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ica의 뜻은 ?

주르당의 어설픈 라임으로 조롱 받으며 파리로 돌아온 쿠텔을 맞이한 것은 서슬퍼런 국민공회 공안위원회(le Comite de salut public)였습니다.  그렇다고 공안위원회가 쿠텔을 단두대로 보낸 것은 아니었고, 정반대로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공안위원회는 당시 국내외 반혁명세력과의 투쟁을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었으므로, 과학을 통해 구시대의 적을 무찌른다고 하면 뭐든 해줄 기세였습니다.  샤또 드 뫼동(Chateau de Meudon)에서 몇 차례의 기구 기술에 대한 테스트가 이루어진 뒤, 공안위원회는 아예 세계 최초의 공군 무기창인 항공 개발 센터(le centre de developpement aerostatique)를 창설했습니다.  여기서는 나중에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에도 참여하고 무엇보다 현대적인 연필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학자 콩떼(Nicolas-Jacques Conte)가 연구를 지휘했습니다.  그는 이 기관에서 기구의 형태와 재질, 수소 가스 생산의 효율화 등을 연구 발전시켰습니다.  




(콩테는 나폴레옹을 따라 이집트로 간 학자들 중 하나였습니다.  넬슨에 의해 프랑스 함대가 궤멸되어 프랑스 본토와의 보급로가 완전히 끊어진 뒤에도 프랑스군이 보급품 부족으로 말라죽지 않은 것은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70% 정도는 콩테 덕분이었습니다.  콩테는 빵부터 땔감, 탄약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현지에서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이집트 땅에서 기구를 띄워올리기도 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를 '모든 것에 뛰어난 재주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불행히도 그는 프랑스로 귀환한 이후 얼마 안되어 1805년 50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습니다.)




이 연구기관에서의 성과를 흡족하게 여긴 공안위원회는 1794년 4월 2일,  급기야 세계 최초의 공군인 기구 중대(la Compagnie d'Aerostiers)를 창설하기에 이릅니다.  이 중대는 손재주가 좋은 20명의 사병과 2명의 상병, 병장과 상사 1명씩, 그리고 대위와 그를 보좌할 중위 1명이 배정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위로는 주르당에게 조롱을 당했던 화학자 쿠텔, 그리고 중위로는 쿠텔의 조수였던 로몽이 임관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당시에는 보기 드물었던 첨단 기술 부대였습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도 첨단 기술에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정찰, 신호에 의한 통신, 그리고 선전물 배포였습니다.  한 단어로 요약하면 바로 정보전이었지요.




(세계 최초의 공군 비행단장이 된 쿠텔(Jean-Marie-Joseph Coutelle)입니다.  그는 사실 제대로 된 화학자는 아니었고, 샤를의 법칙으로 유명한 샤를(Jacques Alexandre César Charles)과 친했던 덕분에 기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엔지니어 정도였습니다.  그가 프랑스에 남긴 공로는 하나 더 있는데, 오늘날 파리 콩코드 광장에 이집트 현지에서 가져온 3천년 묵은 오벨리스크가 서있게 된 것에 그가 간접적으로 기여를 했다고 합니다.)




새롭게 창설된 이 기구 중대의 사기는 매우 높았습니다.  장교들은 자신들이 만든 과학 기구를 실제 상황에 적용하여 공화국으로부터 급여를 받아가며 조국을 위해 사용한다는 점에 희열을 느꼈습니다.  사병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 부대에 있으면 적의 총알이나 포탄에 맞을 것 같지는 않다는 점에서 꽤 만족스러웠습니다.  창설 직후, 이 사기충천의 부대에게 주어진 첫 임무는 다소 꺼림직한 것이었습니다.  벨가에 접경 지역의 모베르쥬(Mauberge)로 가서 다름 아닌 주르당의 부대에 합류하라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지난 번과는 다른 점들이 좀 있었으므로 이번에는 주르당에게 대놓고 조롱을 당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쿠텔이 한낱 일반 시민(citoyen)이 아니라 당당한 육군 대위(capitaine)였고, 또 지난 번처럼 현금 5만 리브르를 달랑 들고 온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인상적인 물건을 들고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기구였습니다.  이름은 앙트르프레낭(L'Entreprenant) 호로서, 영화 스타 트렉에 나오는 우주선 엔터프라이즈(Enterprise) 호와 유사한 뜻이었습니다.  "진취적, 적극적"이라는 뜻이었지요.  


기구 중대는 도착과 동시에 가열로를 만들어 수소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앙트르프레낭 호의 첫 임무 비행은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바로 6월 2일, 오스트리아군이 포격을 가해오자 그에 대한 정찰을 하기 위해 앙트르프레낭 호가 출격한 것입니다.  쿠텔은 아군 지역인 모베르쥬에서 떠오른 기구를 타고 오스트리아 및 네덜란드군의 동향을 훤히 내려다 보며 지상과 연결된 밧줄을 통해 상세한 보고서를 계속 내려보냈습니다.  기구에서 망원경을 통해 보면 거의 25km 밖의 상황까지 꽤 상세히 볼 수 있었으니 군용 정찰 활동에 있어서는 정말 꿈의 병기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이 날 양측 간에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았으므로, 이 날의 비행은 최초의 실전 투입으로 기록되지는 못했습니다.


한편, 오스트리아-네덜란드군 측에서는 기구의 등장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들은 '전투에 기구를 사용하는 것은 신사답지 못한 일이고 전쟁 규칙에 위반되는 일'이라며 프랑스군 측에게 항의하기도 했고, 앙트르프레낭 호를 향해 총격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물론 사정거리 훨씬 밖에 있던 앙트르프레낭 호에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앙트르프레낭 호의 비행은 뜻하지 않은 효과도 낳았습니다.  오스트리아-네덜란드군 장교들의 상당수는 교양 있는 신사 계급 출신이었고 따라서 기구라는 물건의 존재와 그 원리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그러나 병사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시골 농촌 출신의 문맹자였던 오스트리아-네덜란드군 병사들은 프랑스군 상공에 난데없이 나타난 둥근 물체를 보고 '프랑스 놈들이 혁명을 하면서 성당과 신부들을 박해한다더니, 정말 악마가 프랑스 혁명군과 함께 한다'라며 겁을 먹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심리전 측면에서의 효과는 곧 뒤이어 벌어질 플뢰뤼스 전투에서도 크게 발휘되었습니다.


모베르쥬에서의 작전을 끝낸 기구 중대에게 내려진 다음 명령은 샤를르루아(Charleroi)로 이동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기구는 어떻게 이동을 했을까요 ?  공군답게 모든 장비와 인력을 싣고 가볍게 두둥실 날아서 이동했을까요 ?  물론 아니었습니다.  요즘이라면 수소 가스를 빼서 기구를 납작하게 접은 뒤 트럭으로 실어나르겠지요.  그러나 아무리 라브와지에-므니에 공법에 의해 싸고 쉽게 수소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수소는 만들기 어려운 가스라서 그렇게 쉽게 버렸다가 재빨리 다시 만들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당장 작전에 투입되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고안된 방법은 과학기술 부대라는 이름이 쑥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즉, 무거운 추를 매달아 고도를 낮춘 기구에 밧줄을 연결하여 둥둥 띄운 채로, 24명의 병사들이 거의 50km에 걸친 거친 벌판을 가로질러 질질 끌고 이동했습니다.




(창공을 지배하는 자랑스러운 혁명의 날개인 공화국 공군의 웅장한 이동 모습입니다.  사실 저 상황에서 굳이 지휘 장교가 칼을 뽑아들고 지휘할 필요는 없는데 말입니다.)




비록 이렇게 공군답지 못한 모양새로 이동하긴 했지만, 쿠텔의 기구 중대는 플뢰뤼스(Fleurus)에서 군사 역사에 있어 빛나는 한 장면을 만듭니다.  1794년 6월 26일, 플뢰뤼스 전투가 벌어지던 10시간 내내 앙트르프레낭 호는 전장 상공을 지키며 오스트리아군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지상의 프랑스군 사령부, 그러니까 주르당에게 전달했습니다.  무선은 물론 유선 전화기도 없던 시절 무엇으로 통신을 했을까요 ?  간단했습니다.  쿠텔과 함께 기구에 탑승한 사단장 모를로(Antoine Morlot) 장군이 직접 망원경을 들고 관찰한 적의 동향을 종이에 적고, 그 쪽지와 작은 추를 담은 주머니를 고정시킨 밧줄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보낸 것입니다.   물론 정말 급한 상황에서는 깃발 신호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일설에는 쪽지 주머니를 그냥 지상으로 집어던졌다는 말도 있고 심지어 밧줄을 통해 지상에서 질문을 적은 쪽지를 올려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확실한 것은 2가지였습니다.  이 플뢰뤼스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승리하여 오스트리아군이 벨기에를 포기하고 물러났다는 것과, 쿠텔과 모를로 장군이 적어도 9시간 이상 공중에 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이 둘이서 기구에 오를 때 어떤 메뉴의 도시락을 몇 끼 분이나 싸가지고 올라갔을까 하는 것과 화장실 처리는 어떻게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만, 아쉽게도 거기에 대한 기록은 찾지 못했습니다.  




(플뢰뤼스 전투 모습을 그린 다른 그림입니다.  물론 기구 아래에서 용맹한 말을 타고 칼을 뽑아든 채 지휘를 하고 있는 분이 주르당 장군이십니다.  아마 주르당 장군은 자신이 본의 아니게 세계 공군사에 남긴 족적에 대해서는 잘 모르셨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2가지 외에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이 불확실했습니다.  과연 앙트르프레낭 호의 정찰 활동이 플뢰뤼스에서의 승리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당연히 그 판단은 쿠텔이나 여러분이 하는 것이 아니고 승리의 주역이었던 주르당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르당 이 양반은 처음부터 이 괴짜 과학자들이 하는 풍선 놀음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고, 이 빛나는 승리의 공로를 당연히 미친 과학자들이 아니라 100% 자신의 공로로 가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주르당의 승전 보고서에는 이 기구 부대의 공로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심드렁하게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적혔습니다.  하늘에 직접 떠있던 모를로 장군도 두 번 다시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서였는지, 여타부타 아무 입장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다만 공안위원회 출신으로서 전투 내내 현장에 있던 정치인이자 저명한 화학자인 귀통(Louis-Bernard Guyton de Morveau)가 플뢰뤼스 승전에 있어서 기구 정찰의 효과에 대해 극찬을 해주었습니다.  역시 과학자들의 입장과 이익을 대변해주는 것은 같은 동업자 뿐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공계 출신이 실험실이나 공장을 떠나 정관계를 기웃거리는 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귀통 드 모르보입니다.  이 분이 화학사에 남기신 공로 중 최고의 것은 화합물 작명법, 즉 chemical nomenclature입니다.  가령 탄소 하나에 산소 원자 2개가 붙은 가스를 이산화탄소 carbon dioxide라고 부르게 된 것은 다 이 분 덕택입니다.)




실은 귀통은 기구 부대에 대해 적극적인 옹호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플뢰뤼스 전투가 벌어지기 3일 전인 6월 23일, 이미 기구 부대 제2 중대 창설을 위한 법안이 국민공회에서 통과되었던 것입니다.  2기의 신형 기구 에르퀼(Hercule, 헤라클레스)과 엥트레피드(L'Intrépide, 대담하다는 뜻)를 지급받은 제2 중대는 콩테(Conté)에 의해 직접 훈련을 받았습니다.  수개월에 걸쳐 훈련을 마친 제2 중대는 1795년 3월 라인 방면군(Armée du Rhin)에 배속되었습니다.  그 지휘관은 역시 전세계에게 유일하게 실전 비행 경험을 가진 기구 중대장 쿠텔이 맡았고, 중위이던 로몽이 대위로 승진하면서 제1 중대의 지휘관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현장에서 활약하는 군인이라기보다는 학자 스타일이었던 콩테는 기구 학교장이 되어 이 2개 중대에 배속될 병사들의 훈련을 맡았습니다.  


이 제2 기구 중대는 라인 방면군의 진격을 따라 이동하며 독일 전선인 마인츠(Mainz) 전투 및 만하임(Mannheim) 전투 등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프랑스 혁명군의 날개가 되어 전장의 하늘을 지배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영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을 운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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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분들도 올리비아 핫세가 나온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겁니다.  이 영화는 올리비아 핫세의 미모 외에도 주제곡인 'What is a youth'가 굉장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지금 들어봐도 그 멜로디나 가사 모두 전혀 촌티나지 않습니다.  고전이 뭐 별 거 있겠습니까 ?  시대를 가로질러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것이 바로 고전이지요.  





이 'What is a youth'는 오리지널 버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불렀고, 다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몇년 전에 라디오에서인가 어디서인가 여성 버전의 'What is a youth'를 들었는데, 정말 특이하면서도 매혹적인 목소리와 발성이었습니다.  전에 페북에서인가 어떤 분이 '요즘 젊은 가수들은 한국말을 영어처럼 발음하는 경향이 있다'라며 탄식을 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여가수가 딱 그런 식이었어요.   분명히 영어권 사람인 것 같은데, 부분부분에서는 마치 족보를 알 수 없는 외국인이 부르는 것처럼 발음이 약간 이상한데, 그게 또 너무 매력적이더라구요.  문제는 그 노래를 대체 누가 부른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네이버 뮤직으로 검색해봐도 알 수가 없고, 아예 맘먹고 유튜브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반쯤 포기하고 있다가, 최근에 어느 영화 음악 소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그 여가수 목소리로 배트 미들러의 'The Rose'가 흘러 나왔습니다.  놀랍게도, 송승헌이 주연을 맡은 2014년작 한국영화 '인간중독'의 삽입곡이더군요.  덕분에 그 여가수가 누군지 알아냈고, 'What is a youth'의 유튜브 URL도 찾았습니다.


여가수는 역시나 외국인, 그것도 일본인이었습니다.  테시마 아오이(手嶌葵, Teshima Aoi)라는 이름의 가수겸 성우더군요.  





아래 유튜브 링크를 통해 테시마 아오이의 What is a youth를 꼭 한번 들어보세요.  저는 오리지널 버전보다 이 버전의 곡 해석과 감정 처리가 훨씬 더 마음에 듭니다.  특히 'the world wags on'이라는 부분에서 wag이라는 단어가 아름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는지 'the world walks on'으로 바꾼 것이 눈에 띄는데, 그것도 귀엽네요.


무엇보다 이 노래는 원작 가사의 아름다움이 독보적이라서, 그 가사의 처절함과 덧없음을 생각하며 이 노래를 들으면 더욱 좋습니다.  저는 특히 Death will come soon to hush us along Sweeter than honey and bitter as gall 라는 부분의 가사와 멜로디가 매우 절절하게 느껴집니다.  보통 라임은 소절 끝부분에서 맞추게 되어 있는데, 이 부분에서는 sweeter와 bitter로 맞춘 것이 매우 특이합니다.


https://youtu.be/ouCbyHEfIfE



What is a youth?

Impetuous fire

What is a maid?

Ice and desire

The world walks on


청춘이란 무엇인가 ?  

충동의 불꽃

아가씨란 무엇인가 ?

얼음에 싸인 욕망

세상은 상관없이 돌아간다네


A rose will bloom

It then will fade

So does a youth

So does the fairest maid


장미는 찬란히 피어나

곧 덧없이 시들지

청춘도 그러하고

세상에서 제일 어여쁜 아가씨도 마찬가지라네


Comes a time when one sweet smile

Has its season for awhile

Then Love's in love with me


때로는 사랑스러운 미소 한번이

온 계절을 사로잡는 때도 있지

그러면 그이도 나와 사랑에 빠질텐데


Some may think only to marry

Others will tease and tarry

Mine is the very best parry

Cupid he rules us all


어떤이는 그저 결혼할 생각 뿐이고

다른이는 짖궂게 애간장만 태우지

내 상대는 밀당의 고수

우리 모두는 사랑의 노예일 뿐


Caper the caper; sing me the song

Death will come soon to hush us along

Sweeter than honey and bitter as gall

Love is a task and it never will pall

Sweeter than honey and bitter as gall

Cupid he rules us all


장난치며 뛰어요, 내게 노래를 불러줘요

곧 죽음이 다가와 우리를 데려갈테니

꿀보다 달콤하고 담즙보다 쓴 

사랑은 절대 싫증나지 않는 것

꿀보다 달콤하고 담즙보다 쓴

우리 모두는 사랑의 노예일 뿐


A rose will bloom, it then will fade

So does a youth

So does the fairest maid


장미는 찬란히 피어나

곧 덧없이 시들지

청춘도 그러하고

세상에서 제일 어여쁜 아가씨도 마찬가지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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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라베라 전투에서 빅토르의 복장을 터뜨린 주르당 원수에 대해 설명하면서, 주르당 원수의 몇 안되는 빛나는 승리 중 하나인 1794년 플뢰뤼스(Fleurus) 전투에 대해서도 언급했지요.  플뢰뤼스 전투 그 자체는 별 의미도 재미도 없는 전투입니다만, 이 전투는 군사학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세계 최초로 공군이 활약한 전투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왜 다른 나라들보다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의 공군이 탄생했을까요 ?  그 효과는 어땠을까요 ?  무엇보다, 왜 불세출의 군사 천재 나폴레옹은 이런 과학 병기를 활용하지 않았을까요 ?  


계몽사상이 싹튼 나라 프랑스에서는 과학자들도 많았고 일찍부터 이런저런 과학 실험들이 많이 수행되었습니다.  열기구 및 수소 기구도 그런 활동 중 하나였습니다.  혁명 전인 1783년 이미 몽골피에 형제들(Joseph-Michel, Jacques-Étienne Montgolfier)이 뜨거운 공기를 이용한 열 기구를 만들어 테스트한 일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몽골피에 형제의 열기구 테스트 시연 모습입니다.  그들은 제대로 된 과학자는 아니었고, 원래 제지업자였습니다.  그들은 뜨거운 공기가 주변 공기보다 가벼워서 열기구가 위로 올라간다는 원리를 처음에는 몰랐고, 그냥 불을 피울 때 나오는 연기의 힘이 기구를 들어올린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휴대용 가스 버너가 없어서 철제 난로와 장작을 싣고 날아야 했던 시절, 열기구는 체공 시간과 최대 고도에 있어 제약이 심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가벼운 공기에 의해 기구가 뜬다는 원리를 그대로 활용하여, 수소 가스를 기구에 채우는 방식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1785년 장-피에르 블랑샤르(Jean-Pierre Blanchard)가 1785년 1월 7일에 영국의 도버 캐슬(Dover Castle)에서 프랑스의 귄느(Guines)까지 2시간 30분 만에 기구를 타고 영불 해협을 건너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는데, 이때 사용된 기구도 열기구가 아니라 수소 기구였습니다.  물론 뜨거운 공기와는 달리 수소 가스는 일반인들이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수소를 만드는 방법은 100년도 훨씬 전인 7세기 중반에 발명된, 철에 황산을 들이붓는 것이었습니다.  황산은 비싸고 구하기 어려운 재료였으므로 수소 제조 비용은 굉장히 비쌌습니다.




(블랑샤르입니다.  그는 최초로 도버 해협 통과에 성공한 이후, 미국에서도 조지 워싱턴과 존 아담스, 토마스 제퍼슨 등 기라성 같은 인물들 앞에서 기구 비행 시범을 보였고, 기구 비행사를 위한 낙하산 연구 및 제조에도 힘을 기울였습니다.  실제로 그는 1793년 사고로 기구가 터질 때 낙하산을 써서 탈출에 성공하여, 인류 최초로 비행 사고에서 낙하산 탈출에 성공한 인물이 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그는 나폴레옹의 공군 총책임자로 임명된 소피 아르망(Marie Madeleine-Sophie Armant)과 결혼했습니다.  불행히도 그는 1808년 헤이그에서 기구 비행 중 심장마비를 일으키며 기구에서 추락했고, 그 부상으로 인해 1년 간의 투병 끝에 사망했습니다.  결국 그 부인인 소피도 기구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세계 최초의 낙하산 시범을 보이는 레노르망(Louis-Sébastien Lenormand)입니다.  이 실험은 1783년 12월, 그러니까 몽골피에 형제의 첫 비행 직후에 이루어졌습니다만, 사실 레노르망은 이 낙하산이라는 물건을 기구 비행사를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화재가 발생한 고층 건물에서 뛰어내리기 위한 용도로 이 우산처럼 생긴 낙하산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혁명 지도부는 중산층 출신의 지식인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특히 과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프랑스 대혁명은 부르봉 왕가로 대표되는 특권 귀족층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지만, 프랑스를 천년간 지배해온 카톨릭 사제 계급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거든요.  덕분에 많은 카톨릭 성당들이 마굿간으로 변경되는 등 수난을 당하기도 했지요.  혁명 지도부는 그런 종교적 순종과 대립하는 과학적 이성을 숭배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혁명 지도부에겐 당장 총칼로 싸워야 하는 적들이 매우 많았습니다.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스페인, 사르데냐 등등 프랑스 이외의 모든 유럽 국가들이 사실상 혁명 지도부의 적이었습니다.  


프랑스가 아무리 큰 나라라고 해도 유럽 전체와 맞서 싸우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 구체제)을 깨뜨리고 탄생한 혁명군에게는 과학의 힘으로 만들어진 신무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등장한 것이 바로 수소 기구였습니다.  


군사 작전에 있어 정보의 중요성은 고대 로마 시대부터 현대전까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특히 유럽 대륙처럼 대부분의 전투가 비교적 평탄한 곳에서 치루어진 지역에서는 별로 고지같지도 않은 언덕 하나를 차지하는 측이 절대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아우스테를리츠에서 나폴레옹이 전략적으로 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에게 양보한 프라첸(Pratzen) 고지의 높이는 고작 12m였습니다.  고지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적진 관측이었습니다.  가령 1809년 바그람 전투에 출정하기 위해 쇤브룬 궁전을 나서던 나폴레옹의 짐 중에는 쇤브룬 궁전 정원사가 사용하던 사다리도 있었습니다.  2m도 안 되는 높이였지만, 그런 정원사용 사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적진 현황이 전체 작전 지휘에 엄청난 차이를 낼 수 있었습니다.  웰링턴이 즐겨 쓰던 언덕 후사면을 이용한 수비 전술의 핵심도 병력을 능선 너머에 은폐시켜 적의 관측으로부터 아군의 현황을 숨기는 것에 있었습니다.  




(아우스테를리츠 평원을 제압하는 전략적 고지, 프라첸 고지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보면 전혀 고지처럼 보이지 않는, 12m짜리 높이의 언덕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유유히 떠있는 기구에 망원경을 든 관측병이 올라타 있다면 모든 것이 바뀔 수 있었습니다.  과학 혁신을 중시하던 혁명 정부의 성향에 고무된 프랑스 전국의 과학자와 발명가들은 기구를 이용하는 작전에 대한 온갖 제안을 쏟아냈습니다.  그러나 대개 그렇듯이 그런 제안들 중 실질적인 것은 많지 않았고 실패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현실적인 기구 활용을 위해서는 수소를 저비용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군사 기술의 극적인 발전에는 역시 미친 과학자가 필요합니다.  라브와지에는 존경받아 마땅한 화학자로서 미친 과학자와는 거리가 좀 먼 분이긴 합니다만, '내가 단두대에서 목이 잘리고 난 뒤 눈을 깜빡거릴테니 얼마나 오래 깜빡거리는지 관찰해달라'고 부탁한 것을 보면 적어도 과학에 약간 정신이 나간분은 맞는 것 같긴 합니다.  일설에 따르면 라브와지에는 목이 잘리고 난 뒤에도 30초 정도 열심히 눈을 깜빡거리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프랑스 공군 창설에 핵심이 되는 이 수소 대량 생산 기술은 이미 1784년에 발명된 바 있었습니다.  그것도 바로 프랑스 혁명 정부에 적극 참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소(hydrogene - 물의 생성자라는 뜻)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프랑스 과학자에 의해서요.  바로 저명한 화학자 라브와지에(Antoine-Laurent de Lavoisier)였지요.  그는 수소 대량 생산보다는 당시 과학계의 주류를 이루던 플로지스톤(phlogiston)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서 이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당시 과학자들은 연소란 석탄이나 기름, 나무 등 인화 물질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플로지스톤이라는 물질이 일으키는 현상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라브와지에는 이 이론을 깨기 위해 '플로지스톤에 대한 고찰'(Réflexions sur le phlogistique)이라는 책까지 썼으나, 여전히 많은 과학자들은 플로지스톤이라는 물질을 믿고 있었습니다.  라브와지에는 수학자 므니에(Jean Baptiste Meusnier)의 도움을 받아 이런 테스트를 수행했습니다.  즉, 섭씨 600도로 달군 뜨거운 총열 속으로 수증기를 불어넣었더니, 다음과 같은 반응식에 의해 총구의 다른 끝으로 가연성 기체인 수소가 생성된 것입니다.  



(라브와지에가 수행한 테스트에서 수소가 발생하는 이유는 총열의 주성분인 철과 수증기 속의 산소가 뜨거운 열 속에서 결합하며 수소가 남기 때문입니다.  라브와지에는 자랑스럽게 이 테스트 결과를 발표했으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여전히 플로지스톤 이론을 믿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793년 10월, 비싼 황산을 쓰지 않고 이 잠깐 잊혀졌던 라브와지에-므니에 방식으로 수소를 대량 생산하는 테스트가 성공리에 시연되면서 관측용 수소 기구에 대한 구상이 급진전되었습니다.  정작 라브와지에는 이 테스트에는 참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혁명 정부에서 그가 책임을 지고 있던 세금 징수 및 담배 판매에서의 부정 행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고 그 다음해인 1794년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아무튼 이 수소 생산 테스트 직후에 혁명 정부의 공안위원회는 화학자인 쿠텔(Jean-Marie-Joseph Coutelle)과 그의 조수이자 엔지니어인 로몽(Nicolas Lhomond)을 벨기에 방면을 담당하던 북부군(Armée du Nord)에 파견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맨 몸으로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에겐 공안위원회가 지급한 5만 리브르(현재 가치로 약 5억8천 만원)의 현금이 있었습니다.  즉 현지에서 필요한 기자재를 구입한 뒤 기구를 제작하여 북부군의 작전을 지원하라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들을 맞이한 북부군 사령관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이 사령관이 바로 주르당(Jean-Baptiste Jourdan) 장군이었습니다.  주르당은 기구를 이용하여 적진을 공중에서 관측해주겠다는 이 두 명의 민간인을 조롱과 비웃음으로 대했습니다.  과학자들을 대하는 군인들의 태도가 어떨 것인지 예상했던 국방부 장관이자 빼어난 수학자였던 카르노(Lazare Carnot)가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함께 보낸 소개장에는 '시민 쿠텔은 결코 협잡꾼이 아닙니다'(Citoyen Coutelle n'est pas un charlatan)라는 다소 옹색하면서도 노골적인 표현이 쓰여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르당은 이들을 그야말로 협잡꾼 취급을 하며, 이런 말과 함께 그들을 잘 타일러 파리로 돌려보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공격이 임박했으니, 풍선이 아니라 보병 대대가 필요합니다."  

(Une attaque autrichienne est imminente, et qu'un bataillon est nécessaire, pas un ballon)  


즉, 불어로 대대를 뜻하는 바따용과 풍선을 뜻하는 발롱이라는 단어의 라임(rhyme)이 비슷한 것을 이용한 조롱이었지요.  엄격히 말해서 ~용과 ~옹은 라임이 맞지 않는다고 할 수 있지요.  과연 프랑스 공군 창설은 이렇게 주르당의 같잖은 라임과 함께 사라질 운명이었을까요 ?






Source : https://en.wikipedia.org/wiki/L%27Intr%C3%A9pide

https://en.wikipedia.org/wiki/Observation_balloon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Fleurus_(1794)

https://en.wikipedia.org/wiki/Hot_air_balloon

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military_ballooning

https://vistaballoon.com/blog/2014/10/the-history-of-ballooning/

http://www.balloonfiesta.com/gas-balloons/gas-vs-hot-air

http://www.balloonfiesta.com/gas-balloons/history-2

http://www.pbs.org/wgbh/nova/space/short-history-of-ballooning.html

https://web.archive.org/web/20100528025354/http://www.centennialofflight.gov/essay/Lighter_than_air/Napoleon%27s_wars/LTA3.htm

https://en.wikipedia.org/wiki/Nicolas-Jacques_Cont%C3%A9

https://en.wikipedia.org/wiki/Jean-Pierre_Blanchard

https://en.wikipedia.org/wiki/Louis-S%C3%A9bastien_Lenormand

https://en.wikisource.org/wiki/1911_Encyclop%C3%A6dia_Britannica/Cont%C3%A9,_Nicolas_Jacques

https://fr.wikipedia.org/wiki/Compagnie_d%27a%C3%A9rostiers

https://en.wikipedia.org/wiki/Ch%C3%A2teau_de_Meudon

http://www.strangehistory.net/2011/02/06/lavoisier-bli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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