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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모에-샹동을 마셨을까 모엣-샹동을 마셨을까 ? 최근에 조선일보에서 조선일보답게 유명 와인 브랜드인 Moët & Chandon 관련된 기사를 냈더군요. 프랑스 샹파뉴(Champagne) 지방의 에페르네(Épernay) 현지 취재 기사였는데, 그냥 Moët & Chandon 사의 광고 이하도 이상도 아닌 그런 기사였습니다. https://m.chosun.com/news/article.amp.html?sname=news&contid=2019122000173 제가 이 기사를 클릭한 것은 어떤 포털에서 '나폴레옹이 사랑한 술, 승리의 순간마다 삼켰다'라는 제목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 나폴레옹이 진짜 좋아해서 항상 챙겼던 와인은 부르고뉴(Bourgogne) 지방의 샹베르텡(Chambertin) 와인이었기 때문에, 아마 그 와인 이야기인 모양이라고.. 2019. 12. 26.
1812년, 드리사(Drissa)에서의 러시아군 : '전쟁과 평화' 중에서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는 누구나 인정하는 명작 고전입니다. 여기에는 역사상 실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며, 많은 역사서에서 잘 다루지 않는 퓰과 그가 기안했던 드리사 방어 진지에 대해서도 꽤 자세히 나옵니다. 무엇보다도 빌나에서 후퇴한 이후 원래 계획대로 드리사 방어 기지로 후퇴한 러시아군의 내부 상황에 대해서 무척 생생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제가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 다운받은 영문판 전쟁과 평화를 제 나름대로 번역했습니다. ------------------------------------ 제9권 1812년 제9장 안드레이 대공이 러시아군 총사령부에 도착한 것은 6월 말이었다. 짜르가 함께 하고 있던 제1군은 드리사(Drissa)의 요새화된 병영에 주둔하고 있었다. 제2군은 프랑스의 대군에 .. 2019. 12. 23.
존 바에즈가 전우애를 노래했다 ? - Brothers In Arms 가사 해설 최근에 열심히 보는 웹툰이 있습니다. '호랑이 형님'이라고 네이버에서 토요일에 연재하는 웹툰인데, 우리 전통 설화와 판타지와 조선 초기의 역사를 오밀조밀 짜맞춘 액션+귀요미+무협+의리 계열의 웹툰입니다. 제가 볼 때 정말 대단한 명작입니다. 링크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nhn?titleId=650305&weekday=sat 나름대로 줄거리가 복잡한 만화라서 여기에서 설명을 하기는 좀 그렇고, 최근 줄거리를 요약하면 곰 일족의 수장이 일족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일족의 새끼 중에서 가장 강한 새끼곰을 골라 끔찍한 고통을 겪을 용병으로 요괴들에게 보내는 사연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장면에 우연히 끼어들게된 그런 용병 출신의 다른 짐승이 그런 현실.. 2019. 12. 19.
제롬 이야기 - 나폴레옹의 일시적 실수 ? 본질적 문제 ! 제롬 보나파르트(Jérôme-Napoléon Bonaparte)는 1784년 생으로서 나폴레옹에게는 15살 어린 정말 아들 같은 막내 동생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이 1793년 툴롱(Toulon) 포위전을 통해 중위에서 장군까지 일사천리의 승진 가도를 달리면서 일약 스타로 떠올랐을 때, 그의 나이는 고작 9살이었습니다. 이 툴롱 포위전이 한창일 때만 해도 보나파르트 일가는 고향 코르시카에서 쫓겨나 집도 절도 없이 마르세이유의 월세방을 전전하던 신세였지만 나폴레옹의 출세 덕분에 그 이후로는 생활에 기름칠이 잘 된 편이었습니다. 즉, 제롬은 형의 후광에 힘입어 아주 어릴 때 빼고는 그다지 세상살이가 어려운 줄 모르고 자라났다는 이야기지요. (베스트팔렌 국왕 제롬 보나파르트 전하이십니다. 가만히 보면 이목구비가 확.. 2019. 12. 16.
위기 일발 - 바그라티온의 탈출 바클레이는 엉망진창이었던 러시아군 지휘 체계 안에서 그래도 거의 유일하게 냉정한 두뇌를 유지하고 있던 용의주도한 사람이었습니다. 6월 26일 허둥지둥 빌나 철수를 하는 와중에도 잔뜩 쌓인 군수품에 불을 질렀을 뿐만 아니라 저멀리 떨어져있던 고집불통 제2군 지휘관 바그라티온에게도 전령을 보내어 후퇴하여 자신의 제1군과 합류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잠깐, '부탁'이라고요 ? 군대에서 군사작전을 벌이면서 '부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까 ? 어쨌든 바클레이는 그래야 했습니다. 이 어이없는 일은 모두 알렉산드르의 책임이었습니다. 알렉산드르가 바클레이를 총지휘관으로 임명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짜르가 바그라티온으로부터 보고를 직접 받고 있었기 때문에, 가뜩이나 바클레이를 싫어하던 바그라티온은 바클레이를 자신의 상.. 2019. 12. 9.
화장실 이야기 - 고대 그리스에서 나폴레옹까지 서양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를 '꿈의 나라'라고 하며 동경합니다. 서양의 문화적 토대가 처음으로 이루어졌고, 또 민주주의의 시발점이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고대 그리스가 그런 꿈의 나라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소리를 들으면 엉뚱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곳에서는 화장실이 어땠을까 ? 간단히 말하면 이나영이나 한예슬도 화장실에 갈까 정도의 생각이지요. 답부터 말하자면, 고대 그리스의 도시 중 그래도 가장 화려하고, 또 가장 잘 발굴된 도시인 아테네에도, 공중 화장실은 없었습니다. 또 집집마다 화장실이라고 할 만한 것이 따로 있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아테네인들은 어떻게 용변을 보았을까요 ? 뭐, 뻔하지 않습니까 ? 요강을 썼습니다. 영어로는 chamber pot 이라고 하지요. 헬라어로는 .. 2019. 12. 5.
잘못된 시작 - 빌나(Vilna)에서의 프랑스군 네만 강을 건너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나(Vilna, Wilna, Vilnius)에 입성하기까지 총 한 방 쏘지 않았던 프랑스군은 겉으로 보기에는 승승장구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프랑스군이 빌나에 입성할 때, 빌나 주민들의 반응을 봐도 그랬습니다. 당시 빌나는 러시아의 직접 통치 하에 들어간지 약 20년이 채 안 된 상태였었는데, 러시아계 관료들이나 러시아 측에 붙었던 폴란드계 귀족들은 러시아군이 철수할 때 그 뒤를 따라 함께 피난을 가버린 뒤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남아있던 폴란드-리투아니아계 주민들은 프랑스군을 해방군으로서 열렬히 환영했습니다. 당시 폴란드 창기병 부대를 이끌고 빌나에 거의 처음으로 입성했던 로만 솔틱(Roman Soltyk) 백작의 목격담에 따르면 거리와 광장은 환영 인파로 가득했고 창.. 2019. 12. 2.
1812년 전쟁의 시작 - 네만 강을 넘다 6월 23일 아침, 나폴레옹은 미리 준비해둔 감동스러운 연설을 통해 '제2차 폴란드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이 전쟁을 통해 지난 50년 간 러시아가 유럽에 보여주었던 오만한 영향력을 분쇄할 것이라고 병사들에게 선포했습니다. 당연히 병사들은 'Vive l'Empeurer !'를 외치며 호응했고, 나폴레옹을 속으로 싫어하던 장교들과 병사들마저도 그 광경에는 감탄해마지 않았습니다. 그 날 저녁부터 나폴레옹은 소수의 부하들만 데리고 네만 강가를 달리며 적절한 도하 장소를 물색했고, 마침내 밤 10시에 제13 경보병 연대가 보트를 이용하여 어둠 속에 조용히 강을 도하했습니다. 네만 강 동쪽 강변을 장악한 이들의 엄호 속에서 에블레(Jean Baptiste Eblé) 장군의 공병대가 3가닥의 부교를 놓기 시작했습니다.. 2019. 11. 25.
엘리자베스 워런은 사회주의자인가 ?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이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면서, 미국에서도 워런을 '사회주의자'라거나 '시장경제 파괴자' 등으로 매도하는 움직임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또 엘리자베스 워런의 선거팀이 올린 글을 읽었는데, 이번에는 미국의 농가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를 읽고 제가 느낀 것을 요약하면 2가지입니다. 1) 워런은 결코 사회주의자가 아니며 오히려 '시장경제의 핵심은 경쟁'이라는 것을 잘 이해하는 진짜 시장주의자입니다. (웃기게도, 그 부분이 대기업들이 싫어하는 부분입니다.) 2) 미국 농업의 경쟁력이 세계 최고라고들 하지만, 결국 수익은 미국 농가들을 쥐어짜는 대형 농업 관련 기업들이 다 가져가며 미국의 가족농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여.. 2019. 11. 21.
1812년 나폴레옹을 기다리는 러시아군의 내부사정 (마지막편) 그런데 놀랍게도 러시아군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네만 강을 따라 늘어선 여러 마을에 분산되어 숙영 중이었는데, 주로 사열과 분열 같은 제식 훈련만 죽어라고 했습니다. 장교들은 자기들끼리 무도회와 파티를 벌이며 시골 아가씨들과의 연애 모험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짜르 알렉산드르를 따라 빌나에 와있던 국무부 장관 쉬시코프(Aleksandr Semyonovich Shishkov)는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마치 적군이 수천 km 먼 곳에 떨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도 근심걱정이 없는 듯 했다. 심지어 적군에 대한 아무런 소식도 들어오지 않았다." 적군에 대한 소식은 커녕 아군인 러시아군으로부터도 아무 뉴스가 없었습니다. 러시아군이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었기 때.. 2019. 11. 18.
이보다 더 좋은 축복 노래는 없다 - Forever Young 가사 해설 맨 처음 이 노래를 대충 들었을 때, 뭔가 연인 사이에서 불러지는 노래인가 싶었습니다. 다만 '네가 영원이 젊었으면 좋겠구나'라는 부분이 좀 이상했어요. 연인 사이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쟎아요 ? 무슨 불로초를 바라는 진시황의 노래도 아니고 말이지요. 좀더 가사를 들어보고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건 자기 아이를 위한 축복 노래라는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 노래의 배경을 뒤져 보니, 역시 밥 딜런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지은 노래더군요. 다시 들어봐도, 자신의 아이를 위해 이보다 더 나은 축복의 가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종교가 무엇이든, 아이의 장래 희망이 무엇이든, 아이가 공부를 잘하든 운동을 잘하든 혹은 어떤 것에든 뛰어난 점이 없더라도, 모든 경우에 잘 어울리는 가사에요. 인간이 항상 젊을 수는 없지.. 2019. 11. 14.
1812년 나폴레옹을 기다리는 러시아군의 내부 사정 (제3편) 이미 1811년부터 러시아는 프랑스와 언제 한판 붙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쉽게 말해서 1812년 6월 경 러시아는 거의 1년 넘게 전쟁 준비를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제 나폴레옹을 맞이할 러시아의 준비 상태는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요 ? 한줄 요약하자면 머리 수만 따지면 프랑스군의 그랑다르메에 비해 그다지 나쁘지 않았습니다. 원래 1805년 당시 러시아의 징집 제도는 일종의 지역 차출제로서, 지역 농노들 500명 중에서 4명의 장정을 병정으로 차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차출된 운 나쁜 젊은이에게는 25년의 병역 의무가 주어졌는데, 당시엔 전화는 커녕 우편도 변변치 않았는데다 어차피 본인이나 가족이나 모두 문맹인 경우가 많아서 가족과 연락을 주고 받을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 2019. 11. 11.