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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레스덴16

뤼첸 전투 (11) - 이긴 거야, 진 거야? 나폴레옹 시대에는 아직 세균의 존재 자체를 몰랐고 따라서 소독이라는 개념도 없었으며 항생제 따위는 물론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전쟁터에 나간 군인은 언제나 전사보다는 병사의 가능성이 훨씬 높았고, 그냥 찰과상에 불과한 가벼운 부상도 재수가 없으면 치명상으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연합군 전체의 브레인이라고 할 수 있던 샤른호스트가 바로 그런 희생자였습니다. 그는 이 날 전투에서 유탄에 발에 맞아 부상을 입었는데,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부상일 뿐 대단한 것은 아니라고 다들 생각했지만, 거의 2달 뒤인 6월 말, 협상을 위해 오스트리아를 방문했을 때 결국 그 부상이 악화되어 숨을 거둡니다. 그러나 최소한 전투 당일 밤이나 그 후 며칠 동안에는 기본적인 사무를 보는 것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습니다. .. 2022. 11. 14.
끊어진 다리, 흔들리는 동맹 - 아우구스투스 다리의 의미 이미 베를린이 비트겐슈타인 휘하의 러시아군 손에 들어가고 드레스덴도 곧 빈칭게로더 손에 들어갈 것이 명약관화했던 3월 중순 즈음, 외젠에게는 6만이 채 안되는 병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다부 지휘 하에 드레스덴에 있던 7천5백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군단들 중에서도 언제나 병력 3만 이상의 특별히 강력한 군단만을 거느리던 다부가 1개 사단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병력만을 이끌고 있던 것은 당시 약화된 그랑다르메의 신세를 보여주는 일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나폴레옹은 다부는 특별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레이니에(Reynier) 장군이 러시아군에 쫓겨 드레스덴에서 철수하는 것은 뭐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에크뮐 대공(prince d'Eckmühl, 즉 다부)이 그런 모욕.. 2022. 6. 20.
드레스덴(Dresden)을 향하여 - 지킬 것과 버릴 것 나폴레옹은 자신이 새로운 군대, 즉 마인 방면군(Armée du Main)을 연성하는 동안 외젠이 기존 그랑다르메의 잔존부대를 지휘하여 어떻게 해서든 오데르 강, 적어도 엘베 강에서 러시아군의 침공을 막아내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이건 외젠이 아니라 외젠의 아버지, 즉 나폴레옹 본인이 와도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고 나폴레옹도 그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3월 2일에 외젠에게 편지를 보내어 '곧 내가 30만 대군을 몰고 갈테니 그때까지만 잘 버텨라'라고 위문 편지를 보내면서도, 같은 날 동생 제롬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외젠은 엘베 강을 포기하고 물러서면 베저(Weser) 강과 카셀(Kassel)에서 적을 막아낼 것'이라고 썼습니다. 같은 편지에서, 그는 러시아군은 틀림없이 오데르 강과 엘베 강을 건너.. 2022. 5. 30.
새벽의 불청객 - 2주간의 로드 무비 12월 11일 새벽, 꾸벅꾸벌 졸며 썰매를 달리던 나폴레옹은 콜랭쿠르에게 마치 우연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현재 지나고 있는 소도시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워비치(Łowicz)라는 대답을 듣고는, 마치 정말 우연히 생각났다는 듯이 나폴레옹은 '여기서 머지 않은 곳에 마리아 발레프스카의 집이 있다'라며 잠깐 거기에 들러 옛 연인에게 안부인사(?)나 전하면 어떨까라며 콜랭쿠르의 눈치를 살폈습니다. 아마 나폴레옹은 바르샤바를 떠난 뒤 워비치까지의 거리와 소요 시간을 그 비상한 머리로 암산하면서 딱 그 시간대에 콜랭쿠르에게 '여기가 어디인가?'라고 물으려고 벼르고 있었을 것입니다. 나폴레옹도 남자였고, 나폴레옹은 마리아 발레프스카를 한때 정말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워비치(Łowicz)는 나폴레옹이 드레스덴을 거.. 2022.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