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사령관 바클레이 드 톨리가 러시아 귀족들로 이루어진 부하들로부터 미움을 받은 이유 중 하나는 이 양반이 실력파 인물이라는 점이었습니다.  그의 집안은 그의 할아버지가 오늘날 라트비아(Latvia)의 수도인 리가(Riga)의 시장을 보낼 정도로 보통 집안은 아니었지만, 정작 러시아 귀족으로 편입된 것은 군인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최초일 정도로, 러시아 귀족층 입장에서는 그다지 전통있는 명문가는 아니었습니다.  바클레이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입대하여 2년 뒤 소위로 승진했고, 그 이후로 오스만 투르크나 스웨덴 등 전통적인 러시아의 적들과의 전쟁 속에서 직업 군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착실히 쌓았습니다.  그는 똑똑할 뿐만 아니라 전투의 광기 속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능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일라우(Eylau) 전투에서 러시아군의 후퇴를 커버하며 싸우다 중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전형적인 유능한 군인이었습니다.

 

 

(미하일 바클레이 드 톨리(Michael Andreas Barclay de Tolly)의 초상입니다.  1812년 당시 그는 51세로서, 총사령관 하기에 딱 좋은 나이였습니다.)

 



프랑스군에서라면 이런 바클레이 드 톨리가 그다지 두드러진 모습으로 보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활약했던 조직은 러시아군이었고, 러시아군 장교들은 유능함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집단이었습니다.  가령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에서 러시아군 지휘관 중 하나였던 북스게브덴 (Friedrich Wilhelm von Buxhoeveden 러시아 식으로는 Fyodor Fyodorovich Booksgevden, 이 분도 알고보면 독일계 러시아 귀족이지요) 장군은 전투 내내 술에 취해 있었고 그의 주정뱅이 지휘 덕분에 참패를 겪었지만, 그 이후에도 주요 요직을 맡는데 아무 지장이 없었습니다.  가령 1808년 핀란드 침공 작전 때 러시아군의 총사령관이 바로 이 북스게브덴 장군이었고, 바클레이 드 톨리는 그 밑에서 복무했습니다.

 

(오랜만에 보시는 북스게브덴 장군의 복스러운 얼굴입니다.  그런 역적질에 가까운 지휘를 하고도 군법회의는 커녕 계속 해서 고위 지휘관 역할을 맡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와이프가 러시아의 권문세가 오를로프(Orlov) 가문 출신의 공녀 나탈리아 알렉세예브나(Natalia Alexeyeva)였던 것과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북스게브덴의 경우처럼 러시아군 장교들의 자질이 전반적으로 떨어지는 이유는 슬라브 특유의 민족성... 따위가 아니라 결국 사회 구조적인 문제였습니다.  가령 러시아군 소위의 급여는 유럽 전체에서 가장 적은 편이었습니다.  심지어 장교로서 부대에 의무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식비가 급여보다 더 많을 정도였습니다.  이는 러시아의 전반적인 경제력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굳이 급여 따위에 생계를 의존하는 사람은 장교로서 체면이 서지 않는 인간이라는 고정 관념이 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직장 생활하면서 돈을 쓰기만 하고 벌지 않을 수는 없었으니 그런 적자 인생을 탈출하려면 빨리 승진을 해야 했는데, 그 승진이라는 것이 실력이나 실적 순이 아니라 철저하게 배경과 연줄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같은 귀족들 중에서도 하급 귀족들은 도무지 승진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은 러시아의 유명 시인 푸쉬킨(Alexander Pushkin)의 소설 '대위의 딸'(Kapitanskaya dochka)에서 쉽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이반 미로노프(Ivan Mironov)는 10대 후반의 딸을 둘 정도의 나이인데, 계급이 고작 대위입니다.  또 맡은 보직도 어느 황량한 시골 마을의 수비 대장이지요.  

 

 

(제 나이대의 사람들에겐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라는 싯귀로 유명한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입니다.  제가 중학생일 때 이 분의 소설 '대위의 딸'이 학생 필독서 중 하나여서 읽었는데, 솔직히 이게 왜 필독서까지나 선정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본인의 싯귀와는 반대로, 이 분은 와이프와 러시아 근위대 소속 어느 프랑스인 장교와 불륜 문제가 발생하자 그 프랑스인 장교와 결투를 벌인 끝에 37세의 나이로 요절했습니다.)

 



이렇게 장교들을 귀족들 중에서만 선발하는데다, 그나마 능력이 아니라 연줄 위주로 승진을 시키다보니, 지휘관 중에 정말 일 잘하는 장교는 찾기가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소수일 수 밖에 없는 고위 귀족층 자제 중에서만 후보를 뽑다보니 당연히 자질이 뛰어난 사람이 많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미 가진 것도 많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고위 귀족 출신 장교가 열심히 할 이유도 없었으니까요.  아마 제 블로그를 오래 출입하셨던 분들은 이런 문제에 대해 '영국군도 똑같지 않았던가?'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맞습니다.  영국 육군도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영국 육군도 여러모로 러시아군과 비슷한 문제, 즉 무능하고 항상 술에 쩔어지내는 장교들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사병들을 죽도록 채찍질을 하는 체벌 문화가 팽배한 군대가 유럽에서 영국과 러시아 정도였다는 것도 공통점이었지요.  왜 영국에서만 웰링턴과 같은 명장이 나왔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도 있을텐데, 그건 잘못된 궁금증입니다.  영국에서만 그런 특별한 인재가 튀어나온 것은 아니었거든요.  제2차 대불동맹전쟁에서 러시아의 혁혁한 전과를 책임졌던 수보로프(Alexander Vasilyevich Suvorov) 장군 같은 경우가 그 예입니다.  웰링턴은 영국이라는 막강한 조국의 버프를 많이 받아서 유명해진 인물이고, 실제 군사적 역량은 수보로프가 훨씬 뛰어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


(1799년 이탈리아 밀라노에 입성하는 수보로프입니다.  이렇게 밀라노에 입성하기 전까지 수보로프는 모로, 막도날, 주베르 등 쟁쟁한 프랑스 혁명군의 장군들을 모조리 무찔러 그의 명성을 드높였습니다.)



그런 장교들 중에서 냉정하고 지적이며 부지런하고 유능한데다 용감하기까지한 바클레이 드 톨리는 짜르 알렉산드르의 눈에 단연 두드러지게 보였습니다.  알렉산드르도 평화 시기라면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나폴레옹과의 갈등이 높아지자 이 51세의 실력파 독일인을 아예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해버렸습니다.  원래대로 하면 그냥 '누군가는 소를 키워야 하지 않겠나' 정도의 인식으로 승진시켜준 독일계 귀족에 불과했는데, 갑자기 짜르의 눈에 들어 쑥쑥 승진한 바클레이 드 톨리는 주변 러시아 장군들의 질투를 한몸에 받았습니다.  이렇게 다른 러시아 장군들이 자신의 승진을 질시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바클레이는 다른 장군들의 협조를 구하기보다는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관리 감독했는데, 원래부터 강직하고 차가운 성격에 그런 꼼꼼한 관리 감독까지 더해지니 그를 미워하는 분위기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이 그를 무시하게 된 결정적인 것은 짜르 알렉산드르 탓이었습니다.  과연 알렉산드르는 무슨 잘못을 저질렀던 것일까요 ? 





Source : 1812 Napoleon's Fatal March on Moscow by Adam Zamoyski
https://en.wikipedia.org/wiki/Michael_Andreas_Barclay_de_Tolly
https://en.wikipedia.org/wiki/Alexander_Suvorov
https://en.wikipedia.org/wiki/Alexander_Pushk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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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einhardt100 2019.11.04 07: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정 러시아군의 장교단이 개판이 된 이유 중 하나가 사실 병력충원체계와도 연계됩니다. 이 당시 러시아군은 다른 국가와 달리 농노, 코사크 및 일부 서방 출신 기술병을 중심으로 구성된 병력충원체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 중 전열보병 상당수는 주로 농노였습니다. 그런데 이 농노들을 잘 부리려면(?) 당연히 귀족, 그것도 '권위있는 고위귀족'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당장 예전에 쓰셨던 바그라티온만 해도 사산조 페르시아의 신하였던 이베리아(현재의 사카르트벨로)의 숨바툼 바그라투니의 방계 후손이던 바그라티온왕가의 직계다보니 귀족 중에서는 명함 내밀 사람이 거의 없었고 과감한 작전지휘 및 무리한 명령이라도 일단 순진했던 병사들이 잘 듣는 편이었습니다.

    <대위의 딸>, 이 책이 필독서인 이유가 러시아에서 처음으로 로마노프 황가를 '간접적이나마 비판한 책'이었다는 것입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편이었던 예밀리아 푸가초프의 반란을 농노들과 하급귀족의 입장에서 쓰면서 전제군주정에 머무는 채로 데카브리스트를 진압하던 로마노프 황가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의미가 어마했습니다. 게다가 이 책을 본 나로드니키들부터 후대 멘셰비키와 볼셰비키들까지 모두가 농민해방과 제정타도 및 사회주의 혁명을 부르짖는 기폭제로써 작용했으니 필독서로써의 가치는 충분히 있는 책입니다.

    • nasica 2019.11.04 0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대위의 딸에 그런 의미가 있군요. 저는 소설 끝부분에 예카테리나의 자비에 호소하여 주인공이 사면되는 부분을 보고 결국 로마노프 왕가에 대한 찬양이라고 생각했더랬습니다. 하도 오래 전에 읽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네요.

    • reinhardt100 2019.11.04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게 검열 피하는 장치였습니다. 겉으로 보면 황제폐하께서 자비를 내려줌으로써 신민들이 행복하게 산다는 것으로 보여주었어야 하니까요. 나중에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 같은 제정 러시아 후기 문학가들도 이런 식으로 검열을 피하기도 합니다. 특히 톨스토이가 대표적이죠

  2. Franken 2019.11.04 14: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근데 유럽 문화권 자체가 술에 절여 사는 동네 아닌가요? 수질 문제 때문에 물 대신 술이 필수 음료수가 되어 하층민들 역시 입에서 술이 떨어지는 날이 없다 보니 음주 문제가 당대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진 않았을 거 같네요. 물론 본문의 저 장군은 때와 장소를 못 가렸으니 비판받아야 마땅하죠.

  3. hg 2019.11.04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보로프는 웰링턴과 비교하면 서유럽군과 싸운 커리어가 비교적 적다고 들었는데 전과 내용을 비교하면 그렇지만도 않은거군요..하긴 나이만 비교해도 40이 나기도 하고..

  4. 흠흠흠 2019.11.04 1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웰링턴도 웬만한 나폴레옹 원수들 다 때려잡지 않았나요? 게다가 웰링턴은 마세나와 나폴레옹까지 때려잡았으니, 수보타이, 나폴레옹, 웰링턴은 동급인 것으로 ㅎ

  5. 지나가다 2019.11.04 19: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위의 딸이 러시아에서 인기 있는 이유 중하나는 매우 재미있다는 겁니다...그게 뭐냐 랄수 있는데...그때 농노와 주인의 관계 그리고 고위 귀족청년과 하급 귀족 딸의 러브스토리, 푸카쵸프의 반란 (주인공은 푸카쵸프와 밥까지 먹은 사이) 그리고 러시아 군과 반란군과의 전투 등이 매우 생동감 있게 하지만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는 굉장히 재밌는 소설이죠

  6. 지나가다 2019.11.04 1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특히 러시아 전통이 잘드러나는데 승리자에게 빵과 소금을 주는 장면, 전투가 시작되나 투니카(전통의상, 장례식때나 결혼식때 입힌다)를 딸에게 입히는 장면, 러시아 군의 훈련과 편성 등이 자세히 나와 있고 그때 충격이 빠졌던데 푸카쵸프가 점령지에서 공정하고 인자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었습니다.

  7. 지나가다 2019.11.04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또한 러시아군의 내부 문제도 드러나고 그들의 무능과 암투(사랑 문제로 장교끼리 결투 벌이다 부상) 장교의 진급 등(주인공은 아무 훈련도 없이 장교 소위로 임관...그리고 도박하다 재산 탕진...늙은 농노는 그래도 끝까지 주인공과 함께 생사 고락...)

  8. 하이텔슈리 2019.11.04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클라이가 유능하다는 건 이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유능함이 신뢰받지 못한 이유라니 뭔가 할 말이 없네요... (영국 육군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지만 적어도 유능하다고 견제받는 조직은 아니었던 걸로 아는데) 진짜 수보로프나 쿠투조프 같이 인망받으면서 능력있는 인물이 존재하는 게 신기한...

    ps.저도 웰링턴과 수보로프를 누가 더 뛰어나다고 보기 힘들다에 한표. 능력의 1대1 비교라는게 극히 상대적인 것이고, 세운 공적을 보면 누가 더 뛰어나다고 하기 힘들지 않을지요.

  9. Hofer 2019.11.04 2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톨리가 전투를 피하고 물러서기만 한다고 내부의 많은 공격을 받았지만..
    적군의 강점 및 아군의 유리한 점을 냉철히 파악하고 지연전을 펼친 걸 보면 우수한 지휘관이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웰링턴이냐 수보로프냐 누가 더 명장이냐 말은 많지만.. 개인적으로 수보로프가 위대한 장군이었던 건 일말의 여지가 없는 거 같습니다.

    • reinhardt100 2019.11.05 2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수보로프의 전역은 제정 러시아 이후 역대 러시아 군사학에서 반드시 가르치는 전역이 될 정도로 수보로프의 군사적 재능은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특히 당시 서방권에서 사실상 접촉할 수 있는 모든 군대와 싸워본 지휘관은 수보로프가 사실상 유일했습니다. 그나마 나폴레옹이 근접했고요.

      수보로프의 경우, 냉전기 소련군이 서방과의 전면전을 가정하고 꽤나 연구를 많이 했는데 '동쪽에서 진군해서 알프스를 넘는 기동을 성공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냉전기 서방권 주력인 서독군과 미군, 영국군은 알프스 이북에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 배치가 혁명전쟁 당시 프랑스군과 비슷합니다. 쌍방의 주력이 알프스 이북에 배치되어 있지만 숫적 우세를 살리기 위해 알프스를 넘어 측면을 찌르기 위한 공세를 펼치기 위한 교본의 기초가 바로 수보로프의 제2차 대불동맹 전역이었으니 당연했습니다.

  10. 2/28일 입대 2019.11.05 1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에ㅋㅋ갑자기 대위의 딸이라는 소설이 읽어보고 싶어졌어요ㅎㅎ댓글의 순기능이네요. 감사합니다~!!

  11. 정암 2019.11.05 15: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것까지 아시는 라인하르트님.. 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ㅎㅎ

    • reinhardt100 2019.11.05 22:20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 KTX 타고 서울로 퇴근 중에 있습니다. ㅋ 요새는 주중에 매일 대전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 때문에 KTX 타고 통근 중이거든요.

      저야 매일 그저 박봉(?)에 시달리는 직장인이니까요. 매일 '5급공채 못 붙은 죄값 치르고 있다' 외치면서 다니고 있어요 ㅠ

      그래도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12. 낄낄 2019.11.06 12: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가 말아먹고 계속 해먹는 북스게브덴 장군 비웃을 위치는 아닌것 같습니다.

  13. 샤르빌 2019.11.09 12: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웰링턴도 능력있는 장군이지만 영국이라는 든든한 물주가 있었기에 보급이나 물자같은 부분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지만 수보로프의 러시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