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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316

화장실 이야기 - 고대 그리스에서 나폴레옹까지 서양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를 '꿈의 나라'라고 하며 동경합니다. 서양의 문화적 토대가 처음으로 이루어졌고, 또 민주주의의 시발점이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고대 그리스가 그런 꿈의 나라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서는 화장실이 어땠을까 ? 간단히 말하면 이나영이나 한예슬도 화장실에 갈까 정도의 생각이지요. 답부터 말하자면, 고대 그리스의 도시 중 그래도 가장 화려하고, 또 가장 잘 발굴된 도시인 아테네에도, 공중 화장실은 없었습니다. 또 집집마다 화장실이라고 할 만한 것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테네인들은 어떻게 용변을 보았을까요 ? 뭐, 뻔하지 않습니까 ? 요강을 썼습니다. 영어로는 chamber pot 이라고 하지요. 헬라어로는 .. 2019. 12. 5.
잘못된 시작 - 빌나(Vilna)에서의 프랑스군 네만 강을 건너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나(Vilna, Wilna, Vilnius)에 입성하기까지 총 한 방 쏘지 않았던 프랑스군은 겉으로 보기에는 승승장구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프랑스군이 빌나에 입성할 때, 빌나 주민들의 반응을 봐도 그랬습니다. 당시 빌나는 러시아의 직접 통치 하에 들어간지 약 20년이 채 안 된 상태였었는데, 러시아계 관료들이나 러시아 측에 붙었던 폴란드계 귀족들은 러시아군이 철수할 때 그 뒤를 따라 함께 피난을 가버린 뒤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남아있던 폴란드-리투아니아계 주민들은 프랑스군을 해방군으로서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당시 폴란드 창기병 부대를 이끌고 빌나에 거의 처음으로 입성했던 로만 솔틱(Roman Soltyk) 백작의 목격담에 따르면 거리와 광장은 환영 인파로 가득했고 창.. 2019. 12. 2.
1812년 전쟁의 시작 - 네만 강을 넘다 6월 23일 아침, 나폴레옹은 미리 준비해둔 감동스러운 연설을 통해 '제2차 폴란드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이 전쟁을 통해 지난 50년 간 러시아가 유럽에 보여주었던 오만한 영향력을 분쇄할 것이라고 병사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당연히 병사들은 'Vive l'Empeurer !'를 외치며 호응했고, 나폴레옹을 속으로 싫어하던 장교들과 병사들마저도 그 광경에는 감탄해마지 않았습니다. 그 날 저녁부터 나폴레옹은 소수의 부하들만 데리고 네만 강가를 달리며 적절한 도하 장소를 물색했고, 마침내 밤 10시에 제13 경보병 연대가 보트를 이용하여 어둠 속에 조용히 강을 도하했습니다. 네만 강 동쪽 강변을 장악한 이들의 엄호 속에서 에블레(Jean Baptiste Eblé) 장군의 공병대가 3가닥의 부교를 놓기 시작했습니다.. 2019. 11. 25.
1812년 나폴레옹을 기다리는 러시아군의 내부 사정 (제1편) 나폴레옹의 수십만 대군이 온갖 말썽과 이야기꺼리 속에 착착 네만 강 서쪽에 집결하는 동안, 알렉산드르와 러시아군은 뭘하고 있었을까요 ? 나폴레옹의 침공에 대비하여 모스크바의 성벽을 강화하고 있었을까요 ? 일단, 로마노프 왕가의 왕궁은 모스크바가 아니라 상트-페체르부르크(Sankt-Peterburg, Санкт-Петербу́рг)에 있었습니다. 1712년 표트르(Pyotr) 대제가 모스크바였던 수도를 상트-페체르부르크로 바꾼 것이었지요. 당시 인구수도 모스크바와 상트-페체르부르크가 각각 30~40만 정도로 비슷비슷했습니다. 그러니까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를 최종 목표로 삼은 것은 거기가 러시아의 수도이거나 가장 큰 도시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역사적인 지위와 함께 모스크바의 지리적 위치가 러시아 제국의 심장.. 2019. 10. 28.
1812년 그랑다르메(Grande Armée)의 내부 상황 (마지막편)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징집된 병사들의 사기는 폴란드 내로 진입하기 전까지는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번에 새로 징집된 어린 병사들은 나폴레옹이 장려한 새로운 공립학교 제도 하에서 황제 폐하에 대한 충성심을 제도적으로 교육받고 성장한 아이들이다보니 더욱 그랬습니다. 병사들은 실질적인 혜택(?)도 꽤 쏠쏠히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원정이 이어질 때마다 프랑스 국민들은 남편과 아들들이 (금지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점령지에서 노략질해온 돈과 귀중품을 가져오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운이 좋지 않아 싸움터에서 횡재를 올리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전쟁으로 난리가 난 적국의 마을과 도시에서는 꽤 값이 나가는 물품을 헐값에 사들인 뒤에 관세도 물지 않고 고향 마을로 가져와서 꽤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 2019. 10. 21.
1812년 그랑다르메(Grande Armée)의 내부 상황 (4편)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건 진짜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명언입니다. 배가 고픈 사람들에게서 염치, 질서, 관용, 정의 따위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그들이 군복을 입고 있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단치히나 기타 주요 군수 창고에 얼마나 많은 군수품이 쌓여 있든 당장 배가 고픈 군대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제11 경보병 연대 소속 쥬세페 벤투리니(Giuseppe Venturini)라는 피에몬테(Piemonte) 출신의 중위는 자신이 수행하는 '징발'로 인해 2~3백 가구가 당장 거지꼴이 되었다면서 마음이 아프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징발 결과에 대해 마음 아파하는 장교가 수행하는 징발은 그나마 양반이었습니다. 원래 프랑스군의 현지 조달 및 징발 기술은.. 2019. 10. 14.
1812년 그랑다르메(Grande Armée)의 내부 상황 (1편) 1812년 5월18일, 아직 폴란드 푸오츠크(Płock)에 있던 나폴레옹의 의붓아들이자 이탈리아 왕국의 부왕(viceroi)인 외젠 보아르네(Eugène de Beauharnais)가 당시 임신 중이었던 부인 아우구스타(Auguste Amalie Ludovika Georgia von Bayern)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전쟁이 실제로 발발할 거라고는 믿지 않는다는 거 아시오 ? 사람들 말로는 전쟁이 일어날 턱이 없다고 하오. 이유는 양측 모두 전쟁으로 얻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라오. 결국 협상으로 이 상황이 종결될 것이라고 다들 말하고 있소." (바이에른 왕국의 공주 아우구스타입니다. 외젠과의 결혼은 순수하게 정략적으로 맺어진 것이었으나, 외젠이나 아.. 2019. 9. 16.
러시아 침공을 위한 병참 준비 - 무엇이 문제였을까 ? (마지막편) 2002년 3월 15일,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Vilnius) 교외의 공사 현장에서 많은 수의 사람 뼈가 발견되었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소련 시절 KGB가 암장을 한 정치범들의 시신이거나 혹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이 학살한 포로 또는 유태인들의 시신이 아닐까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발굴을 더 진행해본 결과 나폴레옹 시대의 군복과 머스켓 소총 등이 나오면서 이 3천여 구가 넘는 해골들이 1812년에 죽은 나폴레옹의 병사들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20여 명을 제외하고는 이 해골의 주인은 모두 남성이었고, 대부분은 죽을 때 20대의 나이였습니다. 이 해골들을 연구한 결과, 이 해골들 중 상당수에서 질소 동위원소의 양이 매우 높게 나왔습니다. 질소 동위원소는 단백질과 상관이 많은.. 2019. 9. 9.
러시아 침공을 위한 병참 준비 - 무엇이 문제였을까 ? (4편) 1812년 러시아 원정에 나서던 당시의 나폴레옹은 당대의, 아니 그 이후의 누구보다도 당시 상황과 군사 전략 등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 중의 전문가였습니다. 훗날 그가 러시아 원정 작전 중 저지른 실수와 오판 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왈가왈부 떠들지만 그 당시의 지식과 기술로는 어쩔 수 없는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이번에 다룰 문제도 정말 어쩔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흔히 나폴레옹이 보급 문제를 등한시해서 혹은 러시아의 추위를 대비하지 않아서 참패했다고 하지만 여태까지 보셨다시피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나폴레옹의 준비가 어느 정도로 철저했는가를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부교병 연대(régiment des Pontonniers)까지 철저히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는 언듯 보면 광활한 초원으로 된 나라 같지.. 2019. 9. 2.
번외편) 1812년 - 해로를 통한 원정은 어땠을까 ? 오늘은 번외편으로, 1812년 러시아 원정 실패 원인 중 하나로 '원인'님께서 작성해주신 아래 댓글과 함께 거기에 대한 제 짧은 의견을 덧붙이겠습니다. 이 글은 절대 '원인'님 생각이 틀렸고 제 생각이 맞다는 내용이 아니며, 그냥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점을 먼저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원인'님께서 작성해주신 글 중 핵심 부분은 아래 부분입니다. 다부의 작전은 발틱해의 해상운송을 통해서 리보니아에 거점을 만들고 그 리보니아로부터 상트뻬쩨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공격하는 것인데, 나폴레옹이 다부의 건의를 무시하고 바로 육로직공을 선택한 것이 러시아 원정의 패배원인 중 하나입니다. 여기에 대해 몇몇 분이 영국 해군은 그냥 보고만 있었겠느냐는 댓글을 다셨고, 거기에 대해 다시 '원인'님께서 달.. 2019. 8. 15.
러시아 침공을 위한 병참 준비 - 무엇이 문제였을까 ? (3편) 나폴레옹의 기존 작전들의 특징을 동물에 비유하자면 딱 생각나는 것이 바로 문어입니다. 그는 휘하 군단들을 문어발처럼 넓게 펼친채 전진하다가, 적 주력부대의 존재가 그 촉수 중 하나에 걸려들면 정말 먹잇감을 건드린 문어처럼 다른 촉수들이 벼락같이 그 방향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니 뭔가 멋있어 보이지만, 이런 작전 형태에는 본질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분산된 채 전진하다가 강력한 적을 만날 경우 각개격파 당하기 딱 좋았던 것입니다. 이런 작전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넓게 펼쳐진 촉수들이 정말 재빨리 움츠러들 수 있어야 했습니다. 즉, 각 군단들의 기동력이 매우 좋아야 했지요. 원래 나폴레옹 군단들의 행군 속도는 유럽 최고 수준이었습니다만, 그런 그들에게도 이런 작전은 힘에 겨운 것이었습니다. 덕분에 .. 2019. 8. 12.
러시아 침공을 위한 병참 준비 - 무엇이 문제였을까 ? (2편) 대체 이렇게 병참을 막대한 규모로 세심하게 준비했는데도 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은 보급을 등한시했기 때문에 망했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일까요 ? 이것도 흔히 말하는 가짜 뉴스 때문에 나폴레옹이 억울한 누명을 뒤집어 쓴 것일까요 ? 일단 지난 편에서 보셨다시피 나폴레옹이 여태까지 해오던 것처럼 보급을 무시하다가 큰 코 다쳤다는 이야기는 억울한 누명이 맞습니다. 나폴레옹은 러시아 원정 준비에 있어서 무엇보다 보급에 정말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원정을 준비하면서 다부에게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아무것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필요한 보급품을 모두 다 가져가야 한다." 그렇다면 혹시 보급품 쌓아놓을 생각만 했지 운송 수단에 대해서는 생각을 못한 것이 아니냐고요 ? 여러분도 생.. 2019. 8.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