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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더 개발 이야기 (57) - 렉싱턴의 최후 (하) 일본 뇌격기들 18대 중 14대는 렉싱턴을, 4대는 요크타운을 노리고 달려듬. 이 중 3대는 항모 위에서 CAP을 치고 있던 와일드캣들이 격추. 그리고 북동쪽으로 일본기들을 찾아 날아갔다 허탕을 치고 되돌아온 와일드캣들이 추가로 1대를 격추. 이 뇌격기들을 호위하던 제로 전투기들은? 얘들은 항모 주변을 순찰하던 돈틀리스 폭격기들을 격추시키고 있었음. 무려 4대의 돈틀리스들이 격추됨. 이렇게 난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일본 뇌격기들은 침착하게 체계적으로 렉싱턴을 공략. 이들은 각자 맡은 방위각에서 렉싱턴을 노리고 어뢰를 투하. 렉싱턴의 함장 셔먼 대령이 보니 이쪽 어뢰를 피하려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면 저쪽에서 헤엄쳐오는 어뢰를 맞겠고, 반대로 왼쪽으로 틀면 이쪽에서 달려오는 어뢰를 맞을 판. 동시에 고공에서는.. 2023. 11. 30.
새로운 전쟁의 준비 (7) - 4만의 사나이 여태까지 보신 연합군 사정 중에서 핵심을 고른다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를 향해 침공을 개시할 것이라는 점에 대해 연합국 모두의 의견이 일치 2) 3개군을 편성하되, 예상되는 나폴레옹의 침공 방향에 따라 그 중 보헤미아 방면군에 주력을 집중 3) 연합국 누구도 단독으로 평화 협정을 맺지 못하도록 3개 방면군 각각을 여러 국가의 혼성 부대로 편성 4) 군복과 장비에는 부족함이 많았지만 야전군 병력은 51만으로 충분했으며, 군량은 비교적 넉넉한 상황 이와 대비하여, 나폴레옹의 준비 상황은 어땠을까요? 먼저, 나폴레옹이 8월 중순까지 끌어모을 수 있었던 병력은 약 44만이었습니다. 여기에는 37만2천의 보병과 3만의 포병 및 공병, 그리고 그토록 애타게 원했던 기병대가 .. 2023. 11. 27.
레이더 개발 이야기 (56) - 렉싱턴의 최후 (상) 운명의 5월 8일, 아침 8시 7분 경 길(Red Gill) 대위의 레이더는 렉싱턴으로부터 330도 (그러니까 약간 북서쪽) 35km 지점에서 뭔가를 포착. 관찰을 해보니 240도 방향, 즉 남서쪽으로 빠른 속도로 날아가고 있었음. 길 대위는 즉각 CAP을 그 지점으로 유도해서 확인을 시켰으나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고 레이더 상에서도 사라짐. 길 대위는 그것이 snooper, 즉 일본 해군 정찰용 수상기 같았으며 그것이 아군 함대를 보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함대 사령관인 플렛처 제독에게 보고. 바로 직후인 8시 20분, 렉싱턴에서 일본 항모를 찾으라고 날려보냈던 정찰용 Dauntless 급강하 폭격기들 중 한 대가 북쪽 280km 지점에서 일본 함대를 발견했으며, 그것들이 15노트의 속도로 똑.. 2023. 11. 23.
새로운 전쟁의 준비 (6) - 빵을 굽는 군대와 굽지 않는 군대 랑제론을 비롯한 슐레지엔 방면군 소속 러시아군 장교들의 감정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는 금방 러시아군 총사령관 바클레이에게까지 들어갔습니다. 바클레이도 보헤미아 방면군 소속으로서 오스트리아 슈바르첸베르크의 밑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도 그게 싫어서 휘하 병력이 보헤미아로 들어간 뒤에도 끝까지 현지로 떠나지 않고 최대한 라이헨바흐에서 버티고 있는 처지였습니다. 바클레이는 동병상련의 감정도 있고 해서, 보헤미아로 떠나기 직전 랑제론을 불러 '짜르께서는 랑제론 당신의 능력과 역할을 주목하고 계신다'라는 정도의 격려의 말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뜻밖의 효과를 냈습니다. 구체적으로 무슨 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랑제론은 바클레이와의 인터뷰 이후 자신이 블뤼허의 부하라기보다는 일종의 감시인으로 슐.. 2023. 11. 20.
레이더 개발 이야기 (55) - 친구인가 적인가? 전편에서 언급했듯이, 당시의 CXAM radar는 손으로 일일이 안테나를 돌려가며 한참동안 그 목표물을 추적 관찰하면서 방위각과 거리, 속도와 방향을 계산하고 그래프를 보고 고도를 추측해야 하는 물건. 따라서 100여개의 목표물을 동시에 자동으로 추적하며 수십개의 목표물과 동시 교전을 할 수 있는 현대적 Aegis radar와는 차원이 달랐음. 무엇보다, 여러 대의 적 편대가 따로 따로 나타날 경우 레이더 운용사는 정말 손발이 바빠질 수 밖에 없었음. 당시 항모의 공중전 상황에서 2개 이상의 편대를 추적할 일이 많았을까 라고 생각해보면 당연히 있었음. 왜냐하면 적기 뿐만 아니라 아군 항모를 지켜주는 CAP (Combat Air Patrol) 전투기들이 항상 있었기 때문. 아군 CAP을 적기 쪽으로 유도,.. 2023. 11. 16.
새로운 전쟁의 준비 (5) - 러시아군의 상황 지난 편에서 프로이센군의 상황을 대충 보셨습니다만, 러시아군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뭐니뭐니 해도 국가는 덩치가 깡패라고, 러시아는 대국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러시아군은 나폴레옹의 침공이 시작된 1812년 8월부터 1813년 8월까지의 1년 동안 대략 65만 명을 징집했습니다. 당시 러시아 인구가 대략 3천만이었으니 전체 인구의 거의 2.2%에 해당하는 엄청난 비율이었습니다. 덕분에 휴전 기간 중 러시아군은 기대한 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한 수준의 병력 보충과 보급품, 그리고 장비를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러시아군이 충분한 병력과 장비를 갖추지 못한 것은 본국 러시아와의 거리 때문이었지 본국의 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었거든요. 휴전 직전만 하더라도 바클레이는 탄약이 부족.. 2023. 11. 13.
레이더 개발 이야기 (54) - 방위각, 거리, 그리고... 고도! 이렇게 혁혁한 공을 세우는 CXAM radar를 가진 항모 USS Lexington도 결국 산호해 해전에서 일본 뇌격기들의 어뢰를 쳐맞고 해저로 꼬로록. 여태까지의 활약을 보면 천리안 역할을 하는 CXAM 레이더 덕분에 천하무적일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일단 왜 렉싱턴이 물고기밥이 되었는지를 이해하려면 먼저 당시의 CXAM radar를 이해해야 함. 당시 레이더 운용사의 근무 위치는 CXAM radar 안테나 바로 아래에 위치한 좁고 작은 방이었는데, 왜 이 레이더 운용사는 전투기 관제사 및 작도병들이 있는 radar plot room에서 함께 근무하지 않고 혼자 레이더 바로 밑에서 근무해야 했을까? 이유는 미군들이 flying bedspring이라고 불렀던, 꽤 큼직한 크기의 CXAM ra.. 2023. 11. 9.
새로운 전쟁의 준비 (4) - 와인 대신 브랜디를 준비한 뜻 전에 언급한 것처럼 슐레지엔 방면군에는 이런 국민방위군이 특히 많이 배정되었습니다. 이렇게 암울한 군대를 이끌고 진격을 해야 하는 블뤼허의 심정은 얼마나 처참했을까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7월 20일 러시아 콘스탄틴 대공과 함께 국민방위군 대대들을 검열한 블뤼허는 그나이제나우에게 편지를 써서 부대들의 준비 상태가 매우 훌륭한 것에 대해 콘스탄틴 대공도 감탄했다며 만족스러워 했습니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요? 아마 군대는 예나 지금이나 윗선에 '보여주기' 방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나 봅니다. 검열받는 부대가 다른 부대들로부터 군복과 무기, 심지어 병사들 자체도 빌려 왔던 모양이라고 짐작만 할 뿐입니다. (군대에서 가장 힘든 것이 훈련보다는 검열이라고 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림은 1811.. 2023. 11. 6.
레이더 개발 이야기 (53) - 레이더, Betty, 알 카포네 그렇게 격추된 2대의 일본군 정찰기 중 최소 1대가 라바울에 미해군 기동부대 목격을 보고한 것이 확실. 왜냐하면 오후 4시 10분 경에 렉싱턴의 레이더 스코프에 렉싱턴 방향으로 날아드는 거대한 편대의 모습이 약 100km 밖 남쪽에 나타났기 때문. 길 대위는 즉각 CAP을 치고 있던 6대의 Wildcat 전투기들을 그 쪽으로 보내 요격하게 했는데, 이들은 약 20분 뒤인 4시 30분에 일본군 폭격기들을 목격하고 Tallyho를 외침. 다행인지 혹은 필연인지 이 9대의 쌍발 폭격기들은 아무런 전투기 호위를 데리고 있지 않았음. 렉싱턴이 라바울 발진 전투기들의 전투 반경에서 훨씬 더 멀리 있었기 때문. (미해군의 WW2 초기 함재 전투기인 F4F Wildcat. 이후 배치된 F6F Hellcat에 밀려났지만.. 2023. 11. 2.
새로운 전쟁의 준비 (3) - 국민방위군(Landwehr)의 실상 여기서 잠깐, 국민방위군이란 정규군에 징집될 청년보다는 나이가 좀 더 많지만 중산층의 시민들이 자비로 무기와 군복을 마련하여 자발적으로 편성된 부대라고 하지 않았나요? 원래는 그랬습니다만 그건 평화시에 향토 방위 임무나 주어질 때의 이야기였습니다. 애초에 프로이센에 자비로 무기와 군복을 마련할 정도의 중산층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지만, 이제 머나먼 타향으로 떠나 무시무시한 나폴레옹군의 총검 앞에 총알받이로 뛰어들어야 할 판국인데 정든 고향과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 하고 자원하는 중산층의 중년 남자가 많을 리도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편성된 국민방위군은 자원병도 아니었고 중산층도 아니었으며, 자비로 마련한 군복과 무기도 없었습니다. 현실의 이들은 그냥 누더기 같은 작업복을 입고 손에는 보병용 창을 든 .. 2023. 10. 30.
레이더 개발 이야기 (52) - USS Lexington의 실전 사례 혼란스럽고 긴박한 전투 상황에서도 명확한 메시지 전달이 되기 위해서는 메시지 자체가 짧아야 했고, 그러자면 용어가 통일되어야 했음. 그렇다고 yes 또는 no처럼 너무 짧은 단어는 통화감이 좋지 않고 자주 지직거리는 무전기에서는 오히려 제대로 안 들릴 가능성이 있었으므로, 좀더 명확한 단어가 되어야 했음. 그래서 yes나 no 대신 affirmative와 negative를 쓰기로 했음. 이 모든 무선 용어집은 미해군에서 독자 개발한 것이 아니고, 레이더 실전에서의 선배인 로열 네이비에서 작성한 것을 그대로 가져온 것. 이는 향후 로열 네이비와 합동 작전을 벌일 때에도 유용하게 작용. (미군들이 무전기로 대화할 때 yes나 no 대신 affirmative, negative로 이야기하는 장면을 영화에서 많이.. 2023. 10. 26.
새로운 전쟁의 준비 (2) - 프로이센의 고민 원래 7월 20일까지였던 휴전 기간은 양측의 합의 하에 8월 10일로 연장되었고, 그때까지 평화 협정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전투가 재개되려면 6일 간의 유예기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전투가 재개되는 것은 8월 17일 새벽 0시부터였습니다. 사실상 건성이었던 평화 협상에 희망을 걸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양측은 8월 17일의 전투 재개만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양측의 상황은 어땠을까요? 프로이센군은 전반적으로 사기가 높은 편이라고 다들 말했습니다. 비록 뤼첸-바우첸에서 2연패를 당했으므로 4월달에 처음 출정할 때처럼 희망만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자신들이 패배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인 러시아군이 후퇴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는 분위기였습니다. 무엇보다 그 무시.. 2023. 10.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