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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를 몰락시키고 미국 국가에도 나오는 영국 해군 박격포 이야기 원래 전쟁이라는 것은 군대끼리 하는 것입니다만, 전쟁을 하다보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민간인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침략군이 약탈을 하는 경우도 많았겠고, 전쟁통에 논밭이나 과수원이 망가지거나 집이 불타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공격군이 지휘관의 명령하에, 민간인들을 살상 목적을 가지고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일은 과거의 전쟁에서는 없었습니다. 민간인의 살해는 어디까지나 못된 병사들의 개인적인 행동이거나 약탈 과정 중에 일어나는 '불상사' 정도였지요. 가령 징기스칸도 이기고나서 저항에 대한 보복으로 바그다드 주민들을 말살했지, 바그다드를 점령하기 위해 주민들을 죽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부터는 아주 본격적으로 민간인들이 군사 목표의 직접적 대상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이 국.. 2021. 2. 11.
애국과 반란 사이에서 - 1812년 러시아 농노들과 프랑스군 전두환의 군사독재가 한창이던 시절, 혹시 일본군이 쳐들어 온다면 여러분은 독재정권을 타도할 절호의 찬스라고 생각하고 일본군에게 협력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누가 뭐래도 외적을 몰아내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하고 전두환의 지시에 따라 일본군과 싸우시겠습니까? 다소 황당한 설정입니다만, 1812년 나폴레옹의 침공을 받은 러시아의 농노들이 딱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쿠투조프의 후퇴 소식을 접한 알렉산드르가 이런 패배를 접한 러시아 귀족들의 동태에 대해 묻자 '제가 그 일원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라고 솔직하게 대답할 정도로 강직했던 젊은 귀족 볼콘스키(Sergei Volkonsky) 대공은 알렉산드르가 농민들에 대해 묻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폐하 ! 그들에 대해서는 자랑스러워 하셔도 됩니다. 모든 농노들이.. 2021. 2. 8.
안디옥은 어디인가 - 십자군, 로마군, 갈리아인과 사도 바울의 이야기 최근에 광주 안디옥교회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또 다시 집단 감염의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대면 예배를 고집하는 한국 개신교단에 대한 맹비난이 있었습니다. 오늘 글은 그런 비난에 대한 것은 아니고 그냥 안디옥이라는 곳이 뭐하는 곳이길래 이렇게 교회에 안디옥이라는 이름이 많은가에 대한 글입니다. 일단 안디옥은 정말 많이 쓰이는 이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안디옥은 안티오크(Antioch) 또는 안티오키아(Antiochia)를 말하는 것으로서, 유명 게임 스타크래프트에도 프로토스 종족의 고향별 아이우르(Aiur)의 지방명으로 등장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안티오키아(Antiochia)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사후 그의 제국을 나눠가진 부하 장군들 중 셀레우코스(Seleukos)가 세운 도시들의 .. 2021. 2. 4.
편지와 성경 - 짜르는 대체 뭘 하고 있었나 시간을 좀 거슬러 올라가보지요. 쿠투조프가 마치 모스크바를 사수하려는 것처럼 쇼를 하느라 모스크바 외곽에서 병사들에게 삽질을 시키고 있던 9월 11일, 저 멀리 알렉산드르의 궁전이 있는 상트 페체르부르그에서는 시내 모든 성당의 종과 포병대의 축포가 울렸고 온갖 건물들에 있는 대로 조명을 밝히는 등 축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보로디노 전투가 끝난 날 새벽, 쿠투조프가 '보로디노에서 나폴레옹을 무찔렀다'라고 주장한 보고서가 알렉산드르에게 도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상트 페체르부르그 전체가 난리가 나서 위대한 러시아의 승리를 자축했습니다. 크게 기뻐한 알렉산드르는 이 승리에 숟가락을 얹고자, 자신이 고안한 '나폴레옹을 꺾을 추가 작전안'을 담은 편지를 체르니셰프(Chernyshev) 대령에게 들려 쿠투.. 2021. 2. 1.
영화 테넷(Tenet)의 원문 대사 및 해석 * 이 포스트에는 영화 테넷(Tenet)에 대한 중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최근에야 영화 테넷(Tenet)을 보았습니다. 하도 어렵다고 소문이 나서 반쯤 포기하고 봤고요, 2번쯤 보고나니까 비로소 좀 이해가 되더라구요.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한 4번 봤네요. (테넷의 클라이맥스 부분을 선정한 기사 중 참 재치있게 잘 뽑았다고 생각되는 기사 타이틀입니다.) 저는 원래 영어에 서툰 편입니다만, 그래도 같은 영화를 한글 자막 끼고 4번 정도 보니까 일부 구절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영화는 그냥 줄거리와 비주얼 만으로도 가치가 있습니다만 그래도 대사 한줄한줄의 멋도 함께 느끼면 좋거든요. 가령 영화 '신세계'에서 최민식의 명대사인 다음 장면을 영어 자막으로 본다고 생각해보십시요. 그 쿨한 허탈함과 낭패감이 제대로.. 2021. 1. 28.
착각과 현실 - "승리하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 나폴레옹은 누가 뭐래도 비상한 두뇌의 소유자였습니다. 충성스러운 부하였던 랍(Rapp) 장군은 이때 나폴레옹에 대해서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그는 라인 강과 모스크바 사이에 어느 부대가 어디에 있는지 병사 하나하나를 모두 다 기억하고 있었다." 충성심 때문에 과장으로 부풀려진 것이 분명한 평가였지만, 실제로 나폴레옹은 네만 강을 건너기 전에, 그의 60만 대군의 모든 연대들과 그 대령급 지휘관들을 모두 기억했다고 합니다. 모스크바 대화재라는 뜻하지 않은 참변 속에서도 그의 명석한 두뇌는 쉴 사이 없이 상황을 분석하고 평가했으며, 그의 계산에 따르면 그의 그랑다르메가 모스크바에 눌러앉아 겨울을 나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비록 대화재가 많은 것을 파괴하긴 했지만, 모스크바의 창고에는 그의 대군이 적어도.. 2021. 1. 25.
은퇴와 일, 꿈과 저축에 대한 잡상 아직 고등학생이거나 또는 이제 막 대학에 진학하게 될 고교 졸업생들은 어떤 전공을 가질지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는 사실상 첫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제 19살 된 고교 졸업생에게 확고한 꿈이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좀 어려운 일입니다. 저처럼 이제 50이 넘은 사람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성인들도 자기가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바가 뭔지 잘 모르고 사는데 말입니다. (지금 봐도 명짤입니다. 솔직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지 않나요?) 제가 저희 아이나 친척 아이들에게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은 그런 경향이 더 강한데, 취업하려면 공대를 가는 것이 좋다. 단, 공대를 가면 취업은 되는데 맘에 안 드는 곳에 취업이 되더라.' 이건 일반적인 이야기는 아니고 순수하.. 2021. 1. 21.
나폴레옹과 주석 단추 - 도시 전설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최근에 어떤 책 광고에서 재미있는 삽화를 본 김에 이번 주는 잠시 쉬어가는 잡담 코너로 꾸밉니다. 그 삽화는 아래와 같은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프랑스군 병사들의 외투 단추는 주석으로 되어 있었는데, 주석은 극심한 추위 속에서는 화학적 성격이 변하여 가루로 부서지기 때문에, 1812년 러시아의 추위 속에서 군복 단추가 다 떨어져 나간 병사들이 옷을 여미지 못해 얼어죽었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의 1812년 러시아 원정이 망한 이유가 주석 단추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는 꽤 오래 전에 나온 것입니다. 지금도 한글 검색만 해봐도 그런 이야기를 다룬 포스팅이 많습니다. 실제로 주석에는 특이한 성질이 있습니다. 금속이 결정체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실 분들도 많겠습니다만, 철이건 구리건 금속은 상온에서 각각 .. 2021. 1. 18.
교회와 십일조는 너희를 구원하지 못한다 - There But For Fortune 가사 해설 저는 불만이 많고 믿음이 약하기는 해도 기독교인입니다. 구원예정설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수십년 전 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배우기는 했습니다만, 그때는 그게 무슨 얼토당토 않은 개솔휘인가 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비교적 최근인 몇 년 전에야 그에 대해 좀 읽어보게 되었는데, 제가 이해한 그 핵심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신의 은총 없이는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며,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면 우리의 믿음이 강하거나 우리의 선행이 충분히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다." 즉 교만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불교처럼 개인의 노력으로 깨달음을 얻고 해탈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신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기독교 교리의 핵심인 셈입니다. 저는 어느덧 매주 교회를 다닌지 2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만, 여러 교회에서 단 .. 2021. 1. 14.
복덕방의 호구 - 조급한 나폴레옹 이제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던 나폴레옹에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알렉산드르와 평화 조약을 맺고 파리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애초에 그러려고 모스크바까지 점령한 것인데, 러시아인들이 모스크바에 불까지 지르고 도망친 것을 보면 도저히 평화 조약을 맺으려 할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흥정은 해봐야 했습니다. 문제는 이쪽이 흥정을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저쪽에 알려야 거래가 이루어질텐데, 그걸 저쪽에 알릴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이 부른 사람이 투톨민(Ivan Akinfevich Tutolmin)이라는 이름의 고아원장이었습니다. 투톨민은 원래 러시아군에서 장군까지 지내다가 퇴역한 노인이었는데, 모스크바 시내의 대형 고아원 원장직을 맡고 있었고, 원아들을 내버릴 수가 없어.. 2021. 1. 11.
군함을 pay off 한다는 건 무슨 뜻일까? 미국이나 영국 해군 관련 영문 기사를 읽다보면 pay off 라는 표현을 가끔 읽게 됩니다. '지불하고 끝내다' 라는 뜻의 이 표현은 대체로 다음 사진 속의 기사에서처럼, 군함에 사용될 때는 '퇴역시킨다' 라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군함을 퇴역시키는데 대체 무슨 돈을 내길래 pay off라는 표현을 쓰는 것일까요 ? 이건 과거 영국 해군의 군함 운용 방식과 전통에서 비롯된 표현입니다. 근대 이전에는 원래 상비군이라는 것이 없었습니다만, 특히 해군의 경우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영국 해군 군함의 이름 앞에 붙는 HMS (His/Her Majestic Ship)이라는 호칭의 기원도, 해전을 위해 동원된 함대 내의 선박 중에서 민간 소유였다가 임시로 동원된 배와 원래부터 국왕 소유였던 배를 구분하기 위해 붙여졌던.. 2021. 1. 7.
상트 페체르부르그를 향하여 ? - 고민 속의 나폴레옹 모스크바로 돌아온 나폴레옹이 구상한 기본 방향은 다음 목표를 찾아 전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물은 바로 알렉산드르의 궁전이 있는 러시아의 공식 수도 상트 페체르부르그였습니다. 나폴레옹은 그랑다르메의 주력 군단들은 모스크바에 그대로 두고, 외젠의 제4 군단만 차출하여 상트 페체르부르그로 진격할 생각이었습니다. 주력 군단들을 모스크바에 주둔시키는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외젠의 군단만으로 충분할 것이라고 판단되었고, 둘째, 남쪽으로 후퇴한 쿠투조프의 러시아 야전군으로부터 모스크바를, 정확하게는 모스크바의 보급품 창고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 상트 페체르부르그는 군사적 방비가 든든한 편은 아니었습니다. 러시아군의 쓸만한 병력은 모두 쿠투조프의 휘하에 있었으므로, 상트 페체르부르그와 나.. 2021. 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