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2년 러시아 원정에 나서던 당시의 나폴레옹은 당대의, 아니 그 이후의 누구보다도 당시 상황과 군사 전략 등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였습니다.  훗날 그가 러시아 원정 작전 중 저지른 실수와 오판 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왈가왈부 떠들지만 그 당시의 지식과 기술로는 어쩔 수 없는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다룰 문제도 정말 어쩔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흔히 나폴레옹이 보급 문제를 등한시해서 혹은 러시아의 추위를 대비하지 않아서 참패했다고 하지만 여태까지 보셨다시피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나폴레옹의 준비가 어느 정도로 철저했는가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부교병 연대(régiment des Pontonniers)까지 철저히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언듯 보면 광활한 초원으로 된 나라 같지만 주요 요리 중 하나가 생선일 정도로 여기저기 강과 시냇물이 가로세로로 엮여있는 곳입니다.  나폴레옹은 그런 점까지 고려하여 에블레(Jean-Baptiste Eblé) 장군 휘하에 부교병들로 구성된 연대 단위의 전문 부대까지 편성하여 신속한 전진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라인 강변의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에 있는 국제 부교병 학교(Lycée international des Pontonniers)의 모습입니다.  에블레 장군의 부교병들도 원래는 여기에 주둔해 있었습니다.  그들의 명성을 빛내준 일화가 전진 때가 아니라 베레지나 강에서의 비참한 후퇴 때 이루어졌다는 것은 비극이었습니다만, 그들의 이야기는 발자크(Honoré de Balzac)의 소설 '시골 의사'(Le Médecin de campagne)를 통해 불멸의 것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저 학교가 진짜 고등학교로 사용되고 있는 모양입니다.)

 

(발자크의 '시골 의사'입니다.  저는 읽어보긴 했는데... 썩 재미있다고는 차마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그런 강과 냇물의 나라 러시아에서 마실 물이 없을 것이라고는 나폴레옹은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네만 강을 건너 불과 4일 만에 아무 저항도 만나지 않고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나(Vilna, Wilna, 지금의 Vilnius)에 입성했지만, 그 사이에 나폴레옹의 그랑 다르메가 물 부족으로 인해 겪은 고생과 그로 인한 피해는 매우 심각했습니다.  원래 병사 1인당 하루에 필요한 물은 대략 5리터가 좀 넘습니다.  요즘 큰 생수병이 2리터니까 2.5병 정도 되는 것이지요.  사막도 아닌데 1인당 5리터를 못 구하겠는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1개 사단 약 8천명의 병사들만 생각해봐도, 4만 리터입니다.  대형 유조차가 실을 수 있는 물의 양이 대략 2만 리터니까, 하루에 이런 대형 유조차 2대 분량의 물을 1개 사단이 마셔야 하는 것이지요.  게다가 이건 요리에 필요한 물이나 세면, 세탁을 위한 물은 감안하지 않은, 마시는 물만 센 것입니다.  

 

(이 유조차가 2대 있어야 1개 보병 사단이 하루에 마실 물에 불과합니다.)

 



러시아 평원에서는 이 정도의 물을 매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나 독일에서는 눈에 보이는 곳마다 농장이 있었고, 농장에는 당연히 우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대평원에는 농장은 커녕 오두막조차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사람이 없으면 우물도 없습니다. 인구 밀도가 적은 지역을 행군하는 군대는 당연히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는 예상했지만, 사막도 아닌데 물을 찾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어찌나 더웠는지 !  러시아는 추운 나라라는 말이 거짓말이었나 봅니다.  1812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습니다.  병사들은 사정없이 내리쬐는 태양, 그리고 메마른 길에서 수만의 병사들이 행군하며 일으키는 빽빽한 먼지 속에서 무자비한 갈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래도 당연히 러시아에도 농부들이 있었으므로, 숫자가 많지는 않더라도 우물이 여기저기에 있기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물은 어디까지나 우물일 뿐 강이 아니었습니다.  보통 시골 마을의 손으로 판 우물이라면 크기가 꽤 큰 편이고 물이 꽤 그득히 들어있다고 하더라도 3천 리터 정도도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1개 사단 병력이 수통을 채우기는 커녕 1인당 375ml, 즉 콜라 1캔 정도의 양만 마시면서 지나간다고 해도 물이 다 말라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우물이 있는데 물이 충분치 않은 경우가 많을까 싶습니다만, 꽤 많았습니다.  전에 소개드린 척탄병 쿠아녜(Coignet)의 회고록에도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1808년 스페인 마드리드 인근의 어떤 성에 배치된 쿠아녜의 근위대만 하더라도 그 성의 우물에서 하루에 퍼낼 수 있는 물의 양이 충분치가 않아서 물을 찾아 인근 지역을 헤매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물을 찾아 나간 패거리들이 물은 찾지 못하고 포도주로 가득찬 가죽부대를 실은 노새 2백 마리를 찾아서 돌아오는 바람에, 그 다음날 아침 근위대는 포도주로 면도를 해야 했다고 합니다.

 

특히 같은 경로로 수만 명의 군대가 이동할 때는 더욱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러시아로 진입한 부대들 중 맨 앞 줄에 섰던 부대의 병사들은 제일 위험한 역할을 맡았다고 투덜댔을 것 같지만, 사실 그들이 가장 고생을 덜 했습니다.  뒤따라 오는 부대들은 먹을 것은 커녕 마실 물도 부족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목마른 병사들이 물을 충분히 마시고 수통도 채우려면 시냇물을 찾아야만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손으로 판 우물의 일반적인 구조입니다.)



문제가 더 심각해진 것은 당시 군인들의 수통 크기였습니다.  1808년 1월에 부르고스(Burgos)에 주둔한 7만의 프랑스군을 위한 보급품 목록을 보면 4만7천 켤레의 군화, 1만2천5백 개의 탄약통과 벨트, 그리고 6천 개의 남비 등이 있습니다.  거기에 재미있는 물건이 더해지는데, 1.5파인트짜리 수통(petit bidon) 3만 개와 큰 물통(bidon) 6천 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양은(주석과 구리의 합금)으로 만들어진 이 수통에는 식초를 탄 물을 넣게 되어 있었습니다.  1 파인트(pint)는 약 473ml니까 1.5 파인트면 요즘 생수 작은 것보다는 조금 더 큰 셈이지요.  이 정도 물로는 고된 행군을 하는 병사들의 갈증을 해소하기엔 턱이 없었고, 적어도 3시간 간격으로는 우물이든 개울물이 나와줘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소 건조한 지역인 스페인만 하더라도 항상 그러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으므로, 스페인 주둔 프랑스군을 위한 보급품 중에 큰 물통 6천 개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보병 대대가 행군을 할 때, 그 뒤에는 탄약과 물통을 실은 마차나 노새가 따라다녀야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러시아의 극악한 도로 사정 때문에 물통을 실은 마차가 따라올 수가 없었습니다.  

 

러시아군도 동일한 지역에 있었으니 프랑스군과 동일하게 물 부족으로 고통받아야 했습니다만, 생각해보면 그래도 러시아군 사정은 프랑스군보다는 나았습니다.  일단 러시아군의 숫자가 프랑스군보다 훨씬 적었고, 또 러시아군은 이미 어디에 우물이 있고 어디에 개울이 있는지는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러시아군은 원래 방어가 아니라 공격을 염두에 두고 빌나 인근에 포진하고 있었던지라 물과 식량 등을 고려하여 여러 곳에 분산 배치되어 있었으니 집단으로 신속히 이동하던 프랑스군보다는 사정이 훨씬 나았습니다.

병사들도 물이 없어서 고생을 했지만, 병사들보다 훨씬 더 심하게 고생한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말이었습니다.  네만 강을 넘은 나폴레옹의 군대에겐 40만의 인간들 외에 약 15만 마리 이상의 말도 있었습니다.  인간 병사는 하루에 5리터의 물을 마셔야 한다지만 말은 30리터 넘게 마셔야 합니다.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인간 병사들이 자신이 마실 물을 말에게 양보하겠습니까 ?  러시아 원정 초반에 목이 말라 고생한 병사는 많아도 그로 인해 죽은 병사는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네만 강을 넘은지 불과 1주일 만에 3~4만 마리의 말이 죽었습니다.  이는 100% 물 부족으로 인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당장 먹일 사료가 없어서 들판의 덜 익은 보리와 귀리를 먹고 배탈이 난 데다 물이 부족하여 쇠약해진 말들이, 빌나 인근에서 겪은 하룻밤 폭풍우에 떼죽음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이렇게 말들이 죽어넘어지자 상황은 기하급수적으로 나빠졌습니다.  식량과 물을 실어나르려면 말이 꼭 필요했는데, 원정 초반에 이렇게 식량과 물 사정으로 인해 말들이 대량으로 죽어넘어지자 식량과 물 사정이 더욱 나빠진 것입니다.  



(사람만 목이 마른 것이 아닙니다.  말은 갈증에 더 취약합니다.)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따금 내리는 비는 그나마 병사들의 갈증을 풀어주었을 것 같은데, 사실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습니다.  비가 내리면 여기저기 물 웅덩이가 생겼는데, 목마른 병사들은 이런 웅덩이에 고인 물도 어쩔 수 없이 마셔야 했습니다.  이런 물 웅덩이에는 죽은 사람이나 말의 시체가 들어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사실 그런 시체가 없었다고 해도 이런 물 웅덩이는 결코 깨끗한 물이 아니었습니다.  흙바닥에 고였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40만의 인간과 15만의 말이 우르르 몰려다니면 발생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분변입니다 !   말 1마리가 하루에 생산(?)하는 말똥과 오줌은 각각 약 16kg과 9.3 리터입니다.  인간의 배설물은... 지저분하니 그냥 넘어가시지요.  야전을 행군하는 군대가 뒷처리를 잘 하고 다닐 턱이 없습니다.  이들이 지나간 자리는 당연히 온갖 오염 물질이 잔뜩 쌓였고, 이런 오염 물질은 인근의 물 웅덩이는 물론 우물과 냇물까지도 오염시켰습니다.  이렇게 오염된 물을 마신 인간과 말은 쉽게 배탈을 일으켰고, 이는 곧 설사로 이어졌습니다.  설사를 일으킨 군대가 방출(?)하는 오염 물질은 다시 주변을 오염시켰습니다.  

당시엔 아직 콜레라가 유럽에 상륙하기 전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만약 당시 콜레라도 있었다면 나폴레옹의 군대는 정말 삽시간에 녹아내렸을 것입니다.  19세기 초의 유럽인들은 아직 병이 세균에 의해 유발된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전염병의 개념은 있었지만, 병을 전염시키는 것은 '나쁜 공기' 내지는 '나쁜 기운'이라는 뜻의 미아즈마(miasma)라는 존재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전염병이 물 속의 미생물에 의해 전염된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고, 따라서 물을 끓여마시기만 해도 이질 설사는 물론 많은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하긴, 그걸 알고 있었다고 해도 황량한 러시아 평원에서 행군으로 지치고 배고프고 목마른 병사들이 땔감을 구해다 가뜩이나 부족했던 물을 끓여마셨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건 현대적인 군대에서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좀 적나라한 그림이긴 합니다만, 이건 "F-diagram"이라고 해서, feces(배설물), fingers(손가락), flies(파리), fields(밭), fluids(물), food(음식)의 오염 관계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Fecal-oral 경로, 즉 인간 배설물이 결국 다시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의외로 많은 질병의 원인이고, 대표적인 것이 콜레라입니다.  21세기인 오늘날도 전세계적으로 보면 윗 그림의 내용이 통제가 안 되어 고통받는 인구가 상당합니다.  위생 화장실의 건설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물을 끓여마시기만 해도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결됩니다만, 그게 또 쉬운 일이 아닙니다.)

 

 


(콜레라는 원래 인도가 원산지인 질병인데 흔히 영국 선원들에 의해 유럽에 전파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들 하지만 의외로 유럽에 전파된 것은 1817년 러시아를 통해서였습니다.  이후 빠른 속도로 유럽 전역에 퍼져나가 1846년~1860년 사이의 유럽 콜레라 대유행은 이미 3번째 대유행으로 기록될 정도였습니다.  그 와중인 1854년 존 스노우(John Snow, 왕좌의 게임에서의 존 스노우가 아닙니다)라는 런던 의사가 최초로 콜레라는 물에 의해 전염되며 이는 사람이 마시는 물이 환자의 분변 속에 존재하는 미생물로 인해 오염되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존 스노우는 콜레라가 발생한 런던 시내 가옥들의 위치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하여 그 중심에 어떤 우물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그 이론을 세웠습니다.  다만 그 이론을 화학 실험이나 현미경으로 그를 증명하지는 못했고, 그 때문인지 당시 대부분의 의사들과 학자들은 존 스노우의 발표를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질병이 미생물에 의해 전염된다는 것은 1860년대에 들어서야 파스퇴르의 연구에 의해 입증되었습니다.  윗 사진은 존 스노우입니다.)



(이 펌프가 존 스노우의 발견의 실마리가 된 우물의 펌프입니다.  존 스노우의 발견을 기념하여 아직도 보존되고 있다고 합니다.)



뭐 콜레라도 아직 없었던 시절이니 오염된 물을 마시고 기껏해야 이질 설사 정도에 걸리는 것이 전부라면 괜찮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야전에서의 이질 설사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유는 탈수로 인해 사람을 더욱 쇠약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쇠약해진 병사들은 예전 같으면 걸리지 않았을 병에도 쉽게 걸립니다.  그리고 러시아 땅에는 그런 쇠약해진 병사들을 노리는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군대는 그 존재들에 의해 그야말로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Source : 
https://www.washingtonpost.com/archive/lifestyle/wellness/2003/04/08/in-iraq-a-mighty-thirst/0fb42cf3-a463-41d4-93da-7eff54db4c1d/
https://www.thespruce.com/how-big-is-olympic-size-pool-2737098
https://extension.psu.edu/how-much-drinking-water-does-your-horse-need
https://lpelc.org/stall-waste-production-and-management/
https://fr.wikipedia.org/wiki/Lyc%C3%A9e_international_des_Pontonniers
https://en.wikipedia.org/wiki/John_Snow
https://akvopedia.org/wiki/Traditional_hand-dug_wells
https://en.wikipedia.org/wiki/Well
http://www.montana.edu/historybug/napoleon/typhus-russia.html
https://en.wikipedia.org/wiki/1854_Broad_Street_cholera_outbreak
https://en.wikipedia.org/wiki/Germ_theory_of_disease
https://en.wikipedia.org/wiki/Typhus
https://www.warhistoryonline.com/napoleon/real-reason-napoleons-invasion-russia-failed-mm.html
http://www.indiana.edu/~psource/PDF/Archive%20Articles/Spring2011/LynchBennettArticle.pdf
https://www.smh.com.au/world/study-shows-napoleons-army-was-ravaged-by-lice-20060104-gdmq6c.html
https://www.spiegel.de/international/zeitgeist/crawling-death-how-lice-thwarted-napoleon-s-invasion-of-russia-a-638751.html
1812 Napoleon's Fatal March on Moscow by Adam Zamoyski  
Napoleon's Train Troops: 1800-1815 by Paul Lindsay Dawson

The Note-Books of Captain Coignet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규규 2019.09.02 08: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글 감사합니다

  2. 이그리트 2019.09.02 0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스노우 유 노 낫씽

  3. reinhardt100 2019.09.02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럽 전체적으로 수질 문제가 심한 편이긴 합니다. 그나마 스칸디나비아 반도나 아이슬란드 정도가 덜한 편인데 라인강 이동 지역은 이서지역보다 더 심각합니다. 석회질 문제 때문인데 이 때문에 한국에 온 유럽 지질학자들이 충북과 강원도 일대 석회암 지대에서 한국인들이 우물물 그대로 먹는거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합니다. 자기들 기준에서는 이건 그대로 병원행이니까요.

    독소전쟁 당시, 양군에서 겪은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가 식수문제였는데 양군의 비전투손실 중 절반 가까이가 수인성질병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특히 무장친위대와 소련군은 정수설비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아 상황이 더욱 심각했고 약물에 의존한 치료가 남용되었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야나기 작전 당시 독일이 일본에 가장 급히 요청했던 원조 중 하나가 이시이식 정수기 설계도 및 기자재였을 정도였습니다.

  4. 유애경 2019.09.02 09: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부족에 식량부족에 비위생적인 환경...읽기만 해도 뭔가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한 상황이네요!!

  5. 마마 2019.09.02 10: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땅바닥에 고인 물까지 마셔야 했다니...

  6. 2019.09.02 11: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7. Franken 2019.09.02 1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에 물문제는 전혀 생각지 못했군요. 사막도 아닌 땅에 식량도 아닌 물이 부족할 줄이야 뒷통수 제대로 맞은 느낌이네요.

  8. 하이텔슈리 2019.09.02 19: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물 문제는 정말 생각 못했습니다. 오히려 대군을 동원한 게 역효과였던 거네요. 문득 물량전보다 정예병만 보내는 게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9. 2/28일 입대 2019.09.02 2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고 다소 더럽게(?) 읽었습니다!ㅎㅎ감사합니다. 하루종일 행군하면서 수통이 500미리도 안된다니 진짜 끔찍하네요.

  10. 카를대공 2019.09.02 21: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물 문제는 정말 상상을 못 했네요.

    말 1마리가 하루에 생산(?)하는 말똥과 오줌은 각각 약 16kg과 9.3 리터입니다. <- 여기서 나시카님이 물 문제를 설명하기 위해 얼마나 자료조사를 꼼꼼히 하셨는지 느껴졌습니다ㅎㅎ

  11. 빅터 2019.09.02 22: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쉬운 일어없네요.. 보급장교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겠네요...

  12. 이정도면 2019.09.02 22: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히려 모스크바까지 간게 놀라운 일이었네요.

    이번에도 좋은 글 감사합니다..

  13. 제이슨 2019.09.04 23: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러시아를 녹색의 사막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었군요.
    지금이야 패트병이 있어서 보관과 운송이 용이했지만, 옛날 나무로 만든 통은 자체로 무겁고, 조금만 충격을 주면 바로 물이새고
    그리고 의외로 물이 무겁지요.
    갈증에 의한 고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14. starlight 2019.09.05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코사크 기병이 저글링처럼 덤벼들어 물고 할퀴고 낙오자들을 도륙하는 모습이 상상되네요.

  15. 구와아앍 2019.09.05 20: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말먹이 사람먹이도 환장하겠는데 물까지 모자란다니....이쯤되면 어떡게 모스크바까지 갈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네요

  16. nashorn 2019.09.06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장 큰 문제는 동유럽의 흔한 질병때문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t..

  17. Eugen 2019.09.06 0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2차대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면 전혀 새로울 것 없는 현상이죠. 근본적으로 지리적 문제인데 대표적으론 모스크바로 갈 수록 전선이 길어져서 병력의 숫자가 조금이라도 모자라면 러시아의 우월한 인력동원력으로 넓게 퍼진 적군을 많은 수의 병력으로 포위섬멸해버릴 수 있죠. 그래서 히틀러도 패배한 거고요.

  18. 들꽃향기 2019.09.09 0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대장정 관한 책을 읽을 때 마지막으로 마오쩌둥의 군대를 괴롭힌 것은 사막도 아닌 아무것도 없는 드넓은 대초원의 물과 식량의 부족이라고 읽었던게 인상깊었는데. 나폴레옹에게도 초원지대에서의 물이 그러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