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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시대394

보로디노 전투 (4) - 아우스테를리츠의 기억 9월 6일 밤, 나폴레옹의 천막에서 당직을 설 장군은 용감하고 충직한 랍(Jean Rapp)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전날 밤 잠들기 전에 근처를 흐르는 모스크바 강의 이름을 따서 내일 있을 전투의 이름을 'la Moskowa'라고 미리 지어놓을 정도로 이 전투의 승리를 자신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새벽 3시에 일어나 펀치주 한잔의 조촐한 아침 식사를 랍과 함께 한 나폴레옹의 기분은 이상하리만큼 차분했습니다. 그는 랍에게 오늘 전세가 어떨 것 같으냐고 물은 뒤, 당연히 돌아온 낙관적인 대답에 대해 '행운의 여신은 변덕스러운 매춘부인데 이제 그걸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매우 냉소적인 혼잣말을 했습니다. 랍은 그 풀이 죽은 듯한 나폴레옹의 어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제 모스크바가 멀지 않았고 먹.. 2020. 8. 20.
보로디노 전투 (3) - 쿠투조프는 대체 왜 그랬을까 나폴레옹은 자신의 방식대로 러시아군 좌익을 공격하는데 있어서 걸리적 거리는 러시아군 진지였던 셰바르디노 보루를 먼저 걷어내기로 합니다. 보로디노 진지를 발견했던 9월 5일 바로 그날 저녁 5시, 거기까지 걸어오느리 지쳤을 다부의 군단에게 나폴레옹은 휴식이고 뭐고 없이 당장 공격을 지시했습니다. 콩팡(Compans) 장군의 사단이 그 작은 진지를 공격했는데, 여기는 워낙 작고 고립된 진지이다보니 쉽게 함락되었습니다. (콩팡(Jean Dominique Compans) 장군입니다. 나폴레옹과 동갑이었던 그는 란, 그리고 나중에는 술트 밑에서 지휘관을 했고 마렝고와 아우스테를리츠 등에서 공훈을 세웠습니다. 1815년 나폴레옹의 백일천하 때는 나폴레옹 편에 붙었으나 현역 군 지휘관으로는 뛰지 않아 부르봉 왕가로부.. 2020. 8. 10.
보로디노 전투 (2) - 나폴레옹은 대체 왜 그랬을까 9월 5일 이른 아침, 콜로츠코예(Kolotskoie)의 작은 수도원에 도착한 뮈라의 정찰대는 나지막한 구릉 위에서 전투 준비를 갖추고 있는 러시아군을 발견했습니다. 뮈라는 당연히 나폴레옹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러시아군이 후퇴를 멈추고 땅을 파고 있다는 소식에 나폴레옹은 어깨춤을 들썩이며 한달음에 달려왔습니다. 나폴레옹이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는 정오 무렵이었고 마침 수도원의 점심 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작고 초라한 식당에 모여있던 늙은 러시아 수도승들에게 엉터리 폴란드어로 '식사 맛있게 하세요'(불어로 Bon appetit)라고 아무렇게나 서둘러 인사를 한 나폴레옹은 곧장 말을 달려 러시아군의 진지를 멀찍이서 관찰했습니다. 시리아에서 프로이센까지, 그리고 스페인에서 폴란드까지 온갖 전장을 경험해 본 나폴.. 2020. 8. 6.
보로디노 전투 (1) - 러시아군의 방어선 구축 9월 3일, 톨의 안내를 받으며 보로디노 현장에 도착한 쿠투조프의 눈에도 이 지역이 나폴레옹과 맞서 싸우기에는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되었습니다. 여태까지 러시아군이 철수해온 지역은 탁 트인 전형적인 러시아 평야지대였고, 특히나 나폴레옹이 진격하는데 사용하고 있던 스몰렌스크-모스크바 대로는 당연히 평탄한 지대를 따라서 흐르고 있었습니다. 당시 수적 열세에 고심하던 러시아군은 당연히 방어전을 펼치기를 원했는데, 그러자면 높은 고지나 넓고 깊은 강을 끼고 싸우는 것이 유리했습니다. 그렇다고 스몰렌스크-모스크바 대로에서 멀리 떨어진 산악 지대에 들어가 진을 칠 수도 없었습니다. 나폴레옹이 그들을 감시할 부대를 붙여놓고 그대로 모스크바로 진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보로디노 .. 2020. 7. 27.
쿠투조프의 고민 - 보로디노(Borodino)로 가는 길 쿠투조프는 왜 전임자인 바클레이가 온 나라로부터 욕을 먹었고, 왜 자신이 그 후임자로 지명되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사명은 궁극적으로야 나폴레옹을 무찌르는 것이었습니다만 1차 목표는 모스크바를 지키는 것이었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또 후퇴를 했다가는 자신도 바클레이와 다를 바가 없게 되는 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정치적 상황은 그렇다치고, 군사적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습니다. 전쟁에서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과 엄청난 물자와 비용을 희생시켜가며 싸우는 이유는 승리를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승리하지 못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싸운다는 것은 무능을 떠나 국가에 대한 반역 행위에 가까운 일입니다. 쿠투조프가 나폴레옹과 싸우려고 보니, .. 2020. 7. 20.
나폴레옹 시대, 영국 신사의 플렉스 - The Commodore 중 한 장면 지난 번 번역했던 'The Commodore' 편에서 링글 호 탈출 이야기의 바로 이어지는 뒷부분으로서, 나폴레옹 시절 영국 신사(정확하게는 아일랜드 신사)의 돈자랑 인맥자랑, 즉 플렉스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지난 번 링글 호의 활약으로 프랑스 사략선의 추격으로부터 탈출한 스티븐은 엄청난 거금인, 몇 상자의 금화 궤짝을 가지고 스페인 코루냐 항구에 입항합니다. 그런데 프랑스 사략선이야 속도와 항해술로 탈출할 수 있지만, 항구에 진을 치고 기다리는 세관원은 피할 방법이 없습니다. 진보-보수를 떠나 세금 내는 것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요. 과연 스페인 세관원을 어떤 식으로 통과해야 할까요 ? The Commodore by Patrick O'Brian (배경 : 1812년 스페인 항구에 입항한 영국 소형 선박.. 2020. 7. 16.
도주의 멋과 희열 - The Commodore 중 한 장면 전에 회사 사람들과 영화 이야기를 하다, 이런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무조건 싸우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는 것이지요. 그게 검이건 자동화기건 광선총이든이요. (여자들이 좋아하는 영화는 잘 생기고 능력있는 남자들이 여자 하나를 놓고 싸우는 내용이라는 설도 있긴 했습니다...) 제가 재미있게 본 영화들이 다 무식하게 쌈박질만 하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생각해보면 딱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남자들은 짐승 수준에서 크게 발달한 존재들이 아니다 보니, 제일 좋아하는 내용이 피튀기며 싸우는 내용이긴 합니다. (태권도 vs. 유도, 야구배트 vs. 재크 나이프, F-15 vs. 라팔, 메이웨더 vs. 파퀴아오, 로마 군단 vs. 몽골 기병, 사자 vs. 호랑이...) 하지만 그렇게 싸우는 .. 2020. 7. 9.
쿠투조프의 마성적 매력 쿠투조프가 상트 페체르부르그에서 알렉산드르로부터 정식으로 야전군 총사령관의 임명장을 받은 것은 1812년 8월 20일이었습니다만, 하루가 급한 전시 상황에서도 쿠투조프는 당장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임명장을 받고 나와서 한 최초의 일은 카잔 성당(Kazanskiy Kafedralniy Sobor, the Cathedral of Our Lady of Kazan)에 가서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제복 코트를 벗고 성스러운 성모 마리아의 성상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줄줄 흘리며 한참 동안 기도를 올렸습니다. 다음 날도 출발하지 않고, 이번에는 와이프까지 데리고 상트 블라디미르(St. Vladimir) 성당에 가서 역시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경건하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임명장을 받은.. 2020. 7. 6.
행운(?)의 쿠투조프 (3) 이하는 랑쥬롱이 그의 비망록에 남겨놓은 쿠투조프에 대한 평가를 거의 그대로 옮겨 놓은 것입니다. 굉장히 악의적인 표현이 많습니다만, 아마 사실이 대부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쿠투조프처럼 기백은 넘치지만 별 개성이 없는 인물이 드물 것이다. 수완과 교활함의 그렇게 조합됨과 동시에, 실질적인 재주가 보잘 것 없으면서 거기에 도덕성까지 결여된 인물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기억력이 아주 비상하고 배운 것도 많으면서, 보기 드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남들과의 대화를 그토록 재치있게 이끌어나가는 재주가 있었고, 매우 온화한 성격이었다. 그 온화함은 조금 가식적인 것이었지만 어차피 그런 것에 속아넘어가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많았다. 쿠투조프의 매력은 바로 그런 점들이었다. 그는 화가 났거나 상대방이 .. 2020. 6. 29.
행운(?)의 쿠투조프 (2) 1788년 시작된 전쟁에서, 쿠투조프는 포템킨(Grigory Aleksandrovich Potemkin-Tauricheski) 대공의 지휘 하에 흑해 연안의 오스만 투르크 요새 오차코프(Ochakov)를 공격 중이었습니다. 수보로프 장군은 '총알은 빗나간다, 총검은 그러지 않는다' 라는 명언처럼 보병 돌격을 중시하는 스타일이었는데, 그에 비해 포템킨 대공은 원거리에서 포위한 채 포격에 의존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덕분에 병사들은 당장은 목숨을 부지하게 되었다고 좋아했으나 꼭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장기간 포위 작전을 하다보니 병사들 사이에서 온갖 질병이 유행하며 병사들이 픽픽 죽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포템킨 대공입니다. 그는 러시아가 새로 정복한 흑해 연안 일대 전체의 주지사로 있었는데, 그가 당시 건설.. 2020. 6. 22.
행운(?)의 쿠투조프 (1) 알렉산드르가 쿠투조프를 싫어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얼굴이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오른쪽 눈을 매우 싫어했지요. 심하게 뒤틀린 사팔뜨기 눈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의 오른쪽 눈은 실명한 상태라는 말도 있고, 양쪽 눈이 다 잘 보였다는 말도 있습니다. 쿠투조프를 정말 영웅적인 현인으로 묘사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도 쿠투조프의 오른쪽 눈 실명 여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다소 애매하게 나옵니다. (가만 보면 쿠투조프의 초상화는 대부분 얼굴을 살짝 오른쪽으로 돌린 포즈를 취하고 있어서 오른쪽 눈은 잘 보여주지 않습니다.) --------------------- 검열 이후 장교들의 쾌활한 분위기는 병사들에게도 퍼져 나갔다. 중대는 기분 좋게 행진했다. 사방에서 병사들의 잡담 소리가 들렸다. ".. 2020. 6. 15.
두 도시의 분위기 - 쿠투조프의 등장 전방에서 프랑스군과 러시아군, 나폴레옹과 바클레이 등이 뒤엉켜 몸과 마음이 다 고생하는 동안, 후방의 러시아인들도 적어도 마음은 큰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황실 가족들이 모여 살던 서구적 도시 상트 페체르부르크는 상류층이나 서민층이나 모두 '이 전쟁은 이미 진 것'이라는 패배주의가 주도적이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자금과 인력을 모집하는데 성공하고 8월 초 상트 페체르부르그로 돌아온 알렉산드르가 보니, 심지어 자기 모친인 황태후조차도 각종 귀중품을 이미 도시 밖으로 빼돌려 놓고 자신도 언제든 피난갈 수 있도록 마차를 준비시켜 놓은 상태였습니다. 다른 귀족 가문들도 모두 말과 마차를 즉시 출발 가능 상태로 대기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트 페체르부르그와는 달리 모스크바는 적어도.. 2020.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