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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슬라우3

휴전 (3) - 조선공사삼일(朝鮮公事三日)? 러시아 공사삼일! 이 때 즈음 해서 러시아와 프로이센은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해 있었습니다. 바클레이로 대변되는 러시아군은 오데르 강을 넘어 폴란드로 후퇴하고 싶어했으나 프로이센놈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지나 다름 없는 슈바이트니츠로 끌려간다는 불만이 있었고, 그나이제나우로 대변되는 프로이센군은 온갖 핑계를 대고 폴란드로 후퇴하려는 러시아군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딱 하나, 나폴레옹의 휴전 요구에 대해서 러시아나 프로이센이나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일고의 가치가 없다는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것이었지요. 애초에 연합군에게 종전이 아닌 임시 휴전은 별 의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2연패를 당한 지금, 러시아와 프로이센이 만족할 조건으로 나폴레옹이 종전 협정을 맺을 가능성은 전혀.. 2023. 7. 17.
강들과 요새들 - 러시아군의 고민 1813년 1월, 그랑다르메는 요크가 이끄는 프로이센군의 배신으로 인해 속절없는 후퇴를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지장이었으므로 후방의 방어도 공고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제1차 방어선은 당연히 폴란드 한 가운데를 흐르는 비스와 강이었습니다. 비스와 강에는 토룬(Torun), 모들린(Modlin) 등 바르샤바부터 단치히까지 일련의 견고한 요새들이 있었고, 나폴레옹은 이런 요새들에 수비대를 배치해두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원정군이 워낙 크게 궤멸된 지라, 긴 비스와 강변을 따라 드문드문 박힌 요새들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고, 뮈라는 속절없이 비스와 방어선을 버리고 일단 포젠(Posen, 폴란드어로는 포즈나니 Poznań)으로 후퇴했습니다. (오데르 강변이나 비스와 강변의 많은 .. 2022. 4. 18.
공간이 정신을 지배한다 - 브레슬라우로 떠밀려가다 1812년 12월 30일 요크 대공이 단독으로 러시아와 강화 체결을 한 뒤, 아직 어느 쪽 손을 잡아야 할 지 갈팡질팡하고 있던 프로이센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1월 6일, 프랑스군이 버리고 떠난 동프로이센의 수도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에 러시아군이 무혈입성했습니다. 여기는 분명히 프로이센 영토였는데, 뮈라가 이끄는 그랑다르메의 패잔병들은 동맹군으로서 쾨니히스베르크에 들어왔다고 치고, 러시아는 분명히 공식적으로 프로이센과 교전 상태에 있는 적국이었습니다. 러시아군은 이미 그 11일 전인 12월 27일, 동프로이센의 메멜(Memel, 리투아니아어로 클레이페다 Klaipėda)를 점령했는데, 이 곳에는 소수의 프로이센 수비대가 배치되어 있었고 이들은 러시아군에게 모조리 포로 신.. 2022. 4.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