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상2017.08.21 21:23

6년전에 출장으로 두바이에 한달 정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1. 두바이 사람들과 일


휴일에 (여기는 금토가 휴일이랍니다) 두바이 시내를 지하철 및 시내 버스를 타고 그냥 막 돌아다녀 보았습니다.  


그런데, 전철이나 버스에서 두바이 사람은 거의 못본 것 같아요.  대부분 인도인 또는 필리핀 사람들이고, 유럽계 사람들이 좀 섞여 있는 정도였습니다.




(대부분 인도-파키스탄 내지는 동남아 분들 같았습니다.)



두바이 지사에 출근하고 나서 더 놀랐습니다.  여기서 현지 고위 매니저인 오스트리아 여자분과 그 밑의 하위 매니저인 크로아티아 남자분과 커피 한잔 하면서 미팅을 했는데, 그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여기 두바이 지사에는 두바이 국적인이 전혀 없답니다.


이유는 2가지인데, 하나는 두바이 사람들은 주로 공무원이나 은행 쪽에서 일을 구하기 때문이고, 또 아랍 사람들의 대학 교육은 주로 코란 경전 같은 인문학 쪽에만 치중해 있어서 IT 쪽과는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원래 여기에 설립되는 회사들은 모두 두바이 시민을 의무적으로 10%인가 고용해야 하는데, 이렇게 고용된 사람들은 일도 별로 열심히 하지 않을 뿐더러, 아예 출근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월급은 나가야 하기 때문에, 여기 회사들은 그런 의무 고용을 일종의 '세금'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다만 지사가 위치한 두바이 internet city라는 곳은 자유 무역지대라서, 그런 의무 고용 조항이 없대요.  그래서 결국 두바이 지사에는 두바이 사람이 전혀 없답니다.



(두바이의 평범한 구내 식당...  여러 회사가 그냥 공동으로 쓰는 식당이고, 푸드 코트 형태에요.)



사무실 내에는 유럽계가 반, 그리고 인도 계열이 반 정도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약간 있고요.  공통점은 모두 석유가 안나는 나라 사람들이라는 것이지요.   가끔 사우디 출신 사람도 있다는데, 재미있는 경험은 사우디 출신의 어떤 여대생 구직자을 면접할 때였답니다.  면접장에서 너무 눈에 띄게 불안해하길래, 왜 그렇게 불안해 하느냐고 물어보니 대답이...


'가족 이외의 남자들과 자기 혼자서 한방에 있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2. 음식


간단히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중동 음식 별로 맛 없습니다. 한마디로 하면 아랍 음식이라는 것은 없고, 주로 레바논 음식 또는 이란 음식이 주랍니다. 둘다 케밥 종류가 대세이고, 다양하지는 않습니다.  음...   제가 둘다 먹어 보았는데 둘다 별로입니다.  굳이 고르라면 레바논 음식이 좀더 맛있었습니다.


주로 케밥처럼 꼬치구이한 고기를 얇은 피타 빵 (난 빵 같은 것)에 싸서 먹던가 뭐 그런 모양인데, 크게 별 맛은 없어요.  다만 위암이 걱정될 정도로 고기 겉을 태워 먹는 것이 불안했습니다.   특히 레바논식 피클이나 레바논식 잠두콩 스튜는 왜 그리 짠지...  한 1주일 분 소금을 한끼에 다 먹은 것 같았습니다.




(이건 이란 음식...  거의 15,000원짜리인데... 맛은 별로.... 짐작하시다시피 저 쌀밥은 안남미고, 그 위에 노란것은 샤프란입니다.  저 까맣고 둥근것은 뭐냐고요 ?  토마토 구운 겁니다..  대체 왜 토마토를 태워먹을까요 ? )



여기도 중국음식점이나 (미국식 중국집이더군요) 서브웨이 샌드위치, 버거킹과 맥도날드 꽤 눈에 많이 띕니다.




(펠라펠이라고, 콩반죽을 튀겨 만든 오뎅 비슷한 것을 넣은 샌드위치입니다.  회사 사무실 입구에서 인도네시아 계통 아주머니가 가판대를 설치하고 파는 것인데 2,700원 정도입니다.  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는 약 5,000 ~ 6,000원 해요.)



따라서 점심시간이라고 사무실이 비고 그런 일은 별로 없습니다.  대개는 1시~3시 사이 편한 시간에 그냥 각자 먹고 오는 모양이에요.  제 등뒤에서 사람들이 회의하는 이야기가 들렸는데, 한명이 점심이나 먹으면서 더 이야기할까 ? 하니까 다른 사람이 '어 난 이미 먹었어'라며 거절하더군요.   나중에 거기에 최근 입사한 프랑스 아저씨와 같이 점심을 두어번 했는데, 왜 아름다운 프랑스를 놔두고 여기에 왔느냐고 물으니, 프랑스는 저성장이라서 기회가 별로 없다... 그리고 솔직히... 돈 때문에 왔다고 하더군요.




(마지막 사진에서 오른쪽 아래의 고기를 둘러싼 허연 것은 hommus하고 하던데, 콩으로 만든 거라든가... 크림 맛이 나더군요.)




(중동의 흔한 푸드 코트)



그런 레바논 음식의 특징 중 하나가, 소금에 절인 피클을 많이 먹는다는 것인데, 우리 김치와 비교할 수 있는 식품입니다.  종류도 많습니다.  다만 고추가루는 물론 쓰지 않았고, 오로지 소금으로만 절인 것 같은데, 김치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짭니다.  대체 이걸 어찌 먹으란 말인가 싶을 정도로 짭니다.  근데 이곳에서는 나름 인기가 있는지 카르푸 같은 곳에서 우리 김치를 팔 듯이 여기서는 레바논 피클을 팝니다.






(이건 전통 시장에 들렀다 사먹은 정말 인도인들이 만들고 인도인들이 사먹는 허름한 인도식당에서 먹은 양고기 카레.  보기엔 저래도 싸고 맛있었습니다.)  




(이건 지나가다 찍은 제과점의 레바논-시리아의 전통 과자들입니다.  원래 이쪽 지방의 과자류가 매우 유명하더군요.  대표적인 것이 터키의 Turkish Delight이지요.  저 사진 속의 과자 상자들은 너무 비싸서 - 약 5만원 - 못 샀습니다.  나중에 식당에서 한조각 먹어봤는데, 정말 달고 맛있었습니다.  저거 못 사온 것이 지금도 원통합니다.  돈 아껴서 뭐하겠다고...)




3. 화장실


공항에 내렸을 때 화장실가보고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바로 화장실 변기마다 샤워기 같은 것이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중동 지방 사람들의 뒤처리 방식 대충 아시지요 ?  물론 휴지도 다 있긴 합니다.  호텔 화장실에도 따로 비데도 아닌 것이... 아무튼 물로 뒤처리를 할 수 있는 변기도 아니고 세면기도 아닌 그런 것이 따로 준비되어 있습니다.   좀 망측하긴 하지만, 써보면 아주 위생적이고 편리하다는 것을 아실 수 있습니다.   사실 종이만으로 뒤처리한다는 것은 매우 불완전하고 찝찝한 거에요.






4. 날씨


당연히 안좋습니다 !!!  뭘 기대하셨습니까 ?  아침에도 밖에 나가면 아주 확 후덥지근합니다 한 35도?  휴일날 대중교통 수단으로 돌아다녀 보니까, 가끔씩 정말 숨이 약간 막힐 정도로 덥더군요.  저녁에 호텔에 돌아와보니, 제 회색 티셔츠에 소금이 맺혀 있을 정도입니다.  귀차니즘을 무릅쓰고 호텔 앞의 바닷가에 나가보았는데, 바닷물 온도가 미지근한 목욕탕 온도에요 T T   여기에는 정말 놀랐습니다.   사무실에 있는 화장실에는 수도꼭지가 찬물/더운물 2개가 아니라 1개뿐인데, 틀어보면 매우 따뜻한 물이 나옵니다.  옥상의 물탱크에서 햇빛에 덥혀진 물이 나오는 것인가 봅니다.  한번 해수욕장에도 가봤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바닷물도 온탕처럼 따뜻하더군요.


더운 건 당연하고, 바닷가라서 그런지 의외로 습합니다.  물론 장마철의 한국처럼 습하지는 않지만, 예, 습합니다.  두바이는 사막에 녹지를 좀 만들어 보겠다고 바닷물을 정제하여 엄청난 양의 물을 시내의 잔디와 숲에 뿌리고 있습니다.  도시 단위로는 세계에서 가장 물을 많이 쓴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대기는 좀 뿌옇습니다.  역시 사막인지라 모래 먼지가 대기 중에 많나 봅니다.




(두바이가 자랑하는 돈질의 결정판 실내 스키장)



(두바이가 자랑하는 두바이에만 있다는 그것... 금괴 자판기)




5.  두바이의 어두운 면


주말에는 전에 봐둔 버스를 타고 골드 숙 (금 시장)이라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근데 버스를 타니까, 이건 저조차도 '아 ㅆㅂ 잘못 탔나'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좀 안 좋았습니다.  노동자 분위기의 시커면 인도/파키 아저씨들만 잔뜩 탄 거에요.  근데 겉모습만 좀 그렇고 착한 아저씨들 같아요.  물론 안전하게 종점까지 갔었어요.  





종점은 우리나라로 따지면 안산 (안산 사시는 분들께는 죄송) 같은 곳이었나 봐요.  내리니까, 그곳은 진짜 인도나 파키스탄 같더군요.  사람들도 모조리 그쪽 계열이고, 식당도 다 그렇고, 분위기는 우리 남대문 시장 비슷해보였습니다.   바로 근처에 두바이 강(Dubai creek)이 있었는데, 그 강가 쉼터에는 휴일에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는 노동계층의 인도/파키 아저씨들이 그 찌는 듯한 더위 속에 그냥 모여 앉아 있더군요.  제가 묵던 호텔 근처와는 무척...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두바이 인구의 80%는 정말 외국인라고 합니다.  20%만 두바이 국민들인데, 이들은 정말 진골 대접을 받는다고 합니다.  일단 세금 전혀 없고요 (이건 외국인도 마찬가지 !!), 집 공짜로 나오고요, 수도세 전기세 이런거 전혀 안낸답니다.  (외국인은 내야 함)  심지어 자동차 휘발유도 대폭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답니다.  최근까지는 외국인도 그랬는데, 이젠 외국인은 제대로 된 값을 내야 한대요.  그리고 두바이 국민이면 정부가 어떻게 해서든 직장을 구해준답니다.  그리고 그렇게 구한 직장에서, 두바이 국민들은 그냥 커피나 마시고 외국인들이 게으름 피우지 않는지 관리만 하면 된대요.


그게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국민들을 편하게 해주는 것은 좋은데, 그래도 국가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좀 문제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심지어 군대나 경찰도 오만 사람들을 주로 많이 쓴다는데, 글쎄요...  



(여긴 전통 시장...  약간 돌아다녀보니, 확실히 고급 쇼핑 몰보다는 이런 전통시장이 관광객 유치에 더 좋다는 것을 느끼겠습니다.)



쇼핑 몰에 가보니 두바이 국민들은 눈에 많이 띕니다.  (전통 복장들 때문에... 얼굴로는 잘 구분이 아직 안가요.)  그런데, 교보 문고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대형 서점들에 들어가보면, 거기에는 일단 아랍어로 된 책이 거의 없고 다 영어책들이고, 또 두바이 현지인들은 거의 없고 유럽 계통 손님들만 눈에 띕니다.  이건 확실히 문제가 있다고 봐요.  




6. 여성들의 복장


니캅이던가... 암튼 전통 아랍식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조리 검은 천으로 둘러싼 여성들이 두바이 여성들입니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저렇게 입고도 괜찮을까 싶은데, 괜찮은가 봅니다.  다만, 어떤 여자들은 정말 눈만 내놓고 다니는데, 어떤 여자들은 얼굴은 내놓고 다니더라고요.  심지어 어떤 여자들은 눈도 안내놓고 다닙니다.  (눈 부분은 얇은 검은 천으로 가려서, 안에서는 밖이 보이나봐요.)  그 차이점이 뭔지 궁금했는데, 물론 아직 모르겠어요.  아마 좀더 가릴 수록 뼈대있는 가문이거나, 뭐 그런가 보지요 ?  보면 어떤 여자는 흰 천으로 머리만 가리고 있고 (그건 주로 인도네시아 여자들 같아요) 어떤 여자는 심지어 분홍색으로 머리만 감싸고 있던데 (얼굴은 중동 계통이던데... 레바논이나 시리아 여자인가 ?)  그런 사람들은 두바이가 아닌, 외국 여자들이거나 뼈대 없는 가문의 여자들인 모양입니다.



(두바이의 흔한 대형 몰의 한 장면)



그렇게 눈만 내놓고 다니는 여성들은 음식점에서 음식 먹을때는 어떻게 할까요 ?  간단하더군요.  그냥 얼굴 가렸던 베일을 벗고, 얼굴을 내놓고 먹더라구요.



(저렇게 검은 차도르 다 뒤집어 쓴 여자는 진골 두바이 시민이고, 흰 히잡만 쓴 여자는 아마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외국 '이모님' 인가봐요.)



저런 니캅 차림의 여성들은 니캅 밑에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요 ?  한번은 바람이 날려 니캅이 휘날리는 바람에 본의아니게 그 밑의 옷차림을 보게 되었는데, 그냥 나이키 운동화에 청바지 차림이더군요.


여자아이들은 그냥 서방 아이들처럼 편한 복장으로 돌아다닙니다.  12살인가 13살인가까지는 그게 허용이 되는데, 그 나이가 넘어가면 무조건 저렇게 외출할 때는 다 뒤집어 써야 한대요.  그런 여자 아이들보면 아주 예쁘게 생겼습니다.  코도 오똑하고 눈도 크고요.  그런데 일정 나이가 되면 그 검은 옷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하니, 좀 슬프네요.  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  뭐 알 수 없죠.  하긴 우리나라 여성들도, 젊어서는 자유분방하게 지내다가, 혹시 '뼈대있는' 가문에 들어가면 최소한 신혼초에 시집에 갈 때는 답답한 한복 입어야 하쟎아요 ?  뭐 그런것과 비슷하겠지요.


한번은 히잡인지 차도르인지를 눈만 드러낸채 머리부터 발끝까지 쓴 여자들 10여명이, 길가던 저에게 단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는데, 찍어주는 저도 'Smile ~' 하면서 셔터를 누르는데 정말 웃겼습니다.  대체 나중에 누가 누구인지 어떻게들 알아볼런지 ??





(이건 제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구글링에서 niqab group photo라는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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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2017.08.20 15:43

기세 좋게 달려들어간 낭수티의 제1 중기병사단이 첫번째로 맞이한 난관은 그 지대가 너무 평평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기병이 달리는데는 평평한 것이 좋지 않냐고요 ?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완만하게 오르내림이 있는 평원이 기병 돌격에는 더 좋았습니다.  여기 아더클라 앞마당처럼 너무 평평하면 저 멀리서 달려오는 기병대가 그대로 적의 시선과 대포에 노출되면 기병대에게 불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낭수티의 기병들이 번쩍이는 칼을 휘두르며 달려오는 동안, 오스트리아 보병들은 침착하게 방진(square)을 구성했습니다.  





(오스만 투르크의 기병에 대항하여 보병 방진을 구성한 오스트리아군의 모습입니다.   1788년의 오스트리아-오스만 전쟁 때의 모습입니다.  머스켓 소총과 함께 총검이 개발되고 대포의 기동성이 향상되면서부터는, 기병은 어디까지나 보조적 위치로 전락하게 됩니다.  아마 징기스칸의 몽골기병들이 와도 이젠 보병을 당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시 기병으로는 보병 방진을 '절대' 깰 수 없다는 것이 상식 중의 상식이었습니다.  계산 방법은 이렇습니다.  돌격하는 기병들은 좌우로 최소 약 1.2미터의 폭이 필요했습니다.  그에 비해 방진의 보병들은 60cm의 폭만 있으면 되었고, 또 방진의 보병들은 대개 4열로 늘어서 있었습니다.  즉, 한자루의 기병 군도에 대해, 4 x 2 = 8발의 총탄과 8자루의 긴 총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보병의 총에 총알이 들어있지 않다고 해도, 말은 영리한 동물이라서 대개 그 빽빽한 총검의 숲으로는 돌격해들어가지 않고 끝에는 반드시 옆으로 머리를 돌리곤 했습니다.  물론 간혹 기병대가 보병 방진을 깨뜨리는 경우가 있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그 기병대가 우수해서가 아니라, 미숙한 보병들이 엉성하게 보병 방진을 짰기 때문이거나 뭔가 사고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었습니다.  베르나도트의 포병들을 침묵시킬 정도로 압도적인 화력과 정확도를 자랑하던 오스트리아 포병대도 저 멀리서 칼을 꼬나쥐고 달려오는 프랑스군 기병대를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원거리에서 날아오는 쇳덩어리 포탄에 낭수티의 건장한 기병들이 픽픽 나가 떨어지며 그 대오에 뻥뻥 구멍이 뚫렸지만 프링스 기병들은 그저 성모 마리아를 입 속에 되뇌이며 계속 달리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스트리아 포병들에게 큰 피해를 입으며 헐레벌떡 달려들어간 곳에 기다리는 것은 총검을 고슴도치처럼 세우고 기다리는 오스트리아군 보병 방진이었습니다.  이들을 향한 기병 돌격은 당연히 실패했습니다.  낭수티의 기병들은 보병들의 일제 사격에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날 수 밖에 없었지요.  당연히 낭수티는 그대로 물러설 수 없었습니다.  그는 물러서는 기병대원들을 규합하여 다시 돌격을 감행했고 마침내 집단 전술 훈련이 가장 뒤떨어진 그렌츠(Grenz) 대대의 방진 하나를 깨뜨리는 쾌거를 이뤄냅니다.





(그렌츠 보병은 오스만 투르크와의 접경지대에서 차출된 발칸 반도 출신 보병들로서 주로 프랑스군의 볼티저(voltigeur)처럼 산개하여 싸우는 유격병 역할을 주로 했습니다.  전열 보병처럼 싸우는 것은 원래 그들의 몫이 아니었지요.  그림 속의 2번 병사가 그렌츠 보병입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습니다.  좌우로 빽빽히 들어선 오스트리아 척탄병 대대들의 방진은 도저히 깨뜨릴 수가 없었습니다.  낭수티는 당혹감과 혼란, 무엇보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탄 속에서도 뛰어난 지휘 능력을 발휘하여 우왕좌왕하는 기병들을 이끌고 보병 방진 사이를 뚫고 오스트리아군 후방으로 나온 뒤, 방향을 휙 틀어 자신들을 괴롭힌 오스트리아 포병대를 향해 돌격했고, 포대 하나를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곧 이어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 대공의 오스트리아군 기병대가 뛰어나와 지친 이들을 공격해 왔습니다.  기병대의 무기는 사실 칼도 창도 권총도 아닌 속도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당시의 기병대는 현대의 공군과 비슷했습니다.  아무리 공군이 강력해도, 공군으로 전장을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연료가 떨어지면 현장에서 물러가야 하니까요.  아무리 강력한 전폭기라고 해도, 지상에 앉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야말로 쉬운 먹잇감에 불과합니다.  당시 낭수티의 기병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여러차례 전력 질주를 하여 말도 사람도 지친 기병대로는 전선을 틀어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프랑스군 기병대는 이제 완전히 붕괴되어 무질서하게 우르르 본진으로 후퇴했고, 이 와중에 오스트리아군에게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낭수티는 아무 부상을 입지 않고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으나, 그와 함께 출격했던 2800명의 기병 중 되돌아온 것은 고작 1600명으로서, 무려 42%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궤멸적 타격이었습니다.


여기서 베시에르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  그도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낭수티를 먼저 보낸 뒤, 서둘러 황실 근위 기병들을 편성한 뒤 낭수티가 그렌츠 보병 대대의 방진을 깨뜨릴 즈음해서는 2천의 근위 기병들을 이끌고 막 돌격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란에게 당한 모욕도 떨쳐낼 겸, 정말 맨 앞에 나서서 오스트리아군을 향해 달려 나갔습니다.  특히 바로 뒤에서 나폴레옹이 그의 돌격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더욱 비장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운이 좋다고 해야할지 나쁘다고 해야할지, 얼마 가지도 못한 상황에서 오스트리아군의 대포알 하나가 그를 향해 똑바로 날아왔습니다.  그 대포알은 그의 허벅지를 아슬아슬하게 스친 뒤 그가 탄 말의 엉덩이를 강타했습니다.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던 그는 덕분에 땅바닥에 엄청난 세기로 처박히며 정신을 잃었고, 그의 뒤를 따르던 부하들은 모두 그가 전사했다고 생각하여 크게 놀랐습니다.  근위 기병대 지휘관을 역임하며 근위대 병사들과 가까운 사이였던 그가 쓰러지자 많은 근위대 병사들이 통곡을 하며 슬퍼했는데, 이 모습을 나폴레옹이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전투가 끝난 뒤 나폴레옹은 정신을 차린 그에게 '근위대 병사들을 울게 만들다니 대단하네.  그러나 전과는 왜 그 모양인가 ?'라며 칭찬과 조롱을 함께 보냈다고 합니다.


쫓겨온 낭수티는 이제 지휘관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근위 기병대까지 합해 3천이 넘는 기병들을 모으게 되었으나, 이제 다시 돌격한다고 해도 도저히 눈 앞의 오스트리아군을 깨뜨릴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풀이 죽은 채로 큰 피해를 입은 기병대를 이끌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낭수티의 악전고투 덕분에 마세나는 무사히 남쪽으로 진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세나가 떠난 빈자리는 텅 빈 마르히펠트 평원 뿐이었습니다.  그 곳으로 오스트리아군이 몰려 나올텐데, 낭수티의 기병대까지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물러났으니 그걸 틀어막을 부대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체 나폴레옹은 어쩌자고 이런 식의 작전 명령을 내린 것이었을까요 ?  설마 나폴레옹처럼 경험 많은 지휘관이 기병 사단 하나면 적의 군단 하나쯤 충분히 패퇴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일까요 ?  물론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가 낭수티에게 바랐던 것은 오직 하나 시간을 버는 것 뿐이었고, 실제로 그것을 얻은 셈이었습니다.  낭수티가 물러난 빈자리로 오스트리아군이 몰려오자,  나폴레옹은 그들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깜짝 선물을 내놓습니다.  




Source : The Reign of Napoleon Bonaparte by Robert Asprey
With Napoleon's Guns by Jean-Nicolas-Auguste Noel
http://www.historyofwar.org/articles/battles_wagram.html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Wagram
http://www.napolun.com/mirror/napoleonistyka.atspace.com/Battle_of_Wagram_1809.htm#battleofwagram94
http://www.histoire-empire.fr/articles/item/grande-batterie-wagram.html
https://en.wikipedia.org/wiki/Jean-Baptiste_Bessi%C3%A8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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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2017.08.15 15:22

이렇게 오스트리아군이 모처럼 맞은 절호의 기회를 지휘부의 처절한 무능함 속에서 날려버리는 가운데, 나폴레옹의 머리도 바삐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나폴레옹의 천재성은 이미 끝났다고들 말했지만, 그의 클래스는 살아 있었습니다.  클레나우와 콜로브라트가 주저하며 오스트리아군의 승리를 망치고 있다는 것을 아직 몰랐을텐데도, 그는 이런 위기 속에서 침착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보통의 지휘관이라면 후방으로 침입한 클레나우와 콜로브라트를 막기 위해 모든 병력을 동원하는 등 허둥거렸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에게는 아직 교전하지 않은 병력이 아주 많았습니다.  최우익의 다부 외에도 우디노와 막도날, 외젠과 근위대 등 어제 밤에 장전해둔 탄약이 머스켓 약실에 그대로 들어 있는 병력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순간에도 나폴레옹의 가장 큰 관심은 다부의 우익이었습니다.  이번 전투의 승패는 어떻게 적의 공격을 막아내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적의 이 기습 공격을 분쇄한다고 해도 그건 현상 유지일 뿐, 전쟁을 끝내려면 이번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야 했고 그러자면 원래 의도했던대로 우익의 다부가 제대로 된 묵직한 공격을 퍼부어야 했습니다.  이번 전투의 정수는 다부 쪽에 있었습니다.  이런 뜻하지 않은 위기 상황 속에서도 큰 그림을 잃지 않고 초심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나폴레옹의 클래스를 보여주는 점이었습니다.


그는 침착하게 다부에게 전령을 보내 '공격을 서두르라'고 명령한 뒤, 놀랍게도 다른 모든 군단장들 대신 아더클라에서 악전고투 중인 마세나의 제4 군단에게 남쪽으로 이동하여, 그쪽을 돌파해 들어온 오스트리아군을 상대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다른 군단들은 그대로 현 위치를 지키게 했습니다.


마세나의 제4 군단은 아더클라에서 벨가르드의 부대와 교전 중이라서 그들에게 등을 보이고 남쪽으로 후퇴하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이었습니다.  왜 이런 말도 안되는 명령을 내린 것이었을까요 ?  가장 단순한 이유는 마세나가 클레나우와 가장 가까왔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의 침착성과는 별도로, 상황은 정말 위급했습니다.  그러니 더 동쪽에 있던 우디노나 막도날의 군단을 이동시키는 것은 너무 시간이 걸렸습니다.  게다가 그들을 이동시키면 그 빈자리는 무엇으로 메꾼단 말입니까 ?  궁극의 예비대인 그의 근위대는 정말 최후의 순간까지 예비대로 아껴두어야 했는데, 나폴레옹은 현 상황이 그렇게까지 급박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니 남는 옵션은 마세나로 하여금 아더클라에 집착하지 말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클레나우를 제압하도록 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분명히 이미 교전 중인 적으로부터 떨어져나오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질서있는 전술적 후퇴가 까딱 잘못하다간 진짜 패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솜씨 있는 지휘관이 숙련된 병사들을 지휘하고 있어야 했습니다.  아더클라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을 성공적으로 떨쳐내고 후퇴한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마세나는 새벽에 행군해 온 그 길을 다시 되짚어 남쪽으로 내려가야 했는데, 그 길목에는 새벽에는 없었던 것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바로 콜로브라트의 오스트리아 제3 군단이었지요.  이들과 엉겨붙으면 또 끝장이었고, 또 이들을 어떻게든 신속하게 제압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아무 대책없이 마세나가 그대로 남쪽으로 달려가 클레나우의 제6 군단과 맞붙는다면, 마세나와 아더클라 사이는 또 뼝 뚫린 구멍이 생기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 구멍으로 콜로브라트가 밀고 들어오면 그것 또한 큰 일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여기에 대해서 간단한, 그러나 무책임한 해결책을 내놓습니다.  바로 대규모 기병대를 오스트리아군 얼굴에 냅다 집어던져 시간을 벌자는 것이었지요. 


이는 완전히 새로운 전술은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아일라우(Eylau)에서도 위기에 처하자 뮈라의 대규모 기병대를 돌격시켜 러시아군을 상대하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뮈라의 기병대는 빽빽히 늘어선 러시아군 보병 대오를 관통하여 뚫고 들어갔다가 말을 돌려 다시 뚫고 돌아오는 장관을 연출하기는 했었으나, 정작 그 돌격으로 적에게 입힌 피해는 정신적 충격 외에는 별로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소중한 시간을 벌긴 했지요.  이번에도 나폴레옹은 같은 목적으로 기병대를 냅다 집어던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무작정 기병 돌격은 기병들의 큰 피해를 수반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당연히 이 기병대를 맡을 지휘관도 적의 대포알과 머스켓 총탄에 그대로 노출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늘이 내린 기병 지휘관이었던 불꽃 남자 뮈라는 이런 위험천만한 돌격을 언제나 선두에서 지휘했고, 하일스베르크 전투의 경우 뮈라는 지근거리에서 발사된 대포의 산탄에 말을 잃고 낙마하면서 장화 한짝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위험을 우습게 여기며 미친 듯한 돌격을 여러번 이끌면서도 부상은 거의 입지 않았지요.  그러나 뮈라는 이 자리에 없었습니다.  이번에 이 위험천만한 임무를 담당할 사람은 예비 기병대 사령관인 베시에르(Jean-Baptiste Bessières)였습니다.




(베시에르입니다.  사실 그가 얌체에 기회주의자일지는 몰라도 결코 겁쟁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절친이었다가 원수로 변한 란과 결국 같은 운명을 맞게 됩니다.)




기억들 하시겠습니다만, 베시에르는 분명히 뛰어난 기병 지휘관이기는 했습니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전쟁터 최전선보다는 나폴레옹 주변을 알짱거리며 권력에 대한 욕심을 부리다 란(Lannes) 원수로부터 '전투 현장에서는 코빼기도 볼 수 없더니 폐하를 뵈려하니까 떡 나타나네 ?'라는 팩트폭력을, 그것도 나폴레옹 코 앞에서 당하고는 그와 결투 직전까지 갔던 바 있었습니다.  물론 열혈남아 란에 비할 수야 없겠으나 베시에르도 위험 앞에서 꼬리를 말아쥐는 겁쟁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 앞에서 그런 모욕을 당한 바로 그 다음날 란이 최전선에서 지휘를 하다 적 포탄에 희생되는 일이 발생하자, 베시에르가 아무리 스스로 떳떳하다고 해도 뭔가 찜찜한 느낌이 없을 수는 없었습니다.  


베시에르가 이 명령을 받은 것은 오전 11시 경이었습니다.  그가 맡았던 프랑스군 예비 기병대에는 기병 사단이 3개 있었으나, 그 중 생-쉴피스(Saint-Sulpice)의 사단은 마세나를 지원하러 차출되었고, 아리기(Arrighi)의 사단은 새벽에 로젠베르크가 일으킨 소동 탓에 다부의 우익을 지원하러 간 상태였습니다.  남은 것은  제1 중기병 사단 하나 뿐이었는데, 그나마 여기에는 총 3개 여단 중 생-제르맹(Saint-Germain) 장군의 기병 여단이 후방으로 빠져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부족한 기병대의 머리수를 채우기 위해 아끼고 아끼던 근위 기병대까지 차출해주었으나, 그 준비에도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시간을 벌려고 기병대가 돌격을 하는데, 그 준비에 시간이 걸려서야 되겠습니까 ?  결국 베시에르는 제1 중기병 사단의 2개 여단 2800명을 그 지휘관인 낭수티(Nansouty)의 지휘 하에 돌격시켰습니다.  본인은 일단 뒤에 남았습니다.  어쩌면 란의 영혼이 이 모습을 보며 '내 그럴 줄 알았다'라며 비웃었을지도 모르지요.




(낭수티 장군입니다.  그는 원래 귀족 출신으로서, 나폴레옹의 다른 장군들과는 달리 전장에서 약탈 등으로 개인주머니를 채우지 않은 몇 안되는 청렴한 장군 중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청렴했을 뿐 청빈하지는 않아서, 씀씀이는 계속 귀족처럼 살았기 때문에, 나폴레옹 패망 이후 루이 18세 치하에서 급료가 많이 깎이자, 말년에는 경제적으로 무척 쪼들렸다고 합니다.)




낭수티가 돌격해 들어간 곳은 아더클라를 점령한 오스트리아 예비 군단과, 그 바로 남서쪽에 자리를 잡은 콜로브라트의 오스트리아 제3 군단 사이의 공간이었습니다.  이 넓은 공간에는 프로하스카(Prochaska) 중장이 이끄는 오스트리아 사단 1개만 얇게 펼쳐져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리 기병대 수가 부족하다고 해도, 큰 말에 올라탄 덩치 큰 기병들로 구성된 중기병대가 큼직한 군도를 뽑아들고 두두두 달려들어가면 그 정도의 보병들은 쉽사리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Source : The Reign of Napoleon Bonaparte by Robert Asprey

With Napoleon's Guns by Jean-Nicolas-Auguste Noel

http://www.historyofwar.org/articles/battles_wagram.html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Wagram

http://www.napolun.com/mirror/napoleonistyka.atspace.com/Battle_of_Wagram_1809.htm#battleofwagram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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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s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