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류 전체보기757

레이더 개발 이야기 (51) - 관제사가 항상 차분한 이유 미국이 레이더 자체는 영국과는 별도로 독자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이 레이더라는 물건을 함대 방공에 있어서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은가라는 점에서는 미해군은 철저하게 로열 네이비의 규범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임. 로열 네이비가 노르웨이 등지에서 피를 흘려가며 레이더 활용법을 터득했기 때문에, 그보다 더 나은 전술은 더 없다고 보았기 떄문. 어떤 규범은 상식적인 것이었지만 어떤 것들은 실전 경험이 아니면 획득하기 어려운 것들이었음. 문답식으로 몇 개를 제시하면 다음과 같음. Q1) 각각 20대씩으로 편성된 3개 적편대가 각각 다른 방향에서 아군 함대를 노리고 날아들고 있다. 아군 전투기는 30대 뿐이다. 다음 중 어떤 요격 방식이 가장 유리할까? Option 1) 선택과 집중이 중요하므로 아군 전투기 3.. 2023. 10. 19.
새로운 전쟁의 준비 (1) - 불만 가득한 연합군 기본적인 작전안이 합의되자, 러시아군은 약속대로 비트겐슈타인의 군단과 콘스탄틴 대공 휘하의 러시아 근위대와 예비대를 보헤미아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프로이센군도 클라이스트(Friedrich Graf Kleist von Nollendorf)의 제2 군단과 프로이센 근위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베르나도트가 지휘할 북방군을 편성하기 위해 러시아는 빈칭게로더의 군단을 북으로 보냈습니다. 프로이센군은 이미 북방에 주둔하고 있던 빌로의 제3 군단과 타우엔치엔의 제4 군단의 지휘권을 베르나도트에게 넘기기로 했습니다. (블뤼허도 프로이센 출신이 아니고 그나이제나우도 원래는 작센 출신이었지만, 나폴레옹보다 7살 연상이었던 클라이스트는 베를린 출신 전형적인 프로이센의 융커 귀족이었습니다. 다만 그 역시 명문가 출신은 아니.. 2023. 10. 16.
레이더 개발 이야기 (50) - 계산 연습하는 소위들 그리핀 소령의 Fighter Director Control 학교에 입교 명령을 받은 20여명의 신임 소위들은 매우 당혹스러워했음. 일단 Fighter Director Control이라는 것이 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 이들의 궁금증은 첫날 그리핀 소령이 이들에게 보안 선서를 받고 나서 설명해준 레이더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차츰 해소. 그때까지도 미군 전체에서 레이더라는 개념 자체가 군사 기밀이었던 것. 레이더 발명 이전에는 항공모함의 함재 전투기를 이용한 함대 방공의 개념이 없었나? 있긴 했는데 최소한 Fighter Director Control이라는 개념 자체는 없었음. 어차피 어느 방향에서 몇 대의 적기가 날아올지 알 수가 없었으므로, CAP (Combat Air Patrol)의 지휘는 .. 2023. 10. 12.
휴전 (15) - 두 개의 작전안 베르나도트가 연합군의 제장들을 모아놓고 밝힌 기본 작전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1) 연합군은 보헤미아군, 슐레지엔군, 북방군의 3개군으로 구성하며, 이들은 나폴레옹이 전군을 이끌고 어느 한 방면군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협동작전을 펼친다. 2) 이를 위해 3개군은 서로를 지원할 수 있는 거리 내에서 작전을 펼치도록 근접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 3) 만약 나폴레옹이 어느 한 방면군을 공격한다면, 그 목표가 된 방면군은 반드시 후퇴하고 다른 두 방면군은 나폴레옹의 후방과 측면을 공격한다. 4) 3개군은 모두 결전을 피하고 적 부대의 소모를 노린다. 단, 만약 적이 분산되어 있을 경우 과감하게 공격해야 한다. 아마 나폴레옹이 이 작전안을 보았다면 식은 땀을 흘렸을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언제나 결전을 추구.. 2023. 10. 9.
레이더 개발 이야기 (49) - 미해군의 준비 미해군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레이더 시스템 CXAM을 장착하고 장시간 운용해본 항모 USS Yorktown은 레이더의 효용성에 대해서는 매우 긍정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전투기 관제를 위해서는 이를 운용하기 위한 전문적인 인원과 함께 레이더 운용을 위한 전용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리포트를 1941년 3월에 올림. 그때까지만 해도 미해군에서는 레이더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 '새로운 장난감' 정도로 생각하고 심지어 그 운용 담당자를 장교가 아닌 부사관(chief petty officer)으로 배정했을 정도. 근데 그렇게 해놓으니 도저히 운용이 안 됨. 그 부사관들이 자기가 레이더 스코프에서 본 정보, 즉 무의미한 거리와 방위각을 아무 기준을 두지 않고 닥치는 대로 마구 전화로 보내오니 함교에 있는 고위 사관들이 .. 2023. 10. 5.
휴전 (14) - 베르나도트의 운수 좋은 날 원래 러시아와 프로이센은 나폴레옹과의 싸움에 있어서 스웨덴의 도움이 절실하지는 않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스웨덴은 작고 보잘 것 없는 나라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전장에서 승리는 결국 누가 더 많은 총검과 대포를 동원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는데, 그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구가 많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구가 각각 3천만에 육박했던 프랑스와 러시아에 비하면 인구가 240만 정도에 불과했던 스웨덴은 초라한 수준의 병력만을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 이후 영토를 절반 이상 빼앗긴 프로이센은 인구가 975만에서 450만으로 줄어드는 봉변을 당했지만, 그래도 스웨덴의 2배에 달하는 인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장 자신의 영토와 바로 인접한 작센에서 전투가 벌어지다 보니 일종의 .. 2023. 10. 2.
대잠전 전문가 테일러 스위프트를 격침하라! 최근 SNS에 이상한 무늬의 의상을 테일러 스위프트의 사진에 밀덕임이 분명한 어떤 사람의 comment가 올라옴. (번역 : 테일러 스위프트의 의상 완전 좋아! 저 의상은 배경에 비친 그녀의 몸매를 알아볼 수 없게 만들어서 독일군 U-boat들이 그녀의 거리, 속도, 진행 방향을 계산하는데 애를 먹게 만들거든!) WW2 당시, 그리고 상당 부분은 현대전에서도, 잠수함에서 수상함으로 어뢰를 쏘는 것은 매우 살 떨리는 순간. 자동화기 쏘는 것도 아니고 딱 한 번에 2~4발을 한꺼번에 쏘는 것이니 무조건 one shot one kill을 해야 함. 잠수함이 노릴 만한 대형 군함은 홀로 다니는 경우가 많지 않으니, 내가 쏜 것이 명중하든 명중하지 않든 곧 그 호위함들이 달려들어 나에게 폭뢰를 마구 투하할 것이 .. 2023. 9. 28.
휴전 (13) - 작전이 정치에 휘둘리다 로마노프 왕가는 원래는 러시아 가문이었지만, 점차 독일계 귀족 가문과 결혼을 통해 점점 서구화되었고, 특히 독일 공작 가문 출신으로 짜르에 등극한 표트르 3세 이후로는 사실상 독일계 귀족 가문 출신 인사들이 짜르에 등극했습니다. 남편안 표트르 3세를 쫓아내고 여황이 된 예카테리나 대제도 독일에서 태어난 독일인이었지요. 나폴레옹과 자웅을 겨루던 알렉산드르 1세가 바로 그 부부의 손자였는데, 그의 어머니도 그의 아내도 모두 독일인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알렉산드르는 19세 때 친구에게 자신은 아내와 함께 독일 라인 강변에 정차가여 자연 철학을 공부하며 행복하고 평범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알렉산드르는 독일계 인사들을 좋아하는 편이었습니다. 샤른호스트의 말이라면 뭐든 다 믿고 따른 것.. 2023. 9. 25.
레이더 개발 이야기 (48) - 포클랜드 상공의 H2S H2S와 그 개량 버전인 H2X는 이렇게 WW2에서 로열 에어포스가 승리를 거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 이후에도 로열 에어포스는 물론 미공군의 폭격기에서도 계속 사용됨. 그러다 1982년 아르헨티나가 남대서양의 외로운 섬 포클랜드를 침공하면서 벌어진 포클랜드 전쟁에서도 활약함. WW2 때 개발된 레이더를 1980년대에도 썼다고?? 의외지만 진짜임. 일단 그렇게 의도치 않게 장수한 이유는 영국의 경제적 몰락 때문. WW2에서의 진정한 승자는 누가 뭐래도 미국. WW2를 거치면서 산업 시설이 파괴되지 않은 유일한 선진국으로서 사실상 자유세계를 석권. 그에 버금가는 승자는 소련. 잠재적 경쟁국이었던 독일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동서독으로 분할하여 재기를 막은 뒤, 동유럽을 석권하고 공산주의를 전파하여 미국과 .. 2023. 9. 21.
휴전 (12) - 오스트리아의 준비 상황 6월 27일의 드레스덴 회견이 대실패로 끝난 것은 오스트리아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사건이었습니다. 메테르니히의 임기응변으로 일단 나폴레옹을 7월 5일의 프라하 회담에 끌어들임으로써 당장 파국은 피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시간 벌기에 불과했습니다. 당장 연합국들에게 체면이 서지 않는 것은 작은 일에 불과했습니다. 진짜 문제는 이제 오스트리아도 전쟁에 뛰어들어 피를 보게 되었는데, 아직 전쟁 준비가 완료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제 전투가 재개되면, 나폴레옹의 주된 공격 방향은 바로 오스트리아를 향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메테르니히가 드레스덴으로 떠나기 훨씬 이전부터, 러시아와 프로이센, 그리고 오스트리아의 장군들은 이미 전투 재개를 가정하고 이런저런 작전안을 논의하고.. 2023. 9. 18.
레이더 개발 이야기 (47) - 멤피스 벨과 H2X H2S는 밤눈이 어두운 로열 에어포스 항법사들에게 성공적으로 독일로 가는 밤길을 안내하는 도구가 되었으나, 쾰른이나 함부르크를 폭격할 때는 나오지 않던 불평이 베를린 폭격에서는 쏟아져 나옴. 1943년 8월 말과 9월 초, 3번에 걸친 베를린 폭격 작전후, 폭격기 사령부와 레이더 개발팀 사이의 연락 장교 역할을 하던 새워드(Saward) 중령이 베를린 상공에서 찍은 H2S 레이더 스코프의 사진을 레이더 개발팀애게 전달. 개발팀이 보니 그냥 무의미한 허연 점들과 패턴들이 화면을 채우고 있을 뿐, 뭔가 눈에 띄는 랜드마크 지형물을 구별할 수가 없었음. 다른 도시에서는 잘 통하던 H2S가 왜 유독 베를린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을까? 이유는 도시의 규모. 독일은 영국이나 프랑스와는 달리 여러 소왕국들이 분립하여 .. 2023. 9. 14.
휴전 (11) - 나폴레옹 대폭발 6월 27일 드레스덴으로 메테르니히를 불러 면담을 한 나폴레옹이 무려 무려 9시간이 넘는 이 회의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명확하게 남아 있지 않습니다. 뭔가 할 말이 많긴 많았을 것 같은데 정말 아무도 배석시키지 않고 1대1로만 면담을 했기 때문에 이들의 대화를 명확하게 기록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나폴레옹도 메테르니히도 각각 회고록을 남겼습니다만, 당대의 모든 회고록이 그렇듯이 자기에게 유리한 대로 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만 써놓았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신빙성이 높지는 않습니다. 또한, 이 두 사람도 9시간 동안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시시콜콜 녹취록을 적어 놓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별로 많은 정보를 남기지도 않았습니다. 메테르니히가 그 회담이 있었던 날 밤 자신의 주군인 프란.. 2023. 9.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