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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7

1812년 전쟁의 시작 - 네만 강을 넘다 6월 23일 아침, 나폴레옹은 미리 준비해둔 감동스러운 연설을 통해 '제2차 폴란드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이 전쟁을 통해 지난 50년 간 러시아가 유럽에 보여주었던 오만한 영향력을 분쇄할 것이라고 병사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당연히 병사들은 'Vive l'Empeurer !'를 외치며 호응했고, 나폴레옹을 속으로 싫어하던 장교들과 병사들마저도 그 광경에는 감탄해마지 않았습니다. 그 날 저녁부터 나폴레옹은 소수의 부하들만 데리고 네만 강가를 달리며 적절한 도하 장소를 물색했고, 마침내 밤 10시에 제13 경보병 연대가 보트를 이용하여 어둠 속에 조용히 강을 도하했습니다. 네만 강 동쪽 강변을 장악한 이들의 엄호 속에서 에블레(Jean Baptiste Eblé) 장군의 공병대가 3가닥의 부교를 놓기 시작했습니다.. 2019. 11. 25.
엘리자베스 워런은 사회주의자인가 ?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이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미국에서도 워런을 '사회주의자'라거나 '시장경제 파괴자' 등으로 매도하는 움직임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또 엘리자베스 워런의 선거팀이 올린 글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미국의 농가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를 읽고 제가 느낀 것을 요약하면 2가지입니다. 1) 워런은 결코 사회주의자가 아니며 오히려 '시장경제의 핵심은 경쟁'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는 진짜 시장주의자입니다. (웃기게도, 그 부분이 대기업들이 싫어하는 부분입니다.) 2) 미국 농업의 경쟁력이 세계 최고라고들 하지만, 결국 수익은 미국 농가들을 쥐어짜는 대형 농업 관련 기업들이 다 가져가며 미국의 가족농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여.. 2019. 11. 21.
1812년 나폴레옹을 기다리는 러시아군의 내부사정 (마지막편) 그런데 놀랍게도 러시아군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네만 강을 따라 늘어선 여러 마을에 분산되어 숙영 중이었는데, 주로 사열과 분열 같은 제식 훈련만 죽어라고 했습니다. 장교들은 자기들끼리 무도회와 파티를 벌이며 시골 아가씨들과의 연애 모험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짜르 알렉산드르를 따라 빌나에 와있던 국무부 장관 쉬시코프(Aleksandr Semyonovich Shishkov)는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마치 적군이 수천 km 먼 곳에 떨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도 근심걱정이 없는 듯 했다. 심지어 적군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들어오지 않았다." 적군에 대한 소식은 커녕 아군인 러시아군으로부터도 아무 뉴스가 없었습니다. 러시아군이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었기 때.. 2019. 11. 18.
이보다 더 좋은 축복 노래는 없다 - Forever Young 가사 해설 맨 처음 이 노래를 대충 들었을 때, 뭔가 연인 사이에서 불러지는 노래인가 싶었습니다. 다만 '네가 영원이 젊었으면 좋겠구나'라는 부분이 좀 이상했어요. 연인 사이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쟎아요 ? 무슨 불로초를 바라는 진시황의 노래도 아니고 말이지요. 좀더 가사를 들어보고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건 자기 아이를 위한 축복 노래라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 노래의 배경을 뒤져 보니, 역시 밥 딜런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지은 노래더군요. 다시 들어봐도, 자신의 아이를 위해 이보다 더 나은 축복의 가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종교가 무엇이든, 아이의 장래 희망이 무엇이든, 아이가 공부를 잘하든 운동을 잘하든 혹은 어떤 것에든 뛰어난 점이 없더라도, 모든 경우에 잘 어울리는 가사에요. 인간이 항상 젊을 수는 없지.. 2019. 11. 14.
1812년 나폴레옹을 기다리는 러시아군의 내부 사정 (제3편) 이미 1811년부터 러시아는 프랑스와 언제 한판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해서 1812년 6월 경 러시아는 거의 1년 넘게 전쟁 준비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나폴레옹을 맞이할 러시아의 준비 상태는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요 ? 한줄 요약하자면 머리 수만 따지면 프랑스군의 그랑다르메에 비해 그다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원래 1805년 당시 러시아의 징집 제도는 일종의 지역 차출제로서, 지역 농노들 500명 중에서 4명의 장정을 병정으로 차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차출된 운 나쁜 젊은이에게는 25년의 병역 의무가 주어졌는데, 당시엔 전화는 커녕 우편도 변변치 않았는데다 어차피 본인이나 가족이나 모두 문맹인 경우가 많아서 가족과 연락을 주고 받을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 2019. 11. 11.
왜 성경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고 했을까? 저는 제가 나름대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성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 자신이 아무 의심을 갖지 않고 목사님 말씀 잘 따르는 성도라고는 자신있게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저는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 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새로 옮긴 교회에서 '새신자 교육'이라는 것을 받고 있는데, 수업 중에 목사님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제 주변에 어떤 독실한 신자분이 계신데, 그 분 말씀에 따르면 요한복음 14장 6절에 이르기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즉 예수님을 거치지 않고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되어 있으므로, 갓난 아이나 천진한 어린이라고 할 지라도 예수님을 알고 영접하기 전에 죽는다면 죽어서 지옥으로 간다고 주장.. 2019. 11. 7.
1812년 나폴레옹을 기다리는 러시아군의 내부 사정 (제2편) 총사령관 바클레이 드 톨리가 러시아 귀족들로 이루어진 부하들로부터 미움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이 양반이 실력파 인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의 집안은 그의 할아버지가 오늘날 라트비아(Latvia)의 수도인 리가(Riga)의 시장을 보낼 정도로 보통 집안은 아니었지만, 정작 러시아 귀족으로 편입된 것은 군인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최초일 정도로, 러시아 귀족층 입장에서는 그다지 전통있는 명문가는 아니었습니다. 바클레이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입대하여 2년 뒤 소위로 승진했고, 그 이후로 오스만 투르크나 스웨덴 등 전통적인 러시아의 적들과의 전쟁 속에서 직업 군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착실히 쌓았습니다. 그는 똑똑할 뿐만 아니라 전투의 광기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 2019.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