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상트 페체르부르그3

편지와 성경 - 짜르는 대체 뭘 하고 있었나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보지요. 쿠투조프가 마치 모스크바를 사수하려는 것처럼 쇼를 하느라 모스크바 외곽에서 병사들에게 삽질을 시키고 있던 9월 11일, 저 멀리 알렉산드르의 궁전이 있는 상트 페체르부르그에서는 시내 모든 성당의 종과 포병대의 축포가 울렸고 온갖 건물들에 있는 대로 조명을 밝히는 등 축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보로디노 전투가 끝난 날 새벽, 쿠투조프가 '보로디노에서 나폴레옹을 무찔렀다'라고 주장한 보고서가 알렉산드르에게 도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상트 페체르부르그 전체가 난리가 나서 위대한 러시아의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크게 기뻐한 알렉산드르는 이 승리에 숟가락을 얹고자, 자신이 고안한 '나폴레옹을 꺾을 추가 작전안'을 담은 편지를 체르니셰프(Chernyshev) 대령에게 들려 쿠투.. 2021. 2. 1.
상트 페체르부르그를 향하여 ? - 고민 속의 나폴레옹 모스크바로 돌아온 나폴레옹이 구상한 기본 방향은 다음 목표를 찾아 전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물은 바로 알렉산드르의 궁전이 있는 러시아의 공식 수도 상트 페체르부르그였습니다. 나폴레옹은 그랑다르메의 주력 군단들은 모스크바에 그대로 두고, 외젠의 제4 군단만 차출하여 상트 페체르부르그로 진격할 생각이었습니다. 주력 군단들을 모스크바에 주둔시키는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외젠의 군단만으로 충분할 것이라고 판단되었고, 둘째, 남쪽으로 후퇴한 쿠투조프의 러시아 야전군으로부터 모스크바를, 정확하게는 모스크바의 보급품 창고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상트 페체르부르그는 군사적 방비가 든든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러시아군의 쓸만한 병력은 모두 쿠투조프의 휘하에 있었으므로, 상트 페체르부르그와 나.. 2021. 1. 4.
두 도시의 분위기 - 쿠투조프의 등장 전방에서 프랑스군과 러시아군, 나폴레옹과 바클레이 등이 뒤엉켜 몸과 마음이 다 고생하는 동안, 후방의 러시아인들도 적어도 마음은 큰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황실 가족들이 모여 살던 서구적 도시 상트 페체르부르크는 상류층이나 서민층이나 모두 '이 전쟁은 이미 진 것'이라는 패배주의가 주도적이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자금과 인력을 모집하는데 성공하고 8월 초 상트 페체르부르그로 돌아온 알렉산드르가 보니, 심지어 자기 모친인 황태후조차도 각종 귀중품을 이미 도시 밖으로 빼돌려 놓고 자신도 언제든 피난갈 수 있도록 마차를 준비시켜 놓은 상태였습니다. 다른 귀족 가문들도 모두 말과 마차를 즉시 출발 가능 상태로 대기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트 페체르부르그와는 달리 모스크바는 적어도.. 2020.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