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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

스톡홀름의 프랑스 왕 (10편) - 로또를 맞은 것은 누구인가

by nasica 2018. 8. 27.

베르나도트는 스웨덴 국민들이 자신에게 바라는 것, 즉 러시아로부터 핀란드를 되찾아오는 임무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건 북구의 촌뜨기 스웨덴 사람들이 국제 사정을 몰라서 가진 소원일 뿐, 도저히 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스웨덴 사람들의 소망을 처리하는데 있어, 자신이 그저 지시받은 목표를 무조건 수행해내는 단순무식한 장군이 아니라 목표 설정 자체부터 재검토하는 진정한 국가 지도자급 인물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증명해보입니다.


그는 떠오르는 강대국 러시아로부터 핀란드를 되찾아오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설령 나폴레옹의 힘을 빌어 일시적으로 되찾아온다고 해도 그건 일시적인 만족감을 줄 뿐, 결국 반드시 러시아와 끝없는 전쟁을 불러올 뿐이라는 것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러시아는 끊임없이 서방으로 진출하려는 나라였고, 또 핀란드와는 넓은 국경선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핀란드인들은 스웨덴의 통치를 좋아하지도 않았으니 핀란드인들의 지지도 없이 러시아로부터 핀란드를 지킬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스웨덴 사람들에게 '꿈 깨라, 너희들은 씹지도 못할 고깃덩이를 탐내고 있다'라고 핀잔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베르나도트는 스웨덴이 진정한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핀란드가 아니라 노르웨이를 손에 넣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노르웨이를 보유하고 있는 덴마크는 러시아에 비하면 매우 허약한 상대였고, 또 지정학적으로도 노르웨이만 손에 넣으면 스칸디나비아 반도 내에서 스웨덴은 외적의 침입을 우려하지 않고 단단한 천연 국경을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핀란드와 러시아 사이의 국경은 무려 1340km나 됩니다.  지금도 핀란드는 러시아의 간섭과 영향을 끊임없이 받고 있지요.  Finlandization이라는 말이 사전에 실릴 정도니까요.   위 지도에서 붉은색 부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게 빼앗긴 핀란드 영토입니다.)




(베르나도트의 구상처럼 노르웨이를 손에 넣으면, 스웨덴은 바다에 의해 유럽과 분리되어 국방에 있어 매우 안전한 상태가 됩니다.)




나폴레옹이 베르나도트에게 프랑스에 대한 적대 행위 금지 약속을 받아내려 했던 것처럼, 베르나도트도 나폴레옹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노르웨이였습니다.  아마 자신의 퇴직금조로 생각했던 것일까요 ?  아마 이때가 나폴레옹과 베르나도트의 뒤틀린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을 것입니다.  물론 나폴레옹은 그에 응하지 않고 그 기회를 뻥 차버리고 말았습니다.  자신에게 총부리를 겨눌지도 모르는 스웨덴에게 줄 선물을 프랑스 말을 잘 따르는 착실한 동맹국인 덴마크로부터 뜯어낼 수는 없기 떄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생각해보면 이때 베르나도트에게 노르웨이를 선물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어차피 덴마크는 나폴레옹으로부터 노르웨이를 양보하라는 무리한 요구를 받는다고 해도 프랑스로부터 떨어져 나갈 처지가 못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 노르웨이를 선물함으로써 스웨덴을 확실한 프랑스 동맹으로 끌어들였다면 1813년 라이프치히에서의 패배가 없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비록 노르웨이를 선물꾸러미에 넣어오지는 못했지만, 베르나도트는 1810년 11월 2일 스톡홀름에 도착하여 엄청난 환영을 받았습니다.  그는 여기서 이름을 스웨덴식 카알 요한(Karl Johan)으로 바꾸고 또 스웨덴 법률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종교도 카톨릭에서 개신교인 루터교로 개종했습니다.  그는 스톡홀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단히 좋은 인상을 주며 재빨리 인기와 영향력을 확대했습니다.  심지어 평민인 그가 왕세자로 책봉된 것을 내심 못마땅히 여기고 있던 국왕 카알 13세와 그의 왕비 샤를로타도 베르나도트를 각각 따로 만나보고는 그의 사람됨과 군주로서의 그릇에 크게 호감을 느꼈습니다.  카알 13세는 베르나도트를 처음 만나 본 뒤, 측근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왕세자 책봉에 있어서) 난 꽤 큰 도박을 벌였는데, 결국 내가 이긴 것 같구만."


샤를로타도 베르나도트가 '모든 면에서 완벽한 신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르나도트가 스톡홀름에 도착하자마자 인기를 독차지하며 대세남이 된 것은 결코 그의 사교성이나 예의범절이 훌륭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잘 준비된 군주였는지는 도착 3일 뒤인 1810년 11월 5일 스웨덴 의회(Riksdag)에서 행한 다음 연설 내용을 직접 읽어보시면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도 간만에 불어 공부하는 셈 치고 불어 원문과 대조 번역했습니다.  물론 구글 번역기 도움을 크게 받았습니다.)



« J'ai vu la guerre de près, j'en connais tous les fléaux ; il n'est point de conquête qui puisse consoler la patrie du sang de ses enfants, versé sur une terre étrangère. J'ai vu le grand Empereur des Français, tant de fois couronné des lauriers de la victoire, entouré de ses armées invincibles, soupirer après l'olivier de la paix. Oui, Messieurs, la paix est le seul but glorieux d'un gouvernement sage et éclairé ; ce n'est point l'étendue d'un Etat qui en constitue la force et l'indépendance : ce sont ses lois, son commerce, son industrie, et par-dessus tout, son esprit national. »


"나는 전쟁을 가까운 거리에서 봐왔습니다.  나는 그 모든 참상을 잘 압니다.  외국 땅에 뿌려진 그 자식들의 피에 대해 조국이 위로받을 정도의 정복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토록 많은 승리의 월계관을 쓰고 또 그 무적의 군대에 둘러싸인 위대한 프랑스 황제가 평화의 올리브 가지 뒤에서 한숨을 내쉬는 것을 봐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평화야말로 현명하고 계몽된 정부의 유일하게 영광스러운 목표입니다.  국력과 독립을 뒷받침해주는 것은 국가의 영토 넓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 국가의 법과, 통상과, 산업과, 그리고 무엇보다 그 국민 정신입니다."



어떻습니까 ?  어느 현대 국가에서 대통령이 하는 연설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현대적인 명문 아닌가요 ?  제가 베르나도트에 대해 이렇게 따로 긴 시리즈를 쓰게 된 것도 이 연설문을 보고 너무나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평생을 전쟁터에서 보낸 군인이었으나 결코 총칼의 힘으로 스웨덴을 부강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고, 나폴레옹의 부하였음에도 나폴레옹의 지시에 따를 생각이 없었습니다.  결정적으로, 핀란드를 바라는 스웨덴 사람들의 욕망 때문에 스웨덴 왕세자로 선출되었으면서도 결코 그 위험한 욕망을 채워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샤를로타 왕비가 끈질기게 구스타프 왕자를 지지했던 것은 그녀가 속절없는 보수 혈통주의자이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처음 아우구스트가 왕세자로 책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덴마크인도, 러시아인도, 프랑스인도 되고 싶지 않다, 나는 스웨덴인이고 싶다'라고 말한 바 있었습니다.  즉, 스웨덴은 더 이상 러시아와 같은 외세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국가가 되는 것을 무엇보다 바랐던 것입니다.  


베르나도트는 스톡홀름에 오자마자 정말 스웨덴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으며, 자신이 결코 나폴레옹의 강아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그는 핀란드에 대한 스웨덴인들의 욕망이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향한 것인지를 설득했고, 대신 노르웨이를 손에 넣는 것이 스웨덴이 영원히 스웨덴으로 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점을 조야에 알렸습니다.  그는 이런 진정성과 뛰어난 식견에 바탕을 둔 리더쉽을 통해서, 비록 강력한 의회에 의해 선출된 외국 태생의 왕세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실질적인 모든 권력을 손에 넣었습니다.  특히 의회는 분열되어 있었고 국왕 카알 13세는 건상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베르나도트의 권력은 자연스럽게 굳어져 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현실론자였습니다.  나폴레옹은 곧 스웨덴에 대해 대륙봉쇄령에 참여할 것과 영국에 대해 선전포고를 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는 영국과의 교역이 큰 비중을 차지하던 스웨덴 경제에 큰 타격을 주는 정책이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에 대해 이를 갈면서도, 그의 요구에 마지못해 응했습니다.  그는 어디까지나 프랑스의 무력에 굴복할 수 밖에 없어서 영국에 선전포고한다는 제스처를 뚜렷히 드러냈기 때문에, 영국도 사실상 스웨덴을 중립국으로 간주했습니다.  비록 교역량은 1/10 수준으로 급감할 수 밖에 없기는 했지만 영국과의 무역도 암암리에 계속 되었습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베르나도트가 오늘날 프랑스에서 배신자 취급을 받는 것은 1813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프랑스편이 아니라 동맹국 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베르나도트의 잘못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나폴레옹의 불신 때문이었습니다.  그에 대해서는 차후 러시아 침공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1813년 10월의 라이프치히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프랑스어로 Bataille des Nations, 즉 여러 나라들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거의 모든 유럽국가들이 참전한 대전투였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의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빠졌지만, 이탈리아와 나폴리까지 참전했으니까요.  여기서 패배하면서 나폴레옹의 몰락이 결정됩니다.)




카알 13세가 베르나도트의 왕위 계승에 대해 '도박에서 이겼다'라고 표현한 것은 정말 제대로 된 표현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베르나도트가 운수대통하여 평민 하사관에서 시작하여 왕위에 올랐다고들 이야기하지만, 그의 업적을 보면 로또를 맞은 것은 베르나도트가 아니라 스웨덴이었습니다.  베르나도트가 위대한 왕이었다는 점은 오늘날 스웨덴의 중립노선을 확고히 닦았다는 점에서 가장 잘 드러납니다.  과거 17세기 북구의 사자라고 불리며 30년 전쟁에서 맹활약했던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Gustavus Adolphus)는 스웨덴을 강국으로 이끌었다고는 하지만 반면에 스웨덴을 기나긴 전쟁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많은 스웨덴 청년들이 외국 땅에서 싸우지 않아도 될 전쟁에서 목숨을 잃어야 했지요.  


그러나 베르나도트는 제6차 대불동맹전쟁에 참전한 것과 스웨덴과의 합병을 반대하는 노르웨이에 대한 군사작전 외에는 전혀 전쟁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무조건 항복을 받아낼 수도 있었던 노르웨이 전쟁에서도 노르웨이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등 매우 관대한 협상 조건을 내걸어 최대한 전쟁을 빨리 끝냈지요.  스웨덴 역사상 이 1814년 노르웨이 작전이 스웨덴이 참전했던 마지막 전쟁이었습니다.  스웨덴의 중립과 그에 따른 안정과 평화가 오늘날 스웨덴의 발전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북구의 사자 구스타프 아돌프입니다.  비록 멋있는 별명을 달아서 폼은 나겠지만, 그런 멋진 별명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스웨덴 병사들이 죽어야 했을까요 ?  나폴레옹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불멸의 영광을 누리고 있지만, 그의 전쟁으로 상처입은 많은 국가들 중 가장 많은 젊은이들을 잃은 국가가 바로 프랑스입니다.)




또 그는 경제왕이 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가 국민 경제에 대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와 함께 일했던 스웨덴 귀족인 트롤-바흐트마이스터(Trolle-Wachtmeister)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가 왕세자 시절, 스웨덴 궁정에서 통치에 대한 실무 교육을 받을 때  베르나도트는 다른 것은 몰라도 경제 부분에 대해서만은 자신을 가르칠 사람이 없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스웨덴에 나보다 더 휼륭한 군인이 300명이 있다고 해도 뭐라고 반박하지 않겠네.  하지만 난 경제 부문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 특별한 수업을 거쳤으므로, 그 부문에 대해서만은 내가 스웨덴 내에서 최고 전문가라고 자신하네."   


베르나도트는 말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자신이 경제왕임을 증명해보였습니다.  그는 내륙 교통 통신망에 투자하고 통상을 장려하며, 민법과 형법을 정비 반포하고 교육을 진흥하는 등 나폴레옹의 프랑스 통치를 상당히 모방하여 내치에 매우 열정적으로 힘을 썼습니다.  그 결과, 그의 26년 통치 기간 동안 인구가 크게 늘었습니다.  그의 노년기에는 노르웨이를 제외한 스웨덴 국내의 인구만 해도 구스타프 4세가 핀란드를 잃기 직전 스웨덴과 핀란드의 인구를 다 합한 것보다 더 많았습니다.  밖에서 잃은 것은 안에서 찾은 셈이지요.   그도 왕위에 오르고 난 뒤 점차 우클릭하여 언론 검열을 하는 등 욕을 먹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 그는 스웨덴 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국민들로부터도 사랑받는 인기왕이었습니다.  




(그의 검열 정책 등으로 인해 인기가 추락했을 때 일부에서는 그를 탄핵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는 평생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인기를 누리는 행복한 왕이었습니다.  물론 가장 큰 것은 평화와 번영을 목표로 하는 그의 통치가 훌륭했기 때문입니다만, 일개 사병에서 출발하여 나폴레옹 휘하 원수까지 올랐다가 왕이 된 그의 경력에 대해, 국민들이 '어때 우리 왕 쩔지?' 라며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합니다.)




이로써 1810년의 주요 사건이었던 베르나도트의 스웨덴 왕세자 책봉건이 끝났습니다.  마무리는 카더라 통신으로 끝내겠습니다.  흔히 베르나도트는 젊은 시절 열혈 자코뱅으로서 가슴에 'Mort aux Rois' (Death to the Kings, 왕들에게 죽음을)라는 문신을 새겼고, 이로 인해 왕이 된 이후 절대 사람들에게 옷을 벗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하지요.  그의 사후에 그의 시신을 검시한 궁정 관료들에 의해 그것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이야기를 (기억은 안나지만) 저도 어딘가에서 읽었습니다.  그러나 영어판 Wikipedia에 따르면 그런 문신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는 소문이며, 그런 소문이 나게 된 것은 1833년 공연된 'Le Camarade de lit' (잠자리 친구)라는 프랑스 연극에서 어떤 늙은 척탄병이 '지금은 스웨덴 왕이 된 베르나도트가 그런 문신을 새겨가지고 있었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연극 속에서도 나중에 그 문신은 흔히 알려진 대로 'Mort aux Rois'가 아니라 'Vive la république' (공화국 만세)라는 문구인 것으로 나옵니다.  실제로 그런 문신이 있었는지 여부는 확인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만, 확실한 것은 분명히 젊은 시절 베르나도트는 열혈 공화주의자였다는 것입니다.  그가 1797년 남긴 기록에 '원칙과 확신에 의한 공화주의자로서, 나는 왕당파놈들과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다짐하는 문구가 있다고 합니다.






Source : The Life of Napoleon Bonaparte by William M. Sloane

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XIII_of_Sweden

https://fr.wikipedia.org/wiki/Charles_XIV_Jean

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XIV_John_of_Sweden

https://en.wikipedia.org/wiki/Hedvig_Elisabeth_Charlotte_of_Holstein-Gottorp

https://en.wikipedia.org/wiki/Union_between_Sweden_and_Norway

댓글24

  • 유애경 2018.08.27 07:07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없겠죠! 그래도 베르나도트는 확실히 안팎으로 훌륭한 왕이었던것 같습니다.

    답글

  • 석총 2018.08.27 07:12

    외젠 보아르네와 사돈을 맺을 칼 요한 그러고보니 조세핀은 유럽의 1대 할머니네요
    답글

  • 웃자웃어 2018.08.27 08:10

    헌데, 베르나도트가 연합국에 참전하지 않더라도, 나폴레옹의 몰락은 사실상 기정사실이 아닌가요?
    답글

    • Dogswellfish 2018.08.27 15:27

      그래도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그나마 팽팽하던 전세를 연합군 쪽으로 돌려놓은 것은 스웨덴 군의 도착때문이었습니다.

    • 웃자웃어 2018.08.27 20:03

      즉 스웨덴이 연합군으로 참전한게 나폴레옹의 몰락을 앞당겼단 이야기군요. 나폴레옹의 몰락 자체는 스웨덴이 참전하지 않아도 피할수 없겠지만.

  • 곰소문 2018.08.27 11:47

    장대한 영웅담, 드디어 마치셨군요. 수고하셨습니다.
    답글

  • 26년간이었군요.
    훌륭하고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답글

  • 카를대공 2018.08.28 02:50

    10편에 걸친 이야기를 통해 저도 단순한 배신자 이미지였던 베르나도트를 조금이나마 새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워낙 오래된 인상이라 아직 얄밉긴 합니다ㅋㅋ)

    예전에 베르나도트가 나폴레옹에 대해 경쟁심을 불태우며 특히 경제에 대해 잘 안다고 호언장담 했던 나시카님 블로그의 장면이 생각 납니다.
    그 땐 잘 몰랐는데 오늘 보니까 그게 허언이 아니었군요.

    오히려 내치만 보면 나폴레옹보다 나을 수도?


    그리고 10편에 걸친 이야기를 보며 또 나시카님 블로그에서 예전에 봤던 굉장히 인상적인 문장이 생각납니다.

    베르나도트 이야기를 하시며 진정한 영웅은 배신을 당하지 않는다고 칭기스칸을 예시로 드셨었지요.
    (그게 본문인지 댓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찾아보니 칭기스칸은 놀랍게도 그 넓은 영토를 운영하면 정말 한 번도 배신을 안 당했더군요.깜짝 놀랐습니다.

    확실히 나폴레옹은 성격적인 결함 때문인지 베르나도트에게 너무 어정쩡한 자세로 대한거 같습니다.

    처리할거면 확실히 처리하거나(모로 장군처럼) 아니면 자기편으로 끌어들였어야지요......


    답글

  • 카를대공 2018.08.28 02:53

    서두에 러시아-핀란드 관계를 보니 문득 우리나라와 중국의 관계가 떠오르네요.

    인터넷하다 주워들은 얘기지만 미국쪽 싱크탱크에선 한국이 결국 러시아 간섭을 받는 핀란드 꼴이 될 것이다,이리 예상하는 곳도 있다더군요.


    나시카님과 댓글에 나타나시는 많은 고수분들 고견이 궁금합니다.정말 한국 미래는 그쪽에 가까운걸까요?

    (베르나도트 마지막편에 느끼는게 많다보니 주절주절 말이 많아졌네요.양해 부탁드립니다)
    답글

    • nasica 2018.08.28 21:13 신고

      러시아는 좀 뜬금없네요 ? 그러나 우리나라는 이미 중국 경제권에 어느 정도 얽혀있다고 생각합니다.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중국과의 장사가 돈이 되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reinhardt100 2018.08.28 21:41

      사실상, 구소련 혹은 러시아의 간섭을 받는 핀란드 꼴이 벌써 되어 가는 중입니다. 지금 정권 하는 짓 보면 답 나옵니다.

      사실, 2차 세계대전 이후 핀란드는 구소련의 위성국가나 다름없었습니다. 오죽하면 소련연방의 17번째 준가맹국이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였고, 실제로 코메콘의 준회원국이었으니까요. 심지어 소련은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핀란드를 (준)회원국으로 가맹시키려고 했었습니다. 게다가 핀란드에서는 케코넨 시절에 반소행위금지법까지 알아서(?) 제정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대신 이 정도로 기어줬으니(?) 소련이 핀란드에게 경제적인 혜택을 좀 주긴 했습니다. 구 소련이 필요로 하는 서방제 물자가 코콤(대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의 통제에 걸리지 않기 위해 핀란드 기업들을 통해 우회적으로 수입하면서 꽤 바가지를 일부러 씌워주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석유파동 당시, 소련은 핀란드에 수출하는 탄화수소류에 대해서만큼은 '사회주의 형제국에 적용하는 가격'을 동일하게 적용해주어 핀란드 경제가 석유파동에서 꽤나 자유롭게 해주기도 합니다.

      지금도 핀란드는 러시아 의존도가 꽤나 높은 편입니다. 당장 러시아가 핀란드에 탄화수소류 수출하지 않으면 겨울에 난방도 못할 수준이고 노키아가 박살나버린 상황에서 핀란드는 더더욱 러시아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으니까요. 러시아 경제가 제재 때문에 어려워지면서 상대적으로 핀란드까지 어려워지면서 핀란드 경제도 연일 추락하고 있는게 현실이니까요.

      한국이 '러시아(구소련) 간섭을 받는 핀란드'가 되지 않으려면 방법은 딱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일본-미국의 해양 3각동맹을 전방위적으로 굳건하게 해야 하는 겁니다. 그 방법밖에는 현재로써는 보이지 않습니다. 차라리 영구분단을 선택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 웃자웃어 2018.08.29 14:31

      현 정부는 한국이 대중무역의존도가 높아서 살살기는 것일뿐 100% 친중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 예로 중국이 미국의 관세폭탄에 맞서 한국에게 무역동맹을 제안했는데 거절당했죠.

    • reinhardt100 2018.08.29 17:52

      웃자웃어) 무역동맹 제안했는데 이걸 덥석 물었으면 그냥 미국이 금융공세 제대로 걸었을 겁니다. 사실, 한국정부의 경제정책 중 가장 미국이 격분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환율조작의심인데 참여정부-실용정부 내내 이 문제 때문에 대립이 꽤 있었습니다. 환율 가지고 공세를 걸기 시작하면 지금 막을 방법이 전혀 없다시피합니다.

      장구벌레) 친중이 단순한 모토는 아닌 듯 싶습니다. 솔직히 미국이 보기에는 '중국몽'이라는 걸 대놓고 추종하는 듯이 보였던 거는 사실이니까요. 다만, 최근 중국이 미국한테 아작날 상황이라는 걸 좀 보면서 정신 차렸을려나 모르겠습니다.

    • 수비니우스 2018.08.29 18:15

      이번정권 들어서 한미일 동맹이 약화됐다는 소리는 못들어본것 같은데... 설마 또 전승절 참가한다는줄 ㄷㄷ 남북한이 영구분단 까짓거 할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네덜란드하고 벨기에하고 영영 갈라섰듯이) 중국의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해 대중국 무역을 확 줄여보는건 어떨까요?

    • 웃자웃어 2018.08.29 19:21

      현 정부가 외교는 미국과 중국 양쪽을 대놓고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 같습니다. 대놓고 어느 한쪽을 자극했다간 대한민국경제가 2015년 부터 급격히 침체되기 시작했는데, 그 침체된경제에 치명타를 입으면, 국민들이 생계난에 시달리게 될테니까요.

  • 투팍아마르 2018.08.28 16:35

    의회 연설문만 봐도 베르나도트의 영민함이 보이는것 같군요. 중급규모의 나라인 스웨덴이 처한 현실을 직시하여 거기에 맞는 최선의 선택을 하므로써 전후 스웨덴이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큰 보상을 움켜쥔 뛰어난 왕인것 같습니다. 저 당시의 스웨덴에서 4강국에 둘러싸인 오늘날 우리나라의 현실이 오버랩 되는건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답글

  • reinhardt100 2018.08.28 21:28

    과연 스웨덴이 노르웨이를 합병하는 것으로 핀란드를 대체하는게 국방상으로 혹은 경제적으로도 유리했다? 시대에 따라서는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12세기부터 스웨덴은 핀란드라는 내부 식민지를 얻음으로써 덴마크나 러시아 같은 자신들보다 인구가 더 많은 국가를 상대로 비교적 대등하게 싸워왔습니다. 16세기 북방 7년전쟁부터 스웨덴-핀란드는 주변 모든 국가를 대상으로 자신들의 국력에 비해 훨씬 강력한 군사력을 투사하기 시작했는데 그 절정기가 17세기와 18세기 초반의 연이어 나온 전사군주들의 시대였습니다. '북방의 사자왕'구스타프 아돌프 2세-'전사왕'카를 10세-'유성왕'카를 12세 이 3명의 군주 휘하 스웨덴은 자신들의 본래 국력보다 훨씬 막강한 경제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특히, 30년 전쟁 후반기부터 폴란드,러시아,덴마크를 연속적으로 공격하던 1631년부터 1660년까지 스웨덴은 30년 동안 말 그대로 전시체제로 돌아갔습니다. 더 올려잡으면 1563년의 북방 7년 전쟁 시절부터였으니까 100년간 전쟁이 일상화된 나라였습니다. 100년간 스웨덴-핀란드의 인구는 150만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때는 스웨덴-핀란드 인들로만 10만 병력을 동원할 정도였습니다. 왜 당시 이 나라가 그토록 전쟁을 계속해서 수행했는가? 북방의 2류 국가였던 스웨덴-핀란드에게는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거대한 군사력이 필수였기 때문입니다.

    17세기 스웨덴-핀란드가 확장한 영토는 당시 인구 150만 국가 치고는 굉장히 넓었습니다. 당장, 켁스홀름(남부 및 서부 카렐리야), 잉게르만란트(에스토니아 북부), 리브란트(에스토니아 남부와 라트비아), 동부 포메른, (슈트랄준트 등의) 메클렌부르크 일부, 브레멘, 트뢰넬라그(트론헤임), 스코네 등이었고 전사왕 카를 10세 때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방 절반을 확보했을 정도였는데 그 이유는 네덜란드 등의 차관에 의해 의존하는 경향이 강했던 17세기 스웨덴 경제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거대한 군사력에 의한 주변국가의 부를 획득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전사왕 카를 10세 같은 경우에는 스웨덴-핀란드-덴마크-노르웨이 모두를 통합한 스칸디나비아 반도 제국을 건설한 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과 러시아까지 모두 정복하려고 했습니다. 그 정도의 제국이면 스웨덴-핀란드의 경제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17세기 스웨덴-핀란드가 사실상 유럽 2위 혹은 3위권 내의 군사대국으로써 중부 및 동부 유럽을 제패했던 시절, 스웨덴-핀란드 경제는 말 그대로 욱일승천의 기세였습니다. 인구 150만의 국가로써는 도저히 도달 불가능할 수준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니까요. 30년 전쟁 당시에는 독일과 체코, 폴란드와 러시아 침공 당시에는 해당 점령지역에서 엄청난 부를 약탈해왔고 이걸 바탕으로 스웨덴이 자랑하던 구리와 철, 타르, 목재 등에 기반한 군수공업력을 갖추는데 성공했습니다. 실제로 스웨덴은 인구 만 단위의 도시가 그 전에는 없었지만 1660년대 이후 군수공업 등의 제조업이 급격하게 자리를 잡아가면서 만 단위의 도시가 등장, 급속한 발전을 17세기 내내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런 걸 맛본 스웨덴인들이 자신들의 경제 발전에 있어 동반자로써의 핀란드가 없어지는 것을 단순히 감정적으로만 봐야 할지? 의문입니다.

    참고로,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전사왕 카를 10세는 대단히 유능했습니다. 북방의 사자왕 구스타프 아돌프 2세가 구축한 스웨덴군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것도 유명하지만, 이 왕이 했던 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해협 행진'이라는 전대미문의 작전을 실시했기 때문입니다. 1658년 초반에 발트 해가 얼어붙자 전투병력 8천명과 지원병력 4천명을 대놓고 발트 해에 밀어넣어 덴마크군의 방어선을 전부 붕괴시킨 작전이었는데 당시, 유럽 군사학계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죠. '더 이상 바다가 천혜의 방어선이 될 수 없다.'는 명제가 현실화된 것이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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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를대공 2018.08.29 14:14

      그런데 현 정부가 정말 친중쪽 정권이 맞나요?요즘 인터넷을 보면 그렇게 비판하는 의견이 많긴 하던데요.

      경제적으로 친해지는거야 어쩔 수 없긴한데 궁극적으로는 저도 친미가 답이라고 보거든요.

    • 수비니우스 2018.08.29 18:10

      17세기에야 잘나갔지만 18세기 초에 러시아한테 털리고 이후 국력이 러시아하고 비교할수 없게 된 스웨덴이 핀란드를 되찾기 위해 러시아하고 계속 척지는 행동을 하는게 19세기 초 스웨덴의 국익에 도움이 되었을지는 모르겠네요.

  • 카를대공 2018.08.28 22:55

    이럴수가!제가 중국을 그만 러시아라고 잘못 쓰고 말았군요;;

    정신 못 차리고 혼동 일으킨 점 죄송합니다ㅠㅠ

    나시카님 관심 있으시다면 러시아 간섭 받는 핀란드,독일과 러시아 사이에 낀 폴란드와 같은 우리나라 상황에 대한 포스팅도 가능하실지요?

    어떤 미국 석학은 세계에서 지정학적으로 가장 불운한 나라를 한국과 폴란드로 꼽더군요.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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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shorn 2018.08.29 10:01

    지정학적으로 가장 불운한 국가는 20세기 중반전인..
    벨기에가 아닐지..
    통일된 한국이 오길 빨리 기다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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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비니우스 2018.08.29 18:18

    " 여러분, 평화야말로 현명하고 계몽된 정부의 유일하게 영광스러운 목표입니다. "
    정말 현대 국가에서 대통령이 하는 연설로도 전혀 손색이 없는 현대적인 명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앞뒤의 말도 굉장히 훌륭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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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삼 2018.08.30 03:12

    현 정부가 친중 친북을 어서 버리고 친미 로 돌아서서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쪽으로 돌아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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