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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가우3

휴전 (1) - 나폴레옹의 축지법, 그게 될까? 앞서 언급했듯이, 나폴레옹의 추격 작전은 기병대 부족으로 인해 심각한 지연을 겪고 있었습니다. 연합군은 후퇴하면서도 꽤 강력한 후위대를 남겨 두었는데, 주로 강력한 포병대와 기병대 위주로 구성된 연합군 후위대를 기병 없이 상대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연합군 후위대는 주로 나지막한 언덕 위에 포병대를 방열하여 방어진을 구축했는데, 포병대 뿐이라면 추격하는 프랑스군이 별로 개의치 않고 쾌속으로 진격하여 제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이런 포병대 옆에는 꽤 큰 규모의 기병대가 버티고 있었습니다. 원래 보병-포병-기병은 화수목금토 오행과 같은 상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포병은 밀집 보병대를 상대로는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지만, 횡대로 얇고 길게 늘어서서 진격하는 보병대에게는 그다지 위협적인 존.. 2023. 7. 3.
강들과 요새들 - 러시아군의 고민 1813년 1월, 그랑다르메는 요크가 이끄는 프로이센군의 배신으로 인해 속절없는 후퇴를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지장이었으므로 후방의 방어도 공고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제1차 방어선은 당연히 폴란드 한 가운데를 흐르는 비스와 강이었습니다. 비스와 강에는 토룬(Torun), 모들린(Modlin) 등 바르샤바부터 단치히까지 일련의 견고한 요새들이 있었고, 나폴레옹은 이런 요새들에 수비대를 배치해두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 원정군이 워낙 크게 궤멸된 지라, 긴 비스와 강변을 따라 드문드문 박힌 요새들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고, 뮈라는 속절없이 비스와 방어선을 버리고 일단 포젠(Posen, 폴란드어로는 포즈나니 Poznań)으로 후퇴했습니다. (오데르 강변이나 비스와 강변의 많은 .. 2022. 4. 18.
원정 실패의 계산서 - 빈털터리 나폴레옹 12월 19일 조례부터 정무를 시작한 나폴레옹은 무척 기분이 좋아보였고 의욕이 넘쳤습니다. 전례없는 패전에 불안해하던 그의 정부 각료들은 갑자기 황제가 파리에 나타났다는 소식에 허둥지둥 정신을 못차렸는데, 그런 관료들에게 나폴레옹 개인이 뿜어내는 아우라는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전에 러시아 원정을 떠나면서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 비(非)프랑스인 장교들조차도 먼 발치에서나마 나폴레옹을 보고는 자기로 모르게 흥분되고 감화되어 열정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황제 폐하 만세'를 외쳤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지요. 대부분의 왕정이 다 그렇긴 합니다만, 확실히 나폴레옹의 프랑스는 나폴레옹 개인의 개입 여부에 따라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나폴레옹은 즉각 새로운 병력 모집과 부대 편성을 위한 지시를 부지런히 날리기 시작했.. 2022.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