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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모함 관련 이모저모 (1) 1982년 포클랜드 전쟁때 아르헨티나 공군의 주목표는 물론 영국 항모 Hermes와 Invincible. 그러나 격침시키려면 먼저 어디 있는지를 찾아야 하는데 조기 경보기가 없는 상황에서는 그게 불가능. 아르헨 공군이 쓴 방식은 포트 스탠리에 TPS-43 레이더를 갖다놓고 이걸로 영국 해리어기들의 비행을 탐지한 뒤 대충 그쪽 방향으로 비행기를 날려보내는 것. 영국 항모들도 부지런히 움직였으므로 그런 방식으로는 포착이 쉽지 않았고 결국 아르헨 공군은 한번도 두 항모의 위치를 제대로 포착한 적 없었음. 영국 해군도 아르헨 공군이 항모를 찾지 못하게 하려고 항모 앞에 구축함들을 깔아놓음. 아르헨 공군기들은 보이지 않는 항모를 찾기보다는 당장 눈 앞의 구축함을 공격하는 것을 선택. 그 때문에 항모들은 안전했으나.. 2021. 6. 3.
승자의 번민, 패자의 고뇌 - 3개의 선택지 말로야로슬라베츠 전투는 분명히 나폴레옹의 승리였으나 나폴레옹은 꼭 웃을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이 전투에서 그랑다르메는 약 6천의 병력을 잃었습니다. 당시 말로야로슬라베츠 인근에 모인 그랑다르메 병력은 약 7만이었는데, 그 중 10% 정도를 잃은 것이었고 전투에 투입된 2만7천 중 20%를 넘는 사상자를 낸 셈이었습니다. 점점 격렬해지는 전투 양상 때문에 특히 아스페른-에슬링 전투 이후로는 승전한 군대의 사상률도 그 정도 나오는 것이 보통이라고 하지만 1806년 프로이센 원정 때까지만 하더라도 이건 패전할 때나 나오던 사상률이었습니다. 물론 러시아군은 더 큰 피해를 입어 약 8천 정도의 사상자를 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군은 계속 증원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러시아군이 이 전투에 동원한 354문이라는 막대.. 2021. 5. 31.
WW2에서의 스텔스(?) 전투기 Fulmar 이야기 제2차세계대전에 일본이 참여한 직후 만들어진 영국의 홍보 포스터에는 영국군 전투기가 일본군 항공기를 격추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영국군을 대표하여 등장하는 전투기의 모습은 영국이 자랑하는 스핏파이어(Spitfire)가 아니고, 좀더 투박하고 긴 2인승 항공기입니다. 폭격기도 아니고 전투기가 2인승이라니, 대체 이 전투기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 전투기는 1940년에 도입된 Fairey Fulmar라고 하는 전투기입니다. 전투기 치고는 독특하게도 2인승 맞고, 1938년에 도입된 스핏파이어 전투기보다도 더 신형 전투기입니다. 그리고 스핏파이어와 동일한 롤스로이스 멀린(Rolls Royce Merlin) 엔진을 장착했습니다. 그러나 성능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일단 속도가 느려서 독일 .. 2021. 5. 27.
이탈리아 사내들의 열정 - 말로야로슬라베츠 전투 말로야로슬라베츠를 선점당한 독투로프는 아차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외젠의 이탈리아 군단 주력 부대는 아직 말로야로슬라베츠에 방어진지를 구축한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약 2개 대대 정도만이 마을을 점거하고 있었고, 나머지 대부분의 부대는 루즈하 강의 건너편인 북쪽 강변에 캠프를 치고 있었습니다. 루즈하 강은 말로야로슬라베츠에서 북쪽이 열린 반원형을 그리며 크게 휘어 북서쪽을 향해 흐르는 강이었습니다. 말로야로슬라베츠는 그 반원호의 정점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는 마을이었는데, 나폴레옹이 메딘(Medyn)을 거쳐 서쪽 스몰렌스크로 가려면 루즈하 강을 건너야만 했고, 그러기에 가장 좋은 곳이 바로 여기 말로야로슬라베츠에 놓인 다리였습니다. (루즈하 강의 대략적인 지도입니다. 우하단의 만곡부에 말로야로슬라베츠가 있습.. 2021. 5. 24.
영국군은 레드를 입는다 영국 육군은 별명은 redcoat 입니다. 붉은색 코트는 꼭 영국군만 입었던 것은 아닙니다만, 특히 미국 독립전쟁 때 미국인들에게 영국군 = '붉은 우와기'로 알려진 이래, 레드코트는 곧 영국 육군을 뜻하는 대명사로 굳어졌습니다. 생각해보니 영국 축구 국가 대표팀도 붉은색 저지를 입네요. 현재 전세계에서 붉은색 군복을 입는 군대는 전혀 없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자동화기가 휩쓸고 다니는 현대의 전장에서 그렇게 눈에 잘 띄는 차림새를 하고 돌아다니면 당장 벌집이 될 테니까요. 하지만 나폴레옹의 위명이 천하를 뒤덮던 19세기초 유럽 전장에서는 붉은색 군복을 입고 다녀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머스켓 소총의 형편없는 유효 사거리와, 또 1분에 2발 정도라는 느린 발사 속도로 인해 위장색이 전혀.. 2021. 5. 20.
상대는 "쿠투조프+나폴레옹" - 말로야로슬라베츠를 향하여 나폴레옹이 10월 18일 저녁부터 모스크바에서 병력을 빼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불과 10시간도 안되어 타루티노의 쿠투조프에게 그대로 전달되었습니다. 이 기쁜 소식을 전달한 것은 볼고프스키(Bolgovsky)라는 이름의 중위였는데, 새벽에 말을 달려온 그는 참모들에 의해 쿠투조프의 침실로 직접 안내되었습니다. 침실에 가보니 자다 일어나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프록코트를 어깨에 걸친 채 침대에 앉은 노친네가 '말해보게 친구'라며 소식을 재촉했는데, 프랑스군이 철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쿠투조프는 과장된 표정과 몸짓으로 흐느끼며 방 한구석의 성상을 향해 "주여 감사합니다, 드디어 저의 기도를 들어주셨군요. 이제 러시아는 구원받았습니다!" 라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쿠투조프와의 착각과는 달리, 나폴레옹은 적.. 2021. 5. 17.
나폴레옹 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그 놀라운 유사성 최근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이 나폴레옹을 추모하며 '그의 공과 과를 모두 끌어안아야 한다'라고 했다지요? 전통적으로 프랑스의 지도자들은 나폴레옹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어지간하면 회피합니다. 그만큼 기피 인물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유가 있지요. 나폴레옹은 사실상 당대에는 히틀러급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과거를 통해 배웁니다. 그래서 모든 나라의 중요 교과목에는 반드시 역사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요. 실제로 많은 역사가 되풀이되었고, 이는 특히 주식 시장에서 그렇습니다. 에드워드 챈슬러라는 영국 기자가 쓴 "금융투기의 역사" (국일증권경제연구소 펴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정말 놀랍다. 어떻게 똑같은 덫에 한번도 빼먹지 않고 걸.. 2021. 5. 13.
욕망의 무게 - 배낭과 수레 모스크바를 떠나는 그랑다르메의 모습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은 사람과 말의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병사들의 혈색이 붉그스레 건강해 보이는 것에 비해, 마차와 포가를 끄는 말들의 모습은 눈에 띄게 마르고 병약해보였습니다. 보로디노 전투에서 특히 기병대의 손실이 컸을 뿐만 아니라 원정 내내 고질적이던 사료 부족 문제가 모스크바에서도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마차와 수레가 너무 많았습니다. 포병대에 딸린 포가와 탄약 수송차, 그리고 대대마다 딸린 솥단지와 머스켓 탄약포 등의 짐을 실은 마차 등 규정된 군용 마차 외에 어중이떠중이 민간용 마차와 수레가 최저 1만5천대에서 최대 4만대까지 따라나섰던 것입니다. 총병력수가 10만도 안되는데 마차와 수레가 이렇게 많다는 것은 .. 2021. 5. 10.
페이스북이 우리의 오프라인 대화를 도청한다??? 최근에 한다리 건너 아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친구 사이인 이들이 잡담을 했는데 그 가운데 필라테스 이야기를 꽤 많이 했더랍니다. 그런데 그 중 한명이 집에 돌아가서 보니, 여태까지 본인은 한번도 필라테스 관련하여 검색을 한 적이 없었는데도 그날 페이스북에 필라테스 관련 커머셜이 뜨더랍니다. 이것을 보고 '역시 페이스북이 우리 스마트폰을 통해서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 있어'라고 친구들은 확신을 하게 되었답니다. 또 그에 대해서 페이스북이 시인을 했다는 기사를 봤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정말 페이스북이 우리의 오프라인 대화를 엿듣고 있을까요? 그리고 페이스북이 그 사실을 시인한 적이 있었을까요? 당연히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아마 IT 계열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그런 괴담이 얼마나 터무니 없는 것인지 .. 2021. 5. 6.
모스크바를 떠나며 - 병사들의 환호 타루티노 전투 소식을 들은 나폴레옹은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할 정도로 흥분했습니다. 그는 수여 중이던 레종 도뇌르 훈장들을 거의 뿌리다시피 서둘러 나눠주고는 아직 세부 계획이 진행 중이던 그 다음날 군부대들의 모스크바 철수를 서둘러 지시했습니다. 그는 이 과정 중에 무척 조바심을 내며 안절부절했는데, 최근 뭔가 서류를 들고 마침 이 자리에 있었던 보세 추기경 (Louis-François de Bausset)은 그 모습에 대해 훗날 회고록에서 '여태까지 외면해오던 모든 진실을 한꺼번에 직면한 사람의 모습'이라고 평했습니다. (보세 추기경입니다. 추기경이 뭔 이유로 최전선 모스크바까지 왔었을까 궁금하신가요? 보로디노 전투 직전 나폴레옹이 그의 아들 로마왕의 초상화를 배달받고 무척 기뻐했다는 이.. 2021. 5. 3.
"이번에는 다르다"... 과연? - 금리상승과 인플레 경고 오늘 포스팅은 미디엄(Medium.com)에 실린 소렐(Sylvian Saurel)이라는 사람의 인플레로 인한 금융 위기 경고문입니다. 제가 이 사람 말을 꼭 믿어서 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 사람의 글에 실린 현재의 인플레 관련 수치들이 흥미로와서 발췌 번역했습니다. 실제로 미국 물가가 이렇게 많이 올랐는지 제가 개인적으로 확인해보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이런저런 전문가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래 포스팅에서 우려하는 것과는 반대로) 과거 닷컴 버블과는 달리 현재 테크 기업들은 이윤을 내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진짜 다르다고 주장하더군요. 뭐 판단은 각자가 하셔야 합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직접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ssaurel.medium.com/this-time-will-be-no-differe.. 2021. 4. 29.
쿠투조프, 두 도시를 뒤흔들다 - 타루티노 전투 타루티노에 주둔한 쿠투조프의 러시아군이 충분한 보급과 병력 보충을 받아 점점 강해지고 있다는 말씀은 이전에 드렸습니다. 타루티노에 약 4만의 패잔병들을 이끌고 도착한 쿠투조프는 직후부터 매일 장비와 보충병을 받아 약 4주 후에는 8만8천의 정규 병력과 함께 1만3천의 돈(Don) 강 유역 출신의 코삭 기병대, 그리고 기타 비정규 기병대 1만5천을 거느리게 되었고, 620문이 넘는 포병대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정도 병력이면 모스크바로 진격하여 나폴레옹과 다시 한번 자웅을 겨뤄볼만 했습니다. 그러나 물론 쿠투조프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짜르 알렉산드르가 친절하게도 이 부대를 이렇게 저 부대를 저렇게 움직여 나폴레옹을 포위 섬멸하는 상세한 작전 계획서를 작성하여 보내주며 '이대로만 하면 러시아의 승리.. 2021. 4.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