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성경에는 맥주 이야기가 없을까 ?

잡상 2019. 6. 10. 06:30 Posted by nasica


구약성서 중에서 흥미롭게 읽었던 부분이 모세가 유대민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는, 즉 출애급하는 장면입니다.  몇가지 신기하게 생각했던 점이 있었는데, 가장 의아했던 부분은 왜 저렇게 유대인들이 자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배신하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현대인들처럼 하나님의 기적을 직접 목격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신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그런 기적들을 여러번 집단으로 목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온갖 기적을 베풀면서 유대민족을 탈출 시켜주었고, 또 사막에서 물이 없어 목이 마르자 샘물을 터뜨려 주셨으며, 먹을 것이 없자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주셨고, 만나만 먹으니 질린다 고기를 먹게 해달라 라며 아우성을 치자 메추리들을 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모세가 잠깐 자리를 비우자마자 하나님을 잊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으니, 유대민족이 단체로 메멘토에 걸린 것도 아닐텐데 왜 저러나 싶었습니다. 

그런 심각한 와중에도 제 관심은 음식 종류에 대해 집중되었습니다.  보니까 이스라엘인들이 마늘과 파를 식생활에 도입한 것이 이집트에서라더니 정말 그렇더라고요.  그것도 공짜로 먹었다고 하니, 이집트에서 피라미드 건설하던 노동자들이 학대받는 노예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나름대로 상당한 복지 혜택을 받으며 일하던 사람들이라는 이야기가 진짜였나보다 싶었습니다.

(민 11: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민 11: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민 11: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실제로 이집트 기록에도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에게 마늘을 지급했다는 기록이 있고, 또 투탄카멘 파라오의 피라미드 안에서 마늘이 발견되기도 했다지요.  흔히 성경을 역사책으로 보면 안 된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성경도 100% 모두는 아니라도, 꽤 중요한 역사적 사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이집트 피라미드 노동자들에게 급료로 빵과 맥주를 지급할 정도로 고대 이집트는 맥주를 많이 마시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집트에서 300년 가량 머물렀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늘과 파 먹는 법은 배웠으면서 맥주 만들어 마시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면 매우 이상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포도주 이야기는 자주 나오지만 맥주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가령 예수님께서도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지 맥주로 바꾸지는 않으셨지요.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

 

 



저는 처음에 이 의문이 들었을 때, 혹시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서 오랫동안 (혹자는 215년 간, 혹자는 430년 간) 살았다는 이야기 자체가 허구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이집트의 모든 문서나 비석, 벽화 등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대규모 거주와 탈출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것이 없다고 알고 있습니다.  뭐 기나긴 이집트 역사를 생각해보면 별 영향력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300년 살다가 나간 것이 기록할 만한 사건이 아닐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집트에서 300년 살다 온 민족이 맥주를 모른다는 것은, 마치 미국에서 평생을 보낸 재미교포라는 사람이 햄버거를 모른다는 소리와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개 포도주와 함께 등장하는 술이 있습니다.  바로 '독주'라고 표현되는 술이 바로 그것입니다.  가령 사무엘상 1장 도입부를 보면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나중에 사무엘을 낳게 되는 늙은 한나가 신전에 가서 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기도하느라 한참을 입술로 중얼중얼거리니 제사장인 엘리가 보고 이렇게 타이릅니다.  "할마씨요, 와 그렇게 살아요 ?  고마 술 끊고 집에 가이소."  그러자 한나가 날카롭게 대꾸합니다.  "아니거든요 ?  저 와인도 양주도 안 마셨거든요 ?"

 



물론 이건 제가 이해한 장면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 성서에 나오는 것은 아래와 같습니다.

(삼상 1: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삼상 1: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삼상 1: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저 '포도주나 독주'라고 표현한 것이 영문판에는 뭐라고 되어 있나 찾아보면 보통 'wine or strong drink'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말로는 strong drink가 독한 술이라는 뜻의 '독주'라고 번역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보통 우리 말로 독주라고 할 때는 막걸리나 정종, 백세주 같은 것을 독주라고 부르지는 않고 소주나 빼갈, 위스키나 보드카, 브랜디나 진 같은 것을 독주라고 합니다.  즉, 단순 발효주가 아니라 발효주를 증류해서 알코올 함량을 잔뜩 높인 술을 독주라고 부르지요.  하지만 알코올 증류 기술은 일반적으로는 기원후 8세기 아랍 쪽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지요.  최후의 사사로 일컬어지는 사무엘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은 아직 철기 문명조차도 가지고 있지 못한 시기였습니다.  가령 사울이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된 이후 블레셋과 전투를 앞두고 있었을 때, 그의 군대 중에 제대로 된 칼이나 창을 든 자는 사울과 그의 아들 뿐이었습니다.

(삼상 13:19)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삼상 13:20)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
(삼상 13:21)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삼상 13: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이렇게 기술 문명이 뒤떨어진 시대의 이스라엘에서 증류주를 만들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한나는 '포도주나 독주'라는 표현을 썼을까요 ?

이건 영어 표현에서 일반적으로 strong drink라고 하는 것은 그냥 알코올성 음료를 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알코올이 없는 음료를 soft drink라고 부르는 것과 대조적으로 생각하시면 좋습니다.  알코올이 들어간 것을 hard drink라고 하지요.  반대로 알코올이 없거나 있어도 매우 약한 것은 thin drink라고도 합니다.  사자왕 리처드가 등장하는 영국 역사 소설 아이반호(Ivanhoe)의 한 장면에도 그런 부분이 나옵니다.  사자왕 리처드가 신분을 감추고 그저 '흑기사'라는 신분으로 영국에 잠입했을 때, 숲 속에서 터크 신부를 만나 그 신부의 오두막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됩니다.  로빈훗에 나오는 뚱뚱하고 힘센 터크 신부는 여기서 리처드에게 말린 완두콩과 맹물을 저녁으로 같이 먹자고 내주는데, 리처드는 이런 음식과 마실 것을 먹고는 터크 신부가 저런 얼굴을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한마디 합니다.

“It seems to me, reverend father,” said the knight, “that the small morsels which you eat, together with this 

holy, but somewhat thin beverage, have thriven with you marvellously."


기사는 말했다.  "내가 보기엔 말이오, 경외하는 신부님께서 드시는 이 보잘 것 없는 음식과 이 신성하지만 어째 좀 밍밍한 음료(thin beverage)에 비해 신부님의 풍채가 너무 좋으신 것 같습니다."

원래 구약 성서 곳곳에 나오는 포도주와 독주라는 표현에서, 독주라는 단어의 히브리 원어는 shekhar입니다.  이는 포도주와 같은 과일 발효주와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곡물 발효주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알코올 도수가 높은 술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곡물로 만든 술을 뜻하는 것입니다.  원래 이집트 뿐만 아니라 바빌로니아 등 고대 중근동 지방에서는 맥주를 많이 마셨습니다.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 법전에도 맥주에 대한 언급이 있을 정도였지요.  그러니까 이집트에서 300년, 바빌로니아에서 70년을 보내야 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맥주를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습니다.  또 고대 중근동에서는 맥주가 일상적 음료일 뿐만 아니라 약으로도 처방되었는데, 바로 그런 부분이 성서 잠언에도 나옵니다.  

(잠 31:6) 독주는 죽게 된 자에게, 포도주는 마음에 근심하는 자에게 줄지어다
(잠 31:7) 그는 마시고 자기의 빈궁한 것을 잊어버리겠고 다시 자기의 고통을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설마 성서에서 알코올 도수 40도의 독한 술을 곧 죽을 정도로 허약한 사람에게 주라고 하겠습니까 ?  저기서 말하는 독주란 맥주를 뜻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실제로 영어 성서 영문판 중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에서는 저 shekhar라는 단어를 strong drink라고 번역하지 않고 그냥 beer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Proverbs 31:6  Let beer be for those who are perishing, wine for those who are in anguish!
Proverbs 31:7  Let them drink and forget their poverty and remember their misery no more.

이렇게 구약 시대에는 맥주를 많이 빚었던 이스라엘 민족이 왜 신약 시대에는 맥주를 마시지 않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딱히 설명이 없는 것 같습니다.  호프도 없고 냉장고도 없던 시절의 맥주는 사실 맛이 별로 없었을텐데, 그런 점 때문에 포도주와의 오랜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또 전통적으로 곡물이 부족하여 맥주는 마시지 않고 포도주만 마셨던 그리스 세력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을 통해 페르시아를 격파하고 중근동 지방까지 뻗치면서 더욱 포도주의 득세가 퍼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약간 이야기가 옆으로 샙니다만, 제가 아무리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전도서 11장 1~2절입니다.  

(전 11:1)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전 11:2) 일곱에게나 여덟에게 나눠 줄지어다 무슨 재앙이 땅에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함이니라

이 구절은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고 살라는 취지의 이야기로 저는 인식했습니다.  그런데 저 1절 부분의 '떡을 물 위에 던지라'는 부분은 정말 이해가 안 갔습니다.  며칠 뒤에 도로 찾을 거라면 그냥 애초에 던지지를 말 것이지 왜 떡을 물 위에 던지라는 것일까요 ?  저게 당시 흔하게 사용되던 히브리어의 무슨 관용구 같은 것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저는 성경을 읽다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으면 그건 번역의 문제라고 보고 - 저는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못하니까 - 영문판을 찾아보곤 합니다.  그런데 거기도 똑같이 번역되어 있더라고요.

Ecclesiastes 11 King James Version (KJV)
Cast thy bread upon the waters: for thou shalt find it after many days.
2 Give a portion to seven, and also to eight; for thou knowest not what evil shall be upon the earth.

그런데 shekhar를 beer라고 과감히 번역하는 New International Version 버전에서도, 이 구절의 번역을 두고 엄청나게 고민을 했던 모양입니다.  결국 다음과 같이 번역했습니다.

Ecclesiastes 11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Ship your grain across the sea; after many days you may receive a return.
2 Invest in seven ventures, yes, in eight; you do not know what disaster may come upon the land.
바다 건너 곡물 무역을 해라.  시간이 지나면 수익을 얻을 것이니라.
7~8개의 사업을 벌여라.  어떤 재앙이 올지 모르는 일이니라.

결국 원래의 '주변에 베풀고 살라'는 취지에서 약간 벗어나서 '하나님을 믿고 투자는 과감하게 하라'는 식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이 버전이 오히려 좀 이상한 번역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서 고고학회(Biblical Archaeology Society)의 Michael M. Homan이라는 분은 '떡을 물에 던지라'는 표현을 맥주를 빚으라는 것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원래 고대 이집트의 맥주는 먼저 빵을 만든 뒤 그 빵을 잘게 부수어 물에 풀어넣어서 만들었다고 하지요.  그렇게 보면 정말 딱 맞아 떨어지긴 합니다.  맥주를 빚어서 혼자 마시지 말고 주변 사람 7~8명에게 베풀라는 이야기지요.  

원래 이렇게 성서 해석을 교회나 무슨 위원회 같은 것에 따르지 않고 자기 멋대로 하기 시작하면 그게 이단의 시작이라고 하지요.  그러니 제가 감히 '저 부분은 기존 성경의 해석이 틀렸고 저건 맥주 빚는 이야기가 맞다'라고 주장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메시지 성경'이라는 좀 특이한 버전의 성경이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이라는 목사님이 쓰신 이 성경은 이해하기 어려운 성서를 굉장히 파격적으로 쉽게 풀이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에게 쉽게 이해를 시키려다보니 '커피'라든가 '베스트 드레서' 등등의 파격적인 단어가 막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교단에서는 이 성서를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기도 하고 유진 피터슨 목사를 이단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제가 다니는 장로교 통합파 교회에서는 참고용으로는 인정하고 있습니다.

 


(메시지 성경의 일부입니다.  뭐 취지는 이해가 가는데, 예수님이 커피 운운하시는 것으로 번역하니까 좀 이질감이 들긴 하더군요.)



이 메시지 성경에서는 뭐라고 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과연 저를 실망시키지 않고 정말 파격적이더군요.  떡이니 물이니 하는 지엽적이고 해석 곤란한 것들은 다 없애버리고 그냥 '너그럽게 베풀거라, 자선 활동에 투자하여라' 라고 번역을 해놓았습니다.  저는 성경을 글귀 하나하나에 집착해서는 안되고 전체적인 말씀 이해에 집중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저 메시지 성경의 전도서 11장 1절 해석이 굉장히 뛰어난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Source : https://preachersinstitute.com/2012/12/26/did-ancient-israelites-drink-beer/
https://academic.oup.com/jn/article/131/3/951S/4687053

 

Historical Perspective on the Use of Garlic

Abstract. The objective of this review is to examine briefly the medical uses of garlic throughout the ages and the role that it was considered to play in prev

academic.oup.com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유애경 2019.06.10 08: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오! 성경의 독주=맥주, 뭔가 신선한 느낌입니다.
    오래전에 해외토픽류의 기사를 들은 적이 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몇천년 전인가 이집트의 맥주가 발견되어 한잔에 몇백만원(?)인가에 판매됬었다는 내용...
    맥주가 참 오래된 술이구나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본문을 읽고보니 느낌이 새롭네요.
    저 메시지 성경 이라면 한번 읽어보고 싶네요! 교회 다닐때, 성경 많이 읽는것이 기독교인의 신앙의 척도라는 듯한 가르침 때문에 이해하기도 힘든 성경을 끙끙대며 힘들게 읽곤 했는데 메시지 성경은 정말 이질감이 들 정도로 쉽게 풀이 해놓은것 같습니다.

    • ㅇㅇ 2019.06.10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양장본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반양장본으로 성경 전 권이 나온 버전이 5만원 정도 하더라구요. 다만 읽기는 정말 쉽게 되어 있으니, 교양으로 전체 내용을 읽어보고 싶으시다면 추천드립니다. 다만 부분부분 읽는 것은 별로 추천하지 않습니다 ㅎㅎ

  2. ㅇㅇ 2019.06.10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본문에 포함되지 않은 개신교, 가톨릭에서 만들어진 한국어 현대어역도 같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돈이 있으면, 무역에 투자하여라. 여러 날 뒤에 너는 이윤을 남길 것이다.(새번역 성경)
    NIV와 비슷합니다.

    돈이 있거든 눈 감고 사업에 투자해 두어라. 참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이윤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공동번역 성경)
    물에 던진다는 표현을 미련 없이 투자하는 것으로 해석하여 표현했습니다.

    Cast your bread on the surface of the waters, for you will find it after many days.(새 미국 표준역NASB)
    직역표현을 다수 차용한 권위있는 역본인 NASB는 KJV와 비슷하게 번역했군요. 독자의 적용은 메세지 성경 쪽으로도, 공동번역 쪽으로도 둘 다 적용될 것 같습니다.

    다만 전도서가 교훈적이되 잠언처럼 실제적인 내용이 많음을 감안하면 새번역, 공동번역 쪽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 eithel 2019.06.11 11: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무역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무래도 미국적인 이념이 많이 섞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뒤의 구절들을 보면 아침에 심어서 저녁에 거둘지도 확실치 않다는데, 무역에 과감히 투자하라는 것은 앞뒤가 잘 맞지 않으니까요.

  3. 애독자 2019.06.10 11: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글은 휼륭하다는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게 번역이나 전달의 오류가 많다는 것이 조금은 모순된다는 생각도 드네요. 어렵지 않고 심지어 읽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어야 하거늘

  4. 여강여호 2019.06.10 15: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성경에서의 호기심을 역사적으로 파헤친 글, 관심있게 읽었습니다.

  5. 0_- 2019.06.10 16: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본적으로 포도는 술이나 만들어 마시는 용도로 쓰이는게 정상인 척박한 땅에 자라나는 작물입니다.
    반면에 보리건 밀이건 제대로 된 땅에서 나름대로 정성을 들여야 나는 곡물이지요.
    그렇게 귀하게 키운 곡물은 낭비없이 빵으로 만들어서 먹어야지, 술따위 만드는데 낭비해서야 쓰겠습니까?

    조선시대 금주법이나 같은 맥락이지요. 귀한 쌀로 밥을 못할 망정 술로 낭비나 하다니.

  6. 루나미아 2019.06.10 2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문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기존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시다니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7. 수비니우스 2019.06.11 0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것 " 묘하게 이 부분이 막 부럽네요 ㅋㅋㅋ 식비가 많이 나가진 않지만 공짜는 양잿물도 마신다는것 같은 느낌으로 부럽네요


고대 국가와 근대적 국가의 뚜렷한 차이점 중 하나가 바로 정교 분리입니다.  마치 무협지에서 관은 무림의 일에 관여치 않고 무림도 관의 일에 관여치 않는 것이 불문률인 것처럼, 종교는 정치에, 반대로 정치도 종교에 관여하지 않는 것이 정교 분리입니다.  하지만 무림과 관이 서로 상대의 일에 관여치 않기로 한 것은 서로의 영역이 겹치는 부분이 무척 많기 때문입니다.  가령 좌랭선의 숭산파가 중원 제패의 야심을 품고 타 문파를 무력으로 공격하는 것이 관에서 볼 때는 산적떼들의 난동과 종이 한장 차이일 것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종교와 정치는 엄격히 구분된 것처럼 말은 하지만 사실은 겹치는 영역이 매우 많고,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예수님도 반란죄로 십자가형에 처해지셨고, 마호멧은 스페인부터 북아프리카, 중동, 중앙 아시아에 걸치는 대제국을 건설한 것입니다.  과거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이,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개신교 지도부는 법에도 없는 사실상 면세 특혜를 받고 있지요.  이는 그 종교인들이 뻔뻔스러움 뿐만 아니라 선거 때 정치인들의 당락을 좌지우지할 만큼 실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은 어느 정도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진화론 같은 과학에까지 종교적 논리를 들이대며 참견하면 그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반면에 우주 창조 이론인 빅뱅 이론을 최초로 제시한 것이 카톨릭 신부이자 천문학자인 조르쥬 르메트르(Georges Lemaître)이기도 합니다.)




많은 경우, 고대 시절에는 종교와 정치가 사실상 일체화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사장이 곧 우두머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가령 이집트에서 가나안 땅으로 유대인들을 이끌고 나온 세계 최초의 대량 난민 리더인 모세가 대표적인 종교 수장이 국가 수장인 경우입니다.  그 뒤를 이은 것은 모세의 아들이 아닌 여호수아라는 점도 초기 고대 사회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즉 아직 수장의 권세가 충분히 강하지 못해 그 신분이 세습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 차기 수장도 종교 지도자임과 동시에 군사 지도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사사(士師) 시대에도 사사는 일종의 부족장임과 동시에 종교 및 군사 지도자이기도 합니다.  사사를 영어로는 judge라고 합니다만 이는 고대 히브리어 직위를 번역하다보니 이렇게 된 것일 뿐이고, 사사를 문약한 재판관 정도로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가령 천하장사 삼손도 사사거든요.  




(삼손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사들도 강력한 무력을 바탕으로 많은 군사적 업적을 쌓은 사람들입니다.  가령 이 그림 속의 삼갈(Shamgar)은 소떼를 모는 막대기만 들고 혼자서 불레셋 전사 600명을 때려죽인 무시무시한 무공의 소유자입니다.  동방불패도 그 정도의 무공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중세의 삽화에서는 막대기는 그래도 좀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소잡는 칼 같은 것으로 마구 살륙을 벌이고 있군요.)



(생각해보니 무협지에서도 일월신교 교주 임아행이나 명교 교주 장무기, 소림사 방장 등 종교 지도자가 가장 강력한 무공을 갖춘 경우가 정말 많은데요 !  사진 속 인물은 영화 동방불패에 나오는 흡성대법의 창시자 임아행입니다.  실제 소설 소오강호에 나오는 임아행은 저런 미치광이가 아니라 정말 문무에 모두 통달한 무림 대종사로 나오는데 참 아쉽더군요.)




그러다 어느 정도 사회가 발전하면 결국 세속 권력이 발달하면서 종교 권력을 밀어내고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잠깐 신앙심을 접어놓고 구약 성경을 읽다보면 그런 갈림길이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사무엘 상편(1 Samuel)입니다.  


사사라는 직위는 그 역할이 약간 불분명하긴 합니다만 제사장이기도 하고 군사 지도자이기도 하면서 또 원칙적으로는 신분이 세습되었던 모양입니다.  사무엘의 전임자인 엘리는 처음에는 제사장(삼상 1:9)이라고 소개되지만 죽을 때는 사사라고(삼상 4:18) 설명되는 인물인데, 그 두 아들은 무척 부패한 인물이었으나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엘리는 그들에게 사사 자리를 물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 아들은 불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모두 전사해버리지요.   그 뒤를 이은 사무엘은 무척 공정하고 뛰어난 인물이었으나, 사무엘의 아들들도 사무엘과는 달리 무척 부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무엘은 그 전임자 엘리처럼 또 그 아들들을 사사로 임명하여 세습을 시도했습니다.  (아, 세습은 모든 악의 근원입니다 !)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에 반발하여 다른 선진국들처럼 우리도 왕정을 세우자고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는 사사로부터 군사권과 사법권, 행정권 등 많은 권력을 빼앗아 왕에게 주는 일이었으므로 사무엘이 이에 대해 (잠시 신앙심을 완전히 접어두고 읽으면) 신의 뜻을 저버리는 일이라며 매우 불쾌해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습니다.



8:1 사무엘은 나이가 들어 자기 아들들을 이스라엘의 사사로 삼았습니다. 

8:2 사무엘의 두 아들 이름은 요엘과 아비야였습니다. 요엘과 아비야는 브엘세바에서 사사로 있었습니다. 

8:3 그러나 사무엘의 아들들은 사무엘처럼 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정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모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남몰래 돈을 받고 공정하지 않은 재판을 했습니다. 

8:4 그래서 장로들이 모두 모여 라마에 있는 사무엘에게 왔습니다. 

8:5 장로들이 사무엘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당신은 늙었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처럼 살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도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를 다스릴 왕을 세워 주십시오.” 

8:6 사무엘은 장로들의 이 말을 기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여호와께 기도드렸습니다. 

8: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백성들이 너에게 말하는 것을 다 들어 주어라. 백성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려 내가 그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8:8 백성들이 하는 일은 언제나 똑같다. 내가 그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올 때부터 오늘날까지 그들은 나를 버렸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 그런데 그들은 똑같은 일을 너에게도 하고 있다. 

8:9 이제 백성의 말을 들어 주어라. 그러나 그들에게 경고하여라. 그들을 다스릴 왕이 어떤 일을 할지 일러 주어라.” 

...중략...

8:19 그러나 백성들은 사무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를 다스릴 왕이 필요합니다. 

8:20 왕이 있으면 우리도 다른 모든 나라들과 같게 됩니다. 우리 왕이 우리를 다스릴 것입니다. 왕이 우리와 함께 나가서 우리를 위해 싸울 것입니다.” 



결국 백성들에게 등떠밀려 왕을 옹립하게 된 사무엘이 하필이면 가장 빈약한 세력을 가진 벤야민 지파 중에서도 매우 별볼일 없던 가문 출신의 사울(Saul)을 왕으로 세운 것은 (물론 하나님의 뜻이라고 씌여있긴 합니다만) 새로 생긴 왕정을 견제하려는 종교 권력의 절박함을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덕분에 사울은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음에도 일부 더 강력한 가문들로부터 왕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삼상 10:27) 한동안 평소 하던 대로 직접 황소로 쟁기질을 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삼상 11:5)  사울이 왕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한 것은 암몬 왕 나하스(Nahash)가 길르앗 야베스(Jabesh Gilead)를 침공했을 때 뛰어난 군사적 역량으로 그를 격파한 뒤의 일이었습니다.  (삼상 11:15)  이건 고대 국가 세속 권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바로 군사 지도자 역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확고해진 왕권도 종교 권력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사울과 그를 세운 사무엘의 사이가 결정적으로 틀어진 것은 사울이 사무엘의 권한인 번제를 직접 드렸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전투란 신의 마음에 그 결과가 달린 무척 중요한 종교적 이벤트였습니다.  따라서 전투 직전에 제사를 드리고 신의 은총을 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제사를 드리기 전에는 전투를 벌일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적군이 눈 앞까지 쳐들어와 우리 편 병사들을 마구 쳐죽이는 상황에서도 제사를 드리지 못하면 싸워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는 꼭 이스라엘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흔히 있던 일입니다.  가령 페르시아 전쟁 중인 기원전 479년 벌어진 플라타에아(Plataea) 전투에서, 스파르타의 섭정이자 총지휘관이었던 파우사니아스는 신에게 바치는 희생물의 내장에서 좋은 징조를 얻지 못하자, 좋은 징조가 나올 때까지 계속 희생물을 바치느라 전투 개시를 계속 미루었습니다.  페르시아군의 화살이 빗발처럼 날아와 아군 병사들이 픽픽 쓰러지는 상황에서도 좋은 징조가 나올 때까지 진격을 허락하지 않고 계속 희생물만 바치고 있었지요. 




(결국 희생물의 내장에서 좋은 징조가 나왔기 때문인지 플라타에아 전투에서 스파르타를 비롯한 그리스 연합군은 마르도니우스의 페르시아군을 완전 궤멸시킵니다.)




사울도 똑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사무엘 상 13장에는 사울이 불레셋과 전투를 앞두고 무척 불리한 상황에서 불레셋군과 대치한 상황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7일 간이나 기다렸는데도 번제를 드리기 위해 온다던 사무엘이 전투 현장에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번제를 지내지 않으면 싸울 수가 없는데, 불레셋 군은 언제라도 쳐들어올 수 있는 위기일발의 상황이 이어지자, 불안해진 이스라엘 병사들은 개죽음을 피해 대거 탈영에 나섰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사울은 오지 않는 사무엘을 언제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습니다.  뭐 사무엘이 스위스 차장이 운행하는 기차를 타고 오는 것도 아니고, 도중에 산적을 만나 죽었는지 불레셋 척후병의 습격을 받았는지 혹은 노령에 병이 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제 생각에 어떤 군사 지휘관이라고 해도 사울과 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 같은데, 사울은 사무엘 대신 자신이 직접 번제를 드리기로 합니다.  결과는 사무엘의 분노였지요.  제 상식으로는 지각을 한 사무엘에게 사울이 화를 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13:8 사울은 칠 일 동안, 기다렸습니다. 왜냐하면 사무엘이 그 곳에 오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무엘은 길갈로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군인들이 하나 둘씩 떠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13:9 사울이 말했습니다. “나에게 태워 드리는 제물인 번제물과 화목 제물을 가지고 오시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태워 드리는 제물인 번제물을 바쳤습니다. 

13:10 사울이 막 태워 드리는 제물인 번제물을 바쳤을 때, 사무엘이 도착하였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13:11 사무엘이 물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을 하였소?” 사울이 대답했습니다. “군인들은 하나 둘씩 떠나가고 당신은 오지 않았습니다. 또 블레셋 사람들은 믹마스에 모여 있었습니다. 

13:12 블레셋 사람들이 길갈로 와서 나를 공격할 것인데, 나는 아직 여호와의 허락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태워 드리는 제물인 번제물을 바쳤습니다.” 

13:13 사무엘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바보 같은 짓을 하였소. 당신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소. 당신이 하나님께 순종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당신의 나라를 영원토록 세우셨을 것이오. 

13:14 하지만 당신의 나라는 이제 이어지지 않을 것이오. 여호와께서는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아 내셨소. 여호와께서는 그 사람을 자기 백성의 통치자로 임명하셨소.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당신이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13:15 이 말을 하고 나서 사무엘은 길갈을 떠나 베냐민 땅 기브아로 갔습니다. 나머지 군인은 사울을 따라 싸움터에 나갔습니다. 사울이 남아 있는 사람들을 세어 보니 육백 명 가량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무엘의 저주와 직무 유기에도 불구하고, 사사가 아닌 왕이 바친 번제도 효험이 있었는지 결국 사울의 아들 요나단의 용맹에 힘입어, 사울은 제대로 무장도 못한 600명의 병력으로 불레셋의 대군을 격파하는 큰 승리를 거둡니다.  이후로도 수십년 간 굳건한 왕정을 이어갑니다.  결국 사무엘은 최후의 사사가 되었고, 사사라는 직위는 왕정에 밀려 사라지게 됩니다.  (신앙심을 완전히 접어두고 읽으면) 누가 봐도 이 사건은 명확히 종교 권력에 대한 세속 권력의 승리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종교 권력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렇게 종교 권력과 불화한 사울이 결국 불레셋에게 패배하여 죽고 다윗이 그 뒤를 잇게 된다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울의 뒤를 이은 다윗은 사울과는 달리 종교 권력의 권위를 인정하고 종교적인 측면에서는 그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사무엘로 하여금 다윗을 택하게 만든 사울의 죄라고 해봐야 (1) 사울이 사무엘의 권한을 침범하여 직접 번제를 드린 것과, (2) 아말렉인들을 토벌할 때 사무엘의 명령에 따라 남녀노소는 물론 가축들까지 모조리 쳐죽이라 했지만 가축들은 죽이지 않고 백성들과 나누어 가진 것 정도였습니다.  이건 분명히 종교적 의무 대신 백성들의 경제적 이익을 중시한 정당한 통치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사무엘은 사울을 저주하고 다윗을 대신 왕으로 세웠으며, 결국 사울은 본인 뿐만 아니라 아들들까지 모두 죽어야 했습니다.

그에 비해 다윗의 죄는 '위력에 의한 성폭행' 뿐만 아니라 부하의 미녀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충직한 부하를 함정에 밀어넣어 살해한 것으로서, 현대 기준으로 볼 때도 천인공노할 범죄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선지자 나단(Nathan) 앞에서 회개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용서를 받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미녀 밧세바(Bathsheba)를 정식으로 인정받고 그 사이에서 난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까지 물려줄 수 있었습니다.  


사울과 다윗의 이야기는 결국 세속 권력도 종교 권력의 협조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는 종교 세력의 경고로 볼 수 있습니다.  고대~중세 시절에는 당연히 그랬을 것입니다.  과연 근대라고 할 수 있는 나폴레옹 시대에도 그런 관례가 이어졌을까요 ?




(블레셋군에게 패배한 뒤 이교도 블레셋인들에게 당할 치욕을 피하기 위해 검 위에 엎어져 자살하기 직전인 사울 왕입니다.  그 옆에 선 시종도 같은 방법으로 자살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구약에서는 자살하면 지옥에 간다는 가르침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신약에도 직접적으로 자살을 금한 구절은 없더군요.)



(유명한 다윗 왕과 밧세바의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입니다.  가만 보면 성경은 정말 19금으로 지정해야 하는 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야한 부분이 많습니다.)




나폴레옹은 자타가 공인하는 비종교적 인간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세인트 헬레나에서 구술한 회고록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평생 진정으로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브리엔 사관학교에서 소년 시절을 보낼 때, 학교에서의 미사 시간에 카토나 케사르 같은 고대 로마의 영웅들이 하나님이나 예수를 믿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지옥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 원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훌륭한 위인들이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종교를 갖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옥불에서 고통받아야 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  나는 그때 이후로 종교를 갖지 않았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나폴레옹은 역사서를 많이 읽은 사람으로 유명합니다만, 그의 성향으로 볼 때 성경을 열심히 탐독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나폴레옹은 종교 권력에 대해 다윗과 같은 겸허함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사울의 길을 택했지요.  


프랑스 대혁명은 왕정과 귀족에 대한 혁명이기도 했지만 많은 특권과 부를 누려온 카톨릭 사제 계급에 대한 혁명이기도 했습니다.  대혁명 기간 중 카톨릭은 많은 재산을 잃었고 많은 사제들이 감옥에 쳐박혔습니다.  그런 소동 후에 나폴레옹과 교황 비오 7세(Pius VII) 사이에 이루어진 1801년 정교협약(Concordat)은 세속 권력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던 카톨릭으로서는 간신히 체면을 차릴 정도의 협정이었습니다.   카톨릭이 프랑스의 주요 종교로 공식 선포되기는 했으나 국교로서의 지위는 상실했고, 프랑스 내 사제들의 급여는 프랑스 정부가 지급하게 되었지만 정작 그 많던 프랑스 내 카톨릭 자산은 모두 상실했으며, 바티칸에게도 프랑스의 주교를 해임할 권한은 주어졌으나 정작 주교 임명권은 프랑스 정부, 정확하게는 나폴레옹에게 주어졌습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권세는 멀고 나폴레옹의 총검은 가까왔으니까요.  


이는 분명히 세속 권력이 종교 권력의 영역에 부당하게 침입하는 모양새였습니다.  나폴레옹 같은 세속적인 인간이 카톨릭 사제를 임명하다니요 !  그러나 비오 7세도 분명히 세속 권력의 영역에 발을 딛고 있었습니다.  그는 영적 세계의 수장이도 했지만 동시에 세속 권력을 가진 군주이기도 했습니다.  교황령(Papal States, Stato Pontificio)이라고 해서 교황이 세속 군주로서 직접 통치하는 영토가 꽤 상당했거든요.  물론 이 영토는 나폴레옹의 이탈리아 침공으로 쉽사리 점령당했습니다.  비오 7세의 전임자인 비오 6세는 나폴레옹의 1차 침공 때 로마가 함락되면서 포로로 프랑스에 잡혀가 거기서 죽기까지 했지요.  1801년 정교협약에 의해 이런 영토 중 일부는 다시 바티칸에 반환되었습니다.




(교황이 영적인 세계 뿐만 아니라 지상의 세계에서도 군주로 통치했던 교황령의 지도입니다.  생각보다 꽤 넓습니다.  교황령이 사라진 것은 1861년 가리발디의 정복 전쟁에 의해서였고, 공식적으로 로마까지 함락된 것은 1870년 이탈리아 왕국군이 포격전을 벌이며 쳐들어온 다음이었습니다.  어차피 아무 승산이 없는 전투였는데도 당시 교황 비오 9세의 고집으로 필요 이상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수십 명이 전사했습니다.)  



(교황령이 이렇게 넓은 이유 중 하나는 16세기 초반 이탈리아 중부에서 갑옷을 입고 직접 전투를 벌이며 영토 확장에 나섰던 율리오 2세(Julius II) 덕분입니다.  이 사진은 1965년 미켈란젤로의 일대기를 그린 The Agony and the Ecstasy 이라는 영화에 나오는 중무장한 율리오 2세입니다.  당시 이탈리아 일대는 당연히 모두 카톨릭이었을텐데, 전투 현장에서 갑옷을 입은 교황과 칼을 맞대게 된 적군 병사는 정말 황당했을 것 같습니다.)




나폴레옹과 비오 7세의 사이가 다시 나빠진 것은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직전이었습니다.  영국군의 상륙을 막는다는 핑계 하에 나폴레옹이 교황령 주요 항구인 안코나(Ancona)를 점령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교황령 내에서 나폴레옹의 적국인 영국과 러시아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긴 했습니다.  교황은 편지를 보내 나폴레옹에게 즉각 철수를 요구하며 강력히 항의를 했고, 나폴레옹도 교황이 '교회의 장자'인 프랑스의 등 뒤에 칼을 꽂는다고 노발대발했습니다.  


그 이후로도 나폴레옹은 교황령을 조금씩 잠식해들어가며 자신이 왕으로 있는 이탈리아 왕국령으로 편입시켰고, 이런 강탈행위에 대해 교황은 나폴레옹이 임명한 주교들을 승인하지 않음으로써 소극적 반항으로 대응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교황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돌+아이였습니다.  틸지트 조약으로 러시아 쪽까지 대략 정리한 나폴레옹은 1808년 2월 다시 로마를 점령해버리고 이어서 문제의 안코나를 포함한 굵직한 교황령 몇 개를 또 이탈리아 왕국으로 편입시켜버렸습니다.  나폴레옹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음 해인 1809년에는 아예 로마까지 프랑스령으로 선언해버렸지요.  교황의 세속 영토를 모조리 빼앗아버린 것이지요.  이 정도면 아무리 비오 7세가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고 해도 참기 어려웠습니다.  교황은 나폴레옹과 그의 추종자들에 대해 일괄적인 파문을 선언했습니다.  이는 카톨릭 교회에서 가장 심각한 징벌이었지요.  물론 하나님의 벼락이 당장 나폴레옹 머리 위에 떨어지지는 않았고, 나폴레옹은 당시 나폴리 왕이던 매제 뮈라(Joachim Murat)에게 편지를 휘갈겨 '교황을 가두어버려야 한다'라고 분노를 터뜨렸습니다.  물론 이는 명령이 아니라 그냥 분풀이용 편지였는데 문제는 그 편지를 받은 뮈라는 상상력이 부족한 대신 실행력은 뛰어난 불꽃남자였다는 점이었습니다.  뮈라는 야밤에 병력을 보내 정말 비오 7세를 체포해왔습니다.  




(뮈라의 부하 라데(Radet) 장군에게 체포되는 비오 7세입니다. 라데는 훗날 비오 7세를 체포할 때의 순간에 대해 'Dès ce moment là, ma première communion m'est apparue !' (그 순간 내 첫번째 성찬식 장면이 눈 앞에 아른거리더라 !) 라고 언급했습니다.)




이 소식에 나폴레옹은 또 복장이 터졌습니다.  물론 이번에는 뮈라에 대해서였지요.  "아니 그걸 시킨다고 진짜 하냐 !!"  그러나 생각해보니 뭐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이제 와서 교황에게 사과한다고 좋을 것도 없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는 교황을 바티칸에 돌려보내지 않고 북부 이탈리아의 사보나(Savona)에서 3년 간 가택 연금시켰고, 1812년부터는 교황을 알프스를 넘어 프랑스로 끌고 와 퐁텐블로(Fontainbleau) 성에 연금시켰습니다.  특히 퐁텐블로로 교황을 데려올 때 교황은 열병과 변비 등으로 건강 상태가 극히 안 좋았는데도 나폴레옹이 보낸 의사 한명만 동승시킨 채 야간에만 마차로 강행군을 시켜 교황이 거의 요단강을 건널 뻔 했다고 합니다.  야간에만 이동시킨 것은 물론 아직 신앙심이 강한 편이었던 프랑스 남부 주민들이 교황이 그렇게 험하게 끌려가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습니다.




(이 사람 좋게 생기신 분이 바로 비오 7세이십니다.  그림이 매우 명작으로 보이신다면 눈썰미가 있으신 겁니다.  나폴레옹 전속 화가 다비드가 그린 것이거든요.)




교황의 이런 시련은 1814년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이 패퇴하던 1814년 5월에야 오스트리아군 소속 헝가리 라데츠키 경기병 연대(5th Radetzky Hussars)가 교황을 구출하여 로마까지 호송했습니다.  이때 교황이 감사의 표시로 이 경기병 연대에게 하사한 복잡한 라틴어가 수놓인 군기는 지금은 군사박물관으로 쓰이는 오스트리아 빈의 무기고에 아직도 전시되어있습니다.


결국 여러분이 다 아시는 것처럼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귀양살이를 떠나야 했고, 비오 7세는 영국 정부에게 편지를 써 나폴레옹이 그 섬에서라도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선처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비오 7세는 나폴레옹이 위암으로 죽은 뒤 2년 뒤 사망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보다 먼저 죽었고, 또 죽은 뒤에 혼백으로 사울 앞에 나타났을 때조차도 사울에게 저주를 퍼부은 것(삼상 28:16)과는 꽤 다른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성경에서도 해석에 일부 논란이 있는 사무엘 상 28장에 나오는 '엔돌의 신접한 여인'(the witch of Endor)을 통해 사무엘의 영혼과 사울이 만나는 부분입니다.  과연 죽은 사람의 영혼을 영매를 통해 불러낼 수 있는가가 핵심인데, 특히 사무엘 정도의 선지자는 당연히 천국에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현재 주된 해석은 진짜 사무엘의 영혼이 불려온 것이 아니라 마녀의 거짓말에 의해 사울이 속는 장면이라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Source : The Life of Napoleon Bonaparte by William Milligan Sloane

http://nocr.net/index.php?document_srl=23948&mid=koreasy

https://en.wikipedia.org/wiki/Pope_Pius_VII

https://en.wikipedia.org/wiki/Napoleon_and_the_Catholic_Church

https://www.napoleon.org/en/history-of-the-two-empires/articles/napoleon-and-the-pope-from-the-concordat-to-the-excommunication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캡틴남아메리카 2019.01.07 1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은혜로운 첫 번째. ㅎ
    항상 챙겨 읽고 있습니다.

  2. 카를대공 2019.01.07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릴적 친구손에 이끌려 따라갔던 교회에서 구약 내용을 배울 때 참 불만이 많았더랬습니다.
    아니 뭔 남의 나라 역사를 이렇게 꼼꼼하게 배우지?
    그것도 영 교훈될 것도 없는 내용 같은데......이런 생각이 초등학생 마음에도 자연스레 떠오르더군요.

    그래서 신약 얘기를 할 때도 영 시큰둥 했습니다.

    나중에 나이를 먹고보니 신약에서 예수님 말씀은 비신자인 제가 봐도 좋은 말씀이 무척 많더군요.

  3. 카를대공 2019.01.07 15: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19년도 새해가 밝았는데 늘 그랬던것처럼 나시카님도 건승하시길!

  4. 못내밍 2019.01.07 16: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 너무재밌네용ㅎ.ㅎ

  5. 못내밍 2019.01.07 19: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정말 고맙다뇨 제가더고맙쥬

  6. starlight 2019.01.08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시카님 늦었지만 새해 다복하시고 늘 건강하시고 이루고자하는 모든 소망 성취하시기 바랍니다. 늘 잘보고 있습니다^^

  7. 유애경 2019.01.08 15: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성경에서 자살하면 지옥간다는 구절을 본적이 없는것 같네요!

    전에 지금은 이름이 바뀐 큰○음 교회에 다니시던 분이 우리나라에 북한의 사주를 받은 빨갱이들이 엄청 많이 들어와있고 기독교도 위협을 받고 있다는 말을 심심찮게 하시던데 뭔가 위화감,이질감을 느꼈더랬습니다. 기독교인 이라고 빨갱이란 단어를 못쓸 이유도 없지만 교회에서 그런 설교도 하나 싶어 기분이 좀 그렇던데요...

    항상 잘보고 갑니다.

    • 나삼 2019.01.08 1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한국 기독교 역사는 북괴의 탄압과 박해로 엑소더스를 한 경험이 있다보니 아무래도 좌파 에게 시선이 곱지 않은 경향이 있는것 같습니다

  8. ㅁㅁ 2019.01.08 21: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나폴레옹전쟁사의 신스틸러 뮈라...

  9. reinhardt100 2019.01.08 2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속권력과 종교권력의 관계에 따라서 문명 그 자체의 발전 방향도 달라지고는 했습니다. 지나문명권에서는 세속권력이 제자백가를 중심으로 종교를 상당히 포섭하면서 세속권력이 압도적 우위를 가집니다. 반면 구주의 기독교 및 중동 이슬람교 등의 아브라함 계열 종교는 종교가 한때 세속권력을 압도했습니다. 그 반동이 중상주의, 절대왕권, 계몽주의 같은 것들이죠. 특히 서방 카톨릭 권역은 종교개혁까지 거치면서 발전행정의 기반이 15세기부터 내내 닦여지게 되었고 이게 제대로 터진게 나폴레옹 전쟁기였죠.

    사실 산업혁명이 급속하게 진행된 것도 전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건데 동시대 동아시아권이나 인도, 중앙아시아는 '내전이 있었지 국제전이 없었다.' 이 차이가 19세기 이후 국력의 역학 관계를 결정한 겁니다.

    종교가 세속에 관여하는 것은 사회복지의 사각지대를 보충하는 것 그 이상은 절대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종교법인의 재산은 말 그대로 국고의 예비금적 성격이 있다는 것을 항상 인지해야하고 국체수호에 반하는 반국가적인 성직자에 대해서는 엄히 처벌해야할 겁니다. 우리는 국가인이고 신자이지 성직자는 결코 아니니까요.

    본문에도 언급되었지만 프랑스혁명이 프랑스 카톨릭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습니다. 아시냐 발행준비금이랍시고 교회 토지 전부를 혁명정부가 홀라당 다 가져갔고 게다가 반혁명적인 사제들 때문에 도매금으로 혁명 지지하는 성직자들이 주재하던 성당들조차 박살난 데가 널렸죠. 이런 반카톨릭 분위기를 그나마 제어한게 나폴레옹인데 정교협약으로 카톨릭에 그나마 체제에 순응하면 혁명기처럼 막나가지 않는다고 명확히 해주었죠. 복귀한 부르봉 왕정 역시 나폴레옹의 종교정책을 이어받았습니다. 문제는 제2제정과 제3공화국에서 심각해졌는데 극렬 반카톨릭주의자들이 연속해서 정권 수뇌부를 차지하게 되면서 카톨릭의 세속적 영향력 제거가 마치 국체수호의 한 방편이 되는 상황까지 사태가 심각해집니다. 카톨릭 역시 가만히 당하진 않아서 초등교육을 두고 공화국 정부와 격렬한 대립을 이어갔고 드레퓌스 사건에서도 극렬하게 정부와 대립했습니다.

    왜 정부와 카톨릭이 대립을 멈추었냐? 정부의 주교임명권 포기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성왕 루이 9세 이후, 갈리아교회주의가 국가의 정신적 사류 중 하나였던 프랑스에서 세속권력이 당연히 성직자를 임명할 권한이 있다고 여겼지만 혁명 이후 더 이상 세속권력이 그런 걸 하면 안된다고 인식한 카톨릭과 종교계 통제의 방편을 포기하기 싫었던 정부가 미친듯이 대립할 수밖에 없었는데 1905년 마침내 공화국정부가 주교임명권을 포기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카톨릭 역시 모든 반공화국 활동을 금지하며 프랑스 내 카톨릭 성직자들의 국가에 대한 충성선서를 의무화하는 것으로 화답합니다. 갈리아교회주의를 새로 해석한 거죠.

    대한민국에서도 국체수호의 면이 강했던 불교 및 개신교 계열의 세가 강한 이유도 프랑스와 비슷합니다. 건국 초기 극렬 반공주의 성향이 강해서 가장 국체수호적인 면이 강했던 카톨릭이 1970년대 이후 국체수호에서 상대적으로 멀어지면서 가뜩이나 밀리던 세가 더욱 밀리면서 신자수 3위에서 성장할 동력을 완전히 상실해버렸죠. 프란체스코 교황 예하 방한 이전까지 카톨릭은 계속 현상유지에 급급했죠. 반면 불교나 개신교는 10.27 법란이니 다른 대립이 있었지만 국체수호에 있어서는 제3,4,5공화국 및 이후의 제6공화국 역대 정부에 거의 순응일변도로 나갔습니다. 덕분일지는 몰라도 지금은 양대종교가 사실상 압도하고 있죠.

    좀 말이 많았고 반복하는 겁니다만 국체수호에 있어서만큼은 종교권력이 세속권력에 순종하는게 옳다고 봅니다.

  10. 까까님 2019.01.10 07: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공지능 파파고 번역기가 모든 외부세계의 정보를 번역통역 해주는 세상
    다른 잡번역 어플 쓰면 이단 쩌리
    그러나 사실 파파고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먹고 싸야 살아가는 인간이 컴퓨터 안에 앉아있는 거였던 거죠
    전 여러 종교 여러 단체를 기웃거려봤지만 결국 무교로 살고있죠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걸 원치 않는 사람이 꽤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11. 아리 2019.01.10 19: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독교인인데 사무엘, 사울, 다윗의 이야기를 이런 방향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군요 ㅋㅋ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12. 목탁 2019.02.27 09: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어, 거 참...옛날에 읽었던 어린이용 성경에선 사울을 '사무엘과 야훼를 개무시하고, 다윗을 시기질투하고, 고집불통인 천하의 개♪♪♬'으로 묘사해 놨길래 그게사실인 줄 알았었는데...오늘 나시카님 글을 읽고 나니 실상은 정반대였던 것 같네요.

    그리고 오늘 나폴레옹에 대해 1마디 하자면...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폴레옹 당신이 한 소리잖소? 당신이 까라면 뮈라도 까야지,별 수 있겠어? 그 양반한테도 변명의 여지 정도는 있단 말이다!

  13. MB18NOM 2019.06.28 02: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사적으로 볼 때 종교가 정치까지 하는 세상은 대체로 비이성적인 시기였던거 같습니다. 그럴수밖에 없는게 신의 뜻을 전달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법위에서 정치와 사회를 좌지우지 하다보면 정의와 평등, 이성 따위는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되기마련이지요.

    현재까지도 이슬람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듭니다. 종교 자체는 훌륭하나 언제나 사람이 문제이고 따라서 종교와 정치는 분리되어야 하는데 ... 대한민국에서는 무려 특별시를 누구에게 봉헌하겠다는 분이 대통령하는 일도 있었죠. 결말은 아직도 진행형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