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4 바이에른의 배신 (8) - 외젠의 결혼 (하) 아우스테를리츠의 대승의 결과로 바이에른은 오스트리아로부터 몇몇 영토를 할양받아 덩치가 더 커질 뿐만 아니라, 공국에서 벗어나 이제 왕국으로 인정받기로 이야기가 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그걸 확정할,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가 참여하는 프레스부르크(Pressburg) 협약이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 날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1805년 뮌헨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어느 때보다 기쁜 날이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막시밀리안 1세의 궁정 분위기는 완전 초상집 분위기였습니다. 나폴레옹의 심복인 뒤록(Duroc)이 의전을 갖추고 나타나 공식적으로 외젠과 아우구스타의 혼약을 요청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장 그날은 억지춘향으로 이 공식 사절을 접대해야 했으나, 바로 다음날인 크리스마스에 막시밀리안은 병을 .. 2024. 9. 30. 바이에른의 배신 (7) - 외젠의 결혼 (중) 이 혼담의 주인공인 아우구스타 공주는 1804년 하반기부터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매우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1805년 4월, 그녀는 꽤 가까운 사이였던 2살 연상의 친오빠 루드비히(Ludwig Karl August von Pfalz-Birkenfeld-Zweibrücken)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당시 루드비히는 그 시절 유럽 귀족가문 자제들 사이에 유행이던 소위 '그랜드 투어'(grand tour)를 위해 이탈리아 여행 중이었거든요. "...아빠가 카알과의 약혼을 바라지만, 프랑스를 두려워 하는 것 같아. 내 생각엔 주바이에른 프랑스 대사 오토(Otto)는 나를 외젠 보아르네에게 시집 보내라는 명령을 받고 있는 모양이야. 카알 왕자와의 약혼이 확실히 매듭지어지지 않은 .. 2024. 9. 23. 바이에른의 배신 (6) - 외젠의 결혼 (상) 프랑스가 독일을 프랑스에 위협적이지 않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독일권이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을 두 축으로 자잘하게 분열되어 있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그건 나폴레옹에게도 마찬가지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자잘한 독일 국가들 중 가장 덩치가 컸던 바이에른을 친프랑스 성향으로 굳히는 것이 꼭 필요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노골적인 친프랑스 정책을 펼치는 몽겔라스가 조종하는 막시밀리안 1세가 바이에른 선제후가 된 것은 나폴레옹에게도 매우 반가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굳이 나폴레옹이 가부장적인 지중해성 남자라는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당시는 이제 막 19세기로 접어든 시대였고 그 시대 유럽에서는 동맹을 굳히는 단단한 수단으로 지배 가문끼리의 정략 결혼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 2024. 9. 16. 열혈남아의 사랑과 전쟁 - 장 란(Jean Lannes)의 여인들 무협지나 소년 만화를 보면 열혈남아에게는 반드시 꽃미녀가 1명 이상 따라 붙게 되어 있고, 주인공 열혈남아는 아무리 주변의 유혹이 강해도 그 뜨거운 심장을 청순가련한 그녀에게만 바치지요. 실제로도 그럴까요 ? 역사상 실존하는 열혈남아 중 2번째라면 서러워할 프랑스군 원수이자 나폴레옹의 개인적 친구인 장 란(Jean Lannes)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시지요. 1793년 12월 25일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피레네 산맥 인근 빌롱그(Villelongue)를 탈환한 공으로 24세의 젊은 나이에 소령으로 승진한 란은, 군의관으로 명령으로 후방인 항구 도시 페르피냥(Perpignan)으로 휴양을 떠나게 됩니다. 이 곳에서 란은 꽤 번듯한 집을 가지고 있던 메릭(Meric)이라는 은행가의 집에 숙사 배정(billet.. 2018. 4. 2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