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2017.11.14 23:53

60~70년대 포크 뮤직을 이끌었던 전설적인 가수 중에, 존 바에즈(Joan Baez)가 있습니다.  멕시코계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그녀는 십대 후반에 이미 음반 작업을 할 정도로 타고난 가수였고, 자신도 '그건 그냥 내게 주어진 것일 뿐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라고 인정할 정도로 뛰어난 목소리로 감미로운 노래를 불렀습니다.  특히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여 반전, 인권 등 사회적인 노력을 많이 불렀습니다.


바에즈는 작사 작곡도 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다른 가수의 노래나 민요 같은 것을 재해석하여 부르는 것에 탁월한 재주가 있었습니다.  바에즈가 작사 작곡한 노래 중에 대단한 명곡이 있습니다.  바로 'Diamonds and Rust', 즉 '다이아몬드와 녹부스러기'라는 노래입니다.


다만 이 여가수의 개인사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 노래 가사를 들으면 큰 느낌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노래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이 노래는 바로 또 다른 전설, 즉 밥 딜런(Bob Dylan)에 대한 것입니다.  





이 둘은 1960년대 초반에 서로 알게 되어, 잠깐 연인 관계였다가 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둘다 1941년 생으로 동갑내기인 이 둘 중에 문화계에 먼저 이름을 알린 것은 바에즈였습니다.  바에즈는 워낙 타고난 목소리에 가창력이 좋은데다 긴머리에 외모도 아름다워 마돈나라고 불리며 금방 인기를 얻었습니다만, 딜런은 원래 가창력이 좋은 편도 아니고 외모도 평범하여 나오자마자 확 뜬 편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에즈는 딜런이 노래 부르는 것을 보고 '저런 두꺼비 같은 사람에게서 그런 힘이 나오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라고 할 정도 그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고, 자신의 무대에 기회가 될 때마다 딜런을 초대하여 노래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의 어눌한 노래에 상스러운 관중이 야유를 보낼 때도 있었는데, 바에즈가 벌컥 화를 내며 관객을 꾸짖을 정도로 바에즈는 딜런을 띄워주려 노력했고, 결국 딜런의 천재성은 대중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노래는 그들이 헤어진지 약 10년 후인 74년에 바에즈가 만든 것입니다.  바에즈는 이 노래가 누구에 대한 것인지 전혀 밝히지 않았으나, 그 가사를 들어보면 모두가 이 노래 속의 남자가 누군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2009년, 바에즈는 어느 인터뷰에서 결국 이 노래의 주인공이 딜런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는 했지요.


처음에 바에즈는 이 노래가 당시 파국을 향해 가고 있던 당시 남편 해리스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심지어 딜런 본인에게도요.  이 노래가 발표된 해인 75년, 그러니까 바에즈와 딜런이 안 좋게 헤어진지 10년이 지난 뒤, 바에즈는 딜런과 합동 공연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에 이런 대화를 나눴다고 합니다.


"너 그 지빠귀 알과 다이아몬드에 대한 노래 부를 거야 ?"

"무슨 노래 ?"

"알잖아, 그 푸른 눈하고 다이아몬드에 대한 거..."

"아, Diamonds And Rust 말하는 거군.  내 남편을 위해 쓴 노래.  그이가 감옥에 있을 때 쓴 거야."

"네 남편 ?"

"응.  그게 누구에 대한 노래라고 생각한 거야 ?"

"어, 이봐, 내가 뭘 알겠어 ?"

"신경쓰지마.  응, 그 노래 부를게.  네가 좋다면."


이 대화에서 '네 남편을 위해 썼다고 ?'라며 묻을 때의 딜런의 심정이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안도 ?  실망 ?  놀람 ?  의심 ?  글쎄요.  본인만이 알겠지요.





이 노래가 딜런에 대한 것이 뻔하다는 것은 여러 곳에서 나옵니다.  '이미 전설이었던 너'라든가, '네 작사는 형편없어'라고 말하는 장면, 특히 '워싱턴 스퀘어 공원 옆에 있던 초라한 호텔 창문 너머로 웃던 너' 등의 가사는 딜런 외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지요.  누가 바에즈가 쓴 가사에 대해 lousy라는 표현을 쓸 수 있겠습니까 ?  게다가 딜런이 워싱턴 스퀘어 공원이 있던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Greenwich Village)에서 젊은 시절 음악 활동을 했다는 것은 매우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심지어 그리니치 빌리지 관광객을 위한 밥 딜런의 발자취를 걷는 테마 투어(http://www.freetoursbyfoot.com/bob-dylan-greenwich-village-walking-tour)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생각해보면 관광 명소를 만드는 것이 꼭 자연 경관이나 건물 만은 아닙니다.  바로 사람이지요.  아직 딜런이 살아 있는데도 그런 전설이 되었다는 사실이 정말 대단한 거지요.





(워싱턴 스퀘어 공원의 어느 호텔 앞입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딜런이 바에즈에게 한밤중에 문득 전화를 하는 장면입니다.  오래간만에 전화를 한 딜런에게 바에즈가 어디서 전화하느냐고 묻자, '미드웨스트의 어느 공중전화 박스'라고 답하지요.  연인, 혹은 헤어진 연인 사이의 통신 수단은 언제 어디서나 매혹적인 장면을 낳습니다.  시라노(Cyrano) 시절에 종이에 깃털펜으로 글을 쓰고 붉은 밀랍과 인장으로 봉하는 편지도, 요즘 스마트폰의 문자나 카톡으로 전하는 메시지도 나름대로의 사연과 안타까움, 멋이 있습니다만, 어떻게 보면 정말 멋대가리 없는 유선 음성 전화로도 멋있는 장면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어디 공연 투어 중이었는지 중서부 지역에 있던 딜런이, 한밤중에 호텔방도 아니고 굳이 길거리로 나와 어느 인적 없는 공중전화 박스에서 헤어진 옛 연인 바에즈에게 전화를 하는 장면을 상상해보십시요.  그러고나서 하는 소리가 '넌 작사실력이 형편없다'라...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  우리는 알 수 없지요.  





(Midwest라고 불리는 지역은 우리 생각과는 달리, 미국 중서부가 아니라 오히려 중동부에 해당하는 일리노이, 미시간, 오하이오 등을 포함하는 지역입니다.  이상하지요 ?)  



한편의 시라고 할 수 있는 노래 가사에 굳이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하려는 것은 사실 노래에 대한 예의는 아닙니다.  그래도 굳이 한다면, 이 노래에서 말하는 '다이아몬드와 녹'이라는 것은 추억 중에 기억하고 싶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정도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Diamonds & Rust"  

다이아몬드와 녹부스러기


Well I'll be damned

Here comes your ghost again

But that's not unusual

It's just that the moon is full

And you happened to call


아 놀라라

또 너의 유령이 찾아오네

하지만 이상한 일도 아니야

그저 보름달이 됐고

네가 어쩌다 전화를 했을 뿐이지


And here I sit

Hand on the telephone

Hearing a voice I'd known

A couple of light years ago

Heading straight for a fall


그리고 난 여기 앉아

손에 전화기를 들고

한 2광년 전에 알았던 

그 목소리를 듣고 있어

추억 속으로 그대로 빨려들어가


As I remember your eyes

Were bluer than robin's eggs

My poetry was lousy you said

Where are you calling from?

A booth in the midwest


내 기억에 너의 눈동자는

지빠귀 알보다 더 파랬어

넌 내 작사가 형편없다고 말했지

"지금 어디서 전화해 ?"

"중서부 지역 어느 공중전화 부스야" 


Ten years ago

I bought you some cufflinks

You brought me something

We both know what memories can bring

They bring diamonds and rust


10년전이었어

난 네게 커프링스를 사줬어

너도 내게 뭔가를 선물하긴 했는데

우린 둘다 알아 추억이 뭘 가져오는지 

다이아몬드와 녹부스러기


Well you burst on the scene

Already a legend

The unwashed phenomenon

The original vagabond

You strayed into my arms


넌 내 인생에 갑자기 뛰어들었지

그때 이미 전설이었어

덥수룩한 현상이자

독창적인 방랑자였지

그런 네가 길을 잃은 듯 흘러왔어 내 품 안으로


And there you stayed

Temporarily lost at sea

The Madonna was yours for free

Yes the girl on the half-shell

Would keep you unharmed


내 품에서 넌 머물렀지만

그건 잠깐 바다에서 길을 잃은 것 뿐

마돈나는 아무 댓가도 없이 너의 것이었어

그래 기꺼이 자신을 바치려는 여자는

너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테지


Now I see you standing

With brown leaves falling around

And snow in your hair

Now you're smiling out the window

Of that crummy hotel

Over Washington Square

Our breath comes out white clouds

Mingles and hangs in the air

Speaking strictly for me

We both could have died then and there


너의 모습이 보여

갈색 낙엽이 사방에 떨어지고

네 머리엔 눈이 내려앉았지

워싱턴 스퀘어 공원 너머

그 초라한 호텔 창문 밖으로

네가 미소짓고 있어

우리 입김이 구름처럼 하얗게

허공에 얽혔지

나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그때 우린 모두 정말 당혹스러웠어


Now you're telling me

You're not nostalgic

Then give me another word for it

You who are so good with words

And at keeping things vague

Because I need some of that vagueness now

It's all come back too clearly

Yes I loved you dearly

And if you're offering me diamonds and rust

I've already paid


넌 이제 내게 말하지

"넌 향수에 젖은게 아니야"

그렇다면 이 기분이 뭔지 다른 단어를 말해봐

넌 말재주가 정말 좋쟎아

상황을 모호하게 만드는 재주도 말이야

나도 그 모호함이 지금 좀 필요하거든

그 모든 추억이 너무 뚜렷하게 다가와

그래 난 널 정말 사랑했어

그리고 만약 네가 다이아몬드와 녹부스러기를 내게 주려는 거라면

난 그 댓가를 이미 치룬 것 같아



노래 감상은 아래 유튜브에서...  저는 특히 저 'Already a legend~' 라는 부분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https://youtu.be/dcaZi_G3xVs



* I'll be damned 라는 표현은 두가지로 쓰이는데 하나는 그냥 '아 깜짝이야'하는 감탄사이고, 나머지는 if와 함께 쓰여 '~를 한다면 내가 성을 간다' 뭐 그런 정도의 뜻입니다.


* half shell이라는 것은 조개 등을 먹기 좋게 껍질 두개 중 하나만 남겨서 그 위에 조개살을 얹어놓은 것을 뜻합니다.


* could have died 라는 표현은 속된 표현으로 '창피해 죽을 뻔 했다' 정도의 뜻입니다.




Source : 

https://en.wikipedia.org/wiki/Diamonds_%26_Rust_(song)

https://en.wikipedia.org/wiki/Joan_Baez

https://en.wikipedia.org/wiki/Bob_Dy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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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sica
나폴레옹의 시대2017.11.11 19:33

1809년 7월 6일 밤 바그람 전투의 총성이 잦아든 뒤 나폴레옹은 다른 전투에서처럼 '퇴각하는 적군을 즉각 추격 섬멸하라'고 부하들을 재촉하지 않았습니다.  냉혈한인 그도 휘하 병사들이 거의 잠도 못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한 상태로 무려 40시간에 걸쳐 힘겨운 싸움을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추격을 명하지 않은 이유는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은 비록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났지만, 무너지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전투 이후 프랑스군의 라콩브(Lacombe)라는 장교가 그의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전투 결과는 기대했던 만큼의 성공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적을 물리치기는 했으나 그들을 패주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전투 내내 나폴레옹의 옆을 지키며 전투 현황을 속속 파악하고 있던 사바리 장군도 "오스트리아군은 프랑스군의 성급한 행동을 자제시킬 정도로 잘 싸웠다"라고 기록에 남길 정도였습니다.  


전투의 승패는 어느 쪽의 사상자가 더 많았는가로 판별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쪽이 꼬리를 말아쥐고 물러나느냐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데, 보통 등을 보이며 후퇴하는 측의 대오가 무너지기 마련이었고, 그 뒤를 추격하는 적의 기병이나 경보병에게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에 패자의 사상자 수가 더 많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바그람 전투에서는 양상이 달랐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은 후퇴하는 와중에도 대오를 굳게 지켰고, 결국 프랑스군은 평소 하던 대로 후퇴하는 적의 뒤를 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먼저, 오스트리아군의 질적 향상이 있었습니다.  오스트리아 정부에 재정난을 일으킬 정도로 군비를 투입하여 카알 대공이 열심히 육성한 상비군은 확실히 과거와는 다른 굳센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고대 스파르타에 전해지는 격언 중에 '한 국가와 반복하여 자주 전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유는 잦은 전쟁 경험은 상대국에게도 군사 역량의 강화를 낳기 때문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이번 제5차 대불동맹전쟁에서 겪은 바가 딱 그랬습니다.  프랑스군이 국민개병제에 의한 징집군의 편성, 기동력을 중시한 전술, 자율성과 유연성을 잘 살려주는 군단제 운영을 통해 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 가지고 있던 상대적 우월성은 어느 틈엔가 오스트리아군에게도 어느 정도 복제되어 있었고, 이는 전투력의 상향 평준화를 이끌었던 것입니다.


또 카알 대공의 근본적인 전략도 오스트리아군의 비교적 질서있는 후퇴에 일조했습니다.  카알 대공은 전쟁 시작 전부터 개전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었지요.  그는 어차피 오스트리아 혼자 싸우는 이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꺾을 수는 없으며, 만약 싸우더라도 최후의 일인까지 다 죽어 쓰러지는 결전보다는 적당히 싸우다 패배가 분명해지면 후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지더라도 군사력을 어느 정도 보존한 상태여야 나폴레옹과의 종전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조건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카알 대공이 그런 전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이른 시간인 오후 2~3시 경에 이미 후퇴를 결정했고, 덕분에 오스트리아군은 힘을 좀 남겨둔 채로 후퇴를 시작하여 군사력을 보존한 채, 심지어 프랑스군 포로 수천 명까지 끌고 후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전투 다음날 새벽, 나폴레옹이 혹시 오스트리아군이 어제에 이어 다시 도전해올 것인지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오스트리아군은 비교적 건재한 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바그람 전투가 비교적 사상자가 적은, 꽤 순한 전투였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바그람 전투는 이긴 프랑스군이나 진 오스트리아군이나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사상자 수를 낸 참혹한 전투였습니다.   일단 양측의 참전 병력이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프랑스군이 약 17만, 오스트리아군도 요한 대공의 병력까지 합해서 약 15만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했다고 되어 있지요.  실제로는 요한 대공의 군대는 언저리까지만 오고 총 한방 쏘지 않았으니 전투 참전 병력 수에서는 빼는 것이 맞겠고, 또 프랑스군도 로바우섬을 지키던 보병들은 실제로는 참전하지 않았으니 일부 빠지겠습니다만, 아무튼 양측이 무려 32만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했습니다.  이는 유사 이래 유럽 대륙에서 벌어진 전투 중 가장 많은 수의 병력이 한 자리에 집결하여 벌인 최대 규모의 전투였습니다.


참전 병력이 많으니 당연히 사상자도 많았습니다.  당시 사상자 수는 정확한 집계가 불가능했고, 또 설령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발표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특히 나폴레옹은 대내외 과시를 위해 적의 사상자 수를 부풀리고 아군의 사상자 수는 양심도 없이 작게 조작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지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프랑스군 육군 회보(Bulletin de la Grande Armée)에서는 바그람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입은 피해가 전사 1,500에 부상 3~4,000으로 경미하다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습니다.  실제 사상자 수는 약 3만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혹자는 4만이 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오스트리아군의 피해도 약 3만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양측 모두에게 약 20% 가까운 사상율이었습니다.  당시 승자 측의 사상율이 약 10%, 패자 측은 약 20%가 상식적인 수준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 바그람 전투는 양측 모두 패배였던 셈입니다.  


양측의 피해가 모두 컸던 이유는 이 바그람 전투는 유례없는 대규모 포격전을 동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프랑스군은 약 488문, 오스트리아군도 414문이나 되는 전례없는 막강한 화력을 총동원했다는 점도 문제였으나, 특히 이 전투의 주무대였던 마르히펠트의 평원이 지형과 지질 탓이 컸습니다.  이곳은 땅 표면이 비교적 단단하고 매우 평평한 지역인지라, 대포알들이 땅에 처박히지 않고 통통 튀며 먼거리까지 날아가면서 많은 병사들의 팔다리와 허리를 꺾어놓았던 것입니다.  나폴레옹도 전투가 끝난 뒤, 이 전투는 포병에 의한 승리라며 휘하 포병들의 노고를 칭찬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포병대에게 영광을 더해주고자 전체 포병단 총사령관인 라리부아지에르(Jean Ambroise Baston de Lariboisière) 장군의 아들 페르디낭(Ferdinand Baston de La Riboisière)을 뽑아 이 승전보를 파리로 전하게 했습니다. 





(이 그림이 드물게 그려진 아버지와 아들이 한꺼번에 나온 라리부아지에르 부자의 초상입니다.  바그람 전투 당시 27세였던 페르디낭은 카라비니에, 즉 총기병대 소속 장교였는데, 역시 나폴레옹의 과도한 욕심에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1812년 보르디노 전투에서 전사한 것입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도 너무나 슬픔에 젖은 나머지 병으로 쓰러졌고, 결국 1812년 겨울을 못 넘기고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페르디낭이 들고간 승전보에는 파리 시민들이 기대했던 화려한 전과는 구체적으로 적을 수가 없었습니다.  보통 그런 전과는 노획한 적의 군기와 대포, 그리고 많은 포로의 숫자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그것이 좀 부실했던 것입니다.  프랑스군은 오스트리아군으로부터 10폭의 군기와 20문의 대포, 그리고 약 7,500의 포로를 빼앗았습니다.  그러나 프랑스군이 빼앗긴 것은 군기 12폭, 대포 21문에 포로도 약 7천 이상이었습니다.  오히려 적자를 보았던 셈이지요.   그 때문에 전투가 끝난 뒤 이 계산서를 받아든 나폴레옹은 '전쟁이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노획한 대포도 포로도 거의 없구나, 아무 결과가 없군'이라며 한탄했습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다보니, 전투 다음날인 7월 7일 아침 잠에서 깬 나폴레옹은 혹시 카알 대공이 다시 군대를 이끌고 도전해오지 않을까 우려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카알 대공은 이미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고 물러나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그날 아침 보고를 위해 나폴레옹의 막사를 찾은 막도날드를 갑자기 와락 끌어안아주고는 그를 '프랑스 제국의 원수'라고 불러주었습니다.  즉, 영광스러운 원수의 계급으로 승진을 시켜준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우디노와 마르몽에게도 원수 계급을 내렸습니다.  이 사실이 공표되자, 병사들은 막도날과 우디노는 그렇다치고, 마르몽은 뭔일래냐 라며 수군거렸습니다.  파르퀑(Parquin) 소령의 회고록에 따르면 병사들은 아예 이런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고 합니다.


"막도날은 프랑스가 지명했고, 우디노는 군이 지명했는데, 마르몽은 우정이 지명한거라네"

(La France a nommé Macdonald, l'armée a nommé Oudinot, l'amitié a nommé Marmont)


사실 마르몽 달마시아(Dalmatia) 군단을 이끌고 최후의 예비대로 남아 있었고, 아무 한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나폴레옹도 원수 임명장과 함께 별도의 개인 편지를 함께 마르몽에게 보내, '너와 나 사이의 비밀이지만, 넌 이 계급에 어울리는 전공을 올린 일이 없다는 것을 잊지말라'고 갈구기도 했습니다.





(마르몽은 배신의 대명사로서, 라구사 공작이었던 그를 따서 Raguser라는 단어가 만들어질 정도였습니다.  현대 프랑스어 사전을 찾아봐도 정말 raguser는 trahir, 즉 배신하다라는 말의 동의어라고 설명이 나옵니다.  당대에는 더 심해서, 1830년 7월 혁명 당시 그가 시위 진압을 주저하자, 부르봉 왕가의 앙굴렘 공작은 그에게 "그를 배신했듯이 우리도 배신하려는거냐 ?" 라며 맹비난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갈굼을 당한 마르몽에게 '승진을 정당화시켜줄 전공을 세우라'는 말과 함께 카알 대공을 추격하라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그의 달마시아 군단은 1만1천 정도로 매우 빈약한 편이었지만 전날 전투에 전혀 참전하지 않아 체력 고갈이 없는 유일한 부대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맹렬한 추격을 개시한 마르몽은 3일 후인 7월 10일 츠나임(Znaim)에서 카알 대공의 잔존 병력 약 5만을 포착했습니다.   1만대 5만의 대결이었으니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이었지만 마르몽은 바로 뒤를 나폴레옹의 본대가 따라올 것이므로 적이 후퇴하지 못하도록 물고 늘어지는 전법을 썼습니다.  결국 양측이 하루를 넘겨가며 수천 명씩의 사상자를 내는 치열한 전투 끝에 다음날 저녁 무렵 나폴레옹의 본대가 도착하자, 카알 대공은 휴전을 요청하게 됩니다.  이것이 제5차 대불동맹전쟁의 마지막 전투이자, 카알 대공 인생 최후의 전투였습니다.


카알 대공이 이후 병으로 일찍 죽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는 이 휴전 협정을 맺으며 총사령관직을 비롯한 모든 관직에 대해 사표를 제출하고 물러났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이야기해서, 카알 대공은 이 휴전에 대해 월권 행위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에겐 프란츠 황제의 승인없이 이렇게 휴전 요청을 할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병사들의 무의미한 희생을 막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보존을 위해 모든 책임을 지고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카알 대공과 그의 가족입니다.  그가 나폴레옹급의 천재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과거의 영광에만 젖어 현실 감각이 없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에 그래도 그만한 인재가 없었으며, 사실 그의 전략적 판단이 처음부터 옳았습니다.)





Source : The Reign of Napoleon Bonaparte by Robert Asprey

1809 Thunder On The Danube: Napoleon's Defeat of the Habsburgs by Jack Gill

https://en.wikipedia.org/wiki/Wagram_order_of_battle

https://www.napoleon.org/en/history-of-the-two-empires/articles/the-battle-of-wagram/

https://en.wikipedia.org/wiki/Jean_Ambroise_Baston_de_Lariboisi%C3%A8re

http://www.napolun.com/mirror/napoleonistyka.atspace.com/Battle_of_Wagram_1809.htm

https://www.napoleon.org/histoire-des-2-empires/articles/oudinot-en-1809-1810-les-lauriers-de-la-gloire/

https://en.wikipedia.org/wiki/July_R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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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sica
잡상2017.11.03 23:12

장르 : 경험담

주의 : 장세동 찬양글 아님



때가 벌써 5년전, 문재인-박그네 선거가 얼마 안남은 초겨울이었습니다.  회사일로 외근하다 택시를 타고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회사일 중에 골치아픈 문제가 있어서 기분은 과히 좋지 않았습니다.


기사 아저씨께서는 60대 정도로 보이는, 아주 건장하고 퉁퉁한 스타일의 산적처럼 생기신 분이었습니다.  겨울인데도 소매를 좀 걷으셨는데, 굵은 팔뚝에 털이 숭숭 난 것이 마치 서양인 팔뚝 같았어요.  


기사 아저씨 중에는 손님과의 대화를 즐기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 분이 바로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출발하고나서 곧 제게 말을 걸기 시작하시더군요.  공손하면서도 아주 쾌활한 말투셨습니다.  


다만 저는 그때 대화할 기분이 아니라서 그저 짧게 '예, 예' 정도로만 대답했는데, 그래도 기사분은 신이 나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막 하셨습니다.  당연히 선거 이야기도 나왔는데, 저는 문재인 지지자라는 말은 안 드렸습니다만, 이 분은 '박근혜가 되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으하하' 라는 식으로 떠드셨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다보니 이 분이 직업 군인이셨더라고요.   "군인이 좋은 거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도 연금 하나는 빵빵하게 나온다는 건 정말 좋아요" 라고 하시더군요.


전 여전히 뒷좌석에 심드렁하게 늘어져서 '아, 주임원사 정도 하시다 예편하셨나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더 이야기를 듣다보니 이 분이 장교 출신이시더라구요.  그래서 '아, 중령 정도 하시다가 예편하셨나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군대 시절 이야기를 막 하시는데 도중에 "제가 사단장을 할 때였는데 말입니다..." 라고 하시더군요.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뒷자석에서 벌떡 자동 기립하며 언성이 높아졌습니다.  "어익후, 장군님이셨습니까 ?"  그 다음부터는 뒷좌석에서 차렷자세로 들었습니다.


제 태도가 바뀐 것을 느끼셨는지, 이 분이 신이 나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막 늘어놓으시는데, 장세동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자기가 모시던 상관이었다는 거에요.  


자기가 그 양반 밑에 있을 때 자기가 뭔가 잘못한 일이 있었답니다.  자기는 자기 나름대로 화가 나고 해서 '까짓거 옷 벗지 뭐'라는 각오였는데, 장세동(그 분은 물론 이렇게 호칭하지 않았습니다)이 '야 이 개색희야'라며 야구 배트로 자기를 아주 개잡듯이 두들겨 패서 자기가 정말 피투성이가 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두들겨 팬 뒤에 장세동이 백방으로 노력해서 자기가 도중에 정식 징계를 받지 않고 무사히 군 생활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기타 뭐 그런 류의 이야기를 하시다가, 제가 내릴 때 즈음 해서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사단장 하셨던 분이니 최소 투스타 이상으로 예편하셨을 것이고 그러니 연금은 웬만한 월급장이만큼 나올테니까 경제적 필요는 아닐텐데) 자기가 예편하고나서도 '사람은 돈 여부에 상관없이 일을 해야 한다' 라는 신념 하에 택시 운전을 하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자기 개인 택시로 첫 영업을 하기 위해 차를 새벽에 몰고 나오는데, 운이 좋게도 자기가 차를 출근하는 일산 아파트 단지 입구에 웬 코트 차림의 신사가 택시를 기다리고 있더래요.  그래서 '첫 영업부터 재수가 좋구나'라고 생각하며 태웠는데, 태우고보니 바로 자기의 옛 상관인 장세동이더랍니다.   당시 장세동은 방배동인가 암튼 강남 쪽에 살고 있었대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아니 새벽부터 여긴 어쩐일이시냐'라고 물으니 장세동이 이러더랍니다.


'내 새끼가 첫 영업 나가는 날인데 당연히 내가 개시를 끊어줘야 않겠나.'


그래서 새벽부터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그 양반을 기다리고 서있었답니다.



뭐 어쩌면 제가 허풍선이 택시기사 아저씨를 만난 것일 수도 있는데 (가령 처음부터 개인택시 영업을 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 아저씨의 말투와 태도를 직접 경험한 저는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뭐 장세동이야 재판 당시에도 으리의리로 유명한 사람이라서 좀 남다른 데가 있긴 하겠지요.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요즘 진행 중인 5.18 진상 파악이 정말 쉽지 않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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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는 회사 일을 좀 해야 하여, 이런 잡담으로 때웁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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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s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