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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링턴

굶주림과 희생 - 토헤스 베드하스 공방전 후퇴하는 웰링턴의 뒤를 쫓아 리스본으로 달리던 마세나가 1810년 10월 14일 생각지도 못했던 토헤스 베드하스 방어선을 직접 육안으로 보고 그 규모에 경악하는 사이, 웰링턴이 사전에 프랑스군 후방에 미리 풀어놓았던 비밀 병기는 이미 작동을 시작한 상태였습니다.  바로 기아였습니다.  애초에 웰링턴은 마세나와 피투성이가 되어 멱살을 쥐고 구를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의 기본 전략은 리스본 북쪽의 황량한 험지에서 마세나..
무지막지한 도배질 - 토헤스 베드하스(Torres Vedras) 방어선 10월 5일, 프랑스군 전위 부대에게 사로잡힌 영국군 포로들이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보고가 마세나에게 들어왔습니다.  영국군이 서둘러 '방어선 쪽으로' 후퇴하고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여태까지 마세나는 웰링턴이 1809년 1월 코루냐로 후퇴하던 무어 장군과 똑같은 신세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최악의 경우라고 해봐야 웰링턴의 영국군을 섬멸하지 못하고 놓치는 정도이고, 리스본 함락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었던 ..
급할 수록 돌아가라 - 쿠임브라(Coimbra)의 함락 9월 27일 오전의 이 부사쿠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약 500의 전사와 3600의 부상, 거기에 400에 가까운 실종자를 냈는데 비해 영국-포르투갈 연합군은 고작 전사 200에 부상 1000, 그리고 50의 실종자를 냈을 뿐이었습니다.  명백한 프랑스군의 참패였고, 그 원인은 마세나의 잘못된 판단이었지요.  마세나는 자신의 작전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에 대해 꽤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진짜 우수한 지휘관은 패전의 ..
부사쿠(Bussaco) 전투 (2) - 가늘고 긴 선 마세나의 명령대로 이른 아침 부사쿠 능선에 늘어선 영국군 방어선의 측면을 향해 기어오른 레이니에의 제 2군단은 크게 2개 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대로, 이들은 몬데고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자욱한 아침 안개에 가려져 영국군의 관측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안개로 인해 프랑스군도 능선 위의 영국군의 존재를 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대오를 맞추는 것도 어려웠습니다.  이들은 사..
부사쿠(Bussaco) 전투 (1) - 사자는 방심하지 않는다 탄약고 폭발로 인한 알메이다 요새의 갑작스러운 함락은 웰링턴을 크게 당황시킬만 했습니다.  하지만 웰링턴은 그렇게까지 당황하지는 않았습니다.  비록 생각보다 너무 일찍 함락되긴 했지만 어차피 알메이다의 함락은 예견되었던 것이고, 시우다드 로드리고의 스페인군이 분전해준 덕분에 방어 준비는 이미 충분히 되어 있었거든요.  문제는 그 방어 준비라는 것의 본질이었습니다.웰링턴의 방어전략은 간단했습니다.  후퇴였지요.&nb..
1810년 포르투갈 침공의 서막 - 봉쇄와 결투 여태까지 1810년에 있었던 이런저런 사건들, 즉 나폴레옹의 새장가, 사탕무 설탕 공장의 건설, 베르나도트의 스웨덴 왕세자 책봉 등을 보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1810년은 피와 화약 연기로 점철되었던 황제 나폴레옹의 나날 중 드물게 평화로운 시절처럼 보입니다.  실제로도 비교적 그랬습니다.  그러나 스페인에서는 이야기가 전혀 달랐습니다.  오히려 1810년 들어 스페인 민중들의 대프랑스 항쟁은 그 기세가..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 탈라베라 전투 (제6편) 프랑스군 2개 사단을 위기에서 구출해준 것은 전선 중앙부에서처럼 영국군 자신들의 경험 부족과 무지였습니다.  페인(Fane)과 앤슨(Anson)의 영국군 기병대가 프랑스군을 위협하여 방진을 이루게 한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협박만 했으면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  그렇게 방진을 이룬 프랑스군을 메데진 언덕 위의 영국군 포병대가 계속 갉아먹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고슴도치처럼 총검을 촘촘히 내밀고 방진..
계곡의 연합군 - 탈라베라(Talavera) 전투 (1편) 1809년 5월 16일 폰트 다 미사헬라(Ponte da Mizarela)에서 술트의 프랑스군을 놓친 웰슬리의 영국군은 크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1차 목표인 포르투갈 탈환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셈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성공일 뿐이었습니다.  스페인-포르투갈 접경 지역 곳곳에는 빅토르와 세바스티아니 등이 이끄는 프랑스 군단들이 호시탐탐 포르투갈을 위협하고 있었으니, 이들을 격파하기 전에는 포르투갈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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