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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푸르트3

연합군 내부의 상호 불신 - 엘베 강과 튀링겐 숲 사이에서 샤른호스트가 아무 설명없이 다짜고짜 블뤼허에게 '뮐베르크에 다리를 놓으십시요'라고 요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유사시 드레스덴을 거치지 않고도 즉각 엘베 강 동쪽으로 퇴각할 수 있는 탈출로를 확보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드레스덴 북쪽, 그러니까 엘베 강의 더 하류 쪽에 새로운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아울러, 너무 서쪽으로 진격하면 고립되어 각개격파 당할 위험이 커진다고도 경고했습니다. 샤른호스트의 이런 조바심을 이해하려면 북부 독일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4개 도로 중 라이프치히 경로와 드레스덴 경로의 위치를 보셔야 합니다. (호프에서 드레스덴으로 향하는 최남 도로의 바로 남쪽은 오스트리아 영토인 보헤미아, 즉 체코였는데, 그 국경은 바로 얼츠 산맥이었습니다. 영어로 오어(Ore) 산맥이라고 하.. 2022. 7. 11.
스페인 모델의 실패 - 냉정한 작센 사람들 3월 30일, 드레스덴의 강북 신도시 노이슈타트(Neustadt)에 들어온 블뤼허는 브레슬라우 사령부에 있던 하르덴베르크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에서 블뤼허는 노이슈타트와 드레스덴 구도심지 알트슈타트(Altstadt)를 연결하는 아우구스투스 다리의 폭파에 대해 언급하며 이로 인해 작센인들의 반(反)프랑스 감정이 악화되었다고 썼습니다. 실제로 드레스덴에 입성한 프로이센군은 드레스덴 시민들로부터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나폴레옹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체제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그냥 불만 가득한 침묵을 지켰을 뿐 말썽을 일으키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프로이센군도 엄정한 군기를 준수하여, 드레스덴은 물론 모든 작센 주민들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드레스덴에 입성한 이후 블뤼허가 자신의 부.. 2022. 6. 27.
1812년 서막 - 짜르 알렉산드르를 둘러싼 말말말 "폴란드는 아침거리일 뿐이다... 러시아가 저녁을 먹을 곳은 어디일까 ?" - 1772년 제1차 폴란드 분할 이후 당시 영국 의회 의원이었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가 점점 서쪽을 밀고 나오는 러시아에 대해 한 말 "이 꼬마는 자기 모순의 매듭덩어리 같구먼." - 전제 군주 집안에 태어난 왕자로서, 스위스 출신 가정교사에게서 계몽사상으로 교육을 받은 어린 손자 알렉산드르를 보고 예카테리나 대제가 평한 말 "난 무책임한 게으름뱅이이고 진실된 생각과 말, 행동을 할 능력이 없다. 난 이기적 사람인데 그 주된 이유는 허영심 때문이다." - 1789년, 당시 12살이던 알렉산드르가 적은 일기 중에서 "내 계획은 와이프와 함께 라인 강변에 정착하여, 평범한 사람으로서 친구들과 함께 자연 철학을 공부.. 2019.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