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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395

드레스덴을 향하여 (9) - 자만은 구멍을 낳고 나폴레옹이 블뤼허의 슐레지엔 방면군을 먼저 제거하기로 마음 먹고 동쪽으로의 전격전을 기획하면서, 그는 당연히 남쪽 보헤미아 방면군이 자신이 자리를 비운 드레스덴 또는 그 배후지인 라이프치히를 공격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따라서 지난 편에서 보셨듯이, 그는 이중삼중으로 드레스덴의 방어를 든든히 준비했습니다.   말이 쉬워서 이중방어 삼중방어이지, 그저 무작정 대규모 병력을 드레스덴에 배치하고 참호를 파고 요새를 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어차피 방어에 배치할 병력은 한정되어 있고 그나마 2선급 부대가 대부분이었으니까요.  따라서 방어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적이 어디로 침투해올 것인지 예상하고 그 길목을 틀어막이야 했습니다.  다행히 드레스덴을 수도로 하는 작센 왕국과 보헤미아 사이에는 일련의.. 2024. 2. 5.
드레스덴을 향하여 (8) - 대환장 파티 8월 21일의 뢰벤베르크 전투에서 연합군이 많은 사상자를 내고 후퇴하면서도 단 한 명의 포로도 내지 않았다는 것은 슐레지엔 방면군 병사들의 질적 수준이 황급히 징집된 병사들로 이루어진 그랑다르메보다 더 높았다는 것을 뜻했습니다. 사람이 미우면 그 사람이 손에 쥔 숟가락도 밉다더니, 후퇴하여 한숨을 돌린 이후 블뤼허와 그나이제나우는 평소 밉상이던 요크 장군 휘하의 국민방위군(Landwehr) 부대들의 어설픈 전투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부하들이 얼마나 급조되어 끌려온 병사들인지 잘 알고 있던 요크 장군은 이 국민방위군 부대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첫 전투를 훌륭하게 싸워냈다고 칭찬했습니다. 가령 뢰벤베르크 인근의 전투에서 이 국민방위군 부대들 중 유격병 대대에게 주어진 임.. 2024. 1. 29.
드레스덴을 향하여 (7) - 분위기 파악 못하는 블뤼허 8월 20일 아침, 나폴레옹은 지타우(Zittau)에서 보헤미아 방면군이 드레스덴을 노릴 경우 어떻게 지타우 일대에서 막을 것인지를 살펴본 뒤 괴를리츠(Görlitz)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발마로 들어온 슐레지엔 방면으로부터의 급보에는 막도날이 가지고 있던 암호키가 적군에게 탈취되었다는 소식이 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전날인 19일 시버나이헨(Siebeneichen) 마을에서 코삭 기병들이 막도날의 개인 짐마차를 노획할 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당시 나폴레옹이 사용하던 암호키가 어떤 형태였는지는 모릅니다. 아마도 16세기부터 프랑스 육군에서 발전되어온 비쥬네르(Vigenère) 암호를 변형한 것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데, 그랬다면 암호키라는 물건은 아마도 몇가지 키워드가 적힌 종이였을 것입.. 2024. 1. 22.
드레스덴을 향하여 (6) - 늙은 블뤼허의 슬픔 나폴레옹이 드레스덴과 그 일대의 방어 작전을 꼼꼼히 준비하며 지타우(Zittau) 일대를 돌아보고 있는 동안, 블뤼허는 그랑다르메를 향해 서둘러 서쪽으로 진격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는 자신이 나폴레옹의 제1 목표라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조미니의 진술에 따라, 블뤼허는 자신이 대면하고 있는 엘베강 일대에서 나폴레옹은 수비 태세를 유지할 것이고 나폴레옹 본인은 먼저 베르나도트의 북부 방면군을 공격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블뤼허는 나폴레옹이 모르는 군사 기밀 하나를 더 알고 있었습니다. 바로 7월에 작성된 트라헨베르크 의정서(Trachenberg Protocol)에 따른 보헤미아 방면군의 작전 목표였습니다. 그에 따르면, 보헤미아 방면군은 나폴레옹의 후방이자 그랑다르메의 독일내 거.. 2024. 1. 15.
드레스덴을 향하여 (5) - 드레스덴의 삼중 방어 이 무렵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가 이미 연합군 측에 붙었다는 것을 집요하게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는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보고 들으려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현상인데, 매우 좋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만큼 오스트리아의 참전이 나폴레옹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었습니다. 8월 16일에는 보헤미아에 심어둔 스파이로부터 러시아군이 보헤미아로 이미 들어왔다는 소식이 날아왔지만, 나폴레옹은 이런 소식조차 좀처럼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전이 허용되는 날짜인 8월 17일이 되자, 나폴레옹은 즉각 럼부르크(Rumburg, 체코어로 Rumburk)에 근위대 1개 기병사단과 1개 보병사단을, 그리고 폴란드 병사들로 구성된 제8군단과 제4기병군단을 지타우(Zittau)로 투입하여 남쪽의 보헤미아 국경 안.. 2024. 1. 8.
드레스덴을 향하여 (4) - 나폴레옹의 계산 바로 며칠 전까지 네의 제3군단 수석 참모를 맡고 있던 조미니는 당연히 그랑다르메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그때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귀족들과 신사들이라고 하더라도, 그에게 그랑다르메의 병력 배치 현황과 나폴레옹의 작전 방향을 묻지 않는다면 그거야말로 직무유기일일 것입니다. 물론 조미니를 고문실에 가둬놓고 두들겨 패가면서 취조한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이 잡담 형식으로라도 조미니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을 것입니다. 문제는 조미니가 어느 정도까지 대답을 했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좀 엇갈립니다. 조미니 본인은 물론 그에 대해 자신이 그랑다르메의 군사 기밀을 적에게 술술 불었다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들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 지극히 .. 2024. 1. 1.
드레스덴을 향하여 (3) - 프라하의 좌청룡 우백호 조미니와 한 자리에 함께 나타난 것은 아니었지만 같은 날 프라하에 있던 알렉산드르의 사령부에 나타난 거물은 바로 모로(Jean Victor Marie Moreau)였습니다. 모로는 제2차 대불동맹전쟁을 호헨린덴(Hohenlinden) 전투로 한 방에 끝내버린 프랑스의 전쟁 영웅이자 열혈 공화주의자로서, 동시에 나폴레옹이 황위에 오르기 전 그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라이벌이었습니다. (전에 읽어보시지 않으셨다면 모로와 호헨린덴 전투에 대해서는 https://nasica-old.tistory.com/6862505 를 참조하세요.) (모로입니다. 언제 그림인지는 불분명하지만 프랑스 군복을 입고 있습니다. 머리가 마치 실버 블론드처럼 하얗게 그려졌습니다만, 이는 당시 이미 약간 구시대적 스타일로 취급되던 분을 칠.. 2023. 12. 25.
드레스덴을 향하여 (2) - 거물급 망명자 스트리가우(Striegau)에서 랑제론의 러시아 전위대는 저 멀리서 정말 혼자서 길을 가던 프랑스군 한 명을 발견했습니다. 그렇쟎아도 제발 한 놈만 걸려라면서 애타게 프랑스군을 찾아 헤매던 러시아군은 그 프랑스군을 잡으러 뛰어갔는데, 그 프랑스군도 의외로 반갑게 러시아군에게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군복을 보니 예사 사병이나 장교가 아니라, 장군이었습니다. 장군이 혼자서 이런 중립지대에서 대체 뭘 하고 있나 싶었는데, 그 스스로 밝히는 이름은 조미니(Antoine-Henri Jomini), 상당히 유명한 전략가였습니다. (1811년 당시 조미니의 모습입니다. 1813년 그의 나이는 불과 34세, 정말 한창 나이였습니다.) 아직 중립지대인 이 지역에 원래 존재해서는 안되는 러시아군 부대를 만나 약간 놀랐던 조.. 2023. 12. 18.
드레스덴을 향하여 (1) - 단 한 명의 프랑스군을 찾아서 슐레지엔 방면군 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블뤼허와 그나이제나우에게는 밤잠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건 바로 자신의 임무를 가로막는 중립지대의 존재였습니다. 슐레지엔 방면군에게 주어진 임무는 간단했습니다. 보헤미아로 쳐들어갈 것이 분명한 그랑다르메의 측면에 붙어 감시하며 괴롭히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자면 먼저 적과 접촉을 해야 했는데, 적과 자신의 사이에는 하루 이상의 행군거리인 수십 km의 중립지대가 있다보니 그게 불가능했습니다. 특히 연합군 모두가 전투가 재개되자마자 나폴레옹은 보헤미아, 그러니까 남서쪽으로 쳐들어갈 것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었으므로 블뤼허는 더욱 애가 탔습니다. 원래 휴전이 종료되는 8월 10일 새벽부터 양측은 병력을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었고, 전투는 적.. 2023. 12. 11.
새로운 전쟁의 준비 (8) - 수프와 은화 6월 말, 사실상 평화의 희망이 사실상 날아가버린 상황에서 나폴레옹측과 연합군측은 각자 맹렬한 전쟁 준비에 들어 갔습니다. 전쟁 준비는 공허한 애국심으로 관료들의 책상 위에서 준비되는 것이 아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고통은 프랑스는 물론 독일 전체가 공유해야 했습니다. 약 20만의 러시아-프로이센 병력이 주둔하던 슐레지엔도 그 대군을 먹이기 위해 주민들이 큰 고초를 겪고 손해를 보아야 했습니다. 이미 몇 개월 전, 이번에야말로 나폴레옹을 몰락시키겠다면서 프로이센 출정군에게 거창하게 전쟁 준비를 시켜주느라 많은 물자와 돈을 갖다 바쳐야 했던 주민들로서는 이미 맞은 곳을 다시 얻어 맞는 꼴이어습니다. 이때 즈음 프로이센 총리 하르덴베르크는 공황 상태를 겪고 있었습니다.. 2023. 12. 4.
새로운 전쟁의 준비 (7) - 4만의 사나이 여태까지 보신 연합군 사정 중에서 핵심을 고른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를 향해 침공을 개시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연합국 모두의 의견이 일치 2) 3개군을 편성하되, 예상되는 나폴레옹의 침공 방향에 따라 그 중 보헤미아 방면군에 주력을 집중 3) 연합국 누구도 단독으로 평화 협정을 맺지 못하도록 3개 방면군 각각을 여러 국가의 혼성 부대로 편성 4) 군복과 장비에는 부족함이 많았지만 야전군 병력은 51만으로 충분했으며, 군량은 비교적 넉넉한 상황 이와 대비하여, 나폴레옹의 준비 상황은 어땠을까요? 먼저, 나폴레옹이 8월 중순까지 끌어모을 수 있었던 병력은 약 44만이었습니다. 여기에는 37만2천의 보병과 3만의 포병 및 공병, 그리고 그토록 애타게 원했던 기병대가 .. 2023. 11. 27.
새로운 전쟁의 준비 (6) - 빵을 굽는 군대와 굽지 않는 군대 랑제론을 비롯한 슐레지엔 방면군 소속 러시아군 장교들의 감정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는 금방 러시아군 총사령관 바클레이에게까지 들어갔습니다. 바클레이도 보헤미아 방면군 소속으로서 오스트리아 슈바르첸베르크의 밑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도 그게 싫어서 휘하 병력이 보헤미아로 들어간 뒤에도 끝까지 현지로 떠나지 않고 최대한 라이헨바흐에서 버티고 있는 처지였습니다. 바클레이는 동병상련의 감정도 있고 해서, 보헤미아로 떠나기 직전 랑제론을 불러 '짜르께서는 랑제론 당신의 능력과 역할을 주목하고 계신다'라는 정도의 격려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뜻밖의 효과를 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랑제론은 바클레이와의 인터뷰 이후 자신이 블뤼허의 부하라기보다는 일종의 감시인으로 슐.. 2023. 1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