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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시르4

드레스덴 전투 (5) -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자 8월 25일 오후, 알렉산드르와 모로가 즉각 공격을 주장한 것에 대해 슈바르첸베르크는 반대했습니다. 이유는 아직 오스트리아군 상당수가 도착하지 않았고, 드레스덴의 방비 태세도 불분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나폴레옹의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명색이 오스트리아가 주도하는 보헤미아 방면군이 드레스덴을 점령하는데, 오스트리아군은 별로 없고 러시아군과 프로이센군만 승리의 영광을 차지한다면 오스트리아의 체면이 구겨질 것을 걱정했던 것도 분명히 반대 이유 중 하나였을 것입니다. 여러 국가들의 연합군이란 그래서 어렵습니다. (독일권의 맹주 자리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던 프로테스탄트 왕국 프로이센과 가톨릭 제국 오스트리아의 갈등도 첨예했지만, 동방의 제국 러시아와 이름 자체가 동방의 .. 2024. 3. 18.
드레스덴 전투 (1) - 하늘과 땅과 사람 슈바르첸베르크가 페터스발트 고갯길을 거쳐 드레스덴을 들이친 것은 분명히 나폴레옹의 의표를 찌른 멋진 작전이었습니다. 아무리 나폴레옹이 다 계산 안에 있던 움직임일 뿐이라며 침착한 척 했지만, 상황은 매우 위태로웠습니다. 당시 전황은 마치 새끼곰을 지키는 어미곰 한 마리를 사냥개 세 마리가 둘러싸고 위협하는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그 새끼곰이 바로 드레스덴이었습니다. 드레스덴은 작센 왕국의 수도라는 상징성과 교통의 요지라는 점 외에도 그랑다르메의 온갖 군수품이 쌓인 보급 중심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미곰이 동쪽 사냥개인 블뤼허를 거세게 쫓아내느라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남쪽 사냥개가 새끼곰의 뒷다리를 덥썩 물고 끌고가려는 상황이 8월 22일의 상황이었습니다. 페터스발트 고갯길을 넘은 보헤미아 방면군은 거.. 2024. 2. 19.
한자 동맹의 영광 - 함부르크를 둘러싼 소동 나폴레옹은 3월초 마인 방면군의 편성에 열중하면서도 외젠에게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주 편지를 보내며 함부르크의 중요성에 대해 두번 세번 반복했습니다. 외젠으로서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함부르크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쉽게 프로이센-러시아 연합군의 손에 넘어가버렸고, 당연히 나폴레옹은 크게 노발대발했습니다. 다소 나중의 일입니다만, 나폴레옹이 마인 방면군을 이끌고 진격을 시작할 때 다시 외젠에게 편지를 보내 강조한 이번 작전의 2가지 1차 목표는 잘러(Saale) 강 방어선의 확보와 함부르크의 탈환일 정도로 나폴레옹은 함부르크를 중요시했습니다. 함부르크는 훨씬 나중인 5월 30일, 작센에서의 패배를 접한 연합군이 스스로 함부르크에서 철수하면서 다시 나폴레.. 2022. 7. 18.
꿈의 도시 스몰렌스크 - 그리고 현실 11월 6일 급습해온 동장군의 위력 앞에서는 나폴레옹도 한낱 뚱뚱한 프랑스 아저씨에 불과했습니다. 여태까지 '러시아의 추위가 무시무시하다더니 프랑스와 하나도 다를 바 없는 날씨 아닌가?' 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떠들었던 것도 어쩌면 러시아의 추위에는 정말 답이 없었고 또 정말 두려워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자기 최면을 거는 행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폴레옹의 그런 입방정은 11월 6일 이후 즉각 고쳐졌고, 추위를 견디지 못한 그는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나 다름없는 회색 프록코트와 삼각모(tricorn)를 포기하고 두툼한 털로 안을 댄 폴란드식 초록색 외투와 군고구마 장수 같은 방한모를 뒤집어 써야 했습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 걸어서 후퇴하는 나폴레옹을 그린 Vasily Vereshchagin라는.. 2021. 8.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