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시대2017.10.04 18:35

막도날의 제5 군단에는 원래 완편과는 거리가 먼 허약한 보병 2개 사단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라마르크(Jean Maximilien Lamarque) 장군이, 다른 하나는 브루지에(Jean-Baptiste Broussier) 장군이 지휘했지요.  거기에 나폴레옹이 붙여준 제6 군단 소속 모로 장군이 지휘하는 스라 장군의 사단까지 붙여서 총 1만1천 정도의 병력이 있었는데, 특히 모로 장군의 사단은 방금 지휘권을 받은 것이다보니 아무래도 모로와 그의 사단에 대해서는 믿음이 덜 가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모로 장군과 긴밀하게 작전 회의를 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막도날에게는 정답이 적혀있는 문제 풀이집도 없었습니다만, 특히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뒤죽박죽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갑자기 명령을 받은 그가 어떤 대형을 짜느냐에 따라 적진을 시원하게 돌파하여 등 뒤에서 망원경으로 보고 있을 나폴레옹의 입이 귓가에 걸리게 만들 수도 있었습니다만, 반대로 자신을 포함한 전군이 몰살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잠깐 고민하던 막도날은 여태껏 그 누구도 해보지 않은 진형을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적군은 물론 아군까지도 눈을 휘둥그레 커지게 만든 혼종이었습니다.




(그의 고향인 생-스베에 있는 라마르크 장군의 동상입니다.  그는 부르봉 왕정 복귀 이후에도 앙시앵-레짐을 반대하고 인권 보호, 심지어 폴란드 독립 운동 지원에도 찬성하는 등 정말 진보적인 인물이어서 민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1832년 6월 봉기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지요.  어디서 들어본 소리 같다고요 ?  예, 맞습니다.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 이름만 등장하는 라마르크 장군이 바로 이 분입니다.)




막도날은 라마르크와 브루지에의 사단을 좌우로 어깨를 나란히 하여 앞에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 모양이 매우 특이했습니다.   먼저, 각 사단마다 4개씩의 대대를 2줄로 늘어세워 총 8개 대대로 이루어진 긴 전면 횡대를 구성하도록 했습니다.  그 뒤를 따르는 잔여 대대들의 진형이 아주 걸작이었는데, 이 대대들은 이 긴 전면 횡대의 양쪽 끝부분 뒤로 긴 종대를 이루도록 했습니다.  즉, 거대한 ㄷ자 모양을 만들어 진격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나마 왼쪽을 맡은 라마르크의 사단에 병력이 더 많았으므로 왼쪽 측면에는 8개 대대가 늘어섰고, 오른쪽 측면에는 불과 4개 대대만 있어서, 좌우 대칭도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나폴레옹 전쟁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진형인 '막도날의 기둥'(la colonne de Macdonald)입니다.  


막도날은 그렇게 밑변이 열린 사각형의 뒤를 왈더(Frédéric Henri Walther)가 지휘하는 근위 기병총(carabiniers-à-cheval) 연대에게 맡겼습니다.  이 중기병 연대는 막도날의 기둥이 오스트리아군 전선에 커다란 구멍을 뚫으면 그 속으로 파고 들어 무질서하게 패주하는 오스트리아군의 뒤를 쫓으며 무자비한 칼탕을 먹여줄 임무를 띠고 있었습니다.  모로의 보병 사단은 돌파가 제대로 안 될 경우 예비대로 쓰기 위해 이 ㄷ자 진형에 포함시키지 않고 따로 집단을 이룬채 뒤를 따르도록 했습니다.





(Column은 기둥이라기보다는 종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사실 막도날의 기둥이라기보다는 막도날의 방진(Macdonald's square)라고 부르는 것이 제대로 된 묘사일 것입니다.)




막도날이 이런 희한한 진형을 만든 목적은 간단했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의 포병과 기병의 위협으로부터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가장 빨리 거친 전장을 가로질러 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바로 이런 ㄷ자 진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면이 약 550m, 측면이 약 800m로 길쭉한 이 장방형 진형은 횡대의 장점과 종대의 장점을 가장 잘 결합한 물건이었습니다.  단 하나의 단점이라면 그 크기가 몹시 커서 적의 포병에게 빗맛추기도 어려운 타겟을 제공한다는 점이었습니다만, 어차피 속이 텅 비어있었으므로 한방의 포탄에 여러명의 병사들이 한꺼번에 나가 떨어지지도 않았습니다.  또 측면을 노리는 적의 기병들의 돌격에 대해서도 촘촘한 방어망으로 맞설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지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장점은 그냥 좌우로 긴 횡대보다 훨씬 더 탄탄한 진형을 유지하면서도 훨씬 더 빨리 진격할 수 있다는 점이었지요.  이건 적의 기병에 맞서기 위한 보병 방진의 모바일 버전이라고 칭할 만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방진과의 차이점이라고 하면, 굳이 방진의 밑변에 보병 전열을 배치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공격을 위한 대오였으므로 후면에도 긴 보병 전열을 배치하는 것은 낭비였고, 또 후면을 노리는 적의 기병은 그 뒤를 따르는 아군 기병대가 요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혹자는 막도날이 이런 변종 방진, 횡대와 종대의 끔찍한 혼종으로 전진한 것이 과거 아우스테를리츠 전투 때와는 달리 질적으로 저하된 프랑스 보병들이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해 전장에서 복잡한 전열 기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한 꼼수였다고 평가절하합니다만, '1809: Thunder on the Danube - Napoleon's Defeat of the Habsburgs'라는 책을 쓴 Jack Gill이라는 National Defense University 교수님의 평가에 따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오히려, 판에 박힌 전술만을 고집하지 않고 당면한 환경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전술을 채택할 수 있고 또 그런 임기응변을 유연하게 수행해낼 수 있었던 막도날과 그의 이탈리아 방면군은 매우 뛰어난 역량을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막도날이 지휘하던 이탈리아 방면군 병사들이 과거 아우스테를리츠의 프라첸 언덕을 기어오르던 병사들만큼 잘 훈련된 병사들이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최소한 막도날이 목표했던 것은 대부분 이루어냈습니다.  그런 사실은 오스트리아군의 대포알이 날아오기 시작하자 곧 드러났습니다.


이 거대한 방진이 오스트리아군 제3 군단과 1군단 사이의 연결부를 향해 진격을 시작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오스트리아군의 대포가 불을 뿜었고, 오스트리아 기병대가 바람처럼 달려나와 이 방진의 측면을 노렸습니다.  대포알에는 아무도 견딜 수 없습니다.  막도날의 방진은 곧 이빠진 참빗처럼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병사 1~2명이 대포알에 직격되어 나가 떨어지면서 생긴 그런 구멍은 곧 뒤따르던 병사들이 걸음을 빨리 하여 곧 메워졌습니다.  시퍼런 검을 뽑아들고 측면으로 달려들던 오스트리아 기병들도 기세만 좋았을 뿐이었습니다.  침착하게 기다리다 확실한 유효사거리 내로 들어오자마자 일제 사격을 퍼붓는 막도날의 병사들은 기병들이 파고들 빈틈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척척 걸어들어가는 막도날의 방진은 분명히 납으로 만든 머스켓볼과 무쇠로 만든 대포알이 회오리치는 무시무시한 화약 연기 속으로 진격하는 것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오스트리아군은 루스바흐 고원이라는 결정적인 지리적 우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막도날이 희한한 ㄷ자로 병력을 배치하며 진격할 준비를 하는 것을 훤히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포에 포탄을 쟁여두고 기다렸습니다.  특히 전체 전선에서 오직 막도날의 부대만 망치 역할을 하기 위해 다른 프랑스군 전선 앞으로 유별나게 튀어나오는 것이니, 그쪽으로 오스트리아군의 화력이 집중되었습니다.  막도날의 병사들은 끝까지 침착하게 진격했지만 그들이 큰 피해를 피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특히 막도날 부대의 임무를 눈치챈 콜로브라트 장군이 자신의 좌익 전선을 살짝 뒤로 빼서 오스트리아 제3 군단과 제1군단 사이에 텅 빈 공간을 일부러 만들어주면서 막도날드 군단의 피해가 더욱 커졌습니다.  그 빈 공간으로 밀고들어가자마자 양 측면을 에워싼 오스트리아군으로부터 불벼락같은 십자 사격이 날아와 좁은 공간에 갇힌 막도날의 병사들을 쓰러뜨렸던 것입니다.  제84 연대의 라코르드(Larcorde) 중위라는 사람이 남긴 기록에는 "우리가 줄지어 선 곳, 특히 방진을 구성한 곳에서는 우리 병사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다"고 씌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도날의 병사들은 버텨냈습니다.  동료들이 포탄과 탄환에 쓰러질 때마다 남은 병사들이 그 빈자리를 서둘러 메웠고, 기진맥진한 이 방진을 깨뜨리려는 오스트리아 기병들의 돌격을 침착한 일제 사격으로 좌절시켰습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이제 적과 머스켓 사격을 주고받을 거리까지 왔으니 막도날의 변형 방진의 임무는 끝난 것인데, 오스트리아군도 끝까지 돌파되지 않고 버텼습니다.  오히려 막도날의 방진은 3면이 포위된 상태로 그야말로 불과 납의 세례를 받고 있었지요.  이런 와중에 당연히 오스트리아군에게도 혼란과 빈틈이 생겼습니다.  가령 이렇게 3면이 포위되기 직전, 막도날의 눈에는 우측 오스트리아 제1 군단 전열에 25~30문의 대포가 버려진 채 방치된 것이 보였고, 왼쪽 제3 군단 쪽도 엉망진창의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막도날의 방진이 끔찍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전진했던 것이었고, 이제 기병대들이 그 벌어진 틈으로 칼을 꼬나쥐고 달려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도끼가 적진을 쪼개다가... 박힌 채로 그만 멈춰버린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때 프랑스군의 기병들은 희한할 정도로 굼뜨고 소극적이었습니다.  막도날이 만들어놓은 오스트리아 전열의 빈틈은 항상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는 순간적인 것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프랑스 기병대는 돌격하지 않고 머뭇거리다 기회를 날려먹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건 급작스럽게 결정된 공격의 본질적인 문제였습니다.  막도날의 진격이 시작될 때, 그 후방을 따라오는 기병대는 왈더 장군이 이끄는 기병총 연대 일부 뿐이었고, 낭수티 장군 휘하 기병 예비대 및 기타 타 군단 소속의 기병대들은 ;막도날이 공격을 시작하니 그 뒤를 지원하라'는 긴급 명령서를 받고 허겁지겁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막도날의 기묘한 ㄷ자 전열이 서서히 진격을 시작하고 그 뒤로 여기저기 사방에서 프랑스군 기병대가 뒤늦게 모여드는 모습은 아마 루스바흐 언덕 위의 오스트리아군 눈에 꽤 장관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급하게 띄엄띄엄 모여든 기병대들은 빽빽히 늘어서서 멱살을 쥐고 뒹굴고 있는 막도날과 오스트리아군의 전투 현장에 선뜻 뛰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이때 이렇게 모여든 여러 기병대의 주도권을 쥐고 본보기를 보이는 역할은 근위 기병총 연대를 이끌고 처음부터 뒤를 따랐던 왈더 장군이 맡아야 했습니다.  막도날도 나중에 왈더 장군을 콕 찍어 '왜 돌격하지 않았느냐'라며 비난했으나, 왈더는 막도날에게 깍듯이 예의를 갖추면서도 '제가 공격하려면 반드시 베시에르 원수의 명령이 있거나 황제 폐하께서 직접 명을 받아야 합니다'라며 어이없는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당시 베시에르는 기절한 상태로 실려나간 뒤였지요.  애초에 그런 제약 조건이 있다면 왜 막도날의 방진 뒤를 졸졸 따라왔단 말입니까 ?  




(이름만 보면 발터라고 읽어야 할 것 같은 이 분은 역시 알자스 출신입니다만, 그래도 프랑스 분이기 때문에 왈더라고 읽어야 합니다.  이 분은 계속 나폴레옹 근위대에 계시다가, 1813년 무너져 내리는 제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중 티푸스에 감염되어 사망합니다.) 




결국 막도날과 그의 병사들이 보여준 이 장관은 뜻하는 목표, 즉 오스트리아 전열 돌파 후 추격 섬멸에는 실패한 채로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주된 비난은 기병대에 떨어졌습니다.  사바리(Savary) 장군은 '그토록 막강한 기병대는 단 하나의 포로도 잡지 못했다'라고 한탄했고, 나폴레옹 본인도 오후 2시경 망원경으로 이 상황을 보면서 '기병대가 나를 이렇게 실망시킨 적이 없었는데 ! 저것들 때문에 오늘 아무 전과가 없을 지경인 걸 !'이라고 격분했습니다.  


물론 이건 과장이자, 모든 잘못을 부하들 탓으로 돌리는 나폴레옹의 못된 버릇일 뿐이었습니다.  정작 나폴레옹 본인도 신참 근위대를 지휘하는 라이유(Honoré Charles Reille) 장군에게 막도날을 지원하라는 명령을 내릴 때, '이제 남은 것이 고참 근위대 2개 연대 뿐이니 너무 위험을 무릅쓰지는 말게'라며 소극적인 지시를 내린 바 있었습니다.  사실 다부의 우측 공격으로 인해 승패는 이미 결정난 것이었으니, 어쩌면 막도날의 방진은 많은 포로를 잡겠다는 나폴레옹의 과욕에서 나온 쓸데없는 희생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나기 전엔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지요.  아직 오스트리아 측에는 판세를 뒤집을 비장의 카드 하나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카드로 인해 불과 2~3시간 뒤에 나폴레옹의 참모진 전체가 발칵 뒤집히게 됩니다. 






Source : The Reign of Napoleon Bonaparte by Robert Asprey

1809 Thunder On The Danube: Napoleon's Defeat of the Habsburgs by Jack Gill

With Napoleon's Guns by Jean-Nicolas-Auguste Noel

https://en.wikipedia.org/wiki/Wagram_order_of_battle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Wagram

https://en.wikipedia.org/wiki/Fr%C3%A9d%C3%A9ric_Henri_Walther

https://en.wikipedia.org/wiki/Jean_Maximilien_Lamar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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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sica
나폴레옹의 시대2017.10.01 03:34

나폴레옹은 전투 내내 전장 한가운데 위치인 라스도르프(Raasdorf)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위치한 마르히펠트 평원보다 높은 곳인 루스바흐 고원 위에 있는 마르크그라프노이지들에서의 전황을 양군의 전열이 뿜어내는 머스켓 소총의 화약 연기를 보며 파악하고 있었지요.  그 연기의 긴 횡대가 마르크그라프노이지들 마을의 높은 석탑을 통과하는 보고, 그는 이제 승리의 때가 왔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는 다부를 돕기 위해 일제히 전체 전선에 걸쳐 총공격을 명했습니다.  마세나는 남쪽 에슬링에서 클레나우를, 우디노는 고원 위의 호헨촐레른을 공격하면 되었지요.  그리고 막도날에게는 특별히 따로 명령서를 보냈습니다.




(바그람 전투 현장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는 나폴레옹입니다.  무전기가 없던 당시 전투는 현장 지휘관의 재량권이 매우 큰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장군들이 적탄이 빗발치는 곳까지 직접 나가 현장을 지켜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원래 막도날은 전날 밤에 공격했던 바그람을 공격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바그람 마을에 대한 공격은 외젠이 그르니에(Paul Grenier) 장군의 제6 군단을 이끌고 공격하도록 하고, 막도날에게는 새로운 임무를 주었습니다.  아더클라(Aderklaa)와 브라이텐리(Breitenlee) 사이 공간, 즉 서쪽 방향으로의 진격이었습니다.  베르나도트의 무단 이탈에 이어, 마세나를 아스페른 쪽으로 이동시키는 바람에 텅 비게 된 이 공간을, 나폴레옹은 일단 대포병단을 동원하여 무지막지한 화력으로 틀어막아 놓은 바 있었지요.  그러나 포병만으로 적진에 돌격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포병 화력전으로 대혼란에 빠진 오스트리아군의 중앙부에도 쐐기를 박아넣을 묵직한 한방이 필요했는데, 거기에 막도날을 투입하기로 한 것입니다.  막도날에게 이 임무가 맡겨진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마세나가 에슬링 쪽으로 이동하고나자, 아더클라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던 군단이 바로 막도날의 제5 군단이었습니다.  그리고 전날 밤에 막도날이 공격했던 바그람을 지키던 부대가 바로 지금 아더클라를 점거한 벨가르드 장군의  제1 군단의 일부였으니, 어제 못 끝낸 승부를 마저 끝내는 주인공이 막도날인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르니에 장군입니다.  하급 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나 사병으로 군에 입대했던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도 프랑스 대혁명이었지요.  그는 막도날보다 더 뛰어난 지휘관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결국 원수 계급에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나폴레옹과 만나기 전에 모로의 휘하에서 주로 싸웠고 호헨린덴 전투에서도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나폴레옹파로 분류되지 못했던 것이 원수로 진급을 못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다만, 문제가 좀 있었습니다.  전날 밤에는 거기 없던 콜로브라트의 오스트리아군 제3 군단이 브라이텐리를 점거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막도날이 지휘하는 제5 군단은 바그람 전투가 시작될 때 고작 7천의 병력을 가진 사실상 사단 정도의 규모였습니다.  워낙 빈약했기 때문에 전날 밤 바그람을 공격할 때도 베르나도트의 제9 군단으로부터 뒤파의 사단을 빌려 병력을 충원한 다음에야 공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뒤파 사단도 원대 복귀한 마당에 막도날의 병력만으로 2개 군단이 포진한 적 진형 한 가운데로 뛰어들라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었지요.  그걸 이해했던 나폴레옹은 같은 이탈리아 방면군 소속 그르니에 장군의 제6 군단 휘하 2개 사단 중 스라(Seras) 사단을 떼어 막도날에게 임시로 붙여주었습니다.  그나마 스라 장군 자신은 부상 중이어서 모로(Moreau) 장군이 대신 지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봐야 막도날이 지휘할 병력은 보병 1만1천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폴레옹이 막도날에게 진격을 명한 것은 승산이 있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공격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알단, 이 공격은 적의 집단군 정면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기보다는 벨가르드와 콜로브라트의 2개 오스트리아 군단의 이음새를 공략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포병단과 다부의 활약으로 적 진영이 혼란에 빠진 틈을 타서 그 약한 이음새를 공략하면 오스트리아군 전선에 구명을 뚫을 수 있고, 그렇게 뚫린 구멍으로 프랑스 기병대가 우르르 쏟아져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지요.  실제로, 비록 막도날의 지휘권 밑에 직접 붙여주지는 않았으나, 나폴레옹이 아끼고 아끼던 황실 근위대의 기병총(carabiniers-à-cheval) 연대 약 3800기를 딸려보냈습니다.  이 기병총 연대는 흉갑기병보다 더 덩치 큰 병사들을 더 키 큰 말에 골라태운, 최정예 기병대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이번 전투의 승부는 다부의 라이트 훅으로 결판짓되, 적의 숨통을 끊는 타격, 즉 패퇴하는 적군을 추격 섬멸하는 것은 바로 여기서 끝장을 보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어떤 기록에는 막도날의 병력 뒤를 따르던 부대가 기마 척탄병 연대라고 되어 있고, 어떤 기록에는 기병총 부대라고 되어 있습니다.  기마 척탄병이라면 곰가죽 모자를 쓰고 있었을 것이고 기병총 부대라면 흉갑 기병과 크게 다른 모습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위의 그림은 기병총 부대원의 모습인데, 사실 기병총을 주무기로 삼는 부대는 아니었습니다.  하긴, 척탄병도 수류탄을 휴대하지는 않았지요.)




그러나 기병총 연대가 지리멸렬 후퇴하는 오스트리아군의 등 뒤에 칼을 내리치기 위해서는 먼저 오스트리아군이 뒤돌아 도망치게 만들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오스트리아군의 전선에 큰 구멍을 뚫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대하고 어려운 임무는 바로 막도날의 어깨 위에 떨어진 것이었고요.  막도날은 무척 흥분되고도 긴장되었을 것입니다.  모로와의 관계 때문에 지난 5년간 좌천당해 실의의 나날을 보냈는데, 결정적인 순간에 이런 중대한 임무가 자신의 몫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입신양명을 위한 절호의 기회였으나 그 성공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훨씬 더 우세한 적을 향해 먼 거리를 진격해야 했는데, 그렇게 진격하는 동안 오스트리아군은 가지고 있는 모든 화력을 동원하여 막도날의 공격부대를 두들겨 팰 것이 뻔했습니다.  막도날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부족한 병력이 적과 총검을 맞댈 때까지 어떻게 하면 적군의 대포와 총격으로부터 입을 피해를 최소화하느냐였습니다.  이건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였고, 막도날에게는 기술적인 선택지가 여러개 있었는데, 정답이 무엇인지는 당시 아무도 몰랐습니다.


일반적으로 적진을 향해 공격할 때는 적절한 두께, 즉 3열 또는 4열의 긴 횡대(line)를 이루어 공격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정면으로부터 날아오는 적의 무자비한 대포알로부터 입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고, 또 반대로 한꺼번에 적에게 최대한의 머스켓 화력을 쏟아부어 반격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공격과 방어 모두에 있어 가장 뛰어난 대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대형으로 먼거리를 진격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개의 전장은 넓직한 평원에서 벌어졌지만, 그런 평원도 크고작은 나무와 바위, 도랑과 관목 등의 크고 작은 장애물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런 장애물이 전혀 없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제각각 걷는 속도가 다르다보니 긴 직선 횡대로 출발한다고 해도 걷다보면 결국 일부는 앞으로 튀어나오고 일부는 뒤로 쳐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먼거리를 그렇게 횡대로 진격하면 적 앞에 도착할 때 긴 횡대는 토막토막 끊긴 흐트러진 모습이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는 밀집된 형태로 기다리는 적군에게 먹잇감이 되기 딱 좋았지요.  뛰어난 장교들과 부사관들이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면 긴 횡대가 직선을 유지하며 진격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 필연적으로 전체 횡대의 진격이 느려질 수 밖에 없었는데, 그건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적의 일방적인 사격을 뒤집어써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횡대의 이런 단점을 매우 잘 극복할 수 있는 대형이 있긴 했습니다.  바로 종대(column)였습니다.  대략 5~6열의 종대로 진격하면 거친 지형에도 불구하고 부대 전체가 한덩어리를 유지하면서도 비교적 빠른 속도로 진격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대신 횡대가 가지는 모든 장점을 깡그리 날려먹는 것이 바로 이 종대였습니다.  적의 대포알 단 한 발에도 수십명의 허리와 발목이 부러질 수 밖에 없었고, 어렵게 적의 코 앞에 당도한다고 해도 그 상태로는 적에게 사격할 수 있는 인원은 맨 앞줄의 2열 10~12명 정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야 빠른 속도로 이동함으로써 얻는 잇점을 다 날려 먹는 셈이었지요.  가장 좋은 것은 가변 대형이었습니다.  즉, 먼거리를 이동할 때는 종대로 이동하다가 머스켓 유효사거리에 근접해서는 대형을 횡대로 변경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이게 말은 쉬워도 적의 대포알과 탄환이 우박처럼 쏟아지고 화약연기가 자욱한 상태에서 대오를 바꾸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까딱하다간 적의 코 앞에서 우왕좌왕하다 대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어떤 방식을 택해도 잇점과 단점이 명백한 상황에서, 과연 막도날의 선택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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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sica
잡상2017.09.23 21:12

코크(Koch) 형제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새로운 석유 정제법을 발명하여 Koch Industries라는 석유 회사를 일으킨 Fred C. Koch라는 화학자이자 기업가의 아들들인 이 분들은 원래 4형제인데 자기들끼리의 이권 다툼으로 소송전을 벌인 끝에, 지금은 코크 인더스트리즈를 찰스(Charles G. Koch)와 데이빗(David H. Koch)이 각각 절반씩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두 형제를 흔히 코크 형제라고 일컫습니다.




코크 형제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은 아래 유튜브를 추천합니다.  뉴욕식으로 빠르게 말하는 여성분의 말을 제가 의외로 잘 알아듣길래 '내가 영어 실력이 늘었나'라고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 영어 캡션이 달려 있어서 제가 무의식 중에 '들은 것이 아니라 읽은 것'이더군요.  


https://youtu.be/HrDvW1Te2XY




이 분들은 굉장한 부자입니다.  이 두 형제가 소유한 코크 인더스트리즈는 상장되지 않은 사기업인데, 그런 사기업 중에서는 곡물기업인 카길(Cargill))사 다음으로 큰 기업이고, 2016년 포브스지에 의해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족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이 분들은 사업 못지 않게 정치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데, 직접 정치를 하거나 하지는 않고, 주로 보수 공화당 측에 선거 자금을 직접 대거나 선거 자금 모금 운동에 돈을 대고, 보수주의 씽크탱크 그룹에 자금을 대는 형식으로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칩니다.


그런데 최근 이 분들의 심기가 좋지 않답니다.  아래 가디언지의 보도에 따르면, 코크 재단의 회기 중 정치 및 정책 자금은 3억~4억 달러에 달하지만, 오바마케어의 폐지와 기업 및 부자들에 대한 감세가 조속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돼지저금통(piggy bank)은 닫힐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코크 형제들이 지배하는 재단의 입장이라고 합니다.  이 형제들이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제 대통령과 상원, 하원이 모두 공화당 손아귀에 들어있는데, 어찌 오바마케어 폐지와 감세안 통과가 이렇게 지지부진하냐 라는 것이지요.


https://www.theguardian.com/us-news/2017/jun/26/koch-network-piggy-banks-closed-republicans-healthcare-tax-reform




코크 형제들은 엄청난 부자이니 당연히 감세를 바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부자 형제들은 중산층과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제도인 오바마케어 폐지를 그토록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일까요 ?  코크 형제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몇 안되는 정치가 중 하나인 버니 샌더스에 따르면, 코크 형제들은 정부 주도의 모든 복지 프로그램을 다 폐지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형제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미워할 만한 이유가 뭔가 있는 것일까요 ?


https://youtu.be/B5tAT6ciJ4s



(위동영상은 2014년 버니 샌더스가 상원에서 코크 형제들의 정책에 대해 연설하는 장면입니다.)


사실 코크 형제들이 정말 꽉 막힌 보수꼴통 악의 화신 노친네들은 아닙니다.  놀랍게도, 이 형제들은 낙태와 동성혼을 지지하며, 흑인 학생들을 위한 장학기금인 United Negro College Fund에 2천5백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이들은 9/11 사태 와중에 부시가 만든 미국판 국가보안법인 Patriat Act에 반대했고, 중동에서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대표적인 기후 변화 방지 정책 반대자(climate change deniers)들로서,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한 조약과 법안을 폐지하기 위한 단체에 돈을 대고 있습니다. 


이 분들은 오바마 정부가 추진했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요 ?  예, 당연히 반대했습니다.  오히려 최저임금을 없애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https://www.forbes.com/sites/clareoconnor/2013/08/08/as-obama-pushes-for-minimum-wage-increase-billionaire-charles-koch-rails-against-it-with-media-campaign/#33f8341856f5


https://thinkprogress.org/billionaire-koch-brother-says-eliminating-the-minimum-wage-will-help-the-poor-f1ef0d4ead7b/


결국 이 형제들은 매우 일관된 방향성을 가진 아주 솔직한 자유경제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의 안보나 번영, 이념 같은 것은 관심 밖이고, 관심있는 것은 오로지 자신들의 금전적 이익인 것이지요.  왜 이들이 오바마케어 같은 복지혜택을 폐지하거나 축소하려고 노력할까요 ?  표면적인 이유는 의료 및 복지 혜택의 확대는 국가 재정 부실과 의료 체계의 붕괴를 일으켜 결국 서민들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더 간단합니다.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 혜택이 늘어날 수록, 그 경제적 부담이 자기들 같은 부유층에게 결국 돌아온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흔히 안 좋은 뜻으로 쓰이는 말, 즉 '호의가 계속 되면 권리로 생각한다'라는 말이 꼭 틀린 것은 아닙니다.  투표로 정권이 바뀌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회적 복지 혜택은 늘이기는 쉬워도 줄이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결국 정권 유지와 국가 재정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복지 축소보다는 세금을 늘려야 합니다.  세금은 돈에 붙는 것이므로, 결국 돈을 많이 가진 층에서 더 받아가는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저소득층의 복지 비용은 부유층에서 부담하게 되는 것이지요.  




실제로 오바마케어는 부유층에 대한 세금 상승을 불러왔습니다.  연간 20만불 이상(결혼 가구의 경우 25만불 이상)의 소득에는 0.9%의 메디케어 세금이 더 붙었고, 2010년의 추가 법안에 의해 20만불 이상(결혼 가구의 경우 25만불 이상)의 투자 소득에 대해서는 3.8%의 소득이 추가로 더 붙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캐딜락 세금(Cadillac tax)이라는 것이 새로 생겨, 1년에 10,800불(가족의 경우 29,500불)을 초과하는 의료보험료에 대해서는 40%의 소비세가 붙게 되는데, 이는 여러가지 효과를 노린 세금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결국 기업들의 세금 우대조치를 감소시켜 기업들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일이었습니다. 


https://www.cigna.com/health-care-reform/cadillac-tax


코크 형제들은 그것을 막기 위해 돈을 아낌없이 쓰고 있습니다.  각종 재단과 씽크 탱크에 자금을 지원하여 자신들의 주장에 이론적 기반을 닦고, 언론과 정치인을 통해 끊임없이 국민 대중을 현혹하는 것입니다.  


코크 형제들 같은 사람들은 우리나라에도 있습니다.  전경련은 이런저런 우익단체와 우익매체, 자유주의경제연구소 등에 자금을 지원하며 황당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거기에 국정원도 한몫 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지요.  이런 활동의 우리나라만의 특징은 자신들의 이해에 방해가 되는 집단은 무조건 종북 빨갱이로 몰아댄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대한민국 대통령도 김정은의 운전사 노릇을 자처하는 북한의 앞잡이입니다.  상식적으로 문재인 같은 제1 권력자가 뭐가 아쉬워서 자발적으로 김정은 부하 노릇을 하겠습니까 ?  아직 독재시대의 정권 유지용 반공 교육에 세뇌된 세대가 남아 있기 때문에 그런 수법이 먹힌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너무 유치하고 한심합니다.


저는 생산성 향상없이 단순히 복지 확대를 통해 모든 사람이 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당장의 생존을 위한 의료 혜택과, 내일의 희망을 위한 교육에는 나랏돈을 더 투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세금을 더 올려야 한다면 저는 더 낼 용의가 있고, 그것이 다음 세대를 위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결과가 평등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기회는 평등해야 하고, 집안에 아픈 사람 있을 경우 집안이 망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격주의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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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s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