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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선이동3

드레스덴 전투 에필로그 - 나폴레옹답지 않았던 싸움 드레스덴 전투는 나폴레옹이 여태까지 거두었던 승리와는 다소 결이 다른 전투였습니다.  대표적인 부분이, 나폴레옹의 병력이 적군보다 훨씬 적었다는 점이었습니다.  흔히 알려진 바와는 달리, 나폴레옹은 적은 수로 다수의 적을 무찌르는 지휘관이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명성이 헛된 것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그 반대로 나폴레옹은 그보다 훨씬 더 뛰어난 지휘관이라는 소리입니다.  나폴레옹은 전체 병력수가 적보다 더 적더라도, 언제나 어떻게든 전투 당일 현장에서는 적보다 더 많은 병력을 끌어 모았습니다.  당장 눈 앞의 적이 더 많을 경우엔 싸우지 않고 움직였고, 언제나 적보다 더 빨리 움직여 병력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대로, 20만에 달하는 적군에 대해 첫날은 고작 7만, 둘쨋날에도 12만 정도의 병력.. 2024. 4. 29.
드레스덴을 향하여 (5) - 드레스덴의 삼중 방어 이 무렵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가 이미 연합군 측에 붙었다는 것을 집요하게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보고 들으려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매우 좋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오스트리아의 참전이 나폴레옹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었습니다. 8월 16일에는 보헤미아에 심어둔 스파이로부터 러시아군이 보헤미아로 이미 들어왔다는 소식이 날아왔지만, 나폴레옹은 이런 소식조차 좀처럼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전이 허용되는 날짜인 8월 17일이 되자, 나폴레옹은 즉각 럼부르크(Rumburg, 체코어로 Rumburk)에 근위대 1개 기병사단과 1개 보병사단을, 그리고 폴란드 병사들로 구성된 제8군단과 제4기병군단을 지타우(Zittau)로 투입하여 남쪽의 보헤미아 국경 안.. 2024. 1. 8.
새로운 전쟁의 준비 (7) - 4만의 사나이 여태까지 보신 연합군 사정 중에서 핵심을 고른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를 향해 침공을 개시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연합국 모두의 의견이 일치 2) 3개군을 편성하되, 예상되는 나폴레옹의 침공 방향에 따라 그 중 보헤미아 방면군에 주력을 집중 3) 연합국 누구도 단독으로 평화 협정을 맺지 못하도록 3개 방면군 각각을 여러 국가의 혼성 부대로 편성 4) 군복과 장비에는 부족함이 많았지만 야전군 병력은 51만으로 충분했으며, 군량은 비교적 넉넉한 상황 이와 대비하여, 나폴레옹의 준비 상황은 어땠을까요? 먼저, 나폴레옹이 8월 중순까지 끌어모을 수 있었던 병력은 약 44만이었습니다. 여기에는 37만2천의 보병과 3만의 포병 및 공병, 그리고 그토록 애타게 원했던 기병대가 .. 2023. 11.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