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848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2) - 나폴레옹 버프는 없다 10월 7일 오전, 마이센으로 향하고 있던 나폴레옹에게 도착한 것은 전날 저녁 벤너비츠(Bennewitz)에서 보내온 네의 보고서였습니다. 그 보고서의 내용은 당장이라도 라이프치히에 도착할 것 같아 보이던 블뤼허가 일단 진격을 멈추고 멀더강의 우안에 멈춰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먼저 엘베 강변의 프랑스군 요새인 비텐베르크(Wittenberg)의 포위 공격을 마무리하여 후방에 대한 걱정을 덜어낸 뒤에 움직이려는 것 같다는 네의 추측도 함께 적혀 있었습니다. 네는 결단성과 용기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용자였으나 결코 지략으로 뛰어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네의 추측성 보고를 나폴레옹이 100% 믿었다면 이상한 일이겠지만, 희한하게도 이때의 나폴레옹은 자기에게 유리한 보고만 골라서 믿.. 2025. 3. 31. WW2 중 항모에서의 야간 작전 (6) - 글로리어스의 고난 흔히 1941년 12월 일본해군의 진주만 습격은 1940년 11월 영국해군의 타란토(Taranto) 습격에 영감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함.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음. 다만 영국해군이 타란토 습격의 본질인 항구에 정박한 적함을 뇌격기로 기습 공격한다는 개념 자체를 발명한 것은 아니었음. 그런 개념을 처음 공개한 것은 바로 미해군. 아니러니컬하게도 바로 진주만에 대한 워게임에서 나왔음. 아직 해전의 주역은 든든한 장갑과 대구경 주포를 갖춘 전함의 몫이고 항공모함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전함의 작전을 위한 정찰이라는 생각이 주도적이던 1932년 2월, 하와이 방어를 위한 워게임이 벌어짐. 이때 공격군을 맡은 Harry E. Yarnell 제독은 사람들의 고정 관념을 깨버림. 야널 제독의 공격 함.. 2025. 3. 27.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1) - 전진과 철수 나폴레옹에게는 블뤼허와 베르나도트를 이번 전투에서 확실히 괴멸시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건 전투에서 이들을 패배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아니라, 이번에도 이들이 싸우지 않고 도망치면 어쩌나 하는 우려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당장 라이프치히로 무작정 달려가기 보다는, 먼저 북쪽으로 이동하면서 상황을 파악한 뒤 먼저 엘스터와 데사우의 다리들, 즉 블뤼허와 베르나도트의 탈출로부터 끊기로 합니다. 이건 너무 낙관적으로 승리를 자신하는 행위 아니었을까요? 나폴레옹은 블뤼허-베르나도트와의 결전에서 패배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이 세운 1차적인 계획은 먼저 마이센으로 간 뒤, 거기서 정보를 더 획득하여 그에 따라 토르가우로 갈지 뷔르첸으로 갈지 정한다는 것이었.. 2025. 3. 24. WW2 중 항모에서의 야간 작전 (5) - 유틀란트에서 마타판까지 WW1 이전에는 함교에서 전성관(voice tube 혹은 speaking tube)을 통해 어느 방향에 있는 어느 적함을 때리라고 각각의 포탑에 명령을 전달하면, 각각의 포탑이 알아서 적과의 거리와 방위각 등을 판단하고 포격하는 방식. 이건 수 km 앞의 적함을 공격할 때나 유효했던 전술이었고, 하물며 야간에는 절대 통하지 않는 방식. 일단 10km가 넘는 원거리에 위치한 적함과의 거리를 파악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고, 조명탄이든 달빛이든 탐조등이든 어떻게든 적함을 확인했다고 하더라도, 발포하는 순간 적함을 다시 놓치는 경우가 많았음. 주포에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섬광 때문에 관측자가 순간 눈이 멀 수 밖에 없었는데, 그때 다시 적함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 WW1 당시엔 이미 대.. 2025. 3. 20.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20) - 나폴레옹의 산수 동쪽 바우첸 일대에서 대치 중이던 블뤼허가 난데 없이 전군을 이끌고 북쪽 바르텐부르크에 나타났다는 것은 뜻하는 바가 뻔했습니다. 바로 베르나도트와 합류하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이제 막 남쪽 보헤미아 방면군이 얼츠거비어거 산맥을 넘어 켐니츠 남서쪽 방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의미가 더 할 나위 없이 분명했습니다. 연합군은 남쪽과 북쪽에서 일제히 움직여 라이프치히에서 합류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연합군의 3개 방면군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할 일이었고, 나폴레옹이 위기에 봉착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연합군의 의도를 파악하자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드디어 앞이 보이지 않던 외통수에서 벗어날 기회가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8월 27일 .. 2025. 3. 17. WW2 중 항모에서의 야간 작전 (4) - 어뢰와 조명 개발된지 얼마 안된 어뢰가 진짜 심각한 위협으로 다가온 것은 영국 해군이 어뢰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어뢰정(torpedo boat)이라는 특수함정 HMS Lightning을 취역시킨 1876년부터. 작고 빠르고 건조 비용도 적게 들어가는 어뢰정들이 크고 둔중한 장갑 전함에 재빨리 접근하여 어뢰를 쏘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원래 장갑 전함들의 장갑판은 흘수선 위에 집중되었고, 흘수선 아래 깊숙한 곳까지는 보호하지 못했음. 아무리 강력한 포탄이라고 해도 물 속에 들어가는 순간 속도가 확 떨어졌기 때문에 수면 바로 아래 부분 정도까지만 장갑판을 두르면 충분했기 때문. 그런데 그보다 더 아래 부분, 그러니까 장갑판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곳을 어뢰가 때리면 전함은 끝장. (이건 어뢰정에 대한 대비를 고려하.. 2025. 3. 13.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9) - 애들 말고 어른들을 보내게 온라인 쇼츠 컨텐츠 중에 나름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분야가 전갈, 지네, 거미 등의 절지류 및 곤충들끼리 싸움을 붙이는 내용입니다. 곤충판 검투사 대결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잔인한 쇼츠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사마귀입니다. 사실 사마귀는 다리도 가늘어 힘이 특별히 센 것도 아니고 독도 없어서 대단한 검투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마귀가 자주 승리하는 이유는 바로 갈고리 같은 앞발이 아니라 눈 덕분입니다. 타란튤라나 전갈처럼 무시무시한 절지류들은 대부분 눈이 좋지 않아 바로 몇 cm 앞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만, 사마귀는 언제나 먼저 상대의 존재와 모양, 크기 등을 파악한 뒤 언제 어디를 공격할지 계산을 하고 움직입니다. 사마귀의 싸움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정보의 중요성.. 2025. 3. 10. 예루살렘의 종소리 - Coldplay의 Viva La Vida 가사 해설 콜드플레이의 최고 히트곡인 Viva La Vida는 워낙 유명한 곡이고 이미 훌륭한 번역과 설명도 많지만, 콜드플레이가 4월에 내한공연하는 것을 기념하여 번역했습니다. 노래 제목 Viva La Vida는 스페인어로서 그냥 "인생 만세" 정도의 뜻입니다. 그래서 제목과 함께 그 신나는 박자를 들으면 그냥 인생을 즐기자는 내용으로 오해하기 쉽습니다만, 그 가사 내용은 꽤 심각하고 체념적인 것입니다. 이 노래 가사의 형식은 몰락한 군주/왕/독재자의 독백으로 되어 있는데, 가사를 들어보면 이 노래의 주인공은 원래 왕족으로 태어난 것도 아니어서 왕이 될 운명은 아니었는데, 어떤 혼란스러운 변혁기에 어쩌다 기회를 잡아 권좌에 오른 것처럼 나옵니다 (It was the wicked and wild wind, bl.. 2025. 3. 6.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8) -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이제 나폴레옹과 그의 그랑다르메 본진이 슈바르첸베르크의 보헤미아 방면군보다 먼저 라이프치히에 도착할 것이 분명해진 상황에서, 블뤼허와 그나이제나우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습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베르나도트는 미적거리며 내렸던 라이프치히로의 진격 명령을 기다렸다는듯이 모조리 취소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 라이프치히로 진격하는 것은 자살행위가 분명했고, 블뤼허조차도 그걸 고집하지는 못했습니다. 라이프치히로 가지 않는다고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달려오고 있는 것은 단순히 라이프치히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분산된 상태인 슐레지엔 방면군과 북부 방면군을 보헤미아 방면군이 합류하기 전에 각개격파하기 위해서였으니까요. 이대로 우물쭈물하고 있다가는 나폴레옹에게 덜미를 잡힐 .. 2025. 3. 3. WW2 중 항모에서의 야간 작전 (3) - 전열함의 시대 원래 전통적인 유럽식 해전은 전열함(ship of the line)들끼리의 싸움. 나폴레옹 전쟁 이전부터, 최소한 2열의 포갑판에 74문 정도의 대포를 장착한 거구의 전열함들이 마치 보병 대오를 이루듯 전열을 짜고 상대 함대와 대포질을 해대다, 결국 칼과 권총 등으로 무장한 수병들이 적함에 널빤지(board)를 대고 뛰어들어 백병전을 벌이는 것으로 끝남. 이렇게 적함에 뛰어드는 전투원들을 boarding party, 즉 승선조라고 불렀음. (트라팔가 해전에서의 넬슨의 기함 HMS Victory.) 그런데 그 시절에도 해군에는 프리깃(frigate) 함들이 있었음. 전열함들과는 달리 그냥 1열의 포갑판만 갖추고 40문 정도의 대포를 갖춘 프리깃들은 전열함보다 훨씬 작고 가벼워서 속도가 빨랐고 주로 정.. 2025. 2. 27. 라이프치히로 가는 길 (17) - 상남자들의 포옹 혐오스러운 프랑스인 베르나도트와의 회담에서 그나이제나우 본인은 핑계를 대고 쏙 빠졌지만 누가 뭐래도 프로이센측의 두뇌는 블뤼허가 아니라 그나이제나우였습니다. 따라서 그나이제나우는 이 회담에서 얻어내야 할 것들에 대해 꼼꼼히 적은 협상 가이드를 통역 역할로 동석한 뮈플링에게 주었지만, 블루허를 통해 베르나도트에게 전달될 요구 사항들은 뮈플링이 보기에도사실상 비현실적인 것들이었습니다. 요구 사항의 핵심은 베르나도트가 블뤼허와 어깨를 나란히하고 당장 라이프치히로 달려가자는 것이었는데, 프로이센 사람들이 보기에 겁장이 기회주의자에 불과한 베르나도트가 그런 대담한 계획에 동의할 턱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Frères d'armes는 원래 프랑스어에서 전우라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표현입니다. 필연적으로, H.. 2025. 2. 24. WW2 중 항모에서의 야간 작전 (2) - 달빛 해전 결국 이런 비극적 사고로 인해, 이후 당분간은 이런 위험한 야간 요격 작전은 실시하지 않게 됨. 나폴레옹도 야간 전투를 매우 싫어하는 편이었다고 하는데, 가만 보면 역사적으로 강대국 지휘관들은 모두 야간 전투를 싫어하고, 약한 측이 언제나 야습을 선호함. 이유는 간단. 인간은 태생적으로 주행성 동물로서 시각에 의존하는 바가 매우 크고, 그래서 야간 전투란 필연적으로 극심한 혼란 속에서 벌어지기 때문. 혼란 속에서는 통제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기 마련이고, 통제가 안된 상태에서는 아무래도 뜻하지 않은 결과가 나올 확률이 높음. 즉, 낮에 싸우면 여유있게 승리를 거뒀을 쪽이 밤에는 까딱 잘못하면 지거나 이거더라도 피해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는 것. 그러니 강대국 군대에서는 굳이 야간 전투를 선호하.. 2025. 2. 20. 이전 1 2 3 4 ··· 7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