 같은 장교가 자기 소설 속에서 저런 굴욕을 당하도록 만들어서 무척 미안했다고 후기에 적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의 뒬롱 소령과, 실존 인물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용기입니다.  위의 Sharpe's Havoc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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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뒬롱 소령이 이끄는 프랑스군은, 이제 곡사포 포격의 엄호 하에, 고지 위의 영국군 라이플병들을 향해 대낮에 돌격을 감행합니다.  그러나 라이플의 긴 사정거리와 정확성 때문에 고전합니다.)


뒬롱 소령은 이제 라이플병들을 볼 수 있었다.  간헐적으로 곡사포탄이 프랑스 보병들의 머리 위를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고지 위에서 폭발하며 위협하는데도, 라이플병들이 그걸 무시하고 이젠 숨어있던 바위 틈에서 일어나 서서 소총을 재장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뒬롱 소령은 그의 병사들에게 소리를 질러 저 녹색 군복을 입은 적군에게 사격하라고 명령했지만, 머스켓 소총의 총성은 미약했고 머스켓 총알은 크게 빗나가기 일쑤였다.  그에 비해 라이플 총탄은 아주 정확하게 프랑스 병사들을 노렸으므로, 병사들은 고지로 향하는 좁은 길목 위로 계속 올라가기를 꺼려했다.  

뒬롱은 본보기를 보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운만 좋다면 라이플 사격에 쓰러지지 않고 고지 위 방벽에 닿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므로, 솔선수범의 예를 보여주기로 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자기를 따르라고 소리를 지르고, 검을 뽑아들고 돌격했다.  "프랑스 만세 !"  그는 외쳤다.  "황제 폐하 만세 !"


"사격 중지 !" 샤프가 외쳤다.


뒬롱을 따르는 프랑스 병사는 단 한명도 없었다.  그는 혼자 돌격해오고 있었고, 샤프는 그 프랑스인의 용기를 높이 사서, 그에 경의를 표하고자 앞으로 걸어나와 예식에서 하듯 그의 검을 들어 경례를 했다.  뒬롱은 그 경례를 보고는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고, 그가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샤프를 향해 돌아보고, 그도 검을 들어 경례를 한 뒤, 난폭한 동작으로 검을 다시 검집에 찔러넣으며 황제 폐하를 위해 죽기를 겁내는 그의 부하들에 대한 경멸을 드러냈다.  그는 샤프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걸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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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의 이 불필요하고 어색한 장면은, 아마도 작가 버나드 콘월이 뒬롱 소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억지로 밀어넣은 장면 같습니다.  샤프처럼 무자비하고 인정머리없는 친구가 단순히 혼자 돌격하는 프랑스 장교를 보고 사격 중지를 외칠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러나 실제 뒬롱 소령이었다면, 소설 속의 이런 행동을 실제로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인 뒬롱 소령이 그 용기를 드높인 사건을 보면, 그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는 생각이 정말 들거든요.


술트는 뒬롱 소령에게 100명의 선발된 척탄병을 맡기며, 밤까지 기다렸다가 다리를 탈취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뒬롱 소령은 그 중 단 12명의 척탄병을 이끌고 선두에 서서 야음을 틈타 완전한 침묵 속에 공격을 시작했습니다.  마침 비바람이 부는 때라서, 12명의 척탄병들 중 1명이 다리를 건너다 미끄러져 저 아래 급류 속에 빠질 때의 비명 소리나 다리 입구에 서있던 보초병을 뒬롱 소령 자신이 검으로 해치울 때의 소리가 묻혀버렸습니다.  이렇게 다리를 건넌 뒬롱 소령 일행은 비바람을 피해 움막에 들어가 있던 포르투갈 민병대를 급습했고, 프랑스군 수백명이 넘어온 것으로 착각한 민병대는 별 저항을 못하고 흩어져 도주해버렸습니다.


뒬롱 소령의 이 위업이 술트의 제2군단 전체를 구출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포르투갈 민병대의 경계 태만이 더 주요한 원인 같습니다만...)   당장 그날밤 중으로 다리를 수리한 뒤 전체 프랑스군이 다리를 건넜고, 술트는 자신이 달고 있던 레종 도뇌르 훈장을 떼어내 현장에서 뒬롱 가슴에 달아주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이번에는 폰트 다 미사헬라(Ponte da Mizarela)에서 또 다시 같은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이 폰트 다 미사헬라라는 다리는 폰트 노바와는 달리 로마 시대에 지어진, 석조 다리로서, 이번에는 대낮이었고, 또 밤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 다음부터는 소설 속의 장면을 보시지요.





(구글에서 Ponte da Mizarela를 찾아보니, 이렇게 나옵니다.  19세기 초에 다시 지어진 다리라고 하니까, 이 사건 이후에 다시 지어진 모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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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병 2개 대대가 다리를 공략하겠지만, 다리 건너편 끝에 설치된 가시 장애물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공격하는 병사들은 산산조각 날 것이 뻔해 보였다.  1.2m 높이에 두께도 그 정도 되는 이 장애물은 20여개의 가시 덤불을 서로 묶고 통나무로 눌러놓아 만든 것으로서, 돌파하기 아주 곤란한 물건이었다.  따라서 결사대(Forlorn Hope)가 제안되었다.  결사대라는 것은 동료들의 돌파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죽을 각오가 된 병사들의 무리로서, 보통 이런 자살 공격대는 방어가 철저한 적의 요새 벽에 뚫린 구멍에 투입되곤 했지만, 오늘의 공격조는 반쯤 해체된 다리의 좁은 통로를 건너야 했고, 쏟아질 머스켓 사격에 목숨을 잃을 것이 뻔했다.  그들은 죽어가면서도 이 가시덤불 장애물을 치워야 했다.  


제31 경보병 연대의 뒬롱 소령은, 반짝거리는 레종 도뇌르 훈장을 단 채로, 이 결사대의 지휘관으로 자원했다.  이번에는 어둠을 틈탈 수도 없었고, 또 적의 수도 훨씬 많았지만, 장갑을 끼고 가시 장애물을 치우는 혼전 속에서 검을 놓치지 않기 위해 검 손잡이에 달린 가죽끈을 손목에 졸라매는 그의 굳은 얼굴에서 걱정 같은 것은 엿보이지 않았다. 프랑스군의 전위대를 지휘하는 루아송(Loison) 장군은 전 병사들이 강둑에 늘어서서 머스켓이든 기병총이든, 심지어 권총이라도, 포르투갈 민병대(ordenanza)에게 위협 사격을 가하도록 명령했다.  이 사격으로 귀청이 떨어질 것 같은 소음이 극에 달했을 때, 뒬롱은 검을 높이 들었다가 앞으로 내지르며 돌격 명령을 내렸다.


뒬롱 자신이 속한 연대의 유격 중대가 다리 위를 내달렸다.  남아있는 돌다리의 좁은 틈 사이로는 겨우 3명이 나란히 통과할 수 있었고, 뒬롱은 그중 가장 첫번째 줄에 있었다.  포르투갈 민병대는 크게 야유를 보내고는 흙으로 쌓은 엄폐물 뒤에서 일제 사격을 퍼부었다.  뒬롱은 가슴에 총을 맞았고, 그는 총알이 어제 밤의 공로로 새로 받은 훈장을 때리고 갈비뼈를 부러뜨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총알이 폐까지 뚫고 들어왔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에게는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고함을 지르려 했으나, 숨이 가빠 소리를 지를 수 없었고, 대신 장갑을 낀 손으로 가시덤불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더 많은 병사들이 도착하여 좁은 다리 위에 빽빽히 늘어섰다.  한명은 발이 미끄러져 흰 거품이 일어나는 미사렐라(Misarella) 강의 급류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총알이 결사대 병사들의 여기저기를 강타했고, 대기는 화약 연기와 뭔가 부러지는 소리와 총탄이 핑핑 날아다니는 소리로 가득 찼다.  하지만 뒬롱 소령은 마침내 장애물 한 부분을 강 속으로 밀어내는데 성공했고, 병사 한명이 통과할 만한 틈을 만들어냈다.  이 틈은 함정에 빠진 프랑스 2군단 전체를 구하기에 충분할 만큼 큰 것이었다. 


그는 비틀거리며 그 틈 사이로 들어가 검을 높이 들고, 숨을 쉬려 애쓰며 입으로 피거품을 내뿜었다.  지원 대대들이 총검을 꽂은 채 다리로 달려들면서, 그의 뒤에서 엄청나게 큰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뒬롱의 결사대 중 살아남은 병사들이 가시덤불의 나머지 부분들을 치워내면서, 이미 전사한 유격병(voltigeur) 10여명의 시체를 무자비하게 다리 밑 강물 속으로 발로 차 던져 버렸다.  그들은 함성과 함께 돌격했고, 뒬롱 소령의 결사대를 저지하기 위해 총을 쏜 뒤 아직 재장전 중이던 포르투갈 민병대원들은 프랑스군이 떼거리로 몰려오는 것을 보고는 도주해버렸다.  수백 명의 민병대원은 프랑스 총검을 피하기 위해 서쪽 언덕을 기어 올랐다.  


뒬롱은 포르투갈 민병대가 버리고 간 가장 가까운 엄폐물 근처에 멈춰섰고, 거기서 그는 검이 손목에 연결된 가죽끈에 매달려 대롱거리는 채로 허리를 굽혔고, 피와 침이 섞여 그의 턱으로 길게 흘러내렸다.  그는 눈을 감았고, 기도를 하려고 애를 썼다.


"들 것을 가져와 !" 한 하사관이 외쳤다.  "들 것을 만들어. 의사를 찾아 !"  프랑스군 2개 대대가 포르투갈 민병대를 다리에서 쫓아냈다.  아직 포르투갈인 몇몇이 왼쪽의 높은 바위 언덕에서 얼쩡대고 있었지만, 머스켓 소총을 쏘기에는 너무 먼 거리였기 때문에, 프랑스군은 그들이 그냥 자신들이 탈출하는 과정을 지켜보도록 내버려 두었다.  


뒬롱 소령이 함정의 마지막 틀을 억지로 열어젖힌 것이었고, 이제 북쪽으로 향하는 도로는 활짝 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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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장면을 읽고 대체 뒬롱 소령은 죽은 것인가 산 것인가 상당히 궁금했습니다.  중상을 입은 것은 사실인 모양인데, 당시 프랑스군은 금은보화도 다 버리고 가는 마당에 설령 살 수 있다고 해도 저런 중상자를 데리고 갈 만한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예, 좀더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작가인 버나드 콘월은 작품 맨 끝 부분에 historical note를 적는 것으로 유명한데, 거기서 작가 자신도 이 사건 이후 뒬롱 소령의 생사 여부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작가 버나드 콘월입니다.)




그런데, 이 뒬롱 소령의 생사 여부를 구글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Sharpe's Havoc이 씌여지던 2002~2003년 당시엔 구글이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았었나 보지요 ?  다음 사이트, 즉 유명한 크리스티 경매에서 이 뒬롱 소령의 초상화가 1997년 5월 22일에 무려 $1,652,500, 우리 가격으로는 대략 18억원에 팔렸다는 상세 기록이 나와 있더군요.   1997년 가격으로 18억원이면, 지금 가격으로는 한 30억 되겠네요.


http://www.christies.com/LotFinder/lot_details.aspx?intObjectID=226156





(저 도전적인 표정 속에 뭔가 슬픔이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




이 별로 손이 많이 간 것 같지 않은 단색 초상화가 무려 18억원에 팔린 것은,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대가인 앵그르 (Jean-Auguste-Dominique-Ingres)이기 때문입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General Louis-Etienne Dulong de Rosnay의 초상입니다.  즉, 뒬롱 소령은 푸엔테 마세렐라에서 죽지 않았고, 나중에 장군까지 승진한 것입니다.  이 크리스티 경매 기록에는 앵그르가 1818년 이 그림을 그리게 된 배경 (1815년 나폴레옹 몰락 이후, 일감이 떨어져 돈이 궁했기 때문...)은 물론이고, 모델이었던 뒬롱 장군에 대해서도 상세히 씌여 있습니다.  그가 폰트 노바에서 영웅적인 활약으로 술트의 포르투갈 원정군을 구했다는 이야기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은 1818년에 그려진 것으로, 흐릿한 로마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앵그르는 이런 나폴레옹 찬양화를 많이 그렸기 때문에, 나폴레옹 몰락 직후에는 금전 사정이 급격히 안좋아졌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에는 주로 이런저런 중산층들의 초상화를 그려서 먹고 살았고, 뒬롱 장군의 초상도 그런 이유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1840년 앵그르가 사정이 좋아진 뒤에 그린 '오달리스크' 입니다.)




원래 뒬롱 드 로즈네는 1780년 프랑스 동부 시골인 로즈네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나폴레옹보다 11살 정도 어린 셈이지요.  그는 1798년 18살의 나이로 처음에는 외무성에 잠깐 몸을 담았다가, 1년 만인 1799년에 장교로 군에 입대합니다.  역시 당시에는 출세의 야망이 있는 건강한 젊은이에게는 군대가 최고의 직장이었던 것이지요.  그는 수완이 좋았는지 1년만에 중위를 거쳐 대위까지 승진합니다.  그러나 소령 진급에는 다소 시간이 걸려, 1807년에야 승진을 합니다.  그리고 2년 후인 1809년, 즉 위 소설 속 배경이 되는 포르투(Porto) 작전 직후에는 대령으로 진급을 했더군요.  그러니까 술트가 자신과 제2군단을 구해낸 영웅을 잊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1800년부터 1807년 사이에는 여러가지 크고 작은 전쟁이 많았는데, 그 사이에 뒬롱의 활약은 별로 없었을까요 ?  당연히 있었습니다.  그는 아우스테를리츠 전투에도 참전했었고, 이때 큰 부상을 입어 평생 오른팔을 쓰지 못하는 불구가 되어 버렸습니다 !!  저 초상화를 자세히 보시면, 오른팔이 슬링에 걸려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즉, 1809년 포르투갈에서 술트의 제2 군단을 구하기 위해 다리를 넘어 돌격할 때, 그는 이미 한 쪽 팔은 못쓰는 불구의 몸이었고, 검은 왼손으로 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트가 그에게 결사대의 지휘를, 그것도 2번이나 맡긴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용감한 사나이였는지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1810년에 이루어진 그의 건강진단서를 보면, 그의 몸에는 13군데의 큰 상처가 있었고, 모두 평생 큰 고통을 주는 상처였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는 폰트 다 미사헬라에서 입은 것이겠네요.


뒬롱 소령이 폰트 다 미사헬라에서 입은 상처가 어디에 어느 정도였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웹사이트에 따르면 그는 이때 머리(!)에 총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또, 이때 쓰러진 그를 어떻게든 데리고 가기 위해 (다른 부상병들은 버리고 가더라도 낭만적인 프랑스인들이 아니더라도 이런 영웅을 그렇게 버리고 갈 리는 없지요) 사단장이 들 것을 만들어, 각 연대에서 가장 신체 조건이 좋은 척탄병들이 번갈아가며 그의 들 것을 운반하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가 속했던 연대의 척탄병들이 우리의 영웅을 다른 연대에게 맡길 수 없다며 단호히 거부하고, 자기들끼리 떠매고 갔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또 그의 소속 연대가 32연대가 아니라 15연대라고 되어 있네요...)


1813년에, 그는 자작으로 봉해지면서 장군이 되었는데, 그때 그는 나폴레옹의 신참 근위대(Jeune Garde)에서 복무해줄 것을 요청받았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은 자신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해 부상을 입고 불구가 된 사람들을 보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는지, 자신의 주변에 영구적인 부상을 입은 병사나 장군이 있는 것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쪽 팔을 쓸 수 없는 사람을 신참 근위대 지휘관으로 삼은 것은, 이 고참 장교의 용기에 대한 대단한 칭송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어쨌거나 뒬롱 장군은 1815년 나폴레옹의 100일 천하 때, 나폴레옹을 따르지 않고 부르봉 왕가를 섬기는 것을 택했습니다.  부르봉 왕가는 이미 혼이 단단히 난 상태였기 때문에, 군 장교들의 인심을 얻기 위해 안절부절하는 상태였던지라, 뒬롱 장군과 같은 저명한 장군의 비위를 맞추고자 뒬롱을 백작에 봉하고 루이 18세의 근위대 부지휘관 자리에 앉혔습니다.  그는 나중에 샤를 10세의 즉위식에도 참여했고, 생 루이(Saint Louis) 훈장도 받고, 왕실 인사(gentilhomme de la Chambre du Roi)로도 인정받을 정도로 출세를 거듭했습니다.





(샤를 10세의 즉위식 광경입니다.  뒬롱 장군을 찾아 BoA요.  저는 포기.)




그러나 역시 용감한 군인의 최후는 그다지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1828년, 그는 자살을 택했는데, 그 이유는 다름아닌, 평생 그를 괴롭혔던 수만은 전투 부상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불과 48세의 나이였으니, 정말 용감한 늙은 군인이라고 하기엔 너무 젊은 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Source : Sharpe’s Havoc by Bernard Cornwell

https://fr.wikipedia.org/wiki/Louis_%C3%89tienne_Dulong_de_Rosnay

https://gw.geneanet.org/dorsner?lang=fr&p=louis+etienne&n=dulong+de+rosnay

http://thenapoleonicwargamer.blogspot.kr/2010/07/general-louis-etienne-dulong-de-rosnay.html

http://histoiresdenosfamilles.fr/cahiers_ba/cahier_2_chap3.html

https://en.wikipedia.org/wiki/Ponte_da_Mizare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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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홍락 2018.02.10 2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슷한 일이 100여년후 중국 사천성에서 반복되는 듯 하네요.ㅎ

    • nasica 2018.02.11 09: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국공내전 때 일인가요? 저는 그쪽은 잘 몰라서...

    • reinhardt100 2018.02.11 0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노정교 전투 말씀이시군요.

      대장정 직전, '1-4차 초공작전의 실패'라는 실적을 명백히 무시한 오토 브라운과 공산당중앙위원회는 당시 막 제기되었던 스베친이나 트리안다필로프등의 소련식(마르크스적)군사학을 무분별하다 싶을 정도로 맹종하는 경향을 보이다가 결국 5차 초공 작전에서 강서소비에트등 그나마 있던 기반을 싹 다 날려버리면서 유랑 무장집단화 되어버립니다. 준의회의에서 모택동 지도노선이 채택, 겨우 장국도와 하룡의 홍4방면군과의 합류를 결정하면서 와해 직전 분위기를 추스립니다. 합류 직전에 최대 도하 장애물이었던 대도하의 현수교인 노정교에서 지문과 똑같은(?) 전투가 벌어집니다.

      사실, 노정교 도하전이 대단히 중요했던 이유가 노정교를 도하하지 못하면 70년전 태평천국군 잔당과 똑같은 말로를 보일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이수신과 그 휘하 군단이 사천 정복에 나섰다가 청군의 반격 및 추격에 의해 노정교 근방에서 포위, 전멸된 전례가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노정교를 우회하면 추가 이동거리가 2천km였는데 이건 그냥 홍1방면군 붕괴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모택동,주은래,주덕 등의 홍1방면군은 귀주성을 약탈한 후, 사천방면으로 북상, 군벌들 간의 분열로 틈이 많았던 사천 북부에서 전열을 재정비한 후, 장국도와 하룡의 홍4방면군과 합류하지만, 장국도에 의해 섬서성 대신 사천성 공략으로 전략적 목표가 바뀌면서 국민당군 및 군벌군과 정면대결을 하고 그대로 박살나면서 오히려 모택동 지도노선은 더 확고해집니다. 모택동은 오히려 자기 주장대로 하면서 신화적인 지도력을 가지면서 공산당에서 확고부동한 1인자로 등극하면서 대약진운동 이전까지는 누구의 도전도 받지 않을 수 있게 됩니다.

    • 최홍락 2018.02.11 2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그 노정교 전투 맞습니다. 예전에 이 일화를 접했을때 다리 상판만 제거하고 다리 기본구조는 남겨놓은 것을 보고 군벌들이 군 기강이 헤이하고 상대인 홍군을 가볍게 여겨 홍군에 결정적인 생존 기회를 제공했다고 생각했는데 nasica님의 포르투칼 민병대가 자신의 생활을 위해 똑같이 행동했던 얘기를 보니 그들도 그만한 사정이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P.s. 뒬롱 장군 이야기는 예전에 한번 다뤘던 얘기인데 그때 좋은 일화를 소개해주셨지요.

      "용감한 조종사도 있고, 늙은 조종사도 있다. 그러나 용감한 늙은 조종사라는 건 없다." 이 말은 나이가 들면 용기가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나치게 용감한 조종사는 젊은 나이에 일찍 죽기 마련이라는 뜻이더라는ᆢ

    • reinhardt100 2018.02.11 20: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노정교 상판만 떼 버린 이유가 이 다리 소유권 문제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18세기에 처음 가설할 때 워낙 돈을 여기저기 끌어다 써서 함부로 철거했다가는 재가설시 비용부담이 엄청났다고 합니다.

      게다가 노정교의 경우, 차마고도와의 연결까지 겹쳐서 대상들의 무역손실까지 겹치니 군벌들 입장에서는 상판철거 이외에는 답이 없었다는거도 고려해야 합니다.

      흔히, 중원대전을 기준으로 전후 군벌들의 재정조달은 지역마다 달랐습니다. 만주의 경우, 장작림과 휘하 군벌이 양찬 등의 곡물상들과 은행들로부터 대두수출의 안전 보장등과 연결해서 만철과 연계, 재정조달을 했습니다. 반면 동부의 연안 지역은 무역 통제 및 상해지역에서의 금융을 통해 조달하였고, 산서의 염석산은 무기제조 및 판매 등 군수공업을 기반으로 하여 채권 발행 및 지폐발권 등으로 조달했습니다. 서북군벌의 경우에는 신강등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및 중앙아시아, 소련과의 육상 무역으로, 운남이나 양광지역의 경우, 영국과 프랑스와의 육.해상 무역 등으로 어떻게든 재원을 마련했습니다. 문제는 사천인데, 사천이 유독 단일군벌로 통일이 되지 못한 이유가 각 군벌별로 확실한 재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천의 잠재력 치고는 굉장히 군벌이 빈약한(?) 편이었다는 게 대장정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였습니다.

  2. 석총 2018.02.11 14: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나 그분

  3. 쇼펜하우어 2018.02.11 2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궁금한데 이런 역사적 지식을 어떻게 다 아시는거죠? 서양사 전공하셨나요? 어디서 이런 지식을 쌓으셨나요?

    • nasica 2018.02.11 22: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끼적인 것은 지식이랄 것도 없습니다. 그냥 책 두어권과 인터넷질 좀 하면 다 나오는 내용인걸요.

    • 쇼펜하우어 2018.02.12 2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데 영어 뿐만 아니라 프랑스어도 할 줄 아시나 보네요 참고 사이트 보니 대단하시네요

    • nasica 2018.02.13 07: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딩 수준의 불어일 뿐이고요, 구글 번역기 씁니다. 불한은 못 봐줄 수준이지만 불영 번역은 꽤 쓸 만 하거든요.

  4. 이부프로펜 2018.02.16 0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때는 제대로된 진통제도 없었던 시절이니... 불과 100년전만해도 지금같은 의약품은 꿈도 못꿨을테니 현대에 태어난 걸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