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ica의 뜻은 ?

비록 임무가 보충병력의 인솔이라고는 해도, 한겨울에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는 꽤 힘든 일이었습니다.  베르나도트의 뛰어난 지휘력이 아니었다면 신병들로 구성된 이 보충병력에서는 아마 탈영이나 부상 등으로 인해 많은 비전투 손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이탈리아로 들어온 베르나도트가 향한 곳은 롬바르디아의 주도인 밀라노(Milan)였는데, 여기서 나폴레옹과의 악연이 시작됩니다.  당시 밀라노 주둔 프랑스군 지휘관은 뒤퓌(Dominique Martin Dupuy) 장군이었는데, 당시 나폴레옹이 이끄는 이탈리아 방면군 전체는 기타 방면군의 졸전과 대비된 자신들의 연전연승으로 인해 정말 기고만장한 상태였습니다.  그건 뒤퓌 장군도 마찬가지였고, 풋내기들로 이루어진 보충병들을 끌고 겨울 행군을 강행하느라 초라한 행색을 하고 나타난 베르나도트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불손했던 모양입니다.  




(뒤퓌 장군의 흉상입니다.  1798년 10월 카이로 폭동 때 가장 먼저 살해된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베르나도트는 벼락 출세한 얼치기 정치 장군이 아니었습니다.  차가운 엘리트였던 그는 명령 불복종 죄목으로 현장에서 뒤퓌 장군을 체포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뒤퓌로서는 깜짝 놀랄 일이기도 했으나 몹시 분한 일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뒤퓌가 그렇게 건방진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도 믿는 빽이 있기 때문이었는데, 바로 나폴레옹의 최측근인 참모장 베르티에(Louis-Alexandre Berthier)가 그와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로 인해 베르나도트는 바그람 전투 때까지 향후 12년 간 두고두고 베르티에의 견제와 방해를 받게 됩니다.  


베르나도트가 나폴레옹을 직접 만난 것은 만토바(Mantua)였습니다.  나폴레옹은 베르나도트를 면접해보고는 소장이라는 그의 지위에 맞게 사단 하나의 지휘를 맡겼는데, 이미 리볼리(Rivoli) 전투 등 주요 전투는 다 정리가 된 상태였지만 이탈리아 북동부인 프리울리(Friuli) 침공 등에서 베르나도트는 선봉장으로서 훌륭히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베르나도트는 결국 나폴레옹과 대립각을 세우는 입장이었습니다.  그 해 9월, 총재 정부의 친위 쿠데타였던 프릭튀도르(Fructidor) 사건이 벌어지자 그에 협조하는 입장이었던 나폴레옹은 휘하 사단장들에게 이 쿠데타를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하도록 지시했는데, 베르나도트는 전혀 상반된 내용의 성명서를, 그것도 나폴레옹이 아니라 파리의 총재 정부로 곧장 보내버렸던 것입니다.  이로써 나폴레옹과 베르나도트의 관계는 사실상 돌이킬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프릭튀도르 쿠데타는 왕당파가 세력을 잡아가던 의회에 대해 1797년 총재 정부가 일으킨 친위 쿠데타입니다.  이 사건에는 나폴레옹이 총재 정부에게 파견해준 나폴레옹의 원투 펀치 중 한명인 오쥬로 장군도 활약했습니다.) 




나폴레옹은 곧 행동에 나섰습니다.  10월에 캄포 포르미오(Campo Formio) 조약으로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이 종료되자, 나폴레옹은 곧 베르나도트를 프랑스 본국으로 전출시켜버렸습니다.  하지만 베르나도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가 애초에 나폴레옹에게 뻣뻣하게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총재 정부의 당시 제1인자였던 폴 바라스(Paul Barras)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라스도 비록 자신이 키워준 인물이긴 하지만 나폴레옹의 인기와 권력이 자신을 넘어선다고 느끼자 불안을 느꼈고, 나폴레옹을 누를 경쟁자로 베르나도트를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베르나도트가 나폴레옹으로부터 물을 먹고 파리로 돌아오자, 바라스는 오히려 그를 나폴레옹을 대체하여 이탈리아 방면군 사령관으로 임명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상대는 나폴레옹이었습니다.  이미 외무장관 탈레랑(Charles Maurice de Talleyrand-Périgord)을 포섭해놓은 나폴레옹은 선수를 쳐서, 바라스의 의도와는 반대로 베르나도트를 캄포 포르미오 조약으로 인해 새로 신설된  빈(Wien) 주재 오스트리아 대사로 발령 내버렸습니다.  권력 싸움에서 나폴레옹에게 패배를 거듭한 베르나도트는 분한 마음을 안고 빈으로 향했는데, 그나마 거기서도 오래 있지는 못했습니다.  빈 대사관에 자랑스럽게 혁명의 상징이자 국기인 삼색기를 게양했는데, 최근의 패배로 인한 상처가 아물지 않은 오스트리아인들의 심기를 건드려 소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베르나도트는 결국 파리로 되돌아와 실업자 대열에 동참해야 했습니다.  




(부패하고 무능한 총재 정부의 상징인 폴 바라스입니다.  그런 그도 젊은 시절 귀족 출신의 군 장교 후보생으로 프랑스령 인도로 가는 길에 난파를 당해 죽을 뻔 하는 등 꽤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총재 정부 시절 부정한 방법으로 많은 돈을 긁어모은 그는 나폴레옹에 의해 가택 연금 상태에 놓이거나 로마 등지로 정치적 추방을 당한 상태에서 아주 호화롭게 살았고, 결국 1829년 파리의 사이요(Chailllot, 에펠탑 앞에 있는 그 궁전 맞습니다)에서 잘 먹고 잘 살다 죽었습니다.)




하지만 베르나도트에게는 나폴레옹과 만난 1797년이 삼재가 꼈던 마지막 해였나 봅니다.  다음해인 1798년 베르나도트에게는 그의 인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귀인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데지레 클라리(Eugénie Bernardine Désirée Clary)였습니다.  데지레 클라리는 원래 나폴레옹과 약혼을 했던 여자였는데, 이 둘이 결혼을 한 것은 어느 한 측의 정략적인 의도라기 보다는 그냥 하다보니 그렇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데지레가 처음 만났던 것은 나폴레옹이 아니라 그의 형 조제프 보나파르트였습니다.  원래 그녀의 집안은 부유한 비단 상인이었는데, 서슬퍼런 대혁명 초기에 그녀의 남동생이 반혁명분자로 몰려 체포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동생을 구하고자 이리저리 줄을 댔는데, 그러다 만난 것이 조제프였습니다.  그러나 조제프는 그녀보다는 그녀의 언니였던 줄리 클라리에게 끌렸고, 결국 조제프와 줄리가 결혼을 합니다.  대신 이러면서 나폴레옹과 데지레가 만나게 되었고, 이 둘도 1795년 약혼을 했지요.   그러나 하필 약혼을 하자마자 나폴레옹은 운명의 여인을 또 만납니다.  바로 조세핀이었지요.  정열의 크레올 여인에게 얌전한 데지레는 상대가 되지 못했고 나폴레옹은 불과 5개월만에 데지레와 파혼을 선언합니다.  생각해보면 데지레는 주로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 밀리는 스타일이었나 봅니다.




(비교적 젊은 시절인 1807년의 데지레 클라리입니다.  대단한 미인으로 보이지는 않네요.)




나폴레옹은 변치않는 사랑을 간직하는 순정파 남자는 아닐지 몰라도 의리와 체면을 중요시하는 지중해 남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파혼한 데지레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데지레에게 좋은 남편감을 소개해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었는데, 그 결과 중 하나가 뒤포(Mathurin-Léonard Duphot) 장군과의 약혼이었습니다.  뒤포는 사실 좋은 남편감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 애까지 둔 사람이었거든요.  그러나 부잣집 딸 데지레에게는 두둑한 지참금이 있었고 특히 나폴레옹과 동서가 된다는 점은 매우 탐나는 결혼 조건이었기 때문에 뒤포는 그 약혼에 응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뒤포는 1797년 12월, 결혼식 전날 밤에 로마에서 일어난 반프랑스 폭동에 휘말려 살해되고 말았습니다.  정말 남자 복이 없는 여자라고 할 수 있었지요.  


일이 이렇게 되자 나폴레옹은 더더욱 데지레에게 미안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데지레는 언니 줄리와 매우 친하게 지냈으므로 보나파르트 집안에서는 거의 식구나 다름없는 사이였습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조세핀을 매우 싫어했던 보나파르트 집안 사람들은 조세핀에 대한 반감 때문에 얌전하고 순진무구한 데지레에게 더욱 친절하게 대했다고 합니다.  이런 식구들 때문에라도 나폴레옹은 데지레에게 빨리 좋은 혼처를 구해줘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러다 나선 것이 나폴레옹의 심복인 폭풍우 쥐노(Jean-Andoche Junot)였습니다.  쥐노도 보나파르트 집안에 자주 들락거리다 데지레에게 반했는지, 아니면 나폴레옹의 인척이 되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서였는지 데지레에게 청혼을 하기는 했는데, 그만 퇴짜를 맞았습니다.  사실 쥐노는 나폴레옹의 초기 심복이었으나 능력치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라서 나폴레옹도 중용하는 편이 아니었는데다, 그나마 남자답게 하트 모양으로 구성한 촛불 진열 속에서 장미꽃을 들고 청혼한 것이 아니라 마르몽(Auguste de Marmont)을 통해서 '저 말이죠, 쥐노가 그러는데 댁과 결혼하고 싶답니다'라고 청혼을 했기 때문이었답니다.   아무래도 쥐노에겐 여러 모로 문제가 있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데지레를 만나 결혼에 성공한 것은 바로 베르나도트였습니다.  생각해보면 베르나도트야말로 데지레에게 있어 최고의 배우자였습니다.  베르나도트도 데지레처럼 부르조아 집안 출신이었고, 지위 뿐만 아니라 교양도 풍부했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젊은 시절 별명이 '각선미 하사'(Sergeant Belle-Jambe)일 정도로 외모도 준수한 편이었거든요.  게다가 베르나도트와 나폴레옹 두 사람은 서로 화해를 해야 하는 관계였습니다.  화해를 하는데 있어 가장 좋은 것은 결혼을 통해 인척이 되는 것이었지요.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을 떠난 직후인 1798년 8월 이 두사람은 모든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바로 다음해 외아들 오스카(Joseph François Oscar Bernadotte)를 낳게 됩니다.  베르나도트의 외아들의 이름이 정해진 과정만 봐도 베르나도트 가족과 보나파르트 가족의 복잡한 관계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앞서 말했듯이 언니 줄리와의 사이가 돈독했던 데지레는 애초에 이 아이의 이름을 형부의 이름을 따서 조제프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나 데지레의 부탁으로 이 아이의 대부가 된 나폴레옹은 이 아이의 이름으로 자신이 읽던 아일랜드의 음유시인 오시앙(Ossian)의 영웅 서사시 주인공들 중 하나인 프랑수와 오스카(François Oscar)로 정하자고 했고, 그 이름도 그대로 붙여졌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는 그렇게 긴 이름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 아이가 나중에 스웨덴 국왕 오스카 1세(Oscar I)가 되리라고는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상상 못했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중무장(?)한 오스카 베르나도트입니다.   베르나도트가 스웨덴 왕세자로 책봉되기 몇 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하니까 대략 7~8세 정도에 그려진 그림 아닐까 합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베르사이유의 장미가 자주 등장하네요.  오스칼이라는 이름은 Oscar를 일본식으로 표기하다보니 잘못 발음되어 전해지는 이름이고, 이 남장 여걸의 이름은 Oscar François de Jarjayes, 즉 오스카 프랑수와 드 자르제입니다.  참고로 오스카라는 이름의 어원은 아일랜드 계통으로서, '사슴을 사랑하는'이라는 뜻이라고도 하고, 영어 고어로서 '신의 창'이라는 뜻이라고도 합니다.  희한하게도 이 이름은 스웨덴에서 남자 이름으로 3번째로 많이 쓰이는 이름입니다.)




이로써 베르나도트와 나폴레옹의 화해는 완성되었고, 나폴레옹은 향후 그의 야심을 이루는데 베르나도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건 베르나도트라는 남자를 잘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Source : The Life of Napoleon Bonaparte by William M. Sloane

https://en.wikipedia.org/wiki/Coup_of_18_Fructidor

https://en.wikipedia.org/wiki/Charles_XIII_of_Sweden

https://en.wikipedia.org/wiki/Oscar_I_of_Sweden

https://en.wikipedia.org/wiki/D%C3%A9sir%C3%A9e_Clary

https://en.wikipedia.org/wiki/Oscar_(given_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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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블로워 시리즈 중 제8편은 "The commodore"입니다.  혼블로워가 임시 제독(commodore)이 되어, 소함대를 이끌고 발트해로 진입해서, 프랑스와의 전쟁을 저울질하고 있던 러시아의 짜르 알렉상드르에게 프랑스에게 저항하도록 외교관 역할을 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알렉상드르가 불시에 혼블로워의 기함을 방문하여, 영국 해군 측에서 점심 식사를 대접합니다만, 혼블로워는 일부러 평상시 영국군 장교들이 먹는 식사를 그대로 제공하기로 합니다.


The Commodore by C.S.Forester (배경 : 1812년 러시아) -------------------------------


오찬은 혼블로워의 선실에서 8명이 함께 들었다. 혼블로워와, 기함의 함장인 부시, 그리고 2명의 선임 장교 및 4명의 러시아인이 참석했다. 부시는 형편없는 식탁 위의 음식을 보고 초조감에 땀이 흐를 정도였다. 마지막 순간에 부시는 혼블로워를 한 쪽으로 끌어내어, 제발 고집 피우지말고 전함의 평범한 식사에 덧붙여 고급스러운 특식도 같이 대접을 하자고 사정을 했지만, 혼블로워는 요지부동이었다. 부시는 짜르를 잘 대접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제독을 접대하는 하급 장교가 평범한 선원에게 배급되는 염장 쇠고기(salt beef)를 식탁에 올려놓는다면, 그는 승진할 희망을 버리는 것이 나을 것이었다. 고지식한 부시는 이 상황을 그 이외의 관점에서는 볼 수가 없었다.


짜르는 브라운이 혼블로워 앞에 차려준 낡아빠진 주석 수프 그릇을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완두콩 수프입니다, 폐하." 혼블로워가 설명했다. "선상의 생활에서는 아주 근사한 음식 중의 하나이지요."


칼린은 오랜 습관에 따라 무심코 그의 건빵을 식탁에 두드리기 시작하다가, 짜르 앞에서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어 흠칫 멈추었다.  그러나, 마치 죄라도 지은 마냥, 다시 두드리기 시작했다. 혼블로워가 모두에게 내렸던 명령을 기억해낸 것이다.  즉, 혼블로워는 식탁에 누가 앉아있는지 의식하지말고, 평소 식사때 하던 습관 그대로 행동하라고 엄명을 내렸던 것이다. 그는 이 명령에 덧붙여, 이를 망각할 경우 엄중한 처벌을 내리겠다고 협박까지 했었다. 칼린은 혼블로워가 이런 협박을 하는 경우에는 정말 그 협박을 실행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알렉상드르는 칼린을 쳐다보고는, 마치 '저게 뭐하는 거요'하고 묻는 듯이 부시를 쳐다보았다.





"미스터 칼린은 건빵 속의 바구미를 뽑아내려고 두드리는 겁니다, 폐하." 부시가 잔뜩 긴장하며 설명했다. "가볍게 두드리면 바구미가 스스로 기어나옵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폐하."

"아주 흥미롭구료." 알렉상드르는 그렇게 말했지만, 건빵은 입에 대지 않았다. 그의 참모 중의 한명이 그 행동을 따라 해보았다. 그는 까만 대가리가 달린 통통하게 살이 오른 허연 바구미가 나오는 것을 보고는 아마도 욕설로 추정되는 러시아어를 줄줄이 뱉어내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 참모가 전함에 오른 뒤 처음 한 말이었다.


러시아인 방문객들은 이 불길한 시작에 이어, 조심스럽게 수프의 맛을 보았다. 하지만 혼블로워가 언급한 대로, 영국 해군에서는 이 완두콩 수프가 가장 맛이 좋은 음식이었다.  바구미를 보고 욕지꺼리를 내뱉었던 그 참모는 맛을 보고는 놀랐다는 듯이 만족의 탄성을 올리고는, 그의 접시를 삽시간에 비우고 한 그릇을 더 받았다. 다음 코스로는 고작 3가지 요리가 더 있었다. 소금에 절였다가 삶은 소갈비, 역시 같은 방법으로 요리된 소의 혀와 돼지고기에, 양배추 절임이 딸려나왔다.  알렉상드르는 이 음식을 찬찬히 살펴보고는 현명하게도 소 혀를 택했다. 러시아 해군성 장관과 참모는 혼블로워의 권유에 따라 3가지 요리를 이것저것 조금씩 다 담은 접시를 받았다. 고기는 혼블로워와 부시, 허스트가 직접 잘랐다. 처음에는 전혀 말이 없다가 이젠 수다쟁이가 된듯한 참모는 정말 러시아인다운 식욕으로 소금에 절인 쇠고기를 씹기 시작했는데, 그걸 씹어삼키는 것은 정말 길고도 힘든 작업이었다.


브라운이 럼을 따르기 시작했다.


"이것이 영국 해군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피(life blood)입니다, 폐하." 알렉상드르가 럼이 담긴 그의 큰 컵을 유심히 살펴보자, 혼블로워가 말했다. "제가 진심어린 선의를 담아 여러분께 건배를 제창해도 좋을까요 ?  모든 러시아인의 황제 폐하를 위해 ! 황제 폐하 만세 !"


알렉상드르를 제외한 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건배했다. 모두가 앉자마자 다시 알렉상드르가 일어났다.


"대영제국의 국왕을 위해."


러시아인 참모가 쓰던 프랑스어는 그가 이 해군용 럼주에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를 설명하면서 다시 러시아어로 바뀌었다.  그는 럼주를 처음 맛본 것이었다. 결국 그는 술잔을 단숨에 비우고 한잔 더 달라고 브라운에게 잔을 내밈으로서, 그가 얼마나 이 술이 마음에 들었는지를 아주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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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rpe 중위는 라이플 대대의 패잔병들을 이끌고, 스페인을 침공해들어오는 나폴레옹군의 추격을 피해, 영국군 본대와 헤어져 포르투갈 리스본 쪽으로 도주하는 중입니다.  일행은 도중에, 역시 프랑스군으로부터 피난을 떠난 영국인 선교사 가족인 파커 일가를 만나게 되어 길을 함께 하다가 어떤 스페인 마을에 이르러 밤을 지내게 됩니다.


Sharpe's Rifles (1809, 스페인) ------------------------------


그들은 밤을 보내기 위해 작은 마을에 머물기로 했다.  조지 파커가 스페인어를 할 줄 알았으므로, 파커가 흥정을 해서 파커 가족은 마을 술집 겸 여관의 가장 큰 방을 세를 내었고, 라이플 대대의 병사들은 마굿간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다.


전에 비바르 소령이 소개해준 수도원에서 선물해준 굳은 빵이 가진 음식의 전부였는데, 샤프 중위는 병사들이 뭔가 좀 더 먹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여관 주인에게는 포도주와 고기가 있었지만, 여관 주인은 샤프가 돈을 지불하기 전에는 이 둘을 절대 내주지 않았다.  샤프는 돈이 한푼도 없었으므로, 조지 파커에게 돈을 좀 꾸어보려고 해보았으나, 파커는 그의 와이프가 가족의 돈줄을 주관한다는 사실을 슬픈 듯이 실토했다.

파커 부인은 망또와 스카프로 몸을 잔뜩 감싸고 있었는데, 샤프가 돈 이야기를 하자 분노로 몸이 부풀어오르는 것 같았다.  "중위, 돈이라고요 ?"


"병사들은 고기를 좀 먹어야 합니다, 부인."

"우리가 군대에게 재정 지원까지 해야 하나요 ?"

"나중에 정부에서 보상받으실 수 있습니다, 부인."  샤프는 파커 가족의 조카딸인 루이자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꼈지만, 부하들의 밥값을 위해, 파커 부인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으려고 그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파커 부인은 가죽 지갑을 짤랑거리며 흔들어보였다. "이건 주님의 돈이란 말이요, 중위 !"

"단지 빌리는 것 뿐입니다, 부인.  제 부하들이 굶는다면 어떻게 가족분을 보호해드릴 수 있겠습니까 ?"


이렇게 비굴하게 사정한 뒤에야, 파커 부인은 돈을 좀 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여관 주인을 불러오라고 한 뒤, 주인과 흥정을 해서 염소 뼈를 한솥 사서, 그걸로 든든한 수프를 만들도록 했다.

그 흥정이 끝난 뒤, 샤프는 파커 부인이 요구한 영수증을 쓰면서 머뭇거렸다. "그리고 포도주를 살 돈도 좀... 부인 ?"

조지 파커는 천장으로 눈을 치켜올려 떴고, 루이자는 갑자기 양초를 바삐 돌보는 척 했다.  파커 부인은 마치 공포에 질린 듯한 표정으로 샤프를 쳐다보았다.  "술이라고 ?"


"예, 부인"

"부하들이 술을 마신단 말이요 ?"

"병사들은 술을 배급받도록 되어있습니다, 부인."

"배급이라고 ?" 언성이 점점 높아지는 것이 말썽을 예고하는 듯 했다.

"영국 육군 규정에 따르면, 부인, 하루에 포도주 1 파인트(배스킨 라빈스의 1파인트 그릇 생각하시길... 역주) 또는 럼주 1/3 파인트를 배급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병사 한 명당 말이에요 ?"

"물론입니다, 부인"

"그들이 크리스챤 가족을 안전지대로 호위 중일 때는 안됩니다."  파커 부인은 치마 속 주머니에 지갑을 쑤셔넣었다.  "우리 주님과 구세주의 돈으로 술 같은 걸 살 수는 없어요, 중위.  부하들에게는 물을 마시라고 하세요.  내 남편과 나는 물 외에는 마시지 않는답니다."

"또는 약한 맥주(small beer, 맥주를 빚고 난 뒤의 찌꺼리를 이용하여 만든 알콜 도수 1~2도 정도의 약한 맥주, 싼 음료의 대명사 : 역주)를 마시기도 하지요."  조지 파커는 서둘러 정정을 했다.


파커 부인은 남편 말을 무시했다. "영수증이나 주실까요, 중위 ?"


샤프는 어쩔 수 없이 영수증에 서명한 뒤, 여관 주인을 따라 나왔다.  정말 돈이라고는 전혀 없었으므로, 제복 바지 옆에 달린 은단추를 4개 뜯어내어 포도주를 조금 샀다.  이렇게 해서 산 포도주는 50여명의 라이플 부대원에게 나눠주니 일인당 겨우 한컵씩 돌아갔다. 병사들은, 연골 투성이의 뼈다귀 수프를 받을 때 처럼, 이 간에 기별도 안가는 포도주를 말없이 불만에 가득찬 표정으로 받았다.  특히 샤프가 그 다음날 새벽 4시에 기상이라는 것을 알려주자, 병사들 사이에서는 거의 반란에 가까운 웅성거림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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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2년 ~ 1803년 사이 영국과 프랑스는 아미앵 조약에 의해 잠깐 평화기간을 가집니다.  이 기간 도중, 많은 영국 해군 장교들은 half-pay 상태로, 간단히 말해 실업자가 됩니다.  여동생들이 딸린 부시는 half-pay만으로는 정말 근근히 먹고 삽니다.  그러다가 추운 런던 거리에서, 군용 외투(great coat)조차 전당포에 맡긴 상태가 된 옛 전우 혼블로워를 만나게 됩니다.


Lieutenant Hornblower by C. S. Forester (배경 : 1803년, 영국) ---------------


"우리도 식사할 시간이 되지 않았나 ?"  혼블로워가 물었다.


"그런 것 같아." 부시가 대답했다.


식당(eating house)은 브로드 스트리트에 있었는데, 대개 그렇듯이, 나무 의족을 한 전직 선원이 운영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버르장머리 없는 아들이 하나 있어서 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혼블로워와 부시가 식당에 들어서서 떡갈나무 탁자와 벤치로 된 식탁에 앉자, 그 아이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식당 바닥에는 톱밥이 수북히 깔려 있었다.


"에일(ale) 드려요 ?"


"아니, 에일은 안 들겠어."  혼블로워가 대답했다.


그 버릇없는 아이의 태도는, 4페니짜리 정식에 아무 것도 마시지 않는 허름한 해군 장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그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그들 앞에 던지듯이 내려놓았다.  접시에는 삶은 양고기 약간과, 감자, 당근, 무, 보리에 완두콩 푸딩이 약간 얹혀 있었다.  이 모든 것은 묽은 고기국물에 흠뻑 적셔져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걸 먹으면 최소한 배가 고프지는 않아."  혼블로워가 말했다.


그럴 수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혼블로워는 최근에 배가 부른 상태인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그는 처음에는 음식을 우아하게 관심없는 듯이 먹기 시작했으나, 한입 한입 먹으면서 그의 식욕이 점점 살아났고 반대로 그의 절제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의 접시는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싹 비워졌다.  그는 빵으로 접시 바닥을 닦아 먹었다. 


부시도 식사 습관이 느린 편이 아니었으나, 그는 자기가 반도 채 먹기 전에 혼블로워가 접시를 깔끔히 싹싹 닦아먹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혼블로워는 무척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혼자 식사를 오래 했더니 식사 습관이 안좋아지네."  그는 변명하듯 말했는데, 평소 절제된 모습이었던 혼블로워가 이렇게 어색한 변명을 한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당혹스러워 하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이었다.


혼블로워 자신도 그 말을 꺼내자마자 괜히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기 위해 거드름을 피우듯 벤치 위에서 뒤로 기대었다.  그러면서 아주 편하다는 듯이 양손을 자기 코트의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바로 그 순간, 그의 얼굴 표정이 확 바뀌었다.  그나마 창백하던 그의 빰에서 핏기가 싹 가시면서, 경악의 표정, 심지어 공포의 표정마저 떠올랐다.  


부시도 덩달아 놀랐다.  그는 혼블로워가 갑자기 발작을 일으켰다고 생각했으나, 곧 혼블로워의 변화는 그가 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동작과 상관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호주머니에서 뱀을 발견한 사람도 저렇게까지 공포의 표정을 짓지는 못했을 것이다.


"무슨 일인가 ? 대체 왜 - ?" 부시가 물었다.


혼블로워는 천천히 그의 오른손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그는 주먹쥔 손을 한동안 펴지 않고 있더니, 마지 못해 한다는 듯 아주 천천히, 마치 자신의 운명을 두려워하듯 손을 폈다.  하지만 손에서 나온 것은 아무 해될 것 없는 은화 한개였다.  반 크라운짜리였다.  (반 크라운은 2실링 6펜스, 당시 육군 사병의 일당이 1실링 정도 : 역주)


"별거 아니지 않나 ?" 부시는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내 주머니에서 반 크라운 짜리 동전 하나를 찾아낸다고 뭐 이상하거나 놀랄 일은 아닐 것 같은데."


"하지만 - 하지만 -"  혼블로워는 말을 더듬었다.  부시는 뭔가 암시되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에는 분명히 없었어."  혼블로워가 말했다.  그리고는 예전의 그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난 요즘 주머니에 동전 몇개가 남았는지까지 너무 잘 알고 있을 정도거든."


"뭐 그렇겠군."  부시도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나 아침부터의 일을 찬찬히 되짚어 보아도, 왜 혼블로워가 저렇게까지 놀라는 반응을 보였는지 이해가 안되었다.  "그 하숙집 딸이 집어 넣은거야 ?"


"그래, 마리아야."  혼블로워가 말했다. "그녀가 한 일이 틀림없어.  그래서 그녀가 내 코트를 밖에 가지고 나가서 털어준다고 했던거고."


"참 착한 여자군." 부시가 말했다.


"오, 맙소사 !"  혼블로워가 말했다.  "하지만 난 - 난 - "


"왜 안받으려고 하는데 ?"  부시는 물으면서도 대답을 듣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안돼." 혼블로워가 말했다.  "이건 - 이건 - 그녀가 이런 짓을 안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 불쌍한 여자는 - "


"불쌍한 여자라니 웃기는 소리 말게 !" 부시가 말했다.  "그녀는 그냥 자네에게 잘 해주려는 것 뿐이야."


혼블로워는 그를 아무말 없이 한참동안 쳐다보더니, 부시가 자기 입장에서 이 일을 이해하게 만드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듯이 절망적인 몸짓을 한번 해보였다.


"자네가 원한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지."  부시는 자기 관점을 고수하며 끈기있게 말했다.  "하지만 어떤 여자가 자네 주머니에 반 크라운짜리 동전 하나를 집어넣었다고 마치 프랑스군이 상륙이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떨 필요는 없지않나 ?"


"하지만 자네는 몰라 - " 혼블로워는 말을 하려다가, 마침내 설명을 포기했다.  부시가 어리둥절해서 쳐다보는 동안, 혼블로워는 다시 자신을 가다듬었다.  그의 얼굴에서 불행의 표정이 싹 사라지고,  평소의 그 수수께끼같은 얼굴로 되돌아왔다.  그 표정의 변화는 마치 투구의 얼굴가리개를 탁 내린 것 같았다.


"좋아." 혼블로워가 말했다.  "이걸 아주 잘 써야지."  그는 탁자를 두들겼다. "어이, 여기 !"


"예, 손님."


" 와인을 1파인트 갖다주게. 누구 보내서 당장 구해오도록 해.  와인 1파인트 - 포트 와인으로 말이야." 


"예, 손님."


"그리고 오늘의 푸딩은 뭐지 ?"


"커런트 더프입니다."  (currant duff : 포도의 일종인 말린 커란트를 넣은 푸딩 : 역주)






"좋아. 그것도 좀 가져와.  우리 둘에게 모두.  그리고 그 위에 바를 잼도 가져오게."


"예, 손님."


"그리고 와인을 마시기 전에 치즈를 좀 먹어야겠어.  이 식당에 치즈는 있나, 아니면 그것도 어디 밖에서 구해와야 하는 건가 ?"


"여기도 좀 있습니다, 손님."


"그럼 당장 가져와."


"예, 손님."


그렇게 주문된 커다란 커란트 더프 조각을 반도 먹지 않고 남긴 걸 보고, 그거야 말로 혼블로워다운 행동이라고 부시는 속으로 생각했다.  치즈도 그냥 맛만 보는 정도로 깨작거리고는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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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독자분의 신청으로 재업합니다.   독자님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nasica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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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컵에서 결승까지 올라간 발칸 반도의 소국 크로아티아(Croatia)는 여러가지 단편적인 사실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가령 사무실 근무자들의 멍에처럼 느껴지는 넥타이의 원조 국가라고 알려져 있지요.  프랑스어로 넥타이를 끄라바뜨(cravate)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동시에 '크로아티아산의'라는 형용사이기도 합니다.  이는 17세기 전반기의 30년 전쟁 때 프랑스 측에서 복무한 크로아티아 용병들이 자기 나라 전통의 작은 매듭 수건을 목에 찬 것이 파리 사람들의 눈에 멋있게 보여서 유행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그 밖에 그 보병들의 용맹함과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찌 측에 협력한 어두운 역사 등으로 알려져 있고, 특히 두브로브니크의 아름다운 경치가 최근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17세기 끄라바뜨(cravate)를 목에 맨 크로아티아 병사입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가 러시아와 승부차기 끝에 승리하는 장면을 보니 벤치에 앉아있던 크로아티아 선수들이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 등판에 Hrvatska(흐르바츠카)라고 쓰인 것을 보고 비로소 크로아티아라는 것은 그 나라의 영어식 이름일 뿐이고 크로아티아인들은 자기 나라를 흐르바츠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걸 보니 최근 우리 팀 젊은 사원 하나가 해준 이야기가 기억나더군요.  그 친구가 대학 졸업할 때 즈음인가... 인턴인가 뭣 때문인가 캐나다에 갔다가 유럽에서 온 젊은이들을 만났는데, 어디서 왔냐고 물으니 '도이칠란트'라고 답을 하더랍니다.  제가 놀란 것은 그 다음 부분이었지요.  이 친구는 그 말을 듣고 '도이칠란트가 대체 어디 있는 나라지 ?'라고 생각했더라는 거에요.  아니, 대학 졸업자가 도이칠란트가 독일이라는 것을 모르다니 !  제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사회과 부도나 세계사 교과서에 나오는 지도에 '도이칠란트(독일)'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거든요.





(좌측 하단의 선수가 입고 있는 트레이닝복 등에 쓰인 것은 분명히 저 선수 이름은 아니지요.)




그걸 보니까 전에 본 북한 지도가 기억나더군요.  거길 보니 독일은 도이칠란트, 러시아는 로씨야, 루마니아는 로므니아, 스웨덴은 스웨리예, 폴란드는 뽈스까, 헝가리는 마쟈르라고 표기되어 있더라고요.  폴란드라는 것도 영어식 이름에 불과하고 폴란드인들은 자기 나라를 폴스카(Polska)라고 부른다는 것은 월드컵 경기들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일본도 전에 올림픽에서였나 아시안게임때였나 등에 적힌 국명은 Japan이 아니라 Nippon이라고 적었던 것을 봤는데, 그런 국제 경기를 통해서 자국의 제대로 된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것도 일종의 국가 브랜드 향상인 모양입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아일랜드를 아일랜드식인 에이레(Éire)라고도 불렀는데, 요즘은 아일랜드라는 영국식 이름으로만 통하는 것 같습니다.  스웨덴도 자국을 스웨리예(Sverige)라고 부르는 것은 어디서 주워들어 알고 있었는데, 헝가리처럼 월드컵 등에 자주 나오는 나라가 아닌 경우 자국을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마쟈르족이 세운 나라라고 정말 마쟈르라고 부르나 싶어 이번 기회에 찾아보니 헝가리어로는 헝가리 나라 이름이 Magyarország(마갸로~삭)으로 부른다고 하네요.  마쟈르(magyar)의 나라(ország)라는 뜻이랍니다.  






다만 핀란드는 북한 지도에도 그냥 영어식으로 핀란드라고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핀란드 사람들은 자국을 수오미(Suomi)라고 부른다고 알고 있습니다.  러시아어로는 핀란드를 핀란디아(Финляндия)라고 부르는데, 혹시 북한 교과서 지도에 표기된 이름들이 그 나라 사람들이 부르는 그 나라 이름이 아니라 그냥 러시아어로 된 이름들을 표기한 것인가 생각도 들었는데,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가령 폴란드는 러시아어로 뽈스까가 아니라 뽈샤(По́льша)라고 하고, 스웨덴도 스웨리예가 아니라 쉬베찌야(Шве́ция)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북한 지도는 그냥 최대한 그 나라 고유 명칭으로 그 나라 이름을 표기하려고 한 것이고, 핀란드는 아마 지도 제작자가 실수했거나 북한에서도 핀란드가 그냥 핀란드라고 더 많이 알려져 있는 모양이에요.  우리나라에서 류베이라는 이름보다는 유비라는 이름이 이미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굳이 바꿔 표기하지 않는 것처럼요. 


모든 나라에는 자기들이 부르는 자기 나라 이름(Endonym)과 외국인들이 부르는 나라 이름(Exonym)이 따로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나라'라는 개념 자체가 외국이라는 개념 때문에 생겨난 것이고, 그 나라 이름은 자국민들이 정해서 부르는 것보다는 그 나라 말을 모르는 외국인들이 자기들끼리 정해서 부르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접하는 외국이 많으면 많을 수록 exonym도 많아지고, 그 각각의 이름들에는 나름대로의 역사와 사연이 젖어들게 됩니다.


가령 우리 회사 젊은 사원이 몰랐던 독일의 exonym은 영어로는 다들 아시다시피 Germany(저머니)이고 불어로는 Allemagne(알마뉴), 스페인어로는 Alemania(알레마니아)라고 합니다.  영어 이름의 기원은 오히려 고대 프랑스어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에 살던 골(Gaul)족은 라인강 너머에 사는 사람들을 게르마니(Germani)라고 불렀는데, '이웃' 또는 '숲 사람들'이라는 뜻이었답니다.  골을 정복한 로마인들은 골 사람들로부터 라인강 너머 부족의 이름을 배웠고, 그래서 그 땅을 게르마니아(Germania)라고 불렀는데, 그 단어가 영어로 이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프랑스나 스페인에서는 알마뉴나 알레마니아라고 부르는 것은 알사스 및 스위스 인근에 살던 부족인 알레마니(Alemanni)라는 게르만 일족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알사스 지방을 통해 독일과 접했던 프랑스 사람들이 게르만 부족 전체를 알레마니라는 이름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 결과 직접 국경을 맞대지 않은 스페인까지도 독일을 알레마니아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이건 중국의 exonym이 크게 China와 Cathay 두 계열로 나뉜 것과도 비슷합니다.   영어로는 China(차이나), 스페인어로도 China(치나), 프랑스어로도 Chine(신느)라고 불리는 중국은, 러시아어로는 Китай(키타이)라고 불립니다.  옛 영어에서도 중국을 Cathay(캐쎄이)라고 부르지요.  다들 아시다시피 차이나라는 이름은 중국 최초의 통일 왕국인 진(Qin)나라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캐쎄이 또는 키타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  우리나라와도 관련이 깊었던 거란족, 즉 키탄(Khitan)족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나라를 세워 송나라를 압박하기도 했고, 나중에 여진족의 금나라에 쫓겨 서쪽 중앙아시아로 간 뒤 거기서 서요(Qara Khitai, 검은 키타이)를 세워 맹위를 떨쳤던 거란족은 당시 아시아 동부 전체를 쥐고 흔들던 대단한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중국을 접한 외국인들이 중국을 키타이라고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러시아어 및 옛 영어에서 중국을 키타이 및 캐쎄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매사냥을 즐기는 거란족.  (몽골인처럼 보이긴 하네요...)  그렇게 강대하던 거란족을, 그것도 전성기에 완패시킨 나라가 바로 고려입니다.  덕분에 거란에게 벌벌 떨던 송나라와의 관계에서 고려는 동방의 벌꿀오소리처럼 아주 오만방자한 태도를 취했다고 하는데, 그런 고려가 대한민국의 exonym의 유래가 된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고구려도 고려라는 이름을 쓰기도 했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일반 중국사람들은 조선이라는 이름을 잘 모르고 그냥 고려라고 불렀다는데, 당태종도 물리치고 거란족도 물리친데다가 몽골의 쿠빌라이칸도 각별히 대했다는 그 킹왕짱 쎈 고려가 왜에게 불과 1달 만에 수도를 털렸다고 하니 처음에 명나라에서는 그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럴 리가 없다, 이거 혹시 고려가 왜와 결탁하여 명나라를 치려는 것 아닐까 ?'라는 의심이 명나라 조정에 파다했다고 하네요.)




제가 나폴레옹 전쟁사를 연재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것 중 하나가 각 지방과 도시의 이름을 대체 어떤 식으로 표기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가령 가스코뉴의 상남자 란(Jean Lannes) 원수가 직접 사다리를 타고 그 성벽을 기어오르려 했다는 1809년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전투는 흔히 라티스본(Ratisbon) 전투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레겐스부르크라는 도시도 유럽의 많은 도시들처럼 로마군이 지은 요새에서 비롯된 도시인데, 원래는 Castra Regina, 즉 레긴(Regin) 요새라는 곳이었습니다.  거기에 레겐(Regen) 강이 흐르고 있거든요.  그런데 바이에른에 있는 이 도시에는 여러가지 이름이 있습니다.  폴란드어로는 Ratyzbona, 체코어로는 Řezno, 그리고 프랑스어로는 Ratisbonne이었지요.  이 도시는 바로 옆을 흐르는 레겐 강 덕분에 상업이 활발했고, 특히 13세기 전반에 자유도시가 되면서 더욱 번성했습니다.  특히 신성로마제국의 내각이 이 도시에 상주하게 되면서 더욱 발전했지요.  덕분에 신성로마제국과 교역하던 프랑스니 폴란드니 체코니 하는 외국에서도 이 도시 이름을 입에 담게 되었는데, 고대 시절부터 전해오던 고유의 이름 "Radasbona", "Ratasbona", "Ratisbona" 등의 이름으로부터 자기들 입맛대로 이름을 지은 것이지요.  영국인들은 이 도시를 프랑스인들로부터 전해들었는지 라티스본(Ratisbon)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덕분에 이 전투의 승자인 프랑스측이나, 제가 주로 읽는 영어 문서에서는 대부분 라티스본 전투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분명히 이 전투는 레겐스부르크에서 벌어진 것이니 레겐스부르크 전투라고 부르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레겐스부르크 전투, 혹은 라티스본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신속하게 이 도시를 점령해야 카알 대공이 이끌고 도망치는 오스트리아군 주력을 요격할 수 있었습니다.  성벽에 대한 공격이 계속 실패하자 마침내 란 원수가 '난 프랑스 원수이기 이전에 일개 척탄병이었고, 지금도 그렇다'라며 직접 사다리를 들고 성벽으로 돌격하려 하여 부관들이 기겁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다행히 그런 란 원수의 행동에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낀 병사들이 분발 돌격하여 마침내 도시를 함락시켰습니다.  그래도 카알 대공은 결국 놓치고 말았고, 결국 다시 맞붙은 아스페른-에슬링 전투에서 나폴레옹은 카알 대공에게 패배하고 란 원수도 전사하고 맙니다.)




이 레겐스부르크가 위치한 바이에른(Bayern)만 해도 헷갈립니다.  바이에른의 영어식 이름은 바바리아(Bavaria)거든요.  이걸 영어식으로 바바리아라고 표기해야 할지 저도 모르는 독일어로 바이에른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영어식 exonym인 바바리아보다는 독일 현지의 endonym인 바이에른이라고 적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지금도 그렇게 적습니다만, 여기에도 고민이 따릅니다.  제가 외국어 여러개에 능통하면 좋겠으나 그러지 못하여 주로 영어 문서를 보는데, 그러다보니 어떤 지명을 적을 때 이게 영어식 exonym인지 제대로 된 endonym인지 확신이 안 갈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이탈리아나 스페인, 독일 정도는 눈치로 어느 정도 파악이 되는데, 폴란드나 체코, 헝가리 지역으로 들어가면 정말 뭐가 뭔지 전혀 모르겠더라고요.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일관성 있게 영어식 exonym을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도 합니다만, 그래도 저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그런 먼 외국 도시의 exonym과 endonym을 구별해볼까 싶어서 틀릴 것을 각오하고 그냥 최대한 endonym을 쓰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틀린 것을 보시면 댓글로 지적해주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가령 제가 플로렌스는 꼭 가보고 싶지만 피렌체는 별로 가고 싶지 않다는 말을 써놓으면 너그러이 이해해주시는 분도 있겠지만 비웃는 분들이 더 많지 않겠습니까 ?  댓글로 지적질 해주시는 것은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장 황당할 때는 사람 이름조차도 그렇게 영어식 이름과 현지식 이름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영어의 존(John)이 프랑스어의 장(Jean), 독일어의 요한(Johan)에 해당하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제가 읽는 영어 문서에서는 프랑스 사람들이나 독일 사람들 이름을 그렇게 제멋대로 영어식 이름으로 써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독일의 카알(Karl)을 그냥 영어식 찰스(Charles)라고 적거나 프랑스의 프랑수와(Francois)를 영어식 프랜시스(Francis)로 적는 식입니다.  


러시아 쪽으로 가면 더 헷갈립니다.  가령 예카테리나(Екатерина, Yekaterina)를 캐서린(Catherine)으로 적는 것은 양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북스게브덴이라고 널리 알려진 장군 이름이 영어 문서에서는 Buxhoevden이라고 나오더라고요.  이건 또 사연이 깊은 것이, 이 북스게브덴 장군은 원래 작센 왕국에 뿌리를 둔 에스토니아 출신의 러시아 귀족입니다.  그러다보니 러시아식 이름은 Фёдор Фёдорович Буксгевден, 즉 표도르 표도로비치 북스게브덴(Fyodor Fyodorovich Buksgevden)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는 독일식 이름이 따로 있어서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북스회브덴(Friedrich Wilhelm von Buxhoevden)이라고 불립니다.  그리고 영어 문서에서는 이 뭐라고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되는 Buxhoevden이라는 것이 주로 표기됩니다.  아마 영국인들은 천연덕스럽게 프레드릭 윌리엄 (Frederick Willian) 폰 북스호이브덴 정도로 읽지 않을까 싶습니다.  





(북스게브덴 장군입니다.  1805년 아우스테를리츠에서 나폴레옹의 승리에 꽤 큰 공로를 세운 러시아 장군입니다.  전투 내내 술에 취해서 거의 지휘관 노릇을 거의 못했거든요.  그런 그도 다행히 1812년 나폴레옹이 참패를 겪는데 큰 공로를 세웁니다.  61세의 나이로 1811년 병으로 죽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아마 간암이나 간경화 아니었을까요 ?)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에는 원래 한국 이름 외에 영어 이름을 가진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눈꼴 사납다고 손가락질 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꼭 욕할 일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본사나 기타 다른 나라 사람들과 회의를 하거나 전화, 이메일을 주고 받을 때, 그들로서는 발음하기 어렵고 외우기도 힘든 한국 이름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간편한 영어식 이름을 대는 것이 상대방의 기억에 훨씬 더 잘 남거든요.  제가 일하는 곳이 IT 회사이다보니 본사에도 인도인들이 많은데, 저만하더라도 긴 인도식 이름보다는 영어식 이름을 가진 사람이 훨씬 친근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니, 반대로 저희들도 영어식 이름을 가지는 것이 유리하겠지요.  그래도 저는 내일 모레 50인 꼰대답게 그냥 한국식 이름을 고집하고 있습니다만, 젊은 분들은 만약 자기 이름이 외국인들 발음에 복잡한 형태라면, 영어식 닉네임 하나 준비하는 것이 뭐 꼭 사대주의라고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이라는 것은 상대가 나를 타인으로부터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 타인에게 잘 기억될 수 있고 부르기 쉬운 것이 본연의 임무에 좋은 것이거든요.  






Source : https://en.wikipedia.org/wiki/English_exonyms

http://mentalfloss.com/article/30810/why-are-there-different-names-same-country

http://m.news1.kr/articles/?3122718#imadnews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Ratisbon

https://en.wikipedia.org/wiki/Friedrich_Wilhelm_von_Buxhoeve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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