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ica의 뜻은 ?

1807년 나폴레옹이 러시아 군을 격파하고 마침내 굴복을 받아낸 프리틀란트는 동부 프로이센의 주도인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 근처에 있는 지역입니다.  쾨니히스베르크는 독일어로 '왕의 산'이라는 뜻이고, 프로이센 공국의 수도였습니다.  지금 이 도시는 러시아 발트 함대의 모항인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라는 이름의 러시아 도시가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유서 깊은 독일 도시가 러시아 영토가 되었을까요 ?  예전에 독일 도시였다면 그곳에 살던 독일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또, 지금 독일이 다시 매우 강대국이 되어 있는데, 독일 내에서 이렇게 잃어버린 옛영토를 되찾자는 움직임은 없을까요 ?




(쾨니히스베르크의 모습입니다.  아마 19세기 말 정도의 모습인가봐요 ?)




전에도 다룬 바 있습니다만, 독일 통일의 주역이었던 프로이센 왕국은 원래 유럽 북동부, 즉 현재의 폴란드 북동쪽과 러시아 땅에 자리잡았던 종교적 군사 단체인 튜톤 기사단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먼 동쪽 끝 변방의 공국이 혼인 관계에 의해 독일 중부의 브란덴부르크(Brandenburg) 공국과 합쳐지면서 프로이센 왕국의 기초가 다져집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프로이센이 브란덴부르크를 먹었다기 보다는 브란덴부르크가 프로이센을 먹은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신하 관계 때문에, 왕국이 될 때의 이름은 프로이센 왕국이 되었지요.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프로이센은 유럽 중부와 동부에 따로 분리된 두 덩어리의 영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점차 프로이센 왕국의 국력이 강성해지면서, 이 두 영토 사이의 땅을 차지하여 두 영토를 합치려는 노력이 계속되었지요.  이런 노력 중에 희생된 것이 바로 폴란드였습니다.  이렇게 프로이센 땅이 된 옛 폴란드 지역에는 여전히 많은 폴란드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나, 주요 도시 지역에는 이주해온 독일인들의 인구가 점점 늘어났습니다.   


나폴레옹이 아일라우(Eylau) 전투 이후 제대로 된 공세를 위해 포위 공격하여 마침내 점령했던 단치히(Danzig)는 처음부터 프로이센 공국에 속해 있던, 주민 대부분이 독일인인 독일계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분열된 독일 공국들간의 알력들 속에서, 중세 자유 도시들이 흔히 그러했듯이 어느 왕에게 완전히 종속되는 것이 싫었던 단치히 시는 16세기 때만 해도 나름 강력했던 폴란드 왕국의 야기엘로(Jagiello) 왕조에게 손을 뻗쳤습니다.  폴란드 왕의 주권을 인정하는 조건으로, 단치히 시는 자치권을 허락받은 것이지요.  사실 프로이센 공국도 초기에는 폴란드 왕의 종주권 하에 있을 정도로 폴란드 왕국의 세력이 강성했거든요. 




(17세기 초반 단치히 항구의 모습입니다.)




나중에 프로이센 왕국이 강성해지면서 단치히 시는 자치권을 빼앗기고 프로이센 왕국의 영토로 편입됩니다.  그러나 1807년 포위 공격 끝에 단치히를 점령한 나폴레옹은, 이 중요한 발트해의 항구 도시를 프로이센에게 돌려주기 싫어서, 단치히에게 다시 자유 도시라는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단치히 자유시는 그 댓가로 나폴레옹에게 많은 세금을 바쳐야 했고, 결국 나폴레옹의 몰락과 함께 다시 프로이센 왕국으로 편입되어야 했습니다. 


진짜 큰 문제는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뒤에 벌어졌습니다.  1919년 베르이사이유 조약에 의해 폴란드 공화국이 재건되면서, 근 100년간 독일 제국의 땅이었던 영토가 다시 폴란드 땅이 된 것입니다.  이 지역들은 100년 전에는 폴란드 땅이었으므로 당연히 많은 폴란드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나, 100년 간이나 독일 땅으로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독일인들도 적지 않게 이주하여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이 독일인들은 졸지에 자신들이 경멸하던 폴란드 국민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불만이었으나, 가진 재산과 생업 기반을 버리고 갈 수 없었으므로 결국 불만을 품은 채 일단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폴란드 식으로 그단스크(Gdansk) 자유도시가 된 단치히에서는 상황이 더욱 심각했습니다.  당시 통계로는 전체 주민의 90% 정도가 독일계였던 이 도시가, 폴란드가 주권을 가지는 자유 도시라는 어정쩡한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단치히 주민들은 독일 시민권을 포기하고 그단스크 시민으로 살던가, 아니면 가진 재산을 모두 놔두고 몸만 빠져 나가 독일에 가서 독일 시민으로 살던가를 택하라고 강요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독일은 패망하여 피폐해진 상태였으므로, 단치히의 독일계 주민들은 대부분 잔류를 택했습니다.  




(단치히, 아니 그단스크의 오늘날의 모습입니다.  아주 멋진데요 !!)




이렇게 갈등의 요소가 많았던 그단스크 시 안에서는 민족 갈등이 꽤 심했습니다.  특히, 독일에서 나찌가 정권을 잡으면서는 노골적으로 폴란드계와 유태계를 차별하고 박해하는 일이 늘어났지요.  나찌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체코로부터 수데텐란트(Sudetenland)를 빼앗은 뒤, 이제는 그단스크, 아니 단치히를 내놓을 것을 폴란드에게 요구했습니다.  단치히는 원래 독일 영토이고 동부 프로이센과 중부 독일을 연결하는 전략적인 지역이라는 이유였지요.  결국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단치히는 독일 땅으로 편입되었고, 도시 주민들은 나찌 독일군을 열광적으로 환영했습니다.




(단치히는 독일이다 ! 라는 나찌의 포스터입니다.)




(아래 사진은 1933년에 독일로의 귀속을 주장하고 지지하는 단치히 독일계 주민들의 집회입니다.)




이런 전과가 있다보니, 1945년 독일의 패망이 눈 앞에 다가오고 소련군의 진격이 코 앞에 닥치자, 독일은 단치히로부터 대규모로 민간인들을 철수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진격하는 소련군이 독일 민간인들을 잔혹하게 다룬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때와는 달리, 독일계 주민들은 목숨을 구하기 위해 무조건 서쪽으로 도망치기에 바빴지요.  그렇지만 항상 예외는 있기 마련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서쪽으로 탈출할 수는 없었지요.  1945년 6월, 종전 직후 기록을 보면 단치히 시내에는 약 12만명의 독일인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들은 민간인 신분이었으나 1949년까지 사실상 포로 상태로서 소련군의 감독 하에 가혹한 노예 노동을 해야 했는데, 그나마 1950년까지 대부분의 생존자들이 동독으로 추방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1945년 전쟁 말기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독일 군함을 타고 필사적으로 탈출하는 독일 주민들의 모습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제 소련의 위성 국가가 된 동독은 스탈린의 주문대로 동부 영토를 다 할양해야 했습니다.  이때 독일은 옛 프로이센 공국 지역을 완전히 상실합니다.  동독이야 그렇다치고, 서독은 이런 국경 변화를 인정했을까요 ?  물론 당시 서독 수상 아데나워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마치 북한이 함경도 전체를 뚝 떼어 중국에게 넘겨주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요.  그러나 1970년 서독의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총리는 폴란드와 바르샤바 조약을 맺고 당시의 동독-폴란드 국경을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폴란드로서도 이익이라고 할 수는 없었던 것이, 종전 직후 스탈린 마음대로 폴란드 동부 지역을 소련 땅으로 떼어가고, 대신 독일 동부 지역을 폴란드 땅으로 떼어준 것이었거든요.  역사적으로 보면 폴란드 땅은 원래 전반적으로 현재보다 좀더 동쪽에 있었으나,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20세기 들어 많이 서쪽으로 이동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아무튼, 과거 동부 독일 지역은 이런 식으로 독일 역사에서 영원히 상실되었습니다.




(폴란드 영토가 전반적으로 서쪽으로 옆걸음질치는 모습이 보이십니까 ?)




영토야 그렇다치고, 그 땅에 살던 독일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  대부분은 단치히 시민들처럼 종전이 되기 전에 서쪽으로 도주하기도 했고, 일부 남은 사람들도 1950년 이전까지 독일로 추방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서 폴란드인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된 독일인들도 꽤 되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독일인들을 독일 정부는 여전히 자기 국민으로 인정했습니다.  이들이 만약 지금이라도 독일로 귀국하여 독일 시민권을 취득하기를 원할 경우 그것을 인정하는 법안을 만든 것입니다.  이런 권리를 Aussiedler(이주민)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귀환한 사람들 중 여러분들이 최근에 본 가장 유명한 사람이 바로 미로슬라프 클로제, 즉 독일 축구 국가 대표 선수이자 월드컵에서 가장 많은 누적골을 기록한 사나이입니다.  클로제는 옛 독일 영토인 실레지아(Silesia)의 도시 오폴레(Opole)에서 폴란드인으로 태어났는데, 그의 아버지가 과거 폴란드 땅에 남은 옛 독일인 후손이었던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 요제프 클로제(Josef Klose)도 축구 선수였는데, 그는 처음에는 폴란드 팀에서 뛰다가 나중에 프랑스 프로 축구팀 오세르(AJ Auxerre)에서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외 생활을 하여 발전된 서구에 눈을 뜨게 된 아버지 클로제는 역시 공산주의 폴란드를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하여 고국에 남아 있던 가족들까지 모두 독일로 불러들여 Aussiedler로서 독일 시민권을 신청했던 것이지요.  이때 클로제의 나이 8살이었고, 이때 클로제가 아는 독일어는 단 두 단어 뿐이었다고 합니다.  (아마 Ja와 Nein 아니었을까 합니다.)






이렇게 독일 시민권을 취득한 옛 폴란드인들은 여전히 폴란드 국적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젊은 축구선수 클로제가 두각을 나타내자, 폴란드 국대팀에서 코치를 파견하여 '자네 폴란드 국가 대표로 뛰지 않겠는가'라는 제안을 했으나, 클로제는 '현재대로라면 독일 국대도 가능하겠다' 라며 거절했고, 결국 오늘날의 클로제로 대성할 수 있었습니다.  클로제는 '폴란드 대신 독일을 택한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라고 밝혔는데, 그도 그럴 것이 지금도 그는 집에서 와이프와는 물론 아이들과도 폴란드어로 이야기할 정도로 스스로를 폴란드인으로 여기고 있다고 합니다.  




(포돌스키입니다.  지금은 은퇴했나 모르겠네요.)




이와 비슷한 처지의 선수로는 현재 아스널에서 뛰고 있는 포돌스키(Lukas Podolski)가 있습니다.  거의 비슷한 과정을 거쳐 독일인이 된 포돌스키는 한때 클로제와 함께 바이에른 뮌헨에서 선수 생활을 했는데, 이때 이 둘은 상대팀 선수들이 자기들 말을 알아듣지 못하도록 필드 위에서는 폴란드어로 대화를 했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요즘 점점 강성해지는 통일 독일에서, 혹시라도 나중에 '상실한 옛 프로이센 영토를 되찾자'라는 움직임이 벌어지면 어쩌나 하는 우려지요.  위에서 언급했듯이, 1970년 브란트 총리가 바르샤바 조약을 맺고 옛 영토를 완전히 포기한다고 선언했을 때, 독일 내 보수파들은 민족에 대한 배신 운운하며 격하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만난 어떤 독일 영감님 말씀을 들어보니, 현재로서는 그럴 염려, 즉 옛 영토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생길 우려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스탈린이 나름 철저하게 그럴 가능성에 대비하여, 옛 독일 영토에 있던 독일계 주민을 철저하게 추방했기 때문에, 과거 영토에 남아 있는 독일계 주민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옆의 섬나라 인간들과는 달리, 독일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으로부터 정말 많은 것을 배웠기 때문에, 독일의 영광은 영토의 크기가 아니라 이웃 국가들과 공존하는 리더쉽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모르지요.  우리나라처럼 작고 힘없는 나라에서도 세계 제2위의 강대국 중국으로부터 거의 천년 전에 잃어버린 만주 벌판을 되찾아야 한다고 떠벌이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중에 독일에 또 미치광이들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겠지요.



Comment +11

프랑스군 2개 사단을 위기에서 구출해준 것은 전선 중앙부에서처럼 영국군 자신들의 경험 부족과 무지였습니다.  페인(Fane)과 앤슨(Anson)의 영국군 기병대가 프랑스군을 위협하여 방진을 이루게 한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협박만 했으면 더 좋았을 뻔 했습니다.  그렇게 방진을 이룬 프랑스군을 메데진 언덕 위의 영국군 포병대가 계속 갉아먹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고슴도치처럼 총검을 촘촘히 내밀고 방진을 이룬 프랑스군 정면을 향해 영국군 기병대는 겁도 없이 돌격을 감행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돌격은 기병대가 큰 피해를 입고 물러서는 것으로 끝나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영국군은 용감했습니다.


하지만 영국군 기병대를 격파한 것은 프랑스군의 총검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닥치고 돌격'을 감행하던 중, 선두를 달리던 영국군 기병대 제1파가 비명과 함께 한꺼번에 증발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들과 프랑스군 사이에 깊이 3m, 폭 4.5m의 깊게 움푹 파인 도랑 같은 지형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쪽에서는 교묘하게 눈에 잘 보이지 않던 이 도랑 속에 놀랍게도 영국군 기병대 제1파의 절반 정도가 빠져버렸고, 많은 병사들과 말이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프랑스군이 영국군 기병대의 멍청함을 비웃을 처지가 될까요 ?  위 그림은 1815년 워털루에서 프랑스군 기병대가 돌격하다 똑같은 운명에 처하는 장면입니다.  실제로 저런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립니다만, 빅토르 위고는 사실이라고 주장하며 그의 불후의 명작 레미제라블에서도 저 장면을 세밀히 묘사했습니다.  덕분에 이런 그림도 그려졌지요.)




이건 정말 코미디 같기도 하고 비극 같기도 한 어이없는 사고였습니다.  제대로 된 지휘관의 기본 중 기본이 지형 숙지였는데, 메데진 언덕이라는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형을 점하고도 그런 도랑의 존재를 몰랐다는 것은 영국군의 미숙함을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영국군 지휘부는 미숙할 뿐만 아니라 실리보다는 체면을 더 중시하는 고집불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바로 이어서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뜻하지 않은 사고로 큰 낭패를 당했을 경우, 아무리 창피하더라도 물러서서 재정비를 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페인과 앤슨은 굴하지 않고 그대로 돌격을 감행했습니다.  제대로 된 공격을 했어도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컸는데, 그렇게 엉망진창인 상태로 보병 방진을 공격했으니 그 결과는 뻔했습니다.  영국군 기병대는 거의 절반에 달하는 병력을 잃고 보기 흉하게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프랑스군이 이 틈을 타 진격을 재개할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메데진 언덕에는 영국군과 스페인군 보병 사단들이 대기하고 있었고, 영국제 포탄이 계속 날아왔습니다.  게다가 이때 즈음엔 다른 방면에서의 프랑스군도 다 패퇴한 상태라는 소식이 전해졌으므로, 루팽과 빌라트도 영국군 기병대가 박살이 난 틈을 타 재빨리 후퇴해버렸습니다.  이것이 탈라베라 전투의 실질적인 마무리였습니다.



(영국 화가인 William Heath가 그린 탈라베라 전투입니다.  진 쪽은 그림 같은 거 그리지 않습니다.)




전투 과정은 길고 잡다했습니다만, 짧게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영국군이 스페인군과 연합하여 스페인 내부로의 침공길에 나섰는데, 그를 막으러 온 프랑스군과 탈라베라에서 마주치자 정작 공격한 측은 프랑스군이었고 영국-스페인군은 방어에만 치중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군의 공격이 좌절된 것이 결과였지요.  공격했는데 성공하지 못한 것이 곧 패배일까요 ?


빅토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세 번 공격하여 다 실패했지만, 한 번 더 들이치면 성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프랑스군의 피해도 컸으나 영국군도 꽤 큰 피해를 입었고, 조제프와 주르당의 약 5000 규모의 예비대는 아직 총 한 방 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제프와 주르당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세 번이나 두드렸는데 안 열리는 문은 네 번 두드린다고 열릴 것 같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지금 남의 집 문 따고 들어가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비워두고 온 마드리드의 본진이 베네가스에게 털리게 생긴 상황이었으니, 마음이 조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조제프는 주르당의 조언대로 철수를 명령했고, 세바스티아니의 제4 군단도 그 명령에 복종하여 28일 밤부터 철수를 시작했습니다.  


탈라베라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실질적인 총지휘관 노릇을 하던 빅토르는 분통이 터졌습니다.  어찌나 분통이 터졌는지 아무 대책없이 철수를 거부하고 29일 새벽 3시까지 그 자리를 고수했습니다.  그러나 전체 프랑스군의 2/3가 다 철수하는데 그의 제1 군단 혼자 남아있다가는 영국-스페인 연합군의 먹잇감이 될 뿐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조제프와 주르당에 대한 욕설을 지껄이면서 그도 결국 철수해야 했습니다.  그는 그 뒤에도 조제프와 주르당만 없었다면 프랑스군이 4번째 공격에서 마침내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 수도 있었습니다.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피해가 더 크긴 했지만, 당시 전투에서의 승리란 누가 더 많은 적을 죽였는가가 아니라 누가 물러났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거든요.  영국군은 약 6천이 넘는 사상자를 냈고, 프랑스군은 7천이 넘는 사상자를 냈습니다.  전체 병력 대비 사상자 비율로 보면 영국군 측이 더 높은 피해를 입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간 의아한 것은 별로 전투에 참전하지 않았던 스페인군도 1천2백이나 되는 사상자를 보고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쿠에스타는 영국군이 많은 사상자를 냈는데 스페인군에는 사상자가 거의 없다고 하면 스페인군의 체면이 구겨진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사상자를 많이 낸 것은 치열한 전투를 치루었다는 증거로서 당시 지휘관에게 일종의 영광처럼 여겨졌습니다.  물론 이겼을 때의 이야기지요.  그리고 이 전투의 승자는 분명히 영국-스페인 연합군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건 많은 병사들의 희생을 감내하면서까지 전투를 치르는 것은 그저 지휘관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세를 유리하게 바꾸어 도시를 탈환한다든지 적의 항복을 받아낸다든지 하는 승리의 열매를 거두기 위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탈라베라 전투는 쓰라린 희생만 있었을 뿐, 영국-스페인 연합군에게 열매가 전혀 없었습니다.  마드리드로 후퇴하는 프랑스군을 추격하여 베네가스의 라 만차 군과 합류하는 것이 정상적인 작전 흐름이었을텐데, 영국군은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왜 그랬냐고요 ?  영국군이거든요 !  산더미 같은 염장쇠고기와 럼주가 함께 따라다니지 않는 이상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그런 고기통 술통은 옮기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웰슬리가 이렇게 보급품 문제로 꾸물거린 것이 어떻게 보면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웰슬리는 이때까지도 북쪽에서 술트 원수가 약 3만명 규모로 충원된 제2 군단을 끌고 자신의 후방을 끊기 위해 내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3일 뒤인 8월 1일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웰슬리는 처음에 술트의 제2 군단 규모가 약 1만5천이라고 생각했으나, 나중에 추가로 전달된 정보에 의해 병력 규모가 3만에 달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소식을 접한 그의 결정은 아주 간단했습니다.  그는 마드리드로의 진격을 재빨리 포기하고 타호 강을 따라 포르투갈 국경 너머로 후퇴해버렸습니다.  웰슬리에게는 포르투갈로부터의 보급선이 차단될 경우 발생할 문제가 극복 불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웰슬리는 그야말로 혼비백산하여 예비 탄약과 보급 물자 대부분은 물론, 탈라베라 전투에서 노획했던 십여 문의 프랑스군 대포도 모두 버리고 허둥지둥 퇴각했습니다.  아마 나폴레옹이었다면 이렇게 빅토르-세바스티아니 군단들에 이어 술트의 군단을 각개격파할 기회가 생긴 것에 매우 기뻐하며 그의 군을 오히려 북쪽으로 진격시켜 술트를 공격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웰슬리는 나폴레옹이 아니었습니다.  


한편, 탈라베라에서 철수한 프랑스군은 원래의 철수 목적을 매우 성공적으로 완수했습니다.  조제프와 주르당은 빈정이 상할대로 상한 빅토르에게 뒤에 남아 웰슬리와 쿠에스타의 연합군을 감시하는 한직을 주고는, 세바스티아니의 제4 군단과 함께 베네가스의 라 만차 군을 상대하러 달려갔습니다.  이들은 8월 11일, 마침내 톨레도(Toledo) 인근 알모나시드(Almonacid) 전투에서 베네가스와 만나 매우 쉽게 라 만차 군을 격파하고, 마드리드의 안전을 확보했습니다.  




(세바스티아니 장군입니다.  이 분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외교관 역할을 더 많이 했고, 사실 지휘관으로서의 자질은 별로 좋지 못했습니다.  스페인 전역에서는 알모나시드 전투에서의 승리가 이 양반의 가장 큰 승리일 것입니다.  이 분은 안달루시아 침공 이후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에 사령부를 차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혹자는 그가 알함브라 궁전의 일부를 파괴한 것을 비난하고, 또 다른 이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황폐화시켜놓은 알함브라를 다시 복원시킨 것이 그였다고 칭찬하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탈라베라 전투는 영국군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약 2만의 영국군이 무려 4만이 넘는 프랑스군의 공격을 거의 단독으로 버텨내었을 뿐만 아니라 결국 후퇴하게 만들었으니까요.  그러나 이는 지엽적이고 전술적인 승리일 뿐, 전략적으로는 프랑스군이 모든 목표를 달성한 프랑스 측의 전략적 승리였습니다.  영국군의 스페인 침공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베네가스의 라 만차 군처럼 분산된 스페인군을 각개격파할 수 있었으니까요.  특히 1809년 11월 마드리드 인근 오카냐(Ocana)의 전투에서 술트가 4만5천 규모의 스페인군을 완파한 것이 매우 뼈아픈 패배였습니다.  이 전투 결과 스페인 중부를 완전히 장악한 프랑스군은 바일렌 전투 이후 감히 넘보지 못하던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침공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웰슬리의 영국군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  웰슬리는 스페인 측이 '오기만 하면 식량까지 모두 공급할테니 일단 오시라'고 여러차례 지원을 요청했으나, 그 다음해인 1810년 2월말까지도 포르투갈 국경을 절대 넘지 않았습니다.  그는 '탈라베라에서 보니 스페인군은 믿을 수 없는 작자들이더라, 그들의 협력을 기대하고 스페인으로 진격했다가는 큰일 나겠더라'는 입장을 고수했지요.  그게 꼭 틀린 평가는 아닐지 몰라도, 영국군이 스페인에게 있어 그다지 좋은 연합군이 아니었던 점은 확실했습니다.  


그러에도 불구하고, 탈라베라 전투는 웰슬리 본인에게는 무척 뜻깊은 승리였습니다.  어쨌거나 마침내 스페인에 진격하여 프랑스 2개 군단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무어 경의 코로나 전투 이후 침체되었던 영국 육군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는 약 1달 뒤인 8월 26일, 마침내 꿈꾸던 그대로 귀족이 되어 웰링턴 자작(Viscount Wellington of Talavera and of Wellington)이 되었습니다.  약 3년 후인 1812년 살라망카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마드리드를 탈환한 그는 웰링턴 백작(Earl of Wellington)이 됩니다.



* 사족 :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과 세바스티아니 장군과의 관계는 아래 편을 참조...


http://nasica1.tistory.com/30







Source : http://lamejortierradecastilla.com/la-batalla-de-talavera-y-2-la-sangre-corre-en-la-portina/

https://www.bbc.co.uk/radio4/wellington/talavera_pop.shtml

https://en.wikipedia.org/wiki/Jean-Baptiste_Jourdan

http://www.worcestershireregiment.com/wr.php?main=inc/h_talavera

http://www.napoleon-series.org/military/battles/1809/Peninsula/talavera/c_talaveraoob.html

http://www.historyofwar.org/articles/battles_talavera.html

http://www.historyofwar.org/articles/campaign_talavera.html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Talavera

Comment +12

2012년 상영된 영화 중에 잭 리처(Jack Reacher)라는 톰 크루즈 주연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자유롭게 미국 내를 떠돌아다니며 이런저런 범죄 사건을 해결하는 정의의 방랑자 잭 리처의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에는 원작 소설이 따로 있습니다만, 영화나 원작 소설에서나, 잭 리처의 평상시 생활에는 원칙이 있습니다.  일단 절대 짐을 들고 다니지 않습니다.  옷가방도 없고, 그냥 접이식 칫솔만 들고 다닙니다.  갈아입을 옷이요 ?  없습니다.  그냥 싸구려 옷을 사서 입다가, 며칠 지나면 세탁하지 않고 (주윤발이 탄창이 빈 권총 버리듯) 그냥 버리고 새로 사입습니다.  잭 리처는 무엇에게든 구속 받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정한 거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휴대폰도 없고, 심지어 이메일 아이디도 없으며, 신분증조차 없습니다.  잠은 싸구려 모텔에서 자고, 식사는 싸구려 식당에서 합니다.  신분증이 없다보니 비행기는 절대 못 타고, 항상 여행은 장거리 고속버스인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다닙니다.




(영화 잭 리처의 한 장면입니다.  술집겸 식당에서 젊고 예쁜 아가씨가 접근해오자 "I can't afford you" 라면서 거절하지요.  실제 설정에서도 잭 리처는 돈이 별로 풍족하지 않기 때문에 잔돈도 꼼꼼히 챙기는 편입니다.  돈이 없어도 인물이 톰 크루즈 같다면야 뭐 여자들 사이에서 인기는...)




저를 포함해서 많은 남자들이 이런 자유로운 떠돌이 생활을 동경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려면 대체 한달에 얼마나 들까요 ?  웹을 뒤져보면 저와 비슷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몇몇 파이낸셜 플래너들이 잭 리처의 삶에 대해 분석하면서 내린 결론은 대략 한달에 2천 달러, 그러니까 우리나라 돈으로 약 2백여만원이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자들은 잭 리처처럼 살 수가 없습니다.  일단 잭 리처(정확하게는 톰 크루즈)처럼 잘 생기지도 않았고, 싸움도 그렇게 잘하지 못하고, 수사 능력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잭 리처와는 달리, 연금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젠가 무협지를 써볼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모든 무협지 주인공에게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있지요.  "대체 저 주인공은 돈이 어디서 나서 주막에 들러 먹고 마시는 것일까 ?"  잭 리처도 일종의 현대판 무협지인데, 거기에는 답이 나옵니다.  잭 리처는 미육군사관학교 출신의 전직 육군 소령입니다.  13년간 육군 현병대에서 특별 수사관으로 근무하다가 상관과의 마찰로 쫓겨났는데, 퇴역 군인에게 죽을 때까지 나오는 연금이 꽤 두둑하기 때문에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최소 20년간을 근무해야 연금을 받을 수 있는데, 잭 리처는 왜 13년만 근무하고도 연금을 받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전투 복무는 복무 기간을 2배로 쳐준다는 규정이 있긴 하던데, 그것 때문일지도 모르지요.




(잭 리처는 미국내 흥행이 그다지 신통치 않았으나, 해외에서는 꽤 괜찮았답니다.  덕분에 속편인 Never Go Back 편도 나왔는데,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모든 사람은 결국 나이가 들고, 결국 하던 일을 못 하게 됩니다.  굳이 기업체 직원들처럼 정년 퇴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해도, 의사든 변호사든 나이가 들면 대부분 능력이 떨어지게 되므로 벌이가 한창 때와는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는 학원 강사든 주방장이든 트럭 운전사든 교회 목사든 다 마찬가지이지요.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노후 준비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노후 준비를 하고 계신지요 ?  아마 대부분 딱히 신경써서 하고 계시지는 않을 겁니다.  일부 하고 계시는 분들도, 연금이든 저축이든 막연하게 하고는 있는데 충분히 하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입장이실거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자기와 같다고 해서 안심해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나이가 이제 40대 후반인지라, 노후 준비에 굉장히 관심이 많습니다.  실은 저는 30대때부터 노후 준비, 정확하게는 은퇴 준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직장 생활 시작하면서부터 제 꿈이, 이렇게 얽매인 삶에서 벗어나, 풍족하지 않아도 좋으니 기본적인 생계가 유지되도록 연금이든 뭐든 마련해 두고, 그 다음부터는 생계가 아닌, 뭔가 자신의 꿈을 쫓아서 살고 싶다는 것이었거든요.  잭 리처처럼 강호의 협객으로 살지는 않더라도 말이지요.


그래서 야후 파이낸스 뉴스 등에서 은퇴 관련 뉴스를 유심히 보는 편입니다.  국내 뉴스나 네이버 지식인 등에서도 관련 정보는 찾아보는 편인데, 불행히도 국내 정보는 결국 모두 보험이나 연금 상품을 사라는 일종의 광고로 연결될 뿐, 제가 찾는 정보는 안나오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노후 준비 관련 뉴스를 유심히 보던 중, 최근 아래 기사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http://finance.yahoo.com/news/retirement-revolution-failed-why-401-101900460.html


기사가 그렇게 길지는 않습니다만, 이 기사 내용을 요약하기 전에, 배경 상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원래 미국 기업들은 마치 군대처럼, 20년 또는 규정된 기간 이상 근무하면 기업체에서 연금을 지급했습니다.  현재 70~80세된 미국 노인들은 대부분 이런 연금 수혜자입니다.  이런 연금을 굳이 분류하자면 DB (Defined Benefit)입니다.  한국인들이 살벌한 노후를 걱정하며 저축을 열심히 할 때, 미국인들은 노후를 위한 저축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가 이렇게 기업 연금을 따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 이런 기업 연금은 미국 기업들이 계속 성장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미국 제조업들의 성장세가 멈추자, 당장 문제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자동차 회사들을 말아먹은 것이 무능한 경영진 탓이냐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는 노동 귀족 탓이냐 라는 논란은 미국에도 있어 왔는데, 그 노동 귀족의 기득권이라는 것이 그런 연금과 의료 보험료(미국의 살인적인 의료비와 의보료는 악명 높지요)를 포함한 것들입니다. 






- 그러다 나온 것이 미드나 영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401(k)입니다.  원래 근로자의 노후 연금 저축에 대한 세제 혜택을 규정하는 법안 번호였던 것이 그대로 연금 제도 이름으로 통용되는 401(k)는 기존 기업 연금을 대체하는 새로운 형태의 연금 제도인데, 기존과 다른 점은 이것이 DB가 아니라 DC (Defined Contribution)이라는 점입니다.  401(k) 하에서는, 직원들이 자기 월급의 몇%를 401(k) 계좌에 넣을지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습니다.  이는 많이 넣을 수록 직원 개인에게 유리합니다.  직원이 넣는 것만큼의 액수를, 기업체도 그 직원 계좌에 급여와는 별도로 추가로 넣어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넣을 수 있는 최대치는 정해져있지요.  이렇게 쌓이는 금액은 지정된 금융사가 운용하여 수익을 올린 뒤, 직원들이 노후 생활을 위해 뽑아 쓸 수 있게 됩니다.  60세 등 지정된 시기 전에도 일정 상황에서는 근로자가 자신의 401(k)에 들어있는 돈을 뽑아 쓸 수는 있는 모양인데, 이럴 경우 여태까지 받았던 세액 공제 등을 뱉어내야 하는 등 불이익이 따릅니다.  


- 401(k)는 직원들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만, 과거 직원의 노후를 책임져야 했던 기업들에게 더 큰 혜택을 준 것도 사실입니다.  기업들은 이제 일정액만 직원들의 401(k) 계좌에 넣어주면 되고, 그 운용 수익이 어떻게 되든, 혹은 그 금액이 남든 모자라든 신경쓸 필요가 없어졌으니까요.  


- 우리 기업들의 현행 퇴직금 제도는 굳이 따지자면 DB (Defined Benefit)로 분류됩니다.  다만 죽을 때까지 나오는 연금이 아니라, 그냥 일정액이 일시불로 지급되는 점이 달랐지요.  그런데 이제 국내 기업들도 퇴직 연금제로 많이들 바꾸고 있습니다.  이는 DC (Defined Contribution)입니다.  근로자가 퇴직할 때의 보수가 얼마였느냐에 따라 퇴직금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직원들이 매달 급여액 중 얼마씩 쌓아놓은 상품 운용의 결과에 따라 일시 퇴직금 또는 퇴직 연금액이 결정되는 것이니까요.  직원들에게는 DB가 더 유리하냐 DC가 더 유리하냐는 꼭 정답이 없습니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그냥 매월 일정 금액을 충당해주면 되니까 미래의 인건비에 대한 부담이 더 적다는 점에서 좋다고 합니다.


이제 위에서 언급한 저 기사의 내용은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401(k)가 기존 연금제를 대체한 뒤, 이제 그 401(k)로 노후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막 은퇴를 시작했는데, 현재까지의 결과를 보면 이들의 노후 준비는 낙제 점수입니다.   이유는 크게 2가지입니다.


- 첫째, 너무 적은 돈이 쌓여 있습니다.  2013년 결과치를 보면 평균적으로 가구당 고작 $95,776만 쌓여 있습니다.   잭 리처처럼 연금을 받는다면 죽을 때까지 대략 월 2천 달러를 받는데, 대략 60세부터 85세에 죽을 때까지의 금액으로 계산을 해보면 60만불입니다.  그런데 준비된 돈이 가구당 10만불도 안된다는 것은 정말 재앙적인 상태이지요.






- 둘째, 노후 준비 상태의 양극화가 너무 심합니다.  위에서 언급된 가구당 9만5천불은 평균치일 뿐, 중간값(median)이 아닙니다.  즉, 일부 가구는 백만불을 쌓아놓았고, 일부 가구는 한푼도 안 쌓아놓았기 때문에 평균값이 9만5천으로 나온 것입니다.  실제 중간값은 가구당 고작 5천달러입니다 !  이미 은퇴가 가까운 56~61세 사이의 연령대 가구에서도 중간값은 고작 1만7천불입니다.  그에 반해서 상위 10%는 최소 27만4천불을 401(k)에 쌓아놓았습니다.  그리고 하위 50%는 거의 쌓아놓은 것이 없지요.  


과거 기업 연금제는 직원들에게 선택권 없이 적용되는 것이다보니, 모든 직원들이 상당히 공평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심지어 흑인들과 백인들과의 차이도 거의 없었습니다.  모두에게 최소한 입에 풀칠할 정도의 노후 생활이 보장되었지요.  그러나 기업의 부담이 줄어들고, 직원들에게 401(k)를 쌓을지 말지 얼마나 쌓을지에 대한 자유 선택권이 주어지면서 넉넉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의 노후 준비 양극화가 더 크게 벌어진 것입니다.   인간은 모두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지만, 자유가 주어질 때마다 평등이 산산조각 나는 것은 역사적으로 항상 반복되는 일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노후 준비를 그다지 잘 해놓지 못했습니다.  당장 오늘의 삶이 팍팍하기 때문이지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다들 그러고 사는데 나도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희망입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일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의 경우 여태까지는 경제 성장과 부동산 가격 상승 등으로 어떻게든 노후에 굶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노후 세대를 그 자식들이 봉양하는 전통이 있었지요.  그러나 세상이 변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자식 세대들에게 손을 벌릴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자식 세대는 일자리 감소와 저성장 때문에 오히려 현재의 우리보다 어렵게 살 가능성이 많아졌으니까요.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 세대는 기업 연금 등으로 어떻게든 먹고 살았으나, 이젠 스스로 쌓아놓은 401(k)로 먹고 살아야 하는 베이비부머 세대가 막 은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든 먹고 살았던" 과거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데, 현재까지의 통계치를 보면 무척 암울한 그림이 펼쳐질 예정입니다.






암울한 미래는 그렇다치고,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까요 ?  우리 대부분은 군에서 20년간 근무해서 두둑한 군인 연금이 나오지 않으니, 스스로 그 정도의 연금이 나올 정도의 노후 자산을 준비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게 얼마 정도인지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은 그 정답을 찾아 아무리 뇌이버를 검색해봐도 결국 답은 없고 그냥 연금 보험이나 신탁 상품에 가입하라는 광고성 글 뿐이더군요.  목표 없이 그저 모으기만 하는 것처럼 진이 빠지는 일이 없습니다.  그럴 경우, 아무리 모아도 부족할 것 같으니까요.


제가 현재까지 찾아낸 여러가지 썰과 이론들 중 가장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것은 4% SWR (Safe Withdrawal Rule)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Bill Bengen이라는 보험 회사 직원이 저와 동일한 궁금증을 가지고 자료를 찾다가, 정답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자료를 조사하고 연구하여 창조해낸 것입니다.  한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은퇴 시점에서 모아둔 자산을 주식 반, 채권 반으로 분산 투자한 뒤, 매년 4%를 뽑아쓰면 30년 안에 돈이 다 떨어질 가능성은 극히 낮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4% 룰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으므로, 3% 혹은 아예 2% 룰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4% 룰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실제로는 5% 룰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4% 룰에서도, 절대 돈 떨어질 일이 없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이 4% 룰이라는 것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등을 포함한 약 80년 정도의 긴 기간 동안 미국 금융시장의 수익률을 계산해볼 떄, 어떤 해에는 큰 손실을 보기도 하고 어떤 해에는 큰 이익을 볼 수도 있겠지만, 매년 인플레를 감안하고도 그 해 보유 자산의 4%씩을 뽑아 쓰면 최소 30년 동안은 원금이 바닥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집이 포함된 자산이냐고 물으실 것 같은데, 집은 빼셔야 합니다.  혹시 집이 없으신 분은 매년 4%의 인출금으로 월세 등을 해결하셔야 합니다.  이렇게 계산하면, 집을 소유해서 별도로 월세를 내실 필요가 없으신 분은 앞으로 30년간 근로 소득 없이, 매달 500만원씩 쓰면서 사시려면 주택 외에도 최소 15억원의 금융 자산을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매달 300만원씩이 필요하다면 9억원이 필요하고요.  노년이라서 200만원만 있으면 된다고 해도 6억원이 필요합니다.




(인터넷에 보면 이렇게 은퇴 자금 계산기도 많습니다.  제가 50세에 1백만 달러, 그러니까 약 10억원을 가지고 은퇴한다면 85세에는 어떻게든 죽어야 합니다 ㅋ)





아마 많은 분들에게 그런 돈은 절대 모으지 못할 거액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연금이 중요합니다.  저는 국민연금의 옹호자입니다. 포털의 댓글창을 보면 많은 분들이 국민연금에 대해 강한 불신과 반감을 가지고 계시더군요.  그 부분은 이해가 갑니다.  사실 그 분들이 못 믿는 것은 국민연금의 실질적인 운영 주체, 즉 정부겠지요.  그리고 당장 먹고 살기도 빡빡한데 세금처럼 강제적으로 돈을 뜯어가는 것에 대해 반감이 클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향후 국민연금이 고갈되더라도 정부가 그를 지급할 법적 의무는 없다' 라고 정부 관계자가 선언했기 때문에 더욱 불신이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보다 국민연금을 더 싫어하는 주체는 바로 기업체들입니다.  여러분 월급에서 뜯어가는 금액만큼, 고용 기업도 그만큼의 돈을 여러분 국민연금 계좌에 납부해야 하거든요.  기업체들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이고, 그래서 전경련 등의 단체에서는 국민연금을 여러분보다 더 미워합니다.  그리고 이미 다들 아시다시피 국민연금은 낸 만큼 돌려받는 연금 상품이 아닙니다.  결국 부족분은 세금으로 메꿔서라도 지급하는, 일종의 사회 보장 제도입니다.  그때문에 부자들과 기업체들은 여러분보다 더 많은 돈을 국민연금 때문에 부담하고 있고, 국민연금이 고갈되면 결국 더 많은 부담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정부가 국민연금 지급에 대해 의무가 없다고 발뺌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믿으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요 ?  맞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투표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국민연금 외에는 따로 준비된 노후 준비가 없을 수록, 국민연금 지급을 정부가 보증하라는 압력을 투표를 통해 가하셔야 합니다.  여러분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쓸데 없는 걱정인 삼성이나 애플, 연예인 걱정을 하실 필요가 없고, 단지 여러분의 이익을 대변해줄 쪽에 투표를 하십시요.)




그래도 당장 먹고 살 것도 없는데 연금 보험료를 뜯어가는 국민연금이 싫다고요 ?  저는 그런 말씀하시는 분들께 이렇게 되묻습니다.  아직 젊고 일할 수 있는 지금도 힘든데, 나중에 늙어서 일할 수 없을 때는 무엇을 먹고 사시려 하냐고요.  그렇게 될 떄, 사람은 결코 "내가 모아둔 것이 없으니 다 내 잘못이고, 그냥 굶어 죽어야겠다" 라는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노년층 인구 절반이 굶을 처지에 놓이면 그건 사회 불안과 폭동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부자들도 안락하게 살 수 없고, 기업들은 시장을 잃게 됩니다.


국민연금은 세금으로 메꾸게 되어 있으므로, 지금의 노년 세대가 결국 미래 세대에게 도둑질을 자행하는 것이다 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일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래서 노년 세대에게 국민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나요 ?  결국 미래 세대에게 부모들에 대한 부양 부담을 안겨주게 됩니다.  누구도 자기 부모님이 굶는데 자신만 치킨을 시켜 먹지는 않을테니까요.  그런 부모님 부양 부담이 부유층에게 더 클까요, 아니면 서민 계급에게 더 클까요 ?  저는 자꾸만 벌어지는 경제적 양극화를 줄이기 위한 최후의 보루가 국민연금이라고 믿습니다.


(2016년 3월에 다음 블로그에 썼던 글 옮겨온 글입니다.)

Comment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