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3세3 쿨름 전투 (3) - 국왕이 보낸 편지 방담의 프랑스군이 테플리츠로 쳐들어오고 있으니 급히 피난하시라는 프란츠 1세의 편지를 받은 사람은 바로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이었습니다. 8월 27일, 다들 드레스덴에서 후퇴하자는데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28일에도 한번 더 싸우자고 주장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은 정작 후퇴가 결정되자 누구보다도 재빨리 말을 달려 안전한 후방인 테플리츠에 먼저 당도했었던 것입니다. 27일 밤까지도 드레스덴에 있던 양반이 28일 밤에는 남쪽으로 55km 떨어진 테플리츠에 와있었으니, 아마 엄청난 속도로 말을 달렸던 것 같습니다. (1837년 경의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모습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개혁 군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결국 그건 똑똑한 왕비 루이자 덕분이었다는 것이 드러났고, 사랑했던 왕비 루이자가 .. 2024. 5. 20. 달콤씁쓸한 결말 - 설탕과의 전쟁 (마지막편) 하지만 본격 산당국(産糖國)의 꿈이 현실화되기 전에 전쟁의 물결이 닥쳤습니다. 아카르트의 든든한 후원자이던 빌헬름 3세가 알고보니 멍청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입만 살았던 강경파의 주장대로 겁도 없이 나폴레옹에게 먼저 싸움을 걸었고, 나폴레옹은 '내가 바로 나폴레옹이다'라는 것을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빌헬름 3세에게 혹독하게 교육시켜 주었습니다. 이 전쟁은 아카르트의 농장과 정제소까지 집어 삼켰습니다. 1806년 밀물처럼 쳐들어온 프랑스군은 아카르트의 농장과 공장을 불태워버렸던 것입니다. 아카르트는 모든 것을 잃고 실의에 잠겼습니다. 사탕무 정제소가 사실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프로이센은 온 나라가 탈탈 털렸고, 나폴레옹에게 알짜배기만 골라 영토를 절반이나 빼앗기고 덤으로 막대한 전쟁 배상금까지 물어내.. 2018. 5. 21. 바그람을 향하여 - 형과 동생 아스페른-에슬링 전투는 분명히 나폴레옹 같은 괴물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전투가 끝난 다음날부터 무려 36시간 동안 아무런 군사 행동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전장에 나선 그에게는 어지간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패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투 다음날인 5월 23일 아침부터 나폴레옹은 이미 이 처참한 패배를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된 선전 도구인 육군 회보(Le Bulletin de la Grande Armée)에 실릴 전투 결과에 대해, '공격해 온 오스트리아군은 원래 위치로 되돌아 가야 했고, 프랑스군이 전장의 지배자로 남았다'라고 뻔뻔스럽게 구술했습니다. 100%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진실과는 거리가 꽤 먼 선언문이었지요. 휘하 장군들은 아예 비.. 2017. 5. 14.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