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3.14 21:51

최근인 3월 초, 미국 연방법원에서 '가상화폐는 화폐가 아니라 상품(commodity)'이라는 판결을 내렸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https://www.reuters.com/article/us-usa-cftc-bitcoin/virtual-currencies-are-commodities-u-s-judge-rules-idUSKCN1GI32C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80308010004104


보통 상품이라고 번역되는 commodity라는 단어는 곡물, 석유, 구리, 금 등과 같은 원자재 상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판결은 미국 상품 선물 거래 위원회(Commodity Futures Trading Commission, CFTC)가 어떤 개인 및 그의 회사를 사기 혐의로 고소하면서 벌어졌습니다.  흔히 있는 일입니다만, 가상화폐 투자 전문가라고 자처하는 개인이 회사를 세우고 투자자들에게 유료로 투자 조언을 제공해주기로 했는데, 돈만 받고는 갑자기 회사 웹사이트를 닫아버렸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걸 왜 CFTC가 개입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 대해 연방 법원은 가상화폐는 법정 화폐가 아니라 금이나 은 같은 귀금속 정도의 물건이라고 판단하여, CFTC가 개입하는 것이 맞다고 판결을 내린 것이지요.




돈과 상품은 엄연히 다릅니다.  가장 대표적인 문제가 세금입니다.  가령 외국에서 달러화를 가지고 입국할 때 그것도 수입품이라고 관세를 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금과 은 같은 상품에 대해서는 관세 뿐만 아니라 부가가치세를 냅니다.  가상화폐의 장점 중 하나가 대형 은행에 수수료를 내지 않고도 (이론상) 국제 송금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여기에 관세와 부가세가 끼어들면 이야기가 무척 암울해집니다.  


하지만 같은 금이라도, 금괴 형태로 된 것은 상품이지만 정식 금화로 주조된 것은 분명 화폐입니다.  금화에 대해서도 관세와 부가가치세를 내나요 ?


이 기사를 보니, 문득 전에 나폴레옹 당시 영국 해군 소설인 Aubrey-Maturin 시리즈 중에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 생각나서 짧게 발췌 번역해봤습니다.





The Commodore by Patrick O'Brian (배경 : 1812년 스페인 해안 인근의 비무장 영국 소형 선박 링글 Ringle 호) -------


(아일랜드 출신의 군의관인 스티븐 머투어린은 영국 해군성 정보부을 위해 일하는 비밀 스파이이기도 합니다.  그는 프랑스를 위해 일하는 영국 정부 내의 간첩망을 소탕하는데 큰 기여를 하지만, 그로 인해 고위 귀족인 정적의 박해를 받습니다.  그 결과로 자신과 식솔들이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그는 재빨리 자신의 전재산인 엄청난 양의 금화 궤짝들과 어린 딸, 그리고 식솔인 클라리스 옥스 부인과 선원 파딘을 모두 데리고 야반도주를 합니다.  그는 스페인으로 탈출하는데, 이때 친구 잭 오브리 함장이 마련해준 작은 클리퍼(clipper) 선인 링글 호를 타고 프랑스 사략선의 추격을 뿌리치는 모험도 겪으며 천신만고 끝에 스페인 코루냐 항구에 도착합니다.  : 역주)


스티븐이 이물에 서서 붐비는 항구 도시를 보며 미소짓고 있을 때, 경험 많은 선원인 모울드가 아무일 없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그의 옆으로 다가와 입술 한쪽 구석만 써서 나직히 말했다. 


"저와 제 동료들은 그로인(Groyne, 코루냐를 영국인들이 부르는 이름) 항구를 (자신들의 출신 항구인) 셀머스톤처럼 잘 압니다.  우리가 브랜디를 밀수하러 오는 곳이 바로 여기거든요.  만약에 선생님께서, 음... 우리 식대로 말해서 신중하게 화물을 내리고 싶으시다면 말입니다, 저희가 아주 정직한 패거리를 알아요.  걔들이 정직하지 않다면 이미 오래 전에 목이 졸렸을 거거든요.  확실합니다."


"고맙네, 모울드, 이렇게 친절한 제안을 해주다니 정말 고맙군.  하지만 이번에는 말일세, 이번만 말이야, 화물을 아주 규정대로 내리고자 하네.  이 항구 사령관과 그 수하들에게도 그렇게 말할 생각이라네.  어쨌거나 자네와 자네 동료들의 친절에는 정말 감사하네."


몇 시간 뒤, 스티븐은 정말 완벽하게 입을 다문 소년 함장 리드와 함께 선실에 앉아 두명의 고위 항구 관리자들을 만나고 있었다.  (이 작은 링글 호의 함장인 리드는 10대 후반의 사관후보생(midshipman)인데, 스페인어는 전혀 못 합니다.  그에 비해 스티븐은 스페인어, 카탈루냐어, 프랑스어 등 여러 언어에 능통합니다.  : 역주)



"최근 여러분이 보신 영국 해군 전함인 벨로나 호에 딸린 부속 선박(tender)인 이 배에 실린 전쟁 물자는 아시다시피 판매용 상품(merchanside)이 아닙니다.  그 외에는 저 개인 재산인 귀중품이 좀 있을 뿐입니다.  저는 그 귀중품을 이 도시에 있는 '성령과 통상 은행'(the Bank of the Holy Ghost and of Commerce)에 예치할 생각입니다.  그 국장인 돈 호세 루이스를 제가 잘 알거든요.  사실 제 귀중품은 애초에 바로 그 친구가 제게 보내준 것입니다.  제 귀중품은 금화(minted gold)로서, 영국 기니(guinea) 금화로 주조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에 따라 관세에서 면제됩니다."


"금액이 큰 가요 ?"


"기니 금화의 개수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무게는 제가 알기로는 5에서 6톤(ton) 사이입니다.  실은 그 이유 때문에 이 배를 부두에 바로 접안하는 자리에 배정해주십사 정중히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그리고 만약 가능하다면, 그 궤짝들을 옮길 수 있도록 믿을 만하고 건장한 사내 한 20명 정도를 붙여주시기 바랍니다.  여기 (두 자루의 두둑한 작은 캔버스 천 가방을 향해 손짓을 하며) 여러분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는대로 나누시도록 사례금조로 금화 일부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럼 모든 것에 동의하시는 것으로 봐도 될까요, 신사 여러분 ?  만약 그렇다면 저는 빨리 상륙해서 돈 호세에게 금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주지사께 문안 인사도 드리고자 합니다."


"아, 선생님"  두 관료는 외쳤다.  "주지사께서는 지금쯤 바야돌리드로 가는 길 중간쯤에 계실 겁니다.  섭섭해하시겠네요."


"하지만 돈 파트리시오 피츠제랄드 이 사베드라 대령은 아직 시내에 있겠지요 ?"


"아 물론입니다, 그럼요.  돈 파트리시오는 그의 부하들과 함께 시내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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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5~6톤의 금화라니, 정말 금괴왕이 따로 없네요.  저렇게 돈도 많고 힘있는 친구도 많으니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나폴레옹 시대인 17~18세기에는 지폐(bank note)도 많이 쓰였습니다만 금화와 은화도 당연히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금괴를 수입할 때는 관세를 물게 되어있지만, 같은 금이라도 금화로 주조된 경우에는 상품이 아니라 화폐로 인정이 되어 관세가 면제되었던 모양입니다.  현대는 어떨까요 ?


미국 관세청 홈페이지를 보니 금으로 된 목걸이나 금반지 등의 장신구류와는 달리, 금화 뿐만 아니라 금으로 된 메달, 골드바 같은 지금(bullion)의 경우 관세를 물리지 않습니다.  그래도 신고를 해야 한다고 합니다.  특히 금화는 화폐로 취급되므로 해당 조폐국이 아닌 곳에서 모조품으로 만들어진 금화는 진짜 금화와 같은 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일종의 위조화폐라는 이유로 아예 수입이 금지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좀더 까다롭습니다.  금화가 아닌 골드바나 골드 메달 같은 경우 3%의 관세를 내야 할 뿐 아니라, 10%의 부가가치세를 내야 합니다.  생각보다는 이야기가 복잡해서, 골드바를 수입하는 경우도 스위스 등 FTA 협약이 맺어져 있는 나라에서 수입되는 금은 관세가 면세되고, 또 그런 귀금속류를 수입하도록 관련 기관에서 추천장을 받은 수입업체는 부가세도 나중에 환급받을 수 있답니다.  


골드바는 누가 봐도 그냥 상품(commodity)이니 관세와 부가세 대상이 된다고 쳐도, 금화는 어떨까요 ?  화폐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취지 때문에 어느 국가든 국가에서 정식으로 주조한 금화인 경우 관세 0%를 부과한답니다.  다만 묘한 조항이 붙는데, 결제 수단이 아니라 소장용 또는 투자용 등의 목적으로 포장된 금화는 화폐가 아니라 상품으로 간주하여 부가세를 매긴다고 합니다.  실제로 아메리칸 이글이나 남아프리카 크루거 금화를 부동산이나 주식, 자동차 사는데 결제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니, 결국  관세는 안 내도 되는데, 대신 부가세는 내는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가상화폐가 금괴와 같은 상품으로 취급된다고 해서 꼭 관세와 부가세를 내라는 법은 없는 셈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규정에 따라 최악의 경우 가상화폐에 대해서도 부가가치세는 물론 관세까지 내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가령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가상화폐 중 상당수는 중국 채굴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던데, 중국과 우리나라는 FTA 조약을 맺은 나라가 아니쟎아요 ?  또 금괴와는 달리 가상화폐는 해외에서 수입하는 것이 국익에 꼭 유리하다고만 볼 수는 없으니, 굳이 부가가치세를 면세해줄 이유도 없습니다.  


가상화폐에 대해서는 아직 법규정이 전혀 없어서, 관세나 부가세 및 양도 차익에 대해 세금을 어떻게 매기게 될지 정해진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결국 관건은 가상화폐가 실제 상거래에서 결제수단으로 사용된다면 관세와 부가세 등은 면제받을텐데, 그게 아니라 그냥 소장용, 투자용으로만 축적될 뿐 실제로는 안 쓰인다고 하면 어쩌면 과세 대상이 될 수도 있나 봅니다.  아마 미국 등지에서 먼저 뭔가 정해지면 우리나라도 그에 준해서 규정이 마련되지 않을까 합니다.  제 개인적인 예측으로는 세관을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통신망을 타고 이동할 뿐만 아니라, 대체 이 비트코인이 중국 채굴장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국내 데이터센터에서 만들어진 것인지 기술적으로 구별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과연 관세를 물릴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긴 합니다.  부가세의 경우도 모호합니다.  금화 같은 경우도 개인끼리 사고 팔 때는 부가세를 내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은행이나 인터넷 쇼핑몰 등의 사업자가 개인들에게 판매할 때는 부가세를 매깁니다.  가상화폐는 어떻게 될지 진짜 모르겠네요.  




사족 : 저 위 소설에서 영국인인 스티븐이 스페인 관료들에게 금화 무게로 톤(ton)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지요 ?  1톤은 1000kg이고, kg은 미터법입니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나온지 얼마 안 되지도 않은 미터법을, 당시 프랑스와 적국이던 영국 및 스페인 사람들이 사용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혹시 작가인 패트릭 오브라이언이 실수를 한 것일까요 ?  


아닙니다.  원래 톤(ton)은 툰(tun)이라는 큰 술통에서 파생된 무게 단위로서, 미터법과는 무관하게 예전부터 사용되던 것입니다.  원래의 어원은 참치를 뜻하는 그리스어 thunnos에서 나왔다고 하네요.  (옛날 참치는 정말 컸나 보군요 !)  현대 미터법으로 하면 1016kg = 영국식 1 ton이라네요.  미터법에서 나온 톤, 즉 metric ton은 정확하게 스펠링하면 프랑스식으로 tonne이라고 써야 한답니다.  즉 1000kg = 1 tonne인 것이지요.  저 위 소설에서 이야기된 무게 단위 톤은 tonne이 아니라 ton이라고 스펠링 되어 있습니다.





Source : https://help.cbp.gov/app/answers/detail/a_id/322/~/importing-gold-coins%2C-medals%2C-and-bullion
http://ecustoms.tistory.com/5119  (대한민국 관세청 블로그)
http://www.nts.go.kr/call/vat/2015_04/htm/13e210.htm 
http://www.nts.go.kr/call/vat/2014_02/htm/13s000.htm
https://en.wikipedia.org/wiki/Ton

https://en.wikipedia.org/wiki/Tun_(unit)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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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unit_inv 2018.03.15 09: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직 법규가 없다는것도 있지만 가상화폐에는 국경이 없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가상화폐 전송때는 지갑 주소만 필요할뿐 그 주소의 실제 주인이 누구고 어느나라 사람인지는 필요하지 않고 알수도 없지요.

  2. 2018.03.15 19: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nasica 2018.03.15 19: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재미있게 읽어주셨다니 정말 고맙습니다. 다만 저는 다른 분께 금융 관련 책 권고안을 드릴 정도로 독서량이 많다거나 전문성이 있지는 않습니다.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3. ㄷㄷㄷ 2018.03.15 21: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몇년만에 나시카님 블로그를 찾아뵙습니다. 여전히 좋은 교양글을 많이 써주셔서 즐겁게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세요!

  4. 지나가던 2018.03.16 0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태 톤을 쓸 때 ton을 썼는데 정식은 많이 다르네요. 사람들한테는 ton이 많이 익숙할텐데요

  5. ㅋㅋ 2018.11.04 0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용 중에 바로 잡습니다.관세법령 및 협정에 따른 관세율표에 아직 투자용 주화 또는 주화세트 및 화페에 대한 부과조항이나 품목은 모두 없습니다. 소장용에 한하여 관세율표 제 9704호에서 특게되어 있으며, 그외의 법화 등은 제 7118호에 특게되어 말씀하신대로 0%입니다. 소장품 범위는 제 97류 관련 주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으므로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2016.10.09 18:40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직전이던 1805년 11월, 린츠(Linz)로부터 빈(Wien)을 향해 전진하던 란의 제5 군단은 (전투 현장에서는 언제나 그랬습니다만) 심각한 보급 부족으로 큰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진흙투성이 길로 강행군을 하는데다 추운 늦가을에 노숙을 하는 것도 고달픈데, 먹을 것까지 부족하니 장교들이나 병사들이나 모두 지치고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지요.  그때 란의 개인적인 형편은 더욱 안 좋았습니다.  아팠거든요.  란은 아픈 상태에서도 부하들이 겪고 있던 보급 부족에 대해 신경을 썼습니다.  그래서 내린 명령이 이런 것이었지요.


"어떤 병사 또는 부대라도, 약탈, 사사로운 싸움 및 위협을 하다가 적발되거나 장교를 구타할 경우 즉각 총살될 것이다.  집행 권한은 사단장이 행사한다."


이에 따라 실제로 일부 병사는 총살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약간 혼란에 빠지실 수 있겠습니다.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은 원래 보급이란 것이 없고 그저 현지 약탈에 의존해서 먹고 사는 것 아니었던가요 ?  그런데 느닷없이 약탈하면 총살을 하겠다니요 ?


여기서 우리는 사사로운 약탈과 징발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약탈은 영어로 pillage, 불어로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pillage(피야쥬)라고 합니다.  징발은 영어로 requisition, 불어로도 역시 réquisition(레퀴지시옹)이라고 하지요.  짐작하시다시피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전해진 말입니다.  약탈이나 징발이나 군대가 주민들의 사유 재산을 강제로 가져가는 행위라서 헷갈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엄연히 다릅니다.  약탈은 주민들에 대한 아무 보상 없이 이루어지는 범죄 행위입니다.  그에 비해서 징발은 군대가 필요에 의해 지휘관의 결정에 따라 수행하는 공식 행위이고, 그에 대해 즉각적인, 혹은 향후에 보상이 이루어집니다.



(자신들과 군마들이 먹을 것을 구하고 있는 프랑스 병사들입니다.  나폴레옹 자신도 '감자가 밭에 없는 계절에 작전을 펼치는 것은 병사들에게 매우 힘든 일이다' 라고 할 만큼 프랑스군의 현지 조달 의존도는 높았습니다.)



보상이라고요 ?  설마 주민들에게서 빵이나 밀가루, 와인 같은 것을 가져올 때 돈을 주고 사오는 것인가요 ?  예 맞습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현장에서 즉각 돈을 지불하고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런 용도로 각 연대에는 민간인 신분인 병참 장교(commissariat)가 할당되어 금화나 은화를 담은 튼튼한 돈 궤짝을 들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할 경우의 이야기였고, 대부분의 부대들은 현금 형편이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돈 궤짝 속에 든 돈은 병사들의 급료를 주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거든요. 


결국 대부분의 징발 댓가는 병참 장교가 무성의하게 쓱쓱 휘갈려 써준 징발 영수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거기에는 액수보다는 주로 징발된 물품이나 서비스의 물량이 적혀 있었습니다.  가령 밀가루 몇백 파운드, 와인 몇 통, 옷감 몇 평방 미터, 구리솥 몇 개 뭐 그런 식이었지요.  이런 영수증은 복잡한 행정 절차를 거쳐 시장 가격으로 징발 대상자에게 보상이 지급되었습니다.  아마 제 값을 받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징발 대상이 된 주민들은 그에 대한 원망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이런 징발에 대해서는 나폴레옹 본인이 남긴 편지가 있습니다.  오스트리아-러시아와 제3차 대불동맹전쟁을 준비 중이던 1805년 9월 22일, 북부 이탈리아 왕국의 부왕으로 있던 양아들 외젠(Eugene)에게 보낸 편지에서 나폴레옹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엄마가 데려온 새 아빠를 만나보니 나폴레옹이었다는 행운의 소년 외젠 보아르네입니다.  그는 나폴레옹 패망 후에도, 나폴레옹 덕에 얻은 장인어른인 바이에른 국왕 덕분에 사랑하는 부인과 함께 잘 살았습니다.)



"한 곳에 집결한 8만 대군을 먹이기 위해서는 지방민들로부터 밀과 와인, 사료, 귀리, 밀짚을 징발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야.  우린 군 편성도 잘 되어 있고 파리로부터의 자금 조달도 용이한 프랑스령 알사스(Alsace)에서도 이 조치를 취해야 했지.  모든 물자의 가격이, 준비해둔 거액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으로 올라버렸거든.  우리가 훨씬 이전부터 물자 집적소를 준비해 둔 곳에서는 징발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 밖의 곳에서는 징발은 필수조치였어.  오스트리아군도 독일과 베네치아에서 징발을 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그런 대군을 먹일 방법이 없었겠지.  그런 징발에 대해 지방민들은 적절한 가격을 지불받을 것이야."


즉, 나폴레옹은 정상적인 군수품 구매 계약이 가능한 경우에도, 때로는 강제로 물품 구매가를 깎기 위해 징발을 택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대규모 작전 수행 준비 중이거나 한창 전쟁 중에는 모든 물자의 가격이 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각 부대들이 장기간 원정에 대비해 미친 듯이 물자를 사모을테니, 공급이 뻔한데 수요가 많아지면 물가가 오르는 것이 당연하니까요.  그래서 그런 가격을 강제로 통제하기 위해 구매보다는 일부러 징발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결국 나중에 보상을 받는다고 해도 징발에 대해서는 주민들이 크게 반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에 대해서도 나폴레옹은 같은 편지에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거라.  민중은 툴툴거리기 마련이지만, 그 불평대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이런 상황에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단다.  오스트리아군도 같은 주민들에게 비슷한 규모로 징발을 했고, 이탈리아 왕국에서는 더 많이 했다.  게다가, 주민들은 만약 징발에 응하지 않을 경우 군대가 무력으로 물자를 빼앗아 갈 것이므로 상황이 더 안 좋아질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어."


이런 징발은 자국 영토 내에서 뿐만이 아니라 적국 영토에서도 마찬가지 원칙으로 수행되었습니다.  즉, 적국 마을에서 보급품을 조달한다는 것이 산적처럼 무자비하게 주민들로부터 사유 재산을 강탈한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병참 장교의 꼼꼼한 물품 확인 및 영수증 발행 작업 하에, 나름 조직적으로 징발 작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단지 신사다운 전쟁을 수행한다는 측면 뿐만 아니라, 군 전체의 효율적인 보급과 작전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적국 마을을 점령한 병사들이 장교들의 지휘가 아니라 그냥 자신들의 배고픔 혹은 사사로운 욕심에 따라 주민들을 약탈한다고 하면, 그렇게 빼앗은 빵이며 감자, 와인 등을 옆 부대 병사들과 사이 좋게 나누어 먹겠습니까 ?  절대 그럴 리 없지요.  아마 직접 약탈에 참가한 병사들끼리 배터지게 먹고 취하도록 마실 것입니다.  금화나 은접시 같은 값나가는 물건은 장교들 몰래 배낭 속에 숨겨질 것이고요.  그런 식으로 무질서한 약탈이 일어나면 절대 전체 병력을 먹일 수가 없습니다.  일부 운 좋은 병사들의 무절제한 낭비로 이어져 식량의 균등하고 효율적인 분배가 불가능할테니까요.  또한 그런 약탈은 피점령 주민들의 저항과 반란으로 이어져 괜히 불필요한 유혈 사태만 불러오기 쉽상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런 징발 활동은 반드시 체계적으로, 장교의 감독 하에 이루어져야 했지요.


그렇다면 과연 그렇게 피같은 곡식과 와인, 말과 수레를 빼앗긴 주민들에게 던져진 프랑스군의 징발 영수증은 어떻게 처리되었을까요 ?  전쟁이 끝난 뒤, 오스트리아 시골 농민들이 손에 그런 영수증을 들고 머나먼 파리의 육군성으로 찾아와 번쩍이는 금화를 받아갔을까요 ?  대부분의 주민들이 자기 마을 반경 10마일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었던 19세기 초에 그런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eBay에 올라온 1809년 오스트리아 문서입니다.  가격은 3장 모두 해서 $276.10로서, 생각보다는 비싸지 않네요.  여기 올라온 것은 복제품일까요 ?  그렇다면 생각보다는 너무 비싸고요.)



그런 징발 영수증의 처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문서를 구글링하다가 찾았습니다.  화려한 캘리그래피로 쓰여져 알파벳도 알아보기 힘든 이 독일어 문서는 1809년 프랑스-오스트리아 전쟁이 바그람(Wagram) 전투에 의해 프랑스의 승리로 마무리된 뒤 맺어진 평화 협상 문서 중 일부로 보입니다.  독일어로 된 것을 보면 아마 오스트리아 측에서 작성한 것 같은데, 그 내용은 이렇습니다.


"Das kaiserliche fraenzoesische Gouvernement hat eine neue Requisition..."   (프랑스 제국 정부는 새로 징발을 한다...)


그 밑으로 나오는 것은 프랑스군이 오스트리아에서 가져가는 물품과 그 물량을 적은 것입니다.  밀, 밀짚, 브랜디, 식초 등등이지요.  이건 다소 뜻 밖입니다.  나폴레옹은 항상 전쟁 비용을 패전국에 막대한 배상금 형태로 전가시켰습니다.  게다가 나폴레옹은 일종의 보호무역주의자라서, 전쟁 승리 후 패전국으로부터 상품 형태로 배상금을 받을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가령 나폴레옹은 1809년 9월, 바그람(Wagram)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오스트리아 쇤브룬(Schonbrunn) 궁전에서 당시 프랑스 내무부 장관이던 푸셰(Fouche)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며 투덜거렸습니다.  "해당 부서에서 일을 제대로 했다면 짐이 비엔나로 밀고 들어온 전과를 활용하여 프랑스의 상인들과 제조업자들이 더 많은 직물과 도자기 등의 상품을 오스트리아에 판매하도록 독려했을 걸세.  이전에 그런 상품들은 오스트리아에게 엄청난 관세를, 가령 직물만 하더라도 무려 60%의 관세를 내고 있었네.  당연히 나의 승리를 이용하여 거의 무관세로 비엔나의 창고들이 터질 정도로 프랑스 상품을 판매해야 하네.  그런데 관련 부서에서는 생각도 없고 행동도 없군."  이렇듯, 그가 바라는 것은 오로지 현금, 그것도 가능하면 금이나 은으로 된 경화(specie)였습니다.  그런 그가 밀가루나 브랜디 같은 상품을 배상금으로 받아올 리가 없었습니다.


이건 제 추론입니다만, 프랑스군이 전쟁 기간 동안 오스트리아 영내에서 징발 형태로 가져간 그런 보급품 물자에 대해 위의 문서와 같은 형태로 정산을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오스트리아 관리들은 전국 곳곳에서 프랑스군이 물자를 가져가고 발행한 징발 영수증을 모아오고, 나폴레옹은 그것들에 대해 전쟁 배상금 일부를 변제해주는 형식으로 정산을 하는 것이지요.  실제로 물자를 강탈당한 주민들에게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어떤 보상을 해주었는지는 정말 잘 모르겠습니다.


패전국에 대해서야 이런 식으로 처리가 될 수 있겠지만, 중립국이나 동맹국은 어땠을까요 ?  비슷한 방법으로 처리가 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제4차 동맹전쟁에서나 제5차 동맹전쟁에서나, 나폴레옹은 자신의 편에서 싸운 바이에른 등의 동맹국에게는 새로운 영토나 노획품 공여 등으로 두둑한 보상을 해주었으니, 그런 밀가루와 와인, 식초 등의 사소한 물품 대금은 거기에 묻어 처리했을 것입니다.  


전에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가끔 정말 산골 오지에 남겨진 징발 영수증은 정말 처리가 안 되고 남아 있다가 먼 훗날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바로 스위스 알프스 산골의 작은 마을 부르-생-피에르(Bourg-Saint-Pierre)의 경우입니다.  1984년에 프랑스 미테랑 (Francois Mitterrand) 대통령이 스위스를 국빈으로 방문할 때, 뜻하지 않게 이 마을 대표가 나폴레옹의 180년 묵은 징발 영수증을 들고 미테랑을 찾아온 것이지요.  1800년 5월, 나폴레옹이 제2차 이탈리아 침공을 위해 알프스를 넘을 때 이 마을에서 구리 솥과 수천 그루의 통나무 등 물품과 용역을 징발하면서 남겨둔 영수증이었지요.  당시 금액은 약 4만5천 프랑(지금 가치로 약 6억5천만원)으로 그렇게까지 크지 않았습니다.  가령 당시 하루 노임을 3프랑, 현재 가치로는 약 5만원으로 계산했더군요.  그런데 이것이 180년 동안 차곡차곡 이자에 이자를 붙여 계산하니 2천만 스위스 프랑이라는 엄청난 금액이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미테랑의 내각 수석이었던 콜리아르(Jean-Claude Colliard)가 이 마을을 찾아 기념 동판과 함께 원금만 현금으로 지불했다고 합니다.  이자에 대해서는 입을 닦았고요.  




(나폴레옹이 184년 전에 진 빚을 현대 프랑스 정부가 갚았다는 훈훈한 (?) 기사입니다.  그러나 이자는 안 갚았다는 조롱조의 구절로 끝맺는군요.)



적국이 아니라 주로 동맹국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에서 작전을 펼쳤던 영국군의 경우는 좀더 문제가 까다로왔습니다.  자기 정부의 말도 믿지 않는 현지 주민들에게 뭐라고 적혀 있는지도 모를 영어로 된 징발 영수증을 줘봐야 순순히 식량을 내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폴레옹과 싸우기 위해서는 현지 주민들의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으므로, 영국군은 강압적인 방법으로 식량을 징발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징발 영수증이 즉각적으로 현금화된다는 것을 입증하고 보여주기 위해 영국은 나름 애를 많이 썼습니다.  즉, 본국에서 국채 발행으로 돈을 모은 뒤, 그 돈을 인도 등 전세계에서 긁어모은 금화로 바꿔 선박 편으로 포르투갈과 스페인으로 지속적으로 보낸 것입니다.  이렇게 주조된 금화는 아예 군용 기니화(military guinea)라고 불렸는데, 이것이 영국이 주조한 마지막 기니화였습니다.  이는 매우 위험한 작업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이베리아 반도로 이어지는 항로에는 영국 화물선을 약탈하려는 프랑스 사략선(privateer)들이 우글거렸으니까요.  이들 중 일부라도 프랑스 사략선에게 나포될 경우 잃어버리는 금화도 아깝지만, 그 액수만큼 프랑스의 군사력을 키워주는 셈이었습니다.  당시 금화 및 은화는 요즘의 석유 못지 않은 필수 전쟁 물자였거든요.




(1813년에 주조된 소위 'Military Guinea' 금화입니다.)



당시 영국군 재무관이었던 헤리즈(John Charles Herries)가 1811년~1815년 사이에 웰링턴의 원정군, 그리고 대륙 동맹국을 위한 보조금으로 지출한 금화 및 은화는 4250만 파운드에 달했습니다.  금 1g을 대략 5만원으로 계산하면, 이는 무려 13조원이 넘는 거금입니다.  생산력이나 인구, 금융 규모가 요즘과는 크게 차이나는 당시의 대영제국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습니다.  이때 어쩔 수 없이 영국 정부가 손을 벌렸던 것이 바로 로스차일드 가문 쪽이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대륙 곳곳에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던 로스차일드 가문은 프랑스군과 싸우는 영국군의 군자금을 영국과 말타, 스페인과 시실리 뿐만 아니라 프랑스 은행까지 거치는 복잡한 과정을 통해 스페인 현지의 웰링턴에게 공급했습니다.  





(웰링턴의 군자금을 책임지고 있던 병참 총감(Commissary-General)이던 헤리즈 John Charles Herries 입니다.  웰링턴이 한창 반도 전쟁을 수행하던 1810년대에는 기껏 해야 30대 초반이었을텐데... 대단하네요.)



1813년 말이 되어 이제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 침공을 시작한 웰링턴은 여태까지와는 좀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고지식하고 배가 불렀던 프랑스 농민들은 낯선 영국 기니 금화를 받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현지 주민의 지지 확보를 중요시했던 웰링턴은 그에 따라 프랑스 농민들에게 징발 댓가로 지불할 프랑스 금화를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로스차일드는 그 어려운 요구조건도 훌륭하게 수행해 냈습니다.  네덜란드에 가서 프랑스 금화 및 은화를 사들인 뒤 선박 편으로 스페인으로 보낸 것이지요.  물론 이런 금융 거래에는 막대한 이윤이 따랐고,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 전쟁 금융을 통해 큰 부를 이루었습니다.  특히 웰링턴이 평펑 써대던 징발 영수증 및 군수품 구매 계약서를 로스차일드는 스페인 현지에서 헐값에 대량으로 매입하여 런던으로 가져온 뒤 제값을 받아 냈습니다.   훗날인 1834년 로스차일드는 벅스턴 경(Sir Thomas Powell Buxton)에게 말하길 "그 거래가 자신의 일생 중 최고의 비즈니스였다"라고 회고하기도 했습니다.





(네이썬 로스차일드 Nathan Mayer Rothschild 입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유태인 은행가 집안에서 태어난 그가 거대한 부를 이룬 것은 웰링턴의 전쟁 자금 금융을 사실상 대리하게 되면서 부터였습니다.)



전쟁이 벌어지면 이렇게 엄청난 돈을 버는 사람들이 꼭 생깁니다.  하지만 전쟁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행위이고, 병사들은 고통과 죽음 속에 신음하게 됩니다.  이렇게 큰 돈이 오가는 와중에도 정작 병사들은 굶기 마련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로 이번 편을 마무리하지요.  


1807년 폴란드 땅에서 러시아군과 싸우던 때였습니다.  나폴레옹의 시종인 콩스탕(Louis Constant Wairy)이 남긴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행진하는 병사들 옆을 말을 타고 지나치고 있었답니다.  프랑스 병사들은 현지에서 먹을 것을 구하다보니, 재빨리 폴란드 현지어를 몇 마디씩 배운 상태였는데, 그 중 한명이 용감하게도 황제에게 이렇게 외쳤다고 합니다.


"Papa, kleba !"  (아빠, 빵이요 !)


그러자 뜻 밖에도 나폴레옹도 폴란드어로 이렇게 대답하더랍니다.


"Nie ma !"  (없다 !  There is none !)


이 말에 병사들은 빵 터져서 크게 웃고는 더 이상 배고프다는 불평을 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콩스탕에게는 약간 쑥스럽게도, 폴란드어로 빵은 클레바 kleba가 아니라 흘렙 chleb이라고 합니다.)





출처 :  


Margaret S. Chrisawn. The Emperor's Friend: Marshal Jean Lannes (Contributions in Military Studies) (Kindle Locations 1698-1704). Kindle Edition.

Heckscher, Eli F.  The Continental System: An Economic Interpretation

http://www.ebay.com/itm/1809-Napoleon-Austria-Napoleonic-France-Requisition-Documents-48901-/371711363946?hash=item568bb94b6a:g:x2kAAOSwHoFXsnoH

http://www.npr.org/sections/thesalt/2015/06/18/414614705/appetite-for-war-what-napoleon-and-his-men-ate-on-the-march

https://books.google.co.kr/books?id=zq8GhdLeK_kC&pg=PA115&lpg=PA115&dq=requisition+napoleon+war&source=bl&ots=4DKmy7f1pY&sig=QpxPMR2WgfRmpe7r8NDbXXYLnNU&hl=ko&sa=X&ved=0ahUKEwicz_T7gMrPAhWCipQKHTVCAT4Q6AEISDAK#v=onepage&q=requisition%20napoleon%20war&f=false

https://books.google.co.kr/books?id=PS4CVCq-70sC&pg=PT56&lpg=PT56&dq=wellington+france+gold+money&source=bl&ots=Y87Pmfkw8V&sig=n0XCX_P2qArtLtgicDcBnyA3hCg&hl=en&sa=X&ved=0ahUKEwjWxZGL8szPAhWCpZQKHWU6BAUQ6AEIJTAA#v=onepage&q=wellington%20france%20gold%20money&f=false

https://en.wikipedia.org/wiki/Nathan_Mayer_Rothschild 

https://www.the-saleroom.com/en-gb/auction-catalogues/spink/catalogue-id-srspi10011/lot-a905b379-2ad3-45f2-900d-a3f800fbadff

https://en.wikipedia.org/wiki/John_Charles_Herries

Posted by nas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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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남변 2016.10.11 0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럽에는 이자채권의 소멸시효가 없나보군요. 우리나라 법 같으면 시효에 걸려서 원금 및 이에 대한 몇년분 이자만 지급하도록 판결이 나올 것 입니다. 진짜 유럽 법이 저런거라면 오히려 비합리적이네요. 현실적으로 프랑스 측은 어차피 다 갚을수가 없을테니 징발당한 사람의 후손이 이자를 전혀 받지 못하는 찝찝한 결과가 나와버릴 수밖에...

    • ian 2016.10.12 09:59  댓글주소  수정/삭제

      구소련 붕괴후 러시아가 새로 국채발행시에 과거 재정러시아 발행채권을 상환한 사례가 있습니다.

    • 수비니우스 2016.10.19 15: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일본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요? 전 세대의 일을 왜 후손인 우리가 갚아야 하는가 하고 말이에요. 2007년에 신동아에서 시오노 나나미가 진짜로 그렇게 인터뷰하던데요. 후손들이 조상들로부터 받은 것이 있으니 저런 빚도 갚아줘야죠.

  3. boribob 2016.10.11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집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추천 버튼 없는건 안타깝네염 좋은글 잘보고 갑니다.

  4. 연습장 2016.10.11 2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 집에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확실히 전쟁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는 로스차일드의 모습을 보면 당시 사람들은 물론 현대에까지 유태인과 프리메이슨과 관련된 각종 음모론이 넘쳐나게 된 원인은 확실히 제공한것 같군요

  5. 유애경 2016.10.12 07: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전 축하합니다.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발판으로하는 것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막대한 부를 거머쥐는 사람들이 있다는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네요.
    잘보고 갑니다.

  6. Mavs 2016.10.12 11: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폴레옹 시절과 지금은 국제법이 많이 달라졌는데 제1제정 당시의 부채를 현재의 공화국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지는 의문이군요. 그냥 서비스로 원금만 갚아준거 같은데요.

  7. 정암 2016.10.12 18: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집으로 이사를 축하드립니다^^

  8. feel96 2016.10.12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사 축하드립니다! 늘 잘 보고 있습니다^^

  9. Gale 2016.10.12 23: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읽고갑니다!

  10. 오리앙 2016.10.13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사 축하드립니다. 지난 몇 년간 좋은 글 감사했습니다.

  11. 뽀또 2016.10.14 16: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집 마련 축하드립니다.
    징발이라...총 칼 든 군대에게 징발시 거부할 배짱은 없겠지요.
    보상은 어느정도로 되었는지 평균치가 궁금해요 ㅎㅎ

  12. 에그-egg 2016.10.16 1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집을 마련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새집 마련하신 기념으로 재미있는 글을 올리셨군요. ㅎㅎ
    앞으로도 자주 찾아뵐께요. :)

  13. 이보트 2016.10.16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집이 아주 깔끔하네요. 축하드립니다.

  14. 달마 2016.10.19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보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드립니다.

  15. 라인하르트 2016.10.20 0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스트리아 같은 경우, 1806년 프로이센이 처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답이 안 나올 정도로 국가재정에 구멍이 나서 결국 바그람 전투 이후 패전 처리에서 프랑스 군이 징발했던 물자에 대한 처리를 거의 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전쟁 피해가 적던 헝가리에서 대량으로 물자을 반 강제로 징발해서 당장 급한 불은 끄는 수준이었지만, 이 때문에 가뜩이나 반 합스부르크 분위기가 강하던 헝가리인들이 반발이 더 심해집니다.

    영국같은 경우에도 대프랑스 동맹국들에게 자금 지원을 하는데 보유하고 있던 경화 상당수를 쏟아부은 결과, 경화준비용 지금(지은) 보유량이 거의 바닥날 지경이 되다 본국에서 한 동안 불태환 지폐를 발행해서 썼을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습니다. 사실, 영란은행이 가장 위험했던 시기는 프랑스 제국 시절이 아니라 1795-1797년, 즉 프랑스 공화국군이 네덜란드, 베네치아 공화국을 멸망시키면서 암스테르담의 은행가와 베네치아의 은행가 전부를 털어 버리면서 이들 은행들에 보관되었던 영국 내 자본 상당수가 묶이면서 일종의 금융공황이 발생했던 시기입니다. 이 때, 스미스와 멜서스, 리카도 사이의 경제학의 석학 중 하나인 헨리 손턴이 크게 활약하기도 합니다.

  16. 까마구 2016.10.20 11: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사하셨으니 축하 댓글은 하나 남겨야죠... 티스토리 이사를 축하드립니다... 근데, 이제 노안이라 본문은 그럭저럭 보이는데, 댓글은 너무 작아요...ㅜㅜ

  17. 흉갑 2016.10.23 1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이해가 안되서 그런데 승리했을때는 징발한 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었나요?

  18. 삽질랜드 2016.12.08 0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봤습니다. 당시의 현지 징발을 약탈에 가까운 행위로만 생각했는데 저렇게 거래하고 보상도 하는군요. 저는 저렇게 보급 수송도 없이 무계획적인 현지 징발을 하면 정작 중요한 때 식량을 구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지 의문이기도 했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군이 최소한의 식량과 은자만 가지고 조선에 들어와 조선 사람들로부터 식량과 은자를 교환하려다 이런 거래 방식 등에 익숙하지 않은 조선 사람들의 거부로 거래가 성사되지 않아 약탈로 겨우 식량을 확보하다가 요동의 상인들을 통해 식량을 수송해 와서 보급 문제를 어느 정도 해소했다고 하는데 상업이 발달한 국가들은 어느 정도 이런 방식이 익숙했나 봅니다.

    그나저나, 그렇다면 이동 중인 군대의 현지 징발 외에는 후방에서는 따로 아무런 보급 물자 지원이라던가, 보급로 같은 것을 만드는 것은 없었던 것인가요? 아, 뭐 화약이나 예비 화기, 군복 등, 전투나 축조 등에 필요한 건 후방에서 보급될 수밖에 없겠지만 식량 같은 건 결국 무조건 현지 징발이었던 건가요?

  19. 2018.03.25 17: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 유수 2018.03.25 2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죄송하지만; 답신을 주신것 같은데 제가 티스토리 가입이 안되어 있어서인지 비댓덧글로 말씀을 드리고도 정작 저는 답변해주신것을 보지 못합니다;; 링크를 써놔서 홍보가 될까봐 비댓을 했는데 번거로우시게 하여 죄송합니다;

  21. 유수 2018.03.26 0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양하신다면 안타깝지만 어쩔수가 없네요. ㅠㅠ

    괜찮으시다면 글을 퍼가는 것이라도 허락을 부탁드려도 될런지요? 당연히 글의 출처는 밝히겠습니다.

    부디 허락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