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나우 강2

바그람(Wagram) 전투 (1편) - 양측의 준비 피아베 전투에서 요한 대공의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한 외젠의 이탈리아 왕국군은 막도날드 장군의 실질적인 지휘 하에 신속하게 북상하여 오스트리아 침공에 나섰습니다. 이들의 행선지는 빈, 정확하게는 나폴레옹의 다시 한번 도나우 도강을 계획하고 있던 로바우 섬이었습니다. 이들을 가로 막는 장애물은 나름 많았습니다. 곳곳의 고개길과 도시들을 지키는 요새들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병력이 이미 카알 대공과 요한 대공, 페르디난트 대공의 군대에 차출된 마당에 그런 요새들을 지키는 병력은 충분치 않았습니다. 가령 5월 17일 타르비스(Tarvis) 전투에서 말보르게토(Malborghetto) 요새는 방어하기 아주 좋은 고지에 위치한 튼튼한 요새였으나, 6천의 오스트리아군으로 2만의 이탈리아군을 당해낼 수는 없었습니.. 2017. 6. 6.
아스페른-에슬링(Aspern-Essling) 1편 - 도나우 강의 푸른 물결 (ㄹ혜와 가족 여행 때문에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제5차 대불동맹전쟁 다시 시작됩니다. 짧더라도 매주 연재하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에서는 1809년 5월 13일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Wien)을 다시 정복하는 모습과, 5월 17일 카알 대공이 린츠(Linz)에서 반격을 꾀했으나 처참하게 실패하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운명의 아스페른-에슬링(Aspern-Essling) 전장을 향해 달려갑니다. 1809년 5월, 모든 상황은 나폴레옹의 최종 승리를 낙관하게 했습니다. 적국의 수도도 점령했고, 군의 보급과 사기도 매우 양호했으며, 병력도 프랑스군이 더 우세했습니다.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 전투를 앞둔 상황도 지금처럼 유리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엔 물러난 오스트리아군이 러시아군과 .. 2017. 2.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