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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 대공

바그람 전투 (제18편) - 통쾌하지 않은 승리 1809년 7월 6일 밤 바그람 전투의 총성이 잦아든 뒤 나폴레옹은 다른 전투에서처럼 '퇴각하는 적군을 즉각 추격 섬멸하라'고 부하들을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냉혈한인 그도 휘하 병사들이 거의 잠도 못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상태로 무려 40시간에 걸쳐 힘겨운 싸움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추격을 명하지 않은 이유는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오스트리아군..
바그람 전투 (제17편) - 요한이 왔다 ! 나폴레옹은 우익에서의 다부의 성공적인 진격을 보면서 '막도날의 기둥'만을 출격시킨 것이 아니었습니다.  막도날의 기둥이 웅장한 모습으로 적과 충돌한 뒤, 그 뒤를 이어 우디노와 외젠 등 다른 부대들도 일제히 전면 공세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루스바흐 고지 위에서 이 모든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카알 대공의 심정은 처참 그 자체였습니다.  막도날의 기둥이 오스트리아군의 방어진을 들이받고 혼전을 벌이고 있던 오후 2시경, 카알..
바그람 전투 (제9편) - 위기일발 전날 밤 카알 대공도 나폴레옹과 생각하는 것이 거의 비슷했습니다.  좌익과 중앙에서 잽을 날리며 적의 시선을 끈 뒤, 강력한 우익의 우회 진격을 통해 적의 측면을 관통하여 끝장을 본다는 것이었지요.  차이는 바로 시간이었습니다.  공격자였던 나폴레옹은 방어자 입장인 오스트리아 측이 먼저 선제 공격을 해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사이, 카알 대공이 한두 시간 먼저 공격을 해들어온 것 뿐이었습니다.  여기에 문제를 심..
바그람 전투 (제5편) - 혼돈 속의 새벽 7월 5일 밤 11시 경 첫날 전투가 초라하게 끝난 이후, 병사들은 야영 준비를 했습니다.  때가 7월이라 낮에는 무척 더웠지만 의외로 밤은 무척 추웠고, 오스트리아군도 프랑스군도 여기저기 모닥불을 피우고 몸을 녹였습니다.  보통의 경우 나폴레옹의 병사들은 하루 종일 목숨을 걸고 죽을 힘을 다해 싸운 뒤 야영을 할 때는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아무 것도 못 먹고 잠을 청해야 했으나, 이날은 좀 달랐을 것입니다.  아스페른-에..
바그람 전투 (3편) - 도강 프랑스 병사들이 나폴레옹 섬(L'ile de Napoleon)이라고 별명을 붙인 로바우 섬에서의 준비는 6월 말 다리가 준비되면서 사실상 완료되었습니다.  회전 부교(pivoting bridge), 즉 작전이 시작되면 로바우 섬의 강변에 고정된 한쪽 끝을 축으로 회전하여 도나우 강 좌안에 붙게 되어 있던 다리는 나폴레옹의 공병단장 베르트랑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것으로서, 약 800m에 달하는 긴 다리가 놀랍게도 하나의 통판(single sp..
바그람 전투 (2편) - 천.지.인. 손자병법에 따르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천지인, 즉 하늘과 땅과 사람이었습니다.  이건 결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가 아니라, 시기과 지형과 병력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나폴레옹과 카알 대공은 서로 이 세가지를 확보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병력은 양측 모두 최선을 다해 끌어 모아서 얼추 쌍방이 비슷한 규모를 갖추게 되었습니다만, 시기와 지형에 대해서는 양측의 주도권이 뚜렷했습니다.  시기는..
바그람(Wagram) 전투 (1편) - 양측의 준비 피아베 전투에서 요한 대공의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한 외젠의 이탈리아 왕국군은 막도날드 장군의 실질적인 지휘 하에 신속하게 북상하여 오스트리아 침공에 나섰습니다.  이들의 행선지는 빈, 정확하게는 나폴레옹의 다시 한번 도나우 도강을 계획하고 있던 로바우 섬이었습니다.  이들을 가로 막는 장애물은 나름 많았습니다.  곳곳의 고개길과 도시들을 지키는 요새들이 있었거든요.  하지만 대부분의 병력이 이미 카알 대공과 요한 대..
바그람을 향하여 - 형과 동생 아스페른-에슬링 전투는 분명히 나폴레옹 같은 괴물에게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는 전투가 끝난 다음날부터 무려 36시간 동안 아무런 군사 행동을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전장에 나선 그에게는 어지간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패기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투 다음날인 5월 23일 아침부터 나폴레옹은 이미 이 처참한 패배를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된 선전 도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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