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폴레옹의 시대

아스페른-에슬링 10편 - 하드캐리

by nasica 2017. 4. 9.

위기에 빠진 프랑스군을 위기에서 건져낸 것은 전혀 의외의 인물로서, 그는 투박한 독일 사투리가 들어간 프랑스어를 쓰는 알사스(Alsace) 출신이었고, 그가 그 위기의 순간에서 프랑스군을 하드캐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나폴레옹의 명령을 의도적으로 거역한 덕분이었습니다.


장 랍(Jean Rapp)은 알사스 지방 콜마르(Colmar) 시의 시청 수위의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카톨릭의 나라 프랑스에서는 소수라고 할 수 있는 독실한 프로테스탄트로서, 그의 아들이 장차 제대로 교육을 받고 목사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장 랍은 용기와 열정으로 가득찬 전형적인 군인 체질이었던지라, 아버지의 바람과는 달리 17살이 되자 프랑스 기병대에 사병으로 자원 입대해버렸습니다.  그의 군대 생활은 그야말로 피투성이었습니다.  입대한지 5년 만인 1793년 처음으로 검상과 총상을 입은 이후 군 생활 내내 25번의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습니다.  



(랍의 고향인 콜마르 시에 세워진 그의 동상입니다.  여기에는 'Ma parole est sacrée'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나의 약속은 신성한 것이다' 라는 뜻으로서, 그의 강직한 성품을 잘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힘과 용기를 통해 사병에서 부사관으로, 부사관에서 장교로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프랑스 대혁명과 그로 인해 터진 전쟁 덕분이었지요.  그러던 그에게 출세길을 열어준 것은 바로 드제(Louis Desaix) 장군이었습니다.  독일 전선에서 드제의 눈에 띈 그는 드제의 참모진으로 발탁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위로 승진까지 되었습니다.  그는 당연히 이집트까지 드제를 따라 갔었고, 그런 와중에도 끊임없이 전투에서 부상을 입었으며, 여기서 마멜룩 부대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나폴레옹이 먼저 귀국한 이후 드제와 함께 뒤늦게 이집트에서 프랑스로 귀국한 그는, 드제와 함께 마렝고 전투에도 참전했습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동아줄인 드제 장군의 전사라는 불운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랍의 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은 마렝고에서의 드제를 은혜를 잊지 않았고, 드제와 관련된 인물들을 대거 자신의 심복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랍도 그렇게 나폴레옹의 참모진이 될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나폴레옹의 부인인 조세핀의 눈에도 들게 되어 나폴레옹의 궁정에서 더욱 입지를 굳힐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집트에서의 인연을 살려 프랑스군에 마멜룩 기병대를 창설하는 일을 주도했었는데, 1805년의 아우스테를리츠 전투에서 그는 나폴레옹이 내려다보는 가운데 그 마멜룩 기병대를 이끌고 러시아군과 싸워 승리하는 공을 세우기도 했었습니다.  그는 부러진 검과 (또 부상을 입어) 피를 철철 흘리는 머리를 한 채 나폴레옹에게 포로로 잡은 볼콘스키(Repnin-Volkonsky) 대공을 데리고 가 승리를 보고했는데, 그 장면은 제라르(Gerard)의 아우스테를리츠 전쟁화를 통해 역사의 한 장면으로 영원히 남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랍에게 돈이 충분했다면 아마 이 그림을 구매하여 대대손손 가보로 물려주었을 것입니다.)




(왼쪽의 흰 제복을 입은 사람이 볼콘스키  대공이고, 오른쪽의 모자를 쓰지 않은 인물이 랍입니다.  랍의 오른손목에 끈으로 묶어놓은 군도가 부러진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5월 22일 아스페른-에슬링 사이의 끊어진 부교 앞에서 위기에 처한 나폴레옹이, 남은 예비 병력 전부인 신참 근위대 2개 대대를 이끌고 갈 지휘관으로 랍을 고른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단, 이때 나폴레옹이 내린 명령은 간단 명료했습니다.  그는 무통 장군이 지휘하는 근위대 5개 대대가 오스트리아군과의 접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지원하여, 그 5개 대대를 무사히 부교 쪽으로 데리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평생을 기병 장교로 살며 이미 몸에 수많은 생선가시 모양의 흉터를 훈장처럼 붙이고 다니던 랍을 그런 소극적 구출 작전을 수행할 지휘관으로 고른 것은 나폴레옹의 실수였습니다.  


랍은 무통 장군이 로젠베르크의 오스트리아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에슬링 마을에 도착할 때, 이미 무통 장군의 근위대를 구출해 무사히 후퇴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의 남자답지 못한 구출 및 후퇴 명령을 정면으로 위배하여 도착하자마자 휘하 병력을 전개하여 치열한 공격에 나섰습니다.  랍과 무통의 병력은 신참 근위대 7개 대대로서, 프랑스군의 정예 중 정예라고 할 수 있는 부대였습니다.  비록 패배를 눈 앞에 둔 상황이고, 무통 장군이 받은 명령도 부데 사단의 구출이라는 소극적인 것이라서 부대의 사기가 높은 편은 아니었습니다만, 피끓는 랍이 완전히 새로운 분위기로 맹렬한 공격을 지시하자 상황이 확 바뀌었습니다.  근위대는 왜 자신들이 프랑스군의 꽃이라고 불리는지 당당히 증명을 해보였습니다.  그들은 로젠베르크의 오스트리아군을 마구 밀어붙였고, 그 기세에 오스트리아군은 맥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도 어이없이 무너지는 바람에 공격하던 랍이 당황할 정도였지요.




(랍의 초상화입니다.  그는 의리의 사내답게 나폴레옹의 이혼 시에도 자신과 친했던 조세핀 편을 들었고, 급기야 핑계를 대고 나폴레옹과 마리-루이즈의 결혼식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나폴레옹의 신임을 잃게 되지요.  그럼에도 그는 러시아 원정에서 나폴레옹의 목숨을 구했고 백일천하 때에도 나폴레옹 편에 서는 등 나폴레옹에 대한 충성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물론 근위대는 정예부대였고 또 랍은 용맹무쌍한 지휘관이긴 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오스트리아군을 쉽게 꺾을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요.  알고보면 랍이 이끈 근위대 공격은 그야말로 '나귀의 등을 부러뜨린 마지막 지푸라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은 그 전날 아침부터 고된 행군과 치열한 전투로 이미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습니다.  프랑스군도 궁지에 몰린 상태였지만, 도무지 붕괴되지 않는 프랑스군의 저항 때문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던 것은 오스트리아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몰려온 무통 장군의 근위대에 대해 그나마 잘 싸워준 것이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엎친데 덮친다고 무통의 부대와 싸우는 것도 죽을 맛이었는데 전혀 새로운 사기를 뽐내는 근위대가 추가로 덤벼들자 마침내 오스트리아군도 우르르 무너진 것이었지요.


정말 승리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준다더니, 정말 그랬습니다.  이렇게 뜻 밖에 에슬링을 재탈환하게 되자, 중앙의 란을 압박하던 오스트리아군도 주춤거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좌우의 아스페른과 에슬링이 프랑스군 손에 있는 이상, 중앙으로 무작정 밀고 들어가면 측면이 프랑스군에게 노출되어 큰 곤경에 빠질 수 있었으니까요.  게다가, 중앙이나 아스페른에서나, 오스트리아군도 지치고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카알 대공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도 보병을 물리고 포병을 앞세우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이로써 프랑스군은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쉴사이 없이 날아드는 오스트리아군의 크고 작은 대포알에 프랑스군이 두세명씩 피떡이 되어 날아가버리긴 했지만, 이들은 대오를 유지한 채 로바우 섬으로 이어지는 부교의 수리를 기다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와중에 나폴레옹은 잃어서는 안될 것을 잃게 됩니다.




Source : The Emperor's Friend: Marshal Jean Lannes By Margaret S. Chrisawn

Three Napoleonic Battles By Harold T. Parker

The Life of Napoleon Bonaparte, by William Milligan Sloane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Aspern-Essling

http://www.historyofwar.org/articles/battles_aspern_essling.html

https://www.napoleon.org/en/history-of-the-two-empires/articles/the-battle-of-aspernessling/

http://obscurebattles.blogspot.kr/2016/05/aspern-essling-1809.html

https://en.wikipedia.org/wiki/Jean_Rapp

http://www.historyofwar.org/articles/people_rapp.html

댓글20

  • bluewing 2017.04.09 19:00

    아싸 첫 댓.
    그나저나 이게 롤 게임이었다면 저쪽 입장에선 정말정말 저~엉말 발암게임 이겠네요. "이걸 지냐?" ㅋㅋ
    답글

  • mip 2017.04.09 19:00

    첫 댓글의 영광을!
    잃어선 안 될 것이 무엇일지 기대됩니다허허
    답글

  • 딸기맛농약 2017.04.09 19:33

    간만에 3등했네요. ㅎㅎ 잘보고갑니다.
    답글

  • 최홍락 2017.04.09 19:52

    콜마르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배경의 모티브가 된 곳이고 크리스마스 마켓으로도 유명한 곳인데 이렇게도 나오는군요.

    랍의 의리가 돋보입니다.
    답글

  • 석공 2017.04.09 20:40

    좋은 글 감사합니다. ^^*
    답글

  • 구릉구릉 2017.04.10 03:44

    다른 인물들 이야기를 보면 나폴레옹은 진짜 벼락출세 했군요. 인맥도 인맥이지만, 왕실사관학교 나온게 특권층 배경이었나요? 다들 느릿느릿 승진하는데 툴릉전에서 사령관 갈아치운 그렇고 초창기부터 빝바닥에서 올라온 장군들보다 영향력이 훨씬 크네요.
    답글

    • 오리오리 2017.04.10 12:17

      나폴레옹은 전략적 능력도 뛰어나지만 정치군인이라고 부를 수 있을정도로 정치 능력도 뛰어났어요ㅋㅋ

  • 구릉구릉 2017.04.10 03:54

    Scourge of War: Waterloo 게임할떄 부하장수에게 메신저 보내 명령해도 성격에 따라 명령 무시하고 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죠. 게임에서는 대부분 발암인데 현실에서는 그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기도 하네요. 워털루에서 라예상트를 점령하고 수비하라고 보낸 증원부대가 농장을 넘어서 진군하다 깨졌을때 혈압 올랐었는데 ㅋㅋ

    근데 공을 탐하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 인 것 같아요. 저도 나폴레옹이나 웰링턴이 아닌 부하 장교로 할때는 AI 상관이 내리는 시시한 명령 무시하고 전황을 바꾸기 위해 멋대로 행동합니다. (...)

    (나시카님은 게임 안하시는 듯 하지만, 티스토리 보시는 다른분들 중 나폴레옹 전쟁 관심 있으신 분들 스팀에서 파니까 추천드려요. 현실과 1:1 비율로 실제 워털루에는 20만명의 병사 하나하나가 다 나오고, 군대를 지휘하는 게 아닌 수많은 장교/장군 중 한명으로서 전투를 지휘합니다. 실제 전투와 똑같은 시간 걸리고 현실적이에요. 워털루 전투 풀로 하면 9시간 정도가 걸리죠 ㄷㄷ)
    답글

  • 만토이펭 2017.04.10 08:00

    잘보고 있읍니다..ㅎㅎ
    답글

  • boribob 2017.04.10 10:14

    랍의 출세는 프랑스 대혁명이 보여주는 장점이네염
    답글

  • 민민 2017.04.10 10:52

    잃어서는 안될것이라뇨. 설마 그분인건가요? ㅜㅜ 갑자기 눈물이 나요. // 나시카님 글 항상 재밌게 읽고있어요!! 나시카님의 역사글도 좋지만 다른글들도 읽으면 정말 훌륭하신 분같아요. 저도 나시카님 같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답글

  • 유니크 2017.04.10 14:42

    장 랍은 명령을 어겨서 큰 공훈을 세우고
    그루시는 명령을 너무 잘 따라서
    "그루시는 대체 어딨는거야?"라는 말이 계속 꼬리표마냥 따르니 좀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ㅎ
    늘 좋은 글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답글

  • 프로이센군 2017.04.10 23:54

    몰랐던 사람인데, 대단하네요 장 랍!
    다만 이름이 비슷한 모 원수가 떠난다는건...ㅠ
    답글

  • 미리네모 2017.04.11 11:46

    아.... 란!!
    답글

  • 유애경 2017.04.11 13:09

    여러분의 댓글처럼 장란 장군에게 변이 생기는 건가요?
    여러모로 귀여운(?)면이 있는 사람인데 아쉽네요.
    장랍씨도 나름대로 신념을 가진 의리있는 사람 같네요. ^_^
    다음글을 기다리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전투 이야기는 이해하기 어려워서 댓글 달기도 힘드네요.☺️(저는 단세포형 여자사람)
    답글

  • 블랑 2017.04.12 01:13

    나폴레옹이 패한 전투라고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오스트리아도 굉장히 힘겨웠던 전투였네요.
    답글

  • 블랑 2017.04.12 01:14

    이런저런 우연적 요소가 중첩됐는데도 정작 전투는 힘겨우니..
    답글

  • 나포 2017.04.15 09:41

    나시카님 블로그 팬됬습니다. 정말 굉장합니다..

    정말 개인적인 소망이지만 연재가 끝나면 책으로 내주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시중에 출판된다면 무조건 사고 싶습니다. 블로그에서만 보기엔 너무 아깝네요.
    한국의 토드 피셔, 그레고리 프리몬이 되어주세요 제발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