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 시우다드 로드리고에서 항복을 받아낸 프랑스군은 포위전을 위해 설치했던 공성포를 참호에서 파내고 벌여놓았던 탄약들을 정리하는 등 이동 준비를 한 뒤, 하루 정도의 행군 거리인 알메이다로 향했습니다.  이들이 포르투갈 국경을 넘어 알메이다 인근에 나타난 것은 7월 20일이 넘어서였습니다.


그러나 이들과 한판 대결을 벌여야 하나 망설이고 있던 크로퍼드 장군에게는 7월 22일 웰링턴으로부터 "코아(Coa) 강 동쪽에서는 교전하지 말라"는 편지가 날아듭니다.  알메이다 요새는 코아 강 동쪽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강대한 프랑스군과 야전에서 승부를 벌이는 것은 불리하다고 판단한 웰링턴은 그쪽으로 증원군을 보낼 생각이 없었고, 크로퍼드 장군에게 사실상 알메이다는 저 혼자 살아남도록 내버려두라는 명령을 내린 셈입니다.  



(알메이다는 사실 스페인의 침공에 대비하기 위한 요새치고는 위치가 좋지 않았습니다.  수심이 깊은 코아 강이 동쪽이 아닌 서쪽에서 흐르고 있어서, 포르투갈 방향에서 지원군이 오기 힘들게 되어 있습니다.)




시우다드 로드리고의 스페인군에 이어 알메이다에 있는 영국군과 포르투갈군까지 연이어 배신하게 된 셈인 크로퍼드 장군은 나름대로 고민이 깊었나 봅니다.  그는 웰링턴의 편지를 받고서도 즉각 코아 강 서쪽으로 후퇴하지 않고 알메이다 인근에서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다 2일 후인 7월 24일 이른 아침, 갑작스럽게 나타난 2만의 프랑스군과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1개 사단 5천의 병력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되는 게임이었으므로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후퇴하는 것이 맞았겠으나, 희한하게도 이 날 냉정하기로 소문난 크로퍼드 장군은 연달아 실수를 저지릅니다.  네 원수가 프랑스군 전체가 아니라 2개 사단을 보내 자신을 상대하는 것을 보고는 저 정도면 충분히 한방 먹여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후퇴하지 않고 프랑스군과 맞짱을 뜨기로 한 것입니다.


이건 명백하게 무모한 결정이었습니다.  그 일대의 코아 강은 꽤 깊어 사람과 말이 그냥 건너기에 힘든 곳이었는데, 하필 전날 밤 거세게 비가 내리는 바람에 물이 불어 도저히 걸어서는 건널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퇴로는 좁은 다리 하나 밖에 없는데, 그런 강을 등 뒤에 두고 자신의 2배가 넘는 프랑스군을 상대하게 된 셈이었으니까요.  일이 안되려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더니, 인근의 알메이다 요새에서는 크로퍼드 장군 휘하의 제95 라이플 연대에게 맹포격을 가해댔습니다.  라이플 연대의 군복은 전통적인 영국군의 붉은색 자켓이 아니라 암록색의 자켓이었거든요.  알메이다 요새의 영국군과 포르투갈군은 이들을 프랑스군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난데없이 아군의 포격을 받은데다 훨씬 더 많은 병력의 프랑스군 유격병(voltigeur)들이 달려들자, 영국군의 전초선을 맡고 있던 정예병인 라이플 연대도 맥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제95 라이플 연대 병사들입니다.  사격 자세가 좀 이상한 것은 이들이 전열 보병이 아니라, 총강에 강선을 새긴 라이플 소총으로 무장한 유격병이기 때문입니다.  라이플 소총은 활강 총신(smoothbore)을 가진 머스켓 소총에 비해 유효 사거리가 더 길었으므로, 유격병들에게 매우 좋은 무기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의 유격병(voltigeur) 부대는 라이플 소총을 끝까지 채택하지 않았는데, 이는 라이플 소총은 탄환을 장전할 때 강선에 탄환이 꽉 맞게 하기 위해 얇은 가죽 조각으로 탄환을 감싸서 밀어넣어야 하느라 재장전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영국군의 라이플 연대 병사들은 chosen men이라고 하여 정예병으로서의 자부심이 꽤 있었다고 합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크로퍼드도 뒤늦게나마 제 정신이 들었나 봅니다.  그는 황급히 일부 대대들에게 후위 엄호를 하게 하면서 다른 대대들에게는 다리를 건너 후퇴하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역시 그 날 크로퍼드는 악재가 낀 날이었나 봅니다.  이번에는 가뜩이나 병목을 일으키던 코아 강 위의 좁은 다리 위에서 보급마차가 엎어지는 바람에 후퇴 길이 꽉 막혀 버린 것입니다.  뒤쪽의 프랑스군은 추격에 열을 올리며 후위 부대들을 밀어붙이고 있었습니다.  존 무어 경과 함께 했던 코루냐 철수 작전에서도 살아남았던 역전의 크로퍼드 장군의 운명도 여기까지인가보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크로퍼드는 웰링턴이 신뢰할 만한 지휘관이었습니다.  혼비백산할 상황에서도 그는 침착하게 후퇴하느라 막힌 다리 앞에서 줄을 선 부대들에게 '뒤로 돌아'를 외친 뒤 다리와 프랑스군 사이에 있는 나지막한 능선에 방어선을 쳤습니다.  이번에는 진짜 배수의 진을 친 셈이었습니다.  생즉사 사즉생이라더니, 어차피 퇴로가 없어진 셈이 된 영국군은 용감히 돌격하여 추격하던 프랑스군을 대혼란에 빠드렸습니다.  이 덕분에 영국군은 시간을 벌었고, 크로퍼드의 경보병 사단은 무사히 마차를 치우고 다리를 건너 후퇴할 수 있었습니다.  뒤늦게 재추격에 나선 프랑스군도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영국군이 후퇴한 그 다리로 무리하게 추격을 하려다 강 건너편에 잔뜩 대기하고 있던 영국군의 맹반격에 많은 사상자를 내고 결국 추격을 단념해야 했지요.  결과적으로 이 코아 강 전투에서 양군의 사상자는 비슷한 규모였습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모든 것이 프랑스군의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크로포드 장군의 경보병 사단을 코아 강 서쪽으로 밀어내어 방해꾼을 제거한 프랑스군은 당장 다음날부터 알메이다 포위에 돌입한 것입니다.  7월 24일 아침에 갑자기 나타나 크로퍼드를 놀라게 했던 프랑스군은 확실히 급히 움직이느라 공성포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본격적인 공격은 거의 3주 뒤인 8월 15일 공성 장비(siege train)가 도착한 뒤에나 시작되었습니다.  다시 지그재그 교통로를 파기 시작한 프랑스군은 8월 24일까지 11개의 엄폐 포대를 구축하고 50문의 대포를 설치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알메이다 요새의 수비군도 작업 중인 프랑스군에게 치열하게 포격을 가했습니다.  그러나 경험 많은 프랑스군 공병대의 철저한 작업 덕분에 프랑스군의 피해는 거의 없었습니다.




(역시 별 모양의 근대적 해자와 방벽을 갖춘 알메이다 요새입니다.  요새 내에 뭔가 빈 공간이 있는 곳은 아주 슬픈 사연이 있는 곳입니다.)




(대포가 발달하면서 요새도 그에 따라 변형되어 발전했고, 그런 별 모양의 근대적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공성전 양상도 바뀌었습니다.  지그재그 교통 참호와 여러 겹에 거친 평행 참호의 도면입니다.)




웰링턴이 영국군과 포르투갈군이 협력하여 지키던 알메이다 요새를 아무 지원군도 없이 내버려 둔 것은 매정한 일이긴 했지만 무책임하고 비상식적인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알메이다의 수비군은 5천에 불과했지만 어차피 좁은 요새 안에 더 많은 병력이 있어봐야 도움될 것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시우다드 로드리고가 10주간 포위 공격에 버티는 동안 물자를 비축하고 방비를 튼튼히 할 시간이 충분했으므로 프랑스군의 포위 공격에 상당히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습니다.  전장에서는 어떤 상황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고, 굳게 버티다보면 끝까지 요새를 지킬 수도 있었습니다.  미숙하기 짝이 없다는 스페인군도 무려 10주를 버티었으니, 윌리엄 콕스(Willian Cox) 장군의 영국-포르투갈 혼성군이 지키는 알메이다는 15주 혹은 20주를 버틸 수도 있었습니다.  말이 쉬워서 20주지 달로 따지만 그건 5달이었고, 해를 넘겨 한겨울이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야전군이 한 장소에서 여름부터 겨울까지 포위를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알메이다가 꼭 함락될 운명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100km 후방의 안전한 사령부 책상 위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장 8월 26일 아침 6시부터 프랑스군의 포격이 시작되자 알메이다 요새는 곳곳에 화재가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군은 스페인군을 미숙하고 군기도 없다고 비웃는 편이었지만, 뭐 영국군도 포위전에 그렇게 능숙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별다른 훈련도 받지 못했던 사라고사(Zaragoza) 민병대는 1차 사라고사 포위전을 거치며 농성전의 대가가 되어 있던 편이었지요.  가령 사라고사 수비대는 화약을 저장하는 방법도 남달랐습니다.  당시 화약으로 사용되던 흑색 화약은 초석과 유황, 숯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만드는 것이었는데, 사라고사 수비대는 혹시라도 적의 폭발탄이 화약고에 명중하여 화약고에 유폭을 일으킬까 염려하여 화약을 미리 섞어놓지 않고 초석 따로 유황 따로 숯 따로 보관했다가 매일 조금씩 배합하였습니다.  덕분에 별 모양의 근대식 요새가 아니라 중세 시대의 취약한 성벽으로 보호된 사라고사는 프랑스의 명장 장란의 공격 하에서도 무려 2달을 버틴 바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사라고사 수비군은 성벽이 무너진 다음에도 시가전을 벌이면서 1달 가까이를 더 버텼지요.  그러나 알메이다의 영국군은 그런 농성전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런 세심함의 작은 차이가 큰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초석과 유황과 숯의 적절한 배합률에 대해서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온스 단위로 소수점 한자리까지 정확하게 나옵니다.  심지어 적절하게 배합된 화약가루가 적절히 뭉쳐지기 위해서는 물 몇 온스를 섞어야 한다는 팁도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8월 26일 하루 종일 영국군과 포르투갈군은 프랑스 공성포대에 포격으로 반격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많은 화약통이 요새 중앙에 있는 중세 시대 건물에 위치한 탄약고에서 쉴새 없이 반출되어야 했습니다.  정확한 정황이야 알 길이 없지만 짐작되어지는 바에 따르면, 그렇게 굴려나오던 많은 화약통 중 하나가 다소 불량이었던 모양입니다.  화약통 하나가 반출되어 나오는 과정에서 화약을 질질 흘렸고, 그렇게 해서 탄약고로부터 요새 광장으로 길게 화약가루 지국이 마치 도화선처럼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녁 7시 경, 불붙인 도화선을 달고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요새 안으로 날아들던 프랑스군의 폭발탄(bomb) 하나가 하필 그 화약가루 자국 위에 떨어졌습니다.  대참사가 벌어지려면 적어도 10가지 이상의 사고가 겹친다더니, 하필 그때 화약고 문이 열려 있었던 모양입니다.  긴 화약가루 자국에 붙은 불은 순식간에 그대로 화약고를 향해 맹렬히 타들어갔고, 그 결과는 대폭발이었습니다.  




(별 모양의 알메이다 요새 내의 붉은 구글 위치 표지가 바로 문제의 화약고가 있던 알메이다 내성(Castelo de Almeida)의 잔해 자리입니다.  아직도 저렇게 텅빈 공간으로 비워놓았습니다.)



(구글 스트리트 뷰로 본 알메이다 화약고 폭발 장소입니다.  돌조각들만 남아있네요.)




당시 그 화약고 안에는 68톤의 흑색 화약과 1백만 발의 머스켓 탄약포가 저장되어 있었습니다.  흑색 화약은 현대적 폭약에 비해 폭발력이 강한 편은 아니라서 kg당 약 3 메가쥴(megajoule) 정도의 위력을 가집니다.  참고로 산소와 결합된 가솔린이 kg당 약 10 메가쥴의 위력을 내지요.  하지만 머스켓 소총용 탄약포를 빼고도 68톤입니다 !  이 폭발은 엄청난 위력으로 알메이다 일대를 뒤흔들었습니다.   탄약고가 있던 건물은 물론 그 일대의 건물은 가루가 되어 날아갔고, 그 자리에는 오늘날에도 흔적이 남아있는 구덩이가 생겼습니다.  나폴레옹 전쟁 사상 가장 큰 폭발로 기록된 이 폭발로 인해 전체 5천의 수비병력 중 6백이 즉사했고 3백이 부상을 입었지요.  이 모든 것이 프랑스군이 포격을 시작한 첫날 발생한 일이었습니다.


콕스 장군은 다행히 이 폭발로 부상을 입지는 않았습니다만, 한순간에 전병력의 20%를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이제 알메이다 요새 내의 탄약이 한순간에 다 날아갔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장 프랑스군에게 대포는 커녕 소총조차 쏠 수가 없게 된 것이었지요.  이 대폭발은 프랑스군에게도 큰 충격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일단 그 날의 포격전은 그 폭발을 기점으로 딱 멈추었습니다.  요새 내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었던 프랑스군은 다음날 콕스에게 조건부 항복을 권했고,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콕스는 그에 응해야 했습니다.  알메이다 요새는 이렇게 프랑스군과 영국군, 포르투갈군의 예상을 모두 깨고 불과 1달 만에 함락되었습니다.  




(영국 작가 Bernard Cornwell의 시리즈 소설 중 Sharpe's Gold가 바로 이 알메이다 요새 공방전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알메이다 요새의 폭발 사건을 매우 뜻 밖의 방향으로 전개시켰습니다.  그러나 스포일러가 너무 심하므로 여기서는 패스...  BBC에서 드라마로 만든 Sharpe's Gold 편은 알메이다 함락과는 전혀 상관없는 스토리로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리스본으로 향하는 마세나의 포르투갈 원정군을 막아설 것은 웰링턴의 야전군 밖에 없었습니다.  웰링턴은 과연 마세나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








Source : The Life of Napoleon Bonaparte by William M. Sloane

https://en.wikipedia.org/wiki/Combat_of_the_C%C3%B4a

https://en.wikipedia.org/wiki/Siege_of_Almeida_(1810)

https://en.wikipedia.org/wiki/Largest_artificial_non-nuclear_explosions

https://en.wikipedia.org/wiki/Robert_Craufurd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reinhardt100 2018.10.29 09: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새 내 탄약고가 그대로 날아가버렸네요.

    의외로 근대 공성전에서 탄약이 고갈되면서 공성전이 종료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끝까지 싸운 경우도 꽤 됩니다. 일례로 리블란트 전쟁 막판 프스코프 공성전이 대표적입니다. 1581년도 9월부터 1582년 1월까지 공성전이 벌어진건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군이 요새 내 탄약고를 포격으로 붕괴시켰는데도 끝내 함락되지 않았죠. 물론 여기는 정말 리블란트 전쟁판 낙동강 방어선 수준이라 그런 거도 있습니다만.

    말이 나온김에 리블란트 전쟁 후반기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공성전의 연속입니다. 나르바, 벤덴, 레발 등 에스토니아 북부을 시작으로 벨리키에루키 등 서부 러시아의 요새들에 대한 공성전이 벌어지고 마지막을 이 프스코프가 장식합니다. 폴란드-리투아니아, 스웨덴의 공세를 러시아군이 공성전으로 계속 틀어막는 식이었는데 가장 치열했던 공성전이 바로 프스코프 공성전이었습니다. 일단 한겨울 내내 공성전이 쉬지 않고 계속된데다가 양측 모두 프스코프가 함락되면 협상따위는 없고 그대로 모스크바 공략으로 진행된다는 것쯤은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필사적이었습니다. 실제로 프스코프 공방전 당시 러시아는 제대로 된 전력이 남아있지 않았으니까요.

    요새 공성전에서는 확실히 전원 옥쇄하는 걸 채택하면 끝도 없이 싸워야한다는게 제일 골치 아프겠더군요.

  2. 신록 2018.10.29 0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등!
    가문의 영광
    분산투자와 분산보관의 중요성

  3. 웃자웃어 2018.10.29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편이 웰링턴과 마세나의 격돌이군요.

  4. 석총 2018.10.30 2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부터 본격적인 마세나 표현대로 산을 만들기죠

  5. ㅇㅇ 2018.10.31 22: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폭발과정을 보니 영화 다이하드2 엔딩이 생각나네요(?)

  6. 42 2018.11.03 14: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 주 잘 보고 있습니다. 궁금한 것이 있어 그런데 별모양의 근대 성벽은 중세식에 비해 무엇이 장점인가요? 그리고 그에 대비한 지그재그식 포위진이 어떤 이점을 지니는지 궁금합니다 :)

    • 최홍락 2018.11.03 2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중세성벽과 달리 별모양 요새는 모서리마다 있는 삼각형 모양의 포루가 상호 간 엄호해줄 수 있도록 설계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겹의 참호와 둔덕으로 보호되고 성벽의 형태 자체가 낮고 두꺼웠던데다 성벽 뒤에 흙을 쌓아올려 포탄의 충격을 흡수했기 때문에 방어력이 막강하니까요. 더군다나 성형 요새 자체에도 요새포가 설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적 포병에 대한 반격도 가능하고요. 한마디로 십자포화로 방어망을 형성하는데 최적이죠.

      지그재그식 참호는 이런 포격을 최대한 회피하면서 적의 요새로 접근하기 좋게 만드는 교통호고요. 일직선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총포탄을 회피하기 좋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 nasica 2018.11.03 21: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홍락님의 완벽한 답변 감솨요

    • reinhardt100 2018.11.04 00: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실제로 별모양으로 성벽이 구획된 대표적인 경우는 키프로스의 수도 니코시아의 구시가지입니다. 니코시아 구시가지는 베네치아가 건설한 성채인데 최근에 남부 키프로스와 북부 북키프로스 간 상호 통행이 어느 정도 자유화되어서 관광하는데 좀 더 편해졌다고 합니다.

    • 42 2018.11.04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상세한 답변들 감사드립니다

저처럼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도, 술집에 가면 배불리 먹고 나옵니다.  바로 안주 때문이지요.  소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술 문화는 싸구려 소주 때문에 별다른 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고들 하지만, 사실 술 안주 문화는 상당히 발달된 편이지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중국도 술은 푸짐한 안주와 함께 먹는 것이 당연한 듯 합니다. 





(양소와 함께 명교 2대 꽃미남 중 하나였던 범요)




의천도룡기 by 신필 김용 (배경 : 원나라 말기) ----------------


조민이 앞장서 객점에서 다섯 집 건너에 위치한 작은 주막으로 들어갔다. 주막 안에는 드문드문 몇 개의 식탁이 놓여 있을 뿐 초라했다. 밤이 깊은 탓인지 손님이 전혀 없었다. 조민과 장무기는 식탁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았다.  범요는 손짓으로서 자기는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조민은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간단한 요리 두 접시와 백주 두 병을 시켰다. 술이 세 순배 돌자 조민은 나직하게 물었다.  


"장공자, 당신은 내가 누군지 이젠 알고 있겠죠?"


장무기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여양왕부의 군주라는 것을 알았소."


----------------------------------------------------------------------


그에 비해서, 서양의 술 안주 문화는 좀 빈약해 보입니다.  제가 본 문학 작품 중 술 안주를 가장 맛깔나게 묘사한 것은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로 기억합니다.  주인공 헨리가 캐더린을 데리고 스위스로 도망친 뒤, 가끔 캐더린이 병원에 간 사이에 맥주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소금을 친 크래커를 먹는 장면이 나오지요.  그때 주인공이 시원하게 맥주를 마시면서, 짭짤한 크래커에 의해 맥주 맛이 더 좋아지는 것을 느끼는 부분은 저처럼 술 잘 못마시는 사람에게도 입맛을 다시게 만듭니다.  헤밍웨이가 아무리 맛깔나게 묘사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안주가 고작 크래커라고 하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나마, 서양 문학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이 이상의 안주가 나오는 구문은 찾아보기 힘들지요. 






제가 카투사로 군에 갔을 때, 카투사 교관이 미군들의 행태(?)에 대해 설명하면서 설명한 것 중 하나가 미군의 술 문화에 대한 것입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걔들은 안주를 안 먹어'라는 것이었지요.  즉, 미군애들은 안주에 대한 개념 자체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왜 비싼 돈을 내고 굳이 요리를 먹어야 하느냐 ?  그럴 돈 있으면 술을 한잔 더 마시지' 하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걔들도 땅콩이나 크래커 같은 것을 조금씩 집어 먹기는 합니다.  아마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래도 술안주를 시킨다면 프링글즈 감자칩이 아주 인기 있었는데, 그나마도 안 시키는 족속들이 많았습니다.


왜 서양은 안주 문화가 이렇게 발달하지 못했을까요 ?  (항상 그렇지만)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이 나폴레옹 시리즈들을 읽으면서 눈치를 보니, 유럽인들은 술을 따로 마신다기 보다도, 주로 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시기 때문에, 따로 안주가 필요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Post Captain by Patrick O'Biran (배경 : 1803년 영국 군함 Polycrest 호 함상) -----------------------------


작은 대구 요리 뒤에는 자고새가 나왔는데, 잭은 이 새 요리를 각 손님의 접시에 한마리씩 올려놓으며 분배했다.  클라레 포도주 기운이 돌기 시작하면서 흥겨움이 돋아났고, 대화도 잘 흘러갔다.  갑판 위의 견시병에게도 함장실에서 꾸준히 이어지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자고새 요리뒤에는 4종류의 사냥 고기가 올라왔고, 그 절정은 (잭의 급사인) 킬릭과 장교 식당 급사 한명이, 고기즙이 흘러내리도록 둥근 홈을 파놓은 잘 닦은 갑판 해치 위에 얹어서 들고온 사슴 고기 덩어리였다.  


"부르군디 포도주를, 킬릭." 잭은 사슴 고기를 자르기 위해 일어서며 중얼거렸다.  손님들은 그가 고기를 자르며 애쓰는 것을 보느라 대화도 점차 잦아들었고, 고기가 각자의 접시에 놓여지자 모두들 잭처럼 열심히 고기를 썰어 먹었다.  


"신사 여러분," 캐닝은 그의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정말 해군 여러분은 잘 지내시는군요 - 정말 훌륭한 오찬입니다 !  맨션 가도 여기에 비하면 초라해 보입니다.  오브리 함장님, 이 사슴 요리는 제가 평생 먹은 것 중 정말 최고입니다. 정말 훌륭한 요리군요.  게다가 이 부르군디 포도주는 어찌나 훌륭한지 !  뮤지니(Musigny)인 것 같습니다만 ?"


"샹볼-뮤지니(Chambolles-Musigny)입니다.  85년 산이지요.  맛이 가장 좋을 때를 약간 지난 것 같아 아쉽긴 합니다.  이 포도주는 몇 병 남지 않았습니다만, 다행히도 제 급사가 부르군디는 별로 좋아하질 않아서요."


------------------------------------------------------------------------------------------------------------------------


이렇게 손님을 초대한 식사에서 손님을 잘 접대했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요리도 무척 중요했지만, 술도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대개 식사에는 와인을 곁들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와인에 안주가 딸려나올 이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맥주나 사과주(Cider) 같은 것은 싸구려 술로 구분되었으므로, 이런 정찬에는 절대 내놓지 않았고, 브랜디 같은 독한 증류주는 식사가 다 끝난 뒤에, 기호에 따라 담배와 함께 아주 약간 마시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브랜디는 100% 프랑스 산이었으므로, 특히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영국인들은 브랜디 대신 포도주치고는 독한 편인 포트 와인(Port wine)을 마셨습니다.  위스키는 아직 영국 사회에서 인기를 끌기 전이었고, 진(gin)은 하층민들이나 마시는 독주라는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던 시절이었지요.  (포트 와인에 대해서는 머나먼 항해를 위한 물과 술 이야기 참조)  사정이 그렇다보니, 무슨 사정이건 간에 좋은 와인이 없으면 아예 손님 초대가 불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식사를 하면서 곁들이는 포도주는 양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대략 1인당 1병 정도씩은 마셨고, 어떤 경우는 2병까지 마시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손님들 모시고 한창 기분 좋게 마시는 중에 와인이 떨어졌다고 하면 그 망신은 수습 불가였지요.  위 소설에서 이어집니다.



---------------------------------------------------------------------------------------------------------------------


잭은 선임 사관과, 당직 사관, 그리고 당직 미드쉽맨(midshipman), 그리고 군목을 오찬에 초대한 뒤, 갑판 위를 계속 걸었다.


(중략)

...


"싫은데요." 킬릭이 말했다.

"군함의 수병인 자네가 지금 무섭다고 말하는 건 설마 아니겠지 ?"

"무서운 거 맞는데요, 함장님." 킬릭이 대답했다.

"이런, 앞 선실을 치우고 거기에 천을 깔아. 그리고 클라레 포도주 12병의 코르크를 따 놓으라고."  


---------------------------------------------------------------------------------------------------------------------


하지만 포도주는 비싼 물건이었습니다.  특히 영국에서는요.  영국은 일조량이 형편없었으므로, 포도주는 모두 수입품이었거든요.  그래서 가난한 집안이나, 또는 아주 인색한 집안에서는 식탁에 내놓은 포도주의 양에 큰 제한이 있기도 했고, 이는 두고두고 손님들의 비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Master and Commander by Patrick O'Biran (배경 : 1800년 스페인 연안 미노르카 섬) -----------------------------


실망감의 연속이었다.  메르세데스를 만난 것이나 그녀가 잭에게 해 준 말들은 즐거운 편이었다.  하지만 즐거운 것은 그게 다였다.  키이쓰 경은 왜 오브리 함장이 제때 귀항하지 않는지 의아해하며 2일 전에 출항했다고 하트 함장이 재빨리 알려주었다.  하지만 별로 달갑지 않았던 엘리스의 끔찍한 부모님들은 아직 미노르카 섬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잭 오브리와 스티븐은 그들의 식사 접대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잭은 그 식사 자리에서, 작은 백포도주 반병을 4명이서 나눠 마시는 광경을 난생 처음 보아야만 했다.  실망감의 연속이었다.


-----------------------------------------------------------------------------------------------------------


위처럼 식사에 초대한 측이 포도주에 인색하게 구는 장면은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중에서도 나옵니다.  


이렇게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식사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무슨 용건이건 신사 계급의 손님이 오면, 괜찮은 술을 대접하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그렇게 포도주를 마시면서 일상적인 환담을 잠시 나누는 것이 예의였지요. 






The Mauritius Command by Patrick O'Biran (배경 : 1809년 남아프리카 희망봉) -----------------------------


(제독의 부관이 잭 오브리를 찾아와 잭을 소함대의 임시 지휘관, 즉 commodore로 임명한다는 명령서를 전달합니다.)


"그 피터 씨를 기꺼이 만나보도록 하겠네."  잭은 이런 예전 절차나 함대 내의 좋은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말했다.


이런 예전 절차 때문에라도, 잭은 이 제독 부관에게 뭔가 다과를 대접해야 했고, 또 그 예전 절차 때문에 부관은 포도주 병의 절반을 10분 안에 비워야 했다.  새로 임명된 함대 지휘관에게 주어진 이런저런 막대한 업무를 처리할 시간을 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 젊은 부관은 포도주를 적절한 시간 내에 빨리 마시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잭의 일생 중 이렇게 천천히 흘러간 시간도 따로 없었다.


--------------------------------------------------------------------------------------------------------


당시 사회 관습상, 10대 초반의 꼬마들도 미드쉽맨이나 소위로서 군에 복무하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이들에게도 술이 접대용으로 제공되었습니다.  사실 찾아온 손님을 급히 대접하려면, 커피나 차를 끓이고, 그렇게 뜨거운 음료를 천천히 마시는 것은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리니까, 아무래도 간단히 대접할 수 있는 술이 편했겠지요.




(다크 럼 한잔 ?)




Post Captain by Patrick O'Biran (배경 : 1803년 영국) -----------------------------


"바빙턴씨가 찾아왔습니다." 하녀가 알려왔다.

다이애나는 거실로 서둘러 내려왔다.  다이애나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다시 쳐다보았는데, 그녀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것보다 더 낮은 위치에서 3단 코트를 입은 작은 꼬마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았다.  

"빌리어스 부인이시지요 ? 바빙턴입니다,  모시러 왔습니다."


"오, 바빙턴씨, 안녕하세요.  오브리 함장께서 멜버리 장으로 당신이 저를 데리러 와줄 거라고 하시더군요.  언제 출발하시겠어요 ?  타고 오신 말이 추위를 타면 곤란하겠네요.  제 짐은 작은 트렁크 하나 뿐이에요.  그건 이미 다 정리해서 앞문 옆에 놓여 있어요.  떠나기 전에 와인 한잔 하시겠어요 ?  아니면 해군 장교들께서는 럼을 더 좋아하실까요 ?"


"추위를 몰아낼 럼 한 잔이면 정말 좋겠네요.  함께 드시겠습니까 ?  밖은 아주 싸늘합니다."


"아주 작은 럼 한잔, 거기에 물을 아주 많이 타라구." 다이애나가 하녀에게 속삭였다.  하지만 하녀는 바빙턴이 끌고 온 희한한 작은 마차(dogcart)의 존재 때문에 정신이 없었는지 물이라는 단어를 이해를 못했던 모양이었다.  하녀가 가져온 잔에는 암갈색의 진한 럼주가 잔 입구까지 넘실거리고 있었고, 바빙턴은 아주 침착하게 그걸 주욱 들이켰다.


-------------------------------------------------------------------------------



그런데 이렇게 식사 때 제공되는 포도주가 아니라, 그냥 접대용으로 제공되는 포도주는 정말 아무런 안주가 없이 깡술로 제공되었을까요 ?  별 다른 안주없이 제공되기도 했습니다만, 안주가 제공되기도 했습니다.  다만, 안주는 그저 비스킷(건빵) 정도였습니다.





Master and Commander by Patrick O'Biran (배경 : 1800년 스페인 연안 미노르카 섬) -----------------------------


잭은 종을 울렸고, 다양한 군함 내의 소음 속에서도, 그의 급사가 서둘러 걸어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킬릭," 그가 말했다. "그 노란 레이블이 붙은 마데이라 포도주를 2병 가져와.  그리고 루이스 (Lewis) 비스킷도 좀 가져오고.  그 친구는 캐러웨이 씨가 든 케이크는 잘 못 만들더라고."  뒤의 말은 스티븐에게 한 설명이었다.


---------------------------------------------------------------------------------------------------------------








The Letter of Marque by Patrick O'Biran (배경 : 1813년 대서양) -----------------------------


"이런, 이런," 잭이 말했다. "아무튼 그건 잘 해봐야 가능성이 희박한 일(a long shot)이었어.  아무튼 이 생선들을 잡은 것을 축하하기 위해 약한 맥주나 한 잔씩 하자고.  잘 구운 가다랑어 스테이크만큼 좋은 것도 또 없지.  킬릭, 킬릭, 맥주 두 잔과 그걸 넘기는 것을 도와줄 비스킷을 좀 가져와."  하루 중 이런 낯 시간의 시원한 맥주는 과히 나쁘지 않았다.


-----------------------------------------------------------------------------------------





The Surgeon's Mate by Patrick O'Biran (배경 : 1813년 영국 해군 발틱 함대 함상) -----------------------------


"머투어린 박사를 소개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해군성에서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잭이 말했다. "제임스 소머레즈 경이시네."


"머투어린 박사를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쁘오."  제독이 말했다.  "박사님을 뵐 것이라고 반쯤만 기대하고 있었소.  그리고 박사께서 가져오신 편지의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구료.  즉각 읽어보도록 하겠소.  약간 다과라도 하시겠소 ?  난 이 시간에는 항상 와인 한두 잔과 비스킷을 든다오.  내 동생 리차드가 그렇게 권하더군.  박사도 내 동생을 아시는 것으로 아오만 ?"  마지막 말은 스티븐에게 목례를 하며 말한 것이었다.


-----------------------------------------------------------------------------------------------------------


결국 안주는 비스킷 정도가 전부였을까요 ?  고명하신 해군 제독까지도 비스킷을 먹을 정도니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저 위의 비스킷들은 해군이라는 특성상 어쩔 수 없어서 그랬던 것이지요.  부유한 가정에서는 이런저런 프랑스식 오브볼(hors d'oeuvre) 요리도 술안주로 많이 제공되었습니다.





Treason's Harbour by Patrick O'Biran (배경 : 1813년 지중해 몰타 섬) -----------------------------


(가난한 해군 장교 부인인 필딩 부인이 주변 해군 장교들에게 경제 수준에 맞는 접대를 합니다.  돈이 없어서 포도주는 접대를 못하지요.)


가난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음악회를 열곤 했다.  그녀는 자기 집 마당의 나무에서 열리는 레몬으로 만든 레모네이드와 손님 일인당 1개씩의 나폴리 비스킷을 접대했다.


(중략...  프랑스 간첩의 협박과 지원을 받은 필딩 부인은 호화로운 접대를 하며 스티븐을 유혹하려 합니다.)


그녀는 스티븐을 집안으로 안내했고, 스티븐의 눈에는 정말 기존의 레모네이드 핏처 대신 펀치 보울이 놓여 있는 것이 들어왔다.  혁신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폴리 비스킷 대신 빵 조각 위에 앤초비와 뭔가 붉은 반죽을 얹은 것이 준비되어 있었다.  


------------------------------------------------------------------------------------------------






정리하면, 서양 사람들에게도 안주는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히 서양 안주는 비스킷 정도로 매우 단순한 편인데, 그 이유는 대개 서양애들은 식사와 함께 술을 마시기 때문에 따로 안주가 필요없는 것이지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고구마 2018.10.25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빠!! 가문의 영광!!

  2. 까까님 2018.10.25 16: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빠가 싫어서 이빠 ㅎㅎ
    한때 12시 까지 야근을 해도 각2병 마시고 퇴근하던 똥군기가 있었는데...
    식사를 겸해서 먹기는 마찬가지지만 시간적 여유가 없으니 술도 안주도 무거워질 수 밖에요
    짧은 시간에 식사와 헬렐레를 모두 채우려니...
    밥 먹으면서 적당한 도수의 술을 마실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부럽네요

  3. Spitfire 2018.10.26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서양은 저녁 술자리에 안주가 없는 대신 낮에도 반주를 하며 식사를 하는게 전혀 어색하지 않은거 같습니다. 한국에선 점심식사에 소주 나오면 얼굴 찡그리는 사람도 꽤 있었습니다만..

    미국친구들은 일 끝나고 happy hour를 즐긴다고 바에서 술을 하면서 담소를 나눈다음 자리를 옮겨서 다시 저녁을 먹으러 가더라구요. 한국사람인 저는 해피아워에 주전부리 잔뜩 시켜먹어 배가 부른지라 저녁은 항상 같이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ㅠㅠ

  4. 카를대공 2018.10.26 1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쩐지 미드나 소설에서 주인공이 바에 가서 위스키 한 잔만 시키고 폼 잔뜩 잡는 이유가 있었군요.

칩, 변호사, 그리고 넷플릭스 이야기

잡상 2018. 10. 22. 06:30 Posted by nasica

최근 중국이 아마존과 애플의 데이터센터에 납품되는 수퍼마이크로(Supermicro)사의 서버에 쌀알만한 크기의 스파이칩을 심어서 정보를 빼내려했다는 블룸버그 뉴스가 세상을 흔들었습니다.  맨 처음에 그 뉴스를 보고 저는 전형적인 가짜 뉴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모든 HW는 그 자체만으로 동작할 수는 없고, 펌웨어(firmware) 및 운영체제(OS) 등의 소프트웨어의 지원이 있어야 동작합니다.  아마존과 애플 등의 기업이 서버를 납품 받은 뒤 어떤 운영체제를 쓸지, 또 언제 펌웨어를 업데이트할 지 모르는 상황에서 저런 스파이칩을 심어둔다는 것은 너무 요행을 바라는 일입니다.


2) 일반 클라우드에 사용되는 서버라면 그 속에 탑재된 데이터가 보안상으로는 크게 쓸모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대로 기업이나 국가의 기밀 데이터를 처리하는 서버라면 인터넷 망과는 분리된 곳 내에 위치하는데, 그럴 경우 어차피 스파이칩을 탑재해도 외부로 데이터를 빼돌리거나 외부로부터 명령을 받을 방법은 없습니다.


3) 마이크로칩이라는 것이 의외로 크기도 크고 전기도 많이 먹습니다.  저런 쌀알만한 스파이칩에서 할 수 있는 오퍼레이션은 매우 제한적이라서, 특정 데이터만 골라내어 특정 장소로 보내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네트워크 상을 오가는 모든 정보를 압축해서 어딘가로 redirect하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르겠는데, 그럴 경우 그 엄청난 데이터 중에서 쓸모있는 정보를 추출하는데에 엄청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합니다.  그건 정말 쓰레기 속에 포함된 미세 금가루를 모아서 금괴를 뽑아내겠다는 계획과 비슷합니다.  비용 대비 효용성이 너무 떨어지는 일입니다.  


4) 게다가 이렇게 하드웨어 칩을 심어놓는다는 것은 적발될 위험이 너무 큽니다.  위에서 가정한대로 모든 네트워크 트래픽을 어딘가로 redirect하는 방식이라면 일부 서버들에서 지나치게 많은 네트워크 트래픽이 나가는 것이 들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클라우드 업체들은 들어오는(in-bound) 트래픽에 대해서는 과금을 하지 않지만 나가는(out-bound) 트래픽에 대해서는 과금을 하거든요.  들킬 수 밖에 없습니다.  


5) 그렇게 무식한 방법 말고 서버에 백도어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될 무언가의 기능을 그 스파이칩에 심어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닌가라는 생각도 할 수 있습니다.  글쎄요, 하드웨어 기능만으로 정상적인 OS 및 보안 소프트웨어 기능을 override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만, 가능하다고 해도 그런 건 그냥 순수하게 소프트웨어적으로 파고드는 것이 훨씬 나을 것입니다.


6) 무엇보다, 이렇게 많은 노고와 비용을 들여서 들킬 위험이 높은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은 바보같은 짓입니다.  그럴 돈이 있다면 차라리 뇌물을 주고 정보를 캐내는 것이 훨씬 더 성과가 좋을 것입니다.  설령 미국인들이 애국심이 너무 투철하여 아무도 뇌물을 받지 않는다고 하면 차라리 그 돈으로 (여태껏 하던 것처럼) 바이러스나 맬웨어 등의 소프트웨어 방식으로 해킹을 하는 것이 훨씬 더 상식적이고 효율적이며 또 안전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칩 사진을 실제 발견된 칩의 모습이라고들 생각하시더군요.  실제로 이 사진이 진짜 그 칩의 실제 사진인지 또는 단순한 예시 그림인지에 대해서는 아무 설명도 근거도 없다고 합니다.)




저는 당연히 하루이틀 안에 저 뉴스가 오보라든가 가짜뉴스였다든가 하는 식으로 해명이 될 줄 알았는데, 소동이 점점 커져서 깜짝 놀랐습니다.   무엇보다 의아했던 것은 해외든 국내든 저런 하드웨어나 OS, 네트워크 및 보안 분야의 전문가들이 '말도 안되는 소리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라는 말을 할 줄 알았는데 아무도 안하시더라고요.  생각해보면 그것도 이해는 가는 것이, 내가 못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못할 거라고 큰 소리치는 것은 위험하거든요.  저도 그런 보안 분야에 전문가가 아니라서 혹시 그런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 속으로 비웃고 계실 수도 있겠습니다.  미국이나 영국의 각종 정보기관들에서도 이 보도에 대해서는 '블룸버그의 보도가 틀렸다는 말은 못 하겠고, 블룸버그의 보도가 틀렸다는 기업들의 보도는 맞다' 라는 식의 모호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저도 감히 블룸버그의 보도가 가짜 뉴스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냥 저는 제 상식으로 볼 때 가짜 뉴스같다라고 생각한다는 소신을 밝힐 뿐이지요.


그렇다고 이번 포스팅이 그런 기술 쪽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주제는 바로 미국의 손해 배상 소송입니다.  당연히 저는 법률가가 아니므로 전문 지식은 없고요, 단지 제가 존 그리셤의 법정 스릴러 소설을 많이 읽었습니다.  존 그리셤은 변호사 출신의 소설가인데, 우리나라에서는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의 원작 소설인 'The Firm'으로 유명하지요.  


스파이 칩 이야기로 시작했다가 갑자기 웬 법정 스릴러 소설 이야기로 방향이 튀느냐하면 아래 기사 때문에 그렇습니다.


https://finance.yahoo.com/news/super-micro-investor-alert-faruqi-171200263.html


위 스파이 칩 뉴스가 나오자마자 애플과 아마존 등 블룸버그에서 보도한 피해 당사자들은 '전혀 그런 사실 없다'라고 반박 보도를 했습니다.  그 이후 이어진 보도에서 지목된 통신사들도 '난 그런 칩 본 적도 없다'라고 다 부정했고요.  하지만 당장 기업들은 그 보도로 인해 주가에서 큰 손실을 보았습니다.  특히 문제의 서버를 만들었다는 수퍼마이크로의 주가는 보도가 나온 날 40% 넘게 폭락했습니다.  




(만에 하나, 이 스파이칩 소동이 중국 때리기의 일환으로 지어낸 이야기라면, 왜 하필 수퍼마이크로사가 그 타겟이 되었을까요 ?  중국에서 서버를 생산한다는 점 외에도, 수퍼마이크로는 대만계 미국인이 창립한 회사이긴 합니다.  하지만 수퍼마이크로는 상당히 유명하고 클 뿐만 아니라 나스닥에 상장된 미국 회사로서, 많은 미국 금융사들과 개인들이 저 회사에 투자를 한 상태입니다.  이걸 그냥 중국 때리기를 위해서 지어낸 뉴스라고 보기엔 피해가 너무 큽니다.  결론적으로 저는 이게 가짜 뉴스인지 단순한 오해인지 혹은 진짜 뉴스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몰라도, 미국에서는 손해가 발생했으면 당장 변호사들이 나섭니다.  아니나 다를까, 위 링크에서처럼, 저 보도가 나온지 1주일만에 '이 보도로 인해 5만불 이상의 투자 손실을 보신 수퍼마이크로 주주님들 모십니다'라는 광고성 기사가 나왔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물론 없고, 그냥 '주주님들께 비용이나 책임 부담이 가는 일 없으니 연락을 주세요'라는 것이지요.  이런 소송의 결과는 당장 나오지 않고, 1심을 거쳐 항소심까지 적어도 몇 년간을 질질 끄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그 과정에서 그냥 적절한 금액에 합의를 하는 경우도 꽤 많은 모양입니다.  


If you invested in Super Micro stock or options and would like to discuss your legal rights, click here: www.faruqilaw.com/SMCI. There is no cost or obligation to you.

You can also contact us by calling Richard Gonnello toll free at 877-247-4292 or at 212-983-9330 or by sending an e-mail to rgonnello@faruqilaw.com.


우리나라에서도 이렇게 대규모 손해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지요.  바로 대진 라돈 침대 사건입니다.  제 지인 중에 그 피해 당사자가 있어서 그 과정을 대략 들었는데, 법무법인에서 저런 식으로 '대진 침대 피해 소비자 모십니다'라는 식의 홍보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용을 보니 미국 법무법인의 광고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손해 배상 소송을 원하시는 고객님들은 법무법인에게 10만원씩 비용을 입금하셔야 하고, 건강 이상 등으로 인한 피해까지 보상받고 싶으신 분은 30만원씩 입금하셔야 합니다.  건강검진 및 그 진료기록 발부 비용은 별도로 고객분 부담입니다' 라고 하더라고요.  최근 나온 보도를 보니 대진 침대 측의 자금이 고갈되어, 어차피 남은 자산을 다 처분해도 피해자 1인당 돌아갈 금액은 18만원도 되지 않는다고 하니, 10만원씩 납부한 사람들도 그렇고 특히 30만원씩 납무한 사람들은 오히려 손해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듭니다.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법무법인에서는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데 자세한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


즉, 피해자분들에게 아무 비용 부담이 가지 않는다는 미국 법무법인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셈입니다.  존 그리셤의 소설들 중 꽤 많은 소설이 저렇게 교통사고라든가 의약품/제조품 하자에 의한 피해에 대해 무작정 소송을 걸어 먹고 사는 소위 '길거리 변호사'에 대한 것들입니다.  그 중에는 '불법의 제왕'(The King of Torts)처럼 그런 집단소송제도의 폐해를 다룬 것도 있습니다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기본적으로 존 그리셤은 그런 변호사들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 중 순기능 부분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존 그리셤 소설은 '소송사냥꾼'(The Litigators, '소송인들')이었습니다.  이것도 매우 재미있었는데, 한줄 요약하면 대형 제약사의 의약품에 하자가 있다는 소문만 믿고 무턱대고 소송을 걸었다가 낭패에 처하는 변두리 동네의 3류 길거리 변호사들 이야기입니다.  반쯤 코미디에 가까운 이 소설 속에서의 그 3류 변호사들도 저 위에 제가 인용한 링크의 변호사들처럼 '피해를 보신 분들은 제게 연락주세요, 비용이나 책임 부담 없이 여러분의 권리를 찾아드립니다 전화 번호 xxxxx' 라는 광고를 합니다.  그러나 그 변호사들은 돈이 없어서 저렇게 야후 파이낸스 뉴스에 나오거나 TV 광고를 하지는 못하고, 비용을 아끼려고 전단지를 직접 뿌리거나 동네 클럽 트럼프 카드 뒷면 등에 광고를 게재하는 정도입니다.  


미국에서도 소송에는 돈이 듭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듭니다.  물론 저는 존 그리셤 소설의 애독자일 뿐 전혀 법률 지식은 없습니다만, 미국에서는 그런 소송 비용을 소송 당사자, 즉 피해를 입은 원고가 부담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원고들을 찾아내서 모으고 설득하여 위임장을 받은 변호사들이 부담하는 경우가 많은 모양입니다.  변호사들은 피해자들을 모집하는 광고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건강 검진 비용도 다 부담하고, 심지어 법정에서 원고에게 유리한 증언을 해줄 각종 의학 약학 전문가들에게 줄 수고비 등도 다 부담합니다.  그런 전문가들은 한번 증언을 해주는 대가로 7만불 정도를 받는 것으로 나오는데, 이 길거리 변호사들의 평소 수입이 연간 5만불 정도입니다.  그런 전문가를 1명만 부르는 것은 말도 안 되고 여러 명을 불러야 합니다.  가난한 동네 변호사들에게는 엄청난 비용입니다.  그러니 이런 제조물 배상책임 소송은 당사자들에게는 정의와 불의의 대결이기도 하겠지만 변호사들에게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거액 법률 투자 사업에 가까운 셈입니다.  몇 년씩 끌 수도 있는 이런 재판에서 이기면 변호사들은 일확천금이지만, 지면 빚더미 위에 오르는 것이지요.


저런 소송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습니다.  장점으로는 피해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것이 매우 쉽기 때문에, 법률적 지식이 없어 일방적으로 당할 수 밖에 없는 소비자들도 쉽게 손해 배상을 받을 수 있고, 그로 인해 기업들이 사업을 할 때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 없도록 매우 조심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 있습니다.  특히 징벌적 배상 제도가 있는 미국에서는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갈 것을 알면서도 회사 수익을 위해 뭔가 좋지 않은 짓을 저지른 기업은 그로 인해 회사가 파산할 지경에 이르는 손해를 볼 수 있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언제 무슨 말도 안 되는 꼬투리를 잡아 소송을 당할지 모르니 그런 위험에 대비하여 제품 연구 설계 생산 단계에서부터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밖에 없고 그로 인해 비용이 너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특히 소송이 벌어지면 법률 서비스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갈 수 밖에 없는데, 그런 변호사 비용이 결국 모두 제품 비용에 반영될 수 밖에 없고 그 부담은 결국 대다수 소비자들에게 전가되는 형태가 되는 것입니다.  


미국은 변호사들이 넘쳐나는 사회이고, 그로 인한 순기능도 많지만 그 때문에 많은 폐해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가령 (농담인지 진짜인지 모르겠는데) 미국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에는 '살아있는 애완동물을 넣고 돌리지 마시오'라는 황당한 경고 문구가 적혀 있는데 그건 미국인들이 하도 멍청해서 그렇다라는 소리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그게 미국인들이 멍청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소비자들에게 충분한 경고를 하지 않아서 이런 피해가 발생했다'라는 소송을 당하지 않으려고 법률 자문을 거치다보니 그런 경고 문구가 제품이 붙게 되었다는 소리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뜨거운 고대기를 눈에 갖다 대지 마세요.  그러면 눈이 아야 해요")




또 다른 예로, 주택 임대업도 그렇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FIRE(Finance Independence Retire Early, 즉 조기 은퇴)에 관심이 많아서 레딧의 FIRE 쓰레드에 가끔씩 들어가 보는 편입니다.   그런데 노후를 위한 투자로는 부동산 임대업이 최고인 우리나라와는 달리, 미국 쪽에서는 노후 대비용 투자로 무조건 펀드를 선호하더라고요.  물론 그 쪽에서도 rental properties라고 해서 부동산 임대도 재테크 수단으로 하고 있다는 사람들이 종종 글을 올리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부동산 임대업이 노후 준비에는 부적절하다고 보고 있더군요.  이유는 부동산 임대업을 할 경우 건물 관리와 소송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과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누가 댓글로 이런 말을 써놓은 것을 읽었는데, 미국이 진짜 '길거리 변호사들의 나라'라는 느낌이 확 오더라구요.  "세입자들은 지가 멍청해서 계단에서 넘어지더라도 집 주인에게 소송을 건다구 !"  하긴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길거리 변호사들이 제일 많이 들락거리는 곳이 바로 병원 응급실입니다.  뭔가 다쳐서 누워있는 환자에게 무작정 다가가서 왜 다쳤냐고 묻고는 그냥 집에서 넘어졌다고 해도 '그건 미끄럼 방지 장치를 안 해놓은 집주인 잘못이다, 내가 치료비와 위자료로 한 몫 챙기게 해주겠다, 소송 비용은 내가 댈테니 이 위임장에 서명만 해라' 라고 나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명하지 않겠습니까 ?


소비자의 피해 보상이 우선이냐 기업의 활동이 더 우선이냐의 문제는 꼭 선악의 대결은 아닙니다.  기업 활동이 지나친 소송으로 인해 위축된다면 결국 일자리가 줄어들어 서민들의 생계부터 막막해질테니까요.  다만 존 그리셤 소설 속에 나오는 아귀떼 같은 길거리 변호사들의 맹활약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는 계속 혁신적인 기업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 큰 그림에서는 저런 잦은 소송이 결국은 순기능을 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존 그리셤의 '소송사냥꾼'이라는 소설 속에서도, 비록 저 3류 변호사들은 망신과 함께 큰 금전적 손해를 보게 되지만, 결국 사회적 순기능을 보여주는 훈훈한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되니까 여기까지만 할게요.


우리나라는 피해를 막기 위한 규제는 많지만 정작 소비자에게 피해가 발생했을 때 보상을 받을 길은 막막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냥 제가 느낀 감이 그렇다는 것이고, 실제로 외국 사례와 비교할 때 어떤지 자료는 전혀 없습니다.  인공지능 관련하여 어떤 교수님이 불평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그 분 말씀에 따르면 '미국 등에서는 의료 정보 등 개인 정보 등도 이 정보가 어떤 개인에 대한 것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비식별처리를 거치면 얼마든지 이용하여 품질 좋은 인공지능을 개발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냥 무조건 개인 정보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바람에 인공지능 개발에 애로사항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사실인지 여부인지는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만, 미국은 아귀떼 변호사들 때문에라도 우리나라에 비해 꼭 기업 친화적인 사회가 아니라는 사례는 하나 알고 있습니다.  




(구글에서 de-idenitification 이라는 키워드로 찾은 그럴싸한 비식별화 과정입니다.  무슨 SW 제품의 설명서 같기도 하군요.)




넷플릭스가 어떤 회사인지는 다들 아실 것입니다.  넷플릭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그 추천 시스템이었습니다.  가령 저처럼 제2차 세계대전 영화 좋아하고 좀비 영화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죽은 나찌 병사들이 좀비로 부활해 쳐들어온다'라는 내용의 영화가 있다면 비록 잘 안 알려진 영화라고 해도 돈 내고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식으로, 몇 개의 영화를 본 시청자에 대해, '이런 영화도 좋아하실 것 같네요' 라며 다른 영화들도 시청할 것을 추천해주는 것이 추천 시스템입니다.  넷플릭스 자체 평가로도, 이때 시청자의 취향을 얼마나 잘 파악해서 제대로 된 추천을 해주느냐가 매출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친다고 합니다.




(넷플릭스 자체 평가로는 매출의 무려 75%가 이 추천 시스템에 의한 것이라고...)




넷플릭스에는 많은 데이터 과학자(data scientist)들이 있어서 자체적인 추천 시스템을 만들어 가지고 있지만, 더 나은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현상 공모를 했습니다.  즉, 자사가 보유한 시청자들 및 그들이 본 영화, 그리고 거기에 대해 시청자들이 매긴 영화 평점이 들어있는 데이터셋(dataset)을 제공하고, 그로부터 가장 정확한 예측을 해내는 모델을 개발해내는 팀에게 1백만불을 주는 경진 대회를 연 것입니다.  이 연례 경진 대회를 넷플릭스 프라이즈(Netflix Prize)라고 했습니다.  빅데이터 세계의 문학 공모전 같은 것이었지요.  이 대회를 통해서 빅데이터 알고리즘에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이 넷플릭스 프라이즈에는 어떤 개인이나 기관, 단체든 다 참여가 가능했습니다.  외국인들도 물론 참여할 수 있었고요.)




물론 이 데이터셋의 자료는 철저히 비식별화처리가 된 것이었습니다.  시청자의 ID는 물론, 영화 제목까지도 철저히 비식별화 처리를 했습니다.  따라서 연구자들이 볼 수 있는 데이터는 가령 시청자 u00187가 영화 m01834을 보고 3점, 영화 k089312을 보고 4점을 줬다 라는 식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비식별화 처리를 한 이유는 오로지 수학적 모델에 의해서만 정확한 예측을 하는지 확실히 평가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가령 nasica라는 이름의 시청자가 '애마부인 바람났네'라는 영화를 보고 5점 만점을 줬다는 것이 알려지면, nasica라는 필명으로 페이스북을 하면서 점잖은 척 하던 사람이 망신을 당하는 사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도 개인 정보라고 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데이터 과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해오던 넷플릭스 프라이즈는 2010년 돌연 중단되었습니다.  이유는 역시 소송 때문이었습니다.  두 명의 데이터 과학자들이 IMdb(Internet Movie Database)에 공개된 영화 평점 기록과 맞춰보면 넷플릭스 프라이즈에서 제공된 비식별화 처리가 된 데이터셋에서도 실제 시청자 ID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던 것입니다.  이 연구에 기반하여, 2009년 겨울 네 명의 넷플릭스 회원들이 넷플릭스가 자신들의 개인 정보를 부당하게 공개했다는 집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결국 다음 해에 넷플릭스는 이 소송꾼들과 (알려지지 않은 조건으로, 아마도 합의금을 지불하고) 합의를 했고, 넷플릭스는 이 경진 대회를 폐지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보면, 미국에서는 법을 잘 지켰다고 하더라도 어쨌거나 기업의 제조물 또는 서비스로 인해 개인이 피해를 입으면 그 기업은 손해 배상을 할 책임을 지는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습니다.  Deep learning을 이용한 인공지능 훈련에는 많은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특히 당장 적용하기 매우 좋은 use case가 바로 의료 분야인데, 이 분야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민감한 개인 의료 기록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비식별화를 한다는 조건 하에, 많은 연구 기관들이 개인 정보를 그런 인공지능 개발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법제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있지요.  저는 거기에 대해서 찬성 반대 의견이 따로 없습니다만, 나중에라도 어떤 진보된 데이터 기법에 의해, 그런 비식별화된 데이터셋 속의 환자의 이름이 사실은 nasica이고 이 환자는 치질과 성병, 무좀 등을 앓았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면, nasica라는 사람은 해당 병원이나 연구소로부터 어떤 배상을 받아낼 수 있을지 궁금하기는 합니다.





사족)




존 그리셤의 작품은 대부분 아주 재미있습니다만, 제게 아주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어필'(The Appeal, 항소)라는 소설이었습니다.  한줄 요약하면, 어느 미시시피 시골 마을을 환경 오염으로 망쳐 놓은 화학회사가 긴 소송 끝에 1차심에서 엄청난 액수의 징벌적 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받게 되자, 공석이었던 미시시피 주 대법원(supreme court) 판사직 선거에서 보수파 인물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당선시킨 후 항소심에서 결국 승리를 따낸다는 씁쓸한 내용입니다.  미국은 판사를 다 지역 주민들의 선거로 뽑더라고요.  소설 속에서 화학회사의 선거 지원 과정에 불법은 전혀 개입되지 않습니다.  그 소설에서 존 그리셤이 주장하는 바는 제게는 다소 뜻 밖이었습니다.  그가 주장한 바는 '대법원 판사직을 선거로 뽑을 경우 막대한 자금력을 동원할 수 있는 자본가들과 기업들이 승리할 수 밖에 없으므로 그런 판사들은 선거제가 아닌 임명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주민들의 투표율이 매우 낮은 미국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미국 정치 현실은 정말 재미있게 본 '미스 슬로운'(Miss Sloane)이라는 영화에서도 나옵니다.  거기서 제시카 차스테인이 열연한 미스 슬로운이 말하지요.  "총기 규제에 대한 여론 조사를 하면 항상 규제 찬성이 높게 나오지만, 정작 의회에서는 항상 반대로 귀결되는 이유를 아느냐 ?  총기 규제 찬성하는 사람들은 투표장에 가지 않기 때문이다.  열혈 옹호론자는 투표장에도 갈 뿐더러 규제 반대를 주장하는 의원들에게 정치 후원금을 보낸다."  정의고 뭐고 결국 정치는 투표로 결정을 짓는 법인데, 그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돈이라는 것이지요.  


영화 속에서는 미스 슬로운의 자기 희생으로 그런 부조리를 깼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이 없지요.  그런 부조리를 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시민들의 높은 투표율 밖에 없습니다.  물론 가짜 뉴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도 필요하겠지요.  




(진짜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보니 제시카 차스테인은 무엇보다도 발음이 명확하고 어려운 대사를 술술 잘하는 것 때문에 좋은 역할을 많이 맡는 것 같아요.  역시 대배우의 기본은 얼굴보다는 발음과 발성인 것 같습니다.)





Source :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18-10-04/the-big-hack-amazon-apple-supermicro-and-beijing-respond

https://www.theregister.co.uk/2018/10/08/super_micro_us_uk_intelligence/

https://en.wikipedia.org/wiki/John_Grisham

https://en.wikipedia.org/wiki/The_Litigators

https://en.wikipedia.org/wiki/Netflix_Prize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Spitfire 2018.10.22 1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홋 1등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넷플릭스처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진료기록을 토대로 빅데이터를 돌려보려고 했었지요. 물론 넷플릭스와 똑같은 이유로 중단되었습니다. 그때 그거 용역받았던 친구가 했던 말이 있지요. "누가 어디가 아픈지 알고 싶으면 그냥 돌려보면 돼~" 혹시 내껄?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더라구요.. 실제로 여러 산업계에서 빅데이터를 통해서 고객맞춤서비스를 제공하려는 노력이 있습니다만, 대부분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이유가 개인/기업들이 자신들의 정보가 노출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한국이 펀드보다 부동산 투자를 선호하는 이유는, 한국 펀드로는 노후가 답이 안나오기 때문입니다.ㅋㅋㅋ 미국이야 수십년동안 펀드 수익률을 보면 골치아픈 부동산보다 훨 낫지만, 한국은 그거 믿고 있다간 노후에 폐지라도 주워야할 판이니까요~ 일단 한국 주식시장 자체가 야바위 판이나 다름 없다고 일반 투자자들이 느끼고 있으니 그거부터 어떻게 바로잡아야 투자의 방향이 바뀌지 않을까 싶습니다.

    징벌적 배상이 다른 나라에도 있는가 모르겠지만, 홍콩을 놀러 갔을 때 애가 초콜릿 가게에서 벽을 샌들 신은 발로 찼는데 마침 거기 약간 튀어나온게 있어서 발에서 피가 났습니다. 한국 문화에서는 당연히 멀쩡한 벽을 발로 찬 애가 잘못이라 혼을 내고 있었는데, 직원들은 거의 사색이 되어서 덜덜 떨더라구요. 물건 산거 돈도 안받겠다고 하고 서비스도 준다고 하고 도대체 왜 그러나 싶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문화가 생기면 서비스가 참 좋아지겠다 싶으면서도, 이런거 이용해먹는 인간들이 득시글 댈거라 생각하니 또 그닥 맘이 편하지는 않더군요..



  2. 유애경 2018.10.22 1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애완동물을 넣고 돌리지 마시오' 들어 본적있습니다. 물론 미국 사람들이 그정도로 멍청한가 했는데 그런 걸로도 소송을 걸수 있는 소송 사회라서 자구책으로 그런 문구를 넣게 됬다고...
    비슷한 예라고 해도 될려나 모르겠는데
    미국에서 어떤 도둑이 남의 집에 침입 하려다 지붕에서 미끄러져 떨어져 다쳤는데 도둑한테 집주인이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났다는 얘기엔 정말 아연실색 했습니다.

  3. 성북천 2018.10.22 16:3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 그리셤이 우리나라 판사 임용제도를 보고도 같은 결론을 내릴지 궁금하군요? ㅎㅎ

  4. 1234 2018.10.22 21: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쎄요. 중국이 아프리카연합에 건물 지어주고 그 건물 곳곳에 도청장치 설치해서 걸린 전례를 생각하면.
    http://m.meconom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7583

  5. ㅇㅇ 2018.10.23 00: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국이 이미 F-35설계도 빼내서 짝퉁 만들고 있는데요

  6. 카를대공 2018.10.23 0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 그리샴하니 전 <소환장> 한 작품 밖에 안 봤군요.
    워낙 유명한 작가라 기대가 많았는데 솔직히 후반부 빼고는 상당히 지루했습니다ㅠㅠ

    제가 추리/스릴러 장르를 좋아하는데도 이거 영향인지 한동안은 일본 추리소설만 읽었습니다 ㅎㅎ

    근데 해리 보슈나 링컨 라임 시리즈는 또 재밌더군요.

  7. 0_- 2018.10.23 15: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어쩌다가 보니 연구방향이 기계학습을 도입하는 방향으로 선회중입니다. 최근 트렌드이기도 하다보니 어쩔 수 없네요. 항상 느끼는 건 데이터셋의 소중함입니다.
    특히 현업에서 사용되는 데이터가 정말 중요한데, 학술계에서는 기업과 일을 같이하지 않는 이상 이런 데이터를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심지어는 어느정도 명망있는 학자들끼리도 이런저런 이유들며 소스/데이터 공개 꺼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뭐 다들 일이 바쁘니 이해는 갑니다만...

    여튼, 이쪽 분야(익명 데이터 분석?)는 더 잘 모르지만, 언급하신 '두명의 데이터 과학자' '넷플릭스' '익명성' 같은 걸로 찾아보니 이런게 나왔네요.
    "How To Break Anonymity of the Netflix Prize Dataset." [A.Narayanan and V.Shmatikov, 2007] https://arxiv.org/abs/cs/0610105
    이건 arXiv 리뷰용이고, 아마도 제목이 너무도 원색적이고 특정 기업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선지, 정식 출판물은 "Robust De-anonymization of Large Sparse Datasets." 같이 제목을 많이 우회적으로 쓰긴 했네요. 이 논문이 학회상도 받고 미디어 인터뷰도 많이 받은걸로 보아, 아마 맞는 것 같습니다. 아예 FAQ 까지 만들어 놨네요 ^^; http://www.cs.cornell.edu/~shmat/netflix-faq.html

    제 분야는 아니라 살펴본들 시간낭비 같아서 논문은 abst만 읽고 FAQ 만 훑어 보았습니다만, 기본전제가 "IMDb에서 얻을 수 있는 공개ID와 선호도 - Netflix 익명화(하느라 노오력은 했던) 데이터" 쌍을 중심으로 특정한다는 건데, 넷플릭스가 대놓고 데이터를 다 공개한 것도 아니고, 모두가 IMDb 아이디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로 고소거는 건 좀 오바스럽네요. 뭐 넷플릭스가 아무도 읽지않을 사용자 약관에 "당신의 데이터를 시스템 개선에 쓸 수도 있습니다" 적는것을 까먹었다던가 하면 비싼 고소미 냠냠할 여지가 아직 아직 있긴 하겠지만요...

    다만 이렇게 또 하나의 현업 서비스 데이터가 또 캐비넷 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는 점에서는 좀 아쉽긴 합니다.

  8. ㅇㅇ 2018.10.23 15: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밀하게 말하면 항상 정보를 뺄 필요는 없죠. 하트블리드 취약성 버그에도 문제가 되는 건 무작위로, 어떤 정보가 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구요..

    그냥 간혈적으로 빼낼 수만 있어도 치명적입니다. 받는 쪽에서는 끈기있게 분석만 하면 되는 일이라서요..


    이런 종류의 문제는 방화벽으로도 완전히 해결이 불가능하고(가비지 데이터를 덤으로 붙여 보낸다는 식으로 처리하면..) 위험성이 있긴 합니다. 말씀대로 저 크기의 칩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독일 분들이 디젤엔진 연비 속이기 위해 기계장치를 집어넣은 전례도 있으니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거 같습니다. 중국 간첩이 무서워서 대만에 최신 전투기도 못판다는 세상인데요 뭐..ㅡ.ㅡ;;;

  9. ㅇㅇ 2018.10.23 17: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나시카님. 항상 월목마다 들르며 글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혹시 라인 연맹의 군주직인 prince-primate 직위와 그 직위의 권한에 대해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잠깐만 있었던 특수한 직위라 그런지 궁금해지네요.

    항상 글 정말 재밌게 읽고 있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ㅎㅎ

육류 요리의 정점, 젤라틴 이야기

잡상 2018. 10. 18. 06:30 Posted by nasica

저는 세상에서 제일 쉬운 요리가 고기 요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서양 고기 요리가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그쪽 방면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그런 생각에 절대 동의하지 않으시겠만요.  가령 삼겹살이나 생갈비, 스테이크 같은 것들은 그냥 고기를 불에 굽는 것이쟎습니까 ?  솔직히 '고기는 저 식당이 맛있다'라는 이야기는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맛에 차이가 있다면 그건 재료의 차이겠지요.  그냥 날고기를, 그것도 손님들이 직접 구워 먹는데 무슨 요리 솜씨가 필요하겠습니까 ?





(이게 요리라면 국민 모두가 일류 요리사...) 




물론 고기를 어떻게 자르느냐 하는 것도 요리라고 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긴 합니다.  가령 생선회같은 경우는 아예 불에 굽거나 삶는 과정조차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생선회는 사실 진정한 의미에서는 요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일 뿐입니다.  생선초밥은 예외...)


확실한 것은 고기 요리가 나물이나 해산물로 만드는 요리에 비하면 쉬워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다못해 (역시 요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샐러드를 만들 때도, 채소를 깨끗이 씻어야 하는 것이 꽤 귀찮은 일입니다만, 삼겹살이나 스테이크는 씻는 과정조차 없쟎습니까 ?  불고기처럼 양념장에 재워서 각종 채소와 함께 익혀먹는 요리는 물론 손이 많이 가는 요리이지요.  하지만 서양 고기 요리는 그렇게 복잡한 조리 과정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고기 요리라고, 특히 제게 멸시받는 서양 고기 요리라고 다 간단한 것만은 아닙니다.  아주 손이 많이 가는 요리도 있습니다.





Sharpe's Regiment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4년 영국) ----------


그 꾸러미는 낡은 검은색 망토로 싸여 있었다.  안에는 기름 종이로 포장된, 희미한 색깔의 부슬부슬 부서지는 치즈 덩어리 큰 것 하나와, 반 덩어리의 빵, 그리고 따로 기름 종이로 더 싼 이상한 젤리가 입혀진 고기 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이게 뭐죠 ?" 하퍼는 고기를 쳐다 보았다.


"모르겠는데."  샤프는 파울니스의 경비병에게서 빼앗은 총검으로 그것을 잘라 조금 먹어보았다.  "더럽게 맛있구만 !"


치즈 옆에는 가죽 지갑이 있었는데, 열어보니, 꾸러미를 준비해준 그녀에게 정말 고맙게도, 금화 3기니가 들어 있었다.


(이 이상한 고기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  다음날 밤 런던의 유명한 티-가든(tea-garen)인 복스홀 (Vaux-Hall) 가든에서 알려집니다.)


그는 그것을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잠시 후, 웨이터가 샴페인과 약간의 빵, 그리고 제인 기본스가 바로 전날 밤에 주었던 것과 똑같은 이상한 젤리가 입혀진 고기 덩어리를 가져왔다.  이제 느껴지기로는 어제 밤이 한달 전의 일 같았다. 


"이게 뭡니까 ?"


그녀는 그의 무식함에 미소를 지었다.  "갤런틴(galantine)이에요.  내가 당신의 일을 어찌 그리 잘 아는지는 궁금하지 않으세요 ?"


----------------------------------------------------------------------





(갤런틴은 주로 이렇게 예쁘게 잘라내어 차가운 상태로 서빙됩니다.) 




이 소설 속의 샤프 소령은 런던 극빈층 출신인지라, 갤런틴이라는 요리는 처음 본 것이 무리가 아닙니다.  원래 갤런틴(galatine)은 프랑스 요리거든요.  이 갤런틴이라는 요리는 소나 돼지, 닭 또는 사냥한 새의 고기에서 뼈를 발라내어 각종 허브 및 양념과 함께 삶은 뒤, 삶는 과정에서 흘러나온, 또는 별도로 추가한 젤라틴(gelatin)으로 굳혀서 만든 것입니다.  원래 뼈와 고기를 삶으면 기름도 나오지만, 그 중 일부는 젤라틴 성분이라서 식으면 굳쟎습니까 ?  뼈를 발라내느라고 부서진 고기 조각들을 젤라틴 성분으로 뭉쳐 눌러서 원통형 덩어리로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차가운 덩어리를 얇게 썰어 내놓는 것이 바로 갤런틴입니다.


이 요리는 '서양 고기 요리'치고는 상당히 복잡한 요리 과정을 거치는 지라, 꽤 고급 요리로 인식되고, 또 그 모양도 예쁘장하기 때문에 우아하다는 뜻의 galant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차가운 고기 요리라서, 정찬은 아니고, 주로 애피타이저 용도로 내놓는다고 합니다.


이와 비슷한 요리로서, braw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Hornblower and the Hotspur by C.S. Forester (배경: 1803년 프랑스 앞바다의 영국 함대) ---


(19세기초반, 나폴레옹 전쟁 당시 프랑스 브레스트 지역 앞바다에서 프랑스 항구의 봉쇄 임무를 지루하게 수행하던 영국군 함대의 함장들이 펠류 함장의 기함에 오랜만에 모여 펠류가 제공하는 오찬을 같이 하게 됩니다.  악명높기로 유명한 영국 해군의 식사지만, 그래도 제독과 함장들이 모이는 특별한 경우라서 상당히 호화스런 요리가 제공됩니다.)


쇠고기 스테이크 파이는 모두들 먹고 싶어하는 지라, 이제 남은 양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혼블로워는 하급 장교로서, 제독들과 함장들이 그 파이를 좀더 먹고 싶어할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해야 했다.  그리고 양파가 많이 들어간 돼지고기 스튜는 식탁 저 멀리에 놓여있었다. 


"저는 이걸로 시작하겠습니다."  그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자기 앞의 접시를 가리켰다.


"혼블로워의 판단력은 우리 모두를 부끄럽게 만드는군요."  펠류가 말했다.  "그 요리가 바로 내 요리사가 특별히 자랑하는 진미입니다.  그것과 함께 이 감자 퓨레가 필요할 걸세, 혼블로워."


그건 brawn이었는데, 혼블로워는  그것을 넉넉하게 잘라내어 자기 접시에 옮겼다. 그 안에는 뭔가 거무스름한 조각들이 박혀있었다.  그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그는 그의 상식을 긁어본 결과, 그 거무스름한 조각들이 들어보기만 하고 먹어본 적은 없는, 송로버섯(truffle)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




(헤드치즈는 치즈가 아닙니다.  그러나 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맞습니다.)




Brawn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냥 헤드치즈(head cheese)라고 나옵니다.  이 헤드치즈라는 요리는, 돼지나 송아지의 머리나 다리를 푹 삶아서 역시 자체에서 흘러나오는 젤라틴으로 굳힌 식품입니다.  원래 머리나 다리 부분에서 젤라틴이 많이 나오니까, 특히 그 부분을 재료로 많이 이용했지요. 


하지만 프랑스의 갤런틴과는 달리, 이 요리는 가축의 머리나 다리 관절 등과 같은 싸구려 재료를 써서 요리한 것이기 때문에, 그다지 고급 요리로 취급되지는 못했습니다. 





(이 사진은 미국에 이주한 스웨덴 사람들이 헤드치즈를 만드는 장면을 리인액트한 것이라고 하네요.  이렇게 헤드치즈는 서민층의 음식이었습니다.) 




역시 나폴레옹 시대의 영국 해군 장교의 모험담을 그린 패트릭 오브라이언의 명작 해양 소설인 Aubrey-Maturin 시리즈에서도, 이와 비슷한 요리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주인공인 영국 해군 함장 잭 오브리(Jack Aubrey)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가 'soused pig's face'라고 되어 있지요.  souse라는 단어는 소금이나 간수에 절이는 것을 뜻합니다.  즉 돼지머리를 삶아 소금 및 식초에 절인 뒤 눌러 놓았다가, 얇게 썰어낸 음식이 바로 soused pig's face입니다.





(이건 헝가리에 사는 분이 거기 시장에서는 돼지머리를 많이 판다며 올린 사진인데... 거기 돼지고기는 미국 등에서 먹은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출처는 http://horinca.blogspot.com/2014/05/ ) 




이렇게 설명하니까 '어라, 어디서 많이 듣던 요리 방식이다'라는 생각이 들으실 겁니다.  그렇지요, 바로 우리나라의 돼지머리 누른 것, 즉 편육과 거의 비슷한 요리 방식입니다.





(이거 가격이 싼 거 맞지요 ?  기쁜 곳(잔치집)이나 슬픈 곳(초상집)이나 공통적으로 나오는 음식입니다.)




네이버 지식인을 뒤져 보니 이렇게 나오더군요.



"고기를 푹 고아서 물기를 뺀 것이 수육 또는 숙육이고 고아서 얇게 저민것은 편육 또는 숙편이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덩어리째 삶아 베보에 싸서 도마로 판판하게 눌러서 얇게 저며 양념장이나 새우젓국을 찍어 먹는다.


이용기는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 편육이란 것은 약을 달여 약은 버리고 찌꺼기만 먹는셈이니 좋은 고기맛은 다 빠졌는데 무엇이 그리 맛이 있으며 자양인들 되리요 하여 편육의 조리법을 그리 달갑지않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 사람이 여전히 좋아하는 음식이고 요즘은 돼지고기 편육을 절인 배추에 싸서 보쌈으로 즐겨 먹는다."


출처 :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8&dirId=8020110&docId=30855896&qb=7KGx7Y64IOyXreyCrA==&enc=utf8§ion=kin&rank=8&sort=0&spq=0




저도 어렸을 때 외가댁에서 잔치할 때, 이런저런 돼지고기를 삶아서 무거운 돌로 눌러 놓은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그때 기억에 남았던 것이, 그 눌러놓은 것을 마당의 하수구 근처에 두었는데, 그 이유가 바로 흘러나오는 기름 때문이었습니다.  굉장히 무거운 돌로 눌러놓으니까, 고기를 싸놓은 천에서 허연 지방질이 조금씩 흘러내려 마치 우유를 쏟아놓은 것 같은 모습이 되더라고요. 





(우리 애도 한때 즐겨먹던 Gummy Bears도 주성분은 돼지에서 추출한 젤라틴입니다.)




이런 편육류의 요리는 사실 고기를 상당히 많이 먹는 나라에서나 발전할 수 있는, 고도로 발달된 고기 요리 방법입니다.  제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마구 표절을 해대는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헤드치즈라는 편육류의 요리는 원래 유럽 계열의 요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얘들이 못해먹는 것이 뭐 있겠습니까...)과 베트남, 그리고 우리나라만 편육류의 요리가 있다고 되어 있더군요.





(고기를 가공하는 거라면 독일 애들이 빠질 수 없지요.  독일식 헤드치즈인 Sulze.) 




사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육류를 많이 먹는 나라는 전혀 아니지 않았습니까 ?  그런 우리나라가 편육류와 같은 고도의 고기 요리를 가지게 된 것은, 돼지머리와 같은 '쓸데없는' 부위까지도 낱낱이 긁어먹어야 하는 가난함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해서 약간 씁쓸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유래야 어쨌건 간에, 우리 조상들 덕택에 오늘날 우리도 싸고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기 전에, 갤런틴이든 헤드치즈든 편육이든, 그 주된 성분인 육류의 젤라틴과 관계된 문학 작품 하나만 더 소개하지요.





BOULE DE SUIF (비계 덩어리), 모파상 작  (배경: 1870년 보불 전쟁 당시 프랑스) -----


(비스마르크의 프러시아군이 프랑스를 침공하자, 루앙(Rouen)시의 몇몇 중산층 시민들은 합승 마차를 타고 피난을 떠나기로 합니다.  이 합승 마차에는 유흥업에 종사하는 여인인, '비계 덩어리'라는 여인이 함께 탔는데, 점잖은 시민들은 이런 여자와 같은 마차를 탄 것을 몹시 불쾌해 합니다.  그러나 피난 길을 급히 떠나다 보니, 먹을 것을 준비해 온 사람은 이 '비계 덩어리' 뿐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바구니로부터, 그녀는 먼저 작은 질그릇과 은제 컵을 꺼내고나서는, 젤리(jelly,젤라틴)으로 코팅된 조각낸 닭 두마리를 담은 엄청나게 큰 접시를 꺼내었다.  바구니 안에는 다른 맛있는 것들도 많았다.  파이며, 과일같은 온갖 종류의 섬세한 음식들이 3일치 정도 준비되어 있어서, 그 바구니를 가진 사람은 길가의 여인숙에 굳이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


이 이야기는 점잖은 척 하는 사람들의 위선과 배은망덕을, 한 바구니의 음식을 통해 풍자한 모파상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아직 안 읽어보셨으면 읽어보십시요.  짧고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광고를 보니 "Flavor Sealed Hormel Milk-Fed Whole Chicken in Gelatin Jelly"라고 되어 있네요.  우유를 먹여 키운 닭을 젤라틴 젤리에 굳혀서 포장한 모양입니다... 그런데 닭도 우유를 먹나요 ???) 




저는 저 위 구절에서 궁금했던 것이, 닭고기를 왜 젤라틴으로 코팅을 해놓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물론 보기 좋게 하려는 것도 목적이겠습니다만, 다른 목적도 있다고 합니다.  바로 육류의 보존입니다. 저렇게 여행을 떠난다든지 하여, 조리된 고기를 다소 오래 보관해야 할 경우, 저렇게 젤라틴으로 코팅을 해놓으면 공기 중의 산소로부터 고기를 '절연'할 수 있기 때문에, 좀더 오래 상하지 않도록 보존이 가능했습니다.  다만, 저 젤라틴 자체도 단백질인데, 저 젤라틴은 상하지 않았을까 궁금하네요.  먹을 때는 긁어내고 먹었을까요 ?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Nocchi 2018.10.18 0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 읽었습니다
    동의보감 보면 고기를 약용으로 섭취 할 때는 푹 삶아서 국물은 버리고 건데기만 먹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콜레스테롤은 제거하고 최대한 순수한 단백질 만 섭취하는 건 데 맛은 없을 지 몰라도 그나마 육류 섭취 중 에 몸에는 좋은 방법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2. 카를대공 2018.10.18 15: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육류 요리보다는 삼류 요리가 좋네요






    ......죄송합니다

  3. eithel 2018.10.18 17: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려시대를 제하면 한국에서도 고기, 특히 소고기는 많이 먹었던터라 편육이 있다는게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는 않네요.
    아참, 스테이크는 조리법이 간단한 만큼 어려운 요리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대충 구워먹어도 맛있지 않냐고 하면 또 아주 틀린 말도 아니긴 하지만, 어떻게 숙성시키고 어떻게 굽냐에 따라서 맛이 꽤나 달라지거든요.

  4. Spitfire 2018.10.18 18: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국인이 고기를 많이 먹지 않는다는 근거는 어디서 나온 것인지요? 한국인의 육류사랑은 최소한 조선시대부터 엄청나서, 다양한 종류의 다양한 부위를 전문적으로 먹는 방법을 이미 그때부터 터득했다고 합니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엄청난 숫자의 소가 식용으로 도축되었습니다. 소가 농사에 필요하다고 해서 죽은 고기만 먹었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죽은 고기를 도축했다고 하곤 멀쩡한 소를 엄청나게 잡아먹었습니다. (당연히 병들어 죽은고기보다 건강한 고기가 맛있겠지요~) 조선시대 당시 인구대비 소의 비율이 현재 비율보다 더 높았다고 합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안다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고기를 안 잡아먹어본 사람은 어떻게 먹는지 알 수가 없지요. 우리가 뼈까지 우려먹는 건 가난해서가 아니라 고기요리의 수준이 만렙을 찍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한국이 술문화에 관대하고 고기를 좋아하는 것은 먹고 살만해져서가 아니라 그냥 '종특'이 아닐른지요... 자세한 내용은 책 '조선, 소고기 맛에 빠지다'를 보시기 바랍니다~^^

    ps. 예전 직장 동료의 에피소드이긴 한데, 그친구가 유럽 출장을 가서 파트너랑 밥을 먹으러 갔는데, 파트너가 배려한답시고, "Are you a vegetarian?" 하고 물었답니다. 그 질문에 그친구가 약간 얼굴을 붉히며 단호하게 대답했답니다. "NO! I am Korean!"이라구요..

    • 소화낭자 2018.10.18 19: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조선시대에는 지배층들이 많이 먹었겠죠.

    • nasica 2018.10.18 20: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쎄요. 우리나라에 소를 많이 키울 초지가 많은 것 같지 않고 또 풀 대신 먹일 콩이 풍부했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우리나라 지형은 전통적으로 소 대량 사육에 부적절하여, 고려도경에도 고려인들은 짐승을 도축하는 방법이 서툴러 접대한답시고 내놓은 고기에서 누린내가 나더라는 송나라 사신의 기록이 있던데요.

    • 최홍락 2018.10.18 2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려도경에서 서긍이 언급했던 짐승의 도축 문제는 거란과 여진과의 전쟁을 통해 나포한 목축업을 주업으로 일삼던 이민족을 편입시켜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얘기하던 백정이라는 존재가 이때부터 자리잡게 되었던것이고요. 고려시대까지 짐승을 도축하던 문화가 서툴렀던것은 동물의 살상을 엄격히 통제하는 불교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국교로 남아있던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조선시대는 이러한 불교의 영향력이 축소되면서 육류소비도 그만큼 늘어나게 됩니다. 소의 공급도 말씀하신것처럼 결코 적은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종 이후 농사를 위해 소 기르기를 크게 장려하여 추정되는 당시 사육소의 수는 약
      100만마리 정도였습니다. 연간 도살되는 소의 수는 약 40만 마리정도로 추산되고요.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하루에
      식용 등으로 도살되는 소의 마리수가 1000마리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소 도축 금지령이 나온 것은 이러한 도축을 막으려는 시도였지 이러한 규제가 곧이곧대로 지켜졌다는걸 의미하진 않습니다. 19세기 무렵 일본으로의 우피(소가죽) 수출량을 근거로 조선사람들이 섭취하는 소고기의 추정량은 5~10kg으로 추정된다고 하니 그리 적은 양은 아니지요.

    • nasica 2018.10.18 22:4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세종 때 이미 100만 마리 사육에 매년 40만 마리씩 도축을 했다고요 ? 생각한 것보다 엄청나게 많군요. 현재 수입사료 먹여가며 키우는 소가 한 300만 마리 되는 것 같던데, 우리 조상들이 생각보다 잘 드셨던 모양이네요 ? 처음 알았습니다.

    • 유애경 2018.10.19 0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세종 대왕님께서 그렇게 소고기를 좋아 하셔서 소고기 반찬이 없으면 식사를 안하실 정도로 고기사랑이 지극(?)하셨다고...
      그런데 일반 백성들도 소고기를 많이 먹었다는 말인지요? 아님 양반가에 소비량이 집중 했던건지...?
      저도 조상님들이 그렇게 소고기를 많이 소비했다는게 의외라서...

    • Spitfire 2018.10.19 0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소화낭자/ 조선시대의 주요 소고기 소비계층은 지배계층이 맞습니다. 하지만 소가 한번 잡으면 엄청난 양의 고기가 나오는 관계로 소를 잡는 날은 집안이나 동네가 모두 소고기 회식하는 날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조선의 문화가 지배층만 배불리 먹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니까요~ 물론 남은 고기는 육포로 만들어서 두고두고 먹었습니다. 여러 문헌들을 보면 현대인이 알고 있는 조선과 실제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은 좀 차이가 있더라구요~ 나름 살만한 세상이었습니다~~^^

  5. ㅇㅇ 2018.10.18 19: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고기민족하면 몽골인들인데~ 몽골에도 혹시 편육같은 음식이 있지않을까요~

    • nasica 2018.10.18 20: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순대는 몽골에서 온 고기요리라고 알고 있습니다.

    • 으앙 2018.10.20 1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근데 또 몽골은 고기 외의 부가 재료가 거의 없어서...양 한마리 삶는데 내장 같은것도 그대로 쓰면서 부재료는 양파랑 소금 좀 들어가고 끝이더라는 경험담이 있더군요. 냄새가 진짜 굉장하다고 합니다.

  6. 소화낭자 2018.10.18 19: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육 먹고 싶네요.ㅎㅎㅎㅎ

  7. 웃자웃어 2018.10.18 21: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비슷한 글을 봤는데 거기보단 맛있는 요리가 적군요. 이거보니 고기구워먹고싶은 1인 입니다.

  8. 아즈라엘 2018.10.20 1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부가 푸석푸석할때 고기를 먹으면 피부가 살아나더군요
    고기는 진리입니다

  9. 어느학자인가가 2018.10.22 10: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의 소고기 부위별 명칭이 세계에서 가장 상세하고 많다는 연구를 내놓은 적이 있었는데(죄송합니다. 예전에 본거라 상세한 기억은 안나네요;)전 그게 단순히 소고기는 좋아하지만 먹을일이 적다보니 정말 마지막 한점 한점까지 아껴먹기 때문에 그런것 아닌가하고 멋대로 해석했었는데...아니었나보군요. 100만마리라니 쿨럭;

    p.s 스테이크가 이리도 멸시를 받다니 가습이 아픕니다ㅜ 단순히 굽기만한 고기와는 겉절이와 김장김치 만큼의 차이가 있거늘!

  10. 까까님 2018.10.23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선 후기 소가죽 수출량이 30만장이었다고 본 기억이 납니다
    조선 때는 돼지는 귀했지만 소는 생각보다 흔했다고 하네요... 좋은 고기를 뇌물(인정... 이하고 했대요 ㅎㅎ)로 사용하는 유구한 전통도 있었구요
    돼지는 식용 외엔 쓸모가 없고 소처럼 볏짚 여물을 먹일 수 없었기 때문에 음식 찌꺼기든 뭐든 사람 먹는 것과 비슷한 걸 먹여야 해서 사육수가 적었다고 하구요, 돼지고기가 소고기 보다 한 두급 정도 고급이었다고 하지요
    품종도 칡소나 흑우가 누렁이 보다 훨씬 많았다고 하구요, 현대식으로 곡물비육이나 초지방목을... 일부는 했을지도 모르지만 대체로 농우로 쓰이다가 적당한 때 잡아먹었을 테니 마리당 육량이나 육질은 현대의 개량종 한우에 미치지는 못했겠습니다만 연간 30-40만 마리는 결코 적은 양이 아니죠
    신분이나 경제력에 따른 소비층의 편중은 자본주의사회에서도 공산사회에서도 해소하지 못했는데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 봅니다
    그리고 사람이 그렇습니다... 우리가 가난해서 여플레 뚜껑을 핥고 핫도그 막대기를 물고 빠는 게 아니잖아요
    짐승도 사냥을 하면 삼겹살 부위와 그 안의 내장을 가장 먼저 먹는다고 하죠
    가난 보다는 맛에 대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수랏상이나 어른들께 올리는 음식으로는 고기 보다는 뇌, 골수, 내장 같은 부드럽고 상대적으로 양이 적은 부위를 많이 썼습니다
    가난해서 임금께 그런 음식을 드린 게 아니라 먹어본 경험과 거기서 얻는 조리기술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합니다

  11. 까까님 2018.10.23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담으로 우리 전통 육류 요리법이 서양이나 다른 나라와 좀 다른 부분이 있는데요... 지방을 선호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소기름 같은 것도 비누 만들고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일부 사용하기는 했습니다만 서양처럼 고기 구울 때 떨어지는 기름을 팬에 모아서 식용으로 쓰거나 지방을 주재료로 하는 크림 같은 걸 만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은 맛보다는 양, 특히 양에서 비롯되는 칼로리에 집착하는 법인데 단백질보다 두배나 칼로리가 높은 지방을 싹싹 걷어 버리거나 짐승을 주거나 식용외로 사용했다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일본은 불교 영향이 더 오래 지속됐기 때문에(그러나 살생이 역사였던 걸 생각하면 참...) 육류 섭취가 굉장히 적었고요
    개항기쯤 해서야 몽키킹이 나서서 고기 시식을 시전해보이는 등 홍보에 열을 올린 결과로 소고기 등 육류 소비가 증가하기 시작했다지요
    체력을 강화해 튼튼한 병사를 얻기 위해 그랬던 거구요
    어쨌든 조선은 일반 백성들이 살기에 그래도 유럽보다는 형편이 좋은 나라였다고 생각합니다

  12. 갸아아앍 2018.10.23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새 안 비싼게 어딨겠냐만은 편육이 참 비싸더라구요 아니 자투리 긁어모아 만든 놈인데 왜 이 모냥인지 모르것어요

    • 아즈라엘 2018.10.23 23:50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살코기 얻으려고 사육을 하는건데 부산물이 살코기보다 비싸니 원...

  13. 뱀장어스튜 2018.10.27 00: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리나라의 육식의 전통은 고구려 때부터 이어져왔다는 걸 어디에선가 들은 것 같습니다

  14. ㅁㄴㅇㅎ 2018.11.11 22: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피수정회가 생각나네요 ㅎ

마세나는 나폴레옹으로부터 포르투갈 침공의 명령을 받자, 제대로 된 지휘관답게 지도부터 펼쳤습니다.  원래 포르투갈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스페인으로부터 포르투갈로 진입하기 위한 교통로가 험준한 국경 지형으로 인해 제약되어 있었다는 점이었지요.  기억들하시겠습니다만, 탈라베라(Talavera) 전투 이후 웰링턴이 술트의 측면 기습을 피해 재빨리 포르투갈로 퇴각한 경로가 대표적인 포르투갈로의 진입로였습니다.   그 경로는 아래 지도와 같이, 살라망카에서 알메이다(Almeida)와 쿠임브라(Coimbra)를 차례로 거친 뒤 리스본으로 향하는 길이었지요.




(프랑스-독일에 비하면 스페인-포르투갈은 험준한 산맥이 꽤 많은 편이고, 군대가 대포를 끌고 이동할 수 있는 경로는 꽤 제한적이었습니다.)



(시우다드 로드리고는 저 남쪽의 바다호스(Badajoz)와 함께 포르투갈-스페인 사이의 교통로를 지키는 스페인 측의 양대 관문입니다.)




마세나는 정공법대로 나가기로 했습니다.  포르투갈 침공의 첫 관문은 알메이다(Almeida) 요새가 될 것인데, 그를 위해서는 인근 스페인 국경 내에 있는 시우다드 로드리고(Ciudad Rodrigo)를 쳐야 했습니다.  스페인의 침공에 대비한 포르투갈의 관문이 알메이다 요새라면, 반대로 포르투갈의 침공에 대비한 스페인측 관문이 바로 시우다드 로드리고였거든요.  이 도시는 아직 스페인군 손아귀에 있었습니다.  스페인에서 포르투갈로 침공하든 반대로 포르투갈에서 스페인으로 침공하든 하나의 관문을 넘어야 하는 법인데, 마세나의 경우는 두 개의 인접한 관문을 한꺼번에 넘어야 했던 것이지요.


시우다드 로드리고는 비교적 작지만 별 모양으로 축성된 견고한 근대식 요새도시였습니다.  모든 요새는 함락시키기 어려웠지만, 특히 기동성을 중시하는 프랑스군에게는 공성전이 익숙하지도 않았고 즐겨하지도 않았지요.  공성전에 필요한 많은 중포와 탄약, 포탄 등을 수송하는 것도 어려웠고 장기간 대규모 병력이 한 지역에 묶여있어야 하니 식량 조달도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세나는 꼼수를 부릴 생각하지 않고 그 어려운 도전에 정석으로 돌입합니다.  마세나군의 선봉에 선 것은 네(Michel Ney) 원수였습니다.  




(현대의 시우다드 로드리고 요새입니다.  이 요새의 남서쪽은 아구에다(Agueda) 강에 접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시우다드 로드리고 북서쪽에 훨씬 더 넓은 신시가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구글맵의 거리 풍경을 통해 현지의 골목골목을 생생하게 볼 수 있습니다.  정보화 세상은 탈도 많지만 확실히 이로운 면이 더 많습니다.)




네 원수는 자신의 제6군단 전체 뿐만 아니라 다른 3개 보병 사단과 2개 기병 연대를 더해 총 4만2천의 대군과 60문의 대포를 이끌고 4월 26일 시우다드 로드리고 앞에 나타났습니다.  시우다드 로드리고를 지키고 있던 것은 에라스티(Don Andrés Perez de Herrasti) 장군이 이끄는 스페인군 5천5백이었습니다.  프랑스군의 병력이 워낙 압도적이었으므로 승산이 없었고 요새 함락은 오로지 시간 문제였으나, 에라스티 장군은 프랑스군의 비교적 관대한 조건의 항복 권유를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나폴레옹이 의심하던 대로 믿는 구석, 즉 영국군의 지원이 약속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전에, 웰링턴은 늘 그렇듯이 스페인 게릴라들이 프랑스 연락장교들을 죽이고 탈취해온 문서들 중에서 술트가 조제프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그 편지를 보고 프랑스군이 곧 시우다드 로드리고를 들이칠 것이라는 것을 안 웰링턴은 서둘러 병력을 알메이다 쪽으로 전개했고, 특히 크로퍼드(Robert Craufurd) 장군의 경보병 사단 5천을 시우다드 로드리고 인근으로 보내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4월 말이 되어 실제로 몰려온 프랑스군을 보니, 도저히 크로퍼드의 경보병 사단 하나 가지고 뭘 어떻게 해볼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스군의 규모를 알게 된 웰링턴은 그들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보고, 전형적인 영국인다운 얌체같은 결정을 합니다.  즉, 약속은 깨라고 있는 것이고 자신들이 지킬 영역은 포르투갈이지 스페인이 아니므로 시우다드 로드리고는 스페인군에게 맡긴다는 것이었지요.  그런 지시를 받은 크로퍼드의 경보병 사단은 이후 네의 프랑스군과 접촉만 계속 유지할 뿐 적극적으로 싸움을 걸지 않았습니다.




(그 험악하고 엄한 성격 때문에 부하들로부터 검은 밥(Black Bob)으로 불리던 크로퍼드 장군입니다.  오만한 성격이었던 웰링턴은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릴 때 결코 왜 그런 명령을 내리는지 설명하는 법이 없었는데, 오직 베레스포드와 힐, 그리고 이 크로퍼드 장군에게만 자세한 설명을 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존중하고 신뢰하는 부하였던 것이지요.  웰링턴은 특히 크로퍼드 장군에게는 어떤 주제에 대해서건 항상 조언을 구한다고까지 말했습니다.  그런 크로퍼드는 이렇게 주변만 맴돌아야 했던 시우다드 로드리고 요새를 2년 후인 1812년 프랑스군의 손에서 빼앗기 위해 포위 공격하던 중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시우다드 로드리고 성벽 바로 바깥에 있는 해자와 방어물 일부입니다.  굉장히 튼튼해 보이지요 ?)




영국군의 지원을 믿고 있던 에라스티의 스페인군은 졸지에 고립무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워낙 성이 튼튼하고 비축해놓은 보급품이 충분했으므로 스페인군은 프랑스군의 가열찬 포격에도 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집중 공격에 떨어지지 않는 요새는 없는 법입니다.  무려 10주간에 걸친 프랑스군은 별 모양의 보방(Vauban)식 성곽을 공격하는 교과서적인 것이었습니다.  지그재그로 참호를 파서 가까운 거리까지 접근로를 만든 뒤, 참호와 토벽으로 보호된 포대를 구축하여 포격을 가하는 것이었지요.  이런 집중 포격에 마침내 성벽 일부가 무너지고 보병들이 돌격 가능한 구멍(이를 전문 용어로 practical breach라고 합니다)이 뚫리자, 더 저항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에라스티 장군은 그 무너진 성벽 아래에 직접 나가, 역시 직접 나온 네 원수를 만나 협상을 했습니다.  그 결과로 맺은 항복 조건은 10주 전의 조건보다는 나빴지만, 여전히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즉, 시우다드 로드리고 시민들의 집과 재산에 대한 약탈은 일체 금지되지만, 수비에 참여했던 군인들과 일종의 자치 정부라고 할 수 있는 명사회(junta, 훈타) 소속의 관료들은 전쟁 포로로서 프랑스로 압송된다는 것이었습니다.  


10주 간에 걸친 시우다드 로드리고 요새 공방전이 마침내 7월 10일 종료되었을 때 스페인군의 인명 피해는 461명 전사에 994명 부상, 그리고 포로 4천이었습니다.  프랑스군은 180명 전사에 1천여 명의 부상자를 냈지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길고 지루한데다 사상자도 많았던 이 요새 공방전에 짜증이 나있던 프랑스군은 네 원수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시우다드 로드리고 시내에 들어가자마자 약탈을 벌여 스페인 시민들을 경악시켰습니다.  


네 원수도 난감한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명예를 알던 군인인 네는 약탈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도 부끄러웠지만, 이 요새 하나를 빼앗는데 무려 10주간이나 걸렸다는 것도 당혹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쉬운 상대였던 스페인군이 지키던 요새 하나 빼앗는데도 10주가 걸렸다면, 윌리엄 콕스(Willian Cox) 장군의 영국군이 만반의 준비를 해놓고 지키고 있을 포르투갈 알메이다 요새를 빼앗는데는 얼마나 걸릴지 눈 앞이 캄캄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시우다드 로드리고 포위전 내내 주변을 알짱거리며 신경을 거스르던 크로퍼드의 영국군 경보병 사단이 알메이다에서는 본격적으로 네의 제6 군단을 괴롭힐테니, 알메이다 요새 포위에 앞서 먼저 영국군 경보병 사단부터 요절을 내놔야 했습니다.  병력 차이가 워낙 컸으니 결국 요절을 내기는 하겠지만 시간이 문제였지요.  


그러나 전쟁에서는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나는 법입니다.  상황은 네와 크로퍼드, 콕스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시우다드 로드리고로부터 알메이다 요새는 걸어서 하루 거리였습니다.)





Source : The Life of Napoleon Bonaparte by William M. Sloane

https://en.wikipedia.org/wiki/Siege_of_Ciudad_Rodrigo_(1810)

https://en.wikipedia.org/wiki/Robert_Craufurd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투팍아마르 2018.10.15 08: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첫번째 지도 바로 밑에 오타가 의심스런 글이 있어 올립니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나 프랑스나 독일에 비해서" 가 아니라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프랑스나 독일에 비해서" 가 맞지 않나요? 나시카님께서 쓰신 글은 문맥상 독일을 제외한 세 나라가 험준한 산이 많다는 걸 뜻하는것 같은데 나시카님도 잘 아시다시피 프랑스란 나라는 비유하신 네 나라중 험준한 산과는 가장 담쌓은 나라 아닌가요?. 원래 하시고자 했던 말은 포르투칼과 스페인은 산이 많고 프랑스와 독일은 평야가 많다는 거였던것 같습니다만~~

    • nasica 2018.10.15 17: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예 제가 그냥 막 쓰다보니 제가 봐도 이상한 표현이 되었네요. "프랑스-독일에 비하면 스페인-포르투갈은" 이라고 고쳤습니다. 고맙습니다.

  2. 웃자웃어 2018.10.15 09: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게다가 당시에 프랑스군이 현지 징발 위주로 군량을 조달하다 보니 스페인에서는 보급을 하기가 시원찮았던 것도 있지 않나요?

    • nasica 2018.10.15 17:5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렇지요. 나폴레옹이 '군대는 뱃힘으로 행군한다'라고 말한 것은 '그러니 잘 먹여야 한다'라는 뜻의 권고로 말한 것이 아니라 '안 먹이니까 걷질 못하더라'라는, 좀 섬뜩한 실패 경험담인 것이지요.

  3. 석총 2018.10.15 1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부터 벙커를 지을 차례군요

    • nasica 2018.10.15 18: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벙커+터렛 도배질 라인과 부딪히는 것은 아직 좀 더 기다려야 합니다.

    • ㅇㅇㅈ 2018.10.17 09:33  댓글주소  수정/삭제

      터렛 벙커도배하니 스타가 생각나는군요. 제기억으론 나폴레옹을 소재로한 맵이 있던걸로 아는데 한때 재밌게 했었는데 말이죠 하하

  4. 샤르빌 2018.10.15 16:0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산악지대+수성전은 정말 최고이면서 최악의 조합이지요.. 수 많은 중국왕조와 북방민족들, 임진왜란때의 일본군이 끝내 한반도를 정복하지 못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물론 이렇게 지형과 요새에 의존하는 전략만 믿다가 병자호란때 처럼 기동력으로 역이용 당하면 그것만큼 답도 없다는게 치명적인 단점이지요..

  5. reinhardt100 2018.10.16 11: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방식 요새가 사진으로 나오네요.

    흔히 말하는 보방식 요새. 이건 근대 공성전 및 축성술의 완성가라고 해도 될 보방 후작의 업적이죠. 근대 축성술의 기초는 사실, 콘스탄티노플 공성전과 1463~1477년 터키-베네치아 전쟁 및 1494년 프랑스의 이탈리아 침공전부터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근대 축성술은 베네치아-네덜란드를 거쳐 프랑스에서 완성되었는데 이 보방식 요새가 얼마나 막강했냐면 에스파냐 왕위 계승전쟁에서 그 위력을 발휘했습니다.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 중후반기 내내 프랑스군은 야전에서 영국의 말버러 공작, 오스트리아의 오이겐 공 등이 이끄는 연합군에게 연전연패를 당하면서 전선이 미친듯이 밀려댈 상황이었음에도 국경선만큼은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던 이유가 루이 14세가 국고를 말아먹어가면서까지 만든 300개 가까운 보방식 요새들 덕분이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사실, 루이 14세가 사치도 심각했고 전쟁도 정말 많이 해서 국고를 거덜냈다는 평가가 있고 일부는 맞지만 정말 심각하게 국고를 거덜낸 정책은 건함정책과 국경선 요새 건축이었거든요. 여기에 비하면 베르사유 궁전 건축은 애들 장난 수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차라리 베르사유 궁전 건축은 파리의 유휴노동력 활용을 위한 전근대적 공공사업의 성격이라도 강했고 실제로 이 덕분에 파리 및 일 드 프랑스 지역의 경제력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으며, 건함 정책 역시 200년 가까이 뒤쳐져있던 프랑스의 해운력을 단숨에 한때나마 유럽 최강의 해운력으로 만들어 준 기초가 되어 프랑스 해외무역 및 식민지 개척에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국경선 전부에 걸친 보방식 요새 라인 건설은 정말로 답이 안 나올 정도로 예산을 잡아먹었다고 합니다. 요새 하나 짓는데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십만 리브르가 들어가는데 이걸 몇 백개씩 지어댔고 거점요새같은 경우는 기본 만 단위의 수성군을 수용해야 했기 때문에 수백만 리브르는 그냥 허공에 날아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이 정도 요새를 지으려면 기술력이 있는 특정 집단에 어느 정도 불하를 주어야 했는데 이게 징세청부업자들이 결성한 조합들에게 상당수 공사가 넘어갔다는 겁니다. 당시, 징세청부업자들이 징세권을 국가로부터 일정기간 대행하기 위해서는 각종 관계 관청에 어느 정도 선납을 했어야 했고, 대신 징수가 어려워지면 정부가 지급 보증을 해주는 체계였습니다. 문제는 17세기가 유례없는 소빙하기가 있다보니 징수가 어려워지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이에 따라 정부는 지급 보증 대신에 이들 요새라인 건설공사권을 어느 정도 넘겨주어 손해를 보전해주는 식으로 정책운용을 했다는 겁니다. 물론 군이 감독을 했고, 루이 14세와 보방 후작이 때때로 직접 검열을 했기 때문에 '태양왕 앞에서 감히 부실공사 할 간 부은 징세청부업자 따위'는 없었지만 대신 공사비용을 최대한 부풀리는 방식 등으로 어느 정도 삥땅(?)을 쳤는데 이 금액이 복마전 수준으로 나갔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징세청부업자들의 세력이 강해졌고 루이 14세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국가 기강이 흐트러져있던 앙시엥 레짐 체제의 프랑스에 꽤나 부담이 가게 됩니다.

    • 최홍락 2018.10.18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보방에 의해 건설된 요새의 수는 학자의 시각에 따라 매우 다양한데, 어떤 학자는 60개, 어떤 학자는 100여개, 볼테르의 경우는 150개라고 단정하더군요. 연구가 계속될 수록 추정치는 300개를 넘어가고요. 이는 과거에 이미 존재했던 요새들을 개조한 것까지 다 포함한 개수인데, 실제 보방에 의해 새로 건축된 요새의 수는 많이 잡아도 30여개 정도라고 합니다. 그 요새들 중의 대부분은 지역 민병대와 주민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었고요. 또한 보방의 요새 설계들 중에 상당수는 당대에는 설계로만 남아있다가 후대에 들어 착공된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계획된 요새들 중에는 전략적인 요충지였던 곳이 상황이 바뀌면서 중요도가 감소하는 바람에 건설이 보류된 곳도 있었고요. 아예 보방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데, 그냥 이름만 빌린 요새들도 있었다고 하니까, 그런 여러가지 측면을 감안한다면 300개가 넘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요새의 건설에 들어간 비용과 별개로 말년의 보방은 프랑스 왕정의 고질적인 앙시엥 레짐, 불공평한 조세제도 등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베르사유 건설의 경우 언젠가는 체제 전복으로 이어지고말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이러한 태도는 루이14세의 총애를 잃게 만들기에 충분했고요.

      p.s. 보방식 요새를 수직으로 관찰하면 과거 주월 한국군이 구축했던 중대전술기지와 유사함이 나타나는데, 그만큼 보방의 아이디어는 시대를 관통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reinhardt100 2018.10.19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보방 후작이 말년에는 체제 비판의 선봉에 선 거는 꽤나 유명하죠. 그 자신이 앙시엠 레짐의 수혜자지만 그만큼 폐해를 직접 보니 이거 아니다 싶었던 겁니다.

      중대전술기지와 보방식 요새 라인의 가장 큰 유사점은 지원병 도착 가능 거리 및 화력 배분을 고려한 축성이었다는 겁니다. 특히, 요새 근처에 지원병이 근처에 있다는 것 자체가 양측에 주는 무게감이 다르니까요.

전에 인터넷 게시판에 유머 글이 하나 올라온 걸 봤습니다.  '장발장이 훔친 빵' 또는 '장발장이 잘못했네' 라는 것이었지요.





(저도 이 게시물 보고 엄청 웃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웃기쟎아요.)



(하지만 레미제라블에 원래 실렸던 삽화에 실린 그림은 위와 같습니다.  원작 소설에도 쇠창살이 쳐진 빵집 진열장의 유리를 깨고 빵을 훔쳤다고 되어 있으니 빵이 저 인터넷 그림처럼 클 리가 없지요.)




사실 장발장이 어떤 빵을 훔쳤는지는 레미제라블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혹시나 싶어 원문을 찾아봐도, 그냥 pain(빵)을 훔쳤다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저 영화 속 한장면의 사진 속에 나와 있는 빵은 설명 그대로, 깡파뉴 빵, 즉 pain de campagne가 맞아 보입니다.  불어로 pain이 빵이고 campagne는 country니까, 영어로 하면 그냥 country bread, 즉 시골 빵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 빵의 특징은 크다는 것입니다.  대략 무게가 작은 것은 4 파운드 (1.8kg), 큰 것은 12 파운드 (5.4kg)까지 나가니까 엄청나게 큰 빵입니다.  보통 식빵 1봉지가 500g 정도되니까, 왠만한 가족 하나가 며칠을 먹을 수 있는 분량입니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로만 밀 브레드....  설명을 읽어보니 '고대 로마군 병사들이 하루에 1파운드의 밀빵을 먹고 건강을 유지했다'는 이야기에 따라, 통밀과 잡곡을 섞어 만든 1파운드짜리 빵이라고 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맛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집 식구들은 저 빼고는 그냥 흰 식빵을 더 좋아하는 것 같더군요.)




당시 사람들은 왜 이렇게 큰 빵을 구웠을까요 ?  바로 오븐 때문이었습니다.




전에 연재하던 야매요리라는 네이버 만화 저도 즐겨보던 편인데, 거기 주인공인 야매토끼는 집에 오븐이 없어서 항상 '야매'로 전기밥솥이나 마이크로웨이브 오븐을 이용하지요.  제대로 된 가스 오븐은 부자집에나 있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저 빵이 커진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옛날 유럽 사람들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븐이라는 물건은 만드는데도 돈이 많이 들었고, 또 뭔가 구울라치면 연료가 우라지게 많이 들어가는 물건이었거든요.  옛날에는 휘발유나 가스, 전기를 쓴 것이 아니라 숲에서 나는 나무를 장작으로 썼으니까 공짜 아니냐고요 ?  유럽은 중세부터, 숲을 엄격하게 관리했습니다.  그래서, 영주의 허락없이 숲에서 잔나무가지라도 하나 꺾었다가 숲지기에게 잡히기라도 하면 아주 엄벌에 처해졌습니다.  그건 사실 이해가 가는 일인 것이, 그러지 않았다가는 순식간에 숲이 벌거숭이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중세 영주들이 숲에서 허락없이 장작을 해가는 백성들을 처형하고 고문했던 것은, 숲보다는 그 숲에 사는 사냥감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영주들은 숲에서 사냥을 하는 것이 낙이었는데, 숲이 망가지면 짐승들도 사라지거든요.   아무튼 그러다보니 연료를 아껴써야 하는 것은 당시가 요즘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습니다.




(중세가 아닌 1868년의 어느 영국 숲 입구에 걸린 검비 공작님의 경고문입니다.  밀렵꾼은 즉결 처분으로 총살에 처한답니다...)




그러다보니, 자기 집에서 빵을 구울 수 있는 집은 상당한 부자집이었습니다.  대개의 가정에서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발효까지 시킨 뒤, 그걸 마을에 있는 빵집에 가서 구워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중세 시대에 마을에 있는 빵집(bakery)은 빵을 파는 가게가 아니라, 빵을 구울 오븐만 제공하는 마을 공동 오븐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다가 점차 도시가 형성되면서, 아예 빵집에서 완제품 빵을 팔기 시작하면서 빵집이 진짜 빵가게가 된 것입니다. 




(이런 마을에 빵집은 몇군데 ?)




근대 유럽 시대까지도, 도시가 아닌 다음에야 마을에 빵집은 1개 혹은 2개 정도 있는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과거 중세 시대부터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것인가 봅니다.  경쟁이 없었으나, 그렇다고 폭리를 취하는 것도 아니었던 좋은 시절이었나 봐요.  그러다보니, 만약 동네 빵집에 뭔가 문제라도 생기면 마을 전체에 난리가 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쌩떽쥐베리가 2차 세계대전 초반에 정찰기 조종사를 할 때 경험을 바탕으로 쓴 수필 '전시 조종사' (Flight to Arras, Pilote de guerre)에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도 나옵니다.  독일군이 침공해온다는 소식이 들리자, 순박한 시골 마을 사람들이 피난을 가야 할지 마을에 남아야 할지 의논을 하는데, 의외로 쉽게 결판이 나게 됩니다.  어떤 농부 아저씨가 토론장에 들어서면서 이렇게 외친 것이지요.


  "다들 피난을 가는 수 밖에 없게 되었어 !  빵집 주인이 피난을 가버렸거든 !"




(이 정찰기가 생떽쥐베리가 프랑스의 항복 전까지 몰았던 정찰기 Bloch 174 입니다.)




아무튼, 오븐을 빌려서 빵을 굽던 시절, 비싼 연료비 때문에 빵은 매일 구울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또, 보통 한번 구울 때 여러집의 빵을 한꺼번에 구워야 했기 때문에, 작은 빵을 여러개 굽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습니다.  같은 오븐에 집어넣은 다른 집들의 빵과 뒤섞이기 쉽쟎아요.   그러다보니, 되도록이면 크고 알흠다운 빵을 한번에 구워 며칠씩 두고 먹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 빵 3개는 순이네 꺼고, 저 빵 2개는 철수네 꺼고... 아니 저 빵이 철수네 꺼고 이 빵이 호섭이네 꺼든가 ?)




이렇게 구운 커다란 깡파뉴 빵, 즉 시골 빵은 대개 단단하고 수분도 적은 편이었습니다.  특히 며칠씩 두고 먹다보니 빵이 말라서 더욱 딱딱해졌지요.  가끔 옛날 영화보면 오븐에서 '갓 구운 빵'을 오븐에서 꺼내면 식구들이 좋아라하는 모습이 나오지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그런 시골 빵에는 버터나 쇼트닝 같은 것을 안 썼고, 또 비닐 봉지도 없고 냉장고도 없었기 때문에, 하루만 지나도 빵이 마르고 딱딱해지기 쉽상이었기 때문에, 부드러운 빵을 먹을 수 있는 기회는 오븐에서 막 꺼냈을 때 뿐이었습니다.




(맛있어 보이나요 ?  강남 김영모 빵집의 비싼 빵과는 좀 맛이 다를 것 같습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저렇게 빵을 무식하게 크게 구울 필요도 없어졌습니다.  빵집에서 제일 큰 빵이라고 해봐야 바게뜨 정도인데, 사실 바게뜨도 저런 시골 빵에 비하면 엄청나게 작은 것입니다.  실은, 바게뜨 빵이 나온 이유에 대해서 재미있는 전설(?)도 있습니다. 



(중국집 솜씨를 보려면 짜장면을, 빵집 솜씨를 보려면 바게뜨를 먹어보면 됩니다.)




전설치고는 너무 최근의 일인데, 1920년 전후로 프랑스의 노동법이 바뀌어 밤 10시부터 새벽 4시 사이에는 제빵사가 일을 해서는 안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저 깡파뉴 빵처럼 크고 둥근 빵을 새벽 4시부터 굽기 시작해서는 도저히 도시인들의 아침 식사 시간 때까지 구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길쭉하지만 굵기는 얇은 바게뜨라는 것입니다.  저런 법이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바게뜨처럼 길쭉한 빵은 19세기 후반에 이미 널리 먹고 있었다고 하니까 이 전설은 어디까지나 전설에 불과합니다.  그나저나 프랑스의 저 노동법이 아직도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저같은 임금 노동자 입장에서는 정말 부러운 법이네요.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 !  





** 목요일엔 예전 다음 블로그에 썼던 글을 티스토리로 옮기고 있습니다.  이건 2013년에 썼던 글인데, 맨 마지막의 국내 도급이 시급하다는 말이 당시엔 절실했는데, 어느덧 주 52시간 근무제가 현실화되었네요.  세상은 발전합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reinhardt100 2018.10.11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럽에서 제빵업자나 제분업자들이 중세 내내 경쟁에 시달리지 않은 대신 골치 아픈게 좀 많았습니다. 우선, 장원의 영주나 성당의 직접 통제가 꽤나 심했습니다. 심하면 이들이 직영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다음으로는 이들이 실제로도 꽤 그랬지만 '밀가루를 빼돌려 자기 뱃속을 채운다'는 인상이 강해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면 가장 먼저 분풀이 대상이 되곤 했고, 심지어는 이들 때문에 반란이 터질 정도였습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가 독일인들의 동방식민운동 당시, 프로이센이나 리블란트 지역의 발트 제민족들이 들고 일어난 이유 중 하나가 독일인 제분업자들이나 제빵업자들의 사리사욕 추구가 있었을 정도였고 지배자이던 독일기사단이나 덴마크계 영주들도 민족주의 성격이 비교적 옅은 이런 민란(?)에 대해서는 처벌을 비교적 관대하게 해주려고 했습니다. 물론 민족주의 성격이 강한 반란이나 독일인 학살이 벌어지면 그건 엄벌로 일관했습니다만.

    프랑스 노동법 변경은 사실 전시경제체제 해제의 성격이 강합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전선으로 가는 빵 아니 식료품의 적어도 60%는 프랑스에서 공급했는데 특히 빵은 보관문제나 벨기에군 수요 때문에 상당량을 프랑스 군납업자들이 공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전시경제라 해도 노동법이 있는 이상 근무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이걸 바꾸려면 결국 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프랑스 3공화국 이래로 쓰이던 독립명령제도를 동원, 노동법을 바꿉니다. 한 마디로 24시간 풀가동해도 좋다는 겁니다. 전쟁에서 이겼으니 다시 평시로 바꾸어야 하는데 전후 수요가 확 줄어버리면서 회사들이 조업 시간의 제한을 통한 수요 조절을 원했고 이걸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저 노동법 개정이 나온 겁니다. 임금 부담이 전후에 꽤나 심각했으니까요. 당장 금본위제 복귀도 못 하는데 인플레이션은 아직 잡히지 않으니 저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부도날 회사 꽤 있었으니까요.

    • ㅇㅇ 2018.10.11 1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좋은글에 좋은 댓글이네요. 지식이 늘어갑니다

    • reinhardt100 2018.10.11 14:11  댓글주소  수정/삭제

      감사합니다. 저도 예전에 공부했던 것들을 복기하는 기분으로 댓글을 달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분석이나 컨설팅 하는데 도움이 되거든요.

      제 댓글이 길어질수밖에 없는게 아무래도 복기하는 기분으로 쓰면서 확실히 생각이 정리되고 그러다보니 이것저것 붙어서 그렇게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 2/28일 입대 2018.10.12 0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빛 소금 nasica님 reinhardt100님....

  2. PAIN 2018.10.11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프랑스 사람들은 하드코어해,그들은 고통(pain)을 먹거든.(French people were hardcore,They ate Pain for lunch.)라는 언어유희 짤방이 돌아다니더군요.

    • 신구석기시대 2018.10.11 16:5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앤트맨과 와스프' 라는 영화에서, 주인공과 딸이 노는 장면에서 딸이 하는 말 'I eat fear for breakfast' 를 '나는 겁이 없어' 로 번역된 것을 봤는데요,
      비슷한 맥락에서 'They ate Pain for lunch'는 '그들은 고통을 몰라' 라고 해석을 해도 되겠군요.

  3. ㅇㅇ 2018.10.12 1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타깝게도 요즘은 빵집에서 바게트를 내지 않더군요..ㅡㅡ;

    빵집의 실력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죠;;;;

  4. reinhardt100 2018.10.13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숲의 문제. 이건 전 세계를 괴롭힌 문제입니다. 특히 중세 이후 이슬람권과 중앙아시아, 지나 문명을 괴롭힌 최대 이유 중 하나죠.

    17세기 이전에는 사실상 나무가 화력 에네르기의 원천이었는데 숲이 자꾸만 변경으로 후퇴하다보니 문명의 중심지에서는 연료부족이 심각해집니다. 게다가 각종 공업제품의 1차 원료 및 원자재가 나무다보니 이건 산업경쟁력에서도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서구에서 14세기 이후 내내 동방 정교권이나 이슬람권에 비해 서방 가톨릭권이 제조업 및 군사력에서 우위를 보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목재 공급의 우위에 있었기 때문인데 결정타를 날린게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국가들은 시베리아 및 북아메리카에서 무한정으로 목재를 들여올 수 있게 되면서 석탄으로의 에네르기 전환을 뒷받침할 기반을 얻었다는 겁니다. 특히, 프랑스가 17세기 내내 서구권 최강국의 지위를 가진 이유가 캐나다라는 목재산지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겁니다. 이 당시만 해도 잉글랜드는 북아메리카 식민지에서 목재보다 당장 먹고 사는게 급해서 플렌테이션에 치우쳐 있었고 주요 목재는 아일랜드를 박살내버리면서 얻고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청교도 혁명, 즉 잉글랜드 내전에서 의회파가 한 최악의 일이 아일랜드 공략전인데 이게 목재 공급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당시 북아메리카 목재는 누벨 프랑스라 해서 프랑스 무역회사들이 상당부분 독점하고 있었고 발트 해의 동방 목재는 네덜란드 회사들이 자기네 영역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잉글랜드는? 장궁 만든답시고 전국의 주목을 비롯해서 목재가 거진 다 작살난 판이었죠. 이판국에 아일랜드가 왕당파가 되었으니 잘 되었다 싶어서 그대로 아일랜드 공략을 한 건데 이 때 아일랜드 주민 1/3이 죽고 일부는 서부 늪지대인 코노트나 신대륙에 계약하인형식으로 대거 쫒겨났죠. 덤으로 17세기 내내 잉글랜드의 목재 수요는 아일랜드의 숲으로 충당했고요.

    • 최홍락 2018.10.13 12:58  댓글주소  수정/삭제

      영국의 경우 17세기 들어서 삼림의 비율이 16%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상당수의 목재 수입을 스웨덴과 러시아에서 충당을 했고, 1666년 런던 대화재 당시 시가지 재건을 위해 목재의 대부분을 노르웨이에서 수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노르웨이 외에도 폴란드나 덴마크로부터 막대한 목재를 수입해야 했기 때문에 북미지역을 확보한 상황일지라도 영국 정부 입장에서는 항상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덴마크 사이의 해협의 안전 확보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다고 하고요.

      영국의 경우 13세기부터 석탄을 사용하였는데, 주로 난방용 연료로 이용을 했습니다. 17세기 전반에는 1세기 전 대비 석탄 소비량이 7배 이상 증가할 정도였고요.

      정작 영국의 목재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 것은 난방이나 에너지 수요보다는 철의 생산에 기인하는 바가 컸습니다. 무적함대와의 전쟁 전부터 영국은 사정거리가 긴 주철을 이용한 대포를 주 무장으로 삼았는데, 이를 위해 목탄을 대량으로 소비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영국 내 목재로는 선박 건설과 주철 대포의 생산 두 개를 커버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한동안 철을 스웨덴으로부터 수입해야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산업 혁명 초기 코크스 제련법이 등장할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하네요.

      사실 캐나다의 목재산지에서 들여오는 목재의 경우 발트해에서 수입해오는 것에 비해 수송비가 엄청나게 비싸다는 단점이 있어서 목재 구입 단가 측면으로 따진다면 프랑스보다는 영국이 더 유리한 상황이 아니었나 합니다.

    • reinhardt100 2018.10.13 1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 그랬군요. 제가 잘못 알았네요. ㅎㅎ

  5. 2018.10.16 16: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6. 2019.05.29 21: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번역 문구 찾다가 넋놓고 다 읽었네요; 흥미로운 글입니다. 잘 봤습니다. 사족이지만 조금이라도 대단한 사람한테는 꼭 안티가 붙는 것 같네요; 힘내세요.

여태까지 1810년에 있었던 이런저런 사건들, 즉 나폴레옹의 새장가, 사탕무 설탕 공장의 건설, 베르나도트의 스웨덴 왕세자 책봉 등을 보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1810년은 피와 화약 연기로 점철되었던 황제 나폴레옹의 나날 중 드물게 평화로운 시절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도 비교적 그랬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이야기가 전혀 달랐습니다.  


오히려 1810년 들어 스페인 민중들의 대프랑스 항쟁은 그 기세가 더 격렬해졌습니다.  이는 반나폴레옹 봉기가 곳곳에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상황은 정반대로서, 웰링턴의 영국군이 탈라베라(Talavera) 전투 이후 포르투갈로 물러가자 무능력한 스페인 봉기군은 차근차근 프랑스군에게 격파되고 있었습니다.  상황이 이러면 스페인 민중들은 용기를 잃고 굴복할 만도 할텐데, 왜 오히려 더 격렬하게 저항을 했을까요 ?


상황은 나폴레옹이 본의 아니게 더 악화시켰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1810년 나폴레옹은 저항을 그치지 않는 스페인에 대해 질려버린 상태였습니다.  스페인 국왕이자 나폴레옹의 형인 조제프가 파리에 파견한 외무장관인 산타페 공작 아산사(Miguel José de Azanza, duque de Santa Fe)가 나폴레옹의 튈르리 궁을 찾았을 때, 그에게 들이밀어진 것은 조제프의 퇴위 조서 초안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조제프 보고 거기에 서명을 하라고 요구할 셈이었습니다.  기억들 하시겠습니다만, 동생 루이를 국왕으로 앉혀 놓았던 네덜란드를, 나폴레옹은 1810년 7월 실제로 침공하여 루이를 강제 폐위시키고 프랑스의 일부로 합병시켜버립니다.  그는 스페인에 대해서도 왕정을 아예 폐지해버리고 프랑스의 일부로 합병해버릴 계획었습니다.  


문제는 그 계획안 문서를 가지고 마드리드로 가던 연락 장교가 스페인 게릴라들에게 요격당해 살해되고 아직 암호화 되지 않았던 시절의 그 문서가 게릴라들을 거쳐 영국 손에 들어가버렸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영국은 그 문서를 친절하게 스페인어로 번역까지 해서 곳곳에 뿌려댔고, 이는 그렇쟎아도 프랑스에 대해 이를 갈던 스페인 민중들을 더욱 들끓게 했습니다.  




(산타페 공작 아산사입니다.  그는 군인 출신의 외교관으로서, 1790년대 후반에는 멕시코 총독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나폴레옹 정권에 협력했고 조제프는 그를 산타페 공작에 봉했습니다만, 그러지 않는 것이 좋을 뻔 했습니다.  부르봉 왕가의 복귀와 함께 그는 사형 선고를 받았고, 그는 조제프가 프랑스로 도주할 때 함께 프랑스로 도망쳐야 했습니다.  그는 1826년 빈곤 속에서 외롭게 죽었습니다.  친일파, 아니 친불파에게 알맞는 최후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다고 그런 문서 유출 때문에 나폴레옹이 조제프를 루이처럼 폐위 시키는 것을 주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발표를 하려면 스페인 전역을 손에 넣어야 하는데, 그것이 아직 완료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하찮은 스페인 따위가 프랑스의 그랑 다르메에 대해 이렇게 질기게 저항할 수 있는 것은 저주스러운 영국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트라팔가에서 프랑스-스페인 연합함대가 넬슨에게 궤멸된 이후 손에 닿을 수 없는 곳이 된 영국에 대해, 나폴레옹은 더 큰 규모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바로 대륙 봉쇄령이었지요.  그런데 이 대륙 봉쇄령은 좀처럼 승기가 보이지 않는 전쟁이었습니다.  명색이 위성국가라는 것들이 나폴레옹의 빅 픽처에 협력하지 않고 여기저기서 돈에 눈이 멀어 영국 상품을 사들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나폴레옹이 취한 조치는 더 강력한 그물망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영국과의 밀무역을 가장 활발하게 벌이던 네덜란드와 옛 한자 동맹 지역들, 즉 북부 독일 해안 지대의 소공국들의 정권을 폐위시켜 버리고 모두 프랑스의 일부로 편입시켜버린 것이지요.   1810년은 나폴레옹 제국이 가장 넓어진 해이기도 합니다만, 그 배경은 영국과의 경제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는 초조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스페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 과격한 해결책은 필연적으로 또다른 문제를 낳았습니다.  나폴레옹은 당시엔 별로 대단치 않게 여겼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이것이 결국 그의 제국 전체를 몰락시키는 단초가 됩니다.  나폴레옹이 그런 식으로 무자비하게 일방적으로 쫓아낸 소공국들 중에는 올덴부르크(Oldenburg) 공작령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올덴부르크 공작의 작은 아들이 바로 러시아 짜르 알렉산드르 1세가 애지중지하던 여동생 예카테리나(Ekaterina Pavlovna) 공주의 남편 게오르그(Georg of Oldenburg)였던 것입니다.  


알렉산드르는 여러차례에 걸친 편지를 통해 자신의 매제에 대한 폭압적인 강탈 조치를 항의했으나 나폴레옹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어쩌면 이건 나폴레옹이 지나치게 오만하여 무심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그가 지나치게 졸장부처럼 옹졸하게 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기억들 하시겠습니다만 2년 전인 1808년 에르푸르트 회담에서 나폴레옹이 알렉산드르에게 여동생을 자신의 새 신부로 달라고 은근히 메시지를 던졌으나, 알렉산드르는 오히려 그 아끼는 여동생을 볼썽 사나울 정도로 서둘러 다른 귀족에게 시집 보내버린 적이 있었지요.  그때 그 여동생이 바로 예카테리나였습니다.  나폴레옹은 그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으나, 그것을 큰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이런 식으로 앙갚음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에르푸르트 회담 때만 해도 세상 둘도 없는 친구 사이 같았던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는 이 사건을 계기로 상호간의 불신과 반목이 점점 심해졌고, 이는 결국 1812년 러시아 침공과 그에 따른 나폴레옹의 몰락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대체 예카테리나 공주가 얼마나 아름다웠길래 이 난리가 났는가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다시 보여드립니다.  두 그림 모두 동일 인물인데, 글쎄요, 아래 그림을 그린 화가는 아마 능지처참을 당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어느 쪽이 더 실물에 가까운지는 모르겠습니다.)




한편, 나폴레옹이 이렇게 무리수를 두어가면서까지 이베리아 반도에서 몰아내려 했던 웰링턴의 영국군도 마냥 룰루랄라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에 있어서 영국의 기본적 전략은 크게 2가지 방향 사이에서 흔들거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캐닝(George Canning)이 주도하는 대륙내 동맹국에 대한 보조금 위주의 전략이었고, 다른 하나는 캐슬레이(Robert Stewart, Viscount Castlereagh)가 과감히 밀어붙인 직접 대륙으로 원정군을 파견하는 것이었습니다.  1806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왕국 및 시실리 섬으로의 원정이나, 1809년 네덜란드로의 월체런(Walcheren) 원정, 그리고 이베리아 반도 원정 등이 그 대표적인 원정들인데, 이것들은 1805년부터 1809년까지 캐슬레이가 국방부 장관(Secretary of State for War and the Colonies)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결과가 다 신통치 않았다는 것이지요.  나폴리 왕국에 대한 원정은 1806년 가에타(Gaeta) 포위전의 패전과 함께 결국 뮈라(Joachim Murat)를 나폴리 왕으로 만들어주면서 끝나버렸고, 이베리아 원정도 무어(John Moore) 경이 1809년 1월 코루냐(Corunna) 전투에서 전사하며 간신히 영국군 대부분이 탈출시킨 것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가장 최근의 1809년 월체런 원정도 사실상 참패로 끝나버렸지요.  이로 인해 영국 내에서는 대체 영국 육군은 뭐하는 종자들인가에 대한 비난이 들끓고 있었습니다.  




(외무장관 조지 캐닝입니다.  이 양반이 보조금 위주의 전략을 썼다고 해서 결코 평화주의자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가령 1807년 덴마크 해군 함대를 보관해주겠다며 덴마크를 침공한 것도 이 양반이 주도한 작전이었습니다.)



(국방장관 캐슬레이 자작입니다.  외모로 보면 대머리 캐닝과의 대결에서 완승했다고 할 수 있지요.  그는 나폴레옹 전쟁 내내 큰 공을 세웠다고 할 수 있으나, 이후 비엔나 회담에서 유럽 대륙이 반동 체제로 회귀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여러가지 우클릭 정책을 옹호하여 크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가령 피털루 학살 관련해서도 욕을 잔뜩 먹었지요.)




특히 월체런 원정의 실패는 외무장관 캐닝과 국방장관 캐슬레이 사이에 심각한 불화를 일으켰습니다.  이 둘은 서로가 서로의 부당한 간섭 또는 부실한 전략 비전 등으로 작전을 망쳤다고 비난해댄 것입니다.  결국 이들의 갈등은 아직 월체런에 비실비실한 영국군이 상당수 남아 있던 1809년 9월, 이 둘 사이의 결투로 이어집니다.  둘 다 군인은 아니었고 특히 캐닝은 이 결투 이전에는 총을 한번도 쏘아본 적 없을 정도로 순한 사람이었는데, 캐슬레이의 도전에 캐닝은 꼬리를 말아넣을 수가 없어서 응한 것이지요.  결국 캐닝의 탄환은 저 멀리 빗나갔고 캐슬레이의 탄환은 캐닝의 넓적다리에 명중하는 정도로 이 결투는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러나 명성이 자자하고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 장관들이 서로 총질을 해댄 이 결투 사건에 대해 비난이 들끓었고, 결국 이 둘은 모두 사임을 해야 했습니다.  


이로써 이베리아 반도의 영국군 원정대는 본국에서의 지지 발판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해버렸습니다.  그러나 웰링턴에게는 천만다행으로 캐닝의 후임은 웰링턴의 형 리처드 웰슬리(Richard Wellesley, 1st Marquess Wellesley)가 맡게 되었습니다.  안 좋게 흘러가던 상황이 역전되어 웰링턴에게는 든든한 배경이 생긴 셈이었지요.  과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웰슬리 후작은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웰링턴의 작전을 전폭적으로 지원했습니다.  특히 대륙 봉쇄령에 의해 영국의 무역 상황이 갈 수록 안 좋아지는 상황에서, 이베리아 반도를 통한 무역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것을 내각에 설득하여 이베리아 원정대에 점차 병력을 증강하도록 했습니다.  웰링턴이 탈라베라에서 승리를 거두고도 허겁지겁 포르투갈로 후퇴해야 했던 이유는 술트의 측면 위협 때문이었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프랑스군보다 영국군 병력이 너무 작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웰링턴은 힐(Rowland Hill, 1st Viscount Hill) 장군이 영국에서 데리고 온 증원군을 받아 거의 5만에 가까운 병력을 지휘하게 되었습니다.  5만이면 병력수가 부족했던 영국 육군에서는 물론 엄청난 대군이었고, 프랑스 그랑 다르메에서조차도 거의 1개 군(armee) 수준의 큰 병력이었습니다. 




(롤랜드 힐 장군입니다.  그는 롤리사 전투와 비메이루 전투 때부터 웰링턴을 따라 종군했고, 나중에 워털루 전투에도 참전했습니다.)



(워털루 전투에서 마지막까지 부질없이 저항하던 황실 근위대에게 항복을 권유한 것도 롤랜드 힐 장군이라고 합니다.)




한편, 나폴레옹도 그냥 대륙 봉쇄령이 계획대로 작용하여 영국 중앙은행의 지하 금고에서 마지막 기니 금화 한닢까지 다 털려 나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스페인 곳곳은 여전히 반란군 손에 있었고, 특히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전체가 스페인군 수중에 있는 상태였습니다만, 나폴레옹은 안달루시아 정복보다 오히려 포르투갈에 웅크리고 앉은 웰링턴의 영국군을 격파하는 것이 스페인 완전 정복에 더 시급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술트(Soult)로 하여금 안달루시아를 치게 하고는, 네(Ney), 쥐노(Junot), 레이니에(Reynier)의 3개 군단을 모아 포르투갈로 진격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병력은 서류상으로는 8만, 실제로는 약 5만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3개 군단장을 통솔할 포르투갈 원정군 사령관으로 자신의 휘하에 있는 지휘관 중 최고의 능력자를 임명하여 그 무게를 더했습니다.  자타가 공인하는 나폴레옹 제국의 제2인자, 바로 위풍당당 마세나(Andre Massena)였습니다.  


여태까지 웰링턴이 상대했던 프랑스군 지휘관은 누가 봐도 1진이라고는 할 수 없던 쥐노, 주르당, 세바스티아니, 빅토르 정도였습니다.  (술트와의 제2차 포르투 전투는 제대로 된 대결이라고 하긴 곤란했지요.)  하지만 마세나는 그들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1진급 지휘관으로서 나폴레옹의 오른팔격 원수였고, 다부는 물론 전사해버린 장 란보다도 더 뛰어난 지휘관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과연 웰링턴은 마세나를 상대로 해서도 승리를 이끌어 낼 수 있었을까요 ?







Source : The Life of Napoleon Bonaparte by William M. Sloane

https://en.wikipedia.org/wiki/Miguel_Jos%C3%A9_de_Azanza,_Duke_of_Santa_Fe

https://en.wikipedia.org/wiki/Robert_Stewart,_Viscount_Castlereagh

https://en.wikipedia.org/wiki/George_Canning

https://en.wikipedia.org/wiki/Richard_Wellesley,_1st_Marquess_Wellesley

https://en.wikipedia.org/wiki/Walcheren_Campaign

https://en.wikipedia.org/wiki/Rowland_Hill,_1st_Viscount_Hill

https://en.wikipedia.org/wiki/Duke_George_of_Oldenburg

https://en.wikipedia.org/wiki/Siege_of_Gaeta_(1806)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스티븐 2018.10.08 07: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일 새글이 언제 올라오나 기다렸는데
    막상 올라오니 편하게 읽는 제가 미안할 정도입니다.
    좋은 글 항상 감사드립니다 ^^

  2. reinhardt100 2018.10.08 08: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베리아 반도 전쟁이 사실상 나폴레옹 전쟁의 둉부전선급이 되버린 시기가 1810년 이후인데 이 때 러시아 전선이 훨씬 더 양호했을 정도로 전쟁이 잔혹해졌죠.

    다른 댓글에 달았지만 영국은 내부 사정이 꽤나 심각했고 이 때문에 병력 상당수가 본국 및 아일랜드 치안유지에 동원되어야 했습니다. 1810년 웰링턴 원정군이 정말 마지막 기회였는데 이 윈정군마저 실패하면 더 이상 대륙으로의 무력 투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국민 모두 인지하고 있었고 프랑스와의 어느 정도 양보하는 화해를 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다시 한 번 20만 이상의 대군을 동원해 직접 에스파냐 원정을 단행했다면 무슨 수를 써도 웰링턴의 원정군이 이긴다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야전은 당연히 불가능하고 그나마 가능한 방법이 해안가 요새방어선에 들어가는건데 5만의 병력이 나중에 웰링턴이 구축한 방어선에 들어가 아크레 공성전 시즌 2를 찍겠다고 해도 20만 이상의 병력으로 포위 및 공성전을 진행했다면 막을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아무리 무한정의 해상 탄약보급으로 탄막을 펼치더라도 20만 병력의 공성포탄의 탄막에 밀릴건 뻔한 결론이었습니다.실제로 서구 군사학상 10만 이상의 공성전은 크림전쟁의 세바스토폴 공성전인데 이때 나폴레옹이 직접 원정을 감행했다면 여기서 볼 수 있었을 겁니다.

    • nasica 2018.10.08 08: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는 나폴레옹이 결코 판단 착오 또는 게으름 때문에 1810년 스페인에 대군을 이끌고 직접 원정을 하지 않은 거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용이 나오는 판타지 나폴레옹 전쟁 소설 “테메레르”에서는 청나라에서 파견한 대규모 용부대가 나폴레옹의 용부대를 격파하고 1812년 러시아를 구원하는 것으로 나옵니다만, 거기서도 청나라 원군이 도중에 돌아가는 이유가 명확하게 나옵니다.

      “이 대군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

      척박한 이베리아 반도에서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 reinhardt100 2018.10.08 08: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도 동의합니다. 다만, 척박해도 보급을 하게 만들었어야 했고 이 보급망을 바탕으로 직접 원정을 단행했어야 한다는 겁니다. 20만 대군의 보급이 어렵지만 원정에서 이기면 영국과의 전쟁을 끝냴 수 있으니까요.

      한 번 나중에 시간나면 나폴레옹의 20만 대군 원정을 가정하고 보급계획을 짜 보면 어떤 결론이 나올지도 궁금해집니다.

    • 최홍락 2018.10.08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전 스페인에 발묶일 경우 주변국들의 상황이 우려되서 20만명을 장기간 빼내는건 위험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역시 근본적인 문제를 캐치하셨네요.

  3. 키스세븐 2018.10.08 09:5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로그가 매우 특이해요. 유럽 문화/역사 이야기가 가득이네요. 여러 글을 읽다가 가요. 재미있었어요!

  4. keiway 2018.10.08 13: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랫만의 나폴레옹 시대 글이로군요.
    항상 응원합니다.

  5. 소화낭자 2018.10.08 21:2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다리다 지칠 뻔 했습니다....
    ㅎㅎㅎㅎ 정말 감사합니다

  6. 웃자웃어 2018.10.08 21: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제 슬슬 러시아 원정이 다가오는군요.

  7. 유애경 2018.10.08 2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카테리나 공주의 초상화, 어쩜 동일인물인데 저렇게 다르게 그려졌을까요!

  8. 석총 2018.10.08 23: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테란 디펜스를 뚫지 못하는 프랑스

  9. 머대긘 2018.10.09 16: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캐닝은 총을 한발밖에 쏘지 못했다죠? 그는 '두발'이 없었으니까요.

  10. Playzone 2018.10.10 14: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폴레옹이 가장 실수한 건 분수에도 맞지않은 야심가였던 동생 카롤린을 등에 업은 뮈라를 스페인으로 보낸게 아닐까 싶네요. 무능한 스페인 부르봉 왕가를 꼭두각시로만 삼은채로 막후정치를 했다면 그의 위장을 더 쓰리게 했던 이베리아 전역이 저정도로 격화되진 않았을거 같습니다.

  11. 석공 2018.10.10 23: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감사합니다. ^^

** 목요일은 예전 다음 블로그의 글을 옮겨놓고 있고, 이건 2011년 2월의 글입니다.  유튜브에 '일부' 개신교 일당이 가짜 뉴스 풀어놓는 것은 이때부터 횡행했던 일이었군요 !



2011년 2월 경에 흥미로운 유튜브 비디오를 하나 보았습니다.  유럽 및 북미에서의 이슬람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방금 틀어보니 아직도 이 비디오 클립은 버젓이 온라인 상태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9EksbSKw6YY


원래 영어로 제작된 이 비디오는, 지도나 그림, 음악도 무척 정성들여 만들었더군요.  그리고 한국어로 번역된 것도, 전문 성우같은 목소리의 한국어로 더빙되었고, 각종 도표도 모두 깔끔한 전문가의 솜씨로 한글화되어 있습니다.  한마디로, 누군가 꽤 돈을 들여서 만든 것이고, 또 그 덕분에, 상당히 신뢰성있는 자료라는 인상을 줍니다.  마치 BBC나 KBS에서 만든 다큐멘터리라는 느낌이 드니까요.


그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럽은 지금 매우 빠른 속도로 이슬람화되고 있으며, 이대로 가면 불과 20~30년 안에 유럽은 더 이상 우리가 아는 유럽이 아니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령 현재 프랑스의 20세 미만 인구의 30%는 이미 이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일반 프랑스 가정의 가구당 출산률은 1.8명인데, 프랑스 내의 무슬림 출산률은 무려 8.1명이나 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프랑스 남부에서는 교회보다 이슬람 모스크가 더 많다고 덧붙입니다.





또한 네덜란드는 15년 내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무슬림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 벨기에 신생아의 50%는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나고 있다고 하고요.  또 유럽의 기독교도들에게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덧붙입니다.  몇년 안에, 러시아군의 40%는 무슬림 병사들로 채워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무시무시한 러시아군의 절반 가까이가 이슬람교도라니 !






결정적인 증거도 들이댑니다.  바로 독일 통계청입니다.  여기서, 독일은 2050년에는 무슬림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정부 발표를 인용합니다.






염장지르는 소리도 곁들입니다.  서구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중동권 국가 지도자인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의 어록을 인용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슬람은 폭탄 테러 없이도 유럽에서 승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유럽내 이슬람 인구 폭발을 통해서요.






이 비디오에서 주장하는 내용들은 사실일까요 ?  한마디로 말해서 그렇지 않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무슨 사람이 토끼나 돼지도 아니고 가구당 8명이 넘는 자녀를 평균적으로 낳을 수 있겠습니까 ?  일단 프랑스에서는 종교별로 인구 조사를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누군가 엄청난 돈을 들여서 (국가만이 할 수 있다는) 인구 통계 조사를 사적으로 진행한 것이 아니라면, 프랑스내 무슬림 가정의 평균 출산률이 8.1명이라는 신뢰성 있는 결과는 낼 수 없습니다.  참고로, 프랑스에 가장 많은 무슬림 이민을 보내고 있는 북아프리카의 알제리나 모로코의 가구당 출산률은 2.38명에 불과합니다.  이들이 낭만적인 프랑스로 이민갔다고 해서 갑자기 3배 넘는 출산률을 보여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네덜란드의 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인구 중 이슬람 인구는 5%에 불과합니다.  벨기에에서는 6%에 불과하고요.  이들이 순식간에 그렇게 많은 신생아를 낳을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결정적으로, 독일 통계청이 발표했다는 예측, 즉 2050년까지 독일은 무슬림 공화국이 된다는 것은 새빨간 날조입니다.  독일 연방 통계청의 부청장인 발터 라데르마허(Walter Radermacher)에 따르면, 독일의 인구가 감소 추세라는 발표를 한 것은 맞지만, 2050년 무슬림 어쩌고 한 발언은 독일 통계청에서는 나오지 않은 말이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종교적으로 민감한 그런 문제를 정부 기관에서 섣불리 발표한다는 사실 자체가 애초에 믿을 수 없는 일이지요.  (이 비디오에 대한 반론은 모두 영국 BBC의 보도를 인용한 것입니다.  Source는 http://news.bbc.co.uk/2/hi/8189231.stm 를 참조하십시요.)


카다피의 발언도 그렇습니다.  카다피가 그런 이야기를 했다면 어디 뉴스의 해외 토픽에 반드시 보도가 되었을텐데, 전혀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아울러, 제가 카다피라면 유럽 내에서 반 이슬람 운동에 유용하게 인용될 그런 민감한 발언을 서방 언론에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런 허위 정보를 담은 비디오를 비용을 들여가며 만들어 올렸을까요 ?  그것이 누구이든 어느 정도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원작 비디오는 전세계적으로 약 1천만번 접속되었습니다.  국내용으로 한글 더빙된 버전은 다행히 약 1,200회 정도만 접속되었습니다. 이 원작 비디오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한국어 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린 분은 (이 분이 만드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기독교 신자이신 것 같습니다.  (올리신 다른 비디오를 보니 교회 관련 내용이 주종이더군요.)


이 비디오를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목적은 대략 짐작이 갑니다.  유럽의 이슬람 이민 및 그 2세들에 대한 공포심과 혐오감,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목적일 것입니다.  실제로 프랑스 남부 및 대도시에는 북아프리카에서 온 아랍계 이민들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뉴스를 종종 본 것 같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극우파들이 그런 무슬림 이민들이 프랑스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기존 프랑스인들의 직업 안정성과 치안을 위협한다고 선동하며 자신들의 정치 세력을 늘이려고 하고 있고, 실제로 많은 프랑스인들이 그에 공감하고 있는 편이라는 우려섞인 뉴스도 읽었습니다.  아마 이 비디오는 그런 감정을 더욱 조장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특히 '기존 교회 중 많은 수가 이슬람 모스크로 이미 바뀌었다'라든가, 카다피의 어록, 그리고 그렇잖아도 위협적인 러시아군을 (잠재적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는) 무슬림들이 장악하게 될 것이라는 암시는 멀쩡한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겁에 질리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비디오를 기독교 세력이 만들었는지, 아니면 그냥 반아랍 인종차별주의자들이 만들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아무튼 공격 대상을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으로 삼은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 구조를 끌어내려고 노력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실 이 비디오 내용은 너무나 뜻 밖인 것들이 많아서, 저도 처음에 이 비디오를 볼 때 반신반의했습니다.  게다가 공격받는 대상인 무슬림들의 반발은 더욱 강했지요.  덕택에 이 비디오에서 주장되는 바를 하나하나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유튜브 비디오도 올라왔습니다.  물론 공격 비디오에 비하면 조회수가 별로 많지 않습니다만, 실은 이런 반박 비디오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그 공격 비디오 원작자의 의도에 놀아나는 행위 같습니다. 





(반박하면 할 수록, 점점 더 갈등의 올가미는 조여들어 옵니다.)




그 원작 비디오의 목적은 갈등 조장입니다.  이렇게 반박 자료를 만들어 올리면, 그에 대해 다시 혐오성 댓글이 달리면서, 무슬림과 기독교인들 (혹은 국수주의자들)의 갈등이 점점 더 깊어지는 형태가 되지요.  가령 이 반박 비디오에는 '좋은 자료다'라는 감사 댓글도 있지만, '우리 무슬림들은 더 단결하여 백인 기독교인들이 우리를 무시 못하게 해야 한다'라는 무슬림 수구꼴통의 의견도 달리고, 또 다음과 같은 무슬림 이민들에 대한 혐오 댓글도 달렸습니다.


Just another fag who wants whites gone so his brown friends can rape and pillage.  

백인들을 다 쫓아내고 그의 갈색 피부 친구들이 강간과 약탈을 저지르길 바라는 쓰레기가 또 있구만.


저는 사실 무슬림에 대해 잘 모릅니다.  아는 사람도 없고요.  그저 뉴스나 책, 인터넷 댓글에서 읽은 것이 전부지요.  무슬림들이 정말 안 좋은 족속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기독교인들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비디오가 기독교 정신에 크게 어긋난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인용한 BBC 보도처럼, 이 비디오의 상당 부분은 날조 및 허위입니다.  성경의 십계명 중에 동성애 하지 말라는 계명은 없지만 '거짓 증언하지 말라'는 계명은 있습니다.  이 비디오를 만든 사람이 기독교적 신앙을 위해서 만든 것이라고 하면, 스스로 기독교 신앙을 저버리는 행위를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닙니다.  저는 기독교 정신의 본질은 박애와 믿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른 종교를 가졌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증오 및 혐오를 일으키려는 것은 전혀 기독교스럽지 못한 일입니다.    


사실 오늘날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예수님이 본다면 (이건 불교도들과 부처님의 관계도 비슷할 것 같은데) 예수님이 크게 슬퍼하실 것 같지 않으십니까 ?





The Letter of Marque by Patrick O'Brian  (배경: 1813년 지중해) -------------------------------------


(잭의 사략선에서 군의관 및 군의관 보조로 일하는 스티븐과 마틴이, 200여명의 승무원들 중 한명의 악마 숭배교인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정말, 글자 그대로, 공공연하게 악마를 숭배한단 말인가 ?"


"그렇다네.  그 친구는 악마의 이름을 이야기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살짝 이야기해주는데, 그 이름은 공작새라고 하더군.  그들의 사원에 가면 공작새의 초상이 있다네."


"그렇게 괴이한 관점을 가진 친구가 누구인지 물어보면 부적절하려나 ?"


"괜찮다네.  그 친구는 비밀스럽게 이야기한 게 아니거든.  선장의 요리사인 아디(Adi)가 바로 그 친구야."


"난 그 친구가 아르메니아인으로서 그레고리파 기독교도인줄 알았는데."


"나도 그런 줄 알았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 친구는 다스니(Dasni) 인으로서, 아르메니아와 쿠르디스탄 사이에 걸친 지역 출신이라네."


"그럼 그 친구는 신을 전혀 믿지 않나 ?"


"아냐, 믿어.  그 친구와 그 동족들은 신이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것과, 신의 성스러운 본질을 믿는다네.  그리고 마호멧을 예언자로서 인정하고 아브라함과 선지자들을 인정해.  하지만 그들 말에 따르면, 신께서는 타락한 천사인 사탄을 용서하고 그를 원래 자리로 복위시켜 주었다는 거야.  그들의 관점에 따르면, 그러므로 이 세계의 속된 일들은 악마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거지.  그러니까 다른 존재를 섬기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거야."


"하지만 그 친구는 온순하고 성격 좋은 친구처럼 보이던데.  게다가 확실히 요리 솜씨도 끝내주고 말일세."


"그렇지. 그 친구가 내게 자신의 종교에 대해 친절하게 말해주면서, 진짜 터키 과자 로쿰(lokum, 영어로는 Turkish Delight)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줬었어.  성서에 나오는 데보라(Deborah)는 정말 죄가 될 정도로 그 과자에 탐닉했었다는군.  그리고 또 자신의 출신지인 다스니 지방의 황량한 산악에 대해서도 말해주었지.  거기서는 사람들이 반지하식 주택에 사는데, 한편에서는 아르메니아인들에게 핍박받고, 다른 한쪽에서는 쿠르드족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는 거야.  하지만 그 가족들끼리는 서로 사랑하고 화합이 잘되는데다, 아주 먼 친척에게까지 강한 애정으로 결속되어 있다는군.  분명한 건 다스니 인들은 자기들의 교리처럼 (악마스럽게) 생활하지는 않는다는 거지."


"사실 누가 그러겠나 ?  만약 아디가 우리 기독교인들이 따르는 믿음에 대해 정확히 알고, 우리가 실제로는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비교를 해 본다면, 우리가 그 친구를 쳐다보는 것처럼 그 친구도 우리의 종교 생활에 대해 크게 놀라게 될 걸세."






(Turkish delight...  나니아 연대기에서 마녀가 그 꼬마를 처음 만났을 때 주었던 그 허연 가루가 잔뜩 묻은 젤리같은 과자입니다.)



-------------------------------------------------------------





(당시 열심히 재미있게 보았던 허영만 화백의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의 한장면입니다.  테무진이 흉악범 마을에 사람을 모집하러 갔다가, 사실은 이들이 죄인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이야기해주는 장면입니다.  이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악마교라는 것이 서로 미워하고 죽이고 하는 가르침이라면, 사람들이 모여서 종교를 만들수는 없겠지요.  아마 몇몇 사이코들이 개인적으로 섬기는 컬트 정도로 끝날 것입니다.)




저 위 인용 소설 속의 대화 내용처럼, 성서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가진 재물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을 따르라고 했지만, 제가 아는 기독교인들 중에는 그런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아, 교회에 정말 많은 돈을 헌금하는 사람들은 듣거나 보았습니다.  그러면 교회에서는 그 돈으로 크고 호화로운 교회 건물을 짓거나 외국으로 선교사를 파견하여 무슬림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며 찬송가를 부르게 하더군요.  그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물을 나눠주라고 한 것은 아닐텐데요.  또 원수가 뺨을 때리거든 반대쪽 빰을 내밀라고 하셨지요.  하지만 미국은 쌍동이 빌딩이 공격당했을 때, 왜 저들이 미국을 공격했는지에 대해서 진지한 성찰은 별로 하지 않은 것같고, 기다렸다는 듯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들이쳤습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조지 부시는 정말 기독교를 열심히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반응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같지는 않고, 그냥 세계 유일의 강대국 지도자답더군요.   그래서 더욱 더 많은 죽음과 비극이 반복 재생산되고 있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공격했으니 우리는 더 강하게 보복하겠다 !!!  이건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니라 함무라비 법전의 가르침이지요.)




예수님의 가르침이 인간의 이해 관계를 거치면서 매우 이상한 방향으로 발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노예 제도지요.  17~18세기 당시 노예 무역이 한창일 때, 천만뜻밖에도 노예제 찬성론자들은 기독교적인 이론으로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와 노예로 부려먹는 것을 합리화했습니다.  성경에서도 노예제에 대해 부정적인 말씀이 없고, 오히려 노예는 주인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나와 있을 뿐더러, 아프리카에서 예수님을 모르고 이교도로 살다가 그 영혼이 영원히 저주받는 것보다는, 차라리 백인 농장주의 농장에서 노동을 하면서 기독교로 전도시키는 것이 흑인들의 영혼을 위해 더 나은 조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정말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세상을 사는 방법인가요 ?  하지만 결국 노예제 폐지도 같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행동하는 기독교 단체들의 노력이 큰 몫을 한 것도 사실입니다.  )




TV 뉴스를 보니 어떤 대형 교회 목사님은 시가 3억원 짜리 외제차를 (아마 벤틀리였던 것 같은데) 타고 다닌다고 해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의 흥분된 인터뷰를 잠깐 들어보니 이건 선물을 받은 것인데, 자기가 이 차를 교회에 봉헌했다고 하더군요.  그 인터뷰를 들으니 저도 덩달아 흥분이 되던데요.  그러면서 빅토르 위고의 장발장 중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레미제라블 (Les Miserables) by Victor Higo  (배경 : 1810년대 나폴레옹 치하의 프랑스) ----------------------


(디뉴 지방의 담당 주교가 교구에서 이런저런 구제 활동을 벌이다보니, 비용이 쪼들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활이 어렵다고 한탄을 하니, 주교의 식모인 마글로아 부인이 예전 왕정 시대 때는 주교에게 마차 및 여행 경비를 정부에서 보조해주었다고 맞장구를 칩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주교는 정부에 마차 및 여행 경비 보조를 신청합니다.  정부에서는 토의 끝에, 주교에게 마차, 우편, 여행 경비로 3천 프랑의 예산을 배정해줍니다.)


이것이 그 지역 시민 사회에 상당한 격분을 불러 일으켰다.  또, 예전 혁명 시절에 500인 위원회의 의원이었고 뷔르메르 18일 사건 (나폴레옹의 쿠데타)을 지지했던, 현직 원로원 의원으로서 그 주교의 관할지인 디뉴 근처에서 멋진 원로원석을 차지하고 있는 거물급 인사도 이 움직임에 동조하여, 다음과 같은 분노의 편지를 비고 드 프레므뉴(Bigot de Premeneu) 씨에게 보냈다.


(역주 : 500원 위원회는 나폴레옹이 쿠데타로 해산시킨 의회입니다.  그런데 나폴레옹의 쿠데타를 지지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지요. 이 원로원 의원은 그저 권력만을 좇아 움직이는 지조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비고 드 프레므뉴라는 사람은 실존 인물로서, 나폴레옹 민법전의 편저자이자 나폴레옹 밑에서 종교성 장관을 지낸 사람입니다.)


"마차 비용이라고요 ?  주민이 4천명 밖에 안되는 좁은 마을에서 무슨 마차가 필요합니까 ?  우편요금과 설교 여행 경비라고요 ?  이런 여행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  길도 없는 산간 마을에서 편지를 나르느라 마차가 필요하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  이 지방 사람들은 말 등에 올라타고 여행을 합니다.  샤토-아르누의 듀랑스에 있는 다리는 황소가 끄는 달구지 하나가 겨우 통과할 정도입니다.  이 성직자라는 사람들은 모두 똑같습니다.  탐욕스럽고 구두쇠이지요.  이 주교라는 사람도 처음에는 도덕적인 인물처럼 시작하고는 결국 다른 성직자들과 똑같이 행동하는군요.  이 주교는 유개 마차와 멋진 이륜 마차를 갖고 싶다는거지요.  예전 시절의 주교들이 가진 모든 사치품을 다 가지고 싶다는 겁니다.  이런 비공식적인 성직자들이라니 !  백작 각하, 황제 폐하께서 이런 협잡꾼들을 다 제거해버리지 않으신다면 일이 제대로 처리된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교황은 물러가라 !  (이 시절에는 나폴레옹과 교황과의 사이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등등



다른 한편으로 주교관 식모 마담 마글로아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녀는 주교의 여동생인 밥티스틴 양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주 좋아요. 이제 주교님께서 비록 다른 사람 생각만 하시는 것으로 시작은 했지만, 결국 자신 생각도 하셔야 하거든요.  그분이 자선활동에 모든 돈을 다 써버리셨지만 이제 우리를 위한 3천 프랑이 있으니, 고생이 끝난거지요 !"


하지만 그날 저녁, 주교는 다음과 같은 노트를 적어서 여동생에게 전달했습니다.


마차 및 여행 경비 내역


구제 병원의 환자들을 위한 고기 수프                 1500 프랑

엑스(Aix) 지방의 어머니회                               250 프랑

드라귀냥(Draguignan) 지방의 어머니회              250 프랑

버려진 아이들 비용                                         500 프랑

고아들 비용                                                  500 프랑


이것이 미리엘 주교의 개인 비용이었다.


---------------------------------------------------------------------



물론 이 미리엘 주교가 나중에 장발장에게 은촛대를 건네주는 그 착한 신부님입니다...  원래 서양 속담에 as poor as church mouse 라는 말이 있지요.  신도들이 헌금을 안 내서 교회 쥐가 가난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말씀따라, 돈될 만 한 것은 모두 내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때문에 교회에 돈이 없는 것이지요.  부디 그 대형 교회 목사님도 레미제라블의 이 장면은 좀 읽어보셨으면 해요.  이미 읽어보셨을까요 ?  그렇다면 약간 비극이겠네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THE RED 2018.10.04 0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지 워커 부시의 이라크 침공은 명백히 실수였고 재난이었지요.

  2. THE RED 2018.10.04 0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작정 두려워하지 말자는 나시카님의 의견에도 일리가 있다고는 생각하지만,이란 회교혁명이나 무슬림 형제단,ISIS등의 극우적 종교 정치운동이 유독 이슬람권에만 만연해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nasica 2018.10.04 08: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런 식이면 왜 한국에서 사기 사건과 성범죄가 압도적으로 많은가 ? 라는 질문에 뭐라고 답하시겠습니까 ? 어디까지나 사람은 개인으로 평가해야지 집단의 특성으로 개인을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중동처럼 기독교 세력에 오랜 세월 침탈된 지역이라면 증오로 뒤틀린 사람도 많이 생겼을 것 같군요.

    • Pinko 2018.10.04 0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생각해보니 그럴수도 있을 것 같군요

    • ㅇㅋㅂㄹ 2019.01.15 23:49  댓글주소  수정/삭제

      특정 프레임에 의해 이슬람권만 부각되어서 그렇지 미국의 일부 기독교계열들도 징난아닙니다. 또 미국에서는 무신론자임을 밝히면 정치생활 못 한다고 할 정도로 기독교 중심의 문화잖아요? 이건 종교의 특징, 종교권력과 정치적 극단주의에 의한 것이지, 이슬람권에서 더 나타난다고 해도 본질적으로는 정도의 차이일 뿐 꼭 이슬람의 특성과 결부되는 것은 아닙니다.

  3. THE RED 2018.10.04 08: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종교로서의 이슬람은 좋아하지 않지만 무슬림 개개인들은 좋아합니다.제가 사는 동네가 공단 근처라 자주 봅니다.맘X터치를 애용하는 사람들이더군요.

  4. ㅇㅇ 2018.10.04 08: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슬람은 악이 맞습니다. 이슬람 믿는 국가중에 선진국이 있습니까

    • 신구석기시대 2018.10.04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최고 선진 문명이었지요
      박물관 안 가 보신 분이네

    • 까까님 2018.10.04 12: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선진국이 아니면 악인 건가요?
      선진국을 구분하는 기준은 당연히 현재의 경제력일 거구요?
      장발장이 김우중 보다 더 악인이었던 거군요...
      이슬람과 기독교는 같은 아버지의 이복자식 같은 종교들입니다
      뭐... 워크래프트 세계관을 빌린 짝퉁게임 같은 차이라고 할까요?

    • ㅇㅋㅂㄹ 2019.01.15 2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장발장 부자되지 않았나요? ㅋㅋ

  5. 까까님 2018.10.04 12: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은 개인의 개성도 있지만 사회의 영향을 받기도 합니다
    여러 개성들이 공통된 자연, 인문 환경 아래서 비슷한 반응을 택하게 되면 그게 문화가 되기도 하고 종교가 될 수도 있는 거겠지요
    이슬람 지역, 특히 중동에 누적된 갈등과 모순이 물리력이라는 탈출구를 찾는 과정이 IS나 자살테러 같은 것일 테고, 한국에 ♬♬♪들이 많은 것은 잡질을 단속하거나 자제할 수 있는 생존환경이 만들어진 지 얼마 안되서 그런 것일 테지요
    그러니 사람을 개인의 개성만으로 이해할 수는 없고, 어떤 기준에 의해 나뉘어진 집단 단위로 보는 게 틀렸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전 종교도 없는 데다 이슬람에 대해 아는 게 없고 자주 접하지 못해서 그런지 몰라도 기독교에 비해서는 악감정이 적은 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렇지만 이슬람을 포함한 외국인을 난민이든 뭐든 받아들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깝게는 경력직이 무제한으로 증가하면서 회사 문화가 바뀌는 과정을 직접 보았구요, 100만인지 몇인지 알 수 없는 중국산 불체자 문제도 그렇구요, 유럽의 사례는 간접적으로 봐왔죠
    그 사회가 소화할 수 없는 속도로 진행되는 변화는 아무리 선한 동기가 선한 결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 할지라도 그 구성원에게는 스트레스일 수 밖에 없잖아요

  6. 아즈라엘 2018.10.04 12: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멘 청년들중에도 무슬림 근본주의에 학을떼고 도망나오는 친구들도 좀 있더군요

  7. ㅇㅇ 2018.10.04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지금 기독교인입니다. 인정하기는 어렵지만, 말씀하신 것들이 사실이긴 합니다. 단편적인 사례들이 나열되고, 기독교계에서 하고 있는 많은 좋은 일 들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것이 글의 주제는 아니니 뭐라고 할 순 없겠지요. 다만 일개 교인으로서는 주변에 개인적인 영향만 줄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8. 웃자웃어 2018.10.04 16: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슬람 국가들중 세속주의 국가들 빼고는 문제가 많은 나라 밖에 없다고 봅니다. 물론 종교국가중 문제없는 나라가 없지만.

  9. 와플구이 2018.10.04 16: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사 그 주장에 일부 사실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공포, 궁극적으로 혐오를 조장한다는 점에서 그들이 비난하고 있는 대상보다 더 못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1년전 쯤에 '이슬람 전사의 탄생'이라는 중동 무슬림들 중 일부(또는 상당수)가 현대에 와서 극단적으로 변하고 근본주의에 의지하게 됐는지 자세하게 서술하는 국내 도서를 읽었습니다. 이슬람 자체의 폐쇄성도 한몫하지만 서구가 어떻게 그들을 그 길로 몰아갔는지 나오는데 감명깊게 읽었어요. 이슬람에서 테러단체들이 유독 많이 나오고 이런 이미지를 가지게 됐는지, 중동의 현대 역사와 변화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보시길 추천드려요.

  10. 이산이아닌가벼 2018.10.04 2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슬람이 중세 때는 기독교보다 오히려 수용적이고 관용적인 면이 많았지만 근대에 와서는 전근대적인 모습이 만연한 종교로 사람들의 인식속에 있습니다. 저는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도 사람이 자리를 만들기도 한다는 두가지 측면을 인정하기 때문에, 이슬람은 덮어놓고 전근대적이다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수많은 종교 증에서 유독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 전세계에서 많은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은 총체적인 문제가 분명히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낙인을 찍어서 범죄나 테러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또 그 종교가 가지고 있는 속성이나 요소가 현대사회나 타믄화권과 많은 충돌을 일으킬 스도 있다는 것이죠.

    뭐 아내를 태형에 처하고 도둑놈의 손을 자르는 처벌을 그 나라에서만 하면야, 비인륜적이고 반인도적이라 하더라도 전근대적인 문화고 문명이니 어쩔 수 없다고 그곳으로만 가지 않으면 되지만, 한국에 오려는 사람들 중에 혹은 정착하려는 사람들 중에 그런 생각을 가지신 분들도 있어 좀 많이 우려스럽더라고요.

    이웃집 @@이란 프로그램인데 어떤 가족은 예멘에서 - 얼마전 제주도 난민들의 고향이 맞습니다- 왔는데 그 나라에서는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불가능하고 또 억압도 받기 때문에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어도 부족하지만 열심히 배워서 잘하고 잘 정착해서 사는 모습보니까 자유를 원해서 온 사람들을 한국에서 받아줘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에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어떤 가족은 여성 촬영 불가, 남녀 분리, 이슬람적인 생활 고수, 8년차인데도 한국어 불가.

    이런 사람들을 받으면 진짜 나중에 문화충돌을 일으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수가 얼마인되니 지금은 조용하지만 수백 수천이면 진짜 무슨 일을 할까... 한국어도 못해 이슬람식 삶을 고수해... 한국에 왔으면 한국에 적응해서 살 생각을 해야지... 우리도 마음을 열고 받아주지.

    문제는 무슬림들은 종교와 삶이 분리가 안되기 때문에(배교는 죽음) 포기하지 않는 이상... 타 문화와 동화되기 힘들고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심히 우려습니다,

    한국에 들어온 다른 종교들은 한국의 세속성을 받아들이며 융화되고 동화되었죠.

    불교 죽이지 마세요! -> 살생유택
    천주교 우상숭배 금지! -> 즐거운 설, 추석 보내세요!
    기독교 복음주의 ?

    이렇게 한국에선 세속화되고 동화되었는데 이슬람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만약 원리주의적 해석을 고집한다면 한국에 한국 사회에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 유애경 2018.10.05 10:18  댓글주소  수정/삭제

      충분히 공감되는 얘깁니다.
      무조건 무슬림들을 경계하고 의심하고 배척해서도 안되겠지만 이미 독일이나 프랑스가 이민정책의 실패를 인정한 예도 있고...진정한 자유를 찾아 목숨걸고 탈출하여 이민국가에서 잘 정착하는 사람들이야 문제 없지만 로마에서 로마법을 따르지 않겠다는 이민자들까지 끌어안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아즈라엘 2018.10.05 10:28  댓글주소  수정/삭제

      지금이나 안산등지에 외국인들 타운 가보면 진짜 마굴이 따로 없습니다. 지들끼리 우글우글 뭉쳐서 무법지대를 저그 크립마냥 슬금슬금 넓히는데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치안문제나 사회문제가 대두 될겁니다. 일본처럼 아예 안받는게 최선이겠지만

  11. Spitfire 2018.10.05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민자 문제는 정부의 인구정책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민자를 받기 싫으면 현 단일민족(에 가까운) 상태에서 출산율을 높여야 하는데, 그건 난망하니 이민자를 받는 정책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저도 무슬림 난민이나 이민자가 지역사회에 들어오는게 탐탁스럽지는 않지만, 출산율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하던가 이민자를 받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특히 이민자를 받는 문제는 시한부인게, 이미 경제 동력이 떨어진 이후에 받으면 경제인구를 증가시킨다는 본래 취지가 약해질 뿐더러 소수를 다수의 문화에 동화시키기도 어려워 사실상 새로운 사회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그게 싫으면 열심히 애를 낳아야죠~ 그러나 현실은....ㅜㅜ

  12. reinhardt100 2018.10.06 2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슬람교 문제 사실 이거 심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코란이나 카눈 같은거 다 읽어본 사람으로써 내리는 평가는 학자적 양심으로써 이야기 합니다. '상업에 특화된 종교'라는 것입니다. 농담조로 이야기 하는게 아니고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선지자) 무하마드의 원래 직업 자체가 쉽게 이야기 하면 사막의 대상단 지배인이었다는 겁니다. 현대식으로 이야기하면 상사 비등기임원(?), 직급으로 치면 이사 혹은 상무이사급까지 승진했다가 여사장과 결혼해서 지참금으로 상사를 받은 분이라는 겁니다. 추가로 개인적으로 불교를 믿는 사람으로써 불교에 대한 평가는 '수학 및 공학적 사고가 가장 강한 종교'이고 기독교에 대한 평가는 '도그마틱이 강해서 법학에 강한 종교'라는 겁니다.

    중세,근세 아니 현대 이슬람권의 또 하나의 특징이 제조업에 극도로 취약하다는 겁니다. 흔히 중세 이슬람권이 문명의 전달을 담당하는 일익이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간과되기 쉬운게 이슬람권이 '학문연구로써의 화학연구'에는 어느 정도 공적이 있지만 막상 '제조업으로써의 화학공업'에는 발전이 거의 없다시피했다는 겁니다. 오히려 이슬람권에서 발전한 것은 '원거리 교역망 및 신용거래의 개념 발전'과 더불어 '노예무역'이었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슬람권에서 제조업 역량은 후대로 갈수록 오히려 퇴보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물론 이는 십자군 전쟁에 의한 자체적인 제조업 기반 파괴, 티무르 제국의 침공 당시 그나마 레반트 및 아프리카 이슬람권의 제조업 중심지 중 하나였던 다마스쿠스 장인들의 사마르칸트로의 집단 강제이주, 동시대 제조업 역량이 동방을 마침내 역전하는데 성공한 서방권의 대규모 수출 개시 등이 겹친 것도 있지만 이슬람권은 서방권 혹은 동방 로마제국보다 규모의 경제가 실현 가능했던 8-9세기 후반에도 이상하게 제조업 발전이 상대적으로 떨어졌습니다. 철저하게 상업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여왔다는 겁니다.

    흔히, 로마제국의 쇠퇴 원인 중 하나가 노예공급의 감소로 인한 임금 상승이 하나의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만 이슬람권 역시 이 문제가 사실은 꽤 <심각할 뻔>했습니다. 다만, 이슬람권은 산업혁명 개시까지 이 문제에서는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노예 공급이 꽤나 원활했다는 겁니다. 당장, 북쪽으로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카프카스, 발칸 및 폴란드까지 노예 사냥을 다니던 크림반도의 타타르족이 있었고 해상에서는 북아프리카의 바르바리 해적단, 남쪽으로는 오만제국과 모르코의 노예 사냥꾼들이 돌아다녔고 이들이 공급하는 노예는 연간 최소 백만이 넘었습니다. 당시, 인구 5억이 안되던 지구 전체로 본다면 말도 안 되는 수치죠. 게다가 매년 그 정도 노예를 쓰고도 모자라서 오스만 제국이나 모르코 왕국 시절에는 노예 사냥 한계선이 점차 확장되다가 제국 자체가 서방권의 집중공격을 받기 시작, 노예 공급이 끊어지면서 고대 로마 후반기 시즌 2 찍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제조업 역량이 가뜩이나 열세인데 노예가 경제에서 차지하던 비중이 서방권에 비해 말도 안 되게 높던 이슬람권에서는 이 문제는 '당장 경제가 안 돌아가는 사태'가 되어 버린 겁니다.

    좀 길게 썼습니다만, 이슬람교 문제는 이런 배경지식을 좀 깔고 이야기 해야 합니다. '왜 유독 이슬람권 이민자들이나 난민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지?'에 대한 근본원인은 이슬람교의 이런 특성이 암묵적으로 깔려 있다는 겁니다. 물론 이슬람교도 절대 이상한 종교 아닙니다. 그건 명확히 하고 넘어가야 하는 겁니다. 다만, 불교나 기독교, 힌두교 같은 다른 주류 종교와 달리 <상업에 특화되어 있다보니 거래 대상의 폭이 '다른 종교들이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라고 지정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서는 경향>이 강했고 이를 천 년 이상 지속하다보니 이런 문제가 터지게 되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겁니다.

  13. 0_- 2018.10.07 02: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가리 빻은 좋교인들 참 많네요. 머리는 사람의 것을 달았으되 도대체가 사람답게 쓰지 못하고 동물처럼 쓰고 있으니 정진정명 대가리라 불러줘야 하겠네요.
    무종교인(무신론 아닙니다, 사실상 무신론적 불가지론자이긴 하지만) 입장에선 원론적으로 보자면 존재하는지 하지않는지도 (자기네들도 확실히는) 모르는 것을 파는 약팔이나 봉이김선달 부류일 뿐이며, 교단이라는 집단 단위로 보자면 일종의 마약 카르텔일 뿐이지요. 이쪽 마약 카르텔 들어간 사람이 저쪽 카르텔 보고 쟤네들 어떻네 품평하는 꼴 참 보기 좋습니다. 다들 뭐 대가리 수 모자라면 평화 가장하며 다른 카르텔 교묘히 돌려까고 아무 카르텔에 속하지 않은사람 들여오려고 난리치고, 쪽수가 어느수준 넘었다 싶으면 모리배로 우르르 몰려다니며 다른 카르텔 핍박하고 다니지요? 카르텔 밖에서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냥 다 없어졌으면 좋겠는데 말이지요^^
    이런 소리 하면 불경죄니, 죽어서 지옥간다고 하겠죠. 그런데 생각 해 보라고요? 당신네들 득시글 대는 그놈의 천국, 당신네 카르텔 소속도 아닌데 미쳤다고 가겠어요? 게다가 영생한다? 이승에서도 벌써 지긋지긋한데, 그놈의 처-언-국에 가면 당신네들 영원히 보겠네요? 어지간히 지겨울 것 같으니 그냥 관두렵니다 ^^

  14. 나삼 2018.10.07 16: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슬람이 테러리스트는 아닙니다. 허나 테러리스트의 대다수는 이슬람 입니다

    • 와플구이 2018.10.09 19: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남자가 모두 성범죄자는 아닙니다. 허나 성범죄자의 대다수는 남자입니다.
      응? 어디서 많이 듣던 논리가?

  15. 최홍락 2018.10.07 1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까놓고 말해 한국처럼 돼지고기 음식이 많고 주류소비가 많은 곳에서 엥간히 독실한 친구들 아니고서는 신앙 제대로 지킬 무슬림이 몇이나 될지ᆢ 코란이고 성경이고 나발이고 눈앞에 미식이 더 우월한 법이죠. 슬럼지역의 범죄율 높은거야 어느나라 어느 문화권에도 있는 일이라 딱히 종교 문제로 보면 답 안나오죠.

    • 최홍락 2018.10.08 0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내가 답글 달면 어떻게 하나 봤더니만 파블로프의 개마냥 또 혓바닥 긴 모습을 보여주네요ㅋㅋㅋ 낚시 걸리니까 기분 좋죠?ㅋ 이 헛바닥만 긴게 당신 한계에요. 정규재 TV 내용 갖다가 붙인 유사지식인 주제에 무슨 MBTI 운운해요?ㅋㅋㅋ시험해봤는데 바로 글을 3개나 써갈기니ㅋㅋㅋ높게 평가해주시는 reinherdt님께 부끄러운줄 아세요.

  16. ㅇㅇ 2018.10.10 2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은 사실인듯 합니다. 붕어가 이리도 많으니^^ 베드로가 사람을 낚는 어부뿐만 아니라 그냥 물고기도 많이도 낚는군요

  17. 석총 2018.10.17 22: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교가 아니라 종교집단이죠

  18. 알타리무님 2018.10.22 10: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냥 넘어가려다가 좀 적습니다.
    범죄율이라는건 단순히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요소들이 영향을 끼칩니다. 치안, 경제수준, 교육수준(단순히 학력의 고저가 아니라 어떤 교육과정을 거치고 어떤 교육이념을 따르는가), 시민의식수준, 환경 등등 뭐 다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의 요인들에 모두 영향을 받는데 그걸 그냥 특정 인종, 종교 같은 단순한 프레임으로 나누는건 무슨 쌈빡한 논리인지 모르겠네요. 덧붙여 전문 용어를 글 전체에 그럴싸하게 흩뿌리듯 어질러 놓는 건 좋은 글이 아닙니다. 본인이 말하려는 바만 명확히 말하세요. 이리저리 본인도 주체 못할 얕은 지식만 늘어놓지 마시고.

  19. soha님 2018.10.23 08: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위에 알타리무란 사람이요.

    • soha 2018.10.23 19: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상 대로 군요... 저분은, 왜 남의 블로그서 분란을 일으키는지 몰겠네요. 정확한 근거도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