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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몽5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9) - 애들 말고 어른들을 보내게 온라인 쇼츠 컨텐츠 중에 나름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분야가 전갈, 지네, 거미 등의 절지류 및 곤충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내용입니다.  곤충판 검투사 대결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잔인한 쇼츠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사마귀입니다.  사실 사마귀는 다리도 가늘어 힘이 특별히 센 것도 아니고 독도 없어서 대단한 검투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마귀가 자주 승리하는 이유는 바로 갈고리 같은 앞발이 아니라 눈 덕분입니다.  타란튤라나 전갈처럼 무시무시한 절지류들은 대부분 눈이 좋지 않아 바로 몇 cm 앞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사마귀는 언제나 먼저 상대의 존재와 모양, 크기 등을 파악한 뒤 언제 어디를 공격할지 계산을 하고 움직입니다.  사마귀의 싸움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보의 중요성.. 2025. 3. 10.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6) -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 마르몽의 기대와는 달리, 거기에 쓰인 나폴레옹의 답변은 매우 간단했습니다.  "자네의 판단은 중요하지 않네.  적군의 동향에 대한 정보나 보내게."  나름 자신의 나폴레옹의 심복이라고 여기고 있던 마르몽은 나폴레옹의 이런 홀대에 격노했고, 그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네의 명령에 그대로 복종하여 아일렌부르크를 떠나 라이프치히 북동쪽의 타우차(Taucha)로 이동했습니다.  이렇게 이동을 하더라도, 멀더 강변의 아일렌부르크처럼 다리가 있는 곳에는 1개 대대 정도의 병력을 수비대로 남겨두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런데, 심통이 난 마르몽은 '뭐 따로 명시적인 명령은 없었으니까'라는 식으로 정말 단 한 명의 병사도 남겨두지 않고 아일렌부르크를 떠나 남쪽 타우차로 향했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그 일대까지.. 2025. 2. 17.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5) - 원수들의 불화 먼저 블뤼허의 관점에서 전황을 살펴 보겠습니다.  블뤼허 입장에서는 가장 바람직한 것은 자신의 슐레지엔 방면군이 즉각 남쪽의 바트 뒤벤(Bad Düben)으로 진격하여 네의 병력을 밀어내고 10월 6일까지 라이프치히에 도착한 뒤, 거기서 하루 이틀 뒤에 뒤따라 올 베르나도트의 북부 방면군과 합류하는 것이었습니다.  혹시 나폴레옹이 대군을 이끌고 달려와 블뤼허와 베르나도트가 합류하기 전에 블뤼허를 박살낼 위험성도 있었지만, 드레스덴 인근의 연합군이 10월 3일에 보내온 보고서에 따르면 나폴레옹은 분명히 드레스덴에 있었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은 낮다고 본 것입니다.  원래는 베르나도트와의 합류 지점은 라이프치히가 아니라 바트 뒤벤에서 합류하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소극적인 베르나도트는 미적거릴 것이 뻔하다고 생.. 2025. 2. 10.
나폴레옹 시대의 병참부 이야기 (하편) 웰링턴은 포르투갈에 상륙하자마자 곧 이베리아 반도의 지형적, 그리고 사회적 특수성이 영국은 물론 프랑스나 독일 등 기타 유럽 지역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큰 특징으로, 제대로 된 길이 없었습니다 ! 이는 스페인의 침공 위협 때문에라도 스페인과의 교통로를 적극 개발하지 않았던 포르투갈의 특수성에도 기인했습니다만, 기본적으로는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나 모두 산업과 통상의 발달이 부진했다는 점에 원인이 있었습니다. 지역간에 거래를 할 상품이 없다보니 마차가 다닐 일도 없고, 마차가 다닐 일이 없으니 넓직한 길이 필요하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스페인은 지역 감정이 꽤 심한 나라여서 지방 간의 인적 왕래도 그다지 많지 않다보니, 더더욱 내륙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열악한 교.. 2019. 2. 18.
바그람 전투 (제18편) - 통쾌하지 않은 승리 1809년 7월 6일 밤 바그람 전투의 총성이 잦아든 뒤 나폴레옹은 다른 전투에서처럼 '퇴각하는 적군을 즉각 추격 섬멸하라'고 부하들을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냉혈한인 그도 휘하 병사들이 거의 잠도 못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상태로 무려 40시간에 걸쳐 힘겨운 싸움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추격을 명하지 않은 이유는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은 비록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났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전투 이후 프랑스군의 라콩브(Lacombe)라는 장교가 그의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전투 결과는 기대했던 만큼의 성공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적을 물리치기는 했으나 그들을 패주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사실이었습.. 2017.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