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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8.15 번외편) 1812년 - 해로를 통한 원정은 어땠을까 ? (19)


오늘은 번외편으로, 1812년 러시아 원정 실패 원인 중 하나로 '원인'님께서 작성해주신 아래 댓글과 함께 거기에 대한 제 짧은 의견을 덧붙이겠습니다.  이 글은 절대 '원인'님 생각이 틀렸고 제 생각이 맞다는 내용이 아니며, 그냥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점을 먼저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원인'님께서 작성해주신 글 중 핵심 부분은 아래 부분입니다.

다부의 작전은 발틱해의 해상운송을 통해서 리보니아에 거점을 만들고 그 리보니아로부터 상트뻬쩨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공격하는 것인데, 나폴레옹이 다부의 건의를 무시하고 바로 육로직공을 선택한 것이 러시아 원정의 패배원인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대해 몇몇 분이 영국 해군은 그냥 보고만 있었겠느냐는 댓글을 다셨고, 거기에 대해 다시 '원인'님께서 달아주신 댓글은 아래와 같습니다.

리보니아 해상운송은 복잡한 발틱해 연안을 따라서 항해하는 것이지 넓은 바다를 가로지르는 항해가 아닙니다. 그걸 먼저 염두에 두셔야죠. 연안항해를 함으로서 영국해군의 능숙한 기동능력이 상대적으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제한적으로만 움직이는 게 전제조건입니다. 

또한 이 지역은 30년 전쟁때부터 이미 무수한 스웨덴 해군력의 침공으로 그 방비에 이골이 난 지역이고 해안지역에는 요새와 해안포로 무장한 도시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죠. 슈트랄준트 같은 것은 단지 그 하나에 불과합니다.  이 환경에서 최대한 해안에 바짝 붙어서 요새와 해안포의 엄호를 받으면서 연안항해를 할 경우에 독일,폴란드 지역에서는 영국해군이라도 그렇게 쉽게 공격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문제가 되는 발틱해 동쪽의 리보니아쪽은 경제력이 약하고 해안 방비가 잘 안 된 지역이므로 이 쪽이 약점이긴 한데, 그래서 제가 썼듯이 해안항해 + 해안육로행군을 병행해야 할 겁니다. 아마도 리투아니아 가까운 지역부터는 육상보급의 비중이 높아질 가능성이 높지만 러시아 내륙을 가르지르는 무모한 경로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안전하죠.


여기에 대해서 저는 일단 다부가 해상 운송에 의존하여 리보니아(Livonia), 즉 지금의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지역을 공격하고 거기로부터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공격하자는 의견을 냈다는 이야기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건 그런 사실이 없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제가 몰랐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원인님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그런 이야기가 어디에 나오는지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혹시 다부가 그런 의견을 개진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저는 그것이 바다 경험이 없는 뭍사람인 다부가 뭘 잘 몰라서 내놓은 의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다부의 수륙 병진 작전 계획안을 거부한 것은 이집트에 직접 상륙해보고 또 영국 침공 작전을 끝까지 추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 육상부대가 해안가를 따라 행군하고, 그와 발맞추어 연안에 바짝 붙어 항해하는 수송선단으로부터 보급을 받으면 보급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겠는가 ?

바다는 인간의 사정을 봐주지 않기 때문에 바람의 방향이나 파도의 세기가 제멋대로 변할 수 있으므로, 수송선단이 육상부대와 연락을 유지하며 병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2. 육상부대와 항상 병진하지 않는다고 해도, 중간중간 적절한 지점에서 랑데부하여 보급품을 하역받으면 되지 않겠는가 ?

접안 시설이 없는 해변이나 작은 어촌 등에 보급품을 내려놓는데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말먹이를 빼고도 20만 대군은 하루에 200톤씩의 보급품이 필요했는데, 한번에 1주일치 씩만 보급을 받는다고 해도 1400톤의 물자를 론치(launch) 보트 등의 대형 보트를 이용해 하역해야 합니다.  론치 보트에 3톤의 짐을 실을 수 있다고 가정해도, 1400톤을 내려놓으려면 배와 해안 사이를 467회 왕복을 해야 했습니다.  20척의 수송선단에서 40척의 론치 보트를 이용해서 하역을 한다고 해도, 보트 1척당 12회 왕복해야 합니다.  파도가 치는 바다에서 수송선 선창에 들어있던 3톤의 짐을 보트에 내려놓고, 그걸 다시 해안까지 300~400m를 노를 저어간 뒤 다시 모래톱 해안에 내려놓으려면 2시간은 걸렸을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24시간 쉬지 않고 일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20척이라는 꽤 큼직한 선단이 하루 종일 정지 상태로 해안 근처에 닻을 내리고 있다면 영국 해군이 그걸 가만히 내버려 두었겠습니까 ?  더 큰 문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1200km가 넘는 항로에 걸쳐서, 이 짓거리를 7번 이상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수십 척으로 구성된 대형 선단 대신, 개별적으로 연안을 따라 항해하는 수송선을 하루에 2~3척씩 끊임없이 내보내면 영국 해군의 봉쇄망을 뚫을 수 있지 않겠는가 ?

영국 해군에는 74문짜리 전열함(ship of the line)이나 28문짜리 프리깃(frigate)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슬룹(sloop)함, 브릭(brig)함, 커터(cutter)함 등 다수의 소형 함선도 잔뜩 거드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소형 함선의 주임무가 적국의 연안을 감시하면서 그런 화물선을 나포하는 일이었습니다.  단치히 항구에 프랑스군이 백여 척의 수송선을 모은다는 소식, 그리고 프랑스군이 해안선 쪽으로 집결한다는 소식은 반드시 간첩 등을 통해 영국 해군에게 알려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럴 경우 영국 해군은 당연히 단치히 항구 근처에 그런 소형 함선으로 레이드 파티를 짜놓고 군침을 흘리며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4.  해안가에 기마 포병대를 다수 포진시켜 연안을 따라 항해하는 수송선을 지원하게 하면 영국 해군 소형함 정도는 저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

기마 포병대가 수송선을 따라 해안선을 이동해가며 호위해주는 것은 애초에 도로 사정 때문에 불가능했습니다.  기마 포병대가 원활히 이동할 도로가 해안선을 따라 존재한다면, 애초에 굳이 수송선을 띄울 필요없이 그냥 그 도로를 따라 보병대와 치중대를 이동시키면 될 겁니다.  그리고 당시 포병 기술로는 수백 m 떨어진 바다에 떠있는 소형 함선을 명중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고, 명중시킨다고 해도 당시 기마 포병대가 사용한 8파운드 포 정도로는 소형 함선조차 제압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영국 해군은 뛰어난 속도로 적함에 근접하여 대포를 쏘았기 때문에 적의 군함이나 수송선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지 원거리 포격으로 적의 항복을 받아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5. 어쨌거나 해안선 가까이에 바짝 붙어서 항해한다면 영국 해군을 겁낼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

 

(1807년 이후 본의 아니게 덴마크 해군의 주력함이 된 대포를 장착한 대형 보트, 즉 포함(gun boat)입니다.)

 

 


연안 항해를 한다고 해서 영국 해군으로부터 안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단적인 예가 소위 '포함 전쟁'(Gunboat War)이었습니다.  영국 해군은 1807년의 제2차 코펜하겐 전투 이후, 덴마크와 '포함 전쟁'을 계속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일련의 소규모 해전은 1807년 영국에게 당한 이후 대형 함정을 모두 잃은 덴마크 해군이 탑승 인원수 70~80명 정도의 대형 포함(gunboat)를 대량으로 만들어 영국 해군 소속의 브릭(brig)함이나 커터(cutter)함 등 소형 함정들과 싸웠기 때문에 벌어진 것입니다.  이런 전투 중 일부는 거포로 중무장된 해안 요새의 사정거리 안쪽에서 벌어졌는데, 그런 와중에도 영국 해군은 꽤 짭짤한 전과를 올렸습니다.  가령 스완(Swan)이라는 이름의 커터함은 원래 정규 영국 해군함정이 아니라 민간에서 임대한, 소위 HMH(His Majesty's Hired) 무장 커터함(armed cutter)이었습니다.  이 배는 12문의 4파운드 포와 2문의 9파운드 캐로네이드 포(carronade, 사정거리가 짧은 대구경 저압포)를 갖춘 배수향 약 130톤 가량의 소형함이었습니다.  스완 호는 1808년 5월 24일 덴마크 보른헬름(Bornholm) 섬 인근에서 덴마크 해군의 130톤짜리 커터 사략선 하벳(Habet) 호와 대결을 벌었는데, 이때 스완 호는 하벳 호 뿐만 아니라 보른헬름 섬의 해안포들로부터도 맹렬한 사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영국 해군의 일방적 승리였습니다.  하벳 호가 폭발과 함께 침몰한 것에 비해, 스완 호는 부상자 한 명 내지 않았습니다.  1809년 8월 12일에는 영국 해군 브릭함인 멍키(HMS Monkey) 호와 대형 론치 보트가 덴마크 무장 소형선박들 3척이 수심이 얕은 해안에 얼쩡거리는 것을 것을 습격했습니다.  덴마크 무장 선박들은 아예 배를 모래 해안에 좌초시키며 육지로 탈출했고, 영국 해군은 3척을 모두 나포했습니다.  

 

 

(물론 반대로 영국 브릭함이 다수의 덴마크 포함들에게 다구리(?)를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물론 위의 그림은 덴마크 측에서 그린 것이지요.)



Source : https://en.wikipedia.org/wiki/Gunboat_War
https://en.wikipedia.org/wiki/Hired_armed_cutter_Swan#The_second_S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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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9.08.15 07: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결국 모스크바로 직행한 것이 그나마 가장 가망이 있는 길이였기 때문이었다는 뜻인가요...?

    • 원인 2019.08.15 13: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스크바 직행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시나리오 입니다.
      이 시나리오는 나폴레옹의 "빨리 성과를 보고 싶다."는 조급함에서 만들어진 것이지, 심사숙고해서 나온 거라고는 볼 수 없죠.

      첫째 보급문제 + 코사크 기병의 습격문제

      둘째로는 전쟁의 기본원칙인 원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싸운다에 위배되기 때문이죠.

  2. nasica 2019.08.15 12: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나폴레옹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만은, 저 개인적으로는 그냥 러시아 원정을 안 떠나는 것이 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쨌거나 꼭 쳐들어가야만 했다면, 차라리 그냥 리가(Riga)와 레발(Revel, 오늘날의 탈린) 등의 항구도시들만 정복한 뒤에 장기적으로 눌러앉기를 시도하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합니다.

    • 원인 2019.08.15 1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리가, 탈린에 눌러앉는 방법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여기가 개발된 곳이라고는 해도 경제력이 독일-폴란드처럼 풍족하진 않기 때문에, 눌러앉을 만큼 보장해 주진 않죠.

      그래서 독일-폴란드에서 해상보급을 해 줘야 오랜 시간동안 작전이 가능합니다. 만약에 해상보급이 안 되면 리보니아의 경제력 한도내에서 한 차례 정도만 작전을 수행해야 됩니다.
      즉 볼가강을 따라 모스크바까지 진격해서 짜르잡기를 시도하고 그 시도가 실패하면 리보니아는 재편성용으로만 쓰고 즉시 철수해야 되는 거죠.

      해상보급에 성공하면 다시 2차 3차로 짜르잡기를 시도할 수 있겠지만, 가능하다고 해도 시도하면 안 되는 이유가 뭐냐면
      너무 오래 있으면 본국을 비운 사이에 반란이 일어나거나 대불동맹이 다시 발생하기 때문에 신속하게 돌아가는 게 맞죠.

    • nasica 2019.08.15 14: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인// 예,상책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만, 그래도 중책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요새화된 주요 항구 도시를 점령하면 비교적 소수 병력으로도 지킬 수 있을테니 최소한 영국과의 교역은 방해할 수 있을테니 차라리 리가와 레발을 점령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요. 그러나 지킨다고 해도 해마다 봄이면 그거 탈환하려고 포위 공격하는 러시아군과의 소모전이 벌어질테니 그것도 결코 상책은 아닌 것이 확실합니다. 결국 상책은 안 쳐들어가는 것이 역시...

  3. 빅터 2019.08.15 12: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편적인 지식만 알고있는저는 참 궁금한게.
    러시아도 사람사는데고, 그래서 군대도 있는데 - 즉, 수비군이 있다면 그 수비군이 먹을게 있다는 소리이고,
    먹을게 없다면 수비군도 그만큼 많이 없을건데
    먹을건없지만 (수십만 대군이 필요할 만큼) 수비군이 있다라는 역사적 결론이 있어 신기합니다. 러시아는 나폴레옹과 싸우러 군대를 보낼 수 는 있지만 나폴레옹은 그 러시아군과 싸우기 위해 군대를 보낼 수 없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 원인 2019.08.15 13: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물론 러시아군도 인간이라 먹지 못하면 아사하고 겨울에 동사도 합니다.

      문제는 2가지에서 옵니다.

      첫째는 러시아군은 퇴각중이라 보급선이 짧아집니다. 프랑스군이 보급선이 길어지는 것과 반대인 거죠.

      러시아군이 어려움을 겪지 않은 게 아닙니다.
      러시아군도 상황이 그렇게 좋은 게 아니었죠.

      1차대전 때에도 러시아군이 식량부족으로 애를 먹다가 결국 러시아혁명이 터진 게 식량생산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 식량수송이 안 되어서 발생한 겁니다.
      여기는 굶주리고 있어도 어딘가는 식량이 풍족한 곳이 있게 마련인데, 이걸 빨리 연결하기란 어렵죠.
      기차가 발명된 1차대전때에도 이 지경인데, 나폴레옹 전쟁때는 보급로의 길이차이가 치명적입니다.


      둘째는 러시아는 단순히 농경민족만 다뤄 온 게 아니라 기마술에 뛰어난 유목민족도 다루어 온 노하우가 많기 때문에, 시베리아쪽으로 철수하더라도 그들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지만, 프랑스는 그런 게 전혀 없죠.

      실제로 러시아원정에서 나폴레옹을 실질적으로 격파한 건 러시아군이 아니라 코사크기병입니다. 코사크 기병 때문에 보급이 차단되고, 전초진지가 계속 습격당하고 정찰병이 계속 소모되면서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지고 , 철수중에도 재편성을 할 수가 없었고, 피해가 급격히 불어났죠.

      그래서 코사크 기병에 대한 대책이 최우선시 되어야 되는데, 모스크바 직공 시나리오 자체가 코사크 기병이 활동하기 가장 좋은 시나리오죠.

      만약에 이 시기가 폴란드가 좀 잘나가던 시기였다면 폴란드가 가진 코사크 지배력을 이용해서 포니아토프스키가 맹활약 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때는 이미 우크라이나 전체가 러시아에 넘어간 시대라서 코사크는 일단 러시아의 전력이 된 상태죠.

    • nasica 2019.08.15 14: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인님 말씀처럼 자국 영토 안쪽으로 후퇴하는 군대의 유일한 장점이 보급선이 짧아진다는 것입니다.

      왜 나폴레옹이 러시아로 쳐들어가는 것은 어려운데 러시아가 프랑스로 쳐들어가는 것은 쉬운가라는 점은, 2가지로 설명됩니다. 러시아가 독일과 프랑스로 진격할 때처럼 인구가 밀집된 곡창지대로 진격할 때는 현지 보급(징발)이 쉽습니다. 또한 러시아가 프랑스로 쳐들어가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았습니다.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때도, 아일라우 전투 때도 러시아군은 중부 유럽으로 전진할 때 언제나 너무 느렸습니다. 결국 보급이 모든 군대의 발목을 붙잡습니다.

  4. 원인 2019.08.15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부의 건의는 예전에 폴란드 역사학자와 이야기 할 때 들은 이야기 입니다.
    포니아토프스키의 기록에 아마 나와 있었던 듯 한데 다부가
    포니아토프스키와 친분이 있어서 최대한 폴란드와 밀착된 작전을 짜서
    포니아토프스키의 폴란드-리투아니아 쪽 헤게모니를 찾는 방향과
    러시아원정의 성공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향을 찾았다고 하더군요.

    당시에 프랑스 원수들 중에서 폴란드인들이 가장 선호하는 게 다부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징발도 다부가 지시하는 쪽이 폴란드인들도 거부감이 적었을 테고,
    우크라이나로 진격해서 우크라이나 코사크를 다시 폴란드 휘하로 가져오는 것보단
    훨씬 가능성 있는 제안이었을 듯 합니다.( 주민들의 심리적 저항의 강도가 다름 )
    다부는 다부대로 자기 나와바리(?)였던 독일-폴란드를 최대한 이용하고 싶었을 것이고
    이게 포니아토프스키의 자기 계산과 맞은 거죠.

    그리고 "병진"의 의미를 잘 이해를 못 하고 제 의견을 왜곡시키는 듯 한데..
    병진이란 나란히 같이 동기화 된 상태로 진격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육운은 육운대로 하고 해운은 해운대로 비동기화된 상태로 이동하는 거죠.
    해운이 실패하면 육운으로 하고 해운이 성공하면 해운으로 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리투아니아부터는 아무래도 육운의 비중이 커질 거라고 했는데,
    이 말은 리투아니아 근처에서 죄다 육운으로 바꾼다는 이야기가 아니죠.
    육운으로 가야 될 상황이 아무래도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이야기구요.
    실제로 어떤 상황이 발생할 지는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그리고 영국해군이라고 해서 항상 나포작전에 우세하다?
    이것도 지휘관이 누구냐에 따라서 변수는 항상 달라집니다.
    넬슨 이외의 다른 사람이 아부키르만에서 똑같이 할 수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죠.


    뭐 백번양보해서 영국해군 지휘관이 죄다 우수하다 해도 그 전제는
    이 시나리오에서 치명적인 의미는 없습니다.
    왜냐면 리보니아 시나리오에서 해운이 치명적으로 필수 불가격한 요소는 아니기 때문이죠.
    물론 해운이 있어야 비교할 수 없이 편해지는 건 사실이지만, 없어도 아예 안 되는 문제는 아니죠.
    그 대신에 병력수를 더 줄이고 작전가능한 시기가 줄어드니까 매우 불리하기는 합니다.

    그리고 제가 말한 수로보급은 리보니아-발틱볼가운하-볼가강 경로를 말하는 겁니다.
    독일-폴란드-리보니아 경로도 물론 아주 필요하긴 하지만 없다고 해서 원정자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죠. 대신에 한 번 원정으로 끝내고 철수해야 할 겁니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해상보급인데, 영국해군이라는 변수가 반드시 치명타를 가할 지 아닐지는 실제 상황에 닥쳐 봐야 알 수 있는 문제입니다.

    해안을 따라 육운에 대해서도 이해를 잘 못하신 듯 한데,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이유는 포병대로 수송선을 엄호하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이유는 마차보급의 최대적인 경기병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기병의 전투력은 돌격할 때의 속도에서 나오고 최대한 습지를 따라 이동해야
    경기병이 속도를 내지 못하도록 제한된 환경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마차도 습지에서는 애를 먹지만 그 대신에 속도를 크게 낼 수 없는 경기병들을
    마차 호위병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저격할 수가 있죠.

    키르홀름 전투에서도 스웨덴군이 습지를 따라 이동중에는 폴란드군이 공격하지 않았죠
    물론 이 경우는 대규모 전투기동인 경우지만, 불과 해안에서 조금만 떨어진 곳으로
    유인된 그 순간에 스웨덴군이 궤멸적인 타격을 받은 걸 생각해 보면
    습지의 상태와 기병의 속도간에 상관관계가 얼마나 강한 지를 알 수 있죠.

    중요한 것은 리보니아 그 자체이지, 해운으로 연결하는 것 자체도 부차적이고
    해운실패시에 육운으로 연결하는 것조차도 사실은 부차적입니다.
    리보니아 현지보급까지 다 생각한 이후의 작전이죠.

    그래서 리보니아 일시부양 경제력에 맞게 다부가 생각했던 병력수인 20만 정도로 줄여야
    되는데, 러시아의 총병력이 많으니까 프랑스도 그에 맞게 45만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은 틀린말입니다. 이건 나시카 님이 언급한 대로 정치적인 의도가 들어간 숫자이고
    (이른바 위세보여주기) 애초에 모스크바 진공이라는 시나리오 자체의 한계때문에
    발생한 숫자이지, 시나리오 자체를 바꾸면 필요없는 숫자입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로 진격한 것이 패착인 이유의 핵심은 전쟁의 기본원칙에
    위배되는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기본원칙 => 내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적을 상대한다.
    병자호란때 조선이 털린 것도 바로 이 이유때문이죠.
    남한산성이라는 조선이 원치 않는 장소로 갔기 때문에 근왕병들이 국왕을 구조하기 위해
    서둘러야 했고, 근왕병들 역시 원치 않는 시간 장소에서 격파당했죠.
    물론 금화전투처럼 끈기있게 원하는 시간, 장소를 선점한 경우에는 승리했죠.

    러시아 원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스크바로 진격하면 짜르는 당연히 시베리아쪽으로
    철수할 것이고 그 상황에서 원하는 시간과 장소를 소유한 건 짜르 쪽이죠
    짜르가 시베리아로 철수할 경우 패배할 수 밖에 없는 시나리오가 애초에 성립한 겁니다

    반면에 리보니아로 진격하면 안전한 근거지를 배후에 두고 뻬쩨르부르크를 공략할 수
    있는데, 뻬쩨르부르크가 러시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는 해도 여기는 수도이고
    러시아군이 어떻게든 그냥 멀뚱히 보고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병자호란때 남한산성처럼 침공군쪽이 방어포지션을 갖고 침공당한 쪽의 공세를 앉아서
    적은 병력으로 효율적으로 요격할 수 있는 위치가 되어 모스크바 때와는 상황이 달라지죠.

    괜히 쓸데없이 병력이 많아 봐야 오히려 나폴레옹의 작전술은 무뎌집니다.
    적은 병력으로 원하는 시나리오에서 적을 요격했던 6일전투를 보면 알 수 있죠.

    모스크바 시나리오에서 조차도 보로디노 전투를 피할 수가 없었는데, 리보니아 시나리오
    에서는 당연히 그에 준하거나 이상의 회전으로 붙을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이 경우에는 전장을 프랑스쪽에서 고를 수 있기 때문에 보로디노처럼 무승부에 가까운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겁니다.

    만약에 실패할 경우에는 리보니아로 돌아가서 재편성한 뒤에 철수하면 그만입니다.
    짜르를 잡지 못해도 대육군이 살아있으면 "다음 차례의 대불동맹"이 오판한 사이에
    다시 한번 나폴레옹의 작전술로 격파하면 되는 수순이니까요.

    나폴레옹 전쟁을 대국적으로 보면 대영제국의 경제포위망 때문에 질 수 밖에 없었다.
    ==> 남이 해 놓은 걸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떠드는 건 쉽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뭘까요? 결국 적극적으로 세상의 이치를 알아서
    내가 발전하기 위함이죠. 숙명론적인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숙명론을 넘은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 nasica 2019.08.15 14:0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제가 원인님 의견의 원래 뜻을 곡해했다면 사과드립니다.

      그와는 무관하게, 해안을 따라 진격하는 이유가 적의 경기병 습격으로부터 치중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저로서는 고개를 좀 갸우뚱거리게 하네요. 진격할 때 보급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도로 사정 그 자체 때문이지 적의 경기병 때문은 아니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 콩콩이 2019.08.15 15:54  댓글주소  수정/삭제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뭘까요? 결국 적극적으로 세상의 이치를 알아서
      내가 발전하기 위함이죠. 숙명론적인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숙명론을 넘은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물론 맞는 말씀이십니다. 하지만 진짜 싸나이라면, 본인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고, 더 나아가서 '적당한 타협책'도 과감히 선택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차라리 누르하치가 그랬듯 때를 기다려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 '때'가 영영 오지 않더라도 러시아 원정보다 손실은 덜하지 않겠습니까. 꼭 완벽한 승리, 완벽한 유럽 제패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그냥 좀 어중간한 승리나 적당한 성과에 만족하는 것도 사람 사는 방법입니다.

      사실 근본적으로, 말씀해 주신 모든 방안은 '전술적'인 측면이 짙습니다. 그런데 전략 단위의 불리함을 전술 단위에서 극복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카지노의 도박사라면 결코 선택하지 않을 길입니다. 하물며 나폴레옹은 '다수로 소수를 치기 위한 작전술과 전략'에 뛰어난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대불동맹전쟁의 무한반복을 수용하는 편이 좋지 않았을까요? 프랑스 제국의 영토를 방어하는 수준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또 나폴레옹의 몰락에서 드러나듯, 이빨이 반쯤 꺾인 상황인데도 동맹군은 평화 협정을 제안했습니다. 단지 프랑스 영토의 원상복귀를 나폴레옹이 거부했을 뿐이지요. 결코 동맹군도 전쟁을 좋아한 것이 아닙니다.

  5. 진충보국 2019.08.16 0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 개인적으로는 해상보급안은 좋은것 같습니다, 예전에 화물 혹은 보급품의 적화 및 양하는 선박이 묘박하고 부선을을 통해서 이루어졌고 보급품의 적양하에 시간과 노력이 상당했습니다, 하지만 해상운송의 기본은 대량의 화물을 저렴한 비용으로 한번에 수송이 가능합니다, 또한 하역시설이 완비된 항구의 안벽이나 부두에 선박이 접안한다면 하역 작업은 더욱 신속하게 이뤄집니다 이러한 거점 항구의 확보와 물자집적소, 보급창들의 적극적 운용으로 육군의 진군에 맞는 보급 수송선대의 운용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하지만 정책이나 전략이든 결정권자의 의견이 젤 중요합니다 나팔륜의 경우 오로지 육전 지휘관이고 또 아부키르, 트라팔가등의 해전에서 박살난 경험이 있기에 해상 병진은 처음부터 채택되는것이 어렵지 않았나 추측 합니다 첨언하면 이러한 작전수행과 보급, 전략차원에서 국가자원의 운송을 신속하고 숙련되게 하기 위하여 국적상선대를 보유해야하고 자국 선원들을 유지해야 된다고 할 것입니다, 영국의 경우 아직도 자국 상선대를 Merchant Navy라고 부르고, 전통적인 해운/해군강국들이 과거부터 현재까지 해군예비원제도를 운영하는 이유이기도 할것입니다.

  6. 흠흠흠 2019.08.16 09: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000만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과,
    5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말고 그냥 스페인으로 진격해서,
    스페인 잔당과 웰링턴 아주 요절을 내버리고,
    반항은 꿈도 못 꿀 만큼 완전히 장악한 다음,
    적당히 영국과 휴전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아일라우, 하일스베르크, 아슬린 아스페른, 바그람, 보로디노...
    사람들이 하도 대포알에 요절나다 보니 글만 읽어도,
    나폴레옹 뭐 하는 인간인가 싶네요.

    • 0_- 2019.08.16 22:22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냥 유럽이라는 체스판에 놓인 기물 1, 2, ... , N 정도 아니었을까요?
      거대 군사쿠데타 CEO가 창립 멤버도 아닌 임원이 모가지가 날아가건 말건 신경을 쓰겠습니까? 그나마 다리를 자르니 죽으니 할때 울었다는 장란 정도 되어야 사람대 사람이었겠죠...

  7. 바다에산다 2019.08.16 12: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매번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가장 좋은 대안은 전쟁을 안 하는 거였다는 말에 백번 공감합니다.

  8. starlight 2019.08.16 14: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든 경우의 수를 산정하며 여러 가정을 해볼수 있고 각각의 경우가 타당성과 가능성. 논리적으로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나폴레옹의 강점은 신속한 기동.개별 기동후 결정타를 날릴 대회전에서 한번에 제때 집결해 전력 극대화. 현지 보급을 통한 작전의 수월성. 황제가 직접 원정을 함께하는 무형의 사기 진작. 빠른 의사결정. 전략 거점을 정복해 대외에 성공을 과시하는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 모든 요인들이 한계 효용에 다다른게 러시아 원정의 패착이었다 봅니다. 차라리 스몰렌스크 정도까지 영토 확장을 해놓고 상당한 병력을 폴란드에서 차출해 명분과 실리를 쌓고 보급도 충당했다면 어땠을까요? 나폴레옹은 항상 전쟁을 조속히 끝내려는 조급함과 조바심이 보이는데, 러시아만큼은 장기전을 도모해봤다면 권좌를 잃는 비극은 막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해로를 통한 보급은 저는 사실 상상도 못했네요.이래서 사람은 견문을 넓혀야하나 봅니다.

  9. 포세이돈 2019.08.16 23: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해상보급이 당대 기술력으론 제일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그러기엔 두 가지 조건이 미비하지않나요?
    첫번째는 나폴레옹의 해상보급에 대한 신뢰
    둘째는 발트해 제해권이요.
    나폴레옹 일생의 프로젝트인데 해상보급은 트라팔가르 해전 악몽이 있는 나폴레옹으로서는 쓰기 두려운 카드였을거고, 해상보급을 1이라도 생각했다면 나폴레옹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스웨덴을 포섭했어야합니다. 그러나 나시카님 지난번 글을 되짚어보면 프랑스는 스웨덴 포섭에 실패했죠. 베르나도트 에게 자기 약점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을겁니다.

  10. k886860 2019.08.17 18: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지하게 책을 출판하셔야 될것 같은데요... 지금까지 쓰신글 묶으면 분량이 충분히 될듯... 저는 그중에서도 장 란 원수의 일대기가 정말 감명깊었습니다.

  11. 샤르빌 2019.08.18 03: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스웨덴이 동맹군 편에 붙어버린 것도 좀 곤란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또 결과를 놓고보는 웹상에서야 다들 내가 나폴레옹이고 제갈공명이라 이런저런 훈수를 두지만 뭐 원균급의 인물이라면 몰라도 누가 되었든 당시의 지도자들 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적은 없습니다 달리 '역사에 만약은 없다' 라는 말이 있는게 아니니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