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브나2

휴전 (8) - 대(大)외교관 메테르니히 원래 러시아와 프로이센이 1813년 춘계 작전을 벌이면서 오스트리아의 참전을 애걸복걸할 때, 오스트리아는 짐짓 점잖은 척 하면서 뒷짐을 지고 있으면서 기묘한 요구를 했었습니다. 나폴레옹과 평화 협상을 할 때는 반드시 오스트리아의 중재를 통해서만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와 프로이센이 칼리쉬 조약을 맺고 반(反)나폴레옹 전쟁을 시작할 때 양국은 절대 개별적으로 나폴레옹과 협상을 벌이지 않는다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라는 제3국을 중재국으로 두는 것은 러시아-프로이센 연합군으로서도 나쁜 일은 아니었으므로 그에 동의한 바 있었습니다. 이건 당대의 외교계의 거물이었던 메테르니히의 절묘한 한수였습니다. 그가 그런 독특한 요구를 관철시킨 것은 그가 프랑스 못지 않게 러시아를 견제해야 한다고 정.. 2023. 8. 21.
바우첸을 향하여 (8) - 등 떠밀려 결정된 싸움터 엘베 강변에서 연합군이 후퇴한 경위를 대충 들어보면 결국 비트겐슈타인이 지나치게 소극적이어서 후퇴했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은 다소 달랐습니다. 그의 생각에 따르면 프랑스군이 엘베 강을 비텐베르크와 벨게른 등 훨씬 남쪽에서 분산 도강할 것이니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프로이센군과 러시아군을 다시 합세시켜, 나폴레옹에게 일격을 먹이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즉 아군은 집결되고 적군은 분산된 상태로 싸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디서 그러는 것이 좋을까요? 연합군의 후퇴 동선을 보면 프로이센군의 경로는 약간 남동쪽으로, 러시아군의 경로는 약간 북동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이들이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다보면 결국 이들은 만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대충 그 위치는 바우첸(Bautzen)이었습니.. 2023.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