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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러시아 침공을 위한 병참 준비 - 무엇이 문제였을까 ? (2편)

by nasica 2019. 8. 5.


대체 이렇게 병참을 막대한 규모로 세심하게 준비했는데도 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은 보급을 등한시했기 때문에 망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일까요 ?  이것도 흔히 말하는 가짜 뉴스 때문에 나폴레옹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것일까요 ?  일단 지난 편에서 보셨다시피 나폴레옹이 여태까지 해오던 것처럼 보급을 무시하다가 큰 코 다쳤다는 이야기는 억울한 누명이 맞습니다.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 준비에 있어서 무엇보다 보급에 정말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원정을 준비하면서 다부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아무것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필요한 보급품을 모두 다 가져가야 한다."

 

그렇다면 혹시 보급품 쌓아놓을 생각만 했지 운송 수단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한 것이 아니냐고요 ?  여러분도 생각하시는 것을 나폴레옹이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  그는 의붓아들인 외젠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밝힌 바 있습니다.

 

"폴란드 전쟁(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을 제2차 폴란드 전쟁'이라고 불렀습니다)은 오스트리아 전쟁과는 완전히 다르다.  운송 수단이 없다면 이 모든 것이 다 쓸모가 없어진다."

 

그런데 왜 망했냐고요 ?  결국은 기술의 문제였습니다.

나폴레옹이 단치히에 쌓아놓았다는 식량이 말을 위한 사료를 제외하고도 40만 대군이 50일간 먹을 분량이라고 했지요.  즉 2천만 명분의 식량을 비축해놓은 셈이었는데, 이게 과연 어느 정도의 분량이었을까요 ?  원래 원정 작전에 나선 병사들에게 제대로 보급이 안되는 것은 프랑스군 뿐만 아니라 보급이 잘 된다는 영국군에게조차 흔히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1인분에 대해서 규정은 당연히 있었습니다.  프랑스군의 경우 원래 하루에 건빵 550g, 쌀 30g (또는 건조 채소 60g 여기서 건조 채소란 주로 콩류), 염장 고기 200g, 그리고 포도주 1/4리터 (또는 브랜디 1/6 리터)를 지급받게 되어있었습니다.  요즘 식당 기준으로 삼겹살 1인분이 200g 정도지만 실제로는 어느 누구의 배도 채우지 못해서 결국 1인분 더 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건 결코 많은 양은 아닙니다.  요즘 식빵 1봉지가 대략 450g이니, 바싹 말린 건빵 550g이면 그걸로 배는 채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에 포도주까지 생각하면 병사 한명이 먹이기 위해서는 대략 하루 1kg의 물자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즉, 단치히 항구에만 2만 톤의 건빵과 밀가루, 염장 고기 및 포도주가 보관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건 미국 남북전쟁 병사들의 모습입니다만, 건빵, 그러니까 비스킷(biscuit)의 모양새나 맛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비스킷을 먹으며 웃고 있는 병사들의 얼굴 표정이 비현실적이네요.  그림 출처는 https://www.artofmanliness.com/articles/how-to-make-civil-war-era-hardtack/ 입니다.  여기 보면 비스킷을 어떻게 굽는지 레시피가 나와있습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수송하느냐인데, 러시아에 아우토반 같은 고속도로가 포장되어 있고 강력한 디젤 엔진을 갖춘 트럭들이 즐비하다면 별 문제가 안 될 수 있었습니다만, 당연히 당시엔 그러지 못했습니다.  실은 트럭과 고속도로가 있다고 해도 문제였을 것입니다.  그냥 단순 계산을 하면 2만 톤의 식량을 한꺼번에 수송하기 위해서는 현대자동차의 3.5톤 마이티 트럭이 5,714대 필요합니다.  이 트럭의 길이는 대략 6.7m인데 앞뒤 차간 거리를 1.3m씩 유지한 채로 움직인다고 해도 이 트럭들이 주욱 한 줄로 주욱 늘어서면 맨 앞차부터 맨 뒷차까지의 거리는 거의 46km에 달합니다.  당연히 이 트럭들을 위한 디젤 연료 보급도 생각해야 하고 또 당연히 있게 마련인 고장에 대비해서 수리 차량도 끌고 가야 합니다.  현대 기술로도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아스팔트 고속도로가 아니라 진흙구덩이 벌판을 가로질러야 하는 군대에게는 정말 현대 3.5톤 트럭이 있다고 해도 사실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현대 마이티 3.5톤 트럭입니다.  디젤 엔진을 장착했습니다.)

 



기술이 없다면 물량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지난 편에 언급했듯이 나폴레옹은 여태까지와는 전혀 다른 대규모의 치중대를 편성하여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는 총 20개 치중대대의 7,848대 마차(문헌에 따라서는 26개 대대 약 9,300대)를 편성했습니다.  당시 4마리의 말이 끄는 대형 마차의 경우 대략 1.36톤을 실을 수 있었습니다.  이 7~8천대의 마차가 모두 대형은 아니었지만 그냥 모두 4두 대형 마차라고 가정하고, 또 준비된 마차도 7,848대가 아니라 9,300대라고 가정하고 계산하면 이 치중대가 실어나를 수 있는 무게는 총 12,648톤에 이릅니다.  40만 대군이 50일 먹을 식량의 최소치인 2만톤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대략 필요량의 60%에 달하는 막대한 수송량입니다.  게다가 아무리 러시아가 척박한 땅이라고 해도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이니 틀림없이 식량을 일부라도 현지 조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폴레옹이 6월 24일에 네만 강을 건너 러시아 침공을 시작한 것에는 날씨에 대한 고려도 있었지만 러시아의 곡물 추수기가 대략 8월~10월이라는 것도 고려된 것입니다.  이 정도면 여전히 프랑스군 병사들은 배가 많이 고팠겠지만 그래도 굶주림으로 궤멸할 정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계산에는 전혀 들어가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연료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현대 마이티 3.5톤 트럭의 경우 연료 탱크에 150리터의 경유가 들어가고, 연비는 (적재량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빈 차인 경우 대략 7km/리터이니, 무거운 짐을 실은데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조건이면 대략 4km/리터로 잡겠습니다.  그러니 프랑스군이 쾌속으로 하루 30km씩 진군한다고 하면 하루 8리터의 연료를 써야 합니다.  연료 탱크에 들어있는 연료만으로도 18일간 작전이 가능하고, 나폴레옹이 진격을 시작한지 83일 만에 모스크바에 입성했으니, 5번의 연료 보급를 더 받으면 됩니다. 이 5번의 보급을 위해서는 약 3560톤의 디젤유를 수송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트럭이 1,017대 더 필요합니다.  전체 트럭 5714대의 18%에 해당하는 오버헤드입니다.  생각보다 많기는 해도, 감당이 안 될 정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디젤을 먹는 트럭 대신 풀과 곡물을 먹는 말의 경우로 계산해보면, 화석 연료의 강력함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말은 하루에 대략 9kg의 사료를 먹어야 합니다.  9,300대의 마차에 딱 4마리씩 37,200마리의 말만 필요하다고 가정해보시지요.  (현실적으로는 예비마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수의 말이 필요합니다.  실제로 나폴레옹의 치중대에는 4두 마차 외에도 2두 마차가 꽤 있어서 전체 마차 수는 9,336대, 말은 약 32,500마리가 있었고 예비마가 6천마리 더 있었습니다.)  이 말들은 하루에 335톤의 사료를 먹어야 합니다.  83일 동안이라고 생각하면 27,788톤의 사료입니다.  잠깐만요.  이 마차들이 실어나를 보급품의 총량이 얼마라고 했지요 ?  예, 맞습니다.  12,648톤입니다.  그러니까 이 말들은 자신이 실어날라야 하는 무게의 2배가 훨씬 넘는 무게의 사료를 먹어야 합니다.  이건 도저히 견적이 나오지 않는 과제입니다.  게다가 기억하셔야 할 것이, 저 12,648톤의 보급품은 병사들이 필요로 하는 정량의 60%에 불과한 양입니다.  물론 이솝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식량이라는 짐은 사람이나 말이나 계속 먹어치우는 것이므로 여행을 가면 갈 수록 가벼워집니다.  그러나 현대적인 디젤 엔진으로는 비교적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를 사료를 먹는 말로 해결하려 할 경우 도저히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은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전에 인용했던 나폴레옹 전쟁을 배경으로 한 소설 Sharpe 시리즈 중의 한 장면을 읽어보시면 더욱 공감이 가실 겁니다.

 

Sharpe's Honour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13년 스페인) ---------------

하지만 이 뜻하지 않게 사령부에서 도착한 텐트는 쓸데없는 문제거리를 만들어냈다.  대대 전체의 텐트를 움직이려면 노새가 5마리 필요했다.  노새 한마리는 200 파운드의 짐을 싣고, 거기에 추가로 자기가 먹을 6일치 사료 30 파운드를 더 실을 수 있었다.  작년 여름 작전처럼 행군을 한다면 사료가 부족해지니까 추가 사료를 싣기 위해 추가의 노새가 필요했는데, 그 추가된 노새도 먹어야 하니까 그 추가된 노새가 먹을 사료를 실어나를 노새가 또 필요했다.  샤프가 6주간의 행군을 한다면 900 파운드의 추가 사료가 필요했는데, 이 사료를 실은 노새만도 4~5 마리가 필요했고, 이 노새들이 6주간 먹을 사료만도 700 파운드가 필요했으므로 추가로 4마리의 노새가 필요했다.  이 추가된 4마리 노새도 또 사료를 먹어야 했으므로, 이 웃기지만 정확한 계산을 끝마치고나니 5마리의 텐트 수송용 노새를 6주간 먹여살리기 위해 추가로 14마리의 노새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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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나고 말 났지 말 나고 사람 났냐 ?"라며 말 사료는 대폭 줄이고 사람이 먹을 식량을 더 가져가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들 하시겠지만, 그것도 정확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인간은 생각보다 강한 짐승입니다.  인간 병사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부족해도 쉽게 죽지 않고, 원래 걸어야 할 거리의 2배를 무리해서 행군해도 잘 버팁니다.  그러나 말은 먹이 부족과 과로에 견디지 못하고 픽픽 죽어 넘어집니다.  보통 전쟁에 나서는 인간은 지든 이기든 80% 이상이 살아 돌아오지만, 말은 60% 정도만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인간과는 달리 말은 그냥 들판에 널린 풀을 뜯어먹으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의 겨울을 피해 훨씬 이른 시기인 봄에 작전을 시작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그런 것이었습니다.  풀이 잘 자란 여름에 작전을 해야 말의 사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지요.  또 모든 기병대원에게는 말 먹이 풀을 벨 수 있도록 낫이 지급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말은 원래 풀을 뜯어먹는 짐승이니 풀밭에 풀어놓으면 된다는 생각은 말이 하루종일 정말 풀만 뜯을 때나 통하는 것입니다.  하루 종일 강제로 걷게 하다가 길가의 풀을 약간 뜯게 하는 것은 사람으로 따지면 하루 종일 중노동 시킨 뒤에 얇은 식빵 2조각 던져주고 '사람은 원래 빵을 먹는 동물'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동일한 일입니다.  그나마 수만 마리의 말이 통과하는 길이라면, 그 길가의 풀은 순식간에 씨가 마르게 됩니다.  실제로 나폴레옹이 네만 강을 건넌지 1달 만에 별다른 큰 전투도 없었는데 나폴레옹은 1만 마리의 말을 잃었습니다.  

 

(프랑스 포병대 소속의 마부 병사와 말입니다.  병사도 불쌍하지만 말은 더 불쌍했습니다.)

 



게다가 그나마 도로 사정이 괜찮은 편이라는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도 치중부대는 언제나 진흙탕이나 다름 없는 도로 사정 때문에 보병 부대를 따라잡는데 항상 애를 먹었습니다.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그리고 러시아로 이어지는 광활한 동부 유럽은 사정이 훨씬 나빴습니다.  역사가 리엔(Richard K. Riehn)에 따르면 이런 수준이었답니다.

"24일의 폭풍우는 폭우로 바뀌었다.  덕분에 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리투아니아의 통행로는 바닥을 알 수 없는 진창으로 변해버렸다.  짐마차는 진창 속에 너무 깊게 빠져 바퀴 축이 땅에 닿을 정도였고, 말들은 지쳐 쓰러졌으며 병사들은 군화를 잃었다.  이렇게 퍼져버린 짐마차들로 인해 길이 막히자 병사들은 그 둘레를 빙 돌아가야 했고 보급품 마차와 포병대는 아예 멈춰설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다 날이 개어 해가 나왔는데, 진흙구덩이 속의 바퀴자국들은 햇빛에 바싹 마르자 아주 단단한 계곡으로 변해버렸다.  이런 울퉁불퉁한 도로 때문에 말들의 다리가 부러졌고 짐마차들의 바퀴가 깨졌다."

 

(영어로는 이런 진창 길에 난 바퀴 자국은 rut이라고 하던데, 한자어에 나오는 '전철을 밟는다'라는 단어의 전철(前轍)이 바로 앞서 간 마차의 바퀴 자국을 뜻하는 것이지요.  왠지 130년 뒤에 나폴레옹의 전철을 밟았던 어떤 오스트리아 화가 지망생 생각이 나는 한자어네요.)

 

 

이런 진흙탕 도로 위에 1.36톤의 짐을 싣는 4두 마차를 끌고 가면 결과는 뻔했습니다.  나폴레옹도 좀더 가벼운 2두 마차를 더 많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2두 마차의 수송량은 4두 마차의 절반이 아니라 그보다 크게 더 떨어졌습니다.  이렇게 두당 수송량이 떨어지면 그렇지않아도 답이 안 나오는 사료 문제는 더욱 답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나폴레옹도 이게 답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2두 마차 대신 4두 마차 위주로 마차를 준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나폴레옹이 유럽 전역의 말과 마차, 사료를 다 끌어모았다고 하더라도 치중부대가 나폴레옹의 배고픈 보병부대에게 건빵을 제때 전달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과연 나폴레옹은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



Source : 1812 Napoleon's Fatal March on Moscow by Adam Zamoyski 
http://www.indiana.edu/~psource/PDF/Archive%20Articles/Spring2011/LynchBennettArticle.pdf
https://pdfs.semanticscholar.org/1d6e/96fd09126a40dca06ef01e8c9b13785e8379.pdf
https://warandsecurity.com/2013/02/11/why-napoleons-1812-russian-campaign-failed/
https://en.wikipedia.org/wiki/French_invasion_of_Russia
https://www.stolenhistory.org/threads/1812-french-invasion-of-russia-vs-logistics.1167/
https://www.bbc.co.uk/news/magazine-16929522
Napoleon's Train Troops: 1800-1815. Paul Lindsay Dawson

 

댓글29

  • 이타카 2019.08.05 06:48

    역시 러시아는 말도 안되는 곳이군요ㅜㅜ 말이 작전하기 이리 어려운 동네에서 도대체 그럼 몽골군은 어떻게 러시아 정벌을 해낸 걸까요??
    답글

    • nasica 2019.08.05 07:07 신고

      어 ? 그 이야기는 간단하게라도 다음 편에 나올 예정입니다만... (누가 보면 짜고치는 고스톱이라고 생각하시겠습니다 ㅋ)

    • reinhardt100 2019.08.05 09:33

      간단합니다. 나시카님께서 쓰실테니 이쯤에서 ㅋ

    • 원인 2019.08.05 12:24

      간단하죠.
      몽고군은 땅이 굳기 전에 공격해서 라스푸티챠에 당한 것이 아니라 땅이 굳은 뒤인 겨울에 공격해 와서 오히려 러시아를 빠른 속도로 파고들었죠. 추위는 몽고가 더 심하기 때문에 몽고군에게 겨울이 더 알맞은 계절이라고 할 수 있죠.

      라스푸티챠는 몽고군도 두려워 하는 무서운 지리조건이죠.
      몽고군이 헝가리 침공때에도 때마침 다뉴브강이 범람해서 늪지대가 되는 바람에
      헝가리에 결정타를 먹이지 못하고 결국 철수했죠.
      역사책에는 우구데이칸이 죽어서 철수했다고 하지만 다뉴브강 범람의 원인이 큽니다.

      만약에 다뉴브강이 범람하지 않았다면 ? 여전히 몽고군은 기동에 제약이 없었을 것이고..
      설사 우구데이칸이 죽었다고 해도 2선급 부대를 남겨놔서 헝가리를 초토화 시켰겠죠.
      마치 훌레구가 키트부카를 시켜서 맘루크를 공격하게 한 것처럼 행동했겠지만
      현실은 늪지대라는 가혹한 환경에서 더 이상 작전하는 게 무익했던 겁니다.

    • 이타카 2019.08.05 21:29

      역시 독자의 생각을 자연스럽게 이해하시면서 글을 쓰시는군요! 저는 지금 유럽 여행 중인데 내일 파리로 이동합니다ㅎㅎ 나시카님 애독자로서 앵발리드를 다녀오면 느낌이 유별날거 같네요 :)

  • 2/28일 입대 2019.08.05 11:51

    한국광복군의 최후의 비밀병기 무다구치 렌야 장군이 떠오르는 이유는 왜일까요ㅎㅎㅎ

    답글

  • 원인 2019.08.05 12:22

    그는 러시아 원정을 준비하면서 다부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 이 대목에 나와 있듯이 나폴레옹은 작전에 있어서 다부와 상담을
    하는 경우가 많았고 러시아 원정 건에 있어서도 다부와 함께 할 때
    보급의 중요성은 동의했지만 다부의 건의는 받아들이지 않았죠.

    다부의 작전은 발틱해의 해상운송을 통해서 리보니아에 거점을 만들고
    그 리보니아로부터 상트뻬쩨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공격하는 것인데,
    나폴레옹이 다부의 건의를 무시하고 바로 육로직공을 선택한 것이
    러시아 원정의 패배원인 중 하나입니다.
    답글

    • 원인 2019.08.05 13:15

      아마도 정서의 차이가 크겠죠.
      다부는 소심하고 걱정이 많아서 사소한 인명,물자 손실에도 민감한 성격인 반면에
      나폴레옹은 대담하고 자신만만해서 상당한 인명, 물자 손실을 아랑곳하지 않았죠.
      그러다 보니 러시아 원정에서 "보급선상의 손실"을 "머리속에서 체감하는 가상적인 고통의 크기"가 달랐을 겁니다.

      다부의 가상체감으로는 사소한 인명,물자손실도 심각하게 느껴졌을 것이고
      나폴레옹의 가상체감으로는 상당한 인명,물자손실도 대수롭지 않게 느껴졌겠죠
      전쟁이라는 게 생각외로 수행하는 주체의 정서적인 차이에 따라서도 많이 갈리거든요

    • 빅터 2019.08.05 22:38

      해상은 영국이 잡고 있지 않나요?

    • 카를대공 2019.08.07 14:57

      수로를 통한 보급,거점을 만든다는 생각은 과연 탁월한 전략안이네요.
      그런데 윗분들 말씀처럼 영국이 해상은 꽉 잡고 있는데 보급이 가능 했을까요?
      2차 대전 북아프리카 전선에서도 롬멜한테 물자 대주려다 수많은 배들이 가라앉았었죠.

    • 원인 2019.08.07 15:55

      //빅터, 알타리무,카를대공

      리보니아 해상운송은 복잡한 발틱해 연안을 따라서 항해하는 것이지 넓은 바다를 가로지르는 항해가 아닙니다. 그걸 먼저 염두에 두셔야죠. 연안항해를 함으로서 영국해군의 능숙한 기동능력이 상대적으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한적으로만 움직이는 게 전제조건입니다.

      또한 이 지역은 30년 전쟁때부터 이미 무수한 스웨덴 해군력의 침공으로 그 방비에 이골이 난 지역이고 해안지역에는 요새와 해안포로 무장한 도시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죠. 슈트랄준트 같은 것은 단지 그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 환경에서 최대한 해안에 바짝 붙어서 요새와 해안포의 엄호를 받으면서 연안항해를 할 경우에 독일,폴란드 지역에서는 영국해군이라도 그렇게 쉽게 공격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문제가 되는 발틱해 동쪽의 리보니아쪽은 경제력이 약하고 해안 방비가 잘 안 된 지역이므로 이 쪽이 약점이긴 한데, 그래서 제가 썼듯이 해안항해 + 해안육로행군을 병행해야 할 겁니다. 아마도 리투아니아 가까운 지역부터는 육상보급의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지만 러시아 내륙을 가르지르는 무모한 경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안전하죠.

  • 원인 2019.08.05 12:29

    애초에 러시아인들이 몽고인들을 몰아낼 때 자주 사용한 수법이 바로
    수로를 이용한 우회공격이었음을 생각하면 러시아 원정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바로 강을 따라서 기동하는 것이란 것을 알 수 있죠.
    공격부대뿐 아니라 보급부대도 강을 따라서 기동시켜야 되는 거죠.
    러시아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생각외로 강이 크고 숫자도 많아서 활용의 여지가 크죠.
    러시아인들이 몽고군을 수로기동으로 후방기습을 자주한 것도 이런 지리적인 유리함 때문입니다.

    수로를 사용한 공격, 수로를 사용한 보급을 1차적으로 고려했어야
    러시아 원정이 성공할 수 있는 겁니다.
    똑같은 러시아 땅에서 러시아인이 침공군을 물리치는 거나 침공군이 러시아인들을 물리치는 거나 원리는 같은 법인데,
    왜 러시아인들이 몽고군을 몰아낼 때 사용한 수단인 수로공격, 수로보급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았던 것일까 싶네요.
    답글

  • 원인 2019.08.05 12:36

    수로를 이용한 우회공격으로 유명한 것이 바로 로마제국VS게르만족이죠.
    토이토부르크에서 게르만족의 기습으로 개박살난 로마제국이 보복공격으로
    처음에 육로직공을 선택했으나 늪지대로 변한 게르마니아에서 다시 박살났죠.
    그 다음에는 라인강을 따라 수로공격을 했고 결국 성공했습니다.

    라인강 깊숙히 들어올 때까지 게르만족이 로마군을 공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보급로에서 손실이 전혀 없었고 아울러 기습의 효과까지 누릴 수 있었죠.
    서유럽에서 조차도 이럴진데, 더욱 광대하고 습한 동유럽에서는 당연히 수로를
    위주로 작전을 짜는 게 맞는데, 로마 매니아인 나폴레용이 왜 이건 참고하지 않았을까?

    나폴레옹의 주요 정책, 군략은 로마역사에서 가져온 것이 많은데, 왜 이 대목은 참고하지 않았을까 ?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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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비니우스 2019.08.05 13:19

    전에 사극 엑스트라 알바 했을때 말이 길바닥에 똥을 싸대는걸 자주 봤는데 엄청 많이 싸더군요 ㄷㄷ 그만큼 많이 먹었다는 얘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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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8.05 14:13

    삑! 정답!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혹시 아닙니까? 물론 해군을 맨땅에서 건설하는 것도 방법이고, 기술 개발도 방법이고, 길을 닦아도 해결은 가능하고, 방법 자체야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능성, 효율성, 기대 편익, 기대 손실을 고려할 때 뭘 어떻게 해도 그 '한정된 자원'으로 다른 무언가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요. 원래 체면값, 자존심값이라는 게 생각보다 비싸잖습니까? 프랑스 상공인의 이익을 조금 덜 지켜도 나폴레옹의 권좌 자체는 괜찮을 거라고 봅니다. 아마 위신이 떨어지고 참 견디기 힘들 수 있고 이런저런 머리 아픈 문제가 생기겠지요. 하지만 단언컨대 '묻지 마 러시아 원정'보다는 덜 나쁜 선택이었을 거라고 굳게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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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sica 2019.08.05 22:18 신고

      저도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 개돼지조무사 2019.08.06 14:03

      아이고, 장구벌레님, nasica님이 아드님한테도 주입한다던 하이쿠를 여기서 들으면 민망하시겠습니다, 그렇게 딱잘라 돌려드리면 너무 뼈아프시지 않겠어요? :-)

  • 2019.08.05 14:17

    손자병법을 보면,

    "적이 승리하지 못할 상황은 내게 있다. 내가 승리할 상황은 적에게 있다."

    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나폴레옹이 지지 않을 상황은 직접 만들기 쉬워도, 나폴레옹이 이길 가능성은 실수든 근본적 한계든 다른 무엇이든, 꼭 자의가 아니더라도 러시아 쪽에서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갈량도 북벌의 조건 중 하나를 대강 이렇게 말했습니다.

    "(변방 유목민의 침략이든 내분이든 다른 무엇이든)위나라의 상황이 어지러울 때 치고 올라간다."

    아쉽게도 완벽한 기회는 끝내 오지 않았지요. 그럭저럭 괜찮았던 기회도 안타깝게 날려 버렸고요. 하지만 정답이 안 보인다고 해서 일부러 오답을 택할 이유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나폴레옹도 러시아가 기회를 만들어 줄 때까지 기다려야 했고, 안 만들어 주면 그냥 원정 자체를 때려치워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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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inhardt100 2019.08.05 22:24

    수로를 이용하는건 사실 무리였습니다.

    우선, 수로의 연속성이 없다는 겁니다. 네만강, 드네프르강, 돈강, 볼가강이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거든요. 하천 구간까지는 하천용 선박을 운용하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그 사이가 문제였죠. 18세기 내내 러시아도 인구가 증가하면서 대규모 경작지 확대가 이루어졌고 이 때문에 고대와 키예프 루시 시대만 해도 광활하게 펼쳐졌던 늪지와 습지들이 상당부분 개간되어 사라졌죠.

    선박도 문제입니다. 45만 대군을 먹여살리기 위해서 최소 수백척의 상선단 및 그만한 수의 하천용 선박이 필요한데 프랑스군은 그걸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18세기 중엽에 영국과의 지속적인 전쟁으로 인해 톤수로 전열함급 수준의 상선이 수백척 이상 날아가버리면서 해운력의 기초까지 완벽히 박살난게 이 시대까지 복구가 안 되었습니다. 또한 스웨덴이나 덴마크가 적극적으로 프랑스에 가담했다고 해도 양국의 해운력은 도저히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여담이지만 독소전쟁 당시, 독일 국방군은 24개 대대의 철도 대대를 운용했지만 보급은 항상 부족했습니다. 철도 설비도 심각했지만 더 큰 문제는 보급품 집적지로부터 전선까진 대체적으로 6두 마차로 수송했는데 이게 엄청나게 문제였죠. 소련 파르티잔도 문제였지만 속도가 너무 느렸거든요.
    바르바로사 작전 당시 143개 사단에 배속된 수송용 마필이 총 60만두였는데 작전 개시 2달만에 50%이상의 손실이 발생해서 태풍작전과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시간이 안 맞는 사태가 벌어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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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인 2019.08.05 23:02

      육로운송보다는 수로 운송이 맞는 선택이죠. 러시아 침공에 필요한 건 볼가강 하나뿐이니까 나머지 수로의 연속성은 필요 없습니다. 주요목표는 리보니아와 상트뻬쩨르부르크, 모스크바이지 그 외의 내륙지역이 아니니까요.

      설령 육로로 대군을 들여 보내고 육로보급에 어느정도 의존한다 해도 수로보급은 반드시 해 놔야 원정군의 편의를 보장할 수 있죠.
      2차대전때 미군이 200만대군을 상륙시킨 뒤에 노르망디 보급선에 의존해서 개고생하다가 앤트워프 항구를 확보해서 원정군의 부담을 크게 덜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물론 프랑스군이 2차대전 미군처럼 해운력을 가진 건 아니라 해도 마필운송에 의존하다가 차례차례 죽어가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겁니다. (다부는 원정군 규모 45만은 너무 크고 20만 정도가 적당하다고 봄. )

      스웨덴이 영국과 결탁해서 영국해군을 발틱해로 들여보낼 경우에 영국해군의 위협도 있을 수 있으니 해상운송, 해군력이동은 당연히 연안항해를 해야겠죠. 넬슨이 아부키르 만에서 연안방어태세에 있던 프랑스해군을 격파한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방식은 아니니까요. 또한 병력수송은 선박승선과 해안선 행군 이동을 병행합니다.

      단순무식하게 공세만 따져 봤을 때.. 우선 리보니아를 확실하게 장악하는 것에 전력을 집중하고 나서...
      우선 뻬쩨르 부르크는 리보니아로부터 바로 바다에서 접근 가능합니다. 물론 요새화 되어 있으니까 바로 도시에 상륙할 수는 없고 그 옆에 상륙해서 일단 교두보를 구축해서 유리한 위치를 장악한 뒤에 해안선을 따라 육로로 보낸 전력을 증원해서 공략해야 되겠죠.
      해안선을 따라서 육로로 접근하는 것도 허허벌판에 가까운 내륙경로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합니다. 스웨덴-폴란드 전쟁때도 스웨덴 군이 이런 식으로 습한 해안땅으로 병력을 이동시켜서 폴란드군의 기습을 피했죠. ( 물론 괜히 폴란드군의 도발에 넘어가서 선빵날리다가 결국 털렸지만 )
      그 다음 모스크바가 문제인데,
      발틱-볼가 수로가 나폴레옹 침공전에 이미 만들어져 있어서 뻬쩨르부르크쪽에서 모스크바 북쪽으로 흐르는 볼가로 진입할 수 있죠. 물론 이 때에도 강을 따라서 하천선박운송과 강기슭을 따라서 행군하기를 병행합니다. 강기슭의 습한 토질로 코사크 기병의 기습에 대한 안전함과 유사시 식량, 목초등의 확보에도 황량한 내륙지역 행군과는 비교가 안 되게 유리하죠
      물론 볼가강으로 들어가는 수로를 토목공사로 파괴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모스크바 방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죠. (이미 만든 운하를 매립해 봐야 주민들 동원해서 다시 파내면 됨 )

      해운선박은 예전 한자동맹 도시가 주류였던 발틱해 연안 도시에서 징발해서 씁니다. 선박 손실율은 그 당시 마비저( 말에 감염되는 박테리아 질명)으로 국경선에서 궤멸적인 타격을 받은 마필손실에 비할 바가 아니죠.
      또한 선박이 부족하다 해도 마필수송하고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이죠. 현대기술로도 열차수송과 선박수송이 말도 안 되게 차이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원정이라는 본래 전략 목표에 좀 더 입각해서 고찰하자면...
      리보니아를 해상보급으로 연결하는 것은 단순히 원정군의 최초 공세만을 위한 게 아닙니다.

      로마군단이 원정에서 대부분 성공한 근본 원인이 바로 최전선 바로 뒤에 근거지 구축을 먼저 하고 최초 공세가 실패한 뒤에도 궤멸적인 타격을 받지 않고 재차 공세를 가하거나 퇴각할 경우에도 손실을 최소화 시키고 퇴각했기 때문이죠.
      하물며 리보니아는 로마군 보급진지처럼 허허벌판도 아니고 수백년 동안 독일과 덴마크, 스웨덴의 식민통치로 개발이 된 곳이죠.
      모스크바에서 철퇴하더라도 리보니아에 근거지를 구축해 놨다면 정신없이 쫓기다가 동사,병사는 하지 않았을 겁니다.

      스웨덴이 북방전쟁에서 개털린 이유도 칼 12세가 리보니아에서 재보급하자는 신하의 말을 무시하고 육로직공을 했기 때문이죠.
      실제로 스웨덴이 북방전쟁으로 개털리기 전까지 계속적으로 유럽대륙에 힘을 투사하고 러시아를 통제하는 데 성공한 건 바로 리보니아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죠.
      이는 또한 동아시아에서 만주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요동반도를 갖고있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위상입니다.

      물론 나폴레옹의 침공이 무모한 건 맞지만 일단 원정을 성공시키기로 결심했다면 B플랜, C플랜까지도 철저히 준비하는 게 맞죠. 그리고 B플랜의 1순위는 수로운송과 리보니아 확보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러시아원정의 진짜 의미가 러시아를 굴복시키지 못했다는 사실 보다는 프랑스제국의 전쟁수행역량 그 자체에 치명타를 주어 결국 대불동맹의 압박을 더이상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알렉산드르1세를 잡지 못했을 때 손실을 최소화 시키고 안전하게 퇴각하는 것이 극히 중요했다는 겁니다.

  • Spitfire 2019.08.05 23:54

    나폴레옹의 병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역사의 if가 가능했을까 기대했는데, 말 사료 이야기 나오는 순간 ‘아..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돌아보니 표트르 대제의 발트해 진출과 서구화는 어찌보면 유럽의 역사를 바꾸는 업적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정말 대제로 불릴만한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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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ils 2019.08.07 02:37

    말이 먹는 거 무시하면 안되지요. 예전에 동호회 분들이 말 몰고 다니다 오셨는데, 말 세마리가 수백평 잔디밭을 30분 안에 아작을 내놓더군요. 다행히 뿌리까지 파먹지는 않았지만 왜 말먹이 건초가 필요한 지 생생히 보고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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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를대공 2019.08.07 14:59

    말 건초가 부족했다 <-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서 자주 언급되는 구절이긴한데 이렇게 자세하게 써놓으시니 얼마나 심각한 문제였는가 새삼 실감이 되네요.
    이래서 화석연료가 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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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롬. 2019.08.07 18:31

    흔히 그냥 나폴레옹이 러시아 원정에서 실패해서 몰락했다 책 한줄로만 알았고 우연히 본 화학책에서 단추 소재 때문에 금방 떨어져서 외투를 여밀 수가 없었다 라고만 알았는데.. 정말 철저하게 준비했었군요.

    인터넷인가 다큐멘터리에서 줏어듣기로 러시아원정을 하느냐 마냐도 몇달동안 심각하게 내린 번복을 하며 고민 끝에 결정했다고 들었었는데.. 아 준비과정이 생각보다 굉장히 치밀했고 그럼에도 불구, 그 치밀한 준비로도 안된거였네요. 현대의 트럭 기술로도 아슬아슬한 거였다니... 어마어마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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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롬. 2019.08.07 18:41

    어머니께서 어렸을 때 소에게 먹이를 주셨기에 소도 말이랑 먹는량 비슷하겠지 싶어서 여쭈어봤더니

    소가 풀을 먹는다지만 그건 소를 풀 많은 곳에 아침에 등교하며 풀어두고 나중에 하교하며 찾는등 정말 소가 일도 안하고 하루종일 제발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만. 뜯었을 때나 그렇다 하시더군요...

    또 농번기엔 일을 많이 시키니까 하루종일 풀 뜯도록 놔둘 수가 없어서 여물을 먹이는데 이것도 그냥 지푸라기 막 주는게 아니라, 현대 군인들이 고칼로리 음식으로 식단을 채우듯 콩잎이나 호박잎 등등

    소취향에 맞는+소가 먹고 탈 안나는 종류의 + 그러면서 내가 구하기 쉬운 종류의 + 고칼로리의 풀을 섞어야 하는데다, 소화 되기 쉽게 끓여야 하는등 (그냥 풀이면 막 다먹는게 아니라 의외로 소도 취향이 있다 하시던...하긴 개•고양이도 사료 취향이 있는데 소라고 없을까 싶습니다...)

    말 그대로 고칼로리+소화가 잘되는 쑨 죽은 말그대로 요리 과정이더군요...

    하루종일 노동하는 말이 먹을 고칼로리의 풀을 자연에서 그것도 몇 천 마리가 동시에, 오늘도 먹고 내일도 먹고 모레도 먹을 양을 구하기란 당연히 불가능이고... 싸들고 간다친들 어마어마하겠네요

    한 마리가 말려서 가볍디 가벼운 그 풀을 킬로그램단위로 먹던데.... 무게도 무게지만 가벼운 풀을 킬로, 톤 단위로 모아야 하니 그 부피가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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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르빌 2019.08.08 14:36 신고

    군대 보급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다수의 사람들한테 나눠줄 물품이나 먹을것 등등 계획하고 계산하는데도 환장할 정도로 머리아프더라고요.. 변수도 워낙 많아 아주그냥 난리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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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ㅁㄴㅁㄴ 2019.08.10 22:04

    해상보급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나 크림반도 깨부시는거 외엔 러시아원정은 당시 기술론 불가능의 영역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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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NDA 2019.08.29 11:04

    러시아에 차관을 빌려줘서 포장도로를 깔수 있도록 해 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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